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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가해자에게 - 이 대화는 가능할까?
사이토 아키요시.니노미야 사오리 지음, 조지혜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1월
평점 :
2017년부터 이어져온 피해자와 가해자의 왕복 서신과 대면 프로그램을 기록한 책이다. 성폭력 피해 당사자 니노미야 사오리와 가해자 임상 전문가 사이토 아키요시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기 위해 ‘회복적 대화’라는 전례 없는 실천을 시작한다. 피해 이후의 시간은 결코 동일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이 대화는 시작부터 실패의 가능성을 안고 출발한다.
사이토는 3000여 명의 가해자를 만나온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재범 방지 치료를 진행해 왔으며, 니노미야는 그 과정에 참여해 피해자의 언어를 직접 전달한다. 가해자성-남성성-인간성을 해부하는 이 대화는 단순한 사과나 감정적 화해를 거부하고, 왜 가해가 반복되는지를 구조적으로 드러낸다. 대화는 행동 변화를 보장하지 않지만, 변화의 조건을 탐색하는 과정 자체를 기록한다.
용서와 사죄를 분리하고, 교정이 아닌 갱생을 요구하는 이 책은 성폭력을 과거의 사건으로 봉인하지 않는다. 책임을 평생의 과제로 끌어안는다는 의미를 묻고, 실패한 대화조차 무용하지 않다는 믿음 위에서 언어의 가능성을 시험한다. 피해-가해의 도식을 넘어 오늘의 사회를 다시 사유하게 하는 문제작이다. (알라딘 책소개)
이상하게 폭력앞에 성이 붙으면 피해자가 늘 전전긍긍하게 된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닐까, 내가 원인이 아닐까
그리고 세상은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더 궁금해한다.
왜 그랬대? 무슨 일이래? 그래서 살 수 있겠어?
뭔가 이유가 있었던 거 아니야? 빈틈을 보였거나 뭔가 기미가 있었겠지
표적이 피해자에게 몰리면서 가해자는 지워진다. 천인공로할 사건이라면 가해자 역시 죽일놈이 되어 세상의 입에 오르고 몇 번을 죽임을 당하겠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폭력들은 결국 피해자에게만 관심이 쏠리다가 잊혀진다.
당했다면서 웃어? 당했다면서 화를 내고 당당하게 살아가? 뻔뻔하네
혹은 아직도 그러고 사니? 그냥 잊어 지워버려
그리고 법정에서는 늘 복사해서 붙인 말처럼 앞날이 창창한~ 혹은 유능하고 다정한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라는 이유로 양형이 가벼워진다.
피해자가 가해자들을 만나기로 한다.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만나게 된다.
서로 무슨 말을 할까
편지로 소통하고 피해자의 말을 듣는 자리로 진행되고 피해자는 가해자의 바로 그 피해자가 아니다. 서로 날선 감정들이 오가지는 않지만 충분히 상대를 생각하고 직면할 수 있는 기회다.
피해자에게 가해자는 떠올리기 두려운 존재이거나 궁금하지만 알 수 없는 존재일 수 있었다.
사건은 있지만 잡히지 않은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알 수 없는 공포를 주고 두려움을 주고 세상에서 나를 고립시킨다. 그가 어디서 나를 보고 있을지 나를 알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알고 있는 행위자 역시 내가 겪은 고통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거나 처벌을 받지 않거나
받게 할 수 없을 경우 그 기억만으로도 고통스럽다.
피해자의 고통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가해자의 입장은 어떨지 궁금했다.
폭력의 예방은 당연하게도 가해자가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서 완벽하게 가능하다.
그러나 그 행위하지 않음이 가능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왜 폭력을 저지를까? 왜 성폭력이 계속 발생하고 있을까
그 대답은 가해자가 들려주어야 할 차례다.
책에서는 다양하게 접근하고 있다.
사람을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어떤 대상으로 여긴다.
성적인 존재일 뿐 나와 같이 생각하고 감각이 있고 존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에 대한 차별적이 비인간적인 통념이 있다. 그냥 만진다고 닳는 것도 아니면서, 저도 좋아서 했을텐데, 거부하지 않았다면 동의한거 아니야? 그런 통념들이 죄를 죄로 느끼지 못하게 하고 행위들을 당연하게 만들었다.
남자로서 가져야 할 당연한 행동들, 자세들 울지 말아야 하고 당당해야 하고 성공해야 하고 권력이 있어야 하는 것들을 가지지 못했을 때 가장 약한 존재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알아가는 것이 폭력이다. 약한 존재를 휘두르고 마음대로 하고 폭력을 행사하면서 내가 살아있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감각이 폭력, 성폭력을 만든다.
