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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두 박스만 받자...

겨우 줄였다.


1주1박스였다지...

살림 거덜날 것 같아 줄였다.

책 꽂을 공간 부족이 제일 문제였지만.


아무튼 8월의 두번째 박스가 도착.

박스를 뜯을 땐 뭘 주문했더라...

이미 가물해서 설레는 마음이 되지만,


이번엔 선명하게 기억나는 책이 몇 권 있어서 

기억해서 설렜다.


그 중 하나가 김애란의 신작 산문집.


그랬다고 적었다.


한 페이지 펼쳐보고 심장이 1센티 가라앉게스리....실망.


왤까.

아직 내용은 보지도 못했는데.


짧은 각 글 끝에 (2021) 뭐 이런 연도가 붙었는데,

이건 주로, 어떤 신문 같은 데 발표했던 글이란 소리 아닌지.

그게 아니어도, 최소한 그때 썼다는 글이란 소리 아닌지.


물론, 그런 신문을 다 따라다니면서 읽지 않으니

읽었던 건 아닐 테니 그건 괜찮은데. 


나는 '지금'의 김애란이 궁금했거덩.


<잊기 좋은 이름>이던가...


'이름'이란 테마 아래 연이어 써나간 듯한, 

어떤...너무 길지 않은 시간 속에서

하나의 주제를 이고 그 테두리 안에서만 써나간 듯한 '집중된'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 '집중'은 현재성을 느끼게 했더랬다.

과거 언제 썼든, 나하고 같이 '지금 이 순간'에 현재의 숨을 교차하는.


이런 독자의 욕망을 '팬심'이라 하는 거겠지.


'지금'이 아니라 뭐 아주 멀지 않은 몇 년 과거 어느 시간 속에 흩어진들

어떠랴...김애란인데. 


근데 좀체 떨어진 1센티는 회복이 안되는구만 그려.


비닐에 싸인 책이 두 권 있다.



비비언 고닉의 책과

하나는 피아노에 관한 피아니스트의 에세이인데...


피아노를 잘 치지는 못하지만 피아니스트의 책은 나오는 대로 읽는다.

아마 이루지 못하거나 이룰 생각조차 없었으면서도 

내 안에 은거하는 어떤 욕망의 잔재 때문일 것이다.


랑랑의 자서전은 아직 번역이 안 된 것 같아 영어본으로 읽었다.


Journey of a Thousand Miles: My Story


무슨 연관인지는 콕 집을 순 없으나, 이 책 읽고 그의 쇼맨쉽 같은 게 이해되었다.

말한 대로 무슨 연관은 없다.

책에 쇼맨쉽과 피아니스트의 필연 관계를 설파한 부분도 없고.


아마도 이런 거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잘 알지도 못하는 그 사람을 얼마간은 미리 좋아하게 된다고.


그 사람 편에 한 발짝 다가들게 된다고.


이것도 '팬심'의 일종이라면 그럴 것 같다.


쉽게 말해, 자서전을 읽고 랑랑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소리다.

하긴, 어떤 사람의 것이든 평전이나 자서전을 읽고 안 좋아하게 된 예는 없다.


츠바이크의 발자크평전이 그 극단의 예.


책에 비닐은 왜 씌웠는지 모르겠다.


책의 비닐은 양날의 칼이다.


내용을 비호한다

내용을 폄하한다


스스로 이 둘을 동시에 하는 것 같다.


너무 귀한 내용이니 아직 사지도 않은 상태에서 미리 보기 하지 마세요

너무 쉬운 내용이라 대충 훑어도 다 본 거나 마찬가지니 안 살 거잖아요.


나만 그런가.


독자의 마음 중에 이런 마음도 있으니 출판사 마케터들은 참고했으면 함.


결론은, 비닐 안 씌웠으면 좋겠다, 이다.

비닐로 싸면 코스트도 더 올라가고

아, 환경에도 안 좋잖아요!


아, 더불어 출판사 마케터님들께 참고용으로 말씀드릴 거 또 하나.


