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 보면 순간 반짝이는 때가 있다,

사실 그 순간에는 이것이 반짝임인지 무엇인지 모른다.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돌아보면 그 순간이 반짝이는 순간이라는 걸 알게 되기도 하고 영영 모르고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순간의 반짝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 삶의 한순간 반짝임을 겪은 사람들이 그 경험을 이야기한다,

 

지구반대편 너무 복잡해서 한 번 들어서는 도저히 발음할 수 있을 것같지 않은 마을에서 단체관광객이  반정부 게릴라의 습격을 받아 납치가 되었다, 모든 작전이 끝나고 결국 납치범도 인질도 모두 죽음으로 마무리되는데 이후 그때 납치된 인질들이무언가를 낭독한 것이 발견된다,

인질로 잡혀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언제 죽음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은 자기가 경험한 반짝이는 순간에 대해 글로 적어 발표를 한다,

사실 극적인 사건이 없었다면 그들 중 몇이나 자기의 삶을 돌아보고 반짝이는 순간에 대해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절박함이 그리고 어떤 막연함이 삶을 돌아보게 하고 삶속에서 잊고 있던 한 순간을 기억하게 하고 그 순간이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보니 반짝하고 빛나던 순간이라는 걸 알았거나 삶의 어떤 모퉁이였음을 알게 된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특별한 것도 극적인 것도 아니지만 그 본인에게는 그 일 이전과 이후가 달라지는 어떤 모퉁이였음을 알게 된다,

 

주인공들은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다,

혼자 철공소를 보며  여러가지 상상을 하는 소녀

불량 비스켓을 가져와 괴팍한 노인네와 함께 시간을 갖는 처녀

우연히 여러가지 독특한 모임에 참여하게 되는 출판교열자

등교길에 만난 조잡한 인형을 만들어 파는 노인과 공감하게 되는 소년

어느날 이웃집 딸과 함께 낯선 음식 콩소메를 함께만드는 경험을  혼자만 간직하는 소년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청년을 따라가 창던지기를 관람하고 스스로를 들여다보던 여자

돌아가신 할머니를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여자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날 단골에게 받은 꽃다발을 들고 돌아가는 청년

그리고 어린 시절 만난 일본인과의 경험을 기억하는 병사

그저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에게 한 순간 반짝하는 순간이 왔다,

그 순간은 엄청나게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대단한 반전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몇몇은 그 순간에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나 삶을 되돌아보았을 때 찬찬히 자기의 속을 들여다 보며 되집어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때 나는 어떤 강을 건넜구나

이제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기진 않을 것이고 그로 인해 미세하게라마 나는 달라렸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그건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은 순간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위로한 순간이기도 하다,

상대가 알지 못하지만 혼자 위안받고 자기를 돌아보기도 한다,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그런 삶의 지점을 기억나게 했을 수도 있다,

그저 어제같은 오늘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중이라면 내가 모퉁이를 언제 돌았는지 언제 반짝하는 빛이 있었는지조차 되돌아 볼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냥 그때가 좋았엇지 하는 건 있어도 그때 그 반짝거림을 찾은 적은 없다,

몹시도 외롭고 서러워도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 살아간다는 게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그 순간을 찾아보고 싶다,

이만하면 괜찮지 않을까 스스로  위안하고 토닥거리는 순간이 반짝이는 순간이기도 할것이고

이제 뭔가 강을 건너버렸다는 느낌, 방금 전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어버린, 훌쩍 자라버린 낯선 나를 느낄때가 그때 이기도 할것이다,

 

 

개인적으로 메아리 비스켓이랑 창을 던지는 남자를 바라보던 여자 이야기가 좋았다,

비스켓 이야기는 나와 전혀 다른 누군가와 소통하고 공감해나가는 이야기여서 좋았고

창 던지는 남자 이야기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어느 날의 하루가 나에게 좋은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조금 다른 시각이 좋았다,

화려하고 극적이지 않아도 조금씩 내 속에서 찰랑거리는 물결을 느끼는 것

오롯이 나만 느끼는 것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작가 오가와 요코는 사람의 마음을 참 세심하게 만져준다

<박사가 사랑하는 수식>에서도 그랬듯이 자분자분 사람을 관찰하고 따뜻하게 품어주는 느낌이랄까.. 별 것 아닌것에도  눈 맞추고 고개를 끄덕여 줄 줄 아는 사람일거 같다,

