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덤하다는 것은  힘든 적은 없었다.

세상은 감정을 드러내고 살기엔 너무 빠르고 험한 곳이었다.

감정은 나의 가장 약한 속살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단단하게 무장하고 누구에게도 무시당하지 않고 크게 눈이 띄지 않고 살아가기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덤덤하게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머리로 계산하며 살아가는 일이다

쉽게 상처받을 일도 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없이 딱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 그저 바라보고 눈길을 돌리면 그뿐인 정도의 관계망이 가장 편하다고 생각했다.

어디서 운다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었다.

운다고 해결될 일은 하나도 없다는 걸 몸으로 먼저 익혔다.

울어서 곶감하나를 얻었던 기억이 없지야 않겠지만 그렇게 얻어 먹은 곶감이 썩 달지만은 않았다. 떨떠름하고 뭔가 개운하지 안은 뒷내가 오래오래 남았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신세지는 일은 편하지 않았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 끙끙거리고 해결해버리는 일이 차라리 편했다.

다만 누군가 먼저 내미는 손을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그것이 내게 필요한 것인지 그저 거절이 어려워 아무거나 받아두는 일인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누군가 쉽게 거절하고 아무렇지 않아 하는 일이 작은 충격이었던 기억이 있다.

저렇게 아니라고 말해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구나

 

먼저 요구하지않았지만 먼저 거절하지도 않았다.

그냥 편하고 착하고 만만하기도 한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속으로 얼마나 욕을 잘 하는지 얼마나 미워하는 사람이 많은지 얼마나 싫은 상황을 많이 꼽을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 알지만 모른 척 했을 것이고 설마 그럴리가 하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부터 기억을 더듬어 보면 운 기억이 별로 없다.

전혀 울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울고 나서 개운했던 기억은 없다.

늘 찝찝하고 울지 말아야 했다는 기억이 있다.

울음을 참으며 웃으려고 했던 기억이 있고 그냥 꾸역꾸역 참았던 기억이 있다.

혼이 나도 우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고 이런 일로 울고 짜는 일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고

이런일로 우는 거 아니야. 징징거리는 거 아니야 힘들다고 하는 거 아니야 라는 말을 늘 내가 먼저 나에게 했다.

 

그래서였을까

가장 힘든 일이 누군가 병문안을 가는 일이었구 누군가 슬픈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위로 하는 일이었다. 타인의 슬픔과 아픔을 공감하는 일이 어려웠다.

그 감정을 전혀 이해할 수 없어 어려운게 아니었다.

어쩌면 너무 훅 하고 그 감정이 내 속으로 들어와 내것인 것마냥 자리를 잡아 버려서 당황스러웠다.

이건 내문제가 아니야

이건 내일이 아닌데 이러는 건 너무 오바하는 일이야

도데체 이런 감정이 뭐지? 이런 걸 내 보이면 안될 거 같아

그런 억누름이 먼저 생겼고 늘 감정을 숨겼다.

함께 우는 일 함께 분노하는 일은 어려웠고 내 아픔이나 플슴이나 분노도 누군가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늘 내 아픔은 내 슬픔은 타인의 것보다 작았고 하찮아 보였다.

늘 내가 먼저 내 문제를 뒤로 미루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아픔에는 경중이 없고 선후가 없다.누구의 어떤 아픔이나 슬픔은 똑같은 질량과 무게를 가진다. 자기에게는 자기의 아픔이 자기의 슬픔이 가장 무겁고 깊다.

 

남의 상가집이나 남의 병실에서 울지 않는 것은 큰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상주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내려가는 내내 내가 생각한 것은 슬픔이나 황망함이 아니라 울지 못하면 어쩌하 하는 걱정이었다.

명색이 자식이고 어찌 보면 느닷없는 죽음이었기에 슬프고 아파야 하는 것은 당연하게 내게 그런 감정은 당연하게 있는데 그걸 표현하는 것이 너무 도드라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아니 걱정이 더 깊었다.

늘 울지 않았던 그래서 독하다는 말도 들었던 내가 이번에도 울지 못하면 어쩌나 남들이 어떻게 볼까

울고 있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경험만 있던 내가 처음으로 울지 않은 모습을 남들이 보고 뭐라고 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되었다.

걱정은 기우였다.

엄청나게 통곡하지 않아도 눈물은 나왔다.

어쩌면 우리 가족이나 친척들이 성정이 지나치게 감정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들 그만한 선에서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애도하고 충분히 감정을 드러냈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장례를 치뤄봤다면 알 수 있겠지만 3일 장 그 시간은  결코 순수한 애도의 시간은 될 수 없었다.

사람이 죽어서도 여러가지 치뤄내야 할 절차가 있고 형식이 있고 보여지는 관습이 있다. 계약하고 싸인하고 인사하고 주고 받고 다시 주문하고 클레임을 걸고 손님을 받고 인사하고 때로는 과거 추억을 이야기하다가 어울리지 않게 꺄르르 웃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무상가란 어쪄면 슬픔과 고통속에 나름의 희노애락이 모두 뒤섞여 있기도 했다.

