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의 법칙 살림지식총서 326
고장원 지음 / 살림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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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잘 안 읽지만 한때는 SF소설을 꽤 읽었다. 아시모프, 하인라인, 젤라즈니 부터 듀나까지. SF를 읽는 일이 드문드문 해진 이유는 공상-나는 공상과학소설이라는 말이 좋은데 왜 바꿨지?-을 하는 일이 드물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딱히 읽을 만한 과학소설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장 마지막으로 읽었던 것은 테드 창의 <당신인생의 이야기> 였던 것 같다. 이 책이 그리 나쁘진 않았으나 편안히 볼 수 있는 책은 결코 아니었고, 그 뒤로 읽은 책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개 읽었던 것 같기도 한데......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은 과학소설에 대한 역사와 개념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를 다루기에는 이 책의 지면이 너무 적다. 물론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과학소설의 개념을 다루는데 뭐 그리 많은 지면이 필요하겠냐는 얘기를 누군가 할 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해보자. 과학소설의 개념과 역사가 그토록 궁금한 내용인지. 만약 궁금한 거라면 이 정도의 지면으로 그러한 궁금함의 갈증이 해소될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정도의 역사는 다른 단행본 뒷면의 해설에도 나오는 정도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역사나 개념을 알 목적이었다면 굳이 이 책을 읽는 것보다는 해설을 열심히 읽는 것이 낫지 않을까?

역사나 개념 또는 이 책의 제목 처럼 법칙에 대한 것을 넓고 얇게 다루기 보다는 좀 더 가볍고 분명한 아이템을 자세하게 다루었으면 아쉬움이 남는다. 예를 들면 '한 시대를 풍미한 SF고전 20선' 같은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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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 살림지식총서 25
양운덕 지음 / 살림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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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푸코의 책들을 읽고 있는 중이다. 너댓권 정도 읽었는데 여전히 어렵다. 이러한 어려움은 푸코가 자주 사용하는 개념들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역자 해설등을 참고해서 대충 알고는 있지만 여전히 머리속에서는 잘 정리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매번 새로운 책을 읽을 때마다 혼란스러울 수 밖에!

도서관에서 <비정상인들>을 졸면서 읽다가 바람도 쐴겸 점심도 먹을 겸 나왔다가 학교 서점 앞에서 세일을 한다길래 대뜸 샀다. 살림지식총서 책들의 최대 장점은 무지하게 얇다는 것이다. 얇은 것은 가벼운 것이고 가벼운 것은 내용이 없는 것이고 내용이 없는 것은 읽으나마나? 라는 나쁜 연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도 하지만, 물론 그런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사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푸코가 사용하는 권력, 근대적 주체, 신체, 규율, 성 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 간략하고 밀도있게 설명하고 푸코 이전에 사용되던 개념과 비교해준다. 푸코의 입문서로는 아주 훌륭하다. 이런걸 가격대비 성능이 뛰어난 책이라고 해야 하나. 여전히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면 푸코의 주장에 대해서 뭔가 좀 알게 된 듯한 착각 또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제발 깨달음이기를! 

이 정도면 100쪽이 채 안되는 손바닥만한 판형의 책을 읽고 독자가 얻어가는 푸코에 대한 정보치고는 과분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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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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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즘 네가 말이 많구나" 김용옥씨의 책을 읽고 나면 말이 많아진단다. 이건 내 얘기가 아니라 내 주변의 누군가가 내게 했던 얘기다. 우선 누군가가 내게 한 이 말의 의미가 내가 말이 많음을 비난하기 위해서 한 말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그럼 그게 무슨 뜻일까? 그의 책을 읽고 나면 말이 많아진다는 것을 좋은 의미로만 해석하면, 읽고나서 많은 것들을 잊어버려도 어느 정도는 떠들 수 있을 정도의 풍부한 지식이 그의 책 속에 들어있다는 의미인 동시에, 그 분야의 문외한들도 아는 척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이 잘 되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책을 읽는동안 머릿 속은 새로운 지식들로 꽉꽉 채워지며, 지적인 포만감(?)과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기쁨으로 들뜨게 된다.

<금강경강해>가 그랬고, <요한복음강해>가 그랬다. 개인적으로 그의 초창기 책들보다는 요즘의 책들이 훨씬 더 안정감이 있어서 좋다.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현학적인 문장을 지녔을 김용옥씨의 최대 장점은 금강경이나 성경, 불경, 도덕경, 논어 같은 무미건조하고 딱딱한할 것만 같은, 그래서 전공자가 아니라면 절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을 텍스트들을 흥미진진하고 말랑말랑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해 준다는 것이다. 

