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지키다
오사 게렌발 지음, 이유진 옮김 / 우리나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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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부끄러웠다.

언제까지 니 이야기를 할꺼야? 이제 할만큼 하지 않았니?

라는 생각을 나도 했었다.

감추고 싶고  없었던 일처럼 여기고 싶었을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런 가감없이 있는그대로 보여준다는게 놀랍고 감동스러우면서 동시에  힘들고 짜증스러웠던 모양이다.

남의 힘든 이야기를 듣고 공감한다는게 어떤 기간동안은 가능하겠지만

만날때 마다 자기 이야기를 그것도 즐겁지 않고 어둡고 우울하고 힘들었던 이야기만을 쏟아내는 지인은 꺼려지는 것과 같은 이치니까

<7층>을 통해 데이트 폭력을 이야기하고 < 가족의 초상> 과 <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를 통해 가정 폭력 (방임과 정서적 학대)를 이야기를 들었는데 또 뭐가 남은거야?

하는 마음이 첫마음이었다.

지금은 모든게 나아졌고 좋은 가족이 생겼고 사랑할  사람이 있는데

계속 과거의 아픔을 계속 되씹는게 무슨 도움이 되나 생각했다.

결국 나 역시 타인이었다.

끝낸다는 것 이제 그만해야한다는 것은 타인의 입장이다.

내가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면 타인의 이야기는 그렇게 마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내것이고 그 상처가 내것일 때는  마무리가 되고 아물고 흉터조차 희미해지는 시간은 짧을 수 없다. 언제든 오사가 괜찮을때 까지 되뇌이고 이야기하고 드러낼 수 있다.

이번 작품은 그렇게 상처가 아물어가는 쉽지않은  어쩌면 이제 마무리를 해야한다는 무언가 달라져야 한다는 마음이 더 힘들게 다가 올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겼다.

가족이라는게 안본다고 끝나는것이 아니고

누구나 타인에게 모질고 무책임한 자식으로 여겨지고 싶지 않을 건 당연하고

무언가 문제가 있다면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진데

그것이 사람과 사람의 문제이고 더구나 가족이고 그 가족이 그 문제를 회피하고 여전히 모른 척 하고 있다면 쉽게 정리되고 마무리 되지 않는다.

아이를 위해 참고 다가가지만 가족은 쉽지 않다.

이야기는 다른 책과 달리 짧은 이야기들로 나뉘어져 있다.

아직도 상처받은 어린 아이를 달래야 하는 오사가 있고

시간이 지나서 나이들기만을 바라는 오사가 있고

받지 못한 사랑을 주기 위해 아이에게 지독하게 집착하는 오사가 있고

결국 참지 못하고 터트리지만 결국 전전긍긍하는 오사가 있고

기억 구석에 숨은 행복했던 순간을 꺼집어내는 오사가 있고

아직 미완석이고 마무리 되지 않은 갈등과 감정이지만 이제는 조금씩 놓아가는 오사가 있다.

 

남의 아픈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

너만 아픈게 아니라고 무시하고 싶고 나도 그 못지 않다고 대들고 싶기도 하다.

굳이 아픈 걸 드러낸다고 뭐가 달라지냐고 (오사 역시 달라진 것 없다. 스스로 바뀐 것 말고) 따지고 싶고 왜 그렇게 어둡고 칙칙하냐고 판잔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면엔 그걸 용감하게 오픈하는 그녀를 부러워하는 내가 있었다.

상대가 변하기를 끝내주기를 기다려줄 수는 없다.

결국 내가 힘든 것은 내가 내가 끊어내거나 내가 달라지는 수밖에....

나를 힘들게 하는 어머니가 죽으면 나아질까 하고 참고 참다가 결국 그 어머니가 아흔 아홉에 돌아가시더라는 말... 정신이 번쩍 든다

 

다음 이야기는 비슷하지만 조금은 달라진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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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은 여섯권의 책

여섯권은 이야기중심이라기 보다 인물 중심으로 펼쳐진다.

스토리는 요약하기 쉽지 않다.

사실 별 사건은 아니고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통속적이기도 하고 상투적이기도 하다.

자기만 모르는 자기의 이기심

엄마와 딸이 서로에게 자기만 참고 견딘다고 믿으며 소극적으로 상처를 주고 받는 것

지금이라고 해도 다를 것 없는 선거를 두고 벌어지는 사람들의 계략과 전술들 그리고 자기 입장에서 바라보는 타인의 편견에 가득한 모습

내가 주고 싶은 사랑만 생각할뿐 상대가 받고 싶은사랑은 생각하지않은 것

그리고 작가의 자전적인 삶 (두번째 봄과 자서전은 많은 부분이 겹치고 얽힌다)

저주받은 천재의 이야기 그러나 지루한 이야기

 

이야기는 지루하기도 하고 뻔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대단하다

절대적인 선인도 악인도 없지만

이기적이지만 동시에 배려하는 인물

괸대지만 그 댓가를 바라는 인물

그건 내 모습이고 누구의 모습이기도 하다.

등장인물 누군가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혀를 차며 따라가다보면 거기에는 내가 있다.

누구에게나 다정하려는 건 성정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욕먹고 싶지않은 마음이 우선한 것이었고

타인의 문제를 지적하는 건 정의감이 아니라 질투였거나 뒷담화를 하고싶었고

내가 이렇게 사랑하고 헌신하는데 받아주지 않는 상대방이 모든갈등의 원인이었다.

모든 상황의 중심에 내가 있고 내가 그 기준값이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돈다.

 

1. 두번째 봄

이 책은 저자의 자서전적인 이야기다. 크리스티의 자서전을 읽었다면 많은 부분이 겹친다는걸 알 수 있다. 유년시절, 아버지의 죽음. 집을 지켜내는 일. 어머니. 그리고 전쟁 결혼  출산과 이혼까지 자서전이 솔직했다면 이 소설도 가감없이 솔직하다.

누구나 그렇지않을까만 그녀도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했다.

이 책을 읽으며 박완서를 떠올린다

전쟁을 겪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 시작한 글쓰기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무심하게 흘리지 않고 꼭꼭 기억했다가 글로 풀어내리라는 은밀하고 강한 소망까지 닮아 있다. 기록하고 싶어서 기록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기록하지않을 수 없어서 소설을 쓰게 된 두 사람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마음..그 결심이 부럽다.

크리스티가 명성을 얻은 건 추리물이지만 그녀가 쓰고 싶었던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고생각한다.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

한 사람 속의 다양한 모습

작가가 되어 어쩌면 그녀는 자기의 삶을 공개적으로 그러나 조금은 의뭉스럽게 정리하지  않았을까

자서전에도 나오고소설에서도 나오지만 삶의 모양새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선택이다.

그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다

 

2. 장미와주목

읽는 동안 누가 주인공일까 생각했다.

