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이야기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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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이탈리아는 어떤 나라였을까

아니면 그녀의 삶은 어떠했을까

<로마 이야기>가 첫 소설이었다면 좀 더 이해하기 쉬웠을까

자신의 경험은 주로 첫작품에 많이 투영되는 법이니까

낯선 땅에 뿌리내리는 일

옮겨심겨지는 일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늘 그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못하고 겉돈다는 느낌 충분히 시간을 보냈음에도

늘 나를 설명해야하고 인정받기 위해 배는 더 노력해야하는 일들

그냥 없는 것처럼 여겨지거나 안타깝게 바라보거나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시선들을 견디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드러내놓고 무시하고 조롱하고 차별하는 것도 힘들겠지만 우아하고 고상하게 아닌 척 하지만 하나도 감춰지지 않은 상황들을 접하면 사람은 점점 작아지고 오그라 든다.

이번 소설들은 모두 너무 드러나게 이방인이며 타인들이다.

함께 섞여 들어가지 못한다.

흰죽에 잘못 들어간 통후추처럼 냄비뚜껑을 여는 순간 딱 눈에 띄더니

한입 깨무는 순간 알싸하게 퍼지는 그 맛에 아차 싶은 마음들 뿐이다.

멀리 떨어진 시골 변두리 바닷가의 소녀나 많이 배운 중년의 교수이거나

나이든 주인을 시중드는 소녀이거나 누구였든 늘 혼자 겉돌고 있다.

화를 낼 수도 없고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그냥 그게 자연스럽게 몸에 밴 그냥 자연스러움이 되어 버렸다는 게 더 슬프다? 기보다 두렵다.

누구나 어디서든 타인이며 낯선 사람이다.

내 땅에서도 때떄로 낯선 이방인일 때가 있다.

같은 동창이 아니어서 같은 지역출신이 아니어서 같은 수준이 아니어서 같은 종교가 아니어서

나도 너랑 함께 엮이기 싫어 라고 배짱좋게 큰소리치지만

마음 한구석이 싸해지면서 아릿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가능한 어디서든 튀어나오고 싶지 않다. 잘나서이든 못나서이든 그냥 쉽게 섞여서 스며들어서 그냥 그렇게 묻어지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한알의 후추처럼 도드라지고 끼어들 틈이 없다.

 

반대로 나는 우리 무리에 끼워주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는 우리가 아니다.

두렵기도 하고 함께 하면서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번거롭기도 하고 굳이 그가 아니어도 나는 외롭지 않고 슬프지도 않다.

 

이탈리에 가기 전부터였을까?

혼자 상상을 한다.

어쩌면 미국에서도 이방인이었으므로 어딜 가든 이방인이라면 차라리 아주 낯선 곳으로 가자는 마음이었을까

이미 젖어버렸다면 비를 맞든 바닷속을 뛰어들든 무슨 상관이랴는 마음처럼?
누군가가 다치거나 상처받는 이야기들

상처받지만 이미 무뎌져서 모르고 넘어가거나 모른척 하는 이야기들

함께 어울리면서 웃고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헤어질 때 비로소 안도하는 관계들

다시 오고싶다고 너무 좋았다고 말을 하지만 떠나는 순가나 잊을테고 두 번 다시 발걸음을 하지 않을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너무 피곤하고 마모되는 일들이다.

 

조금 더 읽어도 계속 힘들기만 할까

적어도 저지대에서는 다른 소설집에서는 외롭고 낯설고 두렵지만 뭔가 강단이 있었다면

이번 소설집에서는 그냥 지치고 초라하고 노골적으로 무시를 받는다.

 

이제 그렇게 직설적으로 표현해도 될만큼 강해졌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안도해도 되는 걸까

가슴속에 쌓아두였던 앙금을 이제는 거침없이 드러내겠다는 마음이라고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여전히 나는 이방인이라는 마음이 깊어진 걸까

이야기속 인물들은 말이 없다.

말을 하지 않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인식한다.

누구도 그들이 말을 하지 않음을 지금 어떤 마음인지 관심이 없다.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 않다.

아니 지금 내 앞의 그 사람이 마음이 있고 감정이 있고 나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불편하고 함꼐 하고 싶지 않고 두렵고 내 영역을 넘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세상은 함꼐 살아야 한다는 것이 글로는 무척이나 쉽지만 쉽지 않다.

함께에는 늘 나와 같은 존재만 포함된다,

그래서 내 세상을 벗어나기 두렵고 싫다.

그냥 이렇게 생긴대로 살다 갈란다... 라는 마음은 포기가 아니고 두려움이다.

 

외딴 바닷가 휴가철이면 휴가를 즐기기 위해 가족들이 찾아오는 외딴 집이 있다.

그 집을 관리하는 아버지의 딸은 엄마대신 손님을 맞이하고 집안을 치우고 사람들을 돕는다

손님은 그 소녀에게 친절하지만 기억하지 않는다.

뭔가가 필요할 때만 보이는 소녀다.

자기들끼리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은 그 소녀가 가까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도시에서 폭력 피해를 당하고 변두리로 내려와 사람을 만날 필요가 없는 일자리를 찾은 아버지를 도우면서 소녀는 일상에 적응하고 있다.

돌아가면 다시 오지 않을 그리고 여기를 기억하지도 않을 가족들을 맞이하고 배웅하면서

그들이 대상처럼 바라보고 기록한 글들을 발견하지만 아무렇지 않다

그런 일들이 너무 익숙하고 빈번해보인다.

 

두 여인이 오랜만에 만났다. 오랜 친구였다.

한 친구는 그 도시에 오래 살았고 얼마 전 부친상을 당했다. 다른 친구는 교수이고 이 도시를 사랑하고 이 도시에서 가르친다. 두 친구는 관광객들이 모르는 그 지역 사람들만 아는 멋진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한다.

