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편의 이야기가 모두 아동학대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밥을 먹지 못해 학교 급식에 매달리고 늘 늦게까지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소년을 바라보며 용기는 내는 초년생 선생님 이야기

어린 시절 학대받은 기억으로 자기 딸을 다시 학대하고 구타하는 젊은 엄마 이야기

어린 시절 학대와 차별을 하던 엄마가 이제 늙어 치매에 걸려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되자 용서할 수도 없고 미워할 수도 없어 혼자 괴로워하는 독신 여성

친구 아들이 구타당하고 학대받는다는 걸 짐작하면서 직접 해결책을 찾아주지는 못하지만 모른 척 따뜻하게 받아주고 품어주는 아버지

장애가 있는 아이를 데리고 혼자 사는 고단한 엄마와 그 엄마와 만난 오랜시간동안 아픔을 꽁꽁 숨기고 내색하지 않아 이제 모든 기억이 뒤죽박죽되어버린 할머니의 우정까지

이야기는 담담하게 상처받은 아이들과  그 아이들이 성장한 상처받은 어른들을 보여준다.

 

사람은 칭찬을 먹고 사는 동물일 것이다.

태어나 자라면서 듣게 되는 칭찬과 만족감이 스스로를 존중하게 하고 어려움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힘이 된다.

어린 시절부터 훈련되고 습관이 된 두려움이나 패배감은 그 인생을 점점 고단하게 하고 망가뜨린다.

모든 이야기가 다 감동적이지만 개인적으로 세번째 이야기와 마지막 이야기가 좋았다.

어릴적 학대하고 괴롭히고 차별하던 어머니를 떠나 독립해서 잘 살던 여자 주인공은 늙어 치매에 걸려 모든 걸 잊어버린 어머니와 이틀간 함께 생활해야만 했다.

난 아직 아무것도 잊지 못하고 상처받고 힘든데 어머니는 치매라는 이유로 모든 걸 잊고 딴사람이 되어버렸다. 내 앞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내겐 주지도 않았던 자기의 유년기 추억을 이야기하고 자기 엄마에 대한 좋은 기억을 되풀이해서 이야기하는 엄마가 주인공은 정말 밉다.

게다가 계속 먹을 것만 찾고 아무데서나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엄마.. 그 이틀은 지옥이었다.

엄마를 다시 동생에게 데려다 주러 가는 길에 주인공은 꿈꾼다.

엄마를 버리고싶다.

몇번을 망설이다가 전차안에서 한번 시도를 하지만 천진한 엄마의 모습에 그만 다시 전차에 오란다. 안좋은 기억만 남았다고 생각하는 옛동네 엣집 근처에서 주인공은 그때는 미처 보지 못한 풍경들을 기억해낸다.

죽을뻔한 나를 구해준 어린 동생  사춘기의 방황을 바로 잡아줬던 고등학교때의 선생님  가난하지만 자기집에 볼러 저녁을 먹였던 이웃 아줌마. 내가 쫒겨나 밖에서 떨고 있을 때  무심하게 한구석에서 함께 지켜줬던 주정뱅이 아저씨.. 그리고 그 기억속엔 찰라의 엄마의 미소도 있었다.

그랬구나..

주인공은 만족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위안을 얻는다.

나는 그때 혼자는 아니었다고

그리고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엄마의 과거를 기억하면서 엄마의 그때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고 ..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 아직은 엄마를 좋아할 수는 없지만 미워하지 않을 수는 있게 될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다만 누군가를 미워하느라 내 삶이 피폐해질 수는 없다

주인공은 그걸 알게 된다.

공감하지 않아도 이제 엄마와 나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엄마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스스로 설 수 있게 되었다.

마흔이 된 이제야 비로소..

 

마지막 이야기는 전쟁을 겪고 온갖 풍파를 겪은 80대 할머니가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한동네에서 오래살았지만 너무 오래 살아 이제 더이상 아는 얼굴이 없고 대화상대가 없는 할머니는 늘 혼자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본 것이 까마득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할머니로 보일 뿐이지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 할머니에게 늘 만날 때마다 인사해주는 소년이 있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그 인사는 할머니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시간이 많은 할머니는 엣기억을 떠올린다.

결혼했다가 돌아온 일. 공습으로 집이 불타 살던 곳을 떠나 이곳으로 온 일 여학교 시절 공장에서 일했던 기억 그때의 캬라멜 냄새. 그 많은 캬라멜과 쵸콜렛은 과연 누가 먹었을까?

왜 그때 하나를 쓸쩍 가져 오지  않았을까. 동생이 그렇게 빨리 죽을 줄 알았다면 하나를 가져와 동생에게 줄것을.... 그리고 여공이라는 이유로 공습때 늦게 대피해서  죽은 여공들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뒤죽박죽이고 그게 맞는 기억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알면서 모른 척한 일. 너무 고지식하고 순종적이어서 후회할만한 일들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이 화석이 되어서 마음에 단단하게 박혀있다는 걸 느낀다.

그때 그러지 말것을..

그때 조금 더 생각해보고 누군가에게 말을 해볼걸,,

할머니의 그 아쉬움은  말하지 않았던 것들 표현하거나 행동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규범을 잘 지키는 모범 학생이고 시민이었던 할머니는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었던 행동을 꾹꾹  눌러놓고 살아왔고 이제 그로인해 자기가 무얼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인지조차 가물가물해진다.