 

별 것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오래 품고  들여다 보며 기운 낼 수 있는 무언가

그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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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우는 사람이 아니었다,

영화를 보거나 슬픈 장면을 봐도 가슴에서 욱하고 치어 오르는게 있지만 어느 순간 내가 나에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낮고 단호한 목소리

"그만한 일로 우는 거 아닌거 같은데"

그러면 희안하게도 눈물은 쑥 들어가고 가슴을 막고 있던 것이 풀린다, 다만 치밀어 오른 무언가가 남긴 묵직한 통증과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감정이 남겨놓은 목매임만 남았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가면서  내내 한 생각은 그거였다

"울음이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다행히 적재적소에서 울음이 나왔고 무사히 상을 치르고 돌아왔다,

나는 누군가의 앞에서 우는 일이 싫었다,

물론 한 번도 남앞에서 울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울지 않는다

울음이 터져고 참아내는 힘이 더 강해서 언제나 누르는 쪽이 이긴다

함께 영화를 보고 옆사람은 눈물콧물을 쏟으며 휴지를 뽑아낼 때도 나는 그저 가슴이 먹먹해지는 게 다다,  슬프다, 마음 아프다, 그 인물이 공감되고 구구절절 이해된다, 그런데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무슨 병일까?

우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걸까

 

그런 내가 책을 읽고 펑펑 정말 소리내어 펑펑 운 적이 있다,

딱  두권의 책

 

 

 

 

 

 

 

 

 

 

 

 

 

 

 

나도 어쩌지 못할만큼 눈물이 나더니 꺼이꺼이 울어버렸다,

어쩌면 처음 읽었으니까 그럴거라고 시간이 한 참 지난 후 다시 읽었더니 여전히 나는 꺽꺽 울었다,

누군가 들을까 조바심내며 울음을 삼켜도  꺽꺽거렸다,

이후 두 권은 내게 금서가 되었다,

그리고 어제 저녁세번째 책이 찾아왔다

 

<기억의 빈자리>

진짜 별 이야기  아니고 심지어 해피엔딩임에도 꺽꺽대며 무언가가 올라왔다,

당황스러웠다, 이러려는게 아니었는데

다행히 12시가 훨씬 넘었고 대부분 잠들고 큰아이는 방에서 수학숙제를 하고 있을거고 혼자 거실에 있어서 얼른 입을 막고 참아냈다,

나이를 먹으면 눈물이 많아진다더니 정말 늙었나싶어서 그냥 억지로 잠을 청해버렸다

 

다시 곰곰히 생각 해본다,

이 세권의 책이 왜 나를 울렸을까?  그건 모르겠다,

나랑 비슷한 무언가가 있나?

나를 스치는 무언가가 있나?

모르겠다,

그렇다면 세권의 공통점은 있나?

금서가 된 세권을 나란히 놓고 본다,

생각해본다,

세권은 모두 그랬다,

주인공이 너무 너무 아프고 힘든데 한 번도 아프다고 하지 않았다, 그냥 꾸역꾸역 견뎌냈고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하고 있었다

동구는 가족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어린아이인 척 아무것도 모른적 괜찮은 적 모두가 나에게 화풀이를 하고 스트레스를 풀어대는 걸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했다,

나의 나종지닌 것의 화자는 아들의 죽음을 속으로 삼키고 한번이라도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다, 민가협 활동으로 사회운동으로 더욱 씩씩해져야 할 이유들을 생각해내면서 내 개인적 아픔을 묻었다,

제이미 역시 괜찮은 척 살고 있다, 말을 건네고 위로 받을 대상도 없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혼자 그 기억을 지우고 싶어할 뿐이었다,

셋다 혼자 짊어지고 끙끙대면서도 자기가  왜 아픈지 왜 힘든지 모르는 그저 얼굴은 웃고 있는 삐에로 같은 인물이었다,

아... 난 그저 견디는 인물들이 아팠구나

 

나는 울지 않는 아이였다,

어린 시절 잠시 스케이트를 배운 적이 있는데 그 때 코치가 무슨 이유인지 (어쩌면 맹장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입원을 했고 엄마와 언니와 친구와 친구 엄마와 병문안을 간 전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때였던 거 같고 병원까지는 갔는데 나 혼자 병실을 들어가지 못했다,

무어라 무어라 고집을 피우며 나는 안 들어가겠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왜 그랬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나 혼자도 아니었고 함께 우우 들어갔다가 잠시 얼굴 보고 나오면 그만인 자리였고 다들  아는 사람들이엇는데 나는 병실이니 문병이니 하는 것이 두려웠던 거 같다.