터져야 할 울음은 오래 속에서 삭혀지지만 전혀 휘발되지 않았다. 그렇게 곰삭고 진해지며 이걸 밖으로 배출하지 않으면 내가 살기 힘들겠다 싶은 순간이 있었다.

내가 이렇게 그를 사랑했고 존경하고 필요했던가 스스로가 놀랄만큼 누군가의 부재가 주는 무게는 대단했다. 어쩌면 긴 형식적인 절차가 모두 지나고 이제 정말 그 존재가 부재함을 실감하는 순간 애도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혼자 누가 보지 않은 곳에서 엉뚱하게 울음이 터졌고 그의 일을 그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기록하며 보낸 시간이 아마 나에게는 애도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의외로 그에게 많이 의지했고 많은 것을 받았고 많은 부분이 닮았음을 인정할 수 있었고

내가 그렇게 미워하고 혐오했던 부분이 그의 가장 약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그는 자기의 가장 약한 부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 그렇게 애썼는데 그게 나에게는 힘들고 어려웠고 미움마저 들게 하는 것이었구나 알게 되었다.

늘 화해와 깨달음은 뒤는게 온다.

그게 적절한 순간에 온다면 성인이지 일개 개인일 수는 없을 테니까

 

친한 친구의 병문안도 쉬운 일은 아니니었다.

간단한 시술이 아니고 어쩌면 생과 사를 넘나들지도 모를 병을 앓는 친구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잘 견디라고 밥도 잘 먹고 쉬기도 잘하고 치료도 잘 받고 부디 잘 견디어 예전으로 돌아오길 기다린다는 말이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어떤 말도 입에 발린 말같고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 것 만 같고 그저 타인의 형식적인 말처럼 들릴 것 같았다.막상 병문안 가서 본 모습이 충격적이었지만 아닌 척 모르는 척 괜찮은 척 하며 그래도  좋아보여 다행이야. 넌 잘 해낼거야. 원래 씩씩하고 똑독했으니까 이만큼일거야 라는 말... 그게 얼마나 전해졌을지 알 수 없지만 그 이상은 힘들었다.

 

내 감정은 소금밭에 뒹구는 것처럼 쓰라리고 고통스럽더라도 일상은 평화롭게 지나간다. 배가 고프고 졸립고 피곤하고 해야할 일은 시간시간  이어진다. 무심하게 아무일 도 없다는 듯한 그 풍경이 아프다. 어쩌면 나의 감정이 아니라 나의 감정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무심하게 지나는 모든 것들이 더 아프고 고통스럽다.

내가 아프다는 것은 타인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또 누군가가 아프다는 것도 내개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삶이란 그런 거였다. 원래

그래서 괜찮기도 했고 외롭기도 했다.

 

별 거 아닌 문장들에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건 어쩌면 그래서였을 것이다.

별 거 아니어서 무심해서 더 북받치는 것 그런게 있다.

                                                                                   

무언가 특별하고 대단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최근에 한다.

아이는 특별하고 무언가 뛰어난 누군가가 되고 싶어했다.

평범하고 무탈한 것이 얼마나 행복인지 아직 알 수 없는 나이다.

다른 누구와 다르지 않고 같다는 것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것은 죽음과 다를 바 없다고 아이는 생각한다.

하긴 나도 그랬다. 삶은  길고 나는 영원히 살것처럼 굴었다.

누구와도 차별되지 않는다면  독특할 수 없다면 그냥 살지 않은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냥 이어지고 흐르는 삶

어디를 뒤바꾸어  놓아도 별 이상할 것 없는 모습이 얼마나 귀한지는 나이 먹어야 아는 일이다.

굳이 많이 아프거나 고통스럽지 않더라고 내일과 같은 오늘이 축복이라고 생각될 순간이 온다.                  

아니다. 떠쩌면 특별하고 단 하나밖에 없는 가치라는 것이 얼마나  높고 외롭고 쓸쓸한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누구나 개개인은 스스로 세상에 하나뿐인 귀한 존재이다.

그래서 이롭고 그래서 쓸쓸하다.

