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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사 ㅣ 이청준 문학전집 장편소설 3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1998년 4월
평점 :
절판
이청준 소설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배앓이. 또는 복통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구입한 책이다. 복통이 주된 소재가 된 작품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은 <퇴원>이다. <퇴원>의 중요성은 이 작품이 그의 데뷔작이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이 작품이 갖고 있는 풍부한 상징과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은 데뷔작=미숙함이라는 일반적인 생각을 의심하게 만든다. 복통이라는 소재로 엮어보면 그 다음으로 중요한 작품은 <귀향연습>이 될 것 같다.
이외에도 여러 작품들 속에 복통이란 소재는 단식, 허기, 배고픔이라는 형태로 변주되어 드러나 있다. <조율사>와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 속에서 복통은 단식과 허기의 이미지들과 연결되어서 나타난다. 이청준의 소설 속에서 복통은 '자기망각' 또는 '자기망실'과 관련되어 있다. <퇴원>의 주인공은 위궤양으로 입원했지만, 소설은 위궤양이 다 나은 상태에서부터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소설 속에서 자아망실증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복통-위궤양-공복-허기-공허함-자기망각의 이미지들이 연결된다. 조율사의 작품 속에서는 복통이 소설의 주된 소재라고 볼 수 없다. 이 작품은 '조율'이라는 은어를 쓰는 문학가 집단 또는 지식인 집단에 속한 청년이 생활, 사랑, 창작의 세계 속에서 방황하는 이야기이다. 좀 단순하게 정리하면, 이 소설은 집안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향으로 가지 않으며, 사랑하는 이 앞에서 당당하지도 못하며, 부지런힌 창작에 열중하지도 못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문학청년의 이야기 정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뒤에 실린 정과리의 말처럼 어떤 결론이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도 않고 주된 이야기가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소설은 다소 산만하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소설로 평가 받고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배앓이는 주인공의 무절제한 생활의 결과물이고 자신없음 또는 결정하기 곤란한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한 신체화 증상이다. 이 소설 속에서 배앓이는 단식을 하기 위한 동기가 된다. 주인공이 단식을 하려는 동기는 배앓이를 치료하는 표면적인 이유와 단식 과정에서 겪는 극심한 고통을 경험하려는데 있다. 책 속에서 단식의 고통은 임종의 고통과 환생의 고통으로 정리된다고 한다. 주인공은 극심한 임종의 고통, 자기사망의 고통을 겪는 것이 자신의 근본적인 목표라고 한다. 이 지점에서 자기 사망은 자기 망각이나 자기 망실의 의미와 연결된다.
<퇴원>이 자기망각을 치료하려는 또는 깨닫는 소설이었다면 <조율사>는 자기망각을 겪으려는 이의 이야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