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에 띄운 편지
발레리 제나티 지음, 이선주 옮김 / 낭기열라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는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하는 사회과학 도서들이 전하지 못하는 사람의 입김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우리편 아니면 적이라는 식으로 무리를 짓고 날선 무기로 무장하고 있는 익명의 집단 복수로서의 "그들"이 아닙니다. 선과 악이라는 흑백논리의 명찰을 달고 있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그"사람"은 그냥 "나"를 닮은 '너"  "너"를 닮은 "나"입니다. 내가 너일 수 있고 네가 나일 수도 있는 숨 쉬고 느끼고 꿈꾸고 장애를 넘어 교감하고 대화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인간입니다.

 

 

사실 이-팔 분쟁은 현재의 국제정세와 세계화된 정보 환경 속에서 여러가지로 정치적인 의도가 덧칠되어 보도되고 있는 단골 소재입니다, 제니티는 매스미디어가 이-팔 분쟁을 다루는 과정에서 마구 잘려지고 제멋대로 정돈되고 특정한 이미지로 고착된 정보들이 놓쳐버린 인간 개채로서의 인간에 촛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작가는 각 진영의 대변이기를 거부하면서 꿈을 꾸는 두명의 젊은이들에게 줌렌즈를 들이댑니다. 타인에게 감정이입 할 수 있는 픽션의 나레이터로서 말입니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이스라엘-팔레스테인 분쟁에 대해 알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실에 대해 잘 알려면 굳이 이책일 필요가 없으니까요

신문더미를 뒤지거나 관련 정보가 있는 기사들을 인터넷에서 찾는 것이 더 빠를 것입니다.

언젠가 이기호의 소설집에서 읽었던 말이 참 오래 남습니다.

"김박사는 누구인가"의 맨 처음에 실린 단편이었는데 .. 주인공이 예전 문서로만 기록되었던 사람들의 인적사항을 컴퓨터에 저장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야기입니다, 주요한 줄거리가 아니라 그 주인공이 이름만으로 나열된 사람들의 성별 나이 주소지 병역기록을 기계적으로 기입하면서 이렇게 숫자로만 분류되는 똑같은 인물이 아니라 각각 하나의 이야기가 있고 역사를 가진 인물들이라는 것을 꺠닫게 되는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냥 한줄 무심하게 기록된 그 누군가에게도 따뜻한 체온이 있고 뜨거운 피가 흐를것이며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고 삶에 환희 혹은 고통을 느꼈을 시기가 있었을 겁니다. 그 개개의 이야기는 모두 박제된 채 그저 분류하기 쉬운 숫자와 간단한 기호들로 나열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꼈던 주인공의 자괴감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신문에서 혹은 역사책에서 언제나 기록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건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사건이 있었고 누가 중심인물이었고 어떤 결과가 있었고 그것의 역사적인 의미는 ..... 혹은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한  한두줄의 사건들에서 중심 인물이 아닌 사람들은 그저 모모씨 혹은 남자 여자 뭐 그런 성별로만 기록될 뿐입니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곳에 있게 되었는지 그때 그가 어떤 마음인지 어떤 상황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주된 인물과 상반된 사상을 가졌을 수도 있고 다른 마음을 가지고 우연히 그곳을 스쳤거나  주인공보다 더 뜨거운 무언가를 품고 그자리에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기사에는 역사의 기록에는 그것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냥 모모씨일뿐입니다.

 

이 책은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에 사는 두 청소년의 편지와 일기로 구성됩니다.

어느날 이스라엘 어느 도시에서 벌어진 테러로 인해 충격을 받은 이스라엘 소녀 탈은 무언가를 쓰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낍니다.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지금 이 상황을 그리고 내 기분을 기록하고 쓰지 않으면 안될거 같은 강한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누군가 나누고 싶어합니다.

군인인 오빠에게 부탁해서 병에 넣은 편지를 가자지구로 보내가 그 병을 우연히 발견한 팔레스타인의 소녀 나임과 메일을 주고받게 됩니다.