그걸 아는 나이가 되면 누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독특하고 하나밖에 없는 내가 다른  누구와 함께 어울리고 도드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입원일이다. 아침 베란다에서 커피를 마시고 담배 한 대를 몰래 피운다. 맛있다. 풍경은 흐리다. 전철 역으로 사람들이 바쁘게 걸어간다. 세상의 일상은 무사하다. 그 무사함에 팩트들이 들어있다. 팩트는 엄혹한 칼이다. 정확하고 용서가 없다. 이 칼의 무심함에 나는 기록으로 맞선다. 기록은 사랑이다. 사랑은 희망이다. 뭄ㄴ득 파란 버스가 풍경안으로 들어와서 정류장에 선다. 그리고 떠난다. 카프카의 마지막 일기가 맞았따. "모든 것은 오고 가고 또 온다‘ - P60

때아니게 툭툭 마음이 꺽인다.
가을날 마른 나무처럼. - P18

분노와 절망은 거꾸로 잡은 칼날이다.
그것은 나를 상처낼 뿐이다. - P23

삶은 향연이다.
너는 초대받은 손님이다.
귀한 손님답게 우아하게 살아라. - P119

삶은 힘들이다.
몸은 힘으로 살아간다.
정신은 힘으로 사유한다.
마음은 힘으로 노래한다.
생의 기쁨과 희망과 사랑을 - P122

대학병원 카페테라스에서 창경궁 대문을 본다 추녀 마루의 부드러운 곡선, 혼자가 아니라 둘로 층이 나눠어서 더 중후한 힘의 안정성, 하늘을 바라보는 지붕들의 겸손한 낮음-내가 자주 삶의 격조라고 부르기 좋아했떤 어떤 자세 - P128

나는 나를 꼭 안아준다.
괜찮아 괜찮아........... - P145

돌아보면 살아온 일들이 꿈만 같아서 모두가 고맙다. 나는 평생 누군가의 덕분으로 살았지 나 자신의 능력과 수고로 살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너무 잘 안다 갚아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내가 가진 것들이 있다면 그건 모두 내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이다. 이별의 행복 그건 빈손의 행복이 아닌가 - P178

요즈음 별로 불편한 것이 없네요라고 내가 말한다. 그게 문제죠. 라고 의사는 말한다. 암 자체는 불편하게 만들지 안하요. 다만 점점 자라날 뿐이죠. 그러다 종양이 혈관을 막고 장기를 누르게 되면 뭄이 불편해지는 거죠. 몸이 편하다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죠. 오히려 몸이 편할수록 암의 상태를 의심해봐야죠. - P185

우리는 모두 특별한 것들이다
그래서 빛난다.
그래서 가엾다.
그래서 귀하고 귀하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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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기본값이 결핍이다.

태어나 보니 이미 누군가 경쟁해야할 상대가 있다.

게다가 그 상대는 내가 사랑받고 싶고 관심을 받고 싶은 대상의 전부였다.

부모는 이미 먼저 태어난 아이에게 모든 기본값을 맞추었다.

처음 태어난 아이는 아이도 첫 아이지만 부모도 첫 부모가 된다.

그 아이가 태어나면서 비로소 부모가 된다.

부모는 어떠해야한다는 일반적인 통념이 존재하지만 태어나는 아이는 모두가 비슷하지만 다르다.

내 아이는 또 다른 아이와 다르다

나는 또 다른 부모와 다르다.

그래서 아이와 부모는 함게 서로를 맞추어 나가야 한다.

늦게 자는 아이가 있고 일찍 자는 아이가 있다.

시간 맞춰 먹여주는 일이 가장 큰 행사인 아이가 있는가 하면 먹는 일에는 도무지 관심을 두지 않는 아이가 있다,

다른 아이는 이러지 않는다는데

육아서를 보면 이 월령에는 이런 행동을 해야하고 이런 발달 상황을 보여야 하는데

아이에게는 아이만의 속도가 있고 취향이 있고 성정이 있다.

실수하고 참아내고 반복하며 아이와 부모는 서로를 알아가고 부모는 그 아이에 맞춰 육아의 디폴트 값을 정해놓는다.

그리고 둘째가 태어났다.

이젠 경험이 있고 여유가 있고 예측이 가능하리라 믿는다.

그러나 세상 모든 아이가 다르다는 것은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가 다르다는 말과도 같다.

한부모라고 해도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

아예 기본값을 정하지 못해 갈팡질팡 했던 첫 경험과 달리 두번째는 잉미 경험을 통해 축적한 통계가 있고 기본값이 있다. 그러나 그건 다른아이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다.

무용지물이다.

부모는 그걸 모른다.

내가 해봤으니 아는 것은 커다란 자산인데 지금 이 아이는 그 자산을 무시하고 비웃는다.

자꾸 내가 가진 기본값으로 아이를 맞춘다.

그 기본값에 맞지 않으면 틀린 것이고 잘못되었으므로 훈육하고 가르쳐야 한다.

큰 아이의 틀에 작은 아이를 맞춘다.

작은 아이는 그 틀을 거부할 수 밖에 없다. 내 것이 아니므로

틀을 믿는 부모는 자꾸 그 틀을 통해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는 있는 그대로 새롭게 봐주기를 원하지만 표현할 수 없다.

아이는 외롭고 거칠고 스스로 자기를 증명해야하는 도전앞에 놓인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앞에서 더구나 내가 사랑받고 싶은 사람앞에서

아이는 자꾸 외롭고 허기지고 불안하다.