책 표지에 저자 얼굴 나오면 무조건 제끼는 독자도 있다는 거.


특히, 현재 살아있는 이.

특히, 웃고 있는 이.

특히, 가슴 위로 팔짱 낀 이.

특히, 턱 괸 이.


톨스토이, 헤밍웨이, 피츠제랄드 처럼 이미 돌아가신 이는 무관함.


왜들 그렇게 저자의 얼굴을 내미는 걸까.

이름만 봐도 아는데.


책은 책이다. 

텍스트로 말하자.

한 장만 들추면 저자 약력 다 나온다.


나 같은 경우는, 진짜 얼굴 아무 상관없고,

오히려 얼굴(인상)이 내 관점에서 별로라 더 안 사는 경우도 있다


어쨌거나 표지에 사진 넣는 건

외모, 외양, 대중인지도로 어필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건데.


적어도 나란 독자에겐

그 소리도 다,


텍스트에 자신 없다는 소리로밖엔 안 들린다.


내가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

사진에 관한 책인데 사진 안 넣었다.


내가 이상한 독자일 수도 있으나 출판사 마케터님들,

저자 얼굴 좀 표지에 싣지 말고,

특히 팔짱 좀 안 끼게 해 주심 안 될까요.


진짜 내용 좋은 것도 있을 텐데, 

나하고 나랑 비슷하게 이상한 내 친구도 진짜로 그런 책은 단 한 권도 안 샀어요~~~~~~~.


이야기가 옆으로 새다가 아예 바다로 나간 듯.


혹시,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사진이 시커매서 제목이 잘 안 보이면~


-미국의 송어낚시/너무 읽어 다 찢어져서 다시 샀다

-거장의 노트를 훔치다/거장 영화감독들의 비밀수업이라길래

-그 여자의 침대/박현욱은 정말이지 딱 '할 말만' 쓰는 소설가다

-그랬다고 적었다/더 할 말이 아직은 없음

-단절(들)/전작이 좋았고, 최근 읽은 '손절사회'와 연결독서하려고

-모호한 마음에 이름 붙이기/이런 건 다 산다

-언어화를 위한 소설사고/이번 박스에서 제일 기대된다

-연애시대의 종말/제목과 조금 달리, 문학론을 다룬 에세이다

-이름 없는 감정들의 사전/이런 건 다 산다니까는

-하얗고 검은 어둠 속에서/번역자가 미학과 음악학을 공부한 사람이라 더 흥미로움. '고독'이란 소갯말에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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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존재론이 도착했다!


내용물이 새 나가지 못하게 비닐로 싼 센스. ^^


텍스트가 꽉 찬 책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비닐을 뜯기도 머뭇거려진다는.


언어 존재론과 더불어

앤드류 포터의 <상상 속의 삶>부터 읽어볼 참이다.


어떤 책을 주문했는지 알면서

왜 책박스를 열 때는 설레는 걸까.


사실은, 솔직히 말해 그새 까먹었다.


사나흘이면 책이 오는데-미국까지, 참 놀라운 일이다. 알라딘 만세다!-

그새 뭘 주문했는지 잊는다.


책을 하나 집어들 때마다, "아, 맞다. 이 책." 이런다.


그럴 때면 얼마나 즐거운지.


책마다 다른 얼굴, 다른 속내.

갈피를 넘길 때면 공기 중에 흩어지는 새책 냄새.

그리고 또 한국 냄새.


거짓말 아니다.


그런 게 난다. 


갈피마다 배어 있을 한국의 공기 내음.


이 책 박스를 쌀 때도 기계를 쓸까?

아니지 않을까?


난 무지하게 아날로그적으로 생각한다.


누군가가 손에 목록 종이 하나를 들고 

눈앞에 쌓인 책 중에서 해당되는 걸로 골라든다.

그리고 박스에 차곡차곡 담는다.


주문자 이름을 본다. 

내 이름이다.


이 사람, 또 책 샀네...


