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바다 창비시선 45
박용래 지음 / 창비 / 198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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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과 단절이 주는 여유, 이문구표 최고의 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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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안에서의 택시잡기 민음의 시 16
장정일 지음 / 민음사 / 198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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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장정일은 시인으로서는 거의 활동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느 책에선가 '당시에 시귀가 들렸었던 것 같다'라고 했던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런 말을 작가가 인정할런지 모르겠지만, 현재의 그를 평한다면 한국내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에세이스트이자 독서가라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실은 그보다 내가 원하는 그의 모습은 가장 감각적인 극작가이다. 그의 희곡을 다시 극장에서 볼 수 있을까

이 시집 속에는 시인과 극작가로서의 장정일의 모습이 들어있다. 개인적으로는 극작가로서의 장정일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사실 개인적으로 나 자신이 희곡을 시보다 훨씬 더 좋아하는 것이 이러한 취향의 원인이다.

시집으로서는 <햄버거에 대한 명상>보다 조금 떨어지지만 시와 극이, 아니 시적인 것과 극적인 것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 이 시집의 장점이다. 물론 누구에게나 그것이 꼭 장점이 되지는 않겠지만. 이 시집의 제목은 '길안에서의 택시잡기'이다. 하지만 '길 안에서의 택시잡기'는 아니다. 이 둘의 차이점은?

이성복의 '남해금산'이라는 시를 읽은 후 꼭 남해금산을 한 번 가봐야 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길안'을 꼭 한 번 가 봐야겠다. 지금 읽은 시들이 머리 속에서 사라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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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안에서의 택시잡기 민음의 시 16
장정일 지음 / 민음사 / 198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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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와 시인사이를 오락가락 하던 시절의 장정일을 볼 수 있는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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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금산 문학과지성 시인선 52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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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진지하게 읽기 시작한 지 17년이 되었다. 이를 다르게 말한다면 대학에 입학했던 것이 17년 전이었다는 얘기다. 당시에 읽었던 시집 중에서는 이제 절판되어서 나오지 않는 시집들이 많다. 절판이 되었다는 것과 시가 읽히지 않는다는 것은 물론 전혀 다른 얘기이다. 하지만 '시'라는 것이 십년이 넘게 읽힌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 앞으로 십년이 흐르고, 거기서 십년이 더 흐른다면 대체 얼마나 적은 수의 시들이 남게 될까? 그럼에도, 시집들은 절판되고, 대부분의 시인들과 시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잊혀지게 된다 할지라도 몇몇의 시들은 살아남아서 읽히게 될 것이다. 17년전 내가 읽은 시인들 중 그 먼훗날 까지도 남게될 가장 강력한 후보는 바로 이 이성복이다.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에서 보여 주었던 자유롭고 파편화된 이미지들은 이 시집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다. 파편화된 이미지들이라는 말을 시인이 들었으면 서운해 할지도 모르리라. 왜냐하면 그는 하나 하나의 시보다는 시집의 전체적인 균형을 생각하는 시인같기 때문이다. 파편화된 이미지들이 갖는 어떤 지향, 그것이 뭔지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같은 것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없다.

두번째 시집인 <남해금산>의 가장 큰 특징은 이 시집이 갖는 '서사성'이다. 조각난 기억과 뒤틀린 이미지로 점철된 꿈의 풍경들. 이를 완벽하게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서사적 자아라는 개념을 도입시키면 이 풍경의 이미지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성복에 대한 그 어느 해설서보다 이 시집 뒷부분에 실려있는 김현의 평이 남해금산에 등장하는 '서사적 자아' 를 가장 잘 설명해 준다. 이 시집이 단순히 '좋은' 시집임을 넘어서 '완벽한' 시집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김현의 해설 때문이다. 

좋은 시와 좋은 해설, 당대 최고의 시인과 평론가, 제자와 스승, 이 시집 속에는 참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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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평전
송우혜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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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별 근거도 없이 이 책의 주장을 모두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윤동주의 시를 읽을 때마다 늘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이육사의 이미지를 윤동주에게 덮어씌우려는 여러가지 시도들이다. 이것은 윤동주의 생애와 그의 작품, 모두에 대해서 마찬가지인데 이는 결국 윤동주라는 인간 자신이나 시를 읽는 일 모두를 불편하게 한다.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을 읽어도 마찬가지이다. 저자가 아무리 적극적인 독립운동가로서의 윤동주를 부각시키려 해도 이것이 그리 설득력이 있어보이진 않는다. 그리고 그의 시를 아무리 읽어봐도 항일 투사로서의 이미지는  없다. 정말 눈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를 찾으려고 노력하면 할 수록 그의 시를 읽는 것은 혼란스럽고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다.

지극히 평범한 문학청년마저도 끔찍하게 죽어버렸던 폭력적인 시대, 난 윤동주 시인의 죽음의 의미는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윤동주 시인의 연희전문 한참 후배인 이한열의 죽음이 민주화 투사의 죽음으로서의 의미보다 무고한 젊은이의 죽음으로서의 의미가 훨씬 큰 것처럼. 그것이 그 시대의 폭력성을 훨씬 더 잘 드러낸다. 그리고 그래야만 그의 시를 읽는 것이 정확해지고 편안해진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저자의 의도는 실패한 것이다. 난 저자의 의견에 별로 동의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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