그러나 눈치가 있는 아이는 그렇지 않은 척해야 하는 것까지 안다.

 

아이를 여럿  키우더라도 아이마다 다시 새롭게 기준값을 세워야 한다,

보편적인  가치는 아주 적게 남겨두고 저마다의 성정과 리듬에 맞는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아이는 찍어낸 제품이 아니다.

살아있고 스스로를 증명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생명체이고  인격이다.

 

참 늦게 그걸 알았다.

 

넌 왜 니 형처럼 니 누나처럼 하지 않니?

도데체 누굴 닮아서 그런거니?

둘째들은 이기적이라더니 틀린 말이 아니네

 

때로는 기준값을 둘째에 맞추는 경우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익숙하고 편한 것을 기준으로 삼고 싶어한다.

큰아이가 힘들었거나 둘째가 너무 자기랑 잘 맞다명 기준값은 다르게 정해지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 둘째는

외롭고 허기지며 늘 애쓰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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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늙은 여자 - 알래스카 원주민이 들려주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짐 그랜트 그림, 김남주 옮김 / 이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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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에는 찬 공기가 적막하고 광활한 땅 위에 펼쳐졌다.

부족은 춥고 허기진 상태였다.

냉정한 겨울 먹을 것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어딘가 있을 동물들의 흔적을 따라 또 다시 짐을 챙겨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 부족의 족장은 어려운 결심을 한다.

부족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두 여자를 두고 떠나기로 한다.

그들의 텐트와 물품은 두고 떠났다고 하지만 결국은 두 사람의 죽음을 묵인하고 떠나는 것이다

 

이제 남은 그들이 선택해야 한다

사실 선택지가 있는 건지도 므르겠다.

나이가 들고 더 이상 부족에게 쓸모가 없다고 여겨지고 여기 죽음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두 늙은 여자는 한동안 망연자실했고 스스로 현실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누구를 원망해도 소용이 없고 이대로 받아들이기도 억울하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때는 아직 멀었어

  친구야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해보고 죽자고 "

 

두 여자는 죽음처럼 버려진 곳을 떠나기로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짐을 꾸리고 두 여자중 칙다이크의 손자가 남긴 칼과 딸이 주고 간 가죽끈을 챙겨 들고 길을 떠난다.

예전 지금보다 젊은 시절 많은 사냥감이 있고 물고기가 많았던 강가를 찾아 길을 떠난다.

이미 일흔해 를 넘게 계절을 보낸 두 여인이다.

이 곳에 남는 것과 떠나는 것 어떤 것이 더 위험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다만 이곳에 있다면 죽음만이 다가 올 뿐이다.

떠난다면 죽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두 늙은 여자는 짐을 꾸리고 발이 푹푹 빠지는 길을 걷고 또 걸어서 앞으로 나아간다

긴 여정 뒤에 잠자리를 마련하면 이제 더이상 깰 수 없을 만큼 피곤한 깊은 잠에 빠지고 차가운 세벽 공기에 눈을 뜨면 도무지 펴지지 않을 것같은 다리를 펴느라 오래 끙끙거려야 한다.

그리고 한참을 주위를 걷고 나서야 다리는 풀리고 제대로 보행이 가능하다.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난다.

가는 도중 다람쥐를 사냥하고 덫을 놓고 토끼를 잡는다.

길을 떠나고 둘만이 모든 생활을 감당하게 되면서 젊은 시절 몸으로 익혔던 감각들이 하나씩 살아난다. 그때의 감각이 나이듬에 따라 얻어진 노련함이 더해져 두 사람은 두 사람만으로 삶을 지속하고 길을 걷는다.

오랜 기간 다져온 노동의 양은 몸에 그대로 축적되어 몸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두 여자는 그동안 부족안에서는 없었던 일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 전까지는 서로 알지만 알지 못했던 사이였는데 함께 길을 가고 서로를 의지하게 되는 동안 서로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살아온 삶을 이야기하면서 둘은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간다.

함께 노동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잠이 들고 길을 걸으면서 둘은 점점 나이와 상관없이 삶이 익숙해진다.

목적지에 닿아 풍부한 먹거리에 편안하게 지낼 수 있지만 한번 부족에서 쫓겨났던 경험은 그 두 여자에게 두려움을 준다. 늑대나 곰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이었고 그 중에 자기 부족 사람을 다시 만나는 일이었다.

당연히 죽었어야 할 두 여자는 아직 살아있고 많은 식량을 축적하고 아늑한 보금자리까지 만들었다.

우여곡절끝에 그 여자들을 두고 떠난 자기 부족을 다시 만났고 버리고 떠난 일에 대해 족장은 깊이 후회하고 있었으며 긴 겨울을 이겨내고 그 부족원들보다 더 풍요롭게 살아남은 두 늙은 여자들은 부족의 존경의 대상이 된다.

