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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평점 :
<칼의 노래>, <남한산성> 이후에 세번째로 읽는 김훈의 책이다. 내가 읽은 앞서 두 권의 소설은 사실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읽을 당시에는 구분이 가능했던 것 같은데, 읽고 나서 한 일 년이 지나고 나면 그 소설이 그 소설 같은 느낌이다. 웅얼웅얼거리는 듯한 인상적인 그의 문체때문에 생긴 현상인 듯하다.
아마도 문장이 주는 강렬한 인상때문에 플롯, 주제, 인물과 같은 것들은 상대적으로 그리 인상에 남지 않는 것 같다. 덧붙여 김훈은 인물의 생각을, 또는 자신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인물을 묘사하거나, 이야기를 꾸미는데는 그렇지 못하다. 매번 그 소설이 그 소설 같은 것은 그 때문이다. <칼의 노래>와 <남한 산성>만 해도 그렇다. 시대와 장소와 바뀌었을 뿐 거의 같은 소설처럼 느껴진다, 작가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강산무진>에 실린 단편들은 이러한 불만들을 어느 정도 잠재워준다. 인물들은 다채롭고 이야기도 다양하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해, 이 소설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또 비슷하다. 이 소설집 속에 등장하는 단편들 속의 인물들이 다양하게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인물들의 독특한 직업 때문이다. 택시기사, 중소기업 사장, 과부, 이혼녀, 권투선수, 강력계 형사, 등대지기.....신수정도 해설에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강산무진>에서 가장 먼저 우리의 눈과 귀를 붙잡는 것은 아마도 여덟 편 제각각 다르게 설정되어 있는 전문적인 직업 세계의 다양함과 그에 대한 정밀하고 적확한 묘사일 것이다. (358쪽)
하지만 그 다양한 직업의 인물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장소들-서울, 등대, 라오스, LA, 절, 복싱경기장, 장례식장-과 다양한 이야기들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집 속에 작품들은 비슷비슷해 보인다. 좋게 말하면 이걸 통일감, 또는 일관성이라고 해야 할까?
좀 구체적으로 말하면, 여러인물들을 마치 몇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소설은 무대이고 인물들은 배역이고, 그럼 작가는 연출가쯤 되나? 한 배우가 다양한 영화에서 다양한 배역을 연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배웅>에 등장한 김장수는 전직 사장님이었고 그 전직 사장님은 무대를 바꿔 새로운 등대장으로 온 송곤수가 되며(<항로표지>), 그게 아니라면 그는 전직 강력계 형사(<고향의 그림자>)였을 수도 있다. 여기서 좀 더 비약시키면 송곤수의 부인은 뇌종양으로 죽고(<화장>), 추은주는 윤애가 되어 어린 딸과 함께 라오스 행 비행기에 오르고(<배웅>), 송곤수의 부인은 폐경이 된 언니이면서 이혼한 동생이고(<언니의 폐경>), 아내가 기르던 개 '보리'는 장일식이 검거되는 해망사에서 다시 환생한다(<머나먼 속세>).
배우가 되었건, 배역이 되었건, 인물이 되었건간에, 이들 모두는 현실 속에서, 혹은 소설이라는 무대 속에서 늙고, 병들고, 죽는다. 사업에 망하고, 부정을 저지르고, 불륜을 꿈꾸고, 남편을 여의고, 이혼당하고, 범인을 놓아주고, 고국을 떠나고, 암을 진단받고, 스승을 배반한다. 이들이 겪는 변화와 몰락의 중심에는 뇌종양이나 폐암 같은 질병이나 폐경과 같은 생리적인 늙음이 있다. 병과 세월을 통해서 인물들은 중첩되고, 분열하고, 변신한다. 세월이, 세상이, 삶이, 그들을 흔들고 떨어뜨린다. 그래서 그들 모두가 혼란스럽고 아프다. 어찌보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현실 속의 인간이라는 존재도 생로병사라는 과정속에서 모두 구분이 되지 않고 희석되고 섞이어서, 미세한 차별성 조차도 무화되어버리는 비스무래한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물이나 바람이나 빛과 같이 구분되지 않는 존재들......
그래서 이 소설집을 읽고 나면 두가지 목소리가 귓속에서 머리속에서 마음 속에서 메아리 친다.
사람으로 태어나라(<화장>)
성불하여라(<머나먼 속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