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위기 앞에 엄마는 어떻게 해야할까

혼자서 딸만은 잘 키웠다고 자부심도 있다. 혼자 키운 딸은 교사가 되어 이제 한숨 돌렸다 싶었다.

나도 직업이 있어 내 한몸 건사하고 있으며 죽은 남편은 집도 남겼다.

딸이 괜찮은 짝을 찾아 결혼만 하면 되는데 딸은 별로 결혼에 뜻이 없어 보이고 남자친구도 만나지 않는다. 그리 걱정되는 부분은 아니다.

 

1. 경아

 

어느 날 핸드폰으로 모른 사람으로부터 동영상이 전달된다.

아무 생각없이 들여다본 화면안에 딸과 똑같이 생긴 여자가 나온다. 여자는 화면에 보이지 않은 남자에게 애교를 부리고 차마 엄마가 보기 민망한 개인적인 행동들이 찍혀있다.

엄마는 분노한다.

서울에서 혼자 살며 늘 별 일 없지? 라고 물어봤던 내 딸에게 별 일이 생겼다.

엄마는 늘 뉴스나 여러 가지 가십을 들으며 딸을 걱정한다.

딸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되는데...

늦은 시간 혼자 택시를 타는 것도 무섭고 혼자 살고 있는 공간에 행여 남자를 들일까도 두렵지만 그래도 딸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어서 안심했었다.

말은 늘 별 일 없니 조심해라 라고 하지만 적어도 내 딸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 상상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다.

엄마는 화가 났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딸에게 걸레같았다는 말과 함께 모욕적인 말들 쏟아부었다.

그 화면을 알게 된 이상 엄마 역시 모욕감에 빠져버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런 일이 내 딸에게 일어날 수 있을까

믿을 수 없는 일..

어쨌든 딸이 잘못했다. 이상한 놈을 사귀었고 그 놈과 결혼전에 섹스를 했고 그 광경을 찍었고 그리고 그 영상이 유포되었다. 엄마는 그 모든 상황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생각하기 이전에 딸의 행실을 먼저 생각했고 이제 모든 상황은 끝이다. 모든 것은 딸의 잘못이므로 이 모든 것을 딸이 바로 잡아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엄마는 무엇보다 그런 상황을 만들어버린 딸이 가장 미웠다.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엄마는 딸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2. 연수

이제 세상은 내뜻대로 될 거 같았다.

엄마의 소망대로 어쩌면 나의 소망대로 나는 교사가 되었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즐거웠고 보람이 있다. 적어도 학생들과 소통하는 꽤 괜찮은 교사라고 생각한다.

학교는 꽉 막힌 곳이어서 학생들에게 제약이 많다. 그건 내가 학교 다닐 때와 변한 게 없다.

하지만 학생들도 사람이다.

누구를 좋아할 수 있고 좋아한다면 손잡고 싶고 키스하고 싶고 함께 있고 싶을 것이다.

다만 그 책임을 알았으면 좋겠고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 생각했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기로 했다.

여러 가지로 맞지 않았다. 그런데 남자친구는 그럴 마음이 없고 헤어졌음에도 연락하고 찾아오고 꽃다발을 안기는 모든 행동들이 로맨틱하고 멋진 것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건 멋진 행동이 아니다. 상대를 두렵게 만드는 일이다

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남자친구가 두렵다.

그렇지만 확실하게 말하면 알아들을 줄 알았다.

화가 나고 나를 나쁜 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이별의 대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느날 눈을 떠보니 내 영상이 세상에 퍼져있었다.

한때 사랑해서 관계를 했고 그 순간 행복해서 찍었던 영상을 모두가 보게된다.

어쨌든 해결해야 한다.

연수는 경찰에 신고하고 기록삭제하는 곳에 돈을 주고 삭제를 요청한다.

그러나 디지털 폭력은 끝이 없다. 매일매일 재생되고 매일매일 같은 지옥이 되풀이된다.

내가 먼저 지치든 그냥 포기해버리든 방법은 뻔해졌다.

그래도 가족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가족이 받을 상처가 두려웠다.

내 일이니까 내가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가 알게 되었고 엄마는 괜찮냐는 질문 대신 내가 너를 이렇게 키웠니? 라는 일설과 함께 걸레같은 년이라고 한다.

피가 거꾸로 쏟는다.

내가 뭘 잘못했지?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힘들고 비참하고 거지같은 마음이 드는 건 나인데 모두가 나를 원망한다. 심지어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줘야 하는 엄마가 나를 향해 화살을 쏟아붓는다.

엄마 그런 사람이었구나

세상에 나를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사람은 없구나

나는 사라지기로 한다.

 

3. 경아

엄마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화가 난다.

그러나 딸이 연락이 되지 않으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그러게 행실을 잘 했더라면 조금 더 조심했더라면 남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남자를 만나더라도 괜찮은 남자를 만났더라면 그랬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지금은 엎어진 물이다.

진상을 알아갈수록 복잡해진다.

완전히 지울 수 없는 영상, 재판을 해도 솜방망이 처벌 이미 학교를 그만 둔 딸

엄마는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몰랐고 어떻게 해야할지 자기 마음도 몰랐다.

딸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

예전 생각이 났다.

남편의 폭력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때 내 손을 잡고 함께 도망쳐준 사람

내 편을 들어준 사람 그건 딸 연수였다.

그때 남편은 어디서 떠도는 소문을 듣고 와서 바람난 년 화냥년이라고 하며 경아를 때렸고 술이 깨면 다시 사과를 했다.

