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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프를 발음하는 법
수반캄 탐마봉사 지음, 이윤실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평점 :
나이프를 발음하는 법
‘아이는 아빠에게 나이프의 k는 묵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교장실에 불려갔었다고 규칙들과 원래 그런 것들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글자 하나일 뿐이라고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글자 하나, 맨 앞에 놓인 단 한글자 때문에 아이는 교장실에 불려갔다. 아이는 k가 묵음이 아니라고 우겼다고 말하지 않는다. 묵음일 수 없다고 아이는 우기고 또 우겼따, “맨 앞에 있는 걸요! 첫 글자잖아요! 소리가 있어야죠” 그리고서 아이는 무언가 중요한 것을 빼앗긴 양 괴성을 질러댔다. 아이는 아빠가 말해준 것 그 첫 음을 단념하지 않았따. 평생 읽고 교육받아온 선생님 중 어느 누구도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못했다.’
2. 파리
‘레드가 아는 유일한 사랑은 하루의 조용한 순간들 속에서 자신에 대해 느끼는 단순하며 복잡하지 않고 외로운 사랑이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와 이야기 속에 주말마다 들르는 식료품점 통로에 그 자리에 한결같이 견고하게 서 있는 것이었다. 매일 밤 어둠 속 같은 자리에서 고요함 속에서 눈부시게 퍼져나가는 것이었다. 그 모든 게 자신의 것이었다. ‘
3. 슬링샷
’그는 내게 자고 가라고 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따. 나는 그가 볼 수 없는 슬픔을 지닌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 – 내 존재르 부정할 수 있는 사람-과 함꼐있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는 후회하고 어리석게 굴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아니었다. 그가 내게서 돌아섰을 때 나는 나조차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손을 뻗어 인체해부모형안에 있는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위장이었다. 작은 플라스틱 조각 당연히 그건 실제가 아니었지만 그 자리에 있었고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었다.‘
3. 랜디 트래비스
“ 아빠는 가만히 있기만 해도 사랑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침묵이 사랑이고 자제심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하고 완전히 드러내 보이는 것은 창피함을 모르는 것이라고. 사랑에 대해 주절거리는 건 우습다고 생각했다. 랜디 트레비스는 어던 남자이기에 건강 외모 명성 돈을 갖고고 그렇게 주절거리는 걸까?’
4. 매니페디
‘ 있잖아 미스 에밀리는 나 같은 남자는 절대 안 만날지도 몰라 그래도 난 꿈꾸고 싶어 기분이 좋거든 오랫동안 그런 기분을 느껴보지 못했어. 제길 내게 기회가 없다는 걸 알아 그렇지만 그게 내가 헤쳐나가는 힘이야. 매 시간 매일을 해쳐나가게 해. 나 같은 남자가 어떤 꿈을 가져야 하는지 알려줄 필요 없어, 조금이라도 꿈꿀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니까’
‘그녀의 얼굴도 보이는 것과 다르게 망가지고 삐뚤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얼굴을 인정하지도 거기서 희망을 보려 하지도 않았다 희망은 그녀에게 끔찍한 것이었다. 바라는 게 무엇이든 그것이 그 자리에 없다는 걸 뜻했으니까’
5. 세상의 가장자리
‘엄마는 전쟁에 대해 알았다. 어둠 속에서 총을 맞는 게 어떤 건지 품안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는 게 어떤 건지 폭탄이 무엇을 파괴할 수 있는지 그건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곳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 나라에서 살면 그런 건 몰라도 상관없었다. 나는 모르는 게 많았다.’
‘종종 어마의 얼굴이 나온다. 그 시절처럼 여전히 젊다. 나는 엄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꿈속의 그녀는 입술을 움직이며 항상 내게 무슨 말을 전하려고 한다. 꿈은 단 몇초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을 우리 사이에 다시 풀어놓기에는 그걸로 충분히다. 그런 꿈에서 꺠어나면 마흔다섯 살의 나는 그때의 심경을 생생하게 느끼며 다시 어린아이가 된다. 그녀를 잃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비통해진다.’
