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조
루이스 티그 감독, 크리스토퍼 스톤 외 출연 / 야누스필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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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동생만 겨냥했다. 

동생보다 서너 배는 몸집이 큰 도사견은 입에 거품을 뿜고 있었다.

눈에는 핏발이 섰으나 몽롱했다.

자신이 하려는 짓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일곱 살 내 동생은 목숨 걸고 뛰었다.

나도 그 옆에서 뛰었다.

내가 차마 먹지 못한 마음은, 그 개가 나를 겨냥했으면 하는 것이었다. 

아니, 그런 마음을 먹기는 했다.

개가 동생 외 다른 이에겐 일말의 관심도 없음을 간파하고서.

그 마음이 쓸쓸해서였을까.

나는 달리면서 울었다.

동생은 울지도 못했다.

울 여력에 달려야 했으니까.


동생의 보드라운 허벅지에 개의 이빨이 가 박혔다.

동생은 무력하게 넘어지며 비명을 올렸다.

그건 '엄마'여야 했다.


반드시 엄마,여야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누나, 였다.


동생은 나를 향해 흰 팔을 뻗었다.

나는 개와 눈이 정면에서 마주쳤다.

동생의 허벅지에서 배어나온 피냄새에 희열을 느낀 개는

급기야 눈빛에 초점이 모아졌다.


그 초점이 내게 와 박혔다.


도망쳐라

내게서 도망쳐라


나는 홀린 듯 뒷걸음질 치다 다시 전력질주했다.

집 문을 부술 듯 박차고 들어가 단말마의 비명을 쏟아내고 쓰러졌다.


"아부지, 대성이 죽는다아!! 개새끼한테 물려 죽는다아!!"


나는 그 길로 까무러쳤고 정신이 들어보니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중죄를 지은 범죄자 심정으로 내 무릎을 세워 거기 얼굴을 처박고 하염없이 울었다.


동생은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한달동안 물린 다리를 펴지 못했다.

뼈가 드러났다는 허벅지에는 두툼한 붕대가 매어져 있었다.

나는 자다말고 일어나 자는 동생 옆에 무릎을 꿇고 울었다.

그제야 드는 마음에 가슴을 치면서.


내가 물렸다면 좋았을 걸.


스티븐 킹의 '쿠조'에는 미친개가 나온다.

미친개가 제대로 사람을 물고 다닌다.

스티븐 킹의 디테일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책으로 번역된 건 없어서 DVD를 가져왔다)


하지만 스티븐 킹도, 감독도 채 담지 못했다.


미친개의 눈빛은 저렇지 못하거든.

미친개의 눈을 명치 언저리쯤에 박고 사는 사람만이 알아보는 게 있거든.


저건 멀쩡한 개가 그런 척하는 미친개거든.


소설 쓰는 내가 소설에 담아야겠다.

이 죄책감의 한 가닥 가지 끝이라도 자르려면

나는 그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것이다.


그래, 내 다음 소설은 '(미친) 개'다.


제대로 마주하자, 미친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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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뉴 샌드위치
시바타쇼텐 엮음, 조수연 옮김 / 시그마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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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 도시락을 싸 갖고 다닌다.

액젓과 마늘이 많이 들어가는 한국음식은 냄새 때문에 노노.

그렇다면, 단연 샌드위치다.


빵만 있으면 된다.

식빵?


보드라운 한국 식빵.

미국에서는 사치다.


미국식빵은 퍽퍽하다. 보드라움은 일도 없다.

(보드라움을 억지로 입힌 브리오슈 같은 건 물론 있다)


미국식빵엔 어떤 내용물을 넣어도 맛이 없다.

한국에서 먹던 그맛이 안난다.


한국식빵을 파는 한국 베이커리가 있다.

멀다.

잘 못간다.


퍽퍽한 미국 식빵에 이런 멋진 샌드위치 레시피북은 가당치도 않다.


그래도 샌드위치 레시피북은 꼭 산다. 

그대로 해먹지는 않는다. 


나의 샌드위치는 언제나 BLT. 

혹은 냉장고에 굴러다니는데 빵에 끼울 수 있는 거 아무거나. 

그런데도 이런 책은 산다. 

언젠가는 이렇게 해 먹지 않을까, 하는 희망? 기대? 

부질없단 걸 알면서도. 내게는 참 부질없는 꿈 같은, 샌드위치.


결혼기념일 아침인데...


샌드위치가 먹고 싶은 건 뭐지.

아하, 남편도 만들 수 있으니까!


또또 이런다...


부질없는 희망, 기대.

샌드위치는 이렇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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