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를 키우는 철학자가 늑대와 함께 생활한 10여년간을 되돌아보며 쓴 책이다.

늑대를 키우며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을 철학자답게 철학적으로 풀어놓으면서 영장류중의 영장이라고 여겨지는 인간과 늑대를 비교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미개하고 야만적이고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야생의 늑대에게 존경할만한 점들을 조목조목 이야기해주고 인간이 얼마나 한계가 있는지도 보여준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이책을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추천을 받고 읽었다.

 

예전 어떤 인터넷 카페에서 본 글이 떠올랐다.

바닷가로 놀러갔는데 어떤 무지하고 생각없는 사람이 개를 데려와서 함께 해수욕을 하더라

사람이 노는 물에 어떻게 개를 함께 데리고 와서 함께 해수욕을 할 수 있느냐 는 글이었는데

그 댓글에는 놀랍게도 그 사람이 파렴치하다 너무나 공중도덕을 모른다. 어떻게 사람이 맨몸으로 들어가는 물에 동물이 감히... 뭐 그런 글이 많이 달렸다.

순간 갸우뚱했다.

바다가 사람만의 것일까? 물론 사람이 개발하고 가꾸고 사람이 편리하게 이용하게 한 점도 있겠지만 태초에 바다가 생겼을 적에는 이곳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곳이라고 정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적인 수영장도 아니고 바다라면 개가 들어온다는게 뭐 대수란 말인가

설령 그 개가 떠돌이라서 너무 더럽고 비위생적이라 함께 도저히 즐길 수 없다는 것이라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사람이 키우던 반려견이라면 그 사람들이 상식적인 사람들이라면 나름 씻고 닦고 하며 키우던 개가 아닐까 그런데 사람은 되고 개는 안된다?

나는 동물 애호가도 아니고 개도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리고 내가 노는 바닷가에 개가 오면 조금 기분이 나쁘겠지만 그렇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그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하지는 않을것이다. 개도 바다에서 노는구나 하고 처다보긴 했을 것이다. 아 나는 개만도 수영을 못하구나 하고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고 내옆으로는 안오길 내심 바라며 조금 떨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가 못들어오는 바닷가라...

하긴 캠핑을 가도 물놀이하는 계곡에 개가 들어오면 기겁을 하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

감히 개가..

그때 문득 생각했었다 이 지구에서 언제부터 사람이 주인이엇던가?

누가 사람이 주인이라고 사람이 아닌 다른 생명체는 부수적이며 사람에게 맞추지 않으면 혹은 위협을 가하게 되면 가차없이 멸종되고 이용되는건가? 왜 세상의 모든 것이 사람이 되었나 하고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부끄럽지만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늑대를 키운다

그러니 늑대라니.. 늑대를 키운다는 건 더 터부시할 사람들이 많지 않겠는가.

게다가 야생의 늑대를 개처럼 키운다는 건 늑대의 권리를 박탈하고 몬능을 억제하는 비인간적인 처사가 아니냐는 말까지 듣게 된다. 하지만 이미 문명화된 현대에서 늑대의 야성을 제대로 발휘하고 보호받을 곳이 지금 어디 있을까 자연방목이라는 이름하에 아예 울타리밖으로 세상밖으로 쫒아 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은가

저자는 거기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이야기하고 이해시킨다.

늑대 브레닌의 행복이라는 명제하에 그도 훈련을 받고 문명에 적응하며 사는 것 그리고 그의 행복을 공생하는 범위에서 최대한 지켜주기만 한다면 브레닌도 사람도 함께 행복할 수 있다.

 

다음은 본능적으로 토끼 사냥을 하는 브레닌을 묘사한 것인데 .. 사실 여기서 나는 보통의 인간보다도 더 숭고한 늑대를 보았다. 

