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특별한 이유 없이 못 읽게 되는 책들이 있다. '당신들의 천국'이 그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단지 이 소설이 장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비록 그 길이가 만만치는 않지만 박경리의 '토지'나 황석영의 '장길산' 같이 대단한 결심 없이는 못 읽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분량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이 책을 읽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지 어언 십 년을 넘겨 버렸다. 못 읽고 있었던 이유가 특별한 것이 없으니 읽기 시작한 것 역시 특별한 이유는 없다. 아마도 주인공 신분이 군인이라는 것과 현재 군의관인 내 신분이 약간의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오랫동안 못 읽었던 이 책과의 인연을 연결시켜 준 것 같다. 이 작품의 배경은 문둥이들만이 사는 소록도이다. 소록도에 새로 취임한 병원장 조백헌 대령은 문둥이들을 위해 간척사업을 시작하고 이것이 소설의 중심을 이룬다. 이 간척사업을 중심으로 조백헌과 섬의 장로들, 섬사람들과 육지사람들, 병원 내부의 인물들이 서로 대립한다. 간척사업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것의 여부는 이 소설의 주제와 별 상관이 없다. 오히려 간척사업을 두고 벌어지는 인물들의 동상이몽과 간척사업을 통해 드러나는 개인적, 집단적 욕망이 빚어내는 갈등과 그 해결이 소설을 이해하는 큰 줄기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모든 갈등에 대한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는다. 다만 환자와 건강인의 결혼을 통해 화해의 가능성만을 약간 보여줄 뿐이다. 초판의 서문을 보니 이 책이 나온 지도 거의 삼십 년이 다 되어 간다. 삼 십 년이면 강산이 세 번 정도 바뀌는 꽤 긴 세월이다. 난 이 소설에 대해 몇 가지 불만이 있다. 행동은 없고 고민만 많은 햄릿형의 인물들은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고, 인물들의 대화 속에 나타나는 끊임없는 동어반복도 영 마음에 걸린다. 이 소설에 대한 이러저러한 불만으로부터 얻은 결론은 한 소설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변치 않는 가치를 유지하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소설에도 유통기간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