결국 나머지만 들어갔다 나왔고 나는 밖에서 기다렸다,

오래 기다리진 않았다. 뭐 취미로 배우는 스케이트 강사랑 무슨 말이 많이 있겠는가

굳이 갈 필요도 없던거 같지만 그땐 정이 더 있던 때가 그랬나 싶기도 하고

그때 나오면서 엄마고 나더라 독하다고 독하게 여기까지 와서 안들어 가냐고 했었고

나는 이유없이 억울하고 아니라는 생각을 했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었다,

말대답도 없으니 더 지독하다고 했던 것도 같고

뭐 그런 오래된 기억이 있었다,

 

이후 아버지가 입원을 오래하셨음에도 나는 자주 가지 않았다,

가야한다는 부담은 안고 있으면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걱정되는 마음 불안한 마음이 뒤엉키면서 나 자신도 어쩌지 못해 누군가를 찾아가고 위로하고 살핀다는 것이 자신없었다. 어쩌면 이기적인 것일 수도 있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다,

나중에 그 일로 섭섭했다고 엄마가 뭐라고 하셔도 할 말이 없었고 면목도 없었지만 그땐 정말 힘들었다,  막상 병실에 들어가면 곰살맞게 말도 잘 하고 눈치껏 움직이며 도와드리지만 들어서기 전까지 내 마음이 지옥이고 전쟁이었음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였을까?

어느 순간 우는 게 힘들었고 위로받는게 힘들었고 견디는게 편해졌다,

지금도 누군가가 칭찬하고 좋은 말을 하는 건 부끄럽고 어렵다,

오히려 충고나 비난은 쉽게 흘려 넘긴다, 그러든가 말든가... 뭐

그러나 칭찬이나 공감의 말은 왠지 간지럽다. 얼굴에 개미가 열을 지어 지나가는 느낌. 얼른 이자리를 빨리 뜨고 싶다는 안달감. 내 것이 아닌걸 받아든 난처함이 나를  채운다.

왜 난 칭찬에 약할까 왜 난 위로나  지지에 약할까

내가 가장 편한 상황은 아무도 아무말도 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저 알겠다고 고개만 한두번 끄덕이고 말없이 옆에 앉아주는 사람이 가장 편하고 위안되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나 역시 누군가 아파하고 힘들어할 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그냥 얖에서 등만 쓸어주는 것이 전부다

내가 보여주는 행동은 단순해서 때떄로 무심하다고 오해받기도 하지만 내 속은 정신없이 휘몰아친다는 건 아무도 모른다.

어떤 말을 해야할까? 그냥 침묵하고 있어도 괜찮을까?

옆에 있는게 거추장스럽진 않을까? 그렇다고 혼자 두면 또 무심하다고 하지 않을까?

나는 내내 불편하고 불안하면서도 곁을 떠날 수도 없다

 

 

 

 

 

 

 

 

 

 

 

 

 

 

나와 닮은 아이를 찾았다. 모모

로자 아줌마를  내버려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옆에 있다고 해도 뭔가 해줄 수도 없는 모모는 거리를 서성인다.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하고 관심을 돌리고 싶지만 마음 한구석에 늘 자리하고 있는 로자 아줌마를 떼어 낼 수 없다.

자기 앞에 놓인 생을 살아내야하는 이유가 로자 아줌마이기도 했을 것이다.

울지 않는 모모

누군가에게 아프다고 말해 본 적이 없는 모모,

그래서 감정을 나누는 것이 서툰 모모 그래서 늘 외로웠지만 외롭다는 감정조차 알지 못했던 모모가 마음에 들어왔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는 일은 달걀을 훔치고 따귀를 맞는 일이고 권총으로 은행을 털어서 주목을 받는것 이외를 생각할 수 없는 아이

그냥 아무도 몰라도 상관없다고 여기지만 그 속에서는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손을 잡아주고 괜찮다고 그동안 애썼다고 등을 쓸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아이였다,

누구앞에서도 울지 않고 누구에게 위로받는 것이 어색한 내가 거기 있었다.