 

..........브레닌의 인내심은 정말 놀라웠다 대부분의 시간을 땅에 엎드려 있었고 근육은 긴장시켜 앞으로 뛰쳐나갈 준비를 한 채 주둥이와 앞발은 토끼에게 향해 있었다. 토끼가 한눈을 파는 사이 몇 센티미터쯤 다가간 뒤 가만히 엎드려 다음 기회가 오길 기다렸다. 다음 단계로 진행되지 않는 한 얼마만큼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브레닌이 15분 동안 기다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녀석은 엄청난 단거리 가속력과 급습에 능한 자기 장점이 토끼가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는 장점보다 더 크게 작용하도록 상황을 정비하려 했다. 다행스럽게도 토끼는 그보다 휠씬 앞서 브레닌이 접근하는 낌새를 알아차렸다. 토끼가 눈치 챈 것을 꺠닫는 순간 브레닌은 전광석화와 같이 토끼를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대부분은 빈 손으로 돌아왔다.

브레닌이 사냥을 할때 행복했다면 녀석에게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사냥에는 긴장의 고통과 정신과 신체의 의도적 경직 공격하고 싶은 열망과 그렇게 하면 실패한다는 생각 사이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갈들이 존재한다. 가장 원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억제해아 하는 것이 사냥이다. 브레닌이 느꼈을 고통은 토끼를 항해 은밀하게 접근할 때 부분적으로나마 완화됐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멈추면 똑같은 과정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이거시 행복이라면 행복은 황홀경이라기 보다 고통인 것이다. .......................................................

행복은 즐겁지만은 않다. 동시에 매우 불편하다. 이것은 내게도 브레닌에게도 마찬가지다. ...고생해보지 못한 사람은 좋은 일이 생겨도 그 가치를 모른다. 그러나 그 때문에 불편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행복 자체가 불편함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이는 행복의 필요조건으로서 다른 방식으로는 행복을 말할 수 없다. 즐거움과 불편함이나 하나 되어야 완전한 행복이라 할 수 있다. 한쪽을 헐어내면 모두 허물어지는 구조물처럼 말이다.     p 214-216 

 

 

 

나는 길게 펼쳐진 잔디ㅣ밭에 앉아 브레닌이 토끼 뒤를 몰래 쫒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삶속에서 감정이 아니라 토끼를 쫒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삶에서 가장 좋은 순간 우리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은 순간은 즐거운 동시에 몹시도 즐겁지 않다. 행복은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감정에 초점을 맞추면 요점을 놓칠 것이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러한 교훈을 얻었다. 때로는 삶에서 가장 불현한 순간이 가장 가치 있기도 하다. 가장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도 가장 가치 있는 순간이 될  수 있다. 이후 무수히 많은 불편한 순간들이 내 앞에 나타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삶이란 하루하루 일상이 반복되는 그 지루하고 변치않음에 가치가 있다. 행복하냐 불행하냐는 감정은 그 안에 포함되어있는 일부인 감정일 뿐이다. 하루를 살아내고 그 안에서 경험하고 판단하는 것 느끼는 감정 등등의 소소한 것을이 쌓여가면서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즐거움이든 괴로움이든 살아내는 일상이 가장 소중하고 가치있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위대하다.

어쩌면 나도 하루하루 행복한 걸 알지 못하고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의 감정이 좋지 않고 즐겁지 않다는 이유로 지금의 곤란함과 귀찮음 불편의 가치를 모르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세상에서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없고 소중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

언제나 새롭게 시작되는 하루 언제나 어제와 다름없는 평온한 일상이 행복이라는 걸 늑대가 혹은 사람보다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동물들이 사람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다른 동물과 비교해보면 인간은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는데 엄청난 시간을 쓰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미래의 모습에 대해 어떤 비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장기간에 걸친 교육과 그에 따라 얻게 되는 경력에 열심인 이유이다. 우리는 투자한 교육에 비해 일을 해서 얻는 보람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알고 있다. 전문 교욱자인 나 자신만 해도 배움이 즐거움으로 가득한 것인양 연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공부와 경력쌓기에 열심이다. 어떤 특정한 것을 욕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욕망들은 당장 또는 가까운 미래에는 충족될 수 없지만 능력이 있고 운이 따르고 열심히 한다면 특정한 시간내에 실현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이 공부이든 직업과 관련이 있건 없건 비젼있는 미래를 확보하기 위해 현재의 행위들을 계획하고 실행해 나간다. 이 같은 욕망을 가지려면 미래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미래를 미래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

