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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루시 - 루시 바턴 시리즈 ㅣ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8월
평점 :
올리브도 루시도 한 사람의 삶을 길게 바라보면서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여러갈래로 변하면서 겱구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가난하고 냉정한 분위기의 가정
자녀에게 다가가는 여유가 없었던 부모
무심한 형제들
대학에서 겪는 낯설음과 외로움
새롭게 알괴 되는 사회 문화 행동양식들
첫남편 윌리엄이 가져다 준 새로운 경험들
보통의 사랑 경험을 하게 해주었고 평범한 삶이 주는 안정감을 알게 해준 사람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지만 영원히, 여전히 나의 유일한 집이라는 마음이 남아 있었던 것
두 사람의 오묘한 관계가 어쩌면 이후 윌리엄의 아내들이나 루시의 남편에게 조금은 외로움과 소외감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윌리엄은 모르겠지만 루시는 헤어진 남편에 대해서도 은연중에 내가 가진 소유권을 놓지 않는다. 이미 남이지만 남들이 모르는 나만 알고 있는 윌리엄이라는 존재에 대해 안도하는 마음이 유일한 나의 집 그것이 윌리엄이라고 생각한다. 그 마음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모른 채
내성적이고 자기확인이 없으며 결핍이 많은 루시
두 권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이도 답답했다. (내 이름은 루시바턴, 오 윌리엄)
저렇게 타인에게 맞추며 살고 자기 감정을 속으로 삭이고 꽁해지기도 하는 루시
미움받을 용기가 없고 아무런 자신이 없는 초라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려는 사람으로 보였다. 동시에 자기연민이 너무 많아서 세상에 가장 가여운 사람을 자신이라고 은연중에 정해놓고서 어쩌면 그가 관계하는 모든 이들은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이거나 자신을 구원하는 사람 두가지 부류로 구분하지 않았을까 부모와 형제가 전자라면 윌리엄은 후자였다.
윌리엄에 대한 애정이나 이혼 후의 관계를 보면 나의 그림자를 모두 아는 유일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착을 원했고 놓지 못하는 미련이 아닐까 싶었다.
나를 구원해야 하는 사람이니 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동시에 나 역시 윌리엄을 챙기고 구원해야 한다는 어쩌면 서로 의존하는 관계일거라고 그래서 비록 이혼을 하고 헤어졌지만 정서적으로 가장 맨 앞에 있는 사람은 여전히 윌리엄이었다.
작가가 되고 사랑하는 현재의 남편이 있고 안정적인 삶을 꾸려가는 딸들과도 관계가 좋음에도 루시는 늘 전전긍긍하는 것 같다.
이번 편의 루시도 다르지 않다.
펜데믹에 대한 이해도 없고 (이 부분은 나중에 이해가 된다. 나 역시 코로나 초기에 이 상황이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고 걱정하고 조심하는 사람에 대해 예민하다고 느낀 시간이 길었다. 긴 시간을 겪어내고 경험하면서 비로소 심각성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루시 공주님은 윌리엄 뫙자에게 기대어 메인주로 이사하고 펜데믹 기간을 살아간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헤맑은 표정이 자꾸 연상되었다.
뉴욕을 떠나고 딸들을 못만나고 일상이 달라진다는 것에 대한 불안이 크고 불편함이 있지만 그저 윌리엄이 이러는 건 이유가 있다는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그러나 지난 독서와 이번 독서사이 시간이 많이 있어서일까
그럼에도 이번 루시는 많이 공감이 되었다.
루시의 변화가 아닌 읽는 나의 변화일 수도 있다.
소심한 루시, 자기 직업에 자신이 없는 루시
가난하고 무지했던 그래서 자기 경험을 쓴 작품에 자신이 없고 부끄러웠던 루시
사람들의 태도가 때로 두렵고 슬펐던 루시
사실 돌아보면 별일 아니라는 걸 알게 되지만 일상의 보통의 경험들은 상처가 될 EO가 많았다. 나만 모른다는 마음 누구에게도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두려움 동시에 그런 나 자신에 대한 자책들
나를 싷어할거야, 귀찮아 할거야 라고 지레 판단해버리는 소심함과 두려움
어제까지 괜찮았던 가까운 이들의 행동이 오늘 갑자기 싫어지는 마음
어느날 문늑 느끼는 아 나의 이런 행동 이런 습관을 저 사람은 싫어하겠구나 라고 느껴지는 마음
자녀가 연락을 하지 않아 엄마로서 이제 자격이 없다 엄마로서 존재가 없구나 느꼈다가 전화 한통에 스르르 마음이 풀어지는 순간들
오랜만의 만남에 어색해지는 것
누군가가 좋아졌다가 다시 미워지는 감정들 내가 상처받기 두려워서 좋은 사람이야 라고 느끼려는 애쓰는 마음들
루시의 분투는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나 역시 그렇다.
루시의 좋은 엄마와 현실의 엄마는 비슷한 말을 한다.
‘루시 너 자신을 믿어’
‘누구나 자기가 중요하다고 느낄 필요가 있어’
내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너무 하찮음을 잘 알아서 하루하루가 힘들 뿐이다.