그러나 누가 주인공이어도 상관없었다.삶에서 누구나 자신이 주인공일테지만

시간이 흐른 후 내 삶을 돌아볼 때 누군가 타인의 영향이 너무 커서 그를 빼 놓고는 내 삶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야기를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바라볼 곳인가. 그 순간 주인공이 결정되고 이야기의 성격도 결정된다.

화자인 휴 노리스가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그를 매혹시킨 상대는 게이브리얼이다.

계산적이고 냉혹하고 잔인한  그러나 더 할 수없이 솔직하고 본능적인 인물이다.

노리스의 입장에서 게이브리얼은 악인이다 그렇다면 게이브리얼이 본 노리스는 그저 불행한 장애인이었을까?

우리는 화자의 입장에서 인간을 보고 상황을 판단한다.

결국 내가 아는 건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의 풍경뿐이다

그것으로 전부를 판단할 수 밖에 없지만 전부를 단정짓는 일은 언제나 끔찍하고 오만한 일이다

 

" 욕심많고 이기적인 인간은 세상에 아무런해도 끼치지않아.세상에 그런 인간의 자리는 충분하지  (중략) 이상에 도취된 인물이야 말로 평범한 인간들에게 고통을 주고 아이들을 굶주리게 하고 여자들을 괴롭히지 . 그들은 자신들이 그런 일을 하는 지도 모르고 안다고 해도 개의치 않네

하지만 자기 본위의 욕심이 많은 녀석은 큰 해를 끼치지 않아"

 

게이브리얼은 솔직하고 직선적이며 큰 이상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지금 눈앞에서 누군가 곤경에 처하거나 힘들다면 나서게 되고 그로 인해 명성에 흠이 가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중요한 건 그런게 아니다.

게이브리얼을 국회의원으로 만들려는 사람들 그들이 어쩌면 더 큰 야망을 가졌다

자기 본위의 일상을 충실하게 살았던 게이브리얼은 어느 순간 더 할 수 없는 악인이 되지만

그것 역시 노리스의 관점일 뿐이다.

게이브리얼은 뻔뻔한 짓을 했을 때는 명성이 높ㅇ아지고 딱 한번 발휘한 돈키호테식 기사도가 그를 주저앉히는 상황을 부른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불쌍한 여자를 동정해서도 안되고 인간을 보아서도 안되며 이상과 가치만을 부르짖어야 한다

 

" 나는 악 자체가 존재한다고 믿지 않아요. 이 세상의 해악은 약자들이 볼러오는 거예요.

 그들은 선의를 지니고 아주 낭만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요. 난 그런 사람들이 두려워요. 그들이야 말로 위험하니까 암흑같은 바다위를 떠다니다 멀쩡한 배를 침몰시키는 표취선 같아요"

 

결국 게이브리얼은 폭력적이고 오만했지만 그들이 그를 미워하고 잊게 된건 그가 이방인이었기때문이 아닐까  선거에 이기기 위해 영입했던 사람, 이용가치가 있어 함꼐 했던 사람,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할 가치가 있는 사람일 뿐 진정으로 대한 것이 아니다.

그의 마지만 반전이 충격적인건 게이브리얼을 이용할줄 알았지 알아보지 못했기때문이기도 하다.

 

뱀다리로 ... 여기 나오는 인물 밀리 버트는 전형적인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다.

피해자인 동시에 모든 문제가 자기로부터 나온다고 믿고 모든 잘못을 자기에게 돌린다.

남편의 폭력도 동네에 떠도는 풍문도 모두 자기 탓이다.

그러나 무엇하나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할 수도 없다. 그녀의 죄책감은 스스로를 갉아먹고 주변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준다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런 패턴을 버리지 못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나쁜 남자들을 반복해서 찾게 되고 동정하고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또 다시 자책한다. 

시대는 달라도 성격유형은 다르지 않고 권력에 대한 욕심도 다르지 않다.

소설속의 선거운동은 지금의 것이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3.  사랑을 배우다.

 

지나친 연민은 모욕이다.

그것은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연민은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해악을 끼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연민을 느낀다면 그냥 내버려 뒤야 한다. 그를 신의 손에 맡길 뿐이다.

이야기는 지루한 편이다.

큰 흐름이 없다

완벽한 오빠가 죽고 이제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싶었던 아이는 뜻밖에 동생이 생겨버린다.

동생이 죽기를 기원했던 아이는  위기가 닥쳤을 때 본능적으로 동생을 구하고 그 아이를 위해 남은 생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자신을 모두 바쳐 동생을 사랑하기로..

 

넌 사랑을 주고만 싶지 받고 싶지는 않은 거야

사랑을 받는다는 건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거야

 

그 사랑은 무겁다.

노라가 베푸는 사랑은 동생을 숨막히게 하고 견디게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죽음으로 내몬다. 그게 다 노라 탓이냐고 할 수도 있다

노라도 어쩌면 불행한 희생자다

부모에게 나를 사랑해달라고 떼쓰지 못했고 그래서 조금은 옆으로 비껴서 있었고 요구를 참고 견디는 법을 먼저 배웠다.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은 누군가에게 주기도 힘들다. 내가 아는 사랑이 전부이다.

다른 형태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불행의 시작이다

노라의 잘못도 아닌데. 노라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밖에없어서 애닮다.

 

4. 딸은 딸이다

 

가족은 가장 의지하고 가까운 관계인 동시에 쉽게 끊어낼 수 없는 관계이기에 가장 많이 상처를 주고 받는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녀를 위해 자녀는 부모를 위해 서로 자신이 가장 많이 참고 희생하고 견딘다고 믿는다. 말로 끊임없이 부담을 주는 부류도 있고 절대 드러내지 않지만 스스로의 희생을 세며  댓가를 바라기도 하고 가족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알거라는  불가능한 기대를 걸기도 한다

가까워야 한다 라는 명제가 모두에게 다르기에 가족은 견뎌야 하지만 견디기 쉽지 않다

 

세라와 앤은 세상에 단 둘이 남은 가족이다,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에게 최우선이며 전부다 그러나 서로는 각자의 인격체이고 서로 다른 존재이며 제각각의 취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둘은 서로가 자신이라고생각한다

분리되지 못한 모녀는 "상대를 위해" 간섭하고 삶에 기꺼이 끼어들기도 하고 정작 필요할 때는모른 척하며 사이를 벌여간다.

앤은  세라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포기한 희생을 했다고 생각하고

세라는 앤을 위해 수단을 다해 위험으로부터 구해냈다고 믿는다.

그들의 믿음은 그들의 것이다

스스로에게 가장 자랑스럽고 뿌듯한 믿음이다. 그것은 타인에게는 닿지도 않으며 상처가 된다는 것조차 모른다. 알았다면 후회했을까? 아니 화를 내고 더 상처를 입고 허우적거리며 상황을 악화시켰을 수도 있다.