식당 사람들은 묘하게 두 사람을 다르게 대한다.

흑갈색 머리를 가진 숙녀라든가 아름다운 분이라는 호칭

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묘하다. 굳이 그렇게 묘사를 하며 부르는 이유는 뭘ᄁᆞ

거기까지는 모른 척 할 수 있다.

화장실을 가는데 어린 아이가 길을 막고 비켜주지 않는다

계산을 하러 갔더니 아이가 노골적으로 말한다. 이 아줌마는 예쁜데 이 아줌마는 예쁘지 않다. 못생겼다. 모두 아이의 말이니 모른 척 하라고 하지만 누구도 아이를 야단치거나 사과하게 하지 않는다. 화를 내면 더 이상해진다.

별 거 아닌데 예민하게 군다고 하거나 아이 말에 뭘 그렇게 발끈하냐고 하거나 ...

뭐 틀린 말도 아니라고 한다면 설령 그 말들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상처를 받고 불쾌하고 두렵기까지 한 상황

그러나 그 지역을 너무 잘 아는 친구는 아무렇지 않다. 들어도 듣지 않는다;

사랑했던 좋아했던 도시가 두려워진다.

이건 아예 도시괴담처럼 느껴진다.

 

친한 지인의 파티에서 낯설고 매력적인 여자를 만난다. 외국인이라 말이 서툴러서 표현이 직설적이다. 우연히 아내의 솔을 가지러 간 남자는 그 여자와 짧게 이야기를 나눈다.

별 다른 의미가 없는 그냥 낮에 여자가 겪었던 놀라움과 두려움을 직설적으로 솔직하게 낯선 자기에게 말을 하는 것에 놀라고 인상이 깊다.

그 순간을 남자는 착각을 한다. 우리 둘만의 은밀한 시간.....

다시 그 지인이 파티를 열고 남자는 그 여자를 찾지만 그 여자는 남편과 있고 이제 제법 말이 능숙하다.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닌 더 어정쩡한 관계

그리고 계속되는 우연한 만남에서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여자에게 키스를 한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다.

모든 관계들이 뚝뚝 단절되어버린다.

어디서든 남자들의 착각은 상대를 당혹하게 하고 동의 없는 신체접촉까지 이어진다.

자신의 생각을 확신하기 전에 적어도 세 번은 의심해보는 것이 안전할텐데..

남자들은 그걸 모른다.

 

낯선 도시에 이주해온 가족이 시 정책에 따라 밝은 집으로 이사한다.

작지만 아이를 키우고 화분을 키우고 좀 더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집

그러나 이웃들이 그들을 경계한다.

나가기를 원하고 나가라고 하고 시위를 한다.

그들은 머지 않아 마을이 전부 그 가족같은 사람들로 가득 찰거라고 두려워한다.

가족들은 이웃의 시위가 눈빛이 두렵다.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우고 교육할 수 없다.

타인은 늘 두렵다.

어쩌면 누구든 아이를 키우고 가족을 부양하고 좀 더 행복해지고 싶고 안전하고 싶고 이웃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일텐데.. 그 안전과 행복과 교류들이 다르게 해석된다.

내가 생각하는 그 의미들이 완전하려면 타인과 나 사이에 경계가 필요한 모양이다.

 

동네에 있는 계단을 두고 그 계단을 이용하는 여러 사람의 짧은 생각들 행동들이다.

운치있고 오래된 계단 저녁이면 원형극장처럼 사람들이 모여들기도 하고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 때로 젊은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조금 음침하고 다가가기 두렵게 느껴지기도 하는 곳

외국에 아이를 두고 이 나라로 와서 다른 아이들을 돌보는 어머니는 계단에서 늘 두고온 아이들을 생각한다. 계단참에 앉은 젊은이들이 자기 아들또래라 더 그렇다. 그 어머니는 낯선 외국인의 친절과 무심하게 자기 물건을 전해주는 젊은이들에게 친근함과 동시에 낯선 느낌을 받는다.

동네에 오래 살고 있는 미망인은 저녁마다 시끄러운 계단이 싫다. 예전에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유리병이 뒹굴고 깨지고.. 이러다 문제가 생기지 싶다.

낯선 사람들 이방인들이 자꾸 눈에 띄는게 싫고 두렵다.

그 마음에 경찰을 가장한 낯선이들을 믿어버리고 문을 열어주게 된다.

이제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외국인은 큰 수술을 앞두고 계단을 뛰어간다. 수술 후 다시 계단을 걷거나 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이게 마지막을지 모른다는 생각들

낯선 곳에서 정확한 의사전달이 되지 않아 그냥 막연하게 긍정해야하는 상황에서 전신마취수술이라...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게다가 정신이 들면 신체의 일부는 떼어져 있는 수술이다.

우연히 만난 친구는 말한다. 전신마취는 별게 아니다 순간 잠들고 다시 깨어나면 모든 것이 끝나있는 것 그냥 좋은 걸 생각해.. 뭐가 좋은 걸까

지금 이순간 햇살 바람 공기... 그것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나이든 작가는 글을 쓰고 방산책을 하다가 젊은 이들에게 시계와 돈을 강도당한다.

익숙한 계단에서 좀 더 오르려고 하다가...

 

집주인의 택배를 받으러 우체국에 간 소녀는 택배수취 기간이 지나 반송되었다는 말을 듣고 돌아가다가 동네 소년들이 쏜 총에 기절한다. 그리고 그렇게 장난을 친 소년들은 해수욕을 가고 소녀는 총 맞은 것처럼 가슴 한 쪽이 아프다.

장난이라는 건 상대적인 건데...

 

아마 아이를 잃은 부부인 듯하다.