6. 당신은 너무 창피해
‘이 말 한마디만 할게. 꼭 기억해! 진심으로 엄마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어 엄마가 되고 나서 그걸 깨닫지’
7 저 멀리 있는 것
8. 지렁이 잡기
누구도 묵음은 왜 발음하지 않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원래 그런 거라고 말하며 그냥 외우라고 했었다.
그냥 외웠고 그걸 외우고 안다는 걸 자랑스러워했다. 왜 발음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지를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몰라도 되는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조이는 아빠가 가르쳐준 그 발음이 있다고 주장한다. 왜 안되는지 똑똑한 선생님들도 설명을 못하면서 무조건 발음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이라서 자신도 잘 몰랐을테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자신이 왜 발음되지 않은 알파벳인지 알지 못하거나 납득하지는 못하지만 알게 되었거나 아무 말도 없이 받아들이거나 그렇다.
늙은 여인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을 하면서도 사랑하지 않은 남자를 떠나버렸고
공장 노동자 레드는 뾰족한 코를 원하지만 한편으로는 못생긴 자기 얼굴에 안도하기도 한다.
친구와 함께 자라고 배웠지만 달라진 모습에 모습을 숨기기도 하고 기어이 라오어를 주장하는 부모를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받아들이는 나이가 된다.
짧은 이야기들은 소설같기도 하고 수필같기도 하고 때로는 시처럼도 읽혔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사람들이 불쑥 불쑥 튀어나오면서 자기 이야기를 짧게 들려준다.
그들은 주장하지 않았다.
내가 여기 있다고 외치지 않았다.
쭈삣거리며 나와서 나는... 하고 자기 이야기를 하고 다시 슬며시 이야기 속으로 사라진다.
엄마역할을 하고 싶지 않았다는 마음을 뒤늦게 알지만 내뱉지 못하는 상황들
무언가 깊게 심취할 무엇이 필요했던 순간들
내 고향을 잃으면 내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현실을 알게 되고 인정하면 여태 쌓아온 나 자신을 부정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보이지 않은 시간속에도 찰라의 눈에 띄고 즐거운 시간들도 있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할머니의 말이 내 삶의 일부분을 지나가기도 했다.
내게도 발음되지 않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모른 척하거나 모르거나 그럴 뿐이다.
그리고 나도 묵음들에 대해 이유를 요구하지 않고 그저 외워서 익히고 있는중이다.
병원을 다녀오며 들었던 팟캐스트에서
자신의 언어를 발견하고 자신의 목소리로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그 표현이후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군가 자기의 문제를 드러내고 이야기했을 때 아무도 호응하지 않거나 모른 척 하거나 차마 뭐라고 이야기하기 난감해 침묵을 지킨다면 말을 한다는 행위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말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 듣고 있다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누구도 허공속에서 내 목소리가 흩어지는 걸 원하는 사람이 없다.
목적하는 대상이 없더라도 누군가 내 목소리를 듣고 답해주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 문제에 대해 나름의 이해를 하고 명명을 하고 상황을 정리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탓을 하거나 침묵을 한다면 내가 겪고 있는 내 상황이나 그때의 사건이 중요한게 아니라 지금 이순간 그 경험을 한 나 자신이 문제가 되어버린다.
묵음이었던 사람들이 있었어
세상에는 보이지 않은 사람들이 있고 (소수자가 있고 그림자 노동이 있고 누군가가 있지) 내가 미처 세상을 다 알지 못했구나
그리고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어렵다.
그 다음 어떻게 해야한다는 몰라서이기도 하고
또 하나 개인적인 이유는
나 자신이 평안하지 않고 불안하고 위기 상황이면 다른 누가 묵음이든 뭐든 중요하지 않다.
그냥 눈을 감아버린다. 한결같지 않은 내 모습이 부끄러워 한결같기 위해 눈을 감기도 한다.
짧은 이야기들이지만 그 여운은 깊고 진하다.
다만 그 진한 여운이 여운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내 주변에는 언제나 누군가 있다.
내가 모를 뿐이다.
나도 당신 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