앤이 만난 소소한 행복이 될 재혼은 세라읭 반대로 깨어지고  세라의 결혼 선택은 앤의 무관심으로 불행으로 치닫는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그저 내가 상대를 위해 희생하고 다 해주었는데 알아주지 못한다고 조금씩 어긋나고 있을 뿐이다.

끝으로 치닫기 전에 서로는 충돌하고  솔직하게 미움과 서운함을 드러내면서 서로를 알아가게 된다. 결국 부딪치고 싸우고  내가 너를 미워한다고 말해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왜 미워하는지 왜 미움을 받는지 알아야 고치든 설득하든 관계를 끊어내든 할게 아닌가

사랑도 숨길 수 없지만 미움도 숨길 수 없다

소설속에 꽤 괜찮은 직설적인 상담가가 등장한다

 

희생이라니 얼어죽을 희생

희생의 의미가 뭔지 잠깐이라도 생각해 봐 그건 따뜻하고 관대하고 기꺼이 자신을 불사지르겠다는 기분을 느끼는 영웅적인 한순간이 아니야. 가슴을 칼끝에 내미는 희생은 쉬워

왜냐하면 그건 거기서 자기의 본 모습이 훌륭해지는 순간 끝나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희생은 나중까지 온종일 그리고 매일매일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쉽지 않아. 희생을 하려면 품이 아주 넉넉해야지. 앤은 충분히 넉넉하지 않았어

 

전 세라를 위해 제 인생 전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를 포기했어요. 그런데 로라는 그걸로 충분하지 않았다고 하시네요

 

난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모두 제 잘못이라는 거잖아요.

 

우리 인생 고민거리의 절반은 자신을 진짜 자신보다 더 좋고 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생기지 내가 앤이라면 리처드를 포기한 것이 세라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자기 마음의 평화때문이었는지 생각해 볼거야.

 

아이를 키우며 깨달은 것 하나

아이를 위해 걱정하고 안달하고 그의 고민을 내가 끌어안고 해결해주어야 할것같은 사명감을 느끼고 피곤해하고 힘들어하는 것은

아이를 위한  오롯한 희생이 아니다.

그렇게 라도 해야 내가 엄마 역할을 하고 있다는 스스로의 위안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엄마니까 이정도 희생은 이정도 부담은 당연하다. 라는 것이 스스로 내가 제대로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아이는 희생을 먹고 자라지 않는다.

아이는 희생하고 힘들어하며 견디는 부모를 원하지 않는다.

부모 역시 희생하고 참고 말잘 듣는 쉬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

부담이 되지 않고 편안하고 언제나 기댈 수 있지만 언제든 죄책감 없이 떠날 수 있는 존재를 원한다. 언제나 옆에 있으면 좋지만 떠나도 서운하지 않고 개운할 수도 있는 관계를 원한다.

그러나 그런 단순하고 깔끔한 관계는 늘 부족해 보이고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서 쉽게 뭉개지고  누굴 위해서인지도 알 수 없는 책임감과 최선을 다하는 것만 남는다.

서로 피곤하다.

어쩌면 서로를 위한 희생이라고 믿으며 서로를 구속하는 것이 어떤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 큰 폭력일 수도 있다.

 

5. 봄에 나는 없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자기자신을 마주하는 것밖에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나의 속 깊은 곳까지 들여다 본다면 진실이 보일까

어쩌면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덜이 모두 거짓이고 꿈일지 모른다고  반대로 환상일거라고 믿었던 것들이 진실일 수 있다.

내가 나의 위선과 허식을 마주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모두 다시 구멍속으로 몰아넣어버리면 그만일까

나를 알고 내가 주었던 상처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익숙한 습관과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까

나만 나의 실체를 알지못한 채 그렇게 삶을 마감한다는 것은 두렵다.

나를 안다는 것도 두렵고 나를 모른다는 것도 두렵다.

나는 내가 잘 알아... 이말은 진실도 아니며 오만이다

나는 누구지? 이건 삶이 지속되는한 계속되어야 할 질문이다.

안다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나를 바꾸는 일이다.

사람은 조금씩 변해가는 존재이지면 결국은 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존재이다.

단순하지만 섬뜩한 내 모습이 그녀의 모습이다.

 

6. 마음의 양식

지루하다.

타고난 천재라는 건 매력이 없다.

재능이 인간을 선택하고 그 밖에 다른 기회를 모두 막아버리는 일... 그것이 천재라면 그렇게 부럽지도 않다. 버넌의 재능은 오랬동안 스스로가  부정했고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건 자기가 선택하고 싶은 행복과 상반된다.

그게 재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버넌보다 그 주위의 인물들 조. 넬 그녀들이 오히려 흥미롭다.

속물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조연으로 물러난 넬의 삶이 더 관심이 간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지는 알겠지만 ... 재미난 스토리도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삶에서 내가 선택받는 부분과 선택하는 부분..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삶은 그 시점에서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애거사 크리스티가 현재에 살았다면 소설보다 드라마를 쓰지 않았을까

이야기도 좋지만 인물과 대사가 매력적이다.

추리물에서도 그랬고  다른 소설에서도 그렇고 완벽하게 선악을 나눌 수 없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 어떤 순간에는 더 할 수 없이 선량할 수 있는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상황에서는 돌변한다. 사람이 그렇지 아니한가

아수라백작처럼 달랑 선악의 두가지 얼굴을 가진 것이 아니라

악에서 선까지 변해가는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천사처럼 순수한 모습이나 더 이상 무엇을 더 첨가할 수 없는 완벽한 악이 아니라 보이는 위치에 다라 시시각각 변하는 빛처럼 다른 색깔 다른 질감 다른 농도를 가진 사람들이다.

 

 

처음 책들을 읽었을 때는 좋아하는 작가의 다른 모습을 보는게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이유가 착각이 아니었구나 하는 마음이 있었다.

다만 읽을 수록 비슷비슷한 분위기에 조금 지루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다 읽었다는 대서 뿌듯한 만족감을 얻었다.

그때도 무언가를 끄적였는데 그냥 그러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뭔지 정확하게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막연히 불안하고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이 계속되었다.

책읽기도 재미없고 영화도 보고 싶지 않고 누군가를 만나서 수다를 떠는 일들이 시시해졌다.

일상은 평온하게 살아가지만 혼자인 시간이 되면 끝없이 가라앉아서 안자던 낮잠을 자고

먹는게 귀찮아졌고 리모컨만 돌리고 있었다.

세상에 책은 끝없이 쏟아지는데 남들이 좋다고 하는 모든 책을 욕심스레 읽을 이유가 뭐가 있나 싶었고 굳이 뭔가를 읽는다는게 귀찮아졌다

소설은 어짜피 현실이 더 극적인것이고 시는 현실도피인것만 같고 사회문제나 인문학은 그저 썰만 푸는 일이거나 굳이 그렇게 콕콕 찍어주지 않아도 살아가기 팍팍하다는 건 다 아는게 아닌가

그렇게 모든 게 싫고 모든게 부정적이고 비관적이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으면서도 그저 해파리처럼 늘어지고 싶어져서

그냥 내가 손만 뻗으면 잡을 수있는 책.. 심각하지 않지만 너무 가볍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지만  너무 낭만적이지도 않은 이야기가 읽고 싶었다.

