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이야기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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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이탈리아는 어떤 나라였을까

아니면 그녀의 삶은 어떠했을까

<로마 이야기>가 첫 소설이었다면 좀 더 이해하기 쉬웠을까

자신의 경험은 주로 첫작품에 많이 투영되는 법이니까

낯선 땅에 뿌리내리는 일

옮겨심겨지는 일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늘 그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못하고 겉돈다는 느낌 충분히 시간을 보냈음에도

늘 나를 설명해야하고 인정받기 위해 배는 더 노력해야하는 일들

그냥 없는 것처럼 여겨지거나 안타깝게 바라보거나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시선들을 견디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드러내놓고 무시하고 조롱하고 차별하는 것도 힘들겠지만 우아하고 고상하게 아닌 척 하지만 하나도 감춰지지 않은 상황들을 접하면 사람은 점점 작아지고 오그라 든다.

이번 소설들은 모두 너무 드러나게 이방인이며 타인들이다.

함께 섞여 들어가지 못한다.

흰죽에 잘못 들어간 통후추처럼 냄비뚜껑을 여는 순간 딱 눈에 띄더니

한입 깨무는 순간 알싸하게 퍼지는 그 맛에 아차 싶은 마음들 뿐이다.

멀리 떨어진 시골 변두리 바닷가의 소녀나 많이 배운 중년의 교수이거나

나이든 주인을 시중드는 소녀이거나 누구였든 늘 혼자 겉돌고 있다.

화를 낼 수도 없고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그냥 그게 자연스럽게 몸에 밴 그냥 자연스러움이 되어 버렸다는 게 더 슬프다? 기보다 두렵다.

누구나 어디서든 타인이며 낯선 사람이다.

내 땅에서도 때떄로 낯선 이방인일 때가 있다.

같은 동창이 아니어서 같은 지역출신이 아니어서 같은 수준이 아니어서 같은 종교가 아니어서

나도 너랑 함께 엮이기 싫어 라고 배짱좋게 큰소리치지만

마음 한구석이 싸해지면서 아릿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가능한 어디서든 튀어나오고 싶지 않다. 잘나서이든 못나서이든 그냥 쉽게 섞여서 스며들어서 그냥 그렇게 묻어지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한알의 후추처럼 도드라지고 끼어들 틈이 없다.

 

반대로 나는 우리 무리에 끼워주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는 우리가 아니다.

두렵기도 하고 함께 하면서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번거롭기도 하고 굳이 그가 아니어도 나는 외롭지 않고 슬프지도 않다.

 

이탈리에 가기 전부터였을까?

혼자 상상을 한다.

어쩌면 미국에서도 이방인이었으므로 어딜 가든 이방인이라면 차라리 아주 낯선 곳으로 가자는 마음이었을까

이미 젖어버렸다면 비를 맞든 바닷속을 뛰어들든 무슨 상관이랴는 마음처럼?
누군가가 다치거나 상처받는 이야기들

상처받지만 이미 무뎌져서 모르고 넘어가거나 모른척 하는 이야기들

함께 어울리면서 웃고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헤어질 때 비로소 안도하는 관계들

다시 오고싶다고 너무 좋았다고 말을 하지만 떠나는 순가나 잊을테고 두 번 다시 발걸음을 하지 않을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너무 피곤하고 마모되는 일들이다.

 

조금 더 읽어도 계속 힘들기만 할까

적어도 저지대에서는 다른 소설집에서는 외롭고 낯설고 두렵지만 뭔가 강단이 있었다면

이번 소설집에서는 그냥 지치고 초라하고 노골적으로 무시를 받는다.

 

이제 그렇게 직설적으로 표현해도 될만큼 강해졌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안도해도 되는 걸까

가슴속에 쌓아두였던 앙금을 이제는 거침없이 드러내겠다는 마음이라고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여전히 나는 이방인이라는 마음이 깊어진 걸까

이야기속 인물들은 말이 없다.

말을 하지 않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인식한다.

누구도 그들이 말을 하지 않음을 지금 어떤 마음인지 관심이 없다.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 않다.

아니 지금 내 앞의 그 사람이 마음이 있고 감정이 있고 나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불편하고 함꼐 하고 싶지 않고 두렵고 내 영역을 넘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세상은 함꼐 살아야 한다는 것이 글로는 무척이나 쉽지만 쉽지 않다.

함께에는 늘 나와 같은 존재만 포함된다,

그래서 내 세상을 벗어나기 두렵고 싫다.

그냥 이렇게 생긴대로 살다 갈란다... 라는 마음은 포기가 아니고 두려움이다.

 

외딴 바닷가 휴가철이면 휴가를 즐기기 위해 가족들이 찾아오는 외딴 집이 있다.

그 집을 관리하는 아버지의 딸은 엄마대신 손님을 맞이하고 집안을 치우고 사람들을 돕는다

손님은 그 소녀에게 친절하지만 기억하지 않는다.

뭔가가 필요할 때만 보이는 소녀다.