그런 일들이 계속 반복이 되면서 경아는 상황에 무뎌졌고 그래도 그 순간 내 편이 되어준 딸 연수에게 의지해서 삶을 살아왔다.

이제 돌아보니 그때 남편이랑 이혼하지 않아 다행이다. 집이라도 남아서 다행이다라고 하며 살았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 아니었다.

 

4. 연수

 

남자친구가 재판까지 받게 되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합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힌다.

나는 너를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잘못을 했으면 그에 따른 벌을 받아야 하는 건 누구나 아는 일이다.

머리로는 명쾌한 생각들이 막상 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인터넷 기록삭제를 위해 늘 인터넷 안을 살펴야 한다.

언제 어디서 내 동영상이 떠오를지 모른다.

또 돈도 벌어야 한다.

그래서 인터넷 과외를 시작했지만 내 모습이 화면에 비치는 것이 두렵다.

누군가 나를 알아볼까봐도 두렵고 혹시 지금 화면속의 내 모습을 또 누군가 훔쳐볼 수 있지 않나 하는 마음도 없지 않다.

일은 터졌고 세상이 두렵지만 삶은 지속된다.

오락프로를 보며 웃기도 해야하고 배달음식으로 끼니도 채워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한다.

재판을 하고 어쨌든 실형을 받아냈다.

남은 건 없다.

승리도 아니고 패배도 아니다. 삶은 재판의 결과나 승패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냥 계속 될 뿐이다.

친구가 봤다는 연수닯은 동영상 이야기들

술안주 삼아 하는 재미난 별 거 아닌 이야기들 자꾸 마음이 쿡쿡 걸린다

아니라고 말을 했다. 거짓말이지만 그건 내가 아니야

그래 내가 아니다. 나는 아니다.

너희들이 알아본대도 나는 아니다.

나는 그렇게 너희들의 심심풀이 땅콩처럼 돌려보고 잊어버리고 함부로 입방아에 오르는 사람이 아니다.

순간 화가 났지만 그렇게 말을 할 수 밖에 없다.

삶은 어떻게 흘러갈까?

 

 

5 경아와 연수

 

경아는 점차 연수의 고통을 이해한다.

예전 나의 고통과 현재 연수의 고통이 다르지 않다.

쉽게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들

그러게 조심했어야지 행실이 발랐어야지 하는 말들

타인에게는 쉬운 그런 말들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아픈 고통이었는지 그때는 알았는데 지금은 잊었다.

연수도 많이 아팠을 것이다.

왜 내가 그걸 이해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동영상유포보다 내 말이 더 아팠을텤데

남편의 폭력보다 이웃들의 수군거림이 더 아팠었는데... 잊고 있었다.

 

연수는 아픈 경아의 병실을 찾아간다.

아마 나에게 모진 말을 뱉고 또 혼자 후회하고 아프고 힘들었을 엄마를 안다.

그냥 그런 부분조차 이해되지 않으면 덜 아프고 힘들까 하지만 모른 척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자기 탓을 하는 엄마가 미우면서 안타깝다.

엄마의 잘못도 아니다 내 잘못도 아니다.

잘못은 그 놈이 저질렀ㄷ.

그놈이 저지른 잘못에 동조하고 히히덕거리는 세상사람들이 나쁜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아파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그건 아니다.

 

딸이 잘못될까봐 사사건건 간섭하고 딸 친구들이 진저리치던 엄마

그런 엄마를 마음아프게 할 수 없지만 내 생활도 포기할 수 없어서 몰래 몰래 남자를 사귀었던 딸

첫 경험이 아팠던 것은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고 아프게 하거나 화나게 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딸의 마음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게 되는 일

엄마와 딸 사이에 아무런 경계없이 너가 나이고 내가 너인 관계에서 타인의 아픔은 그대로 내것이 되고 타인의 금기도 고스란히 내것이 된다.

 

엄마는 이사를 결심한다.

이제 딸을 떠나기로 한다.

성인이 된 딸을 독립시키는 엄마처럼 이제 성인이 된 딸을 떠나서 혼자 독립하는 엄마가 되기로 한다.

연수도 다시 세상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비워놓은 내 자리로 돌아가 보기로 한다.

쉽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는 쑥덕거리지만 그래도 그 곳이 내 자리다.

 

 

 아무리 조심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건 운이다.

내가 조심한다고 피할 수 없는 일들 

내 탓이 아닌 일들이 일어난다.

일어난 일을 어찌 할 수는 없지만 그 다음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내가 결정한다.

잠시 쉬어갈 수도 있고 그냥 납작 엎드려 기다릴 수도 있고 아무렇지도 않게 삶을 이어갈 수도 있다. 다만 한가지 정말 알아야 할 건 내가 아프거나 힘들거나 고통스럽다는 걸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이 생겨서 사고가 나서 나는 아프고 힘들고 수치스럽고 화가 나고 죽어버리고 싶고 누군가를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은 인정할 것

그리고 뭔가 도모할 것

일이 일어나도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간다

그게 정말 화가 나고 약오른 이리지만 어쩌면 가장 위로가 된다.

어쩄든 세상은 계속 돌아가고 앞으로 나가고 있다.

나도 그 세상의 리듬에 올라타면 된다.

내 박자와 리듬을 잃지 않고 그냥  함께 맞춰가는 일

의외로 타인은 나의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세상에는 나쁜 놈들보다 선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들이 조금은 더 많다는 것

그리고 나는 어떤 사건이나 존재로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믿음

그렇게 앞으로 가면 된다.


경아처럼 연수처럼 

한번 사건에 휘둘려 휘텅하고 흔들리고  주저앉아도 앉은 김에 쉬었다가 다시 가면 된다.

그래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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