우리가 죽을때  잃는 것은 우리 삶에 투자된 것들로 설명된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특별한 개념을 지니고 있기에 원하는 미래상을 그리며 인내하고 갱신하고 전진하고자 현재의 삶에 다른 동물들보다 더 많이 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동물보다 죽을 때 더 많은 것을 잃는다. 인간에게 죽는 다는 것은 다른 동물보다 더 가혹하다. 반대로 말하자면 인간읫 ㅏㄻ은 다른 어떤 동물들의 삶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죽을 때 더 많은 것을 잃기 때문에 인간이 더 우우얼하다는 결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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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인간이 늑대보다는 더 큰 비극일 것이다. 여기서 저지르는 실수는 바로 그런 이유때문이 인간의 생명이 동물들의 생명보다 더 우월하다는 생각이다. 죽을 때 더 많이 잃는 다는 것은 우월성에 대한 징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저주받은 것이다. 왜나하면 이러한 의미의 죽음에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그 시간의 개념 속에는 삶의 의미를 쫒는 우리가 있다.

 

에니메이션 "늑대아이" 가 있었다.

반인반수인 늑대인간이 인간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두 아이를 남기고 죽음을 맞는다. 영화 전반부에 등장하는 그 늑대는 정말 멋있었다.

뭐랄까 인간중에도 그만큼 고귀하고 진실한 남자를 찾기가 쉽지는 않다.

어떤  속임수나  눈속임 없이 (하긴 늑대인데 인간으로 살아가는것이 속임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희노애락을 순수하게 표현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껏 사랑하고 아이를 사랑한다.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인지 사냥을 하는 본능때문인지 한마리의 새를 잡으려다 죽게 되지만 그 죽음도  하천에 빠지는 죽음이지만 찌질하지 안고 당당하다.

그리고 두 아이 중 늑대의 본성을 따르는 아메도 아비를 닮았다.

인간이고 싶어하는 유키가 어쩔 수 없는 거짓 예의를 위한 속임을 이용하면서 괴로워하지만 아메는 늘 잔잔하게 자기의 본능에 충실하다.

그 에니메이션의 아빠 늑대나 아메가 브레닌과 닮았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도 했다.

아메가 제어미를 하여금 아이를 놓아주어야 하는 순간을 꺠닫고 마음을 비우는 걸 배우게 했다면 브레닌도 저자에게 인간의 한계 그리고 언제부터 인간이 인간으로 진화되었는가를 생각하게 하며 인간이 가지는 인간 시선의 여러가지 성품이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순환하는 시간을 살아가는 늑대

기쁨과 괴로움이 공존하는 행복을 인지하고 그걸 즐기는 늑대

아무런 속임수도 어떤 수도 쓰지 않는 순수한 늑대의 모습을 보이며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지금 이순간을 즐기면서 여기에 몰입하는 것 그리고 내 마음에 솔직해져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어떤 대상을 순수하게 바라볼 수 잇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의 가장 약자까지 아우를 줄 아는 선이고 도덕이라는 것을 배운다.

 

세상의 어떤 멘토보다 한마리의 정직하고 순수한 동물이 사람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있다는 것도

 

 

 

늑대 한마리가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람에게 길들여지고 야성이 아니라 문명에 익숙해지지만 그래도 행복했다고 믿는다.

브레닌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졌고 문명에서도 야성을 잃지 않고 살았고

아마도 행복했을 것이고 주인 (혹은 알파 수컷)을 좋아했고

행복이라는 것이 감정적인 긍정상태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어떤 계략도 속임수도 없이 순수하게 본능에 충실한 행동의 아름다움을 알려준 늑대

나도 그런 늑대 한마리를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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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단편들은 재미있다. 읽는 동안 딴 생각이 들지도 않고 거창하게 문장을 배배 꼬지도 않고 심리는 묘하게 늘어놓지도 않는다. 문장은 단순하고 때때로 킬킬거릴만큼 유머가 있고 정확하게 상황은 정확하게 표현된다.

미사여구나 장황설도 없다.

그래서 쉽게 읽히고 내용도 간결하게 들어오는 편이다.

하지만 불편하다.

말랑말랑한 이야기도 뒤가 계속 남아있고 어딘가 살벌하고 누군가 나를 주시하는 눈동자가 자꾸 따라오는 듯한  불안감을 야기하기도 한다. 일상에서 무심하게 넘겼던 상황들이 디테일하게 묘사되면서 그때 내가 느끼지 못했던 두려움이 세삼 느껴지면서 움찔 움찔하기도 한다.