나는 모모처럼 창녀의 버려진 자식도 아니었고 배고픔과 무관심에 익숙한 아이도 아니었는데

나는 늘 외롭고 쓸쓸하고 아득했다.

아이에게도 그런 감정이 스며들 수 있는 걸까?

지금 돌아보면 조숙했던 건지 영악했던건지 아니면 그저 어른 흉내를 내고 싶은 허당이었는지모르겠지만 늘 쓸쓸하고 아득한 감정이 있었다는 기억은 있다,

뭐가 힘드냐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무어라고 꼭 집어 말 할 수는 없는데  딱히 힘든 건 아닌데 아득하고 막막한 기분이었다,

그냥 앞이 뿌연거 같기도 하고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다는 기분도 있고 또 누구에게도 기대서는 안된다는  강박도 있었던 거같다.

울어서도 안되고 힘들다고 해서도 안된다는 것이 늘 가득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니고 그래야 한다고 말해준것도 아니지만 그랬다,

모모도 누가 시킨건 아니다. 상황이 그랬다고 할 수 있을거고 제이미도 누군가에게 들어서 설득을 당했던 것도 아니다. 소설속의 어떤 인물도 그냥 알게 된 것이다,

이제 징징거려서도 안되고 누군가에게 내 연한 속살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

그건 타인에게 나온 소리가 아니라 내 안속에서 나온 목소리였고  우리는 그 소리에 길들여졌고익숙해졌다,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이 어색했고 마음과는 다르게 냉정하기도 하고 매몰차기도 했을 모습에 스스로 익숙해지면서 많이 외로웠다.

나는 스스로 내 속에 깊은 우물을 지니고 있었다,

그 깊은 우물속에 돌을 던지면 절대 풍덩이는 소리는 나지 않는다, 끝을 알 수 없는 깊이다

그 속에 나는 모든 걸 넣어두었던 모양이다,

울고 싶은 마음 누군가에게 매달리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 화가나고 터져버리고 싶은 마음

날뛰며 기쁨을 마구 뿌리고 싶은 마음 사랑한다고 설레임을 전하고 싶은 마음마저 나는 모두 우물속에 넣어두였다,

나의 모든 마음은 우물속에 있고 나는 서늘하고 건조하게 서 있다.

내 감정은 깊은 우물속에 있어 그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질 않으니 나는 늘 외롭고 서늘하고 먹먹했던 것일까

 

그렇게 우물속에 봉인되었던 감정이 책과 함께 올라온다,

그 감정의 이름을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솔직하게 마주해야할 것이다.

자꾸 따지고 분석해서 지치지 말고 그냥 가만히 들여다 봐야 할거같다

 

책을 읽는 좋은 이유중 또 하나가 나를 알아간다는 것도 있다는 걸 세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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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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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무도 기억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였다.

아랍인 아프리카인 유태인등 어느 한쪽도 프랑스 부모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산다.

창녀와 그녀들의 아이들 이주민과 가난한 노동자들이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살고 있다

그 동네 한 구석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7층에 로자 아줌마와 모모가 살고 있었다,

유태인 아줌마와 아랍인 소년은 가족이다.

아니 남남이다. 그러나 가족이다.

 

내가 그렇게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은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과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이다,

 

그들이 서로 어깨를 부비고 서로 욕을 하고 미워하면서도 함께 살고 있는 것은 그렇게 자기를 바라봐주고 이름을 불러주고 손을 잡아주는 그 사람의 존재때문이다. 그가 있어서 내가 있다

그들은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간다,

어떤 즐거움도 희망도 남아 있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달걀을 훔쳐서 따귀를 맞는 행위로 존재를 증명받고 싶은 모모나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 창녀노릇을 하며 호텔을 드나들고 남자에게 돈을 모조리 털린 일로 기억하는 로자아줌마의 삶이 단순하지않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당신은 아마 도데체 왜 그런 삶을 살아가는거냐고 부끄럽지 않으냐고 묻고 싶겠지만

적어도 자기 앞에 놓인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사람들에게는 부끄러움이 있을 이유가 없다,

아무 보잘 것없는 사람들끼리 사랑해야하고 살아내야하는 삶

그것으로 가치있다고 믿으려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묻고 또 묻지는 말아야 한다,

 

순간 나는 울기 시작했다. 나 역시 아무일도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공공연하게 그런 말을 듣기는 처음이었다.    p 34

 

아줌마 혼자 배를 곪아가며 빠듯하게 지낸다해도 하루 십오프랑을 필요했다. 그녀에게 덜 먹어려면 살을 빼는 수 밖에 없다고 아주 솔직하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세상에 혼자 뿐인 노친네에게 그건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아줌마에겐 아무도 없는 만큼 자기 살이라도 붘어 있어야 했다. 주변에 아무도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뚱보가 된다.

