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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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뱅골 출신의 부모가 미국 서아일랜드로 이민을 가게 되어 그 곳에서 성장하게 된 작가가 이 책을 쓴  줌파 라히리이다.

어떤 평에서는 과대평과되어진 현대작가중 하나라고 혹평을 받기도 한다지만. 내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작가는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잘 쓸 수 있는  소재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가 겪었던 일들 기억하는 이미지들 그리고 내 속에 오래 박혀 있어 이제는 그만 그것을 뽑아서 눈앞에 마주하고  싶은 상처들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건 그 작가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가장 뱉어버리고 싶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 작가 줌파 라히리도 그가 가장 잘 아는 것 그녀 속에 가장 깊이 박힌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이 그녀의 첫 작품이었다.

미국에 건너온 인도 이민자의 자녀라는 입장은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일이다.

인도계 이민자로서 가지는 감정 입장 그리고 은밀한 두려움이나 외로움 혹은 이질감은 그녀가 가장 많이 겪었고 알고 있는 일이기에 가장 쓰고 싶고 쓰기 쉬웠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는 주로 이민온 인도계 미국인의 이야기거나 인도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었다.

<진짜 경비원>의 경우는 인도의 이야기였고 나머지는 인도 이민자 들의 이야기들이다.

인도라는 이색적이고 신비로운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낯선 땅에서의 이질감과 이로움 그리고 막연하면서 동시에 손에 질감을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두려움이 그녀의 글에서 잘 묻어난다. 어쩌면 이질적이면서 동시에 어딘가에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편성을 그녀가 잘 표현하고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아홉가지 이야기중에 <섹시>와 <질병 통역사> 그리고 맨 앞에 있었던 <일시적인 문제>였다

 <섹시>는 유부남을 만나는 미렌다가 직장동료  락스미가 사촌형부의 외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데서 시작한다. 남의 이야기같지 않은 락스미 형부의 바람은 곧 닥치는 미렌다의 일이기도 했고 그 끝또한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었다. 사이언스센타에서 들려준 그 남자의 섹시하다는 말은  락스미 사촌언니의 아들이 들려주는 모르는 사람을 좋아하는 일로 대치되는 순간 미렌다의 현실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내게 의미있고 잊지못할 한마디가 그걸 뱉은 사람에게는 기억조차 남지 않은  사소함이었고 아름답던 사이언스 센타의  마파리움은 이제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순간 어긋나고 스쳐버린 말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정해버리고 현실을 일깨운다. 그래도 락스미의 사촌언니가 살아가듯이 미렌다도 담담하게 살아갈 것이다.

 

<질병 통역사>에서는 인도에서 관광가이드를 하면서 동시에 질병 통역사라는 독특한 직업을 가진 카파시 씨가 인도계 미국 이민자인  디스 부부를 만나 가이드를 하면서 생겨나는 에피소드다.

카파시씨는 사소한 몇가지 일들고 디스 부인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녀와 이어질 인연을 상상하지만  디스 부인의 상상할 수 없는 고백에 충격을 받고 현실로 돌아온다.

어쩌면 인생은 한순간 꾸는 꿈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짧은 에피소드에서 잔인하게 보여준다.

내가 바라보는 그곳과 상대가 바라보는 이곳이 어긋나는 그 지점에서도 삶은 계속 될 수 밖에 없고 우리는 누구도 그 어긋남으로 상처받지만 결국은 서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고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걸.... 잔인하면서도 담담하게 보여준다.

 

<일시적인 문제>는 어쩌면 주인공이 인도계 미국인이라는 사실 외엔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한때 사랑했던 부부가 아이를 사산하고 난 후 서로 어긋나고 피하기만 하면서 삭막해져 가는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서로 매말라 가고 있다는 걸 알지만 누구하나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없고 서로 교묘하게 시선을 피하며 살아가는 어느때  전기공사로 인한 짧은 정전이 일주일간 이어진다. 어두운 저녁 함께 식사를 하면서 서로의 비밀을 하나씩 고백하고 그러면서 남자는 어쩌면  이 어둠이 우리 둘의 관계를 다시 이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지만.. 정전이 끝나는 순간 두 사람의 관계도 그렇게 끝을 맺는다.