다시 읽은 아거사 크리스티는 그때와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뭐가 달라졌냐고 한다면 뭐라고 대답하기 힘들지만... 사람이 다 그런거 아니겠니? 너만 그런것도 아니지.. 그런 소리가 들린다

뭐 흔하다면 흔한 위로지만  때로는 상투적인 것이 위로가 되기도 하는 법이니까

매일이 그날이 그날이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는 게

한번 아래로 쪼르르 흐르고 나면 다시 뒤집어 쪼르르 모래를 흘려보내야 하는 모래시계 같은 나날이다. 뒤집어 졌다가 다시 뒤집어지는 반복들 그래본들 모래만 흘려내리는 단순한 리듬에서

딱  눈 감고 모래시계를 눞혀놓은 기분  옆으로는 흐를 수 없이 그냥 그대로 멈춘 시간

그렇게 가라앉아 막막하다가 그래도 다시 모래를 흘러내릴 수 밖에 없음을 받아들이고 모래 시계를 바로 세운다. 그리고 다시 반복되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다른 반복이 되길,

애거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메콧이었다가 다시 애거사 크리스티로 돌아갔듯이

그렇게 잠시 다른 멈추는 시간.

그게 필요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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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7의 고백
안보윤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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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 아니면 괜찮지 '

' 다들 그렇게 살고 있는거잖아 '

아홉편의 단편을 읽으면서 점점 명화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들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될 수 있는 상황과 인물들이 오로지 나만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그건 이기적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도 없다.

누구나 불행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걸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감동적으로 본 드라마속의 인물과 전혀 다른 경찰들이 등장해서 소년하나를 파렴치한 성폭행범으로 몰고가는 이야기나  (소년 7의 고백)

너만 아픈게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  모든 잘못은 나로 인해 - 나의 자제력, 의지, 능력의 부족-벌어지는 것처럼 몰아가는 말들 그것들이 주는 콕콕 찔러대는 불쾌하고 아프지만 말할 수없는 고통

(불행한 사람들)

내 일이 아니니까 모른 척 했던 일과 내가 한 일이 아님에도 모든 비난을 뒤집어써야하는 일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그 속에 내가 갇혀버린 상황 ( 포스트잇)

불행의 원인을 누구에게 떠밀지 않으면 견딜수 없는 상황들

모든 것이 내탓은 아니가 니탓이라고 밀어버리고 싶은 본능과 아무데도 밀어낼 수 없어 구석으로 몰린 약한 아이들의  밑도끝도 없어진 수치심과 죄책감 (여진)

내가 밀려나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밀어내야만 한다는 강박

원인-결과가 아니라 결과에서 도출되는 원인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이유를 붙여대는 인물의 이야기  (이형의 계절)

내게 중요한 일과 소용없는 일을 적확하게 구분하게 만드는 말 '중요한건 그게 아니지' 결국 몽골리안의 시력을 가지고도 볼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 ( 때로는 아무것도)

모두가 일그러진 부분을 가지고 있으면서 타인의 불완전한 모습만 보는 사람들

바닷속에서 외롭게 돌아가는 소금 맷돌과  길을 막고 선 차들로 인해 아이의 죽음을 그대로 지켜봐야하는 부모  나의 이기심과 뻔뻔함의 죄를 대신 뒤집어쓴 아이.. 세상은 기울어져 있고 일그러져 있고 느닷없다 ( 일그러진 남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그래서 아무것도 될 수 없었던 배우 이야기 ( 어느 연극배우의 고백)

 

이야기 하나를 읽고 그만 덮어버릴까 ... 한참을 고민하다가

또 한 이야기를 읽고 이젠 정말 그만 읽을까 하다가 또 다시 읽기 시작했다가

그냥 내리 다 읽어버렸다.

기왕 아플거 불편할 거 그냥 내쳐 겪어내고 말자

단편들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건들의 나열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을 섬세하게 쪼개놓고 보면 그 하나하나 아귀가 맞아지기도 한다.

귀찮은 일  불행의 냄새를 풍기는 일 아파보이는 일은 피하고 싶다 그러나 아무도 나의이런 모습을 알지못하면 좋겠다. 나는 정의롭고 공정하고 꽤 괜찮은 사람이고 싶지만 그건 내 주위가 평화롭고 안온하며 느긋한 상태에서만 가능하다는 걸 안다 그저 내가 눈감고  몸을 돌리고 담장을 침으로서 유지할 수 있는 인격이다.

내 일이 아니어서 어떤 사건도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았고  나쁜 짓을 하는 걸 번번히 목격했으므로 결국 사건의 주범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못생기고 성격이 불안하고 행실에 문제가 있기때문에 파양을 당해도 어쩔 수 없을 것이고  남의 가정사에는 끼어들지 않은 것이 예의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그건 나와 하등의 상관이 없을 거라고 믿는다

끔찍한 살인은 잘못이지만 공동주거생활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도 옳지않다고 나는 스스로 선하면서도  무심하고  냉혹한 심판관이 된다.

왜냐면 그건 나와 전혀 상관이 없으니까

소설을 읽고 혀를 차고 비난을 하고 판단을 내리는 나는 소설속 모든 상황과 인물과 나를 철저하게 분리시키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 다르지 않다

쉽게 돈을 벌수 있다면 혹할 수 밖에 없고

문제아들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킨다고 단단하게 믿고 있고

개인의 의지가 문제이기에 하면 된다는 유행지난 구호를 믿고 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판단한다.

상대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사실대로 내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고 골라가며 보고 듣고 판단하는 사람이다

어디에나 있으면서 아무데도 없다.

좋은 사람인 척  알고 있는 척 등등 누군가인척을 잘 하는 동시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말간 얼굴도 할 수 있다.

사람은 악한 사람 좋은 사람으로 나뉘지 않는다.

일은 행복과 불행으로 딱 잘라 구분할 수 없다.

좋은 사람과 악한 사람사에에 무수하게 많은 유형의 인간들이 존재하고

행복과 불행 사이에 다양한 감정과 기분들이 존재한다.

모두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상황들을 보여준다.

다만 내가 보는 것 아는 것은 일부이다.

 

소설을 읽고 나면 불편하다.

이러이러한 사회적 이슈를 드러내는구나.

소년범죄. 젠더차별적인 것 계층의 문제 타인을 용인할 수 없는 이기심

불안과 애착의 문제가 있구나 등등  얼마든지 잘난 척 하면서 판단하고 이해하고 읽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잘 난 척을 할 수 있는 건 철저하게 나와 이야기를 분리할 때 뿐이다.

이야기는 나와 다르지 않다.

