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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 - 상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평점 :
어쩌다가 이 책을 읽어 볼 생각을 했는 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느 날 문득. 글쎄, 그 날이 언제였더라, 여느 날들과 똑같은 평범한 날이었거나, 훈련소에 가기 전 머리를 깎고 온 나를 보며 아내가 울먹거리던 날이었거나, 또는 훈련소에 입소하기 전날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상상과 관계없이 소설 첫머리에 인용된 브레히트의 시(詩)처럼 하나의 우연한 사건이었을 뿐인 지도 모른다. 기대하지 않은 날, 거기 있었던 장미처럼, 오래된 정원은 이미 거기, 책장 구석에 브레히트의 장미처럼 피어 있었을 것이다.
'오래된 정원'이란 책제목 속의 '오래된'이란 수식어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그중 하나는 본래의 뜻인 시간적인 의미의 '낡음'이다. 반세기 동안 지속된 분단의 역사와 군사독재의 어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또는 민주와 반민주. 이런 가치의 잣대들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렸다. 아니, 아직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너무 이를 지도 모르고 지나친 속단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마치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사회주의 국가들은 사라졌고, 민주를 외치는 목소리는 예전과 같이 가슴을 진하게 울리지 않는다. 흘러간 유행가처럼, 철지난 과일처럼 이 모든 것들은 시들시들해졌다. 작가가 글머리에서 밝힌 것처럼 이십세기가 끝나는 무렵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다.
오래된 이분법의 이데올로기도, 그 이분법이 지배하던 세계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비록 한반도에서는 앞의 모든 것들이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낡은 가치와 낡은 세계는 대부분의 현실의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낡은 것이 지나간 캄캄한 자리에는 새 것이 찬란하게 찾아오는 법이라고 작가는 조용하게 얘기한다, 들릴 듯 말 듯, 차분한 목소리로. 윤희가 말한다.
당신은 그 외롭고 캄캄한 벽 속에서 무엇을 찾았나요. 혹시 바위틈 사이로 뚫린 길을 걸어 들어가 갑자기 환하고 찬란한 햇빛 가운데 색색가지의 꽃이 만발한 세상을 본 것은 아닌가요. 당신은 우리의 오래된 정원을 찾았나요.
'오래된'의 두 번째 의미는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숨겨짐' 또는 '소중함'이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오래된'의 두 번째 의미 속에 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비록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역사는 자본주의의 손을 들어 주었지만, 이것이 자본주의의 영원한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계절의 변화처럼 역사가 갖고 있는 필연적인 절차일 뿐이고 하나의 전환점일 뿐이다. 그리고 '오래된 정원'은 베를린 장벽과 함께 무너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너진 벽의 틈 안에서 빛나고 있다.
윤희가 나즈막한 목소리로 다시 속삭인다.
우리가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버티어왔던 가치들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아직도 속세의 먼지 가운데서 빛나고 있어요. 살아 있는 한 우리는 한번 다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