같은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도 해줄까.


그렇게 담아서 테입으로 잘 봉하고 트럭에 싣는다.


난 그렇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책 표지에 어린, 책 박스에 어린 누군가의 체온을 감지하고 싶다.


책은 그런 거다. 


누가 누구를 위해 짓고, 쓰고, 싸고, 보내고...


난 그런 박스를 오늘 내 방안에서 연다.


읽은 책보다 읽지 못 하는 책이 더 많은데도 

계속 책을 사는 이유.


사람 만나는 일보다 

책 만나는 일이 더 설레는 이유.


그건 나만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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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8-01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뭘 주문했는지 뻔히 알면서 그래도 박스를 뜯을 때의 설렘은 역시 책뿐입니다. 다른 택배박스는 뜯기도 귀찮아서 현관에 며칠씩 방치하면서 말이죠. ㅎ

젤소민아 2026-08-02 12:08   좋아요 1 | URL
제 마음이 그마음이여요, 바람돌이님~. 지금 또 다른 책들 장바구니에 담고 있잖아요, 글쎄 ㅎㅎㅎ 지갑은 얄팍하기만 한데 말입니다~

얄리얄리 2026-08-04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갑+공간 이슈로 당분간 책구입 금지령을 받은 상태에요..ㅎㅎ
다시 책 택배박스 열 때의 설레임을 느낄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젤소민아 2026-08-05 07:22   좋아요 0 | URL
저도 늘 그런 금지령 상태죠~~더구나 지금 책꽂이 스페이스가 더 줄어든 집으로 이사를..ㅎㅎ 그래서 세운 전략이 새로 들어오는 책만큼 기존 책 처분하기...ㅠㅠ 쓰린 가슴 부여잡고 자식같은 책 내보내고 있습니다...설렘은 늘 그래서 서운함과 겹치죠. 잘 가, 책들아~~
 
이 레슨이 끝나지 않기를 - 피아니스트 제러미 덴크의 음악 노트
제러미 덴크 지음, 장호연 옮김 / 에포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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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이 책을 읽기로 했다.

며칠 걸릴 지는 모르지만.


나의 독서법은 이러하다.


일단 징검다리 건너듯 눈에 띄는 텍스트 위주로 읽는다.

읽으며 밑줄, 하이라이트 총동원.

(이런 움직임을 양산하지 못하는 책은 일단 덮고 모셔둔다.

이런 책은 시간이 지나 내 자리나 위치나 입장이나 하다못해 나이라도 좀 바뀐 다음에

다시 본다. 그럼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그때도 안 달라지면 과감히 중고판매하거나 폐기한다.

더 좋은 책을 데려오기 위해)


재독 시에는 그 텍스트 근처를 탐색한다.

재독 때, 초독시 놏친 보석같은 텍스트를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그걸 위해서다.


삼독을 부르는 책은 '양서'다.


내게 그렇단 말이다.

내가 양서 발굴 전문가는 아니니까.


이 책을 사서 읽기로 한 이유는...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잘 안 빌린다.

밑줄을 못 그으니까.


밑줄이 그어지지 않는 텍스트를 읽어나갈 용기가 내겐 없으니까.


나는 피아노를 엥간히 친다.

엘리제를 위하여,가 18번인데.

눈감고도 치는데.


악보가 그리 어렵지 않으면서도 피아노 잘 친다는 소리를 늘 듣게 해주는 곡이다.


그런데 랑랑이 치는 이 곡을 듣고, 그동안 내가 쳐온 '엘리제를 위하여'에 미안해서 혼났다.

내가 얼마나 빨리 치는지 깨달았고,

이 곡은 굉장히 슬픈 곡이고,

안에서 부서지는 슬픔을 모아모아 덩어리로 만들어 

좁은 목구멍으로 끌어올리듯 쳐야한다는 것을,


그래서 아주 천천히 쳐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렇게 천천히 쳤더니,

우리집에 같이 사는 사람이 이런다.