아내가 살던 도시로 휴양을 와서 행렬을 구경하려고 하지만 아내의 마음은 이내 변한다.

어쩌면 가족끼리 자매끼리 아이를 데리고 나온 무심한 구경꾼들을 계속 보고 행렬을 기다릴 수 없는 마음이 이해가 간다. 집에 돌아와서 잠겨진 방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는 아내 그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이 안타깝다.

 

아이를 다 키우고 우연히 학교에서 아이돌봄 일을 얻게 된 여자는

연필로 아이 글씨체로 씌여진 악랄한 쪽지를 받는다.

보기 싫다. 가라 너희 나라로 가라...

결국 그 쪽지를 잘게 찢어서 먹어버린다.

그렇게 상처는 몸에 오래 남게 된다.

 

친구의 남자친구에게 고백을 받고 마음이 설렜던 기억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은 마음

부모가 원하는 공부가 아닌 내가 끌리는 공부를 하고 세상을 향해 로마로 떠난 여자

거기서 나이 많은 의사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엄마처럼 외국의 주부로 살고 있지만

갈망이 결정이 된다

그 여자는 무엇을 갈망하고 어떤 결정을 했을까

무엇보다

실수 한 번 하지 않고 죽는 것이 두려웠다그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실수라는 것들

순간의 선택들이 남겨 놓은 흔적들 이후 받아들여야 하는 경험들

선택과 경험은 옳고 그른 것이 없다.

누군가를 해하는 것이 아닌 이상은...

그냥 그 경험과 선택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가가 늘 중요하다.

문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바라보고 풀어나가는가

그것이 삶의 질을 결정하고

지금 나의 행복을 결정한다.

순간의 갈망에 충실했고 그때의 결정에 순순히 따랐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그녀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낯선 땅

이방인으로 옮겨심기 된 삶의 이야기를 주로 쓰는 작가가

이번에는 작정을 하고 이방인으로 사른 삶의 두려움 불안을 이야기 한다.

결국 차별과 폭력과 혐오가 따라오지 않을 수 없다.

점점 이방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누구나 낯선 땅에서는 이방인이다.

이제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땅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면 누구나 어디서든 이방인 일 수 밖에 없다.

모른 사람에게 따라붇는 소문들과 경계들이 늘 구분을 만든다.

미국에서 교육받은 뱅골게 인도인인 작가는 미국에서든 로마에서든 눈에 띌 수 밖에 없겠다

그리고 그 눈에 띄는 외모에는 늘 소문과 억측들이 붙는다.

그리고 모른 언어라는 것이 또 두렵다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나에 대해 무슨 말들이 오고가는 것은 아닌지 늘 경계하고 바짝 긴장해야 한다.

긴장이 연속인 삶이 이방인의 삶이다.

노마드 인간이란... 멋있게 보이지만 결국 내 쭈리를 내가 잘 정리해서 가지고 다니는 이방인 일 뿐이다.

 

이제 줌파 라히리를 그만 읽어야 하나 고민한다.

타인과 불안에 대해 그리고 이전 세대가 원하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고집스럽고 은밀한 결심들은 충분히 보았다 싶은데

그럼에도 마지막 작품 때문에 다시 마음이 노골노골해진다.

흐르는대로 사는 것처럼 보여도 내 삶을 내가 방향을 바꿔가며 살고 있고

그 길을 내가 결정하는 이야기

그래서 후회도 미련도 없지만 자부심이나 뿌듯함도 없이 그냥 슴슴한 것...

엿같지만 너무 아름답다는 로마로 이제 곧 나도 간다.

 

아이도 이런 이방인 낯섬에 대해 충분히 경험하고 있을까

안타까우면서도 멋진 경험이 되길 바라며...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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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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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의 이야기들을 읽고 나면 나는 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은지 명확하지도 않으면서 뭔가 내 이야기를 나도 남겨야 하지않나 하는 조급증이 든다.

 

짧은 연필을 손에 꼭 쥐고 중지에 굳은 살이 박힐만큼 손가락에 단단히 붙이고 심 끝에 침을 발라가며 꾹꾹 눌러쓴 글자들을 읽는 기분이다.

한글자도 놓쳐서는 안될 것 같은 강박이 들고 하나라도 놓쳤다가는 전체를 놓칠 수도 있겠다는 긴장감이 든다.

그리고 한편이 끝날 때 마다 몹시 힘들다.

이미 고백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언젠가 어느 순간 느꼈지만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언어를 찾지 못했던 그 마음이 그때 그 막막하고 화가 나기도 했을 거고 또 부끄럽고 어딘가 도망가고 싶으면서도 절대 가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내가 내 다리를 붙잡고 있는 그런 막막한 마음들을 작가는 기가 막히게 표현하고 있다.

다른 경험들이 같은 감정과 같은 고통으로 모아질 때가 있다.

당신의 경험과 나의 경험은 너무 다르고 그 상황조차 관계없지만 서로가 같은 기분을 느끼는 순간을 경험한다.

작중 인물의 경험은 나와 겹치는 부분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그 찰라의 감정은 묘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렇게 꾹꾹 눌러 쓴 6편의 이야기를 읽고 짧게 몸살을 앓는다.

긴 숨을 이제야 제대로 인식하고 내뱉는다.

읽는 동안 내가 숨을 쉬지 않았다는 것 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와 일년은 비슷한 결을 가진다.

세상에서 닮고 싶은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금의 선택이 맞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지 나도 모를 때

누군가 내 앞에서 길을 만든 이가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그런 누군가를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또 그만큼 실망하고 미워할 수 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에게 실망하고 나를 안쓰럽게 보는 그에게 기대고 싶다.

나를 따르는 누군가가 나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적어도 어른인 척 굴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하고 애쓰 모른 척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 함께 길을 걸어간다는 건 감사하다.

