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에 대한 책이 일본만큼 많이 나온 나라는 없는 듯하다,

우리에게 왕따 문화가 있기전 이지매가 있었고 학원폭력이 있고 학교 붕괴가 있었고

유감스럽게도 그 현상은 우리에게도 조금씩 번지고 있다,

왕따에 대해 많은 책들이 있다,

 주로 피해자의 입장에서 혹은 가해자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책은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옆에서 바라보는 이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옆에서 보는 사람

아주 객관적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다시 말하면

방관자

혹은 아무도 모르게 떨고 있는 제  3의 피해자

그렇다,

왕따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아이와 함께 왕따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늘 강조했었다,

왕따에서 가장 나쁜 건 왕따를 주동하는 여왕벌도 아니고 거기 따르는 무리들도 아니고 그걸 보고도 모른 척하는 주위사람이라고 했다, 왕따를 하는 아이는 적어도 누가봐도 나쁜 아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게 된다(요즘은 아주 영악하고 교묘해서 이런 구분도 의미가 없긴 하다) 그러나 옆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방관자는 딱 꼬집어 잘못했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서 더 아프고 힘들게 하는 존재이다, 나의 고통을 바라보고 알고 있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묵하고 있는 사람 

미워하려니 내가 너무 외롭고 다가가기엔 어딘가 두렵고 낯선 눈길들

그러니 절대 누군가 왕따를 당한다고 느낀다면 방관자는 되지 말라고 정말 대책없는 충고를 퍼부었다.

그럼 어떤 행동을 해야하나? 

이 책에서  주인공은 돈짱을 괴롭히는 야라가세 패거리가 있다,

그들은 정말 사소하고 의미없는 일로 돈짱을 괴롭히기 시작했고 돈짱이 어떤 저항도 없다는 이유로 아주 편하게 놀리고 구타하고 마음대로 장난감처럼 취급한다,

그걸 보는 주인공은 마음이 괴롭다,

그저 당하기만 하는 돈짱이 너무 이해가 안되면서 입밖으로 내뱉지도 못한 응원을 보내고 화를 내고 소리없는 고함을 질러댄다, 그 뿐이다,

행여 야라가세 일행과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전전긍긍하는게 현실이다,

내가 아니니까 다행이지만 누군가가 당하는 걸 보는 것도 몹시 괴롭다, 그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더 힘들다

어쩌면 말이다,

왕따를 옆에서 방관하는 아이들은 가정폭력을 지켜보는 아이들이나 권력이나 힘의 폭력을 떨면서 지켜봐야 하는 사람들의 심정과 같은게 아닐까

나서기엔 내가 너무 작고 나약하고 섣불리 나서다가는 오히려 내가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눈을 감아도 현실이 눈꺼풀안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은 고통 그래서 더 꼬옥 눈을 감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내가 무얼 잘못할까 자꾸 움츠려들게 되는 그런 기분과 같지 않을까

주인공도 그렇다

돈짱이 당하는 걸 보면서 화도 나고 돈짱이 너무 미련해보이지만 애써 모른 척 한다,

나만 그런건 아니니까

그러다 본인에게 일이 닥치는 순간  돈짱에게 자기가 한 모든 행동들을 고스란히 경험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한다. 돈짱이 도움으로 야라가세의 폭력에서 떨어지지만 그 이후도 변한게 없다,

그저 돈짱을 철저하게 모른 척 하기로 한다,

그리고 훔쳐보게 되는 돈짱의 절규 그리고 학예회에서 벌어지는 돈짱의 저항

그러나 그뿐이다,

 

왕따에는 이유가 있죠

그 애가 우리애를 부추긴 겁니다,

애들끼리 장난 아닐까요?

그런데 왜 도시바(돈짱)은 화를 내지 않았습니까? 싫다는 말을 확실히 하지 않은 것도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는 눈을 감고 싶고 학교는 그저 무탈하게 넘어가길 바라고 가해자는 버틸 때까지 버티고 싶고 피해자 가족은 그냥 피하고 싶고 주변인은 그저 내일이 아닐 뿐이고

그러게 덮어지고 넘어가면 모두가 안도할 뿐이다,

 

현실에서는 포장마타 아저씨 같은 분들을 찾을 수 없다,  행동하는 어른을 보기 힘들다,

아저씨의 따끈한 어묵국물에도 내 마음을 녹이기는 힘들다,

그런 어느날 까마귀에게 당하기만 하던 도둑고양이가 까마귀에게 덤비고 당당하게 구는 걸 목격한다, 예전 까마귀에게 당해 거의 죽음에 이른 고양이 돈짱을 미치게 만들었던 분노하게 만들었던 그 고양이는 이제 당당하다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걸 보고 모르는 척 하면 안 되지

 그러면 기분이 영 개운치 않아.