그 할머니가 늘 인사하는 규범적인 소년을 만나고 그 소년의 문제를 알게되고 그 가족의 불행을 알게되는 건 어쩌면 할머니의 삶을 다시 되돌리는 의미이기도 할것이다.

그때 표현하지 않고 말하지 않았던 것들..

넌 나쁜게 아니야 좋은 딸이고 좋은 누나였어

그때 공습때 우리가 먼저 대피해서 미안해. 우리가 너희에게 피해를 준거같아.

그리고 달콤한 캬라멜 한개쯤은..

그때의 후회를 젊은 아이 엄마는 하지 말라고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두 모녀에게 위로를 하고 따뜻하게 품어준다.

그래서 그 마지막이 눈물나게 아름답다.

이미 지난 일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되돌릴 수 있는 일이라고 .. 지금이라도 아이를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너는 착한 아이라고 말해주라고 할머니는 전하기때문이다.

 

얼마전 친정에 다녀왔다.

이젠 늙었고 아버지마저 안계신 엄마는 많이 힘들고 작아졌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해줄 수 있다고 믿었던 엄마가 약해진건 참 마음이 아팠지만..

이제 조금 떨어져서 보면 나도 엄마도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엄마의 마구 내뱉는 말들이 너무 싫었던 거 같고

엄마는 나의 꾹 다문 입이 너무 거슬렸던거 같았다.

다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는 걸 이제 그나이가 된 나는 이해가 가는데 그때의 어린 나는 그게 너무 싫었고 짜증났고 무식해보이기도 했고

앙 입을 다물고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는 딸을 보면서 그때 입을 닫고 책속으로 숨어버리고 단답형 이상의 대화를 하지 않는 딸이 엄마도 참 야속했을 거다.

너무 가까워서 너무 사랑해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너무 기대가 커서 좋다.. 착하다는 기준을 높이 세워버린다.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분리가 되지 않은 가족이라  그게 사랑이라 믿어서 내 말이 무조건 약일거라고, 쓴 약일거라고 생각했지 그 약이 가진 부작용도 있다는 건 몰랐다.

이제 와서 따지고 그때 서러웠노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직도 내 속의 어린 아이는 엄마에게 속상하고 서운한게 많이 남아있지만 그만큼 엄마 속에서도 있을거니까 서로 퉁치자고.. 혼자만 계산기를 두들기며 착한 척 하고 왔다.

 

세상 모든 아이는 착한 아이다.

그리고 이 말은 나이가 먹어서도 참 위로가 되는 말이다.

넌 착한 아이야.

니 잘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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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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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로 이사를 온지 3년째다.

이제 많이 익숙해졌다싶은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순간순간 낯설고 어색한 경우가 남아있다.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는 정말 추웠다.

20년전 대학입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온 그때도  서울의 첫 인상은 춥다는 거였다,

내가 자란 남쪽에서는 눈은 귀한 것이었고 신학기가 시작한 3월이면 아직 겨울이 남아있어 쌀쌀한 날씨가 지속되긴 하지만 그래도 봄은 봄이었다. 두터운 겨울옷은 벗어도 상관없었고 조금 하늘거리게 입으며 발을 동동 구르고 다녀도 견딜만 했다.

서울에 올라와 처음 맞는 3월,... 아직 학교도 낯설고 살고 있는 동네도 낯선 그때 3월의 하늘에서는 눈이 내렸다.

지금이야 5월에도 눈이 내린다고 호들갑을 떠는  변화무쌍한 날씨가 되었지만 .. 그때 모든 것이 낯선 상황에서 3월의 눈은 울고싶을 만큼 적응이 어려웠따.

왜냐하면 내 생일이 3월이었고 난 그때까지 3월 내 생일이 되면 날씨도 풀리고 웅크리고 걷지 않아도 된다는 경험으로 기억된 습관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3월 내 생일이 지난  어느날 눈이 내릴 수도 있다는 첫경험은 좋은 것이 아니었다.

여기 서울은 예상치 못한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는 곳이라는 두려움이 생겼고 3월이 되었다고 따뜻해지지 않을 거라는 냉냉한 경험을 가졌다,

하지만 20년이 지나면서 그렇게 낯설었던 서울이 익숙해지고 언제부턴가는 집에서 돌아오는 열차안에서 63빌딩이 보이고 한강철교를 건너는 순간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또다시 그 익숙한 공간을 떠나 신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정말 추웠다. 서울의 북쪽이라고 그러하다는 이유도 있고 내가 이곳으로 이주한 이유가 거의 서울에서 쫒겨났다는  감상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이유도  한몫했을 것이다.

서울이어도 폐쇄적이고 작은 동네에서 10년을 넘게 살다가 이상온 이곳은 어디 숨을 곳도 없이 사방이 뻥뻥 뚤린 개방형이었다. 신도시를 관통하는 대로가 있고 그 넓은 중앙로를 따라 건물이 아파트가 서 있고 이 곳의 자랑인 넓은 공원 그리고 아파트 사이사이 조성된 공원길들 그건 시원시원하고  어디든 통하는  편리성을 갖고 있지만 내게는 너무 크고 너무 무섭고 너무 뚫여있었다.

나는 사실 어디든 내가 알지 못하는 곳 나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숨고 싶은 마음이었었다.

신도시는 그저 크고 어디든 통하고 추운 곳이었다.

