로라미용실 - 교제 살인은 반드시 처단되어야 한다
박성신 지음 / 북오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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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되긴 했지만 교제폭력에 대한 지금 이순간 분노가 현실적이다.


여자가 말대꾸를 해서

미안하다고 했는데 받아주지 않아서

헤어지자고 먼저 말을 해서 

내가 기분이 나빠서

여자를 때리고 죽이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지금 이순간 내 마음이 그렇다 라고 하면 모든 거시 이유가 된다.

내 마음이 그런데 니가 나를 건드렸어. 나를 화나게 하네 짜증나게 하네

결국 세상의 중심인 나(남성)을 건드렸기때문에 당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런 사건을 두고 세상은 말한다.

참지 그랬어

진작에 헤어졌어야지

그런 사람을 첨부터 몰랐던 거니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야 기분 좀 맞춰주면 돼

남자들은 다 애잖아 우쭈쭈 해주면 금방 풀려

설마 죽이겠어 지금은 화가 나니까 아무말이나 하는 거예요


지나가다가 모르는 사람이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가도 화가 나고 폭력이라 마땅히 받아들이는데

아는 사람이, 한떄 사랑했던 사람이 친밀한 사람이  가하는 행동은 폭력인지 아닌지 어렵다.

내가 무엇을 더 잘하면 

무엇을 더 조심하면

무엇을 더 노력하면 될까 원인을 나에게 찾는다


내 어꺠가 너무 넓어서 내가 도로를 너무 많이 차지해서 

내가 주위를 살피지 않아서 등등 폭력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는 건 

결국 친밀한 관계의 폭력밖에 없다.


가정폭력이건 교제폭력이건  피해자가 더 반성하고 고민하게 하는 잉가 뭘까


소설 말미엥서 주인공이 생각하듯이

내 엄마를 죽인 건 폭행하고 불을 붙인 그 남자지만

여자가 저렇게 헤퍼서 못쓰지 ...라는 사회적 통념

잘 사귀어 봐 맞춰주면서 라는 주위사람들

아 우리도 바빠요 남의 연애사에 신경쓸 겨를이 없어요 라는 공권력

설마 남편이 연인이 죽이겠어요 라고 넘어가는 기관들 

결국 우리는 공범이다.


세상 모든 폭력은 행위자 잘못이고 행위자가 교정되어야 할 일이다.


최근 다시 밀양 집단 성폭행사건이  회자되고 있다.

정리되지 않고 덮고 넘어간 상처들이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올라오는 건 

숭하고 부끄러운게 아니다.

미처 치료되지 못한 상처는 다시 덧날 수 밖에 없고  반성은 아무리 늦어도 필요하다.

소설에서만  보였던 사적 복수만 세상을 정의롭게 하는 걸까?

폭력이 폭력으로 대응되는 것밖에 방법이 없나?

여러가지로 생각이 많은 요즘 읽은 책이다. 


왜 시간이 흘러도 교제폭력, 가정폭력의 유형은 늘 한결같을까

도데체 뭐가 변하지 않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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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월급사실주의
남궁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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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봤던 드라마 <사랑의 이해>가 생각났다.

그 드라마도 소설원작이랬다.

은행원들 이야기였고 멜로가 있었지만 그 드라마에서 내가 본 건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은행은 내게도 익숙한 공간이어서 그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사이의 공기의 밀도, 긴장감들을 함께 느꼈다. 내가 그 공간에 있을 땐 정규직 비정규직은 없었다. 다만 그때는 고졸 대졸이 나뉘었고 경력이 다르게 입사하지만 여자라면 같은 단계에서 누군가 조금 위에서 시작하고 누군가는 조금 아래에서 시작하는 정도였다. 아마 그때 대졸 여행원을 막 뽑기 시작한 무려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은행이라는 조직이 갖는 긴장감이나 단순하고 고지식한 면 그 속에서도 정치도 있고 무리도 있는 것들을 보면서 변했지만 변하지 않았구나 하는 걸 느꼈었다.

 

일을 위해 모인 공간에서 일은 어렵지 않다.