누군가를 기대를 갖게한 어떤 현상이 누군가에게는 이제 모든 걸 정리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엇갈리는 시선. 비껴나기만 하는 타이밍으로 사람들은 외로워진다. 하지만 그들은 그 엇갈림을 굳이 맞추려 들지 않는다. 상대방의 시선에서 비껴난 바로 그 곳에서 혼자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나는 지금 제자리에 있긴 한걸까

그리고 받아들인다. (센 아주머니의 집의 센 아주머니는 아직도 생각중이시지만)

꼭 상대의 시선에 들어가려고 애쓰지 않고 누군가의 시간을 맞추지 않아도 되는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에서 다시 스스로 뿌리를 내려보려고 조심스럽게 더듬고있는 중이다.

 

런치박스

 

 

며칠전 인도 영화를 봤다. :런치박스"

주인공 남자가 말했다

"잘못된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 줄 수도 있어요"

뭐라고 딱 꼬집어 말 할 수 없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줌파 라히리의 이 소설집을 생각했다.

일라의 도시락은 남편에게 닿지 못했다. 그녀의 정성과 노력은 엉뚱한 남자에게 갔고 남편은 브로컬리면 주구장창 먹고 있지만 별 말이 없었다. 이미 둘은 조금씩 어긋나고 있었지만  맞추려고 하질 않았다.

도시락 배달이 잘못되어진 걸 안 일라는 멈추질 않는다. 대신 편지를 쓴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맛있게 다 먹어주어서 감사하다고 ...

그리고 그 도시락을 받는 사잔과 편지를 주고받게 된다.

엇갈린 대상은 또다른 인연을 만들지만 그들역시 어긋난다. 둘이 만나기로 한 카페에서 둘은 만나질 못한다. 서성거리고 멈칫하는 순간 둘의 시간도 어긋난다.

어긋난 장소  시간에서 가끔은 용기를 낸다.

함께 떠나자는 말. 나도 함꼐 가도 될까요?

일라와 사잔이 어떻게 될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잘못된 기차에 과감하게 올라탔는지.. 과연 그 기차가 목적지로 잘 데려다 주었는지 관객들은 알지 못한 채 영화는 끝난다. 그동안 수많은 발리우드 영화들이 보여준 춤과 노래도 없이 이영화는 그저 담담하게 사람과 사람사이의 어긋난 관계 조금은 비틀어진 관계를 보여준다.

일라의 엄마와 누워있는 아버지. 일라 윗층에 사는 이모라는 여자와 그의 천정의 쿨러만 바라보는 남편  집에서는 말이 없이 텔레비젼만 보는 남편 그리고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관계하지 않는 사잔.. 

그 누구도 힘들다고 하지 않고 이게 아니라고도 하지 않지만 서서히 균열이 생기고 조금씩 사이가 벌어지면서 사람들은 외로워지고 있다. 서서히 빠지는 공기나 서서히 데워지는 프라이펜 위에서는 고통을 느낄 수 없다. 조금씩 조금씩 불편함에 익숙해지고 균열에 맞춰지면서 사람들인 이미 쩍 갈라지고 죽음이 다가오고  난 뒤에 자기를 돌아보고고 화들짝 놀란다. 하지만 그뿐이다.

일라도 사잔도 누구도 선뜻 나설 수 없다.

삶이란 어쩌면 내가 선택하는 것보다 내가 선택당해야 하는 일들이 더 많은 법이고 인간은 언제나 수동적이며 그 사이의 어긋남정도는 쉽게 무시하고 익숙해지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엇갈림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대단한 변화나  다이나믹한 사건으로 폭발되지 않는다.

삶은 어긋나고 조금 기울어졌다고 해서 끝으로 치닫지 않는다는 것이  좋은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어긋난 끝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하는 것도 가능할테니까말이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지만  나랑 이질적인 것들인데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나는 막막하고 답답할때 책을 펴거나 어두운 극장속으로 숨어버린다.

지금 내가 느끼는 뭔가 잘못된게 아닌가 하는 느낌.

내 삶이 어디서부턴가 어긋났고 나는 그걸 모른 척했고 순간의 안락을 위해 눈을 감았더니 지금 어마무시한  현실에 처했는데.. 이건 내 잘못만은 아니라고 누군가에게 소리치고 화를 내고 위로받고 싶었다.