 

아줌마도 뚱뚱한 몸매와 하루에도 여러번 터져나오는 욕지거리로 자기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런 자기를 누군가 봐주고 사랑해주길  바란다,

모모역시 그렇다  아닌 척해도 사랑받고 관심받고 싶으나 방법을 알지 못할 뿐이다,

관심을 받은 경험이 꾸중이나 혼난 기억밖에 없는 아이는 매질이나 욕지꺼리조차 관심으로 생각한다. 암사자를 상상하고 땨귀를 기다리는 일들은 모모가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 본 말 중에서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두렵고 무섭다. 가난이 두렵고  질병이 두렵고 잊혀지는 것이 두렵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 두렵고 곧 죽는다는 것이 두렵고 앞으로 살아가야한다는 것도  두렵다,.

두려움에 떠는 로자 아줌마를 모모는 끝까지 지켜준다,

지하 은신처에서 로자아줌마에게 향수를 뿌리고 화장을 시켜주며 지켜낸다, 냄새로 사람들이 참지못하도 찾아낼때까지  지켜준다,

미운정이 쌓이고 그리움이 쌓이고 사랑이 된다.

그 사랑은 허술하지만 강하다 살아가는 힘이기도 하다.

 

모모는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모모의 성장이 아닌 읽는 이의 성장소설이다,

어느 한 시절이 지날때는 모른다, 그러나 한 참 지내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그 일로 인해 나는 다시 그 이전으로 갈 수 없음을 아는 순간 내가 성장했음을 알게 된다. 나는 다시 예전으로 갈 수 없고 그 순간이 이제 아프지도 않고 그리워질 때 우리는 나이를 먹었다는 걸 알게 된다. 더 이상 천진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자유를 가지지 못하고 삶의 우울질을 앓게 되고 알게 되고  세상의 모든 문제에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 우리는 어른이 된다.

모모도 그렇게  14살에 어른이 되었다,

모모를 읽으며 꾸역꾸역 살아내야하는 아이의 삶을 읽으며 나도 조금 어른이 되었다,

원치 않는 삶이지만 살아내야 하지 않겠냐고 나보다 더 어른스러운 표정을 한 모모가 나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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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사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9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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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1. 미나토 가나에는 여러시점에서 보여지는 사건을 서술하는데는 일가견이 있다.

       <고백>부터 이어지는 그녀의 작품은 거의가 여러 사람의 시선에서 사건을 보고 시간이

      해체되고 다시 연결된다.

     그녀가 시간순대로 이어진 사건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쓴다면?

    성급한 결론일지모르나 잘 쓰지 못할 거 같다,

소감2 늘 드라마화 되는 것은 글이 영상적이어서일까

        아니면 그녀가 드라마부터 시작한 작가라서 일까

        혹은 늘 드라마를 염두에 두고 써서일까?

       꽤 시각적이고 드라마같기는 하다

소감3  이번엔 자극적이지 않다. 잔잔하고 담백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중간중간 어긋나고 삐걱거린다.

         여인 삼대의 이야기 그 사이에 이어진 꽃사슬이라고 이름지어지는 운명

         한편의 일본드라마같다.

 

몰입도 있게 보고 훅~ 읽었지만 밋밋하긴 하다.

과정도 결론도 큰 흐름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뭐 결국은 잘될 놈은 뒤로 자빠져도 잘 되고 못될 놈은 꽃밭에 구르다가도 돌부리에 머리가 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 훅 하고 눈물이 터질 뻔 했다.

분명히 터질 뻔 했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르고 내 엄마가 떠오르고 그리고 내가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하는지가 마구마구 뒤섞이면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이럴만한 건 아닌데

미유키의 헌신적이고 절절한 사랑도

사쓰키의 쓸쓸하고 단단한 태도도

리카의  밝고 단순하지만 단호한 태도도 다 마음에 든다.