물론 일이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개인의 능력이나 기질에 따라 능률이 다르기는 하지만 어찌어찌 해내거나 포기하고 다른 일을 알아보거나 등 일이 주는 무게감이나 스트레스는 크다고 할 수 없다.

어쩌면 일을 해내는 건 디폴트값이고 다른 자잘한 것들이 더 힘들게 한다.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하는 곳, 같은 목적을 가지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은 단순하다

일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과의 관계가 미묘하다.

일은 매뉴얼이 있고 숙지해야할 규칙이 있다.

서툴더라도 시간이 해결해 줄 때도 있다.

그러나 관계는 매뉴얼이 없고 개인마다 취향이 다르고 원하는 바가 다르고 느끼는 감각이 다르다. 나같으려니 하고 좋은 마음으로 다가갔다가 상처를 입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차라리 분명한 선과 악이 있으면 편안할탠데 사람이란 그런 존재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한없이 믿음직한 직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까칠하고 알 수 없는 상사이기도 하다. 어제까지 괜찮았던 사람이 사소한 문제 사실 사쇠한 문제란 없다. 내게 절대절명이지만 타인에게는 그까짓것 하는 문제로 등을 돌릴 수도 있고 스트레스를 얹어주기도 한다.

 

일만 하자 일만

하고 일에 묻히는 게 차라리 나아서 누구와도 관계하지 않고 혼자 외롭고 고독하게 일만 하면서 출퇴근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월급이 쌓이고 올라가고 다른 충족감이 생긴다.

그러나 지금의 월급생활 아니 모두를 뭉뚱그려서 노동을 하고 댓가를 받는 일들이 그렇게 뿌듯하고 자존감을 올리는 일이 아니게 되었다.

죽어라 일하는 개미는 여전히 개미일 뿐이다.

죽어라 해야하는 일을 얻는 것도 힘들고 운 좋아서 일을 얻어도 그 일을 하다가 죽는다는 것이 명예로운 일이 더 이상 아니다. 그냥 한마디로 개고생이 된다.

죽어라 충성해도 내게 돌아오는 건 쥐꼬리만한 월급과 어디 썼는지도 모르게 쌓여가는 대출과 스트레스와 직업병 등등이라면 내가 무엇을 위해 노력하고 애써왔나 우울하다.

가족도 내가 노력함을 알아주는 게 아니라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고 있는 거 아니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면 나는 여기서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회의감을 들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 역시 태어나 자라면서 배워 온 것이 노동은 신성하다. 노동은 필요하다. 노동을 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 등등 한만큼 가져가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라는 걸 배워왔다. 나 역시 그렇고 가족 역시 그렇다.

그러나 그렇게 노동을 신성하게 여기고 인생에서 꼭 해야할 무언가가 되면서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노동에 속박된다.

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고 사회 부적응자같고 도태되어버린 것 같아서 찝찝하지만

하는 순간 언제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나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소설들은 노동을 하고 월급을 받는 (주급을 받든, 자영업이든 일을 준비하드) 사람들의 이야기다.

내가 원하는 걸 하게 되었으니 불행하다고 해서는 안된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고 열심히 할 수 있는 것만 있다. 그러니 미래 어떻게 될지 몰라도 지금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다. 불평은 하면 안된다.

이건 윗세대도 나도 지금 세대도 머릿속에 가진 생각이다. 얼마나 비중을 차지하는지는 다를지라도....

일을 하게 된 것에 감사하라

하다가 더 좋은 곳으로 가면 된다.

눈만 높아서 좋은 일만 하려고 하고 자기 주제는 모른다.

일단 시작해야지 고르면 어떡하나

언제까지 꿈을 쫓을 수는 없지 않니? 뭐라도 시작해 봐

그렇게 나를 낮추고 맞춘다. 내 팔다리를 자르고 몸을 우겨넣어서 맞춰주고 기다리지만 조직은 세상은 내가 맞춰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아 아게 아닌데 싶은 순간 나는 조직이라는 톱니바퀴에서 나올 수 없다. 이미 리듬에 맞춰 돌아가는 그 속에서 나오는 건 또다른 용기가 필요하다.