어디서 부터 다시 시작하면 잘 꿰어 맞출 수 있을지도 몰라서  악마가 나타나 시간을 되돌려 주겠다고  거래를 걸어와도 어디로 되돌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를 낳기전? 혹은 결혼전? 아니면 아주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는 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서 또다른 어긋남이 없으란 법도 없고 내가 똑같은 선택을 똑같은 후회를 하지 않을거란 보장도 없다는 막막함이 자꾸 나를 둘러싼다.

 

그때 아무 생각없이 편 그녀의 책이... 그리고 제목도 확인하지 않고 들어간 극장에서 마주한 어떤 늙수구레한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건넨다.

너만 그런건 아니야

 

나랑 비슷한 처지도 아니고 상황도 아니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일그러지도 있다고 느끼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에게 실망하고 있을 무렵.. 그래도 괜찮다고 아무 상관없다고..

잘못 탄 버스도  그 자체로 목적지가 있다고 이야기 해준다.

이렇게 작은 위로도 가끔은 필요하다.

 저지대를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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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에 띄운 편지
발레리 제나티 지음, 이선주 옮김 / 낭기열라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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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에는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하는 사회과학 도서들이 전하지 못하는 사람의 입김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우리편 아니면 적이라는 식으로 무리를 짓고 날선 무기로 무장하고 있는 익명의 집단 복수로서의 "그들"이 아닙니다. 선과 악이라는 흑백논리의 명찰을 달고 있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그"사람"은 그냥 "나"를 닮은 '너"  "너"를 닮은 "나"입니다. 내가 너일 수 있고 네가 나일 수도 있는 숨 쉬고 느끼고 꿈꾸고 장애를 넘어 교감하고 대화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인간입니다.

 

 

사실 이-팔 분쟁은 현재의 국제정세와 세계화된 정보 환경 속에서 여러가지로 정치적인 의도가 덧칠되어 보도되고 있는 단골 소재입니다, 제니티는 매스미디어가 이-팔 분쟁을 다루는 과정에서 마구 잘려지고 제멋대로 정돈되고 특정한 이미지로 고착된 정보들이 놓쳐버린 인간 개채로서의 인간에 촛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작가는 각 진영의 대변이기를 거부하면서 꿈을 꾸는 두명의 젊은이들에게 줌렌즈를 들이댑니다. 타인에게 감정이입 할 수 있는 픽션의 나레이터로서 말입니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이스라엘-팔레스테인 분쟁에 대해 알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실에 대해 잘 알려면 굳이 이책일 필요가 없으니까요

신문더미를 뒤지거나 관련 정보가 있는 기사들을 인터넷에서 찾는 것이 더 빠를 것입니다.

언젠가 이기호의 소설집에서 읽었던 말이 참 오래 남습니다.

"김박사는 누구인가"의 맨 처음에 실린 단편이었는데 .. 주인공이 예전 문서로만 기록되었던 사람들의 인적사항을 컴퓨터에 저장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야기입니다, 주요한 줄거리가 아니라 그 주인공이 이름만으로 나열된 사람들의 성별 나이 주소지 병역기록을 기계적으로 기입하면서 이렇게 숫자로만 분류되는 똑같은 인물이 아니라 각각 하나의 이야기가 있고 역사를 가진 인물들이라는 것을 꺠닫게 되는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냥 한줄 무심하게 기록된 그 누군가에게도 따뜻한 체온이 있고 뜨거운 피가 흐를것이며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고 삶에 환희 혹은 고통을 느꼈을 시기가 있었을 겁니다. 그 개개의 이야기는 모두 박제된 채 그저 분류하기 쉬운 숫자와 간단한 기호들로 나열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꼈던 주인공의 자괴감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신문에서 혹은 역사책에서 언제나 기록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건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사건이 있었고 누가 중심인물이었고 어떤 결과가 있었고 그것의 역사적인 의미는 ..... 혹은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한  한두줄의 사건들에서 중심 인물이 아닌 사람들은 그저 모모씨 혹은 남자 여자 뭐 그런 성별로만 기록될 뿐입니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곳에 있게 되었는지 그때 그가 어떤 마음인지 어떤 상황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주된 인물과 상반된 사상을 가졌을 수도 있고 다른 마음을 가지고 우연히 그곳을 스쳤거나  주인공보다 더 뜨거운 무언가를 품고 그자리에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기사에는 역사의 기록에는 그것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냥 모모씨일뿐입니다.