피아노 실력이 퇴보했냐고.


천천히 친다고 랑랑처럼 칠 수 있는 건 아닌데 말이지.


책으로 돌아가자.

이 책은 피아니스트가 쓴 책이다.


미국의 피아니스트로 오벌린 대학에서 '당연히' 피아노를 전공했는데,

화학도 같이 공부했다. 


박사는 줄리아드 스쿨에서 마쳤다.

우리집에서 딱 35분 걸리는데.


가본 적도 있는데.


각종 악기를 떠매고 끌어안고 다니는 음악학도들의 눈빛을 구경했다.

대개는 날 쳐다보지 않았다. 그래서 구경하기 좋았다.

물론, 나도 옆눈이나 흘끔거림이라 내가 보는 줄 몰랐을 테지만.


비록, 눈으로 마주하진 못했지만

그들의 탁월할 영감이 가득한 건물 안에서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영감을 느끼는 것 같아 좋았다.

순전히 기분 탓이겠지만.


제러미 덴크는 카네기 홀에서 자주 공연한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음반이 알아준다.


'리게티/베토벤' 음반은 '뉴요커'에서 올해 최고 음반으로 선정되었다고.

당장 사야겠다.


2018년, 19년에 한국에 와서 리처드 용재 오닐과 듀오 콘서트를 했다고.


그의 눈에 띄는 특징은 

글을 잘.쓴.다.


이 정보에 눈이 번쩍 띄었다.


글 잘 쓰는 피아니스트.

자기 음반에 대한 해석을 스스로 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


머리말부터 읽어야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단순합니다. 직접 대면하여 말로 가르치는 음악 교습의 전통을 보존하고 싶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식으로 음악을 배웠고요.


나도 내가 배운 소설쓰기 방식으로 소설을 가르친다.

나한텐 학위도 뭣도 없지만 내가 배운 방식이 있다.

그 방식이 좋은지 성공적인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있게 된 방식임은 안다.

지금의 내가 좋은지 성공적인지, 당연히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방식을 가르칠 수 있는 건,

내가 배운 걸 존중해서일 것이다.


스승을 존중하고, 그 스승의 가르침을 존중한 나를 존중하고.


그래서 '가르침'은 '존중'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얼마간의 돈과 보람이 따라오는 건

피로와 노력이 앞서야 하니 뿌라스, 마이너스 하면 그 값은 '0'일 것이고.


남는 건 '존중'이란 뜻이다.


이 책의 '가르침'이 존중 같아서 맘이 일단 열린다. 


한 인터뷰에서 저는 이 책을 

'음악 교사들에게 바치는 러브레터'라고 했습니다.


러브레터.

좋다!


회고록 중간에 저만의 독특한 레슨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끼워 넣었습니다. 음악의 가장 기초적인 면들을 엉뚱한 방식으로 생각해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엉뚱한 방식

좋다!


토론토에서 수줍음 많은 한 피아니스트가 말하기를 제 책이 자신의 불안정함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음악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자기만 힘든 삶을 사는 게 아님을 깨닫고 힘을 냈다고 했습니다. 

(중략) 이것이 제가 받은 최고의 찬사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울컥하는지.


내가 쓰는 소설을 읽은 독자가 내게 이렇게 말해준다면...


작품을 만들고, 연주하는 사람들의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바로 이것 아니겠는가.


----------------(시간이 좀 지난, 같은 날 밤)-----------------


위 리뷰를 쓰고, 같은 날 밤이 되었다.

이 책을 94쪽까지 읽었다.


아무래도 이 책은 올해(아직 절반도 채 안 지났으나) 읽은 최고의 책이 될 것 같다.


수도원에서 10년을 보낸 수도사 출신 아버지와 술을 좋아하는 어머니.

소설의 그것처럼 한 순간도 의미 없이 지나치지 않을 것 같은 가족 이야기가

음악 레슨과 함께 펼쳐진다. 