 하지만 그 대신 이 모양이 됬잖아요

 그렇다고 해도 역시 모른 척 해서는 안되는 거야

 마음 속에 간직한 등불이 꺼져 버리면 어떻게 되겠니?

 

(부끄럽고 부끄럽다)

 

마지막 졸업을 앞두고 주인공은 용기를 낸다,

내 손가락끝의 가시처럼 아프고 찝찝한 이기분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는 없다,

졸업식 예행연습을 하던 날

의자위로 올라선 주인공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잠깐 제...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저는 용기가 없어서....... 친구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도 모르는 척 하고,,,,,,,,,

친구는 괴롭힘을 당하다가 결국 전학 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데

이대로 모르는 척하면서 졸업을 하게 되는게 ...........

이런 기분을 가지고 중학생이 되는 게 싫어서............. 그래서

 

결국 제데로 하지도 못하고 소란속에 묻힌다, 마지막까지 꼴불견. 생각할수록 창피.

그러나 후련하다

그리고 야라가세의 눈을 마주한다.

이제는 그 아이를 마주 볼 수 있을 듯하다, 무언가 말하려던 야라가세는 다른 친구들이 다가오제 자기가 먼저 피해버린다. 예전 포장마차 아저씨가 말하던 중학생에게 맞던 아이가 야라가세였을까 그도 아픈 곳이 있었을까 그랬다면 돈짱에게는 왜 그런건데...

생각이 복잡해지지만 한편 후련하다,

제대로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하긴 했으니까

 

하지마. 싫어

그렇게 하면 아프잖아.

내가 싫어.

니가 그렇게 하는게 나는 싫어

하지마 그건 옳은 일이 아니야

누가 너한테 이런 짓을 하면 기분이 어떻겠니?

만약 그가 나라면 어떨까?

나처럼 아무도 보지 못한 척 그냥 지나치고 외면하면 기분이 어떨까?

 

끊임없이 나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나라면 어떻겠니?

그 의 심정은 어떨까?

내가 경험한 게 아니고  하고 싶은게 아니라고 모른 척 하는 건 비겁하다.

공감이라는 건 내가 경험하지 않고 모르는 일이라 하더라고 그 사람을 이해하고 인정하려는 마음이다. 그가 힘들구나 아프구나 애쓰는구나를 알아주고 행동하는 거라고 했다,

그게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꾸 되새김질을 하고 나에게 일러주어야 한다.

아니라고 하라고 싫다고 하라고 그러지 말라고 하라고...

이제 이 쉬운 말 한마디 행동하나는 용기가 되었다.

그냥 마땅한 일이 아닌 용기를 내어야 하는 일..

그래도 자꾸 내게 질문을 하고 의문을 품어가며 용기를 내어보자

이제 더이상 돈짱처럼 전학가버리는 아이가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그리고 주인공처럼 내가 하고 싶은 말에 큰 용기를 필요로 해야하는 힘든 일이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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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빈자리 낮은산 키큰나무 8
사라 윅스 지음, 김선영 옮김 / 낮은산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제이미에게는 불행한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아끼던 고양이 미스터가 죽었고 아빠는 바람이 나서 가출했고 이모는 사고로 기억상실에 걸렸다

행복했던 집을 떠나 새로운 도시에서 컨테이너 집에서 이모를 돌보며 살기 시작했다.

낯선 환경과 더 바빠진 엄마 좁아진 집 없어진 내 방 그리고 어린 아이가 되어 늘 똑같이 반복하는 이모... 제이미는 그게 자신에게 일어난 불행의 전부라고 믿었다,

그런데........

잊고 싶은 기억이 생겨버렸다,

 

이야기는 아이러니하다

사고로 머리를 다친 이모는 계속 기억을 되찾기위해 노력한다,

사고 이전의 기억을 뚜렷한데  그 이후의 기억은 30분을 넘기지 못하는 이모를 위해 기억의 실마리를 찾가아며 이모의 기억을 살리려고 한다

반대로 제이미는 기억을 잊어버리고 싶다,

영원히 누구도 모르고 나도 모르게 그냥 그렇게 사라져버리기를 바래고 또 바랬다,

버터 스카치 사탕의 맛이랑 얼굴이 눌리는 촉감같은 건 영원히 지구에서 없어지기를...