 

한때는 정의가 이상이 그리고 사명감이 일을 하게 했다.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세상에 떳떳하게 내보내는 일

조금 엄격하고 깐깐하지만 그렇게 해서 적확하고 바르게 배워야 한다고 믿었는데 알게 모르게 세상은 바뀌었고 정서가 중요하고 공감이 중요하고 아이들의 마음이 더 중요해졌다.

틀린 말이 아니지만 그동안 내가 해 온 방식이 아니라고 한다. 그건 억울하다.

나도 최선을 다했고 노력했다.

그러나 내가 틀렸다고 하고 그 결과가 수입이 줄어드는 것으로 눈에 명확하게 보여진다.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귀찮아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아이 때문에 내가 화가 나고 불편한 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냥 누구든 만만한 사람에게 나도 화를 내고 퍼붓고 싶을 때가 있다.

결국 돌아서서 다시 아이를 맞이 하겠지만

지금 내가 좋다고 내가 옳다고 말하면서 도와달라는 아이를 어찌 거절할까

그 순간은 돈으로 환산되는 노동이 아닌 사명감으로 채워지는 노동의 시간이다.

 

직장이 없어지고 임금을 줄 수 없는 사업장도 딱하지만 그런 사업장을 믿고 참고 기다리면서 노동을 해온 노동자들도 딱하다면 더 딱하지 않을ᄁᆞ

관계에서 내가 잘못을 했을지라도 나만 잘못한 것도 아닌데

교통사고도 일방적인 100%라는 건 없는데 관계에서는 그것도 직장에서 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결국 약한 존재가 물러나고 포기해야하는 일이 빈번하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 가능한 내 둘레에 견고한 벽을 쌓고 어떠한 실수도 하지 않겠다. 어떤 틈도 잡히지 않겠다는 마음이 앞설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하다보면 결국 주변사람들이 불편해지고 그 원인이 나에게 돌아온다. 불편하게 만들고 싶었는데 아니라 나를 보호하고 싶었던 그 벽들이 결국 나를 공격한다.

흔히들 자격지심이라고 하는 그런 것들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험치가 쌓이면서 내가 나를 지킬 수 밖에 없다는 절박함들이 그렇게 만든다.

지금의 일은 함께 가자가 아니라 각자도생이다.

잘하면 내탓이고 못하면 니탓이거나

잘하면 조직덕이고 못하면 너의 무능력이거나

잘할 필요가 없다 못하거나 책을 잡히지 않으면 된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는 일조차 책잡히는 일 리스트에 들어가는 세상이다.

 

내가 속한 조직이 조금 더 잘 되고 그래서 내게도 뭔가가 흘러 넘쳐서 얻는 게 있고

그러려면 내가 열심히 하는 것이지만

그 열심히 안에는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는 종목도 분명히 있다.

거래처에서 좀 더 우위를 점하고 가맹주들에게 비위를 맞춰가며 더 얻어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승진이 걸려있고 정규직 전환이 걸려 있고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길들이 걸려있다.

포기가 쉽지 않다

거기까지도 죽을둥 살둥해서 올라왔는데 저기가 고지인데....

<나의 해방일지>에서 창희는 늘 그랬다 여기까지 왔는데 더 버텨야지 그러려면 서울로 이사가거나 차가 있어야 하는데....

말로 투덜대는 창희는 가맹점주에게 최선을 다한다.

덜렁덜렁 껄렁거리는 거 같아도 그들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노력하고 애쓴다.

어쩌면 진영도 그런 사람인지 모르겠다.

꽤 인정받고 앞날이 보장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스스로 그 길이 아니었구나 하고 돌아서는 창희처럼 어쩌면 휘청거리지만 꺽이지 않을만큼 단단했던 창희처럼 진영도 조금쌕 때는 묻어가지만 어느 순간 아니라고 느껴질 때 칼같이 돌아서길 기원한다.

진영은 절대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이 아니다.

잘 풀렸다고 하기도 그렇지만 인성에 비해.. 그건 아닌 거 같다.

선영의 무심한 말들이 턱턱 걸리면서 내가 준비한 매뉴얼과 다른 반응에 늘 멈칫하는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다.

가끔 사람은 내가 잘 아니까, 으래 그려려니 하는 마음으로

타인도 나와 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보편이고 상식이라고 믿어버리면 그 상식을 타인고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나 역시 그랬고 그래서 꺽였고 상처입고 상처를 주고 살고 있다.

