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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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읽을 요량으로 산 책이다. 다른 이들은 어떤 지 몰라도 소설이나 시가 어느 장소에서나 편안하게 잘 읽힐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내 경우엔 대략 책의 1/4 정도를 읽어야지 작가의 설정과 의도, 인물들의 면면, 이야기의 흐름등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 때부터야 비로소 책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일주일이 넘는 여행이 아니라면 소설이 늘 적절한 읽을꺼리는 아니 셈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일주일 정도이 넘는 여행은 내게 소설이 필요한 시간인 셈이다. 김영하가 어느 책에서 쓴 것처럼 크레타 섬에서 <희랍인 조르바>를 읽고, 알제리의 오랑에서 <페스트>를 읽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늘 머물러 있던 장소가 아닌 곳에서 딴 생각을 하면서 읽기에는 소설이 딱이다. 하지만 왕복 6시간의 기차 안에서 읽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그렇다면 그 시간은?   

집에서 멀어질 수록 집에 대해서 좀 더 객관적으로 생각해보게 되고,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는 일상으로부터 멀어질 수록 내 쳇바퀴 같은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아니 그래보고 싶다, 비록 3시간일지라도. 그렇다면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명상의 기술이나 자기최면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그런 재주는 없으니.... 삶의 문제를 체계적이고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는 생각의 도구, 그게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철학'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세시간의 기차 안에서 내게 필요한 것은 소설이 아니라 철학이고, 이야기가 아니라 담론이고, 감동이 아니라 성찰일 것 같다.  

그러니 부산으로 가는 기차 속의 시간은 소설이 아닌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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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을 수사한다 - 귀머거리들의 대화로 확장되는 끝없는 텍스트의 공간들 패러독스 6
피에르 바야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여름언덕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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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피에르바야르의 추리비평 세권을 모두 읽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제일 관심이 있었다. 물론 <애크로이드 살인사건>과 <바스커빌가의 개>도 유명한 책이지만, 어디 <햄릿> 만 할까? 더군다나 <햄릿>의 경우는 추리가 이야기의 중심이 아닌데도 추리비평이 가능할까?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햄릿의 중심에는 햄릿 선왕의 살해 사건이 있고, 햄릿의 모든 갈등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여느 책에서처럼 피에르 바야르는 햄릿의 독자들이 기존에 알고 있던 전제들을 하나씩 제시한 후에 이 전제들의 근거가 허약함을 증명해보인다. 피에르 바야르의 논리를 따라가다보면 그의 주장을 고스란히 믿게 된다. 클로디어스가 햄릿선왕을 죽였다는 죽였나로 바뀌고, 죽였나는 과연 죽였을까로 바뀐다. 그리고 얼마 후엔 클로디어스가 햄릿 선왕을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피에르 바야르가 주장하는 것은, 이것은 <읽지않는책에 대해 말하는법>에서 부터 늘 일관된 것인데, 책이라는 텍스트는 불완전한 것이고, 독서라는 행위로 불완전한 텍스트의 여백들과 오류들을메울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문학 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꼽히는 <햄릿> 역시도 완벽하지도 보편적이지도 않다는 것이 바야르의 주장이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이 단지 불완전한 것들을 교정하는데서 끝난다면,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으리라. <햄릿>이라는 작품이 갖고 있는 보편성과 완벽성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생각을 해보면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 워낙에 문학이라는 것이 완벽한 보편성을 갖기는 어려운 법이고, 햄릿처럼 모호함으로 가득찬 작품들에게 완벽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의 묘미는 논리적인 추론에 따른 범인을 찾는 것이 아닌, 기상천외한 범인을 찾는 것에 있다. 그럼 대체 이 <햄릿>이라는 모호한 추리극(?)에서 놀라운 범인은 누굴까? 이게 궁금하다면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과정이 꽤 길고 어렵다. 바야르의 결론은 이해하기 쉽지만 늘 그가 생각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도 그가 선택한 범인은 충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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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
릭 게코스키 지음, 차익종 옮김 / 르네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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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처럼 이 책은 책의 '이력'을 다루고 있다 어떤 책이 어떤 경로를 거쳐서 어디로 어떻게 출판되었다. 덧붙여 누군가에게로 갔다까지! 마치 취직하면서 쓰는 이력서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언제 부터 언제까지 어디에 있었고, 그다음에는 어디에 있었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책의 내용을 알고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모르고 있어도 별 상관없다. 책들이 어떻게 출판되어서 어떻게 팔리고, 어떻게 희귀본이 되어서 얼마에 팔리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일까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계속해서 다음 책의 이력을 읽게 된다.  