내가 그 이야기속에 등장인물이고 그들이 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편한 이야기들이다

그럼에도 읽을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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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 우리 모두의 진짜 자존감을 찾는 심리학 공부
김태형 지음 / 갈매나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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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이 각자가 알아서 채워야할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에 동감. 그간 심리학이 개인적인 성찰이나 성장을 요구했다면 저자는 그것만이 아니라 건강한 사회로의 회복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내잘못이라고 내문제라고 탓하지 말고 함께 행동하기
자존감은 타인과의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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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 남성, 여성 그리고 강간의 역사
수전 브라운밀러 지음, 박소영 옮김 / 오월의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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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건 성폭력이 아니라 불륜이지. 서로 좋아서 하다가 뭔가 틀어진게 분명하다니까"

" 미투가 변질되고 있어  아무나 미투라고 엄한 사람 잡는거 아니야"

"쫌만 조심하면 되는거 아니야? 한번은 그렇다치더라도 당하는 걸 뻔히 알면서 또 같은 곳엘 가는 이유가 뭐야 그것도 배웠다는 사람이 뭔가 있는게 분명해"

"부끄러운 줄 모르고 뭘 그렇게 나대는 건지... 그런 일이 있었으면 창피해서라도 입을 닫고 있어야지"

"남자들은 그걸 못참는다니까.. 원래 그런걸 알아서 조심해야지"

"여자들 중에도 출세를 위해 몸부터 들이미는 경우가 있다니까요. 먼저 그렇게 덤비면 누가 가만있겠어?"

 

남의 말은 참 쉽다.

내 일이 아니라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고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예전 아이가 어릴 적  길가에서 무심하게 나를 보고 달려오던 아이앞으로 자전거가 휙하니 지나갔다. 부딪치진 않았지만 순간 휘청 아이가 넘어졌다.

맞은 편에서 그 장면을 고스란히 보고 있던 나는..그걸 보면서도 움직일 수 없었다.

얼른 달려가 아이를 잡아 안아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두 다리는 내것이 아닌것 처럼 무거웠다.

냐중에 들은 남편이 책망했다.

"엄마라면 그 순간 번개같이 나서야 하는거 아니야? 그걸보고만있어"

난 엄마가 아닌 걸까? 모성이 부족한 걸까? 내 몸부터 생각한건가? 온갖 생각이 머리속에서 맴돌았고 아이가 다치지 않아서 큰 일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그렇게 내 운을 다 썼더라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등교를 하던 어느날

지하철을 타다보면 가장 끝자리가 가장 편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쪽이라도 기대서 갈 수 있다는 것과 양쪽으로 타인이 앉지 않는다는것만으로도 끝자리가 좋았다.

어느날 끝자리에 앉은 승객이 내리고 냉큼 그 쪽으로 자리를 옮긴 날

끝자리 난간 사이로 뭔가 이상한게 보였다.

자리 바로 옆 그러니까 문옆으로서 어떤 사람이 서있다는 건 알았는데

딱 난간 사이로 보이는 이상하고 길쭉한것.

첨엔 엄지손가락인줄 알았다. 왠 손가락이 이렇게 길지?

무심코 유심히 오래 바라보았다. 정말 뭔지 몰랐다. 처음엔

위치상 뭔가 움직임도 이상하다싶은 순간 그게 뭔지 알았다.

순간 너무 무서웠다. 그렇게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서 당당하게 그렇게 성기를 내밀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몰랐다.

반도 가지 않은 지하철에서 내렸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유난히 끝자리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랑 지하철을 탈때 마다 혼자 전전긍긍이다.

어쩌면 내 앞에  남자만 서있어도 불안한게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원래 그런 걸 못참아.

생물학적으로 그래

문제가 생기면 늘 조심해라 하지 말아라라는 말들만 돌아다닌다.

치한을 만나지 않는 방법 피하는 방법

밤늦게 다니지 말고 택시를 탈때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알리고 번호를 기억하고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말고 쉽게 웃으면 먼저 꼬리쳤다고 하고 뚱하고 있으면 재수없다고 한다. 얼굴을 그대로 지워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

밤길에 마주오는 남자는 잚은 학생이어도 무섭고 늙은노인이어도 무섭다

독서실에서 늦게 오는 아이를 마중가면서 아이가 아들이 아닌게 억울했다

아이가 등교할 때 교복을 단정하게 입으면 행여 미친놈 만날까두렵고

체육복을 입고나서면 단정치 못하다고 지적받을까걱정이다

 

이 책에서 말한다

강간이란 미친놈이 성충동을 참지못해 저지르는 충동적인 행동이아니다.남성이 자기가 충분한 힘을 가지고있고 그것을 드러내고 싶고 누군가를  당연히 여성을 제압하고 싶어 저지르는 폭력이라고 ..그건 미친 짓도생물학적인 한계도 아니다.

이성적이고  생각할 수 있고 유머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온순하고 다정한  그런 평범한 우리 이웃의짓이다.  물론 그 짓을 저지르는 순간은 그런 평범한 인간은 아닐것이다.

원시시대부터 시작된 당연히 할 수있는 그럴수 있는 행위로 인식된 폭력이다

행여  강간이 문제가 되어도 그건 재수 없이 걸린 일이다 누구나 다 하는데 왜 나만그러냐고 화를 내도 당연하고 우겨도 당연하다.

 

 

 

1. 강간의 대중심리

 

 남성은강간을 할 수 있는 신체구조를 여성은 강간에 취약한 신체구조를지녔다는사실이 양성의 생리 자체를 구성하는기본 토대가된다

남성이 자신의 성기를 두려움을 일으키는 무기로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일은 불의 사용과 돌도끼의 발명과 함께 선사시대에 이루어진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꼽아야만 한다. 강간은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결정적인 기능을 수행해왔다.모든 남성들이 모든여성을 공포에 사로잡힌 상태로 묶어두려고 의식적으로 협박하는과정이 바로 강간이다.

 

2. 태초에 법이 있었다.

 

여성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기껏해야 한가지 뿐이었다.다른 여성들에게 도움을 청하다고 해도 그들은 남성 공격자보다몸집이 작고 약하기 일쑤였다. 결정적으로 여성조력자는 징벌적 보복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신체수단을 갖지 못했으며 제한된범위에서 방어 행위르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포식자 남성 중 일부가 여성을 선택해 보ㅎ자로 행동하는 경우가 있었다. 위험한 거래는 그렇게 성사되었을 것이다. 일부일처제나모성애 사랑에이끌리는 본능이 아니라 언제든 강간당할 수 있다는 공포야 말로 여성이 남성에게종속되도록 만든 최초의 원인이며 역사적으로 여성이 어떻게 의존적 존재가 되었고 보호를 댓가로 한 짝짖기에 의해 가축화되었는지 설명해주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

 

3. 전쟁과 강간

 

여성을 소유하는 거싱 남성으로서 성공을 보증하는징표였듯여성을 보호하는 일 역시 오랫동안 남성으로서 자부심을 보증하는 징표였다.그런데 점령군이 ㅓㄹ이는 강간은 패배한 쪽 남성의 힘과 소유건에 대한 환상을 모조리 파괴한다 강간을 통해 여성의 몸은 상징적인 전쟁터가 되며 승리자가 개선식을 벌이는 광장이 된다. 여성의 몸에 가하는 행위가 남자들끼리 주고받는 메시지가 되는데 한쪽에게는 승리의 산증인이고 다른 쪽에게는 패배와 상실의 산증거인 것이다.