 

이 책은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에 사는 두 청소년의 편지와 일기로 구성됩니다.

어느날 이스라엘 어느 도시에서 벌어진 테러로 인해 충격을 받은 이스라엘 소녀 탈은 무언가를 쓰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낍니다.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지금 이 상황을 그리고 내 기분을 기록하고 쓰지 않으면 안될거 같은 강한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누군가 나누고 싶어합니다.

군인인 오빠에게 부탁해서 병에 넣은 편지를 가자지구로 보내가 그 병을 우연히 발견한 팔레스타인의 소녀 나임과 메일을 주고받게 됩니다.

나임과 탈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어쩌면 두 나라의 입장과 전혀 딴판인  꿈을 꾸고 있을 수 있는 그저 평범하고 생각이 많은 젊은이입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고민하고 왜 우리는 서로에게 테러를 하고 공격을 하면서 서로를 저주해야하는지 궁금해합니다. 세상 또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낯선 평화와 웃음이 왜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그토록 주저되고 죄스럽기까지 한지 알지 못합니다.

아니 머리로는 그 이유를 알지만 가슴으로까지 이어지질 못하는 건지도 모르지요.

조금은 자유로운 사회에서 보내는 탈의 편지를 나임은 첨에는 비웃고 조롱합니다. 그저 신문에서 기사에서 보여지는 가자만을 상상하는 탈을  마음껏 비웃으며 어린아이 취급합니다.

하지만 탈은 포기하지 않고 그 땅 팔레스타인에도 자기와 닮은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믿으며 편지를 보냅니다.

 

처음 편지를 쓰기 시작했을 때 탈도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미지는 미디어가 보여준 것이 전부였습니다. 자기가 사는 곳에서 편집되고 걸러진 이미지의 팔레스타인을 생각하며 편지를 씁니다. 자기가 체득하지 못한채 이미지만 가지고 있는 곳에 있는, 그러나 자기와 비슷한 정서를 가진 소녀를 상상하며 편지를 보냅니다.

팔레스타인의 소년 나임은 그런 탈의 편지가 우스울 수도 있겠습니다. 팔레스타인에 대해 편견된 이미지를 가졌으면서도 뭔가 서로 소통하려는 마음을 가진 소녀 어쩌면 아직도 철이 덜 든 낭만적인 사춘기소녀정도로 생각했을테고.. 그래서 나임의 초반 편지들은 냉소적이고 비아냥거리는 투가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하지만 탈은 포기하지 않지요. 누군가 자기의 편지를 읽었고 답을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가능성을 생각하고 기뻐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시도하지요

누군가 소통하고 공감한다는 건 그 사람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는것도 포함되나봅니다. 결국 나임의 이름을 알았고 그의 걱정을 받았고 소통합니다.

어쩌면 나임이 원한것도 보여지는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있는 개개인의 팔레스타인 뭉뚱거려진 덩어리가 아닌 피와 살을 가진 나를 봐주는 누군가였을 겁니다. 그리고 그 대상이 바로 탈이었지요.

누군가와 소통한다는 것 그리고 이해한다는 것은 그 개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내가 보고 이해한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그 속에도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있다는 것 혹은 나와 다른 누군가 개인이 있다는 것 그 작은 하나하나를 봐주는 것.. 거기서 시작하는 겁니다.

현실에 눈을 떠가는 탈과 지금은 현실을 떠나지만 더 큰 희망을 안고 돌아오겠다는 나임은  그 자체로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을 대표하진 않지만 그에 속한 하나의 개체이며 동시에 자유로운 개인입니다.

한사람 한사람의 희망과 한사람 한사람의 개인의 꿈이 모여 결국 덩어리가 되는 거겠지요.

우리에게 보이는 건 커다란 덩어리겠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하는 거라고 그것이 소통이라고 탈과 나임은 말합니다.