나임과 탈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어쩌면 두 나라의 입장과 전혀 딴판인  꿈을 꾸고 있을 수 있는 그저 평범하고 생각이 많은 젊은이입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고민하고 왜 우리는 서로에게 테러를 하고 공격을 하면서 서로를 저주해야하는지 궁금해합니다. 세상 또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낯선 평화와 웃음이 왜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그토록 주저되고 죄스럽기까지 한지 알지 못합니다.

아니 머리로는 그 이유를 알지만 가슴으로까지 이어지질 못하는 건지도 모르지요.

조금은 자유로운 사회에서 보내는 탈의 편지를 나임은 첨에는 비웃고 조롱합니다. 그저 신문에서 기사에서 보여지는 가자만을 상상하는 탈을  마음껏 비웃으며 어린아이 취급합니다.

하지만 탈은 포기하지 않고 그 땅 팔레스타인에도 자기와 닮은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믿으며 편지를 보냅니다.

 

처음 편지를 쓰기 시작했을 때 탈도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미지는 미디어가 보여준 것이 전부였습니다. 자기가 사는 곳에서 편집되고 걸러진 이미지의 팔레스타인을 생각하며 편지를 씁니다. 자기가 체득하지 못한채 이미지만 가지고 있는 곳에 있는, 그러나 자기와 비슷한 정서를 가진 소녀를 상상하며 편지를 보냅니다.

팔레스타인의 소년 나임은 그런 탈의 편지가 우스울 수도 있겠습니다. 팔레스타인에 대해 편견된 이미지를 가졌으면서도 뭔가 서로 소통하려는 마음을 가진 소녀 어쩌면 아직도 철이 덜 든 낭만적인 사춘기소녀정도로 생각했을테고.. 그래서 나임의 초반 편지들은 냉소적이고 비아냥거리는 투가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하지만 탈은 포기하지 않지요. 누군가 자기의 편지를 읽었고 답을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가능성을 생각하고 기뻐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시도하지요

누군가 소통하고 공감한다는 건 그 사람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는것도 포함되나봅니다. 결국 나임의 이름을 알았고 그의 걱정을 받았고 소통합니다.

어쩌면 나임이 원한것도 보여지는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있는 개개인의 팔레스타인 뭉뚱거려진 덩어리가 아닌 피와 살을 가진 나를 봐주는 누군가였을 겁니다. 그리고 그 대상이 바로 탈이었지요.

누군가와 소통한다는 것 그리고 이해한다는 것은 그 개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내가 보고 이해한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그 속에도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있다는 것 혹은 나와 다른 누군가 개인이 있다는 것 그 작은 하나하나를 봐주는 것.. 거기서 시작하는 겁니다.

현실에 눈을 떠가는 탈과 지금은 현실을 떠나지만 더 큰 희망을 안고 돌아오겠다는 나임은  그 자체로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을 대표하진 않지만 그에 속한 하나의 개체이며 동시에 자유로운 개인입니다.

한사람 한사람의 희망과 한사람 한사람의 개인의 꿈이 모여 결국 덩어리가 되는 거겠지요.

우리에게 보이는 건 커다란 덩어리겠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하는 거라고 그것이 소통이라고 탈과 나임은 말합니다.

 

사족..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아버지  엄마 오빠 혹은 후배  선배였을 사람들이 아직도 차가운 물속에 있습니다. 그들은 뭉뚱거려진 실종자 혹은 희생자만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각자의 꿈이 있었고 이야기가 있었고 아직 못다한 삶이 남아있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피해입은 국민의 일부라고 치부되어버릴지 모르지만 그들은 하나하나가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때때로 전체로 보아야 할 때도 필요하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할때는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소통하고  나눌줄도 알아야 하는 겁니다.

여태 당연해서 인식하지 못했던 리더의 자질을 또 하나 배웁니다.

리더가 아닌 평범한 우리도 아는 것을 누군가는 아직도 모를지도 ... 라는 생각에 화가 납니다.

그래서 이 책이 참 소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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