나의 상식과 보편은 그냥 내 것이다. 나와 다른 타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순오와 진영이 전혀 다르듯이 진영과 선영이 다르듯이

그걸 진영이 알고 받아들이면 진영도 괜찮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알았다. 나도 온라인이나 올영에서만 화장품을 사고 있었구나,)

 

흔히 듣는 말

정 안되면 쿠팡물류알바나 하지

쿠팡 물류알바 알아보고 있어요

하루 가기로 했어요

다녀왔는데 할만해 또는 진짜 죽겠어 못해 못해

쿠팡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하긴 했나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은 들었고 그래도 일에 비해 보수가 좋다는 말도 있고

할만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한달을 버티고 있는 주인공이 장하다.

그 짧은 순간에도 정치질이 있고 스트레스를 풀 전용갤러리가 있는지 몰랐다.

사람이 몰리는 곳에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어디서든 살아남는 것이 사람이다.

도지윤마저 응원할 줄이야.... (그래도 방구성키보드 워리어가 아니라 몸을 쓰는 노동의 세상으로 들어갔다는 것에 박수를 보낸다. )

 

왜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가

최근 기사에서 여학생을 일찍 학교에 입학시키면 결혼을 할 확률이 높다고 했나 출산할 확률이 높다고 했나

참 애쓴다... 라고 말하고 싶다.

출산율이든 출생율이든

왜 여자들이 결혼하고 싶지 않고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지 모를까

이 나이 먹은 나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게 더 낫고 결혼을 하지 않는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다.

자고로 여자란 결혼을 해서 남자들 뒷바라지를 하고 아이를 낳아 잘 키우는 것이 디폴트였는데 그걸 하지 않는다. 세상이 말세구나

해야할 당연하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왜 그것이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을 할까를 먼저 고민해야지 왜 당연한걸 안하고 지랄이야... 이렇게 접근하면 해답이 없다. 정답도 없다.

결혼이 손익계산을 따져야하는 행위는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낭만으로 덕지덕지 쳐바르는 행위도 아니다. 어쨌든 현실이다. 현실이니 손익도 필요하고 그렇지만 신뢰를 기반으로 함께 나아가자는 약속이니만큼 어느 정도의 낭만도 필요하다. 정말 필요한 건 당사자들간의 합의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당사자의 합의뿐 아니라 두 가정의 부모와의 합의도 필요하다.

어느 정도 지원을 할것인가 어느정도 요구를 할 것인가 미리 합의가 필요하다.

정해진 답이 없다.

상황이 다르고 처지가 다르고 낭만의 크기가 다르다면 답은 저마다 각자가 가지고 있다.

그렇게 합의해서 결혼을 하면 잘 이행해야 한다.

들어갈 때 마음이 다르고 나올 때 마음이 다르면 안된다.

노동을 하고 다시 출근을 하는 일이 생기면 안된다.

인간은 누구아 9to6 일을 마치면 쉬어야 한다. 그래야 내일 다시 같은 시간 일을 반복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쉬러가는 집에 누군가는 다시 출근하는 일은 끔찍하다.

아이를 낳아도 지금같이 사교육이 필수인 세상에 아이를 키우기도 쉽지 않다.

이젠 다른 집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알고 싶지 않아도 강제로 알 수 밖에 없다.

정보도 빠르고 소문도 빠르다.

쉽게 뒤처지고 쉽게 기가 죽고 쉽가 열불이 나는 세상이다.

그리고 나 조차 자립하지 못한 경우가 수두룩한데 어떻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까

최저 생계비는 점점 오르고 물가도 오르고 월급만 작고 소중해지는 이 시대에 어떻게 아이를 낳고 결혼을 하고 부모를 부양하고 살아야 할ᄁᆞ

내가 나를 부양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드는 이 시점에서 ...

나는 그 문제에 빠져있다고 자신할 사람도 없겠지만

내 의사와 다르게 편집되고 잘리고 다시 기워져서 목적에 맞게 조작된 내 말과 내 표정은 영 불쾌하다. 좀 큰 액수의 보상을 받았다고 내가 나의 모든 것을 드러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진정성도 상품이 되고 돈이 된다.