자기들끼리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은 그 소녀가 가까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도시에서 폭력 피해를 당하고 변두리로 내려와 사람을 만날 필요가 없는 일자리를 찾은 아버지를 도우면서 소녀는 일상에 적응하고 있다.

돌아가면 다시 오지 않을 그리고 여기를 기억하지도 않을 가족들을 맞이하고 배웅하면서

그들이 대상처럼 바라보고 기록한 글들을 발견하지만 아무렇지 않다

그런 일들이 너무 익숙하고 빈번해보인다.

 

두 여인이 오랜만에 만났다. 오랜 친구였다.

한 친구는 그 도시에 오래 살았고 얼마 전 부친상을 당했다. 다른 친구는 교수이고 이 도시를 사랑하고 이 도시에서 가르친다. 두 친구는 관광객들이 모르는 그 지역 사람들만 아는 멋진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한다.

식당 사람들은 묘하게 두 사람을 다르게 대한다.

흑갈색 머리를 가진 숙녀라든가 아름다운 분이라는 호칭

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묘하다. 굳이 그렇게 묘사를 하며 부르는 이유는 뭘ᄁᆞ

거기까지는 모른 척 할 수 있다.

화장실을 가는데 어린 아이가 길을 막고 비켜주지 않는다

계산을 하러 갔더니 아이가 노골적으로 말한다. 이 아줌마는 예쁜데 이 아줌마는 예쁘지 않다. 못생겼다. 모두 아이의 말이니 모른 척 하라고 하지만 누구도 아이를 야단치거나 사과하게 하지 않는다. 화를 내면 더 이상해진다.

별 거 아닌데 예민하게 군다고 하거나 아이 말에 뭘 그렇게 발끈하냐고 하거나 ...

뭐 틀린 말도 아니라고 한다면 설령 그 말들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상처를 받고 불쾌하고 두렵기까지 한 상황

그러나 그 지역을 너무 잘 아는 친구는 아무렇지 않다. 들어도 듣지 않는다;

사랑했던 좋아했던 도시가 두려워진다.

이건 아예 도시괴담처럼 느껴진다.

 

친한 지인의 파티에서 낯설고 매력적인 여자를 만난다. 외국인이라 말이 서툴러서 표현이 직설적이다. 우연히 아내의 솔을 가지러 간 남자는 그 여자와 짧게 이야기를 나눈다.

별 다른 의미가 없는 그냥 낮에 여자가 겪었던 놀라움과 두려움을 직설적으로 솔직하게 낯선 자기에게 말을 하는 것에 놀라고 인상이 깊다.

그 순간을 남자는 착각을 한다. 우리 둘만의 은밀한 시간.....

다시 그 지인이 파티를 열고 남자는 그 여자를 찾지만 그 여자는 남편과 있고 이제 제법 말이 능숙하다.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닌 더 어정쩡한 관계

그리고 계속되는 우연한 만남에서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여자에게 키스를 한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다.

모든 관계들이 뚝뚝 단절되어버린다.

어디서든 남자들의 착각은 상대를 당혹하게 하고 동의 없는 신체접촉까지 이어진다.

자신의 생각을 확신하기 전에 적어도 세 번은 의심해보는 것이 안전할텐데..

남자들은 그걸 모른다.

 

낯선 도시에 이주해온 가족이 시 정책에 따라 밝은 집으로 이사한다.

작지만 아이를 키우고 화분을 키우고 좀 더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집

그러나 이웃들이 그들을 경계한다.

나가기를 원하고 나가라고 하고 시위를 한다.

그들은 머지 않아 마을이 전부 그 가족같은 사람들로 가득 찰거라고 두려워한다.

가족들은 이웃의 시위가 눈빛이 두렵다.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우고 교육할 수 없다.

타인은 늘 두렵다.

어쩌면 누구든 아이를 키우고 가족을 부양하고 좀 더 행복해지고 싶고 안전하고 싶고 이웃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일텐데.. 그 안전과 행복과 교류들이 다르게 해석된다.

내가 생각하는 그 의미들이 완전하려면 타인과 나 사이에 경계가 필요한 모양이다.

 

동네에 있는 계단을 두고 그 계단을 이용하는 여러 사람의 짧은 생각들 행동들이다.

운치있고 오래된 계단 저녁이면 원형극장처럼 사람들이 모여들기도 하고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 때로 젊은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조금 음침하고 다가가기 두렵게 느껴지기도 하는 곳

외국에 아이를 두고 이 나라로 와서 다른 아이들을 돌보는 어머니는 계단에서 늘 두고온 아이들을 생각한다. 계단참에 앉은 젊은이들이 자기 아들또래라 더 그렇다. 그 어머니는 낯선 외국인의 친절과 무심하게 자기 물건을 전해주는 젊은이들에게 친근함과 동시에 낯선 느낌을 받는다.

동네에 오래 살고 있는 미망인은 저녁마다 시끄러운 계단이 싫다. 예전에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유리병이 뒹굴고 깨지고.. 이러다 문제가 생기지 싶다.

낯선 사람들 이방인들이 자꾸 눈에 띄는게 싫고 두렵다.

그 마음에 경찰을 가장한 낯선이들을 믿어버리고 문을 열어주게 된다.