나도 "이사"를 했고  누군가의 어두운 그림자를 부러워도 해봤고 그래서 혼자 화를 내고 뒷감당을 하기도 했었다(그림자를 판 사나이) 거지같고 모조리 없어졌으면 하는 가족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지만 "오빠가 돌아왔다"는 가족만큼 막장은 아니었다.

누군가를 설레게 좋아하고 설레발을 쳤던 적은 있지만 그 대상은 "마코토'는 아니었고 아이스크림을 자주 먹어도 고객센타에 전화할 일은 없었다.

가족이 몰살되는 악몽같은 순간은 없었고 내가 아는 누군가가 살해되어 누군가를 의심하고 두려워한 기억도 다행히도 없다.

김영하의 단편들은 내가 경험했던것들 혹은 하지 않았던 것들이 혼합되어 이야기되고 있는데 그래서일까 모든 이야기들이 익숙함과 동시에 몹시도 낯설다.

 

늦은 시각 이제는 집에 돌아가야 하지 않나 하는 그 시간 어느 술자리에서 알고는 있지만 잘 알지는 못하는 조금은 어려운 그렇지만 무시해도 괜찮을 선배가 툭툭 뱉어 내면서 하는 말같았다.

"그런데 말이지.. 이런 일이 있었는데 혹시 알아?  " 혹은 " 이런 얘기 들어본 적 있어? 내 친구의 선배 사촌 이야긴데 말이야"

하면서 무심하게 꺼낸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끌려서 빠져드는.. 하지만 이야기에 빠지면서도 자꾸 시계를 힐끔거리고 어디쯤에서 끊고 일어나야 하는 건 아닐까  더 듣고 있으면 안될거같은 불안감도 들지만 이렇게 앉아서 끝까지 듣는다고 뭐 별일이 있겠어 싶기도 하고 왠지 더 있으면 안될거같기도 하고 뭐 그런 복잡한 마음이 드는데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는... 뭐 그런 상황같은 이야기들이다.

누군가가 이런 일이 있었대 하면 얼마나 한심하면 그런 일을 겪냐? 사람이 너무 질질 끌려가도 안돼. 맺고 끊는 건 확실해야지  하고 목청을 올리다가도 막상 내가 당하면 순간 어어.. 하면서 그럴 수도 있지 않나 하고 스스로 위로하고 변명하고 혼자 아악... 소리치고 반항하는데 아무도 모르는 것. 그래서 결국 홀로 모든 뒷감당을 쓸쓸하게 하게 되는 일

김영하의 단편을 읽으면서 내내 기분이 그랬다.

 

예전에 친구들 혹은 아는 사람들과 술자리를 하면 누구나 꼭 한명쯤은 자기의 은밀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너무너무 힘들다. 내게 왜 이런 시련이... 하는 나만 가지고 있는 시련 같은 거.. 하지만 뒤집어보면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던 이야기.. 사실 별거 아닌 이야기

하지만 그런 고민이 알콜과 섞이면 꽤나 낭만적이 되고 그 고민을 짊어진 사람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뭔가 비련의 주인공같기도 해서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런거 없는게 낫지 하는 조금은 쓸쓸한 자기위안이 되는 이야기들  "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읽으면 그때의  생각이 났다.

나도 늘 그랬던 어디선가 본듯한 들은 듯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혼자 나는 어디가 모자라서 저런 경험이 없을까 하는 자책도 하고 .. 뭐 별것도 아닌걸 혼자 소설쓰네 하기도 했다. 내가 갖지 못한 그림자를 갈망하던 풋내기 시절이기도 하고 어쪄면 가장 편한 시기이기도 했었다.

 

누군가의 작은 위안에도 쉽게 무너지고 감사해하면서 그 다음에 이어지는 배신이나 이별을 애써 혼자 변명하고 마무리한다. "로봇"의 그녀처럼 

 

한편한편이 잘 만들어진 단편영화같기도 하고 이야기를 조금 더 다듬고 늘여서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그만일거같다는 느낌도 든다. 짧은 글속에 확 사람을 잡아끄는 이야기를 뿌려놓고 그걸 상대가 어어 하는 동안 맛깔나게 버무리고 마무리해서 어. 하면 이미 이야기 하나가 끝나있다.