그런 감각이 있어야 돈을 버는 모양이다.

나는 보이사가 나쁘다고 할 수가 없다.

감각이 좋고 수완이 좋을 뿐이다. 불법은 없으니까

민지가 순수했다고 하기도 그렇다.

다만 나쁜 건 아니잖아... 라고 생각하는 내가 좀 슬플 뿐이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찜찜한 내용이다.

 

이제 아이가 취직을 해야할 나이다.

그렇다는 건 구세대인 나의 기준에서 이다.

이제 방향을 잡고 준비하고 했으면 하는데 아이는 아직도 중구난방이다.

기회가 오면 모든 걸 해보고 싶어한다. 나쁘진 않지만 그렇게 낭비할 시간이 없는데 괜히 내가 마음이 조급하다.

나도 배우자도 늙어가는데 지 혈육도 있는데 언제까지 늙은 부모가 뒷바라지 할 수도 없는데 말이다... 라는 말은 꾹 참지만... 얼른 철이 들었으면 한다.

여기서 철이 들었으면 이란 얼른 내마음에 드는 행동을 했으면 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다.

 

월급을 받고 산다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지만

인생 초반에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인생을 100으로 볼 때 20대 중후반은 초반이다.) 경험해야할 일이 아닐ᄁᆞ????

적어도 시작하고 이게 아니었어. 이렇게 살려고 공부한게 아니었어, 야자하고 비싼 사교육비쓰고 엄마한테 욕듣고 한게 아니었다고 후회하더라도

일단 들어가야 할 수 있지 않나????라고 꼰대 엄마는 생각한다.

내가 책에서 뭘 읽은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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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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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을 덮고 다시 앞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이야기


내가 타인을 돕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무수한 생각들이  머리속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가난한 상황에서 어렵게 살아온, 그래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보여지는 가장이

다른 날과 다름없이 석탄배달을 갔다가  어떤 상황과 마주친다.

그냥 모른 척 해도 상관없었다.

내가 거래를 하는 거래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이유가 없다.

모두가 그렇게 살지 않나?

모르니까, 모르는 게 나아서, 몰라도 되는 일이라서 

그냥 모른다.

모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고 일어나지 않은 일은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렇게 돌아왔고 그냥 잊었으면 괜찮았다.

나는 지켜야할 아이들이 셋이나 있고 아내가 있고  가장으로서 그리고 내 직업에서 책임자로서 뭔가 해야할 것들이 잔뜩 있다. 이미 책임감은 충분하다.


그러나 자꾸 내가 모른 척 할 수 없는 이유는 

내가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이어서이다.

질서를 지키고 법을 존중하고 상대를 존중하고 동등하게 대하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인간은

문제를 알고 난 후 그냥 넘기는 것이 쉽지 않다.

저울위에서 고민한다.

내가 이미 가진 무게에 더 무게를 얺을 필요가 있을까

지금 이 순간 내 상황 역시 아슬아슬하다. 

지금은 평안하고 안정적이지만 언제 또 저울이 기울어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

그냥  못 본 걸로 하면 다 괜찮다.


그러나 그는 알게 된 걸 아는 것으로 그래서 행동한다.

누군가가 석탄창고에서 자기가 낳은 아기를 볼 수도 없이 젖이 퉁퉁 불은 상황에서 맨발로 있는 걸 보았다면  문제를 제기하거나  도움을 주거나 무언가를 해야했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119쪽)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120쪽)


사람은 존재 그 자체로 존엄하다.

그러나 사람의 존엄을 유지하는 건 결국 사람의 행동이다.

말이나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지만 그 존중하는 마음을 일정정도 계속 이어지게 하는 것

그것은 결국 행동이다.

펄롱은 그걸 해 낸다.


이전에 미지즈 윌슨이 무심하게 사소한 것처럼  주었던 그 행동들의 의미를 펄롱은 안다.