들키지 않으려고 세상에 맞추려고 애쓰는 동안 나는 점점 작아지고 이러다 사라질것같다는 두려움이 든다.
이전 루시는 ‘나는 루시바턴’이라고 선언했듯이 이번에도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이야기 하다.
‘나는 모른다 그러나 조금은 안다’
‘나는 이렇게 생각을 했다. 타인은 다를 수도 있다,’
‘나는 이만큼 안다.
’나는 행복했다. 정말 그랬다‘
이런 표현처럼 루시는 자신이 아는 것 자신이 느끼는 것들에 대해 솔직해지기 시작한다.
내가 알아차리는 조각들 그리고 내가 느끼는 조각들을 모아서 그렇게 만들어진 나를 인정한다.
몰랐고 알았고 그렇게 생각했고 행복했던 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루시는 다시 윌리엄과 합쳤고 그 사실을 자녀들에게 알린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지만 너의 엄마 아빠였고 좋은 친구였고 유일한 내 집이었던 그와 함꼐 하기로 했다고
이때 큰 딸 크러시의 말은 나에게도 깊게 뼈를 때렸다.
’엄마가 아ᄈᆞ와 다시 합치기로 했다는 말을 했을 때 내 기분이 얼마나 뒤죽박죽이었는지 엄마는 모르죠, 엄마는 그말을 전혀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했어요. 그냥 헤맑게요. 엄마는 이해가 안되겠죠
엄마의 그 말을 그 모든 시간이 흐른 뒤에 오 그런데 아빠하고 다시 합쳤어. 두분이 겪은 엿같은 그 모든 일이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는 말ㅇ르 해야겠는데 개같은 그 모든일이 갑자기 큰일이 아니게 된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구요.‘
이 말이 내게로 와서 박힌건 비슷한 말을 나도 딸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문제가 우리문제만은 아니었다는 것 어른의 갈등은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그들이 제 3자가 아닌 당사자일수도 있음을 부모는 잊는다.
우리 문제고 아이들은 몰라도 되고 상처입지 않기위해 다 결정되면 조심스럽게 알려주면 되는 것, 또는 두 사람의 갈등이 풀렸다면 잘 지내는 것만 보여주면 된다는 단순한 마음이 너무 단순했다는 것들
루시도 나도 내 문제를 바라보고 내 연민에 집중하고 그 와중에 자녀들에게 신경썼다고 믿었으나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은 모른다.
어려서 모르고 당사자가 아니어서 모르고 힘들어 보이지 않으니 모른다고 믿고 싶었다.
타인의 고통까지 공감하게 되면, 더구나 그 타인이 자녀라면 나는 더 견딜 수 없고 내가 나를 용허사기 어렵고 미워지고 하찮아져서 내가 나를 놓아버릴까봐 그렇게 변명하면서 아닐거라고 믿으려 했다.
불화를 보았고 갈등을 짐작했고 두려웠는데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한다면 내가 무엇을 두려워했고 불안했는지 스스로를 믿을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들
나 역시 나도 조금 알고 나는 그러다는 것만 알 뿐이다.
나는 윌리엄을 알면 알수록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루시를 달래고 사랑하는 방식이 동등한 상대를 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돌봐야 하는 여리고 약한 사람이라는 종속관계처럼 보여서 이다.
루시에게 필요한 안전한 부모의 모습
내가 돌보고 내가 책임을 져야 하므로 가끔의 통제가 필요하고 일방적인 지시가 필요한 관계
그래서 루시와 윌리엄은 잘 맞는 파트너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루시를 이해한다. 이해가 된다.
나도 이미 익숙한 것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그다지 나쁘지 않으니까 라고 스스로 변명을 할 것이고 내 부모 내 성장으로 온 결핍들을 생각해보겠지만 그 기저에는 그것은 절대 차인이 채울수 없는 것 결국은 빈공간으로 바람불고 외로운 공간으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공간을 누군가 채워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 채우려고 들면 다시 발톱을 세우고 경계를 할지 모르겠지만 외롭게 기다리고 기대하는 마음은 여전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루시가 미웠다가 이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가 다시 비슷한 모습들을 발견한다.
미워던 이유도 내가 스스로에게 미덥지 못한 부부들을 발견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삶은 다음을 알 수 없다. 그건 불안이지만 동시에 선물이다.
알지 못하는 것은 빈 상자 빈 종이다.
그것을 채우는 것은 살아가는 내 몫이다.
루시의 이야기를 읽으면 배운 것이 있다면
서성거리는 모습
짜증이나 화를 바라보는 모습
혼자 끊임없이 생각하고 느끼지만 말은 삼키는 모습
모른 사람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는 모습 그 모습은 나도 배우고 싶다.
쉽게 삶속으로 빠져들지 못하고 바라보고 서성이며 시간을 채우겠지만 그것 역시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루시가 조금 편해지면 좋겠다.
올리버가 편안해지지만 그 성정이 더 무뎌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처럼
만난 적없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가 걱정되기도 하고 염려되고 미워지기도 하는 마음들이 결국은 사랑이었을까 생각한다.
내가 루시를 은근 좋아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