누가 누구를 만나고 누가 누군가를 욕하고 헤어지고  질척거리고 비루하게 구는 모양새를 따라가 다 보면 그렇게 킬킬거리고 웃거나 얼굴을 찌푸리고 불안하고 불쾌하는 동안 이야기는 막바지가 되고 깔끔하게 끝나버렸다. 그래서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나 궁금하기도 하고 뒷이야기를 더 해도 될거같은 아쉬움이 남는  모양새는 드라마나 다름없다.

 

 

두권의 단편들을 읽고 든  아무 상관없는 생각

만약 내가 소설을 쓰게 된다면 .. 암튼 잘 쓰게 된다면

나는 김연수보다는 김영하처럼 쓰고 싶다.

아무렇지 않게 의뭉스럽게 툭툭 이야기를 내뱉지만 듣는 사람은 괜히 모른척 하며 귀를 기울이게 되고 자꾸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것. 뭔가 찝찝하고 불안하고 불쾌하지만 그래서 그만 일고 싶지만 그래도 끝까지 놓지 않은 이야기 ..

그게 더 재미있고 통속적인 이야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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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도데체 뭐지? 뭘 말하고 싶은거야?  뭘 생각하라는 거냐구?

아무 생각이 없으면 어떻고 결말이 없고 생각거리가 없는 이야기라도 무슨 상관일까

읽으면서 고개가 갸우뚱해지고 킬킬거리게 되고 몹시도 이유도 없이 불편해지는 과정들을 거치면서 마지막 장을 덮는다.

보통 단편집을 읽을 때는 한가지 혹은 두세가지 글을 읽고 쉬었다가 다시 읽는다.

하지만 이 책은 손에서 뗄 수가 없다 마지마 한장까지

이야기에 빠져든것도 아니고 다음 이야기가 몹시도 궁금한건 아니었다. 때때로 그만 읽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계속 읽어나간다. 도데체 이 작가 어디까지 가나 보자는 심정.. 어디까지 어떤 이야기까지 할 수 있나 한번 두고보자는 마음이 더 컸다.

두고보자는 사람치고 무서운 사람없다는 말이 맞다.

두고보자고 이를 갈고 꾸역꾸역 감정을 눌러가며 읽었는데 내가 졌다.

아무 일도 아닌것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의 일상같은 무료한 일들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아니다 아름답다는 표현은 적당하지 않다. 그 무료하고 무심한 일상이 이렇게 제값을 가지게 되는 구나 하는 느낌?  뭐 그런거였다.

짧고 무심한 무장들  단순한 표현과 묘사들이 하나하나 쌓여가면서 이야기를 구성한다. 아주 놀랍고 화려한 기교도 없는 이야기가  마음을 끌어당기고.. 어때? 이런거 들어본 적 없진 않겠지? 하고 마구 찔러댄다.

첫 이야기 " 로봇"을 읽고 나서 참 막막했다. 그래서 어쩌라구... 이 여자 어떡하라구 이러구 끝이 나나.. 적어도 작가가 그가 만든 작중 인물을 이렇게 무책임하게 던지고 끝이 나도 되나 싶었다. 그런 기분은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악어에서는 점차 그러려니 싶었다. 차라리 짧게 끝나는 글들이 더 편하게 다가왔다. 그냥 이런 사람이 있었대.. 라는 누군가의 무심한 소문을 듣는 기분이고 인터넷의 한두줄 기사를 무심하게 읽는 기분이었으니까..

마코토에서는 괜히 내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고 조의 이야기는 조금 서글프기도 했다.

이야기는 낯선데 그 속에 있는 인물은 너무나 익숙하다. 익숙한 사람들의 낯선 행동들을 몰래 보는 기분..

책장을 덮고나니 왠지 나도 글이 쓰고 싶어졌다. 무심하게 지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나도 소곤거리며 주위를 살피면서 조심조심 들려주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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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이 인간이 정말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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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청스럽게 말 잘하는 누군가의 입을 넋을 잃고 입을 쩌억 벌린채 듣고 있었던 기분이 드는 책

어떤 이야기든 그의 입을 거치면 기가 막히게 몰입되어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다.