그 사소한 행동이 지금의 펄롱을 만들었고 다시 펄롱은 누군가를 위해 무심하게 그러나 몹시 떨리는 마음으로 해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일들의 연속이 우리가 의미있다는 것 우리가 존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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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 지음 / 사계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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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고 공감하고 응원하는 사람, 단 한명이라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는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다. 그게 부모일 수도 할머니 일수도 혹은 어떤 좋은 타인일 수도 있다.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불편하고 힘든 오늘 할머니의 무심하지만 언제나 내편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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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만우절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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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고 나면 모든 것이 스톱된 상황처럼 느껴진다.

더 이상 발전할 수도 없고 성장할 수도 없는 완전체로서 인간 발달과정의 마지막 목적지에 다다른 기분이다

나는 아직도 한참 멀었는데 이미 나이를 먹었고 누구나 나에게 어른이라고 말하고 인지하고 있고 나도 더 이상 어디로 도망치거나 모른 척 하거나 실수하고 미숙해서는 안된다는 강박이 빠진다

내가 생각했던 어른들

커보였고 완벽해 보였고 꽤 근사했던 어른은 어디에도 없고

극악스럽고 한심하고 아직도 많이 미숙하면서도 본인은 전혀 그것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데다가 교활하기까지한 어른들만 보이고 나도 그 속에서 티나지 않게 묻혀서 그렇게 살고 있었다.

어른이라는 건 완성형일까

나는 아직도 많이 모자라고 이뤄야 할 과정들이 있는 것 같은데 이제 다 마쳤으니 졸업하라고 이제 세상에서 어른으로 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말하지 않으면 중간이라도 간다고

모르면서 아는 척 알지만 아닌 척 그런 척 그렇지 않은 척

어른이란 그렇게 나를 꾸미고 아닌척 그런척 하는 잔꾀를 가진 존재구나 라고 배우고 있는 중이다.

 

윤성희의 이번 소설집에는 각각의 어른들이 나온다,

어른이란 세상의 지혜로운 어른의 의미가 아니라 나이먹은 사람이라는 의미다

이제 중년이라고 하기에도 멋쩍지만 초로라고 하기에는 아직은 아니라고 감정을 넣어 손사래치고 싶은 그 나이 그 순간의 어른들이 등장한다.

대단한 사람들도 아니다.

결혼하지도 못하고 혼자 살면서 이제 예전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을 갖고 싶은 어른

살면서 6번의 깁스를 해야했던 조금은 조심성이 없다고 해야할까 운이 없다고 해야할까 그런 인물이 젊은 나이에 암으로 죽어버린 친구를 기억하기도 하고

나이들어 암이 전이되었고 살아온 날을 돌아보니 회한 뿐이라 마지막으로 남편의 내연녀와 남편에게 사기친 남자가 함께하는 국수집에 가서 욕을 해주겠다는 결심을 하고 실행하거나

버스정류장에 있다가 사고로 돌진하는 승합차에 치이거나

첫사랑이기를 바라는 여자와 떡볶이를 먹다가 부모몰래 차를 몰고 나온 중학생이 돌진하는 바람에 사고가 나기도 하고

놀이터에 덩그러니 놓인 킥보드를 타고 동네를 돌다가 넘어져 꼼짝할 수 없는 어른도 있다.

이제 나만큼 늙어서 흰머릭 가득한 여동생과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으며 이상한 주문을 외우기도 한다.

담 넘어온 감나무의 감을 밟아 넘어진 이웃 할아버지에게 보상해주고 천불이 나서 감나무를 베어버리려다가 담장이 무너지는 사고로 다친 어른이 있고 그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다시 요양원에 들어간 배우자와 그 자녀들도 있다

나이든 삼촌을 면회갔다가 내리는 눈에 막걸리를 마시고 무단횡단을 하다가 자기차 앞에서 미끄러져 넘어진 어른도 있고

그 모든 일이 다 거짓말이야 하며 깔깔대는 조금은 슬프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한 가족도 있다.

이렇게 한줄로 요약하면 도데체 이 사람들은 철이 콧구멍으로 들었나 싶게 한심하고 어이없다

그러나 윤성희는 그런 작가가 아니다.