 

이 신도시에는 작가들이 참 많이 살고 있었다. 그 전엔 몰랐는데 의외로 구석구석 작가들이 있고 그들의 글에서 신도시..어쩌고 하고 나오면 자동적으로 여기 어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은희경 작가의 전작 태연한 인생에서도 주인공이 어쩌면 이곳 어딘가의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었고 이곳 어딘가의 카페에서 타인을 만나고 술집에서 사건이 일어났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이전 이곳에 와서 읽었던 "소년을 위로해줘"의 그 소년도 이곳 어딘가 몇단지의 아파트에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소설집에서 신도시 이야기가 참 많이 나왔다.

첫번째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처음 만난 서울을 생각했고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작품들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삶의 토양을 바꾼 우리 아이들을 생각했다.

이번 작품에 유난히도 눈에 띄는 말 "신도시 아이들"이라는 말에서 자꾸 턱턱 멈추면서 나는 우리 아이들을 생각했다. 전혀 자기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부모들의 결정으로 익숙한 곳에서 떠나야 하고 낯선 곳에서 다시 뿌리를 내려야 하는 아이들이 걸렸다.

예전 나는 적어도 자의적으로 주소지를 옮겼고 낯선 곳에서 정착하고 뿌리를 내렸지만 내 아이들의 지금의 이주는 그때와는 다르다. 그때 나만 생각하면서 춥다고 황량하고 숨을 곳이 없다고 느꼈던 이곳 신도시에서 우리 아이들이 보았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때 난 그것까지는 생각못했다.

단지 어미된 입장으로 새 학교에 잘 적응할지 친구들은 잘 사귈지만 걱정했다. 이미 모든 그룹이 결정되고  또래문화가 형성된 상태인 6학년이던 큰 아이걱정과 막 사춘기가 시작되고 조금 이기적으로 편을 가르는 나이가 되는 3학년 작은 아이의 걱정은 했었는데 그것이 토양을 아주 바꿔버린 환경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학교에 잘 적응하고 무리가 없으면 다른건 그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일단 눈에 보이는 것으로 아이들은 잘 적응했고 그 사이 갈등이라고 해봐야 보편적인 그또래의 문화로 인한 것들이었다고 단정지었다.

가끔 아이는 이곳과 예전의 친구들을 비교하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했지만 한때라고만 생각했다그리고 시간에 따라 나도 익숙해진것처럼 아이들도 익숙해졌으리라 생각했고 작년에 유난하게 사춘기를 겪는 작은 아이의 문제도 그저 아이들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서울의 아이들 신도시의 아이들 조금 더 외곽의 아이들 그렇게 구분짓는 일이 뭔가 자만심에서 나오는 선입견인것 같아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이들은 어떻게 다른지 뭐가 다른지 이야기를 했지만 그건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했고 이곳 신도시의 엄마들이 이곳과 좀 더 외곽의 이야기를 비교하며 할때는 나혼자 코웃음을 쳤다. 그래봐야 이곳과 서울도 비교의 대상인걸 왜 모를까..

하지만 그곳에서 떨어져 나온 내가 뭐라고 비판할 수도 언급할 수도 없는 문제였다. 나름 자격지심도 있었고 어디나 아이들 키우며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할거라고만 생각했다.

어디나 몇퍼센트의 좋은 사람과 몇퍼센트의 싫은 사람이 있고 나랑 맞지 않은 사람도 있고 튀는 사람도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이곳은 유난히 솔직하고 개방적이어서 조금은 거칠어 보일 수도 있고 뭔가 모르게 서로서로 무리에 끼어서 우리라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에 기를 쓰는 것은 느껴졌다. 거리를 다니면서 혼자 다니는 젊은 엄마는 거의 보질 못했다. 장을 보거나 극장을 가거나 공원을 걷거나 늘 두셋이었고 무리지어다니는구나 하는 것만 보았을 뿐이다.

아이들이 성향이 강하고 직선적이라는 걸 느꼈어도 그게 그때보다는 조금 더 나이를 먹은 아이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했고 그때의 학교보다 규모가 작다보니 조금 더 친밀하고 잘알고 있고 그 속에 끼어든 새로운 전학생이 그래서 조금 더 외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만 했다.

어쩌면 아이들은 제 어미가 혼자 흔들리고 우울한걸 알고서 스스로 뿌리내리기로  노력했을것이다.큰 세상속에 뿌리내는 것이 아니라 서울에서 신도시로 이화분에서 저화분으로 옮겨온 아이들은 그 화분의 가장자리를 탐색하고 내가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을 가늠하고 튀지않게 살아남기위해 뿌리를 뻗어가며 자제해가며 그렇게 살아내고 있었던 거같다.

<스페인도둑>의 완이나 <T아일랜드의 여름잔디>의 소년들처럼 말이다.

낯선 곳에서 쿨함이라는 철갑을 두르고 어떤 경우에도 상처받지 않을만큼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소년들은 슬프다.울거나 떼쓰지 않고  담담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가는데는 보이지 않은 많은 힘이 필요하다. 오리처럼 발은 동동거리면서도  물위의 몸집은 아무런 동요가 없을 것. 그건 그 나이의 또래가 견디기엔 많이 무거운 삶이다.

작가의 표현처럼 신도시 아이들인 소년들은 그렇게 어디든 적응을 하고 어디서든 잘 어울려 살아가지만 그 이면은 단단하게 닫고 경계하는 피곤함이 묻어있다.