누군가 내 앞에서 빛을 밝히고 있고 누군가 내 뒤에서 내 발밑을 비추면서 함께 온다는 경험은 사실 연대나 공동체... 라는 단어와 다른 뭔가 조금 더 사적이지만 좀 더 끈끈하고 좀 더 안심이 되는 상황이다.

 

서운하다 하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으니까 넌 내 뜻대로 반응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 옅고 미움보다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다.”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아프냐고 물어보지 않아서였을까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도 아프냐고 묻지 못한 것이었을까

 

저는 다희씨를 좋아하면서 다른 사람도 좋아하게 됐어요. 그건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예요

 

누군가에게 기대한다는 건 늘 스스로 경계하는 일이면서도 그래도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상대에게 많이 말하고 많이 기대하면 많이 바라게 될 걸 알면서도 더 가고 싶다.

혼자만의 빛을 새어나가게 하고 서로의 눈이 부시게 하고 때로 상처를 입고 입히겠지만 서로 모습과 마음을 나누는 일을 멈추고 싶지 않음.... 그런 마음이 나에게도 있었다.

 

2,

글쓰는 일이 쉬웠다면 타고난 재주가 있어 공들이지 않고도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당신은 쉽게 활기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떄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일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글쓰기로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을 수 있다는 행복 당신은 그걸 알기 전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뭐든 힘든 건 사람 때문이다. 일이 힘든 건 없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시간이 해결해준다.

능숙하지 못하더라도 흉내는 낼 수 있다.

ㅁ정적 교류에 무감한 사람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맞지만 견딜 수 없는 부분은 아니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는 않아도 불편하거나 불쾌감은 없었다.

일에서 보람이나 어떤 숭고한 의미를 찾는데는 소질이 없다. 그것 때문에 일을 계속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것 때문에 현재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일이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는 해야지 모두는 아니어도 누군가 단 한사람 혹은 두사람에게는 닿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바램으로 하루하루 이어진다.

결국은 늘 내가 문제였다.

내가 정직하게 타인을 아니 나를 속이지 않고 하고 있는지 그냥 일상이니까 습관처럼 무심하게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들이 힘이 빠지게 한다.

좋아하는데 지치게 되는 내 마음에 스스로 실망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이렇게 지치고 피하고 싶은 이 마음이 정말 좋아하는 마음이 맞았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못해서 힘든 게 아닌다. 그냥 관성처럼 되어간다는 기분

뭔가 무모하게 부질없이 힘만 든다는 생각이 지치게 만든다.

스스로 의미가 없을까봐 매너리즘에 빠질까봐 매일매일이 두려웠다.

계속 나를 의심하고 나를 다그치는 일에 지친다.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내가 그 의미에 눌리거나 도망치고 싶어지는 기분 동시에 그런 고민을 하는 나를 비웃고 싶은 마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기억해야하는 일이 싫은 건 아니지만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지 자만하고 있는 건 아닌지..

조급해져버렸지만... 결국 나는 긴장하고 준비하는 그 마음을 놓쳐버린걸까

그런 생각을 읽으며 했었드랬다.

 

3. 언니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보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 샌경 썼던 것 같네 내가 뭘 좋앟는지도 잘 모르면서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썼지.

어린 시절부터 오랫도록 나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느끼며 자라서인지 나에게는 내가 결코 타인에게 호감을 살 수 없는 사람 멸시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거든

그럴수록 나는 남들에게 더 많이 맞춰줬고 남들이 나를 좋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매번 고민했어.

그렇게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남들이 하자는대로 끌려다니고 남들의 욕구를 총족시키느라 나의 욕구를 무시했지 그때 내개 느꼈던 가장 큰 두려움은 다른 사람이 내게 실망하는 거였어. 나는 절대로 절대로 누군가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어

 

있는 일을 없는 일로 두는 것 모른 척하는 것

그게 우리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오래된 습관이었어 그건 서로가 서로에게 결정적으로 힘이 되어 줄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방식이기도 하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거야 다 괜찮다고 별 일 아니라고 들쑤셔 봤자 문제만 더 커질 뿐이라고

 

나의 보호자로 자처하는 일

그건 책임감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강하고 독립적인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는 방법이기도 했을거야. 그게 언니 자신이 믿는 스스ㅗ의 모습이었고 언니를 언니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을 거야

 

누가 타인의 삶을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을까

누가 타인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평가나 판단이 맞을 수도 있지만 내가 아는 건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아니라 내가 바라보고 내게 보이고 내가 보려하는 그의 부분일 뿐이다.

우리는 누구나 타인의 부분을 보고 안다고 믿는다.

동시에 울는 우리의 부분을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면서 그게 나라고 말한다.

그 사람이 지옥으로 걸어가고 있음을 알아도 말릴 수 없다.

바짓가랑이를 잡고 당기고 소리지르지만 그 다음 그 걸음을 멈춘 그 사람을 내가 책임 질 수 없다. 역시 걸음을 멈춘 그도 그의 삶을 다시 살아 가야 한다.

그래서 비겁하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각자 가지가 결정하고 선택하는 거라고 우아하게 회패한 적이 많았다.

나는 힘이 없어서 세상이 부조리해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냥 남을 판단하고 평가하거나 나 자신을 변명하고 이유를 대는 것 그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냥 내가 하면 되는 거였다.

인정해버리고 솔직하게 시인하고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이 또 있지 않을까 궁리해보고 때로는 우기기도 하고 읍소하면서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내가 한 일을 책임지는 것 그거면 충분했다.

누군가를 탓하는 나도 참 구질구질했고 그 사람의 선택이예요 라며 단정하는 나도 참 혐오스러웠는데 꼭 그게 전부는 아니더라.

 

4. 이모 파종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은

 

돌봄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은 결국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아야 하고 누군가 역시 나에게 기대어 살아간다.