이제 두 늙은 여자는 부족과 함께 그러면서 동시에 부족과 떨어져 지내는 지례를 갖게 된다.

 

스토리는 단순하고 다행스럽게도 익숙한 헤피엔딩으로 끝난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당연하게 이어지는 삶은 없다.

누구나 태어나고 성장하고 나이 먹고 늙고 죽겠지만 그 사이 긴 여백은 계속되는 원인과 결과 결과로 인한 또다른 원인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문 시간들이 이어진다.

 

에전 전화 상담으로 통화를 하게 된 어떤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내 나이 오십엔 내가 이리 오래 살지 몰랐지. 곧 죽을 거라 생각해서 병원에서 치료받을 생각도 못했고 내가 좀 바뀌어야겠다는 생각도 못했지 그땐 이 나이까지 살지 몰랐으니까

지금 돌아보면 오십 그거 정말 젊은 나이더라"

 

내가 삶을 바꿀 수 있는 순간은 바로 지금이다.

내 능력이 어디까지인지도 내가 써 보기 전엔 알 수 없는 일이고....

 

사족

왜 항상 현자는 인디언이거나 알레스카에 사는 원주민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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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문장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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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의 소설을 특히 단편들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읽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고 채근하는 것도 아닌데 자꾸자꾸 급하게 리듭을 재촉하며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 뒷 문장이 결과가 궁금해서도 아니다. 어찌부면 무지하게 길고 느린 호읍을 가진 문장들인데 자꾸 자꾸 빠르게 급하게 읽어간다

그냥 읽어치우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오르는 이유가 뭘까

사실 그의 단편들이 편하게 읽히는 건 아니다

뭔가를 먹어가며 햇살 좋은 창가에서 사부작 사부작 읽기에 좋은 건 결코 아니다.

크게 마음을 먹고 시간을 비우고 단단히 다짐을 하고 읽어야 한다.

별 이야기 아닌듯 시작하지만 늘 읽고 나면 힘들고 아프고  숨이 가빠진다.

 

작가가 썼고 독자가 읽는다.

이야기의 완성은 결국 찯작이 독자를 찾아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누구도 읽지 않은 글은 결코 완성될 수 없다.

소설이든 시든 기사이든 블로그의 글이든 쓰여진 글은 누군가에게 닿아야 한다.

스쳐지나다고 괜찮다.

그냥 쓰윽 읽고 말아도 그 뿐이다.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는 만나보지 않았고 말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그의 글을 읽고 이야기를 읽는다는 건 늘 해치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을>  <지속되는 호의> 를 읽으며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에 대해 생각한다. 공동체의 좋은 점 이로운 점을 알고 있지만 그 공동체가 가하는 악의 없는 폭력도 생각하게 된다. 좋은 의도 선한 마음과 예의와 배려가 때로는 아프게 다가오기도 한 법이다.

딱히 따지고 들자면 따지는 쪽이 악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들 그래서 입다물고 있는 게 낫고 모른 척해주는게 나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배려가 감사로 돌아오지 않고 그저 만만한 상대로 치부되는 경우도 있고

좋게 좋게 하는데 왜 그렇게 꼬아서 받아들이느냐는 막무가내가 되기도 하니까

거리를 적당히.. 그건 가장 어려운 일이다.

 

<미러리즘>은 참 웃기고 고소함녀서도 어딘가 찌릿한 맛을 남긴다.

쉽게 자기 위치에서 한 발 더 걸음을 뗄 생각없이 딱 그곳에 발을 붙이고 나는 너희를 이해한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내가 선 위치에서.. 라고 말 할때 그 화자는 얼마나 뿌듯하고 스스로 막 대견할까. 다만 그렇게 상대의 입장을 안다고 하면서도 자기 위치라는 걸 한 번 더 생각하지 않은 태도가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를 쉽게 보여준다.

발랄하고 회개망측한 이런 전복적인 이야기가 아니면 도데체 이해할 수 없는 족속이 세상에는 여전히 있다. 나 역시 내 위치가 아닌 곳의 타인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대가리만 굴리며 안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웨이큰> 은 아픈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3일간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음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 모든 구조가 민간 기술자들에게만 부담을 지운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한 피해와 고통은 나몰라라 한다는 것 , 사람의존재를 쓸모로만 판단하는 것 컨트롤 타워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결국 가까운 그때의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한국말이 서툴러서 문장이 어눌하고 어딘가 부족해보이는 필리핀 아내의 입을 빌어 그 상황을 표현하는 방식이

어떤 말이냐 보다 누가 하는 말이냐? 얼마나 그럴 듯한 말인가에 더 현혹되는 세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가상체험> 에서 일어나는 사고가 그저 환타지의 소재가 아니라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다는 공포도 함께 느낀다.

어떤 말이든 누가 하는 말이든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 세삼스럽다.

 

<사연 없는 사람> <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것><어느 피시주의자의 종생기>는 글을 쓰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이야기에 대해 생각한다.