 

전쟁중에 강간이 벌어지는 동안 남편이나 아버지가 지켜보게 되는 경우가 꽤 흔하다. 그냥 근처에 있었기 때문일 경우도 있지만 지켜보게끔 고의적으로 강요당하는 경우가 더 많다.강간하는 자의 관점에서 강간이 여성의 몸을 공격하는 일인 동시에 그 남편이나 아버지를 공격하는 행위이기때문이다. ......... 평화시처럼 전시에도 강간당한 여성의 남편은 비난받을 책임을 주로 아내가 지게 만든다. 그렇지 않아도 허상일 뿐인 부인에 대한 남편의 소유권이 침해당했다며 소유물에게 책임을 돌리고 비난하는 것이다

 

선악은 승패와 별개지만 1945년에는 정의로운 쪽이 승자가 되었다. 심판대 앞에 끌려나온 패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궁극의 악이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 기록을 살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지옥의 심연을 직접 들여다본 듯한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뉘른베르크와 도쿄에서 심판관 역할을 맡은 이들은 승자로서 그 전쟁에서 빠져나왔다. 책임이 부과된 쪽은 반대편이었다. 연합군의 잔혹 행위를 드러내고 심판하기 위해 소집된 국제 재판은 없었으며 '적'인 여성으로부터는 어떤 전쟁 범죄 증언도 수집되지 않았고 우리편이 연합군의 유죄를 입증하는 일급비밀 문서가 인정사정없이 백일하에 드러난 적도 전혀 없었다.  강간을 연구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증거가 불공정하게 편향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4. 폭동, 포그롬 혁명

 

인종주의적이거나 정치적인 함의를 띤 봉기, 폭동, 혁명과 소규모 분쟁은 남성이 강간 욕망을 배출할 기회를 제공해주는데 그치지않고 강간  실행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제공한다. 이 와중에 각각의 강간 사례는 선전선동에 이용할만한 가치가 있을 때만 증언의 형태로 보존되는데 ㅣ해자 여성이나 믿을만한 목격자의 증언부터 신문 기사 명백히 편파적인 동기로 제작된 선동 팸플릿까지 그 형태가 다양하다.

역사가들은 그렇게 보존된  대개의 강간 기록을 중요하지 않거나 신빙성이 떨어지는 기록으로 간주하며 무시하는 태도를 취한다. 간혹 내용에 생생함을 더하거나 강렬한 인상을 주기위해 강간이야기를 약간 다루는 역사책도 있지만 어쩌다 일어난 고립된 사건 이상으로는 다루지 않는다.

폭동이나 혁명 와중에 발생하는 집단강간을 국내에서 매일 발생하는 강간사건과 같은 종류의 범죄로 보는 시도는 아예 없었는데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강간이 최근까지도 일탈 행위정도로 여겨졌던 것이다. 반면 역사적 강간은 일상이 아니라 전시 잔혹 행위가 만들어 낸 지옥의 영역에속하는 사건으로 분류되었고 차라리 과장된 허구라고 여기고 싶어질 정도로 불편하고 충격적인 일이라 사후에는 실제로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 자체를 의심받았다. 게다가 우리도 알다시피 여성의 경험은 언제나 의심받고 무시당하는 현실도 이런 경향에 한몫을 더한다.강간사건이 의혹의 영역으로 강등되어 역사에서 배제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언제나 다른 정치적 동기를 가지고 강간 사건을 폭로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항상 존재했고 이들이 강간 사건의 진실여부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전망에 따라 사건을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껏드러나지 않았던 여성의 역사의 진짜 모습을 보려면 강간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수집해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정부관료나 콩고 지지파들은 강간이란 식민지 반란을 비롯해 남자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때면 늘상 수반되기 마련인 부작용이라면서 강간사태를 용인하고 이에 대한 대응을 뒤로 미뤘다. 이런 태도는  외교관과장군 군인 전쟁을 사랑하는 특파원들이 쓴 기사의 영향으로 전쟁을 바라보는 표준 관점으로 굳어버린 전쟁은 어짜피 지옥 이라는 관점을 반영하는 예일뿐이다. 한편 전쟁의 피해를 입은 쪽은 선전선동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강간 기록을 수집한다. 이 경우는 벨기에 피해를 입은 쪽이었고 벨기에는 콩고를 떠나는 식민주의자들이 독립할 준비가 아직 안 된 사랑하는 나라로 부터 무고하게 상처를 입었다는 식으로 선전선동하려고 하였다.

이런 두 관점 사이에서 휘둘리지 않으려면 강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잊지 말아야 한다. 강간이란 국적이나 인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여성을 대상으로 삼는 남성의 적대 행위이다. 그러나 그렇듯 전쟁 후 기념 과정에서도 근육을 과시하며 자리를 차지하고 않ㅈ아 남자답게 취해보는 난장판이 벌어지곤 하는데 이때 적국 국민이 아닌 여성도 강간을 당한다. 자기 방어수단을 갖고 있지 않은 손쉽고도 준비된 표적인 여성이 혐오스러운 압제자의 상징으로 서택되어 강간당하는 것이다.

콩고의 사례에서 강간은 복수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으며 그런 정당화를 가능케한 것은 여성을 남성의 재산으로 보는 뿌리깊은 사고방식이었다.

 

6. 통계로 본 강간범; 신화에서 과학으로

 

사이코 강간범이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는 사이코 살인범이 존재하는 것과 비슷하게 예외적인 존재이지 결코 강간범의 전형은 아니다. 미국의 전형적인 강제 강간범은 여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로 작정한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젊은이일 뿐이다.

 

미국의 경찰 사건 기록부에 기재된 가간범이란 따분하고 평범한 존재들이다. 막상 알고 보면 강간법의 범죄방식에는 마법도 신비도 로빈후드 같은 신출귀몰도 없다. 강간이란 폿내기들이 자기 사촌이나 아는 형과 몰려다니다가 저지르는 따분하고 멍청하며 못난 행동이지 멋지고 재치 있으며 부도덕하면서 영웅적이고  성적매력이 넘치는 한량이나 정상적인 성욕 발산수단을 빼앗긴 소심한 영혼 통제할 수 없는 성욕에 사로잡힌 초인이 저지르는일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경솔하고 예측가능하며 둔감하고 폭력 충동에 휘둘리는 이 어린 남성들의 어깨에는 일종의 역사적 임무가 짊어져있다. 바로 여성에 대한 남성의지배를 힘으로 영구화한다는임무이다.