내가 누군가에게 기대었던 그 시간들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누군게 기꺼이 내게 어깨를 내어 주었음에 감사해야할 뿐이다.

그렇게 기대어 살았던 시간들이 계속되면 호의가 호구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마음으로 내가 이만큼 여유를 되찾았구나 생각하는 쪽이 더 많을 것이다.

오빠의 무조건인 사랑이 나를 만들었고 나 역시 내 딸에게 무조건 적인 사랑을 주면 된다.

그냥 받을 생각없는 사랑과 관심들 .그리고 적당한 거리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게 하고 울고 싶으면 울게 하고 지치면 쉬게하거 끝없이 자게 하고 욕하고 싶으면 그 욕을 내가 대신 들어주면서 그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살펴주는 일

그런 것들이 돌봄이지 않을까

그렇게 돌보다가 꽃이 피고 열매맺고 씨앗을 품고 멀리멀리 떠나가게 하는 일

그리고 내가 힘빠지고 지칠 때 또다시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는 일들

 

누군가에게 폐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마음들이 본인도 힘들지만 상대를 몹시 외롭게 하기도 한다.

오빠를 외롭게 했을지도 모를 화자는 다시 딸을 외롭게 할 뻔 했고

이모는 사랑하는 조카를 가장 외롭게 하기도 했다.

사랑하니까 나랑 가까이 있으면 내 액운을 다 닮아버릴까봐 억지로 정을 떼기도 하고

나는 괜찮다고 너만 걱정하라는 대책없는 qpvaeh 있따.

 

받지 않은 사랑에 목말라하고 받은 사랑은 아무렇ㅈ 않게 팽개치기도 하는 건 상대의 마음을 당연한거라고 ,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고귀하고 완전하게 타인에게 마음이 닿는 것만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면 세상에 사랑이 존재하기는 할까

일상의 종종거림가 안달과 안타까움이 그냥 밥 한주걱 더 올려주는 무심함이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다르지 않을 내일을 위해 늘 종종거리는 그 마음이

더 나아지지 않아도 괜찮지만 더 나빠지지만 않으려고 그들의 그 애처러운 악착스러움이 그 마음에 그 삶에 나를 위한 마음이 섞여있음이 그게 사랑이었다.

모든 일상의 지리멸렬한 풍경 역시 사랑이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 사랑의 대상이다.

나는 지금 내 방식으로 누군가를 생각하고 사랑하고 당신 역시 그럴 것이다.

설령 그 사랑이 상대에게 닿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는 여기서 일상처럼 그 사랑을 쏘아보내고 있다. 가장 가까운 그 사람에게

(가족이 가족을 가장 모른다. 사실)

쎄상은 온통 뿌옇게 보였다.

누구도 그녀에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처음으로 막연함을 느꼈다.

막연한 두려움 막연한 슬픔 막연한 외로움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그 사간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연락이 되지 않은 채 이십분을 늦은 친구에게, 내가 조금 있다 연락할게 하고 다시 전화하는 것을 잊은 애인에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깊이 상처받았다. 기약없이 기다리는 일은 꼭 버려지는 일 같아서였다. 눈물이 났지만 그 마음을 누구에게도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고 생각해서 그저 참았다.

 

네가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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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장강명 지음 / 유유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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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삶을 살고 싶었다.

읽고 싶을 때 마음껏 읽을 수 있고  언제든 쓸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부끄럽지만 그 속에는 그 삶이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부유한 백수 정도가 되면 이룰 수 있었을까

나는 부유한 백수가 되지 못해서 

백수지만 부유하지 않거나

여전히 부유하지 못했는데 백수조차 되지 못한 상태에서 살아왔고 살고 있다.

그럼에도 열심히 시간을 쪼개어 읽었다.

읽지 않으면 내 존재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해서 늘 조급했다.

나의 의미를 내가 스스로 재단하면서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늘 머리속으로 생각만 하고 몸은 여전히 여기 깊이 침잠해 있었다.

퇴근했으니 너무 피곤해서

집에 와서도 일이 끝나지 않고 무슨 마법의 두루마리처럼 둘둘 일이 쏟아져서

신경써야 한 대상들이 많아서

오늘은 술이 당겨서

오늘을 핸드폰을 보다보디 벌써 하루가 다 가서..

밀린 넷플릭스를 봐야 해서

인간을 담구하기 위해 나는 쏠로는 꼭 봐야 하니까

등등

핑계는 차고 넘쳤고 나는 책을 들고 하루종일 동동거리면서, 한장도 넘기지 않은 날들이 수두룩했다

물론 한자도 쓰지 않은 날들은 더 많았다.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서 쓰고 싶은 건 아니었다.

내가 쓴 이야기가 만천하에 공개된다는 건 알몸으로 사거리 횡단보도앞에 서있는 것 보다 더 수치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소하게 쓰기는 하지만 그냥 소소 로 끝났다.


늘 장바구니에 글쓰기 책이 빠진 적이 없다.

글쓰기에 대해 몰라서 안 ㅆ는 건 아니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뭐든 첫 걸음을 떼야 시작되는 거지 준비운동만 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늘 준비운동만은 철처하게 하는 스타일이었다.

얖은 물에서 발차기만 할건데도 혹시  잠수병에 걸리는 불운이 올지 몰라서 나는 준비만 늘 준비만 철저히.. 그것도 머리속으로만.. 

점점 머리만 비대해지는 사람이 되었다.

얼핏 비치는 내 모습은 무슨 화이바를 쓴 것 마냥 머리만 둥그렇게 떠 있었다.