그러다 번쩍 정신이 들고 하하 웃고

나중에 자기 전에 불현듯 생각이 스친다.

그 인간 혹시 내 얘기한거 아니야?  설마.... 아니겠지  아닐거야.

왠지 찝찝하고 뭔가 뒤를 닦지 않고 나온 기분으로 잠자리에 든다.

 

모든 이야기가 교휸을 주거나 감동을 줄 필요는 없다.

사람의 정신을 홀리고 빠져들게 만드는 이야기도 괜찮다.

그렇게 나를 잊고 빠져든 이야기에서 무릎을 치고 뒤통수가 간질할만큼 머쓱해지기도 하는 경험

그런 독서도 괜찮다.

 이 책을 일고나니 누군들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이 없다.

지리멸렬하고 찌질한들 어떠한가.

그게 나이고 너인걸..

설령 내 얘기더라도.. 이렇게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그의 이야기 실력은 늙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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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민음사입니다.


2014년 새해, 민음사에서 우리나라 독자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작가로 손꼽히는


오쿠다 히데오 신작 소설을 들고 왔습니다. 




첫 장의 예측이 무엇이건마지막 장에 배신당한다


중학생이 학교 옥상에서 실족사했다.

사고인가사건인가그렇지 않으면……? 


아사히 신문 연재 당시부터 큰 반향을 부른

충격적인 문제작과연 거리에 가득한 침묵은

누구의 입을 통해 깨질 것인가.



「공중그네」, 「남쪽으로 튀어」, 「인더풀」등의 작품으로 재미와 유쾌한 반전을 선사했던


오쿠다 히데오의 변신, 짜릿하지만 가슴 저미는 스릴러!



민음사가 YES24 블로그 회원분들께 드리는 2014년 새해 선물!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침묵의 거리에서」를 제일 먼저 만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침묵의 거리에서」 서평단 모집 신청


서둘러주세요!



▶줄거리_ 


시험을 앞두고 야근을 하던 교사에게 학생의 집에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온다.


한 번도 8시를 넘겨 귀가한 적 없는 아들이 연락도 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학부형의 겁먹은 목소리에 교사는 당직이 아님에도 교내를 순찰해 보기로 한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어두운 학교에 사람 그림자는 없었으나,


마지막으로 없어진 학생이 속해 있테니스부의 부실을 찾은 교사는


끔찍한 장면의 첫번째 목격자가 된다.



나구라 유이치. 중학교 2학년생. 



소년은 부실 옥상에서 뛰어내려 콘크리트에 부딪친 충격으로 이미 죽어 있었다.



작은 마을에 경찰 특별수사 본부가 세워지고, 매스미디어의 총력 취재가 이어지면서 


사건은 일파만파로 확대된다.



한편, 옥상에는 죽은 소년을 포함한 다섯 명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고 취조와 취재가 거듭된다. 


그 과정에서 그간 아무도 몰랐던 소년의 비밀이 밝혀진다. 그간 이지메를 당해온 것. 


사건은 점점 ‘이지메에 의한 살인’이라는 방향으로 굳어지게 되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에 대한 관리 소홀 책임을 인정하며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고자 하는 유족의 뜻을 존중하여


학생들에게 죽은 친구에 대한 작문을 제출하게 한다.



이처럼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지만 학생들의 낌새가 심상치가 않다.


뭔가 공동의 비밀이 있는 것처럼 연대적으로 함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기자, 경찰, 교사, 유족, 그리고 옥상에 족적이 남은 용의자의 부모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어른들의 노력이 계속되는 동안, 
이지메를 주도했다고 진술한 두 명의 소년에게 혐의가 전부 몰리게 되는데….


▶서평단 모집 상세내용_

★ 응모 방법 : 리뷰 페이지를 자신의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를
★ 간단하고 성실하게 댓글로 작성하여 스크랩 링크와 함께 남겨주면 응모 완료.
★ 응모 기간: 2014.02.14 ~2014.02.24 (10일간)
★ 추첨 인원: 30명
★ 서평단 발표: 2014.02.25 (월) 오후
★ 서평 기간: 2014.02.27~2014.03.02 (10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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