강한 충격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사람은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방어기제는 스스로 살기위해 생기는 것이다,

내가 살기위해서 모른 척하고 아닌 척하고 남탓을 하고 그리고 잊어버린다,

해리는 가장 어두운 기억이고 가장 강한 방어기제이다,

우리의 제이미는 그 방어기제를 간절히 바란다,그러나 잊고싶은 기억일수록 너무 또릿하게 각인되어버렸다,

제이미는 학교에서도 무시받고 없는 듯한 존재이고 엄마앞에서도 아무것도 말 할 수 없다,

아빠와 헤어지고 이사를 한 후 엄마는 공장에 다니느라 바쁘고 이모를 돌보느라 바쁘고 그리고 이젠 오븐에 구운 소고기 요리 돼지 갈비 샐러드 쿠키와 케잌 대신 간단한 마카로니 치즈와 제로콜라에 의지할 뿐이다,.

학교에 찾아온 아서씨의 수업  그리고 짧은 아서씨와의 대화

이웃에 사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괴상한 소녀 오드리

꼭 이 두사람이 싫어서라기 보다 제이미는 누군가와 가까이 하면서 자기의 기억 혹은 비밀의 봉인이 해제될까 두려웠던 거였다,

따뜻한 말한마디 무심한 친구와의 농담속에서 진심이 튀어나오고 그 봉인된 기억이 튀어나올까봐 두렵다, 그래서 그들이 더 싫다, 오히려 무시하고 조롱하는 선생님이 더 편하다.

기억을 봉인을 확실히 하고 싶은 마음에 오드리의 최면술에 응하지만 자기가 말해버렸을까봐 더욱 두렵다,

절대 누구도 알아서는 안돼 절대,,,,

 

결국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과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기억은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

네 잘못이 아니야, 니가 잘못한게 아니야

그 한마디에 제이미는 그냥 무너지고 비밀은 사라졌다,

말해버리면 누군가가 알아버린 비밀은 더 이상 힘이 없다,

 

마지막의 헤피앤딩이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이도 있다,

그러니 한 아이가  아닌척 하며 견뎌내고 버티는 이야기에 이런 동화같고 환상적인 앤딩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너무 잘 견디는 것처럼 보이고 그렇게 보여야 한다고 믿는 아이에게 이정도의 희망은 괜찮지 않을까 적어도 책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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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었다, 무슨 일을 하든 글을 쓰는 것과 관련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었다

그러나 나는 전형적인 머리속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글이란 진중한 엉덩이와 펜 끝에서 나온다는 걸 몰랐다,

그저 머리속으로 집을 수십채를 지었다 허물면서 글을 그려내고 있었다,

늘 생각은 많았다,

아이가 어려서 생각하고 고생하고 자라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런데 늘 이야기는 머리속에서만 맴돌았고 펜끝에서는 늘  손끝이 떨려서 점점점만 나왔다,

나중에 그런 이야기가 성장소설이라는 걸 알았다,

글을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고 들어서 줄곧 읽어댔다, 어떤 원칙도 없이 흥미위주로 읽고 어려워 보이는 책들은 그냥 꾸역꾸역 읽었다,. 그리고 차라리 읽은 책에 대해 글을 쓰면 어떨까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여자가 낸 책을 누가 볼까 싶어 어쩌면 어떤 네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궁리만 하다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한 참 후에 독서에 관한 책들이 쏟아졌다, 유명한 사람도 있었지만 의외로 누구도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드라마를 쓰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드라마를 보면 누구나 그렇듯이

운명적인 사랑이 아니라고 그냥 오래 공기처럼 물처럼 있던 친구가 연인이 되는 이야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밋밋한가 싶었다, 연애경험도 없고 오래된 이성친구 따위는 더구나 없던 내게 이야기는 그저 구름위의 개미집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질투"라는 드라마가 나왔다,

나는  나혼자 늘 몇발 앞서 있었다, 내 생각속에서

글은 여전히 머리속에서 뭉개뭉개 그렸고 노트들은 앞의 몇장만 빽빽하게 채워진 채로 쌓여만 갔다,  한 번은 자원절약 차원에서 앞장을 모주 북북 찢고 새로 이용하기로 했다,

찢어낸 종이뭉치를 그냥 버리려다 한 번 읽었더니 어.. 제법이었다,

버리기 아까웠다, 그리도 혹시나 싶어 파일에 챙겨두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서랍아래서 잊혀지고 있는 중이다,

일단 일기를 쓰기로 했다,'나날이 무료했다. 화끈한 사건도 없었다, 당연히 쓸 이야기도 없다,

나는 나이를 먹도록 초등학교 2학년이상의 일기를 쓸 수 없었다, 하루에 기막힌 일이 없다면 쓸거리가 없어 지루해 하는 단순한 아이 그 뿐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여전히 방황하고 꿈만 꾸고 있었다,