 

사족..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아버지  엄마 오빠 혹은 후배  선배였을 사람들이 아직도 차가운 물속에 있습니다. 그들은 뭉뚱거려진 실종자 혹은 희생자만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각자의 꿈이 있었고 이야기가 있었고 아직 못다한 삶이 남아있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피해입은 국민의 일부라고 치부되어버릴지 모르지만 그들은 하나하나가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때때로 전체로 보아야 할 때도 필요하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할때는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소통하고  나눌줄도 알아야 하는 겁니다.

여태 당연해서 인식하지 못했던 리더의 자질을 또 하나 배웁니다.

리더가 아닌 평범한 우리도 아는 것을 누군가는 아직도 모를지도 ... 라는 생각에 화가 납니다.

그래서 이 책이 참 소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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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을 꾸미고 일을 벌리고 사람을 죽인 사람은 따로 있는데

여전히 뻔뻔하게 살아있는데

똥줄타게 뛰어다니고  죽을만큼 두들겨맞고

음모를 파해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보호하던 기동찬이 죽는건데..

아무리 신탁에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하는 거라고 해도

이건 아니잖아.

이렇게 끝이 나면 안되지

그따위 신탁은 예언은 개나 먹으라고

이러면 안되는거지

 

안그래도 마음이 꿀꿀하고 어디 화내고 싶고 미안하고 부끄러운데

우리 기동찬을 이렇게 보내는건 아니지

안그래 작가양반?

 

다시 쓰면 좋겠어.

그놈들 응징하는거 똑똑하게 보여주고 지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히 알려줘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고 기다리던 그를 우리에게 돌려주면 좋겠어.

드라마라도.. 그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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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질까 - 당당한 나를 위한 관계의 심리학
크리스토프 앙드레 & 파트릭 레제롱 지음, 유정애 옮김 / 민음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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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모든 꽃들이 만발하는 봄이다.

여기저기 꽃소식이 들려온다. 봄이니까 당연하다.

진달래축제  산수유 축제 벛꽃은 이미 윤중로에서도 만발해서 예전보다 빨리 축제가 시작했다고 한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만개한 꽃들이 여기저기서 화려한 자태를 뽑낸다.

우리동네 아파트 화단에서도 볼 수 있는 꽃이지만 축제현장에서 보는 꽃은 다르다. 화려하고 적극적으로 자기를 드러낸다. 그래서 그 때 그 장소의 꽃이 브랜드를 가지고 사람을 모으고 상품성을 가진다.

하지만 봄이 오면 아무도 보지 않는 구석의 나무들도 기를 쓰고 꽃을 피운다.

그건 나무의 생명살이의 한 부분이다.

봄이오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를 뿌리고 그렇게 삶을 이어지고 살아간다.

누구 눈에도 띄지 않는 허약하고 초라한 꽃을 피우는 나무도 나름의 모든 힘을  들이고 노력한다.

나 여기 있음을 알리지는 못하더라도 그렇게 삶을 이어가고 하루하루의 시간을 살아간다.

 

소극적인 사람. 수줍음이 많고 사회불안을 가진 사람들

그들도 나름 최선을 다하고 하루하루 어쩌면 남들보기엔 별거 아닌 상황에서도 죽음과 마주하는 비장한 각오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삶의 방식이 최선이 치열하다.

 

아이 학교 상담을 갔다.

아이가 소극적이고 소심하다.

현대를 살아가는데는 자기 피알도 필요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적극적인 인재가 필요한데 그런 면에서 소극적이고 소심한 사람은 눈에 띄지도 않고 불이익을 당할 경우도 있다.

이건 돌려서 유하게 하는 말이다.

한마디도 적극적이고 나서는 성격도 이제는 능력이고 실력이다.

자기가 10을 가지고 있든 5를 가지고 있든  그걸 드러내는 사람이 이긴다,

나는 이만큼 있다고 포장할 줄 알고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 더 가치있고 존중받는다는 세상이다.

그게 틀렸다고 할 생각은 없다.

사실 그렇다. 세상엔 바닷가 모래알만큼 많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는 정해져 있다. 그러니 실력이 있더라도 누군가의 눈에 뛸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저 사람이면 믿음이 간다는것  능력있어보인다. 매력적이다. 그건 다 적극적이고 활발하고 사교적인 사람들이다. 인간은 우선 눈에 보이는 걸 믿는 법이다.