누구나 이야기가 있고 그럴 이유가 사정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하고 세상에 소리치는 사람 작가가 그런 사람이다.

소설가가 아니라 글을 쓰는 작가라면 누구나 세상의 이야기를 공평하게 인정하고 귀를 기울이고 빈여백을 채워가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다고 내가 아는 세상을 제외한 더 큰 우주가 엄연히 존재한다. 더구나 바로 당신 곁에 조금만 고개를 돌리고 몸을 뒤틀면 보이는 그곳에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독자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내 세상을 조금씩 밀어내어 넓혀가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글에 대해 쉽게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쉽게 판단하지는말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니터를 통해 손에 쥔 가상세계속으로 쉽게 뱉어낸 말때문에 누군가는 곰을 두려워하고 곰과 관련된 모든 것이 두려워질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이제 그만 쓸 수도 있다.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아이를 키우고 일상을 살아가며 조금씩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

글을 읽으며 그 속에 단하나 내가 지지할 수 있는 문장을 찾는 사람들

쓴 사람에서 읽는 사람으로 이어지는 단하나의 문장들에 대해 생각한다.

글을 읽는다는 것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저마다 다른 의미가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누구든 나와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과 그럼에도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다는 기대감 그리고 이 책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게 할 한개의 문장이다.

매번 모든 책이 나쁘지 않았다고 믿는 나는 수준있는 독자는 아니어도 적어도 꽤 진지한 독자는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이 대체로 큰 희생의 결과로 위대해지곤하지만 그걸 치르겠따고 결심하는 순간에는 의외로 작고 평범하며 개인적인 이유가 작용하기도 한답니다.
- P182

나는 말이지요 세상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나 뛰어난 위인 있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이리 툭 튀어나온 송곳처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뭐 낭중....
가죽을 뚫고 나온다 하던데 그러나 뚫고 나오면 뭐할거냐고, 수틀리면 잘라내버리지 않나, 나는 한 개 한 개의 송곳이 유난히 튀어나오기보다 그 걸 감싼 가죽이 튼튼하길 바랍니다. 한 개의 송곳이 뾰족 뚷ㄱ고 나오지 않아도 되는 질기고 억센 가죽 주머니를 윈해. 사람이 이대하지 않고서도 사랑이 위험하지 않고서도 그 꼴이 유지되거나 아루어지는 자리를 바래요. 그 누구도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복면을 쓰거나 전진 타이즈를 입지 않더라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곳을 요
- P183

그러나 당신은-- 세상에 있는 사람의 수만큼 이야기가 존재하고 그 누구 할 것 없이 자신이 하번 입을 열기 시작하면 대하장편으로도 모자란다는 이들이 숱하며 제아무리ㅣ 어떤 사고뭉치나 가해자였더라도 아름다운 대상으로 화장하여 경의의 대상으로 등극시키는 다양한 술법들이 횡행하는 가운데 어째서 당신에게만 이름이 없고 아무런 이야기가 없는가 어째서 당신은 그 어떤 남루하고 상투적인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가--여기 누운 사람 중에 그 만한 사정 없는 사람도 다 있나? (중략)
나는 눈앞의 사람에게 온 힘을 다해 존재의 이름과 더불어 새로운 서사와 질서를 부여한다. 그것이 세상 어디서도 온전한 자신의 몱을 인정받지 못하는 대필작가이자 기획작가이며 짜집기 전문 이야기꾼으로서 집필노동자인 내가 이 세상에서 건넬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다.
- P213

자부하기도 민망하지만 나는 내가 그동안 그녀를 비롯한 여성들을 댇함에 있어서 꽤 모범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여자를 돈 주고 사본적도 없고 원하지 않는 여자를 건드린 적 없다. 따로는 여자가 원하더라도 술에 취한 사람은 손대지 않았다. 아이돌 몰카 동영상 같은거? 그래 그거 좀 친구들끼리 구워 보고 돌려 보고 품평했따. 직접 찍어 돌린 것도 아니고 출처 모를 걸 받아다 돌렸는데 그 정도도 안하는 남자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취기로 내 목소리가 내 귀에 안들리는 바람에 점점 언성이 높아졌는지...(중략) .. 말 끝마다 여자가 같은 소리도 팀원들에게 습관적으로 뱉어본 적 없어. 치마 길이에 핀잔을 준 적도 없고 회식때 술 쏟아서 닦아준 것 외엔 무릎에 손대보 적 없고 그마저도 내가 일부러 쏟은 게 아니라고..그런데도 자꾸만 내가 모르는 장소에서 나도 모르게 잘못한 게 뭐가 있지? 같은 생각을 하게 돼. 그럴 만한 일 뭐라도 확 저질렀어야 조금이라도 덜 억울할 거 같 - P153