<기독교 성서의 이해> 역시 성서라는 텍스트의 콘텍스트들을 조목조목 짚어내고 텍스트 내부에 존재하는 모호한 의미들을 다양하게 분석해내는 그만의 탁월한 재주가 돋보인다. 책 제목처럼 이 책의 목적은 '이해'를 위한 것이다. 김용옥씨가 책속에서 종종 언급하는 것처럼 이 책이 성서에 대한 의문과 새로운 시각을 통해 이루려는 '이해'를 누군가는 '신성모독'이나 '이단'으로 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서에 대한 그의 '의문'과 새로운 '시각'은 '이해'외에 다른 의도가 없다. 책을 읽을 수록 이 사실은 분명해진다. 성서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그가 '이해'를 통해 이루려는 최종적인 목적이다. 그럼에도 만약 누군가가 워낙에 도그마라는 것이 의문을 달 수 없는 차원의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가 시도하려는 '이해'는 본질적으로 '이단'과 '신성모독'의 차원에 속하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성서를 절대부동의 '도그마'가 아닌 모든 이에게 기쁜 소식이 될 '복음' 또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때, 이 말씀을 듣고 기뻐할 이들은 말씀의 '의미'를 궁금해 할 수 밖에 없고, 이런 궁금함은 당연히 '이해'를 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째서 성서는 27서로 이루어졌으며, 다른 성경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을까? 왜 신약 속에는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가진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네가지 복음을 연달아서 붙여놓았을까?  네 복음속에 펼쳐지는 이야기들의 디테일이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사렛 예수는 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을까?

이러한 의문들은 끝이 없다. 독실한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궁금할 수 밖에 없는 이 당연한 의문들을 김용옥은 하나하나 천천히 풀어나간다. 이 책이 안정적이라는 것은 김용옥이 자신의 책속에서 종종 보여 주는 나르시즘과 그로 인해서 삼천포로 빠지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성서 27서의 성립배경, 동정녀 잉태설, 베들레헴에서 예수가 태어난 이유, 바울의 서한들의 의미와 형식에 관한 그의 설명은 논리적이고 명쾌하다. 혹 그의 설명을 듣는 이 들 중에 일부는 그의 의문과 충격적인 해석에 대해 반감을 가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의 '이해'가 갖는 거침없는 의문들과 해석들이 성서의 권위를 일부분 깎아내렸을 지는 몰라도 왠지 모르게 대하기 어렵기만했던 성서를 훨씬 더 친근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왜냐하면 읽히기보다는 들리기를 원했던, 한 사람의 독자보다는 다수의 청자를 확보하고자 했던 복음(gospel)의 본래적 목적은 권위와 절대성보다는 친근함과 대중성에 훨씬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의문'과 '이해'는, 아무리 성서가 논리적인 구성물이 아니라 할 지라도, 무작정 믿어야 한다는 '의무' 나 '맹신'보다 훨씬 더 신앙적인 것이다.

이런 '이해'의 순수한 의미를 믿는다면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김용옥의 말처럼 절대로 반신앙적이거나 탈신앙적인 것이 아니다. 책을 덮고 나서 든 첫번째 생각은 신약 4대 복음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봐야 겠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게는 이 책이 준 '이해'가 성서의 말씀에 더 가까워지게 해준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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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롤드 핀터 전집 8
해롤드 핀터 지음, 권경수 옮김 / 평민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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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을 사지 말자는 내 나름대로의 원칙을 어기면서 까지 결국 해롤드 핀터 전집을 사게 되었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 인데, 하나는 당연히 해롤드 핀터의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아한다고 해서 무작정 전집을 사지 않는 평소의 성향을 감안하다면 아홉권을 다 산 것은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게 바로 두 번째 이유이다. 장르가 희곡이라면 아무리 유명한 작가라 하더라도 잘 팔리지 않는다. 그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조차도 읽은 사람은 드물다. 혹 셰익스피어가 20세기에 태어나 노벨문학상을 탔다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리라. 그래서인지 출판업계에서는 극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 것을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다시 말해서, 희곡은 잘 읽히지 않기 때문에,  난 200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해롤드 핀터의 전집을 사기로 했다.  물론 그 결심마저도 굉장히 늦게 이루어 진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근데 잘 읽히지 않는 거랑 내가 전집을 산거랑은 대체 무슨 관련이? 좀 자세히 설명하면, 잘 읽히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안팔릴 거라는 것이고 잘 안팔리는 것은 곧 절판될 거라는 것을 의미한다, 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다 읽을 가능성이 희박함에도 불구하고 몇 년간의 망설임끝에 해롤드 핀터의 전집을 사게 됐다. 절판될까봐. 