이곳에서 3년간 내 아이도 그런 과정을 거쳤을까

겉으로 절대 예전 그곳을 그리워하지 않고 이곳에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조금 슬프고 아파서  어쩔줄 몰라하는 아이가 살지 않았을까

운다고 떼쓴다고 바뀌는 건 없다는 걸 이미 알아버린 아이들은 마음을 둘 데가 없을 것이다.

어쨋거나 낯선 곳에서 뿌리를 내려야하는 것말고는 할 수 있는 것 해야할 것이 없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아이는 불평이 없었고 잘 지내는 듯 보였다. 친구도 금방 사귀었고 옛친구들과도 연락을 하고 가끔은 만나러 가기도 했다. 어리니까... 변화에 익숙해지나 보다 싶었다.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다. 고민해야할 것들 풀어야 할 문제들이 쌓여있는 데에 아이들까지 문제로 더 얺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여기저기서 터지기 시작한다.

낯선 땅에 내려진 뿌리는 처음엔 긴장하고 조심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맞춰간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흙에 대한 부작용이 나타나는 걸까 아니면 이동이라는 것이 없더라도 생기는 그 시기의 혼란이나 성장통같은 걸까?

힘들다고 그때가 그립다고 돌아가고 싶다는 아이에게 해줄 말은 없다.

그저 견디라고 견디다보면 익숙해질거라고... 입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러길 바라면서 그저 대꾸없이 들어줄 뿐이다.

이 시간도 다 지나가리라....

그리고 지금은 다시 고요하다. 다 지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는 쿨해지는 법을 배우고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우고 타인과 의자를 좁혀앉는 법을 배운다.

20여년전 낯선 도시의 첫인상을 춥다... 라고 각인 시켰던 어미는   제 자식들의 낯선 도시에 대한 첫인상이 어떠했는지 묻지 않는다. 묻기가 두려울 수도 있고 굳이 묻지 않아도 되기때문이기도하다

첫인상은 그저 자신만의 것이고 자신이 견뎌야 하는 온도일뿐이다.

 

아무 생각없이 들었던 소설집이 너무 슬프다.

이야기속에 너무나 익숙한 인물들이 보이고 내가 마주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고 하지만 사랑해줘야할 사람들이 있다.

남의 말을 하듯... 혼자 중얼거리듯  누구도 듣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나는 듣지 않는 듯 짐짓 딴청하는 듯.. 무겁게 책장을 넘겼다.

그래도 다들  잘 살아내고 있어 다행이다.

그것이 행이든 불행이든.. 그렇게 견디고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축복이다.

 

이건.. 리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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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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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뱅골 출신의 부모가 미국 서아일랜드로 이민을 가게 되어 그 곳에서 성장하게 된 작가가 이 책을 쓴  줌파 라히리이다.

어떤 평에서는 과대평과되어진 현대작가중 하나라고 혹평을 받기도 한다지만. 내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작가는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잘 쓸 수 있는  소재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가 겪었던 일들 기억하는 이미지들 그리고 내 속에 오래 박혀 있어 이제는 그만 그것을 뽑아서 눈앞에 마주하고  싶은 상처들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건 그 작가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가장 뱉어버리고 싶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 작가 줌파 라히리도 그가 가장 잘 아는 것 그녀 속에 가장 깊이 박힌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이 그녀의 첫 작품이었다.

미국에 건너온 인도 이민자의 자녀라는 입장은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일이다.

인도계 이민자로서 가지는 감정 입장 그리고 은밀한 두려움이나 외로움 혹은 이질감은 그녀가 가장 많이 겪었고 알고 있는 일이기에 가장 쓰고 싶고 쓰기 쉬웠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는 주로 이민온 인도계 미국인의 이야기거나 인도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었다.

<진짜 경비원>의 경우는 인도의 이야기였고 나머지는 인도 이민자 들의 이야기들이다.

인도라는 이색적이고 신비로운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낯선 땅에서의 이질감과 이로움 그리고 막연하면서 동시에 손에 질감을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두려움이 그녀의 글에서 잘 묻어난다. 어쩌면 이질적이면서 동시에 어딘가에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편성을 그녀가 잘 표현하고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아홉가지 이야기중에 <섹시>와 <질병 통역사> 그리고 맨 앞에 있었던 <일시적인 문제>였다

 <섹시>는 유부남을 만나는 미렌다가 직장동료  락스미가 사촌형부의 외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데서 시작한다. 남의 이야기같지 않은 락스미 형부의 바람은 곧 닥치는 미렌다의 일이기도 했고 그 끝또한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었다. 사이언스센타에서 들려준 그 남자의 섹시하다는 말은  락스미 사촌언니의 아들이 들려주는 모르는 사람을 좋아하는 일로 대치되는 순간 미렌다의 현실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내게 의미있고 잊지못할 한마디가 그걸 뱉은 사람에게는 기억조차 남지 않은  사소함이었고 아름답던 사이언스 센타의  마파리움은 이제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순간 어긋나고 스쳐버린 말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정해버리고 현실을 일깨운다. 그래도 락스미의 사촌언니가 살아가듯이 미렌다도 담담하게 살아갈 것이다.

