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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금산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52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6년 7월
평점 :
시를 진지하게 읽기 시작한 지 17년이 되었다. 이를 다르게 말한다면 대학에 입학했던 것이 17년 전이었다는 얘기다. 당시에 읽었던 시집 중에서는 이제 절판되어서 나오지 않는 시집들이 많다. 절판이 되었다는 것과 시가 읽히지 않는다는 것은 물론 전혀 다른 얘기이다. 하지만 '시'라는 것이 십년이 넘게 읽힌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 앞으로 십년이 흐르고, 거기서 십년이 더 흐른다면 대체 얼마나 적은 수의 시들이 남게 될까? 그럼에도, 시집들은 절판되고, 대부분의 시인들과 시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잊혀지게 된다 할지라도 몇몇의 시들은 살아남아서 읽히게 될 것이다. 17년전 내가 읽은 시인들 중 그 먼훗날 까지도 남게될 가장 강력한 후보는 바로 이 이성복이다.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에서 보여 주었던 자유롭고 파편화된 이미지들은 이 시집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다. 파편화된 이미지들이라는 말을 시인이 들었으면 서운해 할지도 모르리라. 왜냐하면 그는 하나 하나의 시보다는 시집의 전체적인 균형을 생각하는 시인같기 때문이다. 파편화된 이미지들이 갖는 어떤 지향, 그것이 뭔지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같은 것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없다.
두번째 시집인 <남해금산>의 가장 큰 특징은 이 시집이 갖는 '서사성'이다. 조각난 기억과 뒤틀린 이미지로 점철된 꿈의 풍경들. 이를 완벽하게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서사적 자아라는 개념을 도입시키면 이 풍경의 이미지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성복에 대한 그 어느 해설서보다 이 시집 뒷부분에 실려있는 김현의 평이 남해금산에 등장하는 '서사적 자아' 를 가장 잘 설명해 준다. 이 시집이 단순히 '좋은' 시집임을 넘어서 '완벽한' 시집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김현의 해설 때문이다.
좋은 시와 좋은 해설, 당대 최고의 시인과 평론가, 제자와 스승, 이 시집 속에는 참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