글쓰기 책을 읽으며 알게 된 건

작가라고 미리 준비를 많이 하고 쓰지는 않는다는 것

일단 쓰기 시작하면 쓰게 되어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어떤 의미로 이런 이야기를 선택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니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일단 쓴다는 것

어제도 썼고 오늘도 쓰고 내일도 쓸거 라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이야기가 연결되고 인물들이 명확해지면서 어떤 의미가 부여되는 게 아니었을까

그게 이야기이든 이야기가 아니든 일딴 써 보는 것이 먼저였다.


가끔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좋은 작가들이 있다.(미안하지만...)

내가 얻고 싶은 답들이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에 있어서일 수도 있다.

답이라기 보다 내가 듣고 싶은 말

누구나 그렇지만 나 역시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을 듣기 원한다.

지금 나의 처지에 변명이 될 수 있는 말들  잘 하고 있다고 격려해주는 말들

그 문장이 꼭 나를 향하지는 않더라도 나도 더불어서 틈에 끼어서 그렇구나 하고 함께 얻어 ㄱㄹ릴 수 있는 말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열심히 읽으면서 나에게 위안이 되는 문구들을 모았던 것같다.

그리고 지금 그런 문구들은 차고 넘친다.


그냥 좋은 독자 아니 좋지 않아도 읽는 사람도 나쁘지는 않다.

적어도 내가 조금 덜 편협하고 세상사에 모서리가 깍여 가는 건 읽은 것들 덕분이다.

소심하고  관계가 서툴러서 많고 다양한 사람과 세상을 만나지 못했더라도

이야기 속의 인물들과 상황을 통해 세상을 알게 되고 이해한다.

그럴 수도 있구나

그럴 수도 있지

힘들었겠네

그 입장이라면 그래야만 했겠구나 ...

그렇게 세상을 넓혔다

그나마 괜찮은 사회구성원으로 행세하는 것

관계를 이어가는 것들 역시  읽은 데서 나왔다.


누가 책처럼 타인의 상황을 나에게 자세하기 이야기 해주고  조언해줄까

나는 사실 누군가와 길게 이야기를 나누면 쉽게 지쳐버려서 이야기를 나눈 시간의 두배만큼 쉬어야 하는 극 i 인간이니 말이다

그냥 힘들지 않고 지치지 않고 다양하게 사람을 만나고 공감할 능력을 키우는 것 읽는 것 이상 없다. 

물론 모두가 다 이해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래도 조금  만두피늘이는 만큼 늘어났다고 믿는다.


이 책은 소설가가 소설가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소설가 역시 먹고 사는 사람이고 세금을 내고  일상을 걱정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수입이 적다고 이슬과 꿈만 먹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계속 쓰고 있다


긴 휴가동안 많이 읽어야지 하고 결심해놓고 달랑 이 책 한권 읽었다.

달랑이라지만 .... 한권이라도 읽은 것에 만족하자.


동시에 조지오웰을 읽어봐야겠다는 가지가 생겼고

독서모임 그므에 대한 관심도 생겼고

일기라도 일심히 쓰자는 마음도 생겼고 

나도 북한에 대해 정말 관심이 없었구나  그냥 피상적인 생각이외에는 전혀 생각이라는 걸 해 본적이 없구나도 알았다.


알고 행하는 건 내가 할 일이고

결국 읽는 다는 건 뭔가를 알게 해주고 호기심을 갖게하는 일이다.

호기심의 결국 사람에 대한 관심이고 공감으로 뻗어간다.

궁금하다는 마음 모든 관계는 거기서 시작된다.


읽는 다는 건 몰랐던 것들에 대한 긍금증을  하나 던지는 것

그렇게 나는 한 권으로 많은 궁금한 것들이 생겼고

그걸 찾아보는 건 읽는 내가 아니라 움직이는 내가 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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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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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전달된 편지를 호기심에 못 이겨 펼쳐본 기분

이건 나에게 보내진 편지가 아닌데 내가 무심하게 들여다 본 묘한 기분이었다.


#1  재희

정말 미안하다. 그러려고 했던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었다

그럼 어쩌려고 했던 건데...


그리고 이 감정을 배신감이라고 이름 붙인다. 

진심으로 분노했음을 한 템포 늦게 깨닫는다. 

내가 화를 내고 어쩔줄 몰라하는 감정에 대해 이름붙일 수 없는 혼란스러움 이후 이름붙여진 것

그건 배신감이라고 했다. 


타인에게 기대감이 없었던 내가 좀처럼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숨기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숨기고 있지도 않았음에도 가장 먼저 나의 비밀을 알았던 나의 다른 한조각처럼 여겼던 친구를 통해 커밍아웃되었다는 것

내 정체성이 밝혀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발설이 다른 이유도 아니고 다른 사람과 자신의 관계 회복을 위한 도구로 쓰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냥 재희와 그 남자의 관계 회복에 쓰였다는 것보다  그렇게 어떤 상황에 도구로 그저 순간적인 임시방편으로 나의 정체성이 아무렇지 않게 갖다붙여졌다는 사실에 화가 나지 않았을까


어딘가 몹시 낯익은 감정이었다.

화가 나는데 화를 내면 너무 쪼잔할 거 같아서 화를 낼 수 없는 상황이 더 화가 나는데

상대는 이게 화가 날 일은 아니라고 말을 한다.

분명 미안해 하고 잘못했다고 하는데 완전 백퍼센트의 미안함이 아니라 그냥 별 일 아닌데 니가 너무 펄펄 뛰니까 내가 사과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뉘앙스를 아닌 척 풍겨대는 그런 상황

나도 화를 내지 않는 게 맞는 것이 아닐까 머리 한구석에서 계속 회로를 돌리면서도 마음속에서 이름붙일 수 없는 불쾌감과 불편함이 끓어오르면서 이렇게 감정이 터지는 나에게 오히려 더 화가나고 못나보이는 상황이 

분명 나에게도 있었다.