근데, 이런 책들의 이력을 읽는 것이 왜 흥미로운 것일까? 아마도 책들의 이력을 읽는 것은 유명해진 연애인의 과거사를 듣는 일과 비슷할 것 같다. 물론 그 책이 유명한 책이라면. 지금은 유명하지만 과거 무명시절에는 돈이 없어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고, 우연히 어떤 작품을 계기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는 이야기, 수많은 예능방송들과 토크쇼 속에는 '사람들', 정확하게 말하면 유명한 사람들, 의 이력들로 가득하다. 무늬만 다를 뿐 알맹이는 비슷한 얘기들인데도 매번 보게 된다.  

아마 책들의 이력도 마찬가지이리라. 출판해줄 사람을 못찾던 원고는 여기저기서 퇴짜를 맞고, 그러다가 우연히 어떤 출판업자가 나타나고, 별 기대없이 출판했던 책은 대박을 친다. 만약 '책'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당장 TV를 켜면 된다. 책들의 이력이 아닌 사람의 이력을 질리도록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통점 하나 더! 책들도 유행을 탄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배우나 가수들처럼 책들도 점점 잊혀진다.  

고전은 드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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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 - 장정일의 독서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
장정일 지음 / 마티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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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으로 휴가를 떠날 때 어떤 책을 넣어갈까 고민하던 중에 이 책의 출판 소식을 들었다. 적당한 분량의 적당한 스타일의 책! 독서일기, 지금은 독서일기가 아니지만, 도 여행지에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작년 9월에 예비군 훈련갈때도 2010년 빌린책/산책/버린책을 훈련 가방에 넣어 갔네.  

저번 책을 읽으면서는 독서일기라는 형식을 버리고, 그러니까 '일기'라는 꼬리표를 떼고 독서와 독후감으로 책을 구성하는 것에 대한 서운함이 있었는데, 이번 책을 보니 전에 비해서 훨씬 더 짜임새가 있다. 저자의 독서론의 변화와 그에 따른 선정도서들의 변화, 그리고 독서일기라는 사적인 독서 방식에서 일기를 버린 공적인 독서로의 변화를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매년 어딘가로 떠날 때 마다 가방안에 넣는 책이 된 걸 보니 저자의 독후감을 읽는 것이 연중행사가 된 듯한 느낌이다.  

이번에도 여전히, 그의 정치적인 견해와 현 정부에 대한 불만, 덧붙여 작가 황석영에 대한 비난까지 그의 날카로운 비판이 눈에 띠지만 저번 책처럼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기술하고 있지는 않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좋은 변화로 보인다. 다만 좀 아쉬운 것은 책에 대한 저자의 평가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는 점이다. 본문 중에도 그런 오해가 있었던 경우에 대해서 해명을 해 놓은 부분을 읽었던 것같다.  

이번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그리고 가장 관심있게 읽은 것은 박근형의 희곡집에 대한 평이었다. 박근형이 연출한 연극을 세편, <청춘예찬>, <대대손손>, <물 속에서 숨쉬는 자 하나 없다>,을 보았고 그의 희곡집을 샀지만 꼼꼼히 읽을 기회가 없었는데, 언젠가 시간을 내서 꼼꼼히 읽어봐야 겠다. 역시 비판 보다는 칭찬이 고래 뿐아니라 독자를 춤추게 아니 움직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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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더숲 2011-11-0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 도서출판 더숲입니다! 저희가 이번에 <종이책 읽기를 권함> 이라는 책을 출간했어요.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94418315&orderClick=LAG 관심 있게 한 번 살펴봐주세요!^^ 혹시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공중 곡예사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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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사람들에게 <공중곡예사>를 추천해주고 나서 들었던 말중에 하나는 '너무 길다' 였다. 너무 길다? 사실 절대적인 분량으로 보면 그리 긴 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보다 긴 소설이 얼마나 많은가! '길다'라는 표현을 좀 다른 말로 하면, '지루하다'는 것이고 지루하다는 것은 군더더기가 많다는 뜻이다. 십여년전에는 주위사람들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최근에 수업 때문에 다시 읽어보니 그 이유를 좀 알 것 같다. 그 사람들 말마따나 좀 '길다'.