뭐 알고 지내온 동안 네가 평타 이상 치는 사람이었다는 건 인정하겠는데 말이야 그건 이 사호가 말하는 평타의 허들이 워낙 낮아서가 아닐까 너 나름대로 퍽 준수하다고 여겼던 그거 옵션이 아니고 기본인 건 알지? 그거 인정하고 싶니? (중략) 하지만 그렇다고 칭찬받을 일도 아니지 그전까지 네가 나름대로 애썼다고 자부심을 피력한 부분은 사실 ‘고작‘ 내지는 ‘최소한‘에 속하거든 그걸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은근히 있다는 것부터가 에러라고 그리고 피해자가 되는 건 반드시 그럴 만한 일을 해서가 아니야. 내가 삼십오년동안 너희 김팀장 같은 자들의 마수에 얼마나 자주 노출되었는지 너는 상상도 못할걸 아니 이제는 짐작가능 하려나? 네가 가졌으면서도 호읍만큼이나 당연한 까닭에 가진 줄도 몰랐던 반푼엋 권력을 박탈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말이야. - P154

누구도 정주를 알지 못하며 정주 또한 그들을 모르는 세계에서의 불안과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나 실상은 아는 것이 없는 세계에서의 안식 가운데 선택을 요하는 ㅁ누제에 불과했다. 환멸과 친밀은 언제라도 뒤집을 수 있는 값싼 동전의 양면이었고 이쪽의 패를 까거나 내장을 꺼내 보이지 않은 채 타인에게 절대적 믿음과 존경과 호감을 얻어낼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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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매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8
김금희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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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프라이빗한 것이지만 동시에 쑈잉이기도 하다.

 

사랑은 두 사람만의 관계이고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에너지의 흐름이며 충돌이며 생성과 소멸 그 사이의 여러가지 과정들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 드러나는 모습이기도 하다

사랑을 하는 것은 당사자 둘이지만 사랑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주변인 그리고 그 주변의 불특정 다수가 될 수 있다.

지극히 사적인 관계인 동시에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관계이다.

사랑이 생성하고 자라고 갈등하고 다시 서서히 소멸해가는 과정은 그래서 두 사람의 에너지만큼이나 주변 사람들이 눈길 간섭  지나가는 한마디를 빼고 말 할 수 없다,

사랑이 보다 싱싱하고 건강하게 오래 지속되기 위해서는 둘의 에너지와 열정 못지 않게 주위의 여러가지 환경적인 요인이 필요하다.

밀실에서만 꽃을 피울 수는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재훈과 매기의 사랑은 일단 두 사람의 프라이빗한 관계에서 시작하지만 쇼잉으로 나갈 수 없다.

물론 예전 재훈이 입대하기전 짧게 두 계절을 사귀었던 사이였지만 다시 만나 사랑하는 관계에서 재훈은 나이를 먹었으나 그 환경이 그대로라면 매기는 (우리는 여기서 그의 다른 프라이빗을 전혀 알 수가 없다) 결혼을 했고 아이가 있는 상황으로 환경이 변했다.

속된 말로 유부녀와 총각의 그렇고 그런 얼레리 꼴레리한 사랑은 누구에게든 자랑스럽게 내 보일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조금 제정신이 아닌 다음에야...

둘은 늘 걸었다고 한다

함께 나란히 손을 잡고 같은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고 그냥 사이를 두고 늘 한 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 우리는 아무 사이가 아니어요~ 하는 포즈를 취하며 그렇게 걷고 걷고 또 걷다가 지치면 어딘가에 앉고 머무르고 그리고  규칙적인 운동처럼 섹스를 하고 헤어지는 사이

제주도에서 일 때문에 올라오는 매기는 른 무거운 보스턴백을 들고 다니지만 아무사이도 아닌 것처럼 보여야 하는 재훈은 한번도 그 가방을 들어 준 적이 없고 매기도 들어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고 그 가방의 무게만큼 그리고 두 사람이 멀찌기 떨어져 걷는 거리만큼 그리고 그렇게 무심하게 걷고 걸어온 거리만큼 벽이 있고 울타리가 있다.

사랑하는데 사랑한다는 걸 누구도 알아서는 안되고 누구도 눈치채게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정해야 하는 룰도 많고 복잡하다.

사랑인데.. 사랑처럼 보이지 않는것

아니 연애인데  연애처럼 보여서는 절대 안 되는 것

그래서 확 타오를수는 있지만 지속되긴 어렵다.

꽃이 피려면 줄기와 가지와 뿌리도 필요하지만 바람도 햇살도 새들도 벌레들도 필요하다.

꽃이 피지 않은 연애란 그냥 서걱거리는 몸짓에 불과하다.

어쩌면 주변 모두가 연애의 냄새를 맡고 짐작하고 침묵할 뿐인데 정작 둘만 모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비밀연애가 그렇다. 둘만 비밀이라고 지랄지랄을 하지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것.