(어쩌면 주인공의 감정과는 택도 없이 다른 상황일 수도 있겠다.

감정과 상황이라는게 결국 주관적이고 내 것이 가장 날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으므로..)


사람이 저마다 말을 하지 않지만 감추고 싶고 소중하게 여기고 싶은 부분이 있을텐데

타인의 그런 부분을 아무렇지 앟게 말해버리는 일

말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는거야

그렇게 심각한 건아니야 라고 싶게 말하고 충고하고 그냥 무의식중에 내뱉는 사람들이 너무싫었다. 그런데 시간이 쌓이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 건 그 나이에 다 겪는 거야

니 잘못도 아닌데 뭘 그렇게 전전긍긍하니  그냥 당당하게 말해 그게 더 나아 그게 이기는 거야


누구는 더 낫다는 걸 모를까

그게 이기는 거라는 걸 모를까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을 텐데... 이제 나는 무뎌졌다고 굳은 살이 덮혔다고 타인의 말랑한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학 벗겨낸다. 

그게 도와주는 거라고 거대한 착각을 하면서 

(사실 나의 편리성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 


누군가를 많이 좋아한다는 건

그에게 전부를 들키고 싶은 마음과 아무것도 알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똑같은 무게와 부피를 가지고 나를 혼란하게 만든다는 거다.

좋아하니까 다 말하고 싶은 마음과 좋아하니까 절대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을 자꾸 감추는 마음이 자꾸 반복된다. 

결국 에라 모르겠다라는 마음이 있지만 또 어떤 상황에서는 내가 이미  까발린 그 부분을 상대가 절대 아는 척 하지 않기를 바라는 어이없는 마음이 있다. 나는 말할 수 있지만 너는 입에 담을 수 없다고... 감히 너가 어떻게 나에게... 라는 마음이 커지면서 동시에 그게 뭐라고 이렇게 속좁게 쫌팽이같이 이러고 있나 라는 마음이 함께 커진다.

그런 혼란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따가 다시 밀려가면서 좋아하는 마음은 점점 커지고 마침내 쪼그라 든다. (영원히 좋아하거나 사랑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맞다.)

그리고 조금 허탈하고 처량하고 외롭기도 하지만

개운하고 가볍고 편안해진다.

그렇게 남이 되거나 진짜 친구가 된다.


# 2, 우주 한점 우럭의 맛  /   대도시의 사랑


이건 정말 잘못 전달된 연애편지를 읽어버린 기분이었다.

내가 이걸 읽어야 하나하면서도 호기심에  계속 다음 문장을 읽고 있다.

아픈 엄마와 한심한 내 삶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호기심을 가지고 욕구에 끌리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것

지금 나의 지리멸렬한 처지때문인건지 아니면 주체할 수 없는 내 감정의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사람과 끝내야지 하는 마음의 무게만큼 이 사람과 계속 함꼐 하고 싶다는 마음이 똑같이 밀려온다. 

타인의 오래된 연애편지를 읽어버린 기분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나의 일기들을 붉은색 펜으로 교정을 본 그 원고가 우연히 내 손에 들어와서 내가 호기심을 참지못하고 읽어버린 것 같이 먹먹하고 아프다.


끝이 보이는 사항이라도 시작될 수 밖에 없다.

이건 도데체 어디 쓰이는 종자인지 궁금해지면 일단 게임끝이다.

안쓰러우면 끝이라거나 

귀여우면 끝이라던데

나는 궁금해지는 순간 끝이다.

결국 에이 별거 아니잖아 라는 실망으로 돌아서게 되는 상황이더라도

내가 궁금했던 것이 설마 이렇게 끝은 아닐거라는 미련이 너무 많고 끈적거리는 사람이라

결국 궁금한 상대를 요모조모 뜯어보다가 정이 드는 이상한 사람이다.

일단 정이 들어버리면 그냥 내 삶에서 쉽게 뜯어내질 못한다.

궁금한 그것이 안쓰러워지고 때로는 귀여워지면서.. 그렇게 관계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내 시간이 아깝고 내 삶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다고 이렇게 살지 않는다고 더 나은 삶을 살 거 같지도 않아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질질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혼자 상처받고 혼자 폼을 잡는다.

떼어버리자니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하고 그냥 두자니 내가 영 폼이 살지 않는 기분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치사하고 수준에 맞지 않은 거 같으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남의 연애를 엿보면서 나의 연애를 생각한다.

지루하고 치사하고 하나도 도움이 안되는 연애를 그래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나중에 하게 된다


#3. 늦은 우기의 바캉스


나도 여행을 가고 싶다.

우연히도 하자가 있는 방을 받아서 공짜로 업그레이드도 하고 싶고

그냥 마음이 편해질정도로 비를 맞고 거리에 누워버리고 싶다.

지나간 사랑은 다 추억이 된다.

글이 좀 쓸쓸하다.



사족: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해석은 전혀 다를 수 밖에 없지만

작가의 상황이 독자와 다를 수 밖에 없고  서로의 생각이 감정이 삶이 달라서 다르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음을 안다.

그런데 사람이 다르다는 것 뿐 아니라 

그 사람이 경험하는 시간에 따라 다시 받아들이는 지점이 달라진다

어쩌면 딱 이주 전에 내가 읽었더라면 다른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딱 이주 뒤 지금 이순간 읽었던 <대도시의 사랑법>은 그냥 지리멸렬하고 지우고 싶으면서도 지우고 싶지않은 그것 역시 나일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딱 그런 지점의 나를 건드린다. 

별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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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것이 오지 않기를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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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더 많을까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가 더 많을까

아들에게 아빠는 넘어서야 할 대상이다. 

아빠를 극복하면 (극복한다는 표현이 좀 진부하지만) 아빠를 넘어서면 그때서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

다만 21세기에 부친을 넘어서는 아들은 드물다.