 

<질병 통역사>에서는 인도에서 관광가이드를 하면서 동시에 질병 통역사라는 독특한 직업을 가진 카파시 씨가 인도계 미국 이민자인  디스 부부를 만나 가이드를 하면서 생겨나는 에피소드다.

카파시씨는 사소한 몇가지 일들고 디스 부인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녀와 이어질 인연을 상상하지만  디스 부인의 상상할 수 없는 고백에 충격을 받고 현실로 돌아온다.

어쩌면 인생은 한순간 꾸는 꿈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짧은 에피소드에서 잔인하게 보여준다.

내가 바라보는 그곳과 상대가 바라보는 이곳이 어긋나는 그 지점에서도 삶은 계속 될 수 밖에 없고 우리는 누구도 그 어긋남으로 상처받지만 결국은 서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고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걸.... 잔인하면서도 담담하게 보여준다.

 

<일시적인 문제>는 어쩌면 주인공이 인도계 미국인이라는 사실 외엔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한때 사랑했던 부부가 아이를 사산하고 난 후 서로 어긋나고 피하기만 하면서 삭막해져 가는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서로 매말라 가고 있다는 걸 알지만 누구하나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없고 서로 교묘하게 시선을 피하며 살아가는 어느때  전기공사로 인한 짧은 정전이 일주일간 이어진다. 어두운 저녁 함께 식사를 하면서 서로의 비밀을 하나씩 고백하고 그러면서 남자는 어쩌면  이 어둠이 우리 둘의 관계를 다시 이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지만.. 정전이 끝나는 순간 두 사람의 관계도 그렇게 끝을 맺는다.

누군가를 기대를 갖게한 어떤 현상이 누군가에게는 이제 모든 걸 정리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엇갈리는 시선. 비껴나기만 하는 타이밍으로 사람들은 외로워진다. 하지만 그들은 그 엇갈림을 굳이 맞추려 들지 않는다. 상대방의 시선에서 비껴난 바로 그 곳에서 혼자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나는 지금 제자리에 있긴 한걸까

그리고 받아들인다. (센 아주머니의 집의 센 아주머니는 아직도 생각중이시지만)

꼭 상대의 시선에 들어가려고 애쓰지 않고 누군가의 시간을 맞추지 않아도 되는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에서 다시 스스로 뿌리를 내려보려고 조심스럽게 더듬고있는 중이다.

 

런치박스

 

 

며칠전 인도 영화를 봤다. :런치박스"

주인공 남자가 말했다

"잘못된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 줄 수도 있어요"

뭐라고 딱 꼬집어 말 할 수 없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줌파 라히리의 이 소설집을 생각했다.

일라의 도시락은 남편에게 닿지 못했다. 그녀의 정성과 노력은 엉뚱한 남자에게 갔고 남편은 브로컬리면 주구장창 먹고 있지만 별 말이 없었다. 이미 둘은 조금씩 어긋나고 있었지만  맞추려고 하질 않았다.

도시락 배달이 잘못되어진 걸 안 일라는 멈추질 않는다. 대신 편지를 쓴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맛있게 다 먹어주어서 감사하다고 ...

그리고 그 도시락을 받는 사잔과 편지를 주고받게 된다.

엇갈린 대상은 또다른 인연을 만들지만 그들역시 어긋난다. 둘이 만나기로 한 카페에서 둘은 만나질 못한다. 서성거리고 멈칫하는 순간 둘의 시간도 어긋난다.

어긋난 장소  시간에서 가끔은 용기를 낸다.

함께 떠나자는 말. 나도 함꼐 가도 될까요?

일라와 사잔이 어떻게 될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잘못된 기차에 과감하게 올라탔는지.. 과연 그 기차가 목적지로 잘 데려다 주었는지 관객들은 알지 못한 채 영화는 끝난다. 그동안 수많은 발리우드 영화들이 보여준 춤과 노래도 없이 이영화는 그저 담담하게 사람과 사람사이의 어긋난 관계 조금은 비틀어진 관계를 보여준다.

일라의 엄마와 누워있는 아버지. 일라 윗층에 사는 이모라는 여자와 그의 천정의 쿨러만 바라보는 남편  집에서는 말이 없이 텔레비젼만 보는 남편 그리고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관계하지 않는 사잔.. 

그 누구도 힘들다고 하지 않고 이게 아니라고도 하지 않지만 서서히 균열이 생기고 조금씩 사이가 벌어지면서 사람들은 외로워지고 있다. 서서히 빠지는 공기나 서서히 데워지는 프라이펜 위에서는 고통을 느낄 수 없다. 조금씩 조금씩 불편함에 익숙해지고 균열에 맞춰지면서 사람들인 이미 쩍 갈라지고 죽음이 다가오고  난 뒤에 자기를 돌아보고고 화들짝 놀란다. 하지만 그뿐이다.

일라도 사잔도 누구도 선뜻 나설 수 없다.

삶이란 어쩌면 내가 선택하는 것보다 내가 선택당해야 하는 일들이 더 많은 법이고 인간은 언제나 수동적이며 그 사이의 어긋남정도는 쉽게 무시하고 익숙해지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엇갈림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대단한 변화나  다이나믹한 사건으로 폭발되지 않는다.

삶은 어긋나고 조금 기울어졌다고 해서 끝으로 치닫지 않는다는 것이  좋은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어긋난 끝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하는 것도 가능할테니까말이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지만  나랑 이질적인 것들인데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나는 막막하고 답답할때 책을 펴거나 어두운 극장속으로 숨어버린다.