나도 그러니 남을 탓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왠만하면 자기를 드러낼 필요가 있고 사교적일 필요가 있고 누군가와 잘 지내고 적극적인 것이 더 좋다.

하지만 당신 아이가 소극적이라는 말 그래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교사의 충고는...

한마디로 너 아이가 많이 부족하다는 말일 수도 있다.

뭐라고 시켜야 겨우 말을 하고 발표도 왠만하면 하지 않으니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도 없고

우는 아이 젖준다고 자꾸 나대야 보이고 보여야 이쁘기도 한데 있는듯 없는 듯 아무 존재감없는 아이 일단 학교를 다닐때는 걸리적거리는 게 없으니 나름 편한 아이지만 그런 무존재감은 사회생활이 힘들수도 있고 도태될 수도 있다는 ... 조금 삐딱하게 꼬아 들어면 그럴 수 이다.

 

하지만 천성은 누가 바꿀 수도 없다.

옆에서 닥달하고  뭐라고해도 가자 불편하고 힘든건 당사자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그것도 병이라고 이야기 한다.

수줍음이나  무대 공포 이상의 사회불안이고 사회공포증이다.

이건 기질이나 성격이 문제가 아니라 병이고 그러니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 도와 주어야 하는지를 자세히 기술한다.

조금씩 사소하고 작은 일부터 시작해서 세사에 적응하도록해야한다.

가까운 사람에게 자기 의시를 표현하고 사소한 일에 사람과 눈을 마주 하고 이야기를 하는것

그리고 타인은 생각보다 남에게 그다지 관심이 업고 한 번 봐도 쉽게 잊을거라는 뻔뻔 함도 키워야 한다.

저 사람 성격이 이상하군. 너무 소심한거 아니야? 별 거 아닌데 왜 저렇게 떨어?

그러니 내가 정말 이상할거야. 남들이 우습게 생각하고 다시는 상대하지 않을거야

난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그냥 무조건 피하는게 장땡이야...

이렇게 움츠리고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말자고 저자는 말한다.

우울증이나 다른 것 처럼  질환이고 혼자의 문제도 아니고 치료를 하면 좋아질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래서 구체적인 사례도 많이 인용하과 치료과정도 상세하게 기술한다.

어쩌며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위로도 되고 나도 가능하거란 위안도 얻는다.

사실 그들은 누군가 타인이 나를 이상하게 보고 손가락질 하고 수군거리는 것보다 더 크게

스스로 위축되고 모든 최악의 가능성을 배재해서 스스로를 작은 울타리에 가두어 버리는 것이 더 큰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점점 드러내고 보여주는 걸 즐기는 쪽으로 흘러가고 인터넷이 발달하고 작아지면서 나의 존재를 어떻게 어필하는가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조금만 망설이고 쭈빗거리면 쉽게 잊혀지고 도태된다.

그렇게 변하는 세상도 점점 소극적인 사람의 병증을 심하게 하고 위축시킨다.

 

경주 보문다지나 진해 해군기지 혹은 윤주로에 피지 않은  허름한 동네의 벛나무도 봄에는 꽃을 피운다. 겨우 몇송이 누구도 알아봐 주지 않아도 그곳에 벛나무가 있는지 목련이 있었는지 알아보지 못해도 몇년을 그 자리에서 묵묵히 꽃을 피웠고  시간이 되면 장렬하게 떨어지면서 삶을 이어았다.

누가 모르다고 그 나무를 가치없다 할 수 있을까

드러나지 않는다고 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소심하고 드러나지 않는 아이를 키우면 늘 마음이  복잡하다.

이렇게 이쁜걸 이렇게 장점이 많은 걸 나만 보고 있구나 싶어 안타깝다.

그래서 책도 이런 제목으로 나오면 눈에도 잘 띄고 자꾸 손이 간다.

대단한 비책을 기대하고 뭔가 위안도 얻고 싶다.

하지만 대단한 명성의 저자도 결국은 마찬가지다.

일단 병으로 인정하고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인정하고 나서기까지의 과정도 책에서 보여주는 것만큼 많은 골짜기를 지나야 한다.