시대의 문제인지  속된 말로 요즘 아이들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넘어선다는 건 이제 잘 보이지 않는다

굳이 넘어설 필요가 없을 수도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세대보다 더 잘살기는 커명 현상유지조차 아득한 시대여서일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아버지와 아들은 동료가 되거나  남남이 되거나 좀 극단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엄마와 딸은 좀 묘하다.

딸이 엄마를 극복하고 넘어서면 못된 년이 된다.

딸은 엄마의 눈치를 보고 엄마를 돌봐야 한다는 오래된, 누가 정했는지도 모를  몸에 익은 관습이 있다.

아무리 엄마를 떠나고 싶어도,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결심을 해도 엄마와 딸 사이의 탯줄은 쉽게 끊어낼 수 없다. (그런 경우가 많다.)

엄마를 두고 멀리 떠난 딸이 좋은 결과를 갖기가 쉽지 않다.

엄마를 돌보거나 엄마를 잊지 않은 딸이 언제나  좋은 결말(?)을 맞는다

좋다기 보다 그냥 착한 딸  좋은 사람 이라는 주변 사람의 칭찬을 듣는다.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 


(이제 스포가 있으니까...)

책을 읽으면서도 사에와 나쓰코의 관계를 그냥 오랜 친구라고만 생각했으니까 나도 참 둔하지

그저 사랑만 받아서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는 양가집 아가씨같은 사에와 부모에게 억압당하고 자기를 죽이고 살아온 나쓰코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남편이 죽겠구나 생각은 했으니 그런 면에서 좀 판에 박힌 이야기이기는 하나

결국 친구같은 모녀 이야기였다니.....


나쓰코는 엄마가 어렵고 힘들었고 인정받지 못한 채 성장을 했고 엄마같은 엄마는 되지 않기로 결심한다. 나쁜 것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든 엄마의 마음이겠지만

그저 오지 않기를... 오더라도 약하게 오기를... 나쁜 것이 몰려와도 내 아이가 잘 견뎌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넘어

어떤 것이 오든 내 선에서 다 처단해버리겠다는 마음

나쓰코는 그렇게 자녀를 돌봤다.

억압하고 군림하는 엄마가 아니라 친구같은 엄마가 되겠다


어디선 봤을까

친구같은 엄마 친구같은 딸과의 관계에서 누가 누구의 친구인가를 생각해보라는 말이 떠오른다.

엄마가 그저 딸을 친구처럼 대하면서 보호하고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리광을 부리고  자신을 돌봐달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아이의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내 친구가 되어달라는 것은 아닌지...

결국 낫짱은 딸의 친구였고 모든 것을 나누고 터놓는 관계가 되어 위안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관계는 사에에게 엄마가 없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에는 엄마가 없다.

돌봐주고 엄격하게 훈육하고 공감해주는 엄마가 없다.

그냥 내 응석을 들어주고 편들어주고 함께 험담을 하는 친구가 있다.

편하지만 그렇게 의존하다보면 내가 없다.

나쓰코 역시 엄마의 눈치를 보며 엄마에게 맞춰 살아온 방식을 벗어나려고 하지만 엄마와 정 반대의 방식으로 똑같이 딸을 자기에게 종속시킨다.

너무 많이 도망가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느낌....


엄마의 집착과 엄마의 사랑이 상대가 원하는 것과 많이 다를 때

그러나 엄마에게 악의가 전혀 없고 상대를 위하는 희생만 있을때

뭐라고 해야할까

원망을 해도 되는지... 원망하는 내가 나쁜 건지 혼란스러운 상황

엄마와 딸은 혼란스럼지만 그 상황을 혼란스럽다고 말을 하는 건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내가 나쁜 년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참는다. 내가 참으면 된다고 

그리고 참으면 참을 수록 나는 착한 딸이 되고 상대는 나를 칭찬한다.

그렇게 왜곡된 애정관계는 다시 대를 이어 내려간다.


사실 성인이 되어 엄마에게 부모에게 받은 상처나  외로움을 핑계로 원망하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자신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알게 모르게 내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건 내 경험치에서 나올 수 밖에 없으니까 



가끔 엄마들은 자식들 때문에 지금 선택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선택이란 자신을 가장 우선에 두는 선택이다.

지금 내가 원하는 일을 해야할까

지금 남편과 헤어져야 할까 

지금 집을 나가야 할까 

지금 소리치고 화를 내고 부당하다고 주장해야할까 

모든 상황에서 엄마는 아이를 우선 생각하고 일단 참고 본다. 

아이가 조금만 더 클 때 까지.

아이가 대학을 갈 때까지

아이가 취직만 하면

아이가 결혼만 하면

손주가 태어가기만 하면......

아이의 성장은 부모에게 특히 엄마에게 좋은 핑계까 된다.

핑계라는 의식은 없겠지만 결국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이유가 되어준다.

좋은 핑계다.

그런 핑계가 슬프고 짠하긴 하지만 .... 엄마도 가끔  아니 자주 이기적이고 못된 년이 되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자녀는 특히 딸이라면 못됐지만 행복한 엄마가 더 좋지 않을까 

적어도 엄마에게 내가 가장 우선... 이라는 거라도 배우지 않을까...

내 욕망과 내 바램과 내 감정을 우선으로 생각해보는 것...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평화의 첫걸음이라고....

그걸 알았더라면 나쓰코도  사에도 지금보다 덜 불행했을 것이다.

결국 엄마의 희생은 어딘가 빈 구석이 있고 딸은 귀신같이 그 빈 틈을 잘 찾아내는 ... 그래서

결국 나쓰코의 희생이 사에에게 죄책감을 준 것 처럼...

가끔... 아니 대부분 희생이란.... 상대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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