지금 내가 느끼는 뭔가 잘못된게 아닌가 하는 느낌.

내 삶이 어디서부턴가 어긋났고 나는 그걸 모른 척했고 순간의 안락을 위해 눈을 감았더니 지금 어마무시한  현실에 처했는데.. 이건 내 잘못만은 아니라고 누군가에게 소리치고 화를 내고 위로받고 싶었다.

어디서 부터 다시 시작하면 잘 꿰어 맞출 수 있을지도 몰라서  악마가 나타나 시간을 되돌려 주겠다고  거래를 걸어와도 어디로 되돌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를 낳기전? 혹은 결혼전? 아니면 아주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는 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서 또다른 어긋남이 없으란 법도 없고 내가 똑같은 선택을 똑같은 후회를 하지 않을거란 보장도 없다는 막막함이 자꾸 나를 둘러싼다.

 

그때 아무 생각없이 편 그녀의 책이... 그리고 제목도 확인하지 않고 들어간 극장에서 마주한 어떤 늙수구레한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건넨다.

너만 그런건 아니야

 

나랑 비슷한 처지도 아니고 상황도 아니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일그러지도 있다고 느끼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에게 실망하고 있을 무렵.. 그래도 괜찮다고 아무 상관없다고..

잘못 탄 버스도  그 자체로 목적지가 있다고 이야기 해준다.

이렇게 작은 위로도 가끔은 필요하다.

 저지대를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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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에 띄운 편지
발레리 제나티 지음, 이선주 옮김 / 낭기열라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는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하는 사회과학 도서들이 전하지 못하는 사람의 입김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우리편 아니면 적이라는 식으로 무리를 짓고 날선 무기로 무장하고 있는 익명의 집단 복수로서의 "그들"이 아닙니다. 선과 악이라는 흑백논리의 명찰을 달고 있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그"사람"은 그냥 "나"를 닮은 '너"  "너"를 닮은 "나"입니다. 내가 너일 수 있고 네가 나일 수도 있는 숨 쉬고 느끼고 꿈꾸고 장애를 넘어 교감하고 대화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인간입니다.

 

 

사실 이-팔 분쟁은 현재의 국제정세와 세계화된 정보 환경 속에서 여러가지로 정치적인 의도가 덧칠되어 보도되고 있는 단골 소재입니다, 제니티는 매스미디어가 이-팔 분쟁을 다루는 과정에서 마구 잘려지고 제멋대로 정돈되고 특정한 이미지로 고착된 정보들이 놓쳐버린 인간 개채로서의 인간에 촛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작가는 각 진영의 대변이기를 거부하면서 꿈을 꾸는 두명의 젊은이들에게 줌렌즈를 들이댑니다. 타인에게 감정이입 할 수 있는 픽션의 나레이터로서 말입니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이스라엘-팔레스테인 분쟁에 대해 알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실에 대해 잘 알려면 굳이 이책일 필요가 없으니까요

신문더미를 뒤지거나 관련 정보가 있는 기사들을 인터넷에서 찾는 것이 더 빠를 것입니다.

언젠가 이기호의 소설집에서 읽었던 말이 참 오래 남습니다.

"김박사는 누구인가"의 맨 처음에 실린 단편이었는데 .. 주인공이 예전 문서로만 기록되었던 사람들의 인적사항을 컴퓨터에 저장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야기입니다, 주요한 줄거리가 아니라 그 주인공이 이름만으로 나열된 사람들의 성별 나이 주소지 병역기록을 기계적으로 기입하면서 이렇게 숫자로만 분류되는 똑같은 인물이 아니라 각각 하나의 이야기가 있고 역사를 가진 인물들이라는 것을 꺠닫게 되는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냥 한줄 무심하게 기록된 그 누군가에게도 따뜻한 체온이 있고 뜨거운 피가 흐를것이며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고 삶에 환희 혹은 고통을 느꼈을 시기가 있었을 겁니다. 그 개개의 이야기는 모두 박제된 채 그저 분류하기 쉬운 숫자와 간단한 기호들로 나열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꼈던 주인공의 자괴감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신문에서 혹은 역사책에서 언제나 기록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건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사건이 있었고 누가 중심인물이었고 어떤 결과가 있었고 그것의 역사적인 의미는 ..... 혹은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한  한두줄의 사건들에서 중심 인물이 아닌 사람들은 그저 모모씨 혹은 남자 여자 뭐 그런 성별로만 기록될 뿐입니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곳에 있게 되었는지 그때 그가 어떤 마음인지 어떤 상황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주된 인물과 상반된 사상을 가졌을 수도 있고 다른 마음을 가지고 우연히 그곳을 스쳤거나  주인공보다 더 뜨거운 무언가를 품고 그자리에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기사에는 역사의 기록에는 그것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냥 모모씨일뿐입니다.

 

이 책은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에 사는 두 청소년의 편지와 일기로 구성됩니다.

어느날 이스라엘 어느 도시에서 벌어진 테러로 인해 충격을 받은 이스라엘 소녀 탈은 무언가를 쓰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낍니다.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지금 이 상황을 그리고 내 기분을 기록하고 쓰지 않으면 안될거 같은 강한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누군가 나누고 싶어합니다.