 

당연히 첫 장 첫 문장에서 부터 흐르는 그 비밀 스러울 수 밖에 업슨 불륜같은 (아니 불륜 그자체)의 연애는 오래가지 못한다. 끝을 누구나 알고 있다.

이런 관게가 계속 될 수는 없다.

에전 매기의 편지 글처럼 미래라는 것은 지금 현재의 지속되는 상태일 뿐인 것처럼

둘은 현재는 있지만 미래가 없다.

따로 아주 눈이 뒤집혀서 끝까지 가는 연애가 있기도 하지만 그럴 경우는 철저하게 당할 것을 각오하고 쇼잉해버려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쇼잉에 몸을 사리는 매기와 그런 태도에 별 불만이 없는 재훈의 관계는 이렇게 뜨뜻미지건하다가 끝내는 게 맞다.

이게 끝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가도 너무나 허무한 지점에서 그냥 끝! 하고 마감되는 것이다.

이렇게도 지리멸렬한 관계속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해 치뤄야 하는 셈이 있고 견뎌야 하는 무게가 있다.

쉽게 연애하는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 묵직하게 떨어지는 무언가가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누가 연애하는 걸 알아보는게 싫었던 적이 있었다.

분명 두 사람은 좋아 죽었고 한시라도 안보면 유치하게 애타던 시간들을 보냈지만 딱 그건 두 사람의 문제이지 누군가에게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렇게 누구에게도 쇼잉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동시에 언제든 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어짜피 끝이 날 것인데 소문 날 필요없고 호사가의 입담에 오르내릴 필요도 없고 모두가 짐작은 할지 모르겠으나 드러내놓고 말하기엔 뭣한 그런 것으로 묻어두기로 하고 시작하는 연애

그건 끝을 알지만 그 끝이 참 씁쓸하다.

누구때문일까

끝 난 연애를 두고 두고 생각한다.

이렇게 찌질하게 끝나버린 연애를 두고 그 책임공방에 혼자 머리가 시끄럽다.

차라리 만나지 말았어야 할 것을

그때 스쳐가버렸어야 할 것을

재미 삼아 몇번 만나고 말일은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으면서 언제든 끝낼 수 있다고 믿었으면서

막상 끝에 다다르면 그 책임을 누군가에게 묻고 싶고 누군가에게 따지고 싶고 그리고 스스로 몸서리치게 후회스럽고 분하다.

그 순간 그냥 딱 그 시간만큼을 잘라서 태워버리고 싶을만큼  이를 뿌드득 갈며분하고 억울해서 밤을 꼴딱 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한 참 후에 다시 생각한다.

그 시절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내 삶이 시시했을까?  얼마나 따분하고 밋밋햇을까

짧았지만 누군가를  미친듯이 사랑했던 기억들, 그래서 제정신이면 하지 못할 행동들과 말들을 기억하며 혼자 얼굴을 붉히기도 하지만 그 유치찬란하게 에너지가 끓어 넘치던 시간들에 감사한다. 좋은 기억을 주어서 고맙고 그 시간을 혼자 견디지 않게 해주어서 고맙고 그리고 사랑한다는 느낌 그 자체에 푹 빠질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누군가 대상없이 감사할 뿐이다.

 

재훈이 제주도까지 내려가 오래오래 유기농 가게  맞은 편에서 지켜보고 있던 시간들이 언젠가는 참 따뜻하고 충만하게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만나 결혼식 부페를 먹으며 소화가 안되는 시기를 거칠지라도

조금 더 살고 조금 더 무뎌지고  늙어가면서 좋은 시간이었노라 할 때가 분명 온다.

사랑은  그리고 연애는 안하는 것 보다는 하는게 낫다.

그 순간 찌질하고 힘들고 억울하고 미쳤을지라도...

 

사랑이 연애가 성공이냐 실패냐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결혼까지 이어지면 성공이고 헤어지면 실패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그리고 그 시간이 채워졌는가 그것으로 충분하다.

당근의 무게 무의 무게처럼 휘청거리는 순간을 견디며 짊어지고 가는 것

개미들처럼 무엇이 목적인지 모르채 다들 가는 길로 낑낑거리며 기어가는 것

삶은 그런 것일진데

연애가 없어서야...

그것이 사랑이든 아니든  그 무게가 삶을 다 나쁜 길로 인도했든 아니든

삶은 누구나 그렇게 견디고 그 견딘 시간을 기억할 뿐이다..

 

재훈의 입장에서 본 매기 말고

매기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500일의 썸머>에서 썸머가 모든 남자들에게 쌍년으로 남았던 것처럼 어쩜 매기 역시 책을 읽는 남성독자에게는 그렇게 기억될 수도 있겠다.

그러면 좀 어떤가..

꼭 찌질한 것들이 헤어진 연인을 그렇게 기억하고 스스로 정신승리하더라만...

매기의 연애는 재훈과 어떻게 달랐고 어떤 무게로 견딘 거였는지 몹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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