 

8. 권력과 성폭력

 

여성이 강간에 관해 남긴 이야기는 곧 권위가 부여된 자리를 접한 남성들이 저질러 온 권위 남용의 구술사나 다름없다. 일종의 성적 치료를은밀하게 적용하는 치료사 환자가 제지하지 못하리라 여기고 평범한검진을 당혹스러운 신체접근으로돌변시키는의사나 치과의사 스타가 되고자 하는 신인의 야심을 먹이 삼는프로듀서,자신이 힘을 가진 학문의 장에서 학생의 이해관계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비틀어 악용하는 교수등등 이런경우 가해자가 육체적 힘을 사용하기는커녕 협박조차 하지 않고도 성적목적을 이루곤 한다. 남자들은 이런 사례를 유혹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권위를 가진 인물이제안한 성관계는합의에 의한 관계 혹은 등등한 관계라고 보기 매우 어렵다.

강압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그중에는 경제적 정서적강압도 포합되며 사건 발생시 피해자로 하여금 저항하기두려워하게 만들 뿐 아

니라 사건 후에도 피해자가 다른 이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게 만든다는 특징이있다. 권위있는 인물이 저지르는 강간은 권위를 존중하도록 훈련받아온 피해자를 혼란스럽게만들수 있으며 그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공모자라고 여기기도 한다. 권위있는인물은 그가 옳다는 분위기를 후광처럼 내뿜고 있어서 그 행동에 도전하기쉽지 않다 이런구도에서는 피해자가 오히려 잘못된 사람이 되어버리는데 과연 피해자에게 이것 이외에 다른 위치가 가능하긴 한가

 

가족간에 발생하는 아동 성 학대를 은페하고 그 실제 발생률과 함의를 있는 그대로 평가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성스럽지 못한  침묵은 도데체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이런 침묵 역시 강간에 대한 남성의 태도를 역사적으로 형성하고 결정해 온 성적 사유재산에 관한 가부장제 철학에 근원을 두고 있다. 여성이 남성의 가장 원형적인 육체적 재산이라면 아이들은 남성이 통째로 소유한 부속재산이었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이다 주의깊은 독자라면 이 지점에서 태초에 법이 있었다. 라는 제목의이 책 전반부 장을 떠올렸을 것이다 함부라비 법전에서 다른 남자의 딸의 처녀성을 훔친 남자는 합법적으로 살해될 수 있지만 자기 딸을 알게 된 남자는 단지 도시 밖으로 추방될 뿐이다. 상호합의를 함시하는 근친상간이라는 잘못된 명칭으로불리는 이행위는심리학자나 인류학자들이 우리에게 믿으라고 지세하는 만큼 보편적이거나 확고한 금기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근친 상간금기 아니 아버지 강간 금기는 그보다 휠씬 더강력하고아마도 더오래된 금기에 밀린다 아버지의절대적인 독재에는 그어떤 오부의개입도 없으리라는 금기지나치게과장된 주장일까? 20세기 초 워싱턴 주 대법원은 아버지에게강간당한 룰루롤러라는소녀가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을 기각했는데 가정내 관계의 조화로운 보존에 사회도 이해관계르 갖기에 법은 이런 이해관계에 기반을 둔 자식과 부모간의 소송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모든 성인 특히 남자 성인은 한 아이에게 권위를 가진 존재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어떤 자비로움을 지닌 인물처럼 가정된다. 그러나 불운한 피해자에게는 그 자비로움이 분명히 존재하지 않았다

 

9. 강간 영웅 신화

 

우리와 동떨어진 원시 부족에 대한 민속학적 연구는 강간이 남자다움을 표현하는 수단이면서 여성을 재산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신호이다.여성이 선을 지키도록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기제로 이용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은 시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사정은 전혀 다르지 않다 현실 세계에서는 조금 다를지 몰라도문화를 정의하고 지배하는 남성들의 공적 사적 환상을 들여다 보면 아직도 전혀 다를 게 없다.

집단 폭력의 방식으로 여성에게적용되는 남성연대는 최근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 아니며 특정 민족의 전통에만 존재하는 현상도 역사적으로 전시 상황이나 하층계급폭도에게만 한정되는 현상도 아니다.

 

13세기 몽고 대정복을 이끌었던 칭기스칸은 그의 지위에 걸맞게 진지한 어조로 자신의 성스러운 임무를 설명했다

"남자의 인생에서 최고의 업적은 적을 무찔러 내 앞에 끌어낸 후 그들이 가진 것을 모두 빼앗는 것이다. 그들을 사랑했던 이들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무릎사이에 있던 말을 빼앗고 그의 여자 중 가장 탐나는 이를 품에 넣는 것이다." 이만큼 영웅적 강간을 뚜렷하게 정의한 언급은 없을 것이다.

 

 

10. 여성이 강간을 원한다고?

 

"그녀가  원했다'고 말하는 것은 강간범이 자신이 져야할 비난의 짐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고전적인 수법이다.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고 허락하지 않으면서 달아오르게 만들어서 강간을 유도한다거나 부주의한 행동으로 강간을 촉발한다는 믿음이 만연한 현실이다. 남성들에게는 편리하게도 이런 현실이 자기가 저지른 행동의 실체를 가리는 연막이 되어준다. 하지만 같은 현실이 여성에게는 자기불신을 뿌리깊게 체화하게 만든다. 그 때문에 많은 어쩌면 대부분읙 ㅏㅇ간 피해자는 자신을 해친 저 끔찍한 행위를 촉발한 것이 대체 무엇인지 자신의 행동인지 태도인지 옷차림인지 알아내려 애쓰고 고통스러워하게 된다.

 

우리가 삐당한 눈으로 살펴봐야 할 마지막 격언인"어짜피 강간당할 상황이라면 긴장을 풀고 즐기는 편이 낫다" 는 강간이시체적 폭력이라는 점을 고의적으로 가볍게 취급하고 피해자가 당하는 모욕이 별일 아닌 양 깍아내리며 저항할 의욕을 꺽는다. 당신이 협조하거나 스스로 판단과 느낌을 중지시킨다면 원치 않는 성적 접촉도 즐길 수 있다는  이 농담조의 충고는 다음의 두 가지 명제에 근거한다. 1) 여성은 남성을 이길 수 없다  2) 모든 여성은 강간당하기를 원한다

여성이 강간당하기를 원한다고? 우리가 굴욕과 멸시 신체의 온전성을 침해하는 폭력을 갈망한다고? 우리가 남의 손아귀에 붙잡혀 끌려가 강간당하고 피폐해지기를 원하는 심리적 욕구를 갖고 있다고? 페미니스트가 이런 터무니 없는 문제를 가지고 씨름해야만 하는가? 슬프게도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히치콕은 무언가 알고 있다. 그의 주연 여배우들은 보통들 말하는 '예민함' 이아니라 취약성 그 자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상처받기 쉽거나 상처를 지닌 느낌을 어떤 식으로든 보여주었다.나는 히치콕이 그 자신뿐 아니라 대부분의 감독에게 적용되는 진실을 이야기했다고 본다. 헐리우드꿈 공장의 대가들은 자신의 성적 환상에 들어맞는 여주인공을 선택해왔고 그들의 환상은 곧 우리 여성들의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되어버렸다.

