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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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로 이사를 온지 3년째다.

이제 많이 익숙해졌다싶은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순간순간 낯설고 어색한 경우가 남아있다.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는 정말 추웠다.

20년전 대학입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온 그때도  서울의 첫 인상은 춥다는 거였다,

내가 자란 남쪽에서는 눈은 귀한 것이었고 신학기가 시작한 3월이면 아직 겨울이 남아있어 쌀쌀한 날씨가 지속되긴 하지만 그래도 봄은 봄이었다. 두터운 겨울옷은 벗어도 상관없었고 조금 하늘거리게 입으며 발을 동동 구르고 다녀도 견딜만 했다.

서울에 올라와 처음 맞는 3월,... 아직 학교도 낯설고 살고 있는 동네도 낯선 그때 3월의 하늘에서는 눈이 내렸다.

지금이야 5월에도 눈이 내린다고 호들갑을 떠는  변화무쌍한 날씨가 되었지만 .. 그때 모든 것이 낯선 상황에서 3월의 눈은 울고싶을 만큼 적응이 어려웠따.

왜냐하면 내 생일이 3월이었고 난 그때까지 3월 내 생일이 되면 날씨도 풀리고 웅크리고 걷지 않아도 된다는 경험으로 기억된 습관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3월 내 생일이 지난  어느날 눈이 내릴 수도 있다는 첫경험은 좋은 것이 아니었다.

여기 서울은 예상치 못한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는 곳이라는 두려움이 생겼고 3월이 되었다고 따뜻해지지 않을 거라는 냉냉한 경험을 가졌다,

하지만 20년이 지나면서 그렇게 낯설었던 서울이 익숙해지고 언제부턴가는 집에서 돌아오는 열차안에서 63빌딩이 보이고 한강철교를 건너는 순간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또다시 그 익숙한 공간을 떠나 신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정말 추웠다. 서울의 북쪽이라고 그러하다는 이유도 있고 내가 이곳으로 이주한 이유가 거의 서울에서 쫒겨났다는  감상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이유도  한몫했을 것이다.

서울이어도 폐쇄적이고 작은 동네에서 10년을 넘게 살다가 이상온 이곳은 어디 숨을 곳도 없이 사방이 뻥뻥 뚤린 개방형이었다. 신도시를 관통하는 대로가 있고 그 넓은 중앙로를 따라 건물이 아파트가 서 있고 이 곳의 자랑인 넓은 공원 그리고 아파트 사이사이 조성된 공원길들 그건 시원시원하고  어디든 통하는  편리성을 갖고 있지만 내게는 너무 크고 너무 무섭고 너무 뚫여있었다.

나는 사실 어디든 내가 알지 못하는 곳 나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숨고 싶은 마음이었었다.

신도시는 그저 크고 어디든 통하고 추운 곳이었다.

 

이 신도시에는 작가들이 참 많이 살고 있었다. 그 전엔 몰랐는데 의외로 구석구석 작가들이 있고 그들의 글에서 신도시..어쩌고 하고 나오면 자동적으로 여기 어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은희경 작가의 전작 태연한 인생에서도 주인공이 어쩌면 이곳 어딘가의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었고 이곳 어딘가의 카페에서 타인을 만나고 술집에서 사건이 일어났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이전 이곳에 와서 읽었던 "소년을 위로해줘"의 그 소년도 이곳 어딘가 몇단지의 아파트에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소설집에서 신도시 이야기가 참 많이 나왔다.

첫번째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처음 만난 서울을 생각했고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작품들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삶의 토양을 바꾼 우리 아이들을 생각했다.

이번 작품에 유난히도 눈에 띄는 말 "신도시 아이들"이라는 말에서 자꾸 턱턱 멈추면서 나는 우리 아이들을 생각했다. 전혀 자기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부모들의 결정으로 익숙한 곳에서 떠나야 하고 낯선 곳에서 다시 뿌리를 내려야 하는 아이들이 걸렸다.

예전 나는 적어도 자의적으로 주소지를 옮겼고 낯선 곳에서 정착하고 뿌리를 내렸지만 내 아이들의 지금의 이주는 그때와는 다르다. 그때 나만 생각하면서 춥다고 황량하고 숨을 곳이 없다고 느꼈던 이곳 신도시에서 우리 아이들이 보았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때 난 그것까지는 생각못했다.

단지 어미된 입장으로 새 학교에 잘 적응할지 친구들은 잘 사귈지만 걱정했다. 이미 모든 그룹이 결정되고  또래문화가 형성된 상태인 6학년이던 큰 아이걱정과 막 사춘기가 시작되고 조금 이기적으로 편을 가르는 나이가 되는 3학년 작은 아이의 걱정은 했었는데 그것이 토양을 아주 바꿔버린 환경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학교에 잘 적응하고 무리가 없으면 다른건 그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일단 눈에 보이는 것으로 아이들은 잘 적응했고 그 사이 갈등이라고 해봐야 보편적인 그또래의 문화로 인한 것들이었다고 단정지었다.

가끔 아이는 이곳과 예전의 친구들을 비교하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했지만 한때라고만 생각했다그리고 시간에 따라 나도 익숙해진것처럼 아이들도 익숙해졌으리라 생각했고 작년에 유난하게 사춘기를 겪는 작은 아이의 문제도 그저 아이들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서울의 아이들 신도시의 아이들 조금 더 외곽의 아이들 그렇게 구분짓는 일이 뭔가 자만심에서 나오는 선입견인것 같아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이들은 어떻게 다른지 뭐가 다른지 이야기를 했지만 그건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했고 이곳 신도시의 엄마들이 이곳과 좀 더 외곽의 이야기를 비교하며 할때는 나혼자 코웃음을 쳤다. 그래봐야 이곳과 서울도 비교의 대상인걸 왜 모를까..