이제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외국인은 큰 수술을 앞두고 계단을 뛰어간다. 수술 후 다시 계단을 걷거나 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이게 마지막을지 모른다는 생각들

낯선 곳에서 정확한 의사전달이 되지 않아 그냥 막연하게 긍정해야하는 상황에서 전신마취수술이라...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게다가 정신이 들면 신체의 일부는 떼어져 있는 수술이다.

우연히 만난 친구는 말한다. 전신마취는 별게 아니다 순간 잠들고 다시 깨어나면 모든 것이 끝나있는 것 그냥 좋은 걸 생각해.. 뭐가 좋은 걸까

지금 이순간 햇살 바람 공기... 그것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나이든 작가는 글을 쓰고 방산책을 하다가 젊은 이들에게 시계와 돈을 강도당한다.

익숙한 계단에서 좀 더 오르려고 하다가...

 

집주인의 택배를 받으러 우체국에 간 소녀는 택배수취 기간이 지나 반송되었다는 말을 듣고 돌아가다가 동네 소년들이 쏜 총에 기절한다. 그리고 그렇게 장난을 친 소년들은 해수욕을 가고 소녀는 총 맞은 것처럼 가슴 한 쪽이 아프다.

장난이라는 건 상대적인 건데...

 

아마 아이를 잃은 부부인 듯하다.

아내가 살던 도시로 휴양을 와서 행렬을 구경하려고 하지만 아내의 마음은 이내 변한다.

어쩌면 가족끼리 자매끼리 아이를 데리고 나온 무심한 구경꾼들을 계속 보고 행렬을 기다릴 수 없는 마음이 이해가 간다. 집에 돌아와서 잠겨진 방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는 아내 그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이 안타깝다.

 

아이를 다 키우고 우연히 학교에서 아이돌봄 일을 얻게 된 여자는

연필로 아이 글씨체로 씌여진 악랄한 쪽지를 받는다.

보기 싫다. 가라 너희 나라로 가라...

결국 그 쪽지를 잘게 찢어서 먹어버린다.

그렇게 상처는 몸에 오래 남게 된다.

 

친구의 남자친구에게 고백을 받고 마음이 설렜던 기억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은 마음

부모가 원하는 공부가 아닌 내가 끌리는 공부를 하고 세상을 향해 로마로 떠난 여자

거기서 나이 많은 의사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엄마처럼 외국의 주부로 살고 있지만

갈망이 결정이 된다

그 여자는 무엇을 갈망하고 어떤 결정을 했을까

무엇보다

실수 한 번 하지 않고 죽는 것이 두려웠다그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실수라는 것들

순간의 선택들이 남겨 놓은 흔적들 이후 받아들여야 하는 경험들

선택과 경험은 옳고 그른 것이 없다.

누군가를 해하는 것이 아닌 이상은...

그냥 그 경험과 선택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가가 늘 중요하다.

문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바라보고 풀어나가는가

그것이 삶의 질을 결정하고

지금 나의 행복을 결정한다.

순간의 갈망에 충실했고 그때의 결정에 순순히 따랐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그녀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낯선 땅

이방인으로 옮겨심기 된 삶의 이야기를 주로 쓰는 작가가

이번에는 작정을 하고 이방인으로 사른 삶의 두려움 불안을 이야기 한다.

결국 차별과 폭력과 혐오가 따라오지 않을 수 없다.

점점 이방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누구나 낯선 땅에서는 이방인이다.

이제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땅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면 누구나 어디서든 이방인 일 수 밖에 없다.

모른 사람에게 따라붇는 소문들과 경계들이 늘 구분을 만든다.

미국에서 교육받은 뱅골게 인도인인 작가는 미국에서든 로마에서든 눈에 띌 수 밖에 없겠다

그리고 그 눈에 띄는 외모에는 늘 소문과 억측들이 붙는다.

그리고 모른 언어라는 것이 또 두렵다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나에 대해 무슨 말들이 오고가는 것은 아닌지 늘 경계하고 바짝 긴장해야 한다.

긴장이 연속인 삶이 이방인의 삶이다.

노마드 인간이란... 멋있게 보이지만 결국 내 쭈리를 내가 잘 정리해서 가지고 다니는 이방인 일 뿐이다.

 

이제 줌파 라히리를 그만 읽어야 하나 고민한다.

타인과 불안에 대해 그리고 이전 세대가 원하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고집스럽고 은밀한 결심들은 충분히 보았다 싶은데

그럼에도 마지막 작품 때문에 다시 마음이 노골노골해진다.

흐르는대로 사는 것처럼 보여도 내 삶을 내가 방향을 바꿔가며 살고 있고

그 길을 내가 결정하는 이야기

그래서 후회도 미련도 없지만 자부심이나 뿌듯함도 없이 그냥 슴슴한 것...

엿같지만 너무 아름답다는 로마로 이제 곧 나도 간다.

 

아이도 이런 이방인 낯섬에 대해 충분히 경험하고 있을까

안타까우면서도 멋진 경험이 되길 바라며...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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