저자가 피아니스트면서 글을 잘 쓴다고 소개는 되어 있었으나,

이렇게 '소설가'처럼 재미나게 글을 쓸 줄은 몰랐다.

거기에 원어가 외국어임을 잊게 만드는 번역이라니.


음악에도 조예가 깊다는 번역자의 이력 덕에 이런 혜택을 입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음악에 관해 잘 모르는 나같은 사람도 뒤가 궁금해 못살겠다.

이렇게나 재미나고 유익한 음악 레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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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26-05-29 0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이 어쩌면 이렇게 지루할 틈 없이 활력이 넘칠까요? 읽는 내내 기분 좋은 에너지를 가득 받아서, 실은 이 글이 참 좋아 종종 읽고 가곤 했어요. ㅎㅎ

피아노 앞에 앉아 랑랑의 템포를 떠올려보신 젤소민아님의 귀여운 모습부터 줄리아드 앞을 흘끔거리시던 풍경까지, 한 편의 단편소설을 읽은 듯 생생하고 즐거웠습니다. 솔직한 자기 감정을 자신만의 색으로 그려내시는 필력이 젤소민아님의 매력이에요.

조용히 읽고만 가다가 오늘은 슬쩍 흔적 남겨봅니다. 남은 페이지도 멋진 영감 가득하게 읽으시길 바랄게요!

젤소민아 2026-06-10 08:38   좋아요 1 | URL
ㅎㅎ 이렇게 멋지게 좋아해주시는 곰돌이님께 허리숙여 인사를!! 더 열심히 리뷰쓸랍니다~아자아자!
 
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평점 :
품절


칠 년 전 어느 아침, 부엌 식탁에서 사과를 깎는데 곁에서 커피를 내리던 헌수가 <러브 허츠>를 틀었다.

-어? 나 이거 어디서 들어봤는데.


219p


방금 전 로버트가 내게 "그런데 한국어로 '안녕'은 뭐라 그래?" 물었을 때 저날 헌수와의 대화가 떠오른 건 그 때문이었다.


222p


김애란 소설가가 과거를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소설에는 '과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소설 전체가 과거를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과거'는 소설 속 인물에게 '현재'를 만든 근거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현재에만 발 딛고 걷는 인물이라 해도

어디에서는 반드시 과거가 디뎌지게 마련이다.


모르긴 몰라도, 소설가에게 '과거'는 생명줄과 같다.

과거 없이 인물의 현재를 표현할 길이 없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


요는, 그런 과거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


내가 보기에 소설가가 과거를 다루는 방식은 이런 정도다.


1) 작심하고 과거 속으로 뛰어든다.


-그때는 1973년 이른 봄이었다.

-5년 전, 여름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2) 현재에서 과거를 떠올린다


-오렌지를 먹다 보니 오렌지를 좋아하던 친구가 떠오른다.

-아버지는 화가 나면 조용해졌다. 아버지가 아예 말을 잃던 날이 떠오른다.


이 둘에서 아마도 그닥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방식들의 공통점은 '현재'가 먼저란 것이다.


인물은 현재에 먼저 살고 있고, 현재에서 어떤 계기가 있어

현재와 연결된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뛰어들건, 그 지점을 떠올린다.


그런데 김애란 소설가의 방식을 보자.


확연하게, 과거가 먼저다.

칠년 전, 화자가 부엌에서 사과를 깎는데 헌수가 음악을 틀던 그때.

그때의 과거.


현재는 그 다음이다.


방금 전 로버트가 한국어로 '안녕'이 뭐라 묻고 화자는 과거의 그 지점을 떠올린다.


위에서 말한 2)현재에서 과거를 떠올린다, 에 속한다.


그런데 다르다.


아니, 같은 지도 모른다.

엄연히 '떠오른다'란 말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르다.

아니, 다르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과거가 먼저 진술되었기 때문이다.

현재가 그 다음에 불려온다.

과거로부터 현재가 불려오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과거가 먼저 나왔기에 과거가 현재를 불러오는 것 같은.