군인인 오빠에게 부탁해서 병에 넣은 편지를 가자지구로 보내가 그 병을 우연히 발견한 팔레스타인의 소녀 나임과 메일을 주고받게 됩니다.

나임과 탈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어쩌면 두 나라의 입장과 전혀 딴판인  꿈을 꾸고 있을 수 있는 그저 평범하고 생각이 많은 젊은이입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고민하고 왜 우리는 서로에게 테러를 하고 공격을 하면서 서로를 저주해야하는지 궁금해합니다. 세상 또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낯선 평화와 웃음이 왜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그토록 주저되고 죄스럽기까지 한지 알지 못합니다.

아니 머리로는 그 이유를 알지만 가슴으로까지 이어지질 못하는 건지도 모르지요.

조금은 자유로운 사회에서 보내는 탈의 편지를 나임은 첨에는 비웃고 조롱합니다. 그저 신문에서 기사에서 보여지는 가자만을 상상하는 탈을  마음껏 비웃으며 어린아이 취급합니다.

하지만 탈은 포기하지 않고 그 땅 팔레스타인에도 자기와 닮은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믿으며 편지를 보냅니다.

 

처음 편지를 쓰기 시작했을 때 탈도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미지는 미디어가 보여준 것이 전부였습니다. 자기가 사는 곳에서 편집되고 걸러진 이미지의 팔레스타인을 생각하며 편지를 씁니다. 자기가 체득하지 못한채 이미지만 가지고 있는 곳에 있는, 그러나 자기와 비슷한 정서를 가진 소녀를 상상하며 편지를 보냅니다.

팔레스타인의 소년 나임은 그런 탈의 편지가 우스울 수도 있겠습니다. 팔레스타인에 대해 편견된 이미지를 가졌으면서도 뭔가 서로 소통하려는 마음을 가진 소녀 어쩌면 아직도 철이 덜 든 낭만적인 사춘기소녀정도로 생각했을테고.. 그래서 나임의 초반 편지들은 냉소적이고 비아냥거리는 투가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하지만 탈은 포기하지 않지요. 누군가 자기의 편지를 읽었고 답을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가능성을 생각하고 기뻐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시도하지요

누군가 소통하고 공감한다는 건 그 사람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는것도 포함되나봅니다. 결국 나임의 이름을 알았고 그의 걱정을 받았고 소통합니다.

어쩌면 나임이 원한것도 보여지는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있는 개개인의 팔레스타인 뭉뚱거려진 덩어리가 아닌 피와 살을 가진 나를 봐주는 누군가였을 겁니다. 그리고 그 대상이 바로 탈이었지요.

누군가와 소통한다는 것 그리고 이해한다는 것은 그 개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내가 보고 이해한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그 속에도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있다는 것 혹은 나와 다른 누군가 개인이 있다는 것 그 작은 하나하나를 봐주는 것.. 거기서 시작하는 겁니다.

현실에 눈을 떠가는 탈과 지금은 현실을 떠나지만 더 큰 희망을 안고 돌아오겠다는 나임은  그 자체로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을 대표하진 않지만 그에 속한 하나의 개체이며 동시에 자유로운 개인입니다.

한사람 한사람의 희망과 한사람 한사람의 개인의 꿈이 모여 결국 덩어리가 되는 거겠지요.

우리에게 보이는 건 커다란 덩어리겠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하는 거라고 그것이 소통이라고 탈과 나임은 말합니다.

 

사족..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아버지  엄마 오빠 혹은 후배  선배였을 사람들이 아직도 차가운 물속에 있습니다. 그들은 뭉뚱거려진 실종자 혹은 희생자만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각자의 꿈이 있었고 이야기가 있었고 아직 못다한 삶이 남아있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피해입은 국민의 일부라고 치부되어버릴지 모르지만 그들은 하나하나가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때때로 전체로 보아야 할 때도 필요하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할때는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소통하고  나눌줄도 알아야 하는 겁니다.

여태 당연해서 인식하지 못했던 리더의 자질을 또 하나 배웁니다.

리더가 아닌 평범한 우리도 아는 것을 누군가는 아직도 모를지도 ... 라는 생각에 화가 납니다.

그래서 이 책이 참 소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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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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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본 영화 '봄날은 간다'가 있었다.

처음 상영관에서 영화를 보고  검은 화면위로 자막이 올라가고 불이 켜질무렵 혼자 중얼거렸다.

ㅆ 년....

그땐 그랬다. 나이를 먹을만큼 먹은 여자가 어린 남자를 상대로 무슨 짓인지..

변하는게 사랑인지.. 그렇게 살랑살랑 순진한 마음에 돌을 던지고 싸늘하게 돌아서더니  그래도 아쉬웠는지 슬그머니 와서 다시 사귀자고?

미쳤냐? 너랑 다시 사귀길...

극중 유지태가 거절하고 돌아서서 담담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참 멋있었다.

그래그래 미련같은 건 두지 않는거야

그래서 마지막 넓은 초원에서 녹음을 하는 그의 모습이 그냥 자유로워보였다.

 

그리고 몇년이 흐른 후 다시 그 영화를 봤다

집에서 혼자 조금은 청승맞게... 하지만 여유있고 삐뚜름하게..

영화가 끝나고 혼자 또 중얼거렸다.

미친놈... 사랑이 변하냐고? 이놈아 세상에 변하지 않는게 뭐가 있는 줄아니?