글쓰기 책들은 책장에서 새책과 마찬가지의 모습으로 잊혀져 가고  나는 여전히 웹서핑에서 그런 책들만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남이 쓴 책 읽은 이야기도 열심히 읽었다,

그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단지 그는 그 생각이 문장으로 나올 수 있었고 나는 여전히 내 머리 속에서만 맴돈다는 것이 다른 뿐이었다,

읽고 쓰는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어떤 생산성도 없는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이지만 그래도 내 삶의 일부였다, 누가 그랬더라 시간많은 백수가 문화적으로 더 고상하고 수준높은 면이 있다고

딱 내가 그랬다, 일이 없고 시간이 많으니.. 아니 솔직이 내 일을 내팽개치고 났더니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끄적일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났다,

책에 씌여진 이야기처럼 나도 시간을 정해서 무조건 쓰자고 결심한 적도 있었다,

반짝 삼일을 했다, 역시 작심삼일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그것이 오래된 진리라는 것만 깨우치고 끝났다,

나는 계속 읽고 있었고 그 이외의 즐거움이 없었다,

삶이 지루하고 무료했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sns가 생겨나면서 세상의 모둔 은둔 고수들이 드러났다,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무지하게 많다,

이야기를 잘 쓰는 사람, 유머있게 쓸 줄 아는 사람, 이성적으로 쓸 줄 아는 사람 멋진 말들을 나열하길 잘하는 사람  라디오 방송의 오프닝처럼 쓰는 사람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며 쓰는 사람 세상에 잘 쓰는 사람은 너무 널렸고 책은 너무 많아졌고 작가는  내 이웃에도 있었다,

갑자기 세상의 나무들이 안쓰러워졌다, 서점에는 이렇게 책이 많은데  그리고 이렇게 쉽게 잊혀지고 있는데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요즘 케이블이며 종편이며 텔레비젼 보는 맛을 들이다 보면 세상에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많은지 몰랐다, 모든 오디션 프로에 가수를 흉내내는 프로에 계속 사람들이 흘러넘쳤고 그들은 어느 가수 못지 않았다,

이곳 알라딘만해도 작가들은 흘러넘친다,  세상에 숨든 고수들은 어디든 무리지어 있었다, 이젠 고수라고 할 수 없을만큼 글을 쓴다는 것은 그저 흔한 재능의 하나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에전에 책을 많이 읽었고 한때 좀 쓴다고 여겨졌었던 어떤 중년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책들을 부지런히 모으고 읽고 또 읽고 있다,

문구코너에 갈 때마다 노트는 하나 둘씩 필기구도 하나둘 씩 사 모으지만 그것들은 서랍에서 책장 한 구석에서 먼지만 뒤집어 쓰고 계속 텅 빈 채 잊혀지고 있지만 책들은 밑줄이 그어지고 귀퉁이가 접혀가며 쌓이고 있다,

난 여전히 쓰지않고 쓰기를 배우는 중이었다,

글로 배운 글쓰기 글로 배운 책읽기

나는 전형적인 모든 걸 책으로 배우고 실전경혐은 꽝인 인간형으로 되어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 목록에 두 권의 책을 더 추가하고 있다,

 

 

 

 

 

 

 

 

 

 

 

 

 

 

 

 

이게 머리로 쓰는 글쓰기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내가 무엇을 쓸지 알 수 없으니 픽션과 논픽션 두가지를 모두 읽기로 한다

문제는 이 두 저자가 글을 잘 쓴다는 거다

굳이 글을 써야한다는 강박없이 그냥 읽어도 재미있다,

이게 글쓰기 비법을 풀어놓은 책인지 그걸 미끼로 던지는 개인적인 에세이인지 그 정체가 모호하기 이를 데 없지만 열심히 줄을 그어가면서 읽고 있다.

글을 쓴다는 건 나를 드러내는 일이라는 걸 이제 비로소 깨닫는다,

나를 꽁꽁 감추고  무언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 다른 사람의 사정을 헤아리며 쓰는 글은 사기도 아니고 뭣도 아니었다. 나는 그동안 나를 드러내는 방법을 몰랐다는 걸 알았다,

나를 드러내는 방식이 지어낸 이야기든 논리적이고 사실적인 글이라 하더라도 두가지에 다 해당된다. 내가 쓴 글에는 내가 들어갈 수 밖에 없다,

허접하고 짧은 식견과 완고하고 오만한 고집도 있고 귀가 얇아 모든 말에 솔직하는 가벼움도 들어갈 것이다.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는 그 빈곤함을 드러내는 글이 어쩌면 화려하게 치장하고 감추어 둔 나 자신보다 더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 그걸 두 책의 저자 그리고 그동안 읽은 모든 글쓰기 책의 저자는 이야기 해준다,