핀터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아마도 '생일파티' 일 것이다. 물론 '생일파티'도 좋지만 8권에 실려있는 '배신' 또한 그에 못지 않다. 이 작품의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이 연극은 작품에 등장하는 네명의 주인공이 서로를 철저하게 속이는 이야기이다. 이 철저한 속임이 곧 배신이며, 이 배신은 서로가 잘 아는 사이에서, 십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이루어진다. 로버트와 에마는 서로가 불륜을 저지름으로써 배신하고, 제리는 로버트의 아내인 에마와 불륜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로버트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제리에게 숨김으로써 서로를 배신한다.

이 연극은 제리와 에마가 헤어진 후 다시 만나는 1977년에 시작해서 점점 과거로, 때로는 같은 해의 다른 시간으로(1973년, 1973년 나중)이동하면서 진행된다. 이 작품에서 시간적인 선후 관계는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며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몇가지 사소한 사건들-에마의 고백, 제리의 편지, 토르첼로행, 모터보트, 스쿼시, 네드-은 서로가 어떻게 속고 속이는 지를 관객과 배역들이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관객이 아닌 독자로서도 이 연극의 전후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꽤나 까다로운 일이다. 나 또한 몇가지 사실들을 확인하기 위하여 앞 장면을 여러번 다시 뒤적였다. 독자로서는 자주 확인해야 하는 것이 번거로운 일이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집중을 해야하는 동기부여가 된다.

나는 두 종류의< 배신>을 갖고 있다. 하나는 박철완씨가 번역한 것이고 또하나는 정경숙씨가 번역한 것이다. 두가지 번역본 모두 극을 이해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고 대사들이 매끄럽게 처리되어 있다. 하지만 한가지, '시간'적 배경을 기술하는데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박'의 경우 '1973년 나중'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것이 '정'의 경우에는 '1973년 후반'으로 되어 있다. 원본을 보지 않아서 알 수 없으나 문맥상 '박'의 경우가 타당할 것 같다. 왜냐하면 1973년 후반이라는 번역의 의미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1973년 후반이라면 계절상 여름이 지난 10월 이후 정도를 의미할 것 같지만 실제로 그 시간적 배경의 장면은 여전히 '여름'이기 때문이고 '후반'이라는 의미자체가 애매모호 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체 일년 중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후반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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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사 이청준 문학전집 장편소설 3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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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소설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배앓이. 또는 복통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구입한 책이다. 복통이 주된 소재가 된 작품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은 <퇴원>이다. <퇴원>의 중요성은 이 작품이 그의 데뷔작이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이 작품이 갖고 있는 풍부한 상징과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은 데뷔작=미숙함이라는 일반적인 생각을 의심하게 만든다. 복통이라는 소재로 엮어보면 그 다음으로 중요한 작품은 <귀향연습>이 될 것 같다.

이외에도 여러 작품들 속에 복통이란 소재는 단식, 허기, 배고픔이라는 형태로 변주되어 드러나 있다. <조율사>와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  속에서 복통은 단식과 허기의 이미지들과 연결되어서 나타난다. 이청준의 소설 속에서 복통은 '자기망각' 또는 '자기망실'과 관련되어 있다. <퇴원>의 주인공은 위궤양으로 입원했지만, 소설은 위궤양이 다 나은 상태에서부터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소설 속에서 자아망실증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복통-위궤양-공복-허기-공허함-자기망각의 이미지들이 연결된다. 조율사의 작품 속에서는 복통이 소설의 주된 소재라고 볼 수 없다. 이 작품은 '조율'이라는 은어를 쓰는 문학가 집단 또는 지식인 집단에 속한 청년이 생활, 사랑, 창작의 세계 속에서 방황하는 이야기이다. 좀 단순하게 정리하면, 이 소설은 집안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향으로 가지 않으며, 사랑하는 이 앞에서 당당하지도 못하며, 부지런힌 창작에 열중하지도 못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문학청년의 이야기 정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뒤에 실린 정과리의 말처럼 어떤 결론이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도 않고 주된 이야기가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소설은 다소 산만하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소설로 평가 받고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배앓이는 주인공의 무절제한 생활의 결과물이고 자신없음 또는 결정하기 곤란한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한 신체화 증상이다. 이 소설 속에서 배앓이는 단식을 하기 위한 동기가 된다. 주인공이 단식을 하려는 동기는 배앓이를 치료하는 표면적인 이유와 단식 과정에서 겪는 극심한 고통을 경험하려는데 있다. 책 속에서 단식의 고통은 임종의 고통과 환생의 고통으로 정리된다고 한다. 주인공은 극심한 임종의 고통, 자기사망의 고통을 겪는 것이 자신의 근본적인 목표라고 한다. 이 지점에서 자기 사망은 자기 망각이나 자기 망실의 의미와 연결된다.  

<퇴원>이 자기망각을 치료하려는 또는 깨닫는 소설이었다면 <조율사>는 자기망각을 겪으려는 이의 이야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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