읽으면서 나는  미유키는 힘들고 사쓰키같은 엄마가 되고 싶고 내 딸도 사쓰키같은 딸이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본다,

지고지순한 사랑이나 밝고 당돌한 태도보다는 쓸쓸하지만 단단하고 곧은 마음이 마음에 더 든다고 할까 내 이상향이라고 할까

내가 어떤 자녀를 갖고 싶은가는 내가 어떤 엄마이며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가에 달린거라는

진부한 충고가 역시 진리라는걸 다시 생각케 한다,

어떤 인연의 연결고리나  <고백>을 뛰어넘고 싶다는 작가의 바램이나 다양한 꽃들 보다

나는 엄마와 딸의 관계가 더 관심이 간다

나는 어떤 엄마를 가졌는가

내 딸들은 어떤 엄마를 가질 것인가

결국 나를 보게 된다,

드라마에서 소설에서 내가 부러워하는 엄마의 유형은 그렇다,

강한 엄마

언제나 씩식하고 밝은 엄마

설령 그것이 자기에게만 향하는 이기심이라 하더라도  엄마가 강하고 단단해서 적어도 자식이 나중에 걱정하고 죄스러워하지 않을 힘을 가진 엄마였다,

돈이 많고 권력을 가진 엄마가 아니라 스스로 단단하게 서 있는 엄마는 나중에 부담스럽지 않고 언제나 지랄을 떨고 가서 짜증을 내도 괜찮다는 믿음을 주는 엄마다

나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내 엄마를 생각하면  단단하고 강하다고 믿었던 엄마가 나중에 작고 연약하고 쉽게 부서러질 수 있다는 건 무엇보다 큰 배신감이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약하고 보잘것 없는 없던 엄마라면 기대치라도 낮았을 텐데 강하다고 믿었고 그래서 조금 무심해도 괜찮다고 믿은 엄마가 무너지는 건  충격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사쓰키에게 마음이 갔었나 보다.

젊은 사쓰키도 단단하지만 나중에 리카의 기억에 간간히 보여지는 엄마 사쓰키도 무심한듯 하면서 강한 사람이었다. 리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연하고 쓰러질 듯한  마유키의 강해지는 모습을 보며 단단한 엄마의 지지를 받은 사쓰키는 그 힘을 다시 리카에게 전해준다.

 

사실 세대를 통해 이어지는 인연이라든가  권선징악이라든가 꽃은 별 관심이 없었다. 다소 막장드라마적인 요소도 심하고 억지도 있었다. 꽃 부분은 좋았지만 내가 워낙 식물에 문외한이라 아~ 좋구나 이상은 아니었으니... 그저 딸에서 딸로 전수되는 그 새대 전수만 눈에 들어왔다,

내 어머니를 생각하며 내 딸들을 생각하며 나를 생각할 뿐이다,

 

책읽고 쓰는 리뷰가 기승전내푸념으로 끝나는 건 정말 싫지만

그렇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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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리언이 말했다.

" 내가 원하는 건 둘 다야, 난 다른 시간의 다른 사람을 원해............나는 가운데 끼여서 매일    

  매일 짓눌리고 있어 상처 입을 사람은 바로 나야"

스튜어트가 말했다.

" 남편은 항상 제일 먼저 의심하지만 제일 늦게 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처 입을 사람은 바로 나다"

올리버도 말했다.

" 왜 항상 내가 비난을 받아야 하지? 애정 파괴자 올리 결혼 파괴자 올리...............

  나는 빌어먹을 창문에 머리를 박아대는 빌어먹을 나방이다. 쳐 쳐 세게 쳐  상처를 입을

  사람은 바로 나다"

 

스튜어트와 올리버는 오랜 친구다. 고지식하고 답답하고 매력없는 스튜어트와 자유분방하고 매력적이지만  무책임하기도한 올리버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그리고 자기가 상대에 비해 조금은 낫지 않을까하는 속내를 숨기거나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사이

어느날 스튜어트가 질리언을 만나 결혼하기로 하자 올리버는 다소놀란다, 어찌하여 스튜어트에게 이런 행운이.... 그리고 결혼식 날 올리버는 질리언에게 반해버리고 이후 노골적으로 때때로는 은근하게 구애를 하고 우여곡절을 지나고 마침내 질리언은 스튜어트와 헤어시지고 올리버와 다시 결혼한다.. 그리고...............