 

결국은 쓰라는 거다

나를 드러내든 논리를 세우고 검증을 하며 칼을 갈든 일단은 쓰고 볼 일이다,

글은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쓰고 손으로 쓴다

뭐라도 끄적여야 글이 되는 거지

 

하루가 지났다 즐거운게 없다. 어제와 같다 끝

하고 공책을 덮어버리는 어린시절 일기처럼 뭐라도 쓴 건 글이 되겠지만 머리속으로 쌓은 웅장한 만리장성은 그냥 허상이다,

 

모든 책을 읽은 결론..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다. 아니 이전 이 모든 책을 읽을 필요가 없었다,

김연수의 글에서 딱 하나가 기억난다,

용기는 동사라고 했던가. 행동하는 것 움직이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했던가 가물가물

그렇다, 일단 쓰고 볼 일이다,

이것이 좋은 글인지 나쁜 글인지는 다 쓰기 전엔 알 수 없는 일이다,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걸 듣고 밑줄 좍좍 그어봐야 아무 소용없다,

너는 너고 나는 나만의 글쓰기 방법으로 쓸 수 밖에,,

많이 비문이 나오고 잡스럽고 문장이 어수선해서 내가 진심을 담아 쓰면 그게 좋은거라고 그렇게 끝을 맺어보자고 그게 모든 글쓰기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이다,

고로 .. 앞으로 쓸데없는 데는 절대 돈을 쓰지 말아야겠다,

안그래도 사고싶은 책은 넘처나는데 굳이 이런 책들은 그냥 가볍게 넘겨야겠다, 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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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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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에게 무진이란 무의식 아래 숨겨둔 "내"가 있는 곳이다,

전쟁중에 나를 보호했던 어머니. 그때 이유없이 나를 떠난 여인 현재 나를 만든 아내

그 모두는 지금의 나를 있게한 은인이면서 동시에 나를 억압하는 존재들이다,

나는 역앞에서 본 미친 여자처럼 그렇게 정신을 놓고 싶고 도랑에서 죽은 창부처럼 그렇게 명을 놓아버리고도 싶었다,

무진은 그렇게 내가 미워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로부터 도망치는 곳이면서 내가 외면한 내 본성을 마주하는 곳이다,

나는 그곳에서 무진의 안개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서 존재감을 나타내는  그런 모든 타자들을 떨쳐버리고 싶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나의 속물을 보여주는 조와 나의 잃어버린 순수성을 보여주는 박

그들 역시 마뜩치 않고  불편하다

그 중 인숙은 바로 나 자신이다.

이곳을 끊임없이 떠나고 싶어하는 그녀의 안달을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안다.

누군가는 순수하다고 여기지만 또 누군가는 가장 추악하고 속물스럽다고 보는 그 인숙이 나다

나는 보여지는 내가 전부가 아니다, 그저 무진의 안개뒤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존재이고 몇개의 가면뒤에서 불안하게 떨고 있는 어린 아이다,

나는 지금 무진에서 내 민낯과 마주하지만 이곳을 떠난 순간 그 모든 것을 다 잊을 것이다,

잊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부끄럽다, 나의 반성과 성찰이 가뭄 속의 논바닥처럼 얕고 쩍쩍 갈라지는 불온한 것임을 알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은  나를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

그러나 내 뒤꽁무니에 붙언 그 부끄러움을 나는 결고 마주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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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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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안 하는 것을 선택하겠습니다,

 

 

타자는 불가해한 존재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바틀비 그는 우리에게 타자였다.

그의 소극적인 저항은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고자 하는 몸짓이다,

바틀비는 모든 것을 안하는 것으로 선택함으로서 노동과 생존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것을 선택한다, 그 행동은 어떤 큰 파장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세상에 질문을 하나 던지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자주의 구조에 대한 저항.

누군가 만들어 놓아 이젠 익숙해진 사회 구조에 대한 저항

나아가 생존에 대한 저항까지

무엇이라고 이름 불리든 바틀비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긴 일상을 한 번 뒤집어 주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낯설고 두려운 타자가 된다,

우리와 다른 사람을 볼 때 우리는 화자인 변호사 처럼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가고 동정하고 이해해 보려고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그 범위 이상은 절대 넘지 않는다,

타인을 어떤 시선으로 볼 것인가,

우리는 주위의 바틀비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나는 누군가에게 바틀비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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