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것이 오지 않기를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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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더 많을까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가 더 많을까

아들에게 아빠는 넘어서야 할 대상이다. 

아빠를 극복하면 (극복한다는 표현이 좀 진부하지만) 아빠를 넘어서면 그때서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

다만 21세기에 부친을 넘어서는 아들은 드물다.

시대의 문제인지  속된 말로 요즘 아이들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넘어선다는 건 이제 잘 보이지 않는다

굳이 넘어설 필요가 없을 수도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세대보다 더 잘살기는 커명 현상유지조차 아득한 시대여서일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아버지와 아들은 동료가 되거나  남남이 되거나 좀 극단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엄마와 딸은 좀 묘하다.

딸이 엄마를 극복하고 넘어서면 못된 년이 된다.

딸은 엄마의 눈치를 보고 엄마를 돌봐야 한다는 오래된, 누가 정했는지도 모를  몸에 익은 관습이 있다.

아무리 엄마를 떠나고 싶어도,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결심을 해도 엄마와 딸 사이의 탯줄은 쉽게 끊어낼 수 없다. (그런 경우가 많다.)

엄마를 두고 멀리 떠난 딸이 좋은 결과를 갖기가 쉽지 않다.

엄마를 돌보거나 엄마를 잊지 않은 딸이 언제나  좋은 결말(?)을 맞는다

좋다기 보다 그냥 착한 딸  좋은 사람 이라는 주변 사람의 칭찬을 듣는다.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 


(이제 스포가 있으니까...)

책을 읽으면서도 사에와 나쓰코의 관계를 그냥 오랜 친구라고만 생각했으니까 나도 참 둔하지

그저 사랑만 받아서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는 양가집 아가씨같은 사에와 부모에게 억압당하고 자기를 죽이고 살아온 나쓰코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남편이 죽겠구나 생각은 했으니 그런 면에서 좀 판에 박힌 이야기이기는 하나

결국 친구같은 모녀 이야기였다니.....


나쓰코는 엄마가 어렵고 힘들었고 인정받지 못한 채 성장을 했고 엄마같은 엄마는 되지 않기로 결심한다. 나쁜 것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든 엄마의 마음이겠지만

그저 오지 않기를... 오더라도 약하게 오기를... 나쁜 것이 몰려와도 내 아이가 잘 견뎌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넘어

어떤 것이 오든 내 선에서 다 처단해버리겠다는 마음

나쓰코는 그렇게 자녀를 돌봤다.

억압하고 군림하는 엄마가 아니라 친구같은 엄마가 되겠다


어디선 봤을까

친구같은 엄마 친구같은 딸과의 관계에서 누가 누구의 친구인가를 생각해보라는 말이 떠오른다.

엄마가 그저 딸을 친구처럼 대하면서 보호하고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리광을 부리고  자신을 돌봐달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아이의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내 친구가 되어달라는 것은 아닌지...

결국 낫짱은 딸의 친구였고 모든 것을 나누고 터놓는 관계가 되어 위안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관계는 사에에게 엄마가 없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에는 엄마가 없다.

돌봐주고 엄격하게 훈육하고 공감해주는 엄마가 없다.

그냥 내 응석을 들어주고 편들어주고 함께 험담을 하는 친구가 있다.

편하지만 그렇게 의존하다보면 내가 없다.

나쓰코 역시 엄마의 눈치를 보며 엄마에게 맞춰 살아온 방식을 벗어나려고 하지만 엄마와 정 반대의 방식으로 똑같이 딸을 자기에게 종속시킨다.

너무 많이 도망가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느낌....


엄마의 집착과 엄마의 사랑이 상대가 원하는 것과 많이 다를 때

그러나 엄마에게 악의가 전혀 없고 상대를 위하는 희생만 있을때

뭐라고 해야할까

원망을 해도 되는지... 원망하는 내가 나쁜 건지 혼란스러운 상황

엄마와 딸은 혼란스럼지만 그 상황을 혼란스럽다고 말을 하는 건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내가 나쁜 년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참는다. 내가 참으면 된다고 

그리고 참으면 참을 수록 나는 착한 딸이 되고 상대는 나를 칭찬한다.

그렇게 왜곡된 애정관계는 다시 대를 이어 내려간다.


사실 성인이 되어 엄마에게 부모에게 받은 상처나  외로움을 핑계로 원망하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자신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알게 모르게 내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건 내 경험치에서 나올 수 밖에 없으니까 



가끔 엄마들은 자식들 때문에 지금 선택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선택이란 자신을 가장 우선에 두는 선택이다.

지금 내가 원하는 일을 해야할까

지금 남편과 헤어져야 할까 

지금 집을 나가야 할까 

지금 소리치고 화를 내고 부당하다고 주장해야할까 

모든 상황에서 엄마는 아이를 우선 생각하고 일단 참고 본다. 

아이가 조금만 더 클 때 까지.

아이가 대학을 갈 때까지

아이가 취직만 하면

아이가 결혼만 하면

손주가 태어가기만 하면......

아이의 성장은 부모에게 특히 엄마에게 좋은 핑계까 된다.

핑계라는 의식은 없겠지만 결국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이유가 되어준다.

좋은 핑계다.

그런 핑계가 슬프고 짠하긴 하지만 .... 엄마도 가끔  아니 자주 이기적이고 못된 년이 되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자녀는 특히 딸이라면 못됐지만 행복한 엄마가 더 좋지 않을까 

적어도 엄마에게 내가 가장 우선... 이라는 거라도 배우지 않을까...

내 욕망과 내 바램과 내 감정을 우선으로 생각해보는 것...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평화의 첫걸음이라고....

그걸 알았더라면 나쓰코도  사에도 지금보다 덜 불행했을 것이다.

결국 엄마의 희생은 어딘가 빈 구석이 있고 딸은 귀신같이 그 빈 틈을 잘 찾아내는 ... 그래서

결국 나쓰코의 희생이 사에에게 죄책감을 준 것 처럼...

가끔... 아니 대부분 희생이란.... 상대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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