그 한명 한명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그럴 수 밖에 없구나.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어쩌면 내가 지금 어정쩡한 어른이 아니라 좀 더 팔팔하고 예민하고 선이 분명한 젊은 나이였다면 몇장 읽지 않고 책을 던져버렸을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 좋은 점은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여전히 심술나고 마음에 들지 않은 것들 투성이지만

그래도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마음이 늦게라도 들게 된다.

이야기는 그냥 수다처럼 이어진다.

물감이 잔뜩 묻은 붓을 물어 넣어보면 슬슬 풀려나오는 색감처럼

처음엔 진하게 나오다가 점점 옅어지지만 그 꼬리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것

이야기는 그렇다. 첨엔 자기이야기를 하나보다 하고 듣다보면 어머니 이야기로 넘어가고 어느 순간 삼촌으로 이어지는가 하면 또 다른 이웃으로 넘어간다 맥락이 없다.

도데체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것이다.

우리가 늘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듯이 주장과 예시를 들지 않는다

기승전결에 맞게 이야기를 엮어내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이끌어 내지 않는다.

나만 그럴지 모르겠지만 막 이야기를 하다보면 지금, 내가 무엇을,누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몹시 헷갈리기 시작하고 부끄러워지고 입을 다물고 싶다는 욕구가 마구 들지만 그와 똑같은 무게로 어쨌든 이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다는 욕구가 함께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다.

그래서 맥락없는 이야기를 계속하게 되고 듣는 사람의 따분한 얼굴 도데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하는 표정을 본다

이야기를 한다는 건 그렇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마구 토해내고 꺼집어 내야 내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 그것이 우선이다.

무엇이든 상관없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처음엔 여기였는데 나중에 저기로 혼자 튀거나 뛰거나 그렇지만 그렇게라도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건 우리 삶이 그렇기 때문이다.삶이라는 것이 늘 논리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느닷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마구 긴장하게 되는 일들이 맥락없는 결말로 치달아가 가기도 한다.

내 삶을 이야기로 풀어보면 대단한 무엇도 없고 주제도 없지만 그렇다고 내 삶이 시시하다고 말할 수 없다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들을 진지하고 의미있게 만들고 싶지만 대부분의 삶들은 그냥 그렇다 시시하기도 하고 별일 아니기도 하지만 그런 일들이 모이고 차곡차곡 쌓여서 누군가의 삶을 이루는 순간 그 삶은 그대로 대단하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삶

모든 삶은 숙연하고 가치있으며 무시할 수 없다

윤성희는 그런 삶들의 맥락없는 과정을 따라가지만 꼬이고 엉뚱한 골목으로 꺽어지는 그 이야기들을 다 듣고 나면 그냥 막연히 숙연해진다.

뭐라고 말하기 어렵고 더구나 판단하거나 가치를 매길 수 없다.

그냥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의 역사가 그대로 얼마나 가치있는가 얼마나 존중받아 마땅한가를 보여준다.

아침에 일어나 뻐근한 허리를 몇 번 돌렸고 그래도 아침을 해야 가족들이 먹을 테니 부엌으로 향한다.

어제 먹고 남은 국에 다시 두부를 썰어 넣고 대파를 다져서 함께 끓여낸다

그리고 씻어둔 쌀을 안치고 밥을 하고 이제 제법 익은 파김치와 깻잎김치를 꺼내놓고 계란을 말아낸다.

밥상에 앉은 딸이 묻는다

어제 먹던 연어 남은 거 없어? 나 그거 먹고 싶은데

기왕 국에도 고기가 있고 계란도 있는데 다시 연어라니...

귀찮기도 하고 그걸 내놓으면 이미 차려놓은 반찬은 또 남아버릴텐데 싶은 마음에 뭐라고 하고 싶지만 그냥 알았어 한다.

고삼이니까 심기를 건드리지 않은게 낫다.

그리고 연어를 내놓는다.

가끔 힐끔거린다. 다른 반찬은 손도 안대면 어쩌나 다시 넣어야 하나 버려야 하나

다시 넣자니 꾸덕꾸덕 한 날씨가 걸리고 그냥 버리자니 저것들이 너무 아까운데

다행히 딸은 다른 반찬도 잘 먹었다.

딸이 밥을 다 먹을 무렵 찌개 건더기만 건져서 옆에 앉아 함께 먹는다.