 

강간범들이 자신과 같은 계급이나 종족의 상태를 선호해서 그런 피해자를 고르는 것이 아니다. 강간은 기회가 생기면 저지르는 범죄이고 기회는 익숙한 환경에서 가장 자주 생기기에 같은 계급이나 종족의 상대가 피해자가 된다. 중범죄및 청소년 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지역에 사는 도시 하층계급 여성들이 그 어떤 계급보다 가장 많이 강간 위험에 노출된다 결국 통계에서 알수 있듯이 성폭행 위험에 가장 크게 노출된 여성집단은  흑인, 10대, 도시의 하층계급 소녀들이 된다. 이들이 폭행이나 협박에 기대 강간을 저지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성향의 집단과 가까이 살기 때문이다.

 

11. 강간 말하기

 

강간은 주로 남성이 여성에게 저지르는 범죄라는 속성을 갖고 정신분석이 대표적으로 보여주듯 강간이란  원초적장면을 고의로  왜곡한 결과일 뿐이라는 관념이 있다. 이때문에 남성의 법은 남성의 걱정거리를 해결해주는 일을 우선시했다 합의하에 성관계를 한 여성이 복수심이나 원한에 불타 강간이라고 주장할까봐 걱정이 된 나머지 여성의 선서나 말 증언에 의존하지 않고 범죄사실을 객관적이고 확실하게 규명할 벙버을 찬고자 했다. 그리하여 품성과 완력 두려움 동의 의지 저항처럼 서로 엃혀 있는 상대적이고 질적인 개념들을 측정하려고 애써왔다.

 

"강간은 고발하기는 쉽지만 입증하기는 어렵고 피고측에서 변호하기는 더욱 힘들다. 피고가 아무리 결백할지라도"

여성이 강간을 고발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자기가 강간당했다고 신고한 사람들은 이내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히려 피고측으로 말할 것 같으면 피고의 결백여부와 무관하게 강간사건의 피고를 변호하는 일보다 쉬운 일은 없다.

 

12. 여성은 반격한다.

 

여성 입장에서는 강간을 매우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다.

누군가가 자신의 몸에 강제로 성적으로 침입하는 일이자 사적이고 개인적인 내부 공간을 동의없이 침입당하는 일이다. 다시 일이며 한 사람의 정서적 신체적 이성적 온전함을 고의로 침해하는 행위이다. 적대적으로 여성을 비하하는 이 폭력 행위를 사람들은 강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남성의 강간 개념은 여성의 몸이 실제로 겪은 성폭력의 행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초기 법은 강간을 아버지가 소유한 딸의 처녀성을 훔치는 범죄 즉 아직 결혼시장에 내놓지 않은 상품의 가치를 훼손한 범죄로 정의했다. 그러나 법이 발전하면서 강간을 인식하는 방식 역시 변했지만여전히 고대 남성의 재산개념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강간은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이며 통제할 수 없는 욕정에 의한 범죄가 아니다. 정복자가 되고싶은 남성이 여성에게 두려움을 주고 협박하려는 의도로 계획한 비하 및 점령행위 즉 의도적으로 여성을 적대하는 폭력행위이다. 이것이 바로 강간의 실체이다.

우리 문화속에는 그런 폭력적인 태도를 장려하고 선전선동하는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한다 문화에 내재한 그런 요소들은 남성들 특히 잠재적 강간 예비군을 형성하며 쉽게 외부의영향을 받는 남성 청소년들이 폭력행위를 저지르도록 심리적으로 부추기고 그들에게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면서도 그런 행위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기는 커녕 처벌 받을 수 있는 범죄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한다  강간범을 유혹에 성공한 남자로 보는 것부터 가지가 원할때 원하는것을 거침없이 취하는 남자로 보는 방식까지 남자다움에 대한 그릇된 관념을 조장하는 강간 영웅신화가 어린 소년에게 주입된다. 남자가 된다는 것은 여자의 몸을 살 권리를 포함한 어떤 비밀스러운 통과의례와 특권에 접근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소년이 눈치채는 바로 그 순간부터 강간신화가 주입되는 것이다.

 

 

책을 읽고

그렇게 많은 강간의 기록이 남았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남은 기록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게 슬펐다.

언제나 여성의 말은 중요하지않고  무시할 수 있는것으로 치부되어 그저   흘려버려도 그만이라

기록할 가치가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여성의 목소리는 기록으로 남기지 못하고  남겨졌다고 하더라도 역사로 기록되지 못한다 자신의 권리와 존엄을 주장하는 여자들은  그저 잊히는 것뿐아니라 마녀로 미친 여자로 거리에서 비명횡사한 재수없는 여자로  후대에 경고하기 위해 겁박하기 이해 기록될 뿐이다.

전쟁으로 폭동으로 혼란으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여성의 몸을 거치고그 위에서 발생한다

신화에서 당연시 되는강간들

문학작품에서 스크린에서얼핏 보여지는강간의 환상들이 그런 폭력을 더욱 아무렇지도않게

예술이라고 하고 그저 생각없이소비된다.

 

페미니즘이 여자와 남자가 싸우자는 것이아니라고  모두가 함께 더불어 잘 살아가는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사상이라고 하지만

일단 한 번은 붙어서 처절하게 싸워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모든  아픔과폭력을 덮고 함께 가자고 말하기 전에

우리가 받은 억압과 폭력을 먼저 말하고 사과를 받는 과정이필요한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새롭게 더불어  살아가려면 우선 사죄와 반성이 우선 아닌가 ..뭐든....

 

상세한 사건들의 기록을 모두 읽지는 못했다.

굳이 다 읽지 않아도 그 고통을 알 수 있고 아프다.

아픔을 누르고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두께운 책이 어느새 막바지에 이른다

강간은 일어나선 안되는 폭력이다

몸이 아프고 다치는 것때문에 폭력이 아니라 한 인간의 존엄이 말살되고 개인의 인격이무시당하고 자기의 신체를 자기가 결정할 수 없게 만들어 치욕으로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는 죄책감에빠뜨리는 폭력이다. 신체적일 뿐 아니라 정서적 폭력이다

일어나선 안되지만 피해서도 안되는 일이다

누군가는 사실을 말해야 하고 알려야 하고 함께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일어나선 안된다고

그래서 강간의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고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모두가 노력해야할 차례이다

 

중간에 덮고 싶은 적이 많았지만 다 읽기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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