가해자도 왜 자신이 가해자인지 잘 알지 못한다고 한다.
내 행동에 대한 성찰이 없고 오랫동안 들여다 보려고 하지 않는다.
운이 좋지 않아 들켰고 그래서 가해자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들키지 않아서 괜찮아서 해도 괜찮을거라는 이유가 붙기도 하고
그냥 모른 척 넘어가기도 하고 그 행동에서 쾌락이나 힘을 느끼면서 더 당당해진다고 믿어지는 통념들
그래서 가해자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갖지 못한 채 가해자로 살아가지만
그 역시 스스로 알지 못한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행위 이후의 삶이 있다.
계속 살아야 하는 일상이 있다.,
그 일상은 행위 (사건)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그 상처(행위)와 함께 그 이후의 삶을 살아야 한다.
행위자는 이후의 삶을 살아가지만 피해자는 이후의 삶을 살지만 살지 못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문제를 살갗을 벗겨내는 것처럼 훓어내린다. 그리고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 그건 삶이 없는 것보다 고통스럽다.
행위자는 문제의식이 없고 피해자를 기억하지 못한다.
충격적인 이야기는 폭력행위가 일상이어서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피해자에게는 이벤트처럼 다가오는 폭력이 행위자에게는 일상이어서 기억조차 남지 않는다는 것 그렇게 폭력에 대한 생각이 만연하고 당연하다는 것이 더 무섭다.
피해자가 피해자임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행위자도 행위자임을 기억해야한다.
일상이 그 기억으로 망가지거나 멈추어서는 안되지만
진행되는 내 일상안에 그 기억을 지울 수도 없고 지워서도 안된다고 한다.
내가 가해자였음을 기억하는 것 거기서 조심하고 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생긴다.
피해자도 피해자임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일상이 어려울수도 있고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거기서 조금씩 회복되면서 전과 다르지만 안전하고 무심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회복적 사법에 기초를 둔 프로그램답게 사과와 용서가 이야기 된다.
사과는 당연하다.
그 사과의 대상이 누구인가
사법질서에 대한 사과는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판사를 향해 검사를 향해 경찰을 향해 심지어 보이지 않은 대중을 향한 사과는 수없이 많지만 피해자를 향한 사과를 찾기 어려웠다.
사과가 내가 어떤 잘못을 누구에게 했는지 똑바로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순간의 모면이나 그저 내가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사과는 그 방향을 잃는다.
진짜 사과는 내가 어떤 잘못을 했고 상대가 어떤 상처를 입었고 지금 어떤 마음인지를 그대로 바라보는 용기다. 그래서 상대가 보내는 분노나 원망을 고스란히 받겠다는 마음이다.
이후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이나 약속도 포함되어야 한다.
물론 보상이나 죄값도 당연하다.
그러나 사과가 용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과를 했는데 용서도 하지 않는다고 상대를 원망할 일도 아니다.
용서는 용서를 하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이지 용서를 하지 않는다고 상대를 원망하거나 상대를 오히려 나쁜 사람으로 몰아서는 안될 일이다.
죄는 평생을 달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 죄와 함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삶은 되돌아갈 수 없다. 그저 앞으로 갈 수 밖에 없다.
내가 이전에 한 행동들과 말들이 주렁주럭 꼬리처럼 나에게 붙어 있을 것이다.
그걸 그대로 인정하고 함께 가야 한다.
피해자 나노미야씨는 가해자도 행복해야 하고 행복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그 행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죄를 짓지 않겠다. 실수하지 않겠다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행복이란 타인을 해하고 타인을 희생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노력하고 감내하고 조금 참아내면서 만들어 지는 진짜 행복을 안다면 행복하고 싶다는 그 마음이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결국 우리는 피해자도 행위자도 함께 살아간다.
함께 사는 사람이 행복하고 편안해야 나도 그럴 수 있다.
죄책감에 떨며 긴장하고 두려워하고 원망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힘들다.
서로가 행복하기를 원하면서
그 행복이 어떤 희생이나 차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회복적 대화의 가야할 방향이 아닐까
가해자와 대화를 해보겠다는 나노미야씨의 용기도 대단했고
그 대화에 참여하겠다는 여러 행위자도 대단하다.
대화를 통해 타인을 알아가는 것
타인에 대해 상상해 볼 수 있는 것
어쩌면 서로가 함께 살아간다는 건 서로에 대해 상상하고 생각하고 듣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건강한 사회란
내가 힘들다. 도움이 필요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라는 것
그래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사회라는 것
폭력예방의 가장 앞자리는 도움을 요청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관계의 회복임을 다시 알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과연 얼마나 잘 진행될지...
모르겠다.
일본에 행위자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도 꽤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