책장을 덮고 위안과 함께 또 막막하다.

 

 

어제 외출했다가 아파트 단지로 들어오는데 노부부가 스쳐 지나가며 하는 말을 들었다.

어머 여기 동백이 피었네.

그러네.. 이동네 20년을 살았는데 여기 동백이 있다는 걸 몰랐어. 당신은 알았어?

몰랐지.. 작년 봄에도 여기 뻔질나게 다녔는데 못봤지,.

아이고  고와라..

정말 곱네

 

20년간 누구도 몰랐던 동백은 그동안 계속 꽃을 피웠을 것이다.

그리고 20년만에 누군가가 그를 알아본다.

그걸로 되었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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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의 작품은 영화화 되기 참 쉽다는 생각을 했다,

발랄하고 톡톡 튀는 대사들 하지만 그 속에 꽉꽉 들어찬 의미들

휙휙 바뀌는 장면들이 영화로 만들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없게하는 매력이 있다.

완득이도 그랬고 이번 우아한 거짓말도 그렇다.

원작을 충분히 살리면서 영화가 보여 줄 수 있는 섬세함도 잘 살렸다.

세 아이의 연기도 좋았고 마지막의 다섯번째 털실 뭉치도 좋았다.

그 뭉치가 누구를 향한것인지 누구를 위로하는 것인지 의견이 분분한 것까지 좋았다.

그러고 보니 온통 좋은 것 투성이구나....

 

아줌마들끼리 한번 그리고 아이와 한번 두번을 보았는데 솔직히 울지 못했다.

함께 간 아줌마들이 휴지 한통을 다 쓰면서 울어대는 동안 그저 먹먹하구나 하는 감정을 느끼면서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악착같이 참고 있었던 거같기도 하고 이렇게 허물어질 수 없다는  참 필요없는 자존심인것도 같다.

 

괜찮다는 천지의 거짓말에 모두는 괜찮은 줄 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 순 개뻥이다.

내가 낳은 아이라도, 한 배를 타고 난 자매끼리도 그리고 천하에 없는 베프도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사람은 신이 아니기때문에 독심술을 할 줄 모른다. 그저 미루어 짐작하고 말 뿐이다, 그 짐작조차 나조차 모르는 사이에 나한테 유리하게 작용할 뿐이다. 괜찮다니까 괜찮을거야.. 괜히 아닌게 아닐까 고민할 필요없지.. 괜히 성가시게 일 만들 필요없어. 정말 힘들면 말하겠지.. 그때 가서 봐줘도 괜찮아. 독립심을 키워야지. 내 삶도 허덕거리는데 누굴 위로하겠어...

잘못된건 아니다. 누구나 내 손톱밑에 상처를 가장 아파한대도 이기적이라 말할 수 없다.

삶이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렇게 팍팍하고 건조하고 하루하루 견디는 힘만 남겨줄 뿐이다.

천지 엄마도 천지의 순진한 표정을 믿었고 만지도 천지나 자기나 별 다르게 없을거라 생각했을 것이고 화영이 조차 자신을 견뎌내는 천지가 더 강해보여서 더 미웠을 수도 있다.

미라는 제 무게에 허덕이고 있으니 조금 더 무게가 가벼워보이는 천지가 어쩌면 가장 밉고 싫었다는게 이해가 간다.

사실 소설을 보면서 난 미라가 참 싫었다.

다 알고 있다는 듯, 자기가 가장 정의롭다는 듯 난 너를 도와주려고 했지만 니가 거절한거야.. 하는 값싼 자존심을 내세우는 캐릭터였다. 흔히 왕따가 있는 교실에서 내가 아니니까 난 나쁘게 한건 아니까. 난 뭐라고 충고라도 했으니까.. 하고 자기위안 자기 변명에 만족하는 젤 저질스런 계집애처럼 보였다. 화연이조차 그럴만한 이유가 보였고 상처가 보였는데.. 사실 미라의 상처를 나는 보지 못했다. 자기 못난 아비때문에 친구에게 그럴 수 있을까는 생각 못했고 (책에서 그 아비가 어떤 인물인지 보여주지 못했기때문이라고 변명하면서...) 절대 자기는 나쁘지 않다고 믿는 젤 재수없는 기집애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죽은 천지못지않게 그리고 화연이 못지 않게 상처가 깊은 아이가 미라였다.

