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단편들은 재미있다. 읽는 동안 딴 생각이 들지도 않고 거창하게 문장을 배배 꼬지도 않고 심리는 묘하게 늘어놓지도 않는다. 문장은 단순하고 때때로 킬킬거릴만큼 유머가 있고 정확하게 상황은 정확하게 표현된다.

미사여구나 장황설도 없다.

그래서 쉽게 읽히고 내용도 간결하게 들어오는 편이다.

하지만 불편하다.

말랑말랑한 이야기도 뒤가 계속 남아있고 어딘가 살벌하고 누군가 나를 주시하는 눈동자가 자꾸 따라오는 듯한  불안감을 야기하기도 한다. 일상에서 무심하게 넘겼던 상황들이 디테일하게 묘사되면서 그때 내가 느끼지 못했던 두려움이 세삼 느껴지면서 움찔 움찔하기도 한다.

나도 "이사"를 했고  누군가의 어두운 그림자를 부러워도 해봤고 그래서 혼자 화를 내고 뒷감당을 하기도 했었다(그림자를 판 사나이) 거지같고 모조리 없어졌으면 하는 가족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지만 "오빠가 돌아왔다"는 가족만큼 막장은 아니었다.

누군가를 설레게 좋아하고 설레발을 쳤던 적은 있지만 그 대상은 "마코토'는 아니었고 아이스크림을 자주 먹어도 고객센타에 전화할 일은 없었다.

가족이 몰살되는 악몽같은 순간은 없었고 내가 아는 누군가가 살해되어 누군가를 의심하고 두려워한 기억도 다행히도 없다.

김영하의 단편들은 내가 경험했던것들 혹은 하지 않았던 것들이 혼합되어 이야기되고 있는데 그래서일까 모든 이야기들이 익숙함과 동시에 몹시도 낯설다.

 

늦은 시각 이제는 집에 돌아가야 하지 않나 하는 그 시간 어느 술자리에서 알고는 있지만 잘 알지는 못하는 조금은 어려운 그렇지만 무시해도 괜찮을 선배가 툭툭 뱉어 내면서 하는 말같았다.

"그런데 말이지.. 이런 일이 있었는데 혹시 알아?  " 혹은 " 이런 얘기 들어본 적 있어? 내 친구의 선배 사촌 이야긴데 말이야"

하면서 무심하게 꺼낸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끌려서 빠져드는.. 하지만 이야기에 빠지면서도 자꾸 시계를 힐끔거리고 어디쯤에서 끊고 일어나야 하는 건 아닐까  더 듣고 있으면 안될거같은 불안감도 들지만 이렇게 앉아서 끝까지 듣는다고 뭐 별일이 있겠어 싶기도 하고 왠지 더 있으면 안될거같기도 하고 뭐 그런 복잡한 마음이 드는데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는... 뭐 그런 상황같은 이야기들이다.

누군가가 이런 일이 있었대 하면 얼마나 한심하면 그런 일을 겪냐? 사람이 너무 질질 끌려가도 안돼. 맺고 끊는 건 확실해야지  하고 목청을 올리다가도 막상 내가 당하면 순간 어어.. 하면서 그럴 수도 있지 않나 하고 스스로 위로하고 변명하고 혼자 아악... 소리치고 반항하는데 아무도 모르는 것. 그래서 결국 홀로 모든 뒷감당을 쓸쓸하게 하게 되는 일

김영하의 단편을 읽으면서 내내 기분이 그랬다.

 

예전에 친구들 혹은 아는 사람들과 술자리를 하면 누구나 꼭 한명쯤은 자기의 은밀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너무너무 힘들다. 내게 왜 이런 시련이... 하는 나만 가지고 있는 시련 같은 거.. 하지만 뒤집어보면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던 이야기.. 사실 별거 아닌 이야기

하지만 그런 고민이 알콜과 섞이면 꽤나 낭만적이 되고 그 고민을 짊어진 사람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뭔가 비련의 주인공같기도 해서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런거 없는게 낫지 하는 조금은 쓸쓸한 자기위안이 되는 이야기들  "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읽으면 그때의  생각이 났다.

나도 늘 그랬던 어디선가 본듯한 들은 듯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혼자 나는 어디가 모자라서 저런 경험이 없을까 하는 자책도 하고 .. 뭐 별것도 아닌걸 혼자 소설쓰네 하기도 했다. 내가 갖지 못한 그림자를 갈망하던 풋내기 시절이기도 하고 어쪄면 가장 편한 시기이기도 했었다.

 

누군가의 작은 위안에도 쉽게 무너지고 감사해하면서 그 다음에 이어지는 배신이나 이별을 애써 혼자 변명하고 마무리한다. "로봇"의 그녀처럼 

 

한편한편이 잘 만들어진 단편영화같기도 하고 이야기를 조금 더 다듬고 늘여서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그만일거같다는 느낌도 든다. 짧은 글속에 확 사람을 잡아끄는 이야기를 뿌려놓고 그걸 상대가 어어 하는 동안 맛깔나게 버무리고 마무리해서 어. 하면 이미 이야기 하나가 끝나있다.

누가 누구를 만나고 누가 누군가를 욕하고 헤어지고  질척거리고 비루하게 구는 모양새를 따라가 다 보면 그렇게 킬킬거리고 웃거나 얼굴을 찌푸리고 불안하고 불쾌하는 동안 이야기는 막바지가 되고 깔끔하게 끝나버렸다. 그래서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나 궁금하기도 하고 뒷이야기를 더 해도 될거같은 아쉬움이 남는  모양새는 드라마나 다름없다.

 

 

두권의 단편들을 읽고 든  아무 상관없는 생각

만약 내가 소설을 쓰게 된다면 .. 암튼 잘 쓰게 된다면

나는 김연수보다는 김영하처럼 쓰고 싶다.

아무렇지 않게 의뭉스럽게 툭툭 이야기를 내뱉지만 듣는 사람은 괜히 모른척 하며 귀를 기울이게 되고 자꾸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것. 뭔가 찝찝하고 불안하고 불쾌하지만 그래서 그만 일고 싶지만 그래도 끝까지 놓지 않은 이야기 ..

그게 더 재미있고 통속적인 이야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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