하지만 그곳에서 떨어져 나온 내가 뭐라고 비판할 수도 언급할 수도 없는 문제였다. 나름 자격지심도 있었고 어디나 아이들 키우며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할거라고만 생각했다.

어디나 몇퍼센트의 좋은 사람과 몇퍼센트의 싫은 사람이 있고 나랑 맞지 않은 사람도 있고 튀는 사람도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이곳은 유난히 솔직하고 개방적이어서 조금은 거칠어 보일 수도 있고 뭔가 모르게 서로서로 무리에 끼어서 우리라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에 기를 쓰는 것은 느껴졌다. 거리를 다니면서 혼자 다니는 젊은 엄마는 거의 보질 못했다. 장을 보거나 극장을 가거나 공원을 걷거나 늘 두셋이었고 무리지어다니는구나 하는 것만 보았을 뿐이다.

아이들이 성향이 강하고 직선적이라는 걸 느꼈어도 그게 그때보다는 조금 더 나이를 먹은 아이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했고 그때의 학교보다 규모가 작다보니 조금 더 친밀하고 잘알고 있고 그 속에 끼어든 새로운 전학생이 그래서 조금 더 외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만 했다.

어쩌면 아이들은 제 어미가 혼자 흔들리고 우울한걸 알고서 스스로 뿌리내리기로  노력했을것이다.큰 세상속에 뿌리내는 것이 아니라 서울에서 신도시로 이화분에서 저화분으로 옮겨온 아이들은 그 화분의 가장자리를 탐색하고 내가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을 가늠하고 튀지않게 살아남기위해 뿌리를 뻗어가며 자제해가며 그렇게 살아내고 있었던 거같다.

<스페인도둑>의 완이나 <T아일랜드의 여름잔디>의 소년들처럼 말이다.

낯선 곳에서 쿨함이라는 철갑을 두르고 어떤 경우에도 상처받지 않을만큼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소년들은 슬프다.울거나 떼쓰지 않고  담담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가는데는 보이지 않은 많은 힘이 필요하다. 오리처럼 발은 동동거리면서도  물위의 몸집은 아무런 동요가 없을 것. 그건 그 나이의 또래가 견디기엔 많이 무거운 삶이다.

작가의 표현처럼 신도시 아이들인 소년들은 그렇게 어디든 적응을 하고 어디서든 잘 어울려 살아가지만 그 이면은 단단하게 닫고 경계하는 피곤함이 묻어있다.

이곳에서 3년간 내 아이도 그런 과정을 거쳤을까

겉으로 절대 예전 그곳을 그리워하지 않고 이곳에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조금 슬프고 아파서  어쩔줄 몰라하는 아이가 살지 않았을까

운다고 떼쓴다고 바뀌는 건 없다는 걸 이미 알아버린 아이들은 마음을 둘 데가 없을 것이다.

어쨋거나 낯선 곳에서 뿌리를 내려야하는 것말고는 할 수 있는 것 해야할 것이 없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아이는 불평이 없었고 잘 지내는 듯 보였다. 친구도 금방 사귀었고 옛친구들과도 연락을 하고 가끔은 만나러 가기도 했다. 어리니까... 변화에 익숙해지나 보다 싶었다.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다. 고민해야할 것들 풀어야 할 문제들이 쌓여있는 데에 아이들까지 문제로 더 얺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여기저기서 터지기 시작한다.

낯선 땅에 내려진 뿌리는 처음엔 긴장하고 조심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맞춰간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흙에 대한 부작용이 나타나는 걸까 아니면 이동이라는 것이 없더라도 생기는 그 시기의 혼란이나 성장통같은 걸까?

힘들다고 그때가 그립다고 돌아가고 싶다는 아이에게 해줄 말은 없다.

그저 견디라고 견디다보면 익숙해질거라고... 입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러길 바라면서 그저 대꾸없이 들어줄 뿐이다.

이 시간도 다 지나가리라....

그리고 지금은 다시 고요하다. 다 지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는 쿨해지는 법을 배우고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우고 타인과 의자를 좁혀앉는 법을 배운다.

20여년전 낯선 도시의 첫인상을 춥다... 라고 각인 시켰던 어미는   제 자식들의 낯선 도시에 대한 첫인상이 어떠했는지 묻지 않는다. 묻기가 두려울 수도 있고 굳이 묻지 않아도 되기때문이기도하다

첫인상은 그저 자신만의 것이고 자신이 견뎌야 하는 온도일뿐이다.

 

아무 생각없이 들었던 소설집이 너무 슬프다.

이야기속에 너무나 익숙한 인물들이 보이고 내가 마주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고 하지만 사랑해줘야할 사람들이 있다.

남의 말을 하듯... 혼자 중얼거리듯  누구도 듣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나는 듣지 않는 듯 짐짓 딴청하는 듯.. 무겁게 책장을 넘겼다.

그래도 다들  잘 살아내고 있어 다행이다.

그것이 행이든 불행이든.. 그렇게 견디고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축복이다.

 

이건.. 리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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