그 어린아이는 자기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고 그래서 누군가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고 내가 받은 아픔이 너무 커서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없었다. 천지가 얼마나 아픈지 몰랐으니까

그저 아직도 철없고  화연이를 견뎌내는 천지가 더 무섭고 재수없다고 느끼는 평범하지만 상처가 더 깊은 아이였다.

미라의 아픈 속을 들여다 봐주는 건 그래도 언니 미란이여서 참 다행이란 생각도 했다.

만지와는 다르게 엄마처럼 동생을 보듬는 미란이가 있어 미라도 조금은 위안이 되겠구나 싶어 다행이라 싶었다.

 

영화에서는 책에서보다 만지가 입체적으로 나왔다.

책에서는 동생의 죽음을 알고 싶어하는 언니.

동생과는 다르게 교우관계나 성격도 괜찮고 만사 쿨한 멋진 하지만 조금 냉정한 언니고 딸이란 생각을 했었다. 꽤 괜찮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지는 만지도 참 많이 아팠다.

겨우 열여섯 정도 된 아이가 보여주는 쿨한 모습이 아팠다.

쿨하다는 건 좋은 거 아니다.

난 상처받고 싶지 않다. 난 거부당하고 싶지않다. 내가 따를 당하는 거 아니구 내가 너희 모두를 따 시키는 거라고 그렇게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한 채 세상에 맨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가장 소심하고 처절한 몸부림일 뿐이다.

저 어린게 얼마나 상처가 깊으면 쿨하게 사는 법을 배웠을까

이상한 친구는 안사귀면 되고 그래서 친구가없으면 혼자 다니면 되고 먹기 싫으면 안먹으면 그만이고 싫은건 안하면 그만이고...

상처가 없는 만큼 관심도 없는 거고 ...

만지도 천지만큼 아프고 힘든 아이인데 그 요령까지도 이미 알아버린 너무 빨리 철이 들어버린 아이같았다. 엄마도 이해해야하고 동생도 보살펴야하고 그래서 내 감정같은 건 이미 박제시켜 버려야 하고... 친구도 상처받지 않을만큼 거리를 두고 있고..

차라리 화연이처럼 극악스럽게 굴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더라도 자기의 약한면을 화려하게 포장해서  해소해버리는게 정신건강엔 낫지 않을까 싶을 만큼..

화연인 크게 너무 사악하고 그래서 자기가 다시 공격받고 욕을 먹은 만큼 자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만지는 이미  욕을 먹거나 실수를 하거나  하지 않은채 자라버려서 그게 마음이 아프다.

 

함께 영화를 본 작은 아이가 그랬다.

천지 언니가 꼭 우리언니같애.

그닥 친구한테 잘하는 것도 아닌데 친구도 많고 쿨하고 뭐든 나보다 나은거 같고 잘아는 거 같은게 우리 언니같애.

그래 나도 만지를 보면서 그 생각 했어.

썩 만족할만큼은 아니지만 알아서 잘하는, 그래서 손이 덜 가서 편하다고만 생각했고 가끔 기집애가 냉정하고 깍쟁이같다고 여긴 내딸이 어쩌면 내가 신경 더 쓰는 막둥이보다 더 아픈건 아닐까. 내가 못보고 안보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친구문제로 징징거리고 소리치고 아파하는 딸은 뭐라고 조언도 하고 함께 욕도 하면서 견디게 했는데 어떤 문제도 입밖에 내지 않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큰 딸을 내가 너무 믿고 둔건 아닐까  싶어졌다.

아직 채 15년도 못산 아이들은 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찌질해도 상관없고  대책없이 굴어도 상관없고  미친듯이 빠지고 상처도 입고 또 돌아서면 좋아라 웃어제끼기도 했으면 좋겠다.  저게 정말 호르몬의 문제가 많구나. 미친 중딩 맞구나 싶게 그렇게 드러내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걸 견디는 힘도 내게 있으면 좋겠다. 다 지나가리라... 하고 도를 닦을 힘도..

 

결론은 영화가 꽤 괜찮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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