입맛은 없지만 뭐라도 먹어야지 낼모래 백신을 맞아야 하면 뭐라고 먹어서 기력이 떨어지면 안되지

건더기 위주로 딸이 먹고 남긴 파김치를 얹어 먹는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고기가 영 역하게 느껴진다.

이 나이에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단백질을 섭취하라고 하는데 콩으로는 부족하려나??

아이는 어제와 달리 재잘재잘 말이 많다.

어제밤에 학원을 다녀와서 공부하는게 힘들다 수시로 논술을 쓰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울었다

사실 논술학원은 생각하지 않았다. 지 언니와 달리 논솔이 맞지 않을 거 같아서 그냥 그 시간에 공부를 더 해서 일점이라도 올리는게 나을 거 같은데 뭐라고 하고 싶다는데 반대할 수는 없었다. 지 언니가 논술로 대학을 가고 보니 자기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거 같은데

버리는 셈 치고 돈을 썼지만 사실 아까웠다,

지금이라도 그마두겠다고 하면?? 이렇게 울면서 힘들다고 할거면 낮에 다시 재등록하기전에 말이라도 하지.. 아이는 울고 있지만 머릿속으로는 이미 지불한 학원비를 계산했다.

사실 그 돈이면...

100일이 채 남지 않은 시점에 마음이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오르지 않은 성적 가고 싶은 대학과 갈 수 있는 곳의 거리감 그 깊고 넓은 간극앞에서 본인이 먼저 주저앉고 싶을 텐데

그 마음은 다 알지만 내가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조금 더 기운을 내고 한문제라도 더 풀자

어디를 가든 엄마는 괜찮다.

남들과 비교하지 마라 남들의 의견이나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

그런 말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하나마나한 본인이 가장 잘 아는 이야기들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했고 딸은 화를 냈다. 그냥 들어줘 판단하고 충고하지 말고

부모는 충고하는 사람이다. 뭐라도 잔소리해야하고 걱정해야 하고 그러면서 외롭고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지만 사실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해야하는 입장

그렇게 나에게 고민만 남기고 방으로 들어갔던 딸이 지금은 헤실헤실 기분이 괜찮다.

다 먹고 설거지를 한다.

오늘이 광복절이라 티비를 돌리다가 광복절 기면식을 본다.

 

 

 

 

 

 

필사하고 싶은 문장은 없다, 그냥 밋밋하고 일상적인 문장이 이어질 뿐이다

그러나 그런 개성없는 밋밋한 문장이 모여서 이야기를 이루는데 그 이야기가 특출하지도 않다

갖고 싶은 문장도 아니고 기묘하거나 매력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전체를 다 읽고 난 후 마음은 먹먹하다.

이렇게 살아낼 수도 있는 것인데

내 삶도 그렇게 무료하고 무가치한 건 아니라는 위안

작가는 위로라는 말이 너무 싫다고 하지만

위로는 주기위해 만들지 않아도 받아 들일 수 있다.

그냥 무심하고 아무런 의미없는 한마디지만 그것이 와서 박힐때가 있다.

 

한두페이지를 휘리릭 넘겨 눈이 닿는곳을 읽고 넘기는 책이 아니고

자리 잡고 앉아서 한 이야기를 한 숨에 읽어내리면 나도 괜찮은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윤성희 글의 매력이다.

 

아마 일상을 살면서 참 오래 고민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닐가

하나의 떠오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그 모든 생각을 기록하는 사람

가끔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이 근사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지금 이런 생각을 한거야

이렇게 이어가면 어떨까 꽤 멋진걸

이걸 정리해봐야겠어

하지만 빈 종이에 펜을 들고 혹은 빈화면에 커서가 반짝이는 순간 머릿속은 하애진다.

지금까지 내가 한 생각이 어디로 간거지?

작가는 부지런하게 생각과 동시에 기록한다. 그런 생각들

누구나 했던 것들

내용이 비슷하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하나의 사물에 꽂혀서 어떤 기억에 꽂혀서 마구마구 끝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을 기록하는 것

그 기록들이 이어지고 연결되면서 나도 모르게 어떤 감각을 건드리게 되는 것

윤성희의 소설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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