 

세사람과 간혹 등장하는 질리언의 엄마 그리고 몇몇 주변 인물이 돌아가며 자기 입장을 이야기하며 이야기는 진행된다,.세 사람의 발언이 번갈아 나오며 이야기는 진행되는데 같은 상황이 제각각의 입장에 따라 달리 보인다. 스튜어트는 감정에 둔하고 그저 고지식하게 사실을 나열할 뿐이고 올리버는 화려한 언변으로 감정과잉이고 질리언는 자기의 입장만 이야기한다, 누구나 자기의 틀 안에서 상황을 보고 사건을 파악하고 이야기 할 뿐이다,

이야기를 가만  보자니 서로는 서로에게 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했다고 착각하고 있다. 상대가 내가 아는 것을 알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어버리거나 혹은 상대는 정말 나를 모른다고 오해하거나 할 뿐이다, 독자? 혹은 누군가에게 자기를 하소연하고 방어할 시간은 내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책을 읽다보면 서로 이야기를 하고 논쟁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해야할 말은 하지 않으면서 서로서로 자기 말 좀 들어달라고 한다,

그래도 이야기는 진행되고 사건은 일어나서 마무리가 되고 끝나지만 왠지 개운하지 않다.

결국은 귀먹어리개가 차에 치여 죽어버린 것처럼 들리지 않고 듣지 않은 사람들의 비극이 자꾸 걱정될 뿐이다,

 

사실 누구나 그렇다.

내 입장에서 생각할 수 밖에 없고 내 생각과 감정이 우선시 될 수 밖에 없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다,.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말하지 않았음에도 서로서로 대화를 하고 이해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서로가 나는 충분히 표현했고 정당하며 때떄로 가장 아픈 건 나라고 여기고 자기의 상처만 들여다 보고 동동거린다,

나도 그렇다.

남편과 이야기하다가 혹은 아이들과 이야기 하다가 놀란다,

아니 왜이렇게 말귀를 못알아듣지? 같은 한국말을 하는데 이렇게 이해가 안되나?

그저 상대방을 나무라기에 급급하다,

사람은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제각각 자기방식의 표현을 한다,

급한 성격의 나는 모든 것을 생략하고 "이거" "그거" 하면 딱딱 알아듣기를 바란다,

성격이 느긋한 아이는 천천히 모든 것을 이야기하다가 정작 해야할 말을 빠뜨리고 이야기를 마치기도 한다. 남편은 자기가 듣고 싶은대로 듣고 받아들인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니 같은 언어를 쓰면서 우리는 제각각 이야기를 하면서도 제발 내 말을 들어달라고  아우성칠 뿐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안 들을 수가 있지?

서로를 나무란다,

초등 국어가 "듣. 말.쓰"

그러니까 듣고 말하고 쓰기 순서이다,

일단 들어라,. 그리고 말해라... 그리고 난 후 써라

여기서 우리는 듣기도 말하기도 제대로 안된 셈이다,

서로 자기 말을 하며 상대방의 언어를 내 언어로 통역해서 오역한다,

내 말이 오역되고 오해되는 건 전혀 예상할 수없다,

세로운 바벨탑이 여기저기 세워진다,

다시 우리는 듣기를 배우고 말하기를 배우고 나아가 공감과 경청이라는 새로운 풍조를 배워야 한다, 어렵다,

 

키득키득이며 세사람의  막장 드라마같은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괜히 뜨끔해진다,

질리언에 스튜어트에 그리고 올리버에 나와 내가 아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바꾸어도 상관없다,

뭐 내가 질리언처럼 매력적이지 않아 두 남자의 구애를 받은 상황은 안 생기겠지만 두 타인 사이에서 오해받고 이해시키지 못해 동동거리며 결국 나 자신의 연민에 빠지드는 일은 종종 있어왔으니까,...

그래서 몹시 외로웠었나보다.

 

 

즐리언 반스가 정말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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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2015-05-07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얼마전에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재밌게 읽었는데,
줄리언 반스 매력적인 작가인 것 같아요 (^o^)b

푸른희망 2015-05-07 16:43   좋아요 1 | URL
저도 ˝예감은~˝을 읽고 줄리언 반스의 매력에 빠졌지요. 이 책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