고인 물은 썩을 수 밖에 없어. 감정도 흘러야지 그저 고여있기만 하면 악취만 풍기는 거야.

니가 나이먹어 세상을 알아버린 여자에게 아무리 들이댄들 그 여자가 꿈쩍할 줄 아니?

너랑 라면을 먹었다고... 너랑 몇번 잤다고... 그 여자가 너것일거 같아?

누군가를 절절하게 사랑할 수도 있지만 책임지거나 끝까지 몰고 가고 싶지 않은 수도 있단다

그게 사랑일 수도 있지. 그게 인생일 수도 있지

그걸 모르면.. 넌 아직 한참 배워야 할게 남은거란다.....

나이먹고 닳고닳은 세상을 모두 알아버린 여자처럼 그렇게 남자를 보며 혀를 찼다.

그래서였을까 마지막  유지태의 모습은 그제야 조금 자란 .. 소년을 벗어난 남자로 보였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다. 그때 그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 내용보다 그 영화를 보고 변해가는 내 모습이 생각났다.

뭐가 달라진걸까

폴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필요하지 않는 나이든 여자다.익숙한 것들 이젠 몸에 익어서 긴장할 필요도 없고 조금은 지루하고 너덜해졌어도 편안한 그것을 더 선호하게된 여자다

물론 여자라서 그리고 아직 그렇게 많은 나이를 먹은 것은 아니니까 조금의 설레임은 남았다

하지만 잠깐의 일탈은 허락할지 모르지만 삶을 송두리째 바꿀 용기는 없다.

용기는 없는대신 안락하고 편안한 일상을 얻었고 조금은 비굴하고 비겁한 삶의 요령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로제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에 살아남느라 닳고 닳았고 속되고 탐욕스럽지만 그래도 무엇이 자기에게 필요한지 아는 남자다. 오래된 연인 폴을 보험처럼 여기기도 하고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고 우쭐할만한 지적 허영심도 있는 하지만 속되고 속된 남자다.

그들도 열렬한 사랑을 했었고 앞을 보지 않는 맹목적인 열정에 들뜨기도 했을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젊음이 지나고 지금은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나를 보호하는지 알아버린 나이의 사람들이었다.

시몽온.. 아직 젊고 철이없다. 불안이나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

한국의 중2처럼 그는 세상이 아직도 자기를 중심으로 돈다고 여기는 피끓고 서투른 청춘이다.

폴이 그에게 끌리는 건 당연하다.

자기를 너무 편하게 여기는 로제에게 소외감을 느끼고 나이들어감이 두려운 폴에게 시몽은 어쩌면 마지막 기회였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줄 멋진 상대

나에게 애닳아하고 마구 빠져드는 서툴고 열정적인 상대 게다가 그가 외모나 배경이 모두가 근사하다면 그건 무지무지한 유혹이다.

하지만 폴은 시몽이 편하지 않다.

나에게만 목 매는 상대는 부담스럽다.

나의 일상이 흔들리고 편하고 나른한 휴식이 없는 격정은 이제 피로해질 뿐이다.

무엇보다 폴은 더 이상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 익숙한 것들이 좋은 때이다.

결국 둘은 딱 그만큼만 사랑하고 헤어질 상황이었다.

물론 로제에게 돌아가더라도 드라마틱한 해피앤딩이 기다리지는 않는다. 그저 진부하고 지리멸렬한 일상일 뿐이지만... 폴은 더이상 기대하지 않음이 편하다. 외롭고 허무할지라도

 

나이들어서 변화를 두려워하는 일이 죄일까

젊은 시절 내 삶에 뭔가 드라마틱한 사건이 일어나기를... 커다란 파도를 타는 짜릿함이 생기기를 바라고 또 바라지만 지금은.. 나의 오늘이 어제와 다르지 않기를.. 내일이라고 새롭지 않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저 편안할 걸 바란다.

삶의 모퉁이에서 나타날 어떤 무언가를 기대하지더라도 그것이 내가 견딜만한 무언가이기를 내가 버틸 수 있고 내 근간이 흔들리지 않을 정도이기를 바란다.

이미 탈만큼 롤러코스터를 탔기때문일 수도 있고 굳이 찍어먹지 않아도 그 맛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삶의 혜안을 가졌다.

그래서 편안함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젊음은 아직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길모퉁이를 돌때마다 두근거리고 설레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유지태의 할머니는 모든 인생의 모퉁이를 다 돌았다. 그리고 이젠 엣기억조차 뒤죽박죽이 된 치매 상태였다. 하지만 젊어서 모진 일들이 모두 엉기고 지워지고 쌓여가면서 이젠 내가 기억하고 싶은 좋은 기억만을 가지고 남편을 기다린다. 사랑하고 지치고 배신당하고 슬펐던 그 모든 것이 지나고 이젠 그 모든것이 예쁘게 기억되어 그냥 행복하다. 편안하다.

그런거 아닐까.....

 

한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대에게 말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면 먹고 가래?"

하지만 그 때 그 말이 진심이었듯 지금 변한 내 마음도 진심이다.

지금 변한게 있다고 그때의 진심이 무시되는 건 아니다.

그때 그 마음이 그말이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는건 아쩌면 지금 변하고 잊혀지고 익숙해진 편안함 때문일 수도 있다.

 

간만에 엣영화를 다시봐야겠다.

이번엔 마지막에 내가 무어라 중얼거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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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theleft 2020-09-29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