주인공은 당대 최고수인 사부를 만나 비장의 권법을 배운다. 권법을 배우는 데에 뭐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밥하고, 밥먹고-제자가 밥먹을 때 방해하는 사부는 꼭 등장한다-, 빨래하고, 청소하고, 물길어오고 등등등. 비장의 권법을 가르쳐 준다고 했는데, 훈련이란게 맨날 그 모양이다. 시간이 흘러 이 모든 자질구레한 가사업무(?)에 익숙해질 즈음에 사부의 경쟁자가 등장한다. 사부는 경쟁자와 결투 중에 죽고, 제자는 겨우 목숨을 건진다. 절치부심한 주인공은 사부를 죽인 원수와 운명의 한 판 승부를 벌인다. 현란한 손놀림, 발놀림, 드디어 필, 살, 기. 모두 다 알다시피 마지막 장면은 두 사람이 하늘로 붕 떠올라 공중에서 한 합을 겨룬 후에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먼저 주인공이 털썩 무릎을 꿇는다. 원수의 얼굴이 천천히 클로스 업 된다. 그가 씨익 웃는데.....헉, 입에서, 피가! 그리고 반대편의 주인공이 서서히 힘겹게 일어난다. 주인공이 승리한 것이다. 

월트가 공중부양술을 터득하여 공연을 하고, 사부를 죽인 외삼촌 슬림에게 복수하는 순간까지 만을 놓고 보면, <공중곡예사>는 어렸을 적 숱하게 봐왔던 중국 무협 영화의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따라가는 듯 하다. 근데, 슬림은 죽었는데, 원수를 갚았는데, 끝날 때가 됐는데, 이 소설은 그 곳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 월트는 슬림이 속했던 조직의 보스 밑으로 들어가고, '미스터 버티고'라는 술집을 차리고, 야구 선수 디지를 협박하면서 몰락의 길을 걷고, 결혼하고, 늙고, 폐인이 되고...... 모든 무협 영화가 끝난 지점에서 이 소설은 다시 시작한다. 마치 무협영화의 지루한 후일담을 읽는 듯한 기분이다. 원수를 갚은 주인공은 하산하여 술집을 차리고, 속 깊은 옆집 아가씨와 결혼하고, 그들을 쏙 빼닮은 애들을 낳고, 아이들과 손자들과 함께 늙어가고...... 하지만 이런 후일담을 구구절절 얘기해주는 무협영화는 없다. 어떤 무협영화도 주인공이 원수를 갚은 후에 어떤 삶을 살다가 죽었는지를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는다. 왜냐고? 아무도 알고 싶어하지 않으니까!

주위사람들이 이 소설이 지루하다고 한 이유는 아마도 이 때문이 아닐까? 익히 알고 있던 무협 이야기의 종착역에서 다시 출발하는, 아무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 공중부양술의 영웅 월트의, 험난하면서도 초라한 인생후반부가 너무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기 때문에. 하지만 이 소설의 지지부진해 보이는 보너스 트랙(?) 덕택에 <공중곡예사>는 '원더보이' 월트의 모험담이 아닌 '인간' 월트의 성장과 인생에 관한 이야기로 변모한다. 아마도 작가가 이런 '변모'를 통해서 전달하려고 했던 것은 소설의 결말에서 알려준, 비범한 일들 속에 존재하는 평범한 진리가 아닐까 싶다. 다른 소설 속에서 폴오스터가 보여줬던 것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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