현재에서 과거를 떠올렸는데도 말이다.


별 것 아닌 듯 하지만, 그래도 소설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

이 방식을 쓰는 과정의 김애란 소설가가 그려진다.


고민했을 것이다.

베테랑 소설가라고 해서 모든 게 'easy'하지 않다.


굳이 'easy'란 영어를 쓰는 이유가 있다.

'로버트'가 등장하다 보니 이 소설에 영어문장이 좀 나온다.


그리고

쉽다...는 한글 단어 한 마디로 'easy'를 단언할 수는 없어서다.


'easy'의 어원은 'aisier'.

여기에는 '쉽다'만 품어있지 않다.

'쉽다'가 되기 위해 


활용하다/가능하게 하다


란 의미가 기반이 되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김애란 같은 베테랑 소설가라고 해서 모든 게 'easy'하지 않다.

소설의 많은 요소(요인)를 '활용'하는 게 무조건 편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요소가 품은 가능태를 백퍼센트 현실태로 펼쳐놓지는 못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활용을 더 어려워하고 고민하는 소설가야말로 베테랑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김애란 소설가는 

이 단편소설의 서두에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과거를 먼저 배치하고,

과거가 현재를 불러오는 식으로,

현재에서 과거를 떠올리는 기존의 방식을 쓰되

과거에서 현재가 당겨지는 식으로.


이게 철저한 전략 하에 이루어졌는지, 

워낙 몸에 익어 자연스럽게(easy 하게) 이루어졌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독자로서 나는 완전히 설득되었다.


'easy'는 14세기 후반부터 '쉽게 양보되는, 설득하기 어렵지 않은'이란 뜻이 포함된다.


Meaning "readily yielding, not difficult of persuasion" is from 1610s. 


https://www.etymonline.com/word/easy


이렇게 한글소설의 후기를 쓰다가 맥락없이 영어 단어의 어원을 들먹이는 데는

이유가 더 있다.


-우리말의 '안녕'에는 '반갑다'는 뜻과 '잘 가'라는 뜻 말고도 또다른 의미가 있어.

-어떤?

-'평안하시냐'는 혹은 '평안하시라'는 뜻.


254p


이 소설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해서다.

아,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우리말의 '안녕'과 영어의 'ease'는 통한다.

'평안하다'는 의미에서.


로버트는 캐나다 퀘벡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자기 고향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223p


그 뒤로 소설가는 '더없이 편안하게' 과거로 걸어들어간다. 

심지어 헌수와 커피를 마시던 그날 아침으로도 다시 간다.


그리고 드디어 현재다.


수업에 들어오며 로버트는 오늘도 밝은 얼굴로 인사했었다.


232p


그리고 결말에서 소설은 다시 소설 서두의 '러브 허츠' 지점으로 돌아간다.


헌수는 내게 두서없는 말을 늘어놓다 

엉뚱하게도 우리가 <러브 허츠>를 들은 날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사과했다.


252p


앞서 화자가 오가던 현재와 과거의 기로들이

절묘하게 결말에서 조우한다.


서로가 서로를 'easy'하게 불러들인다.


이 소설의 엔딩은 

로버트가 '안녕'이란 단어의 뜻을 묻던 과거로 잠시 돌아갔다가

화자가 '안녕'이란 말을 현재에서 쓰는 것으로 완성된다.


과거와 현재는 구분된다.

분명한 선을 그을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하게 나뉘어진다.


김애란 소설가의 손끝에 과거와 현재는 어우러진다.

늘 앞서던 소설 속 현재가 사이좋게 과거에 자리를 내어준다.


어떤 게 과거고, 현재인지 헛갈리지 않는다.

무책임하게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이쪽에서 현재의 저쪽에서 

과거의 현재가 어깨를 기대고

휘파람 한 줄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는 정겨움이 있다. 


그 정겨움 속에서 독자는 소설에 완전히 설득되어

어느새 '안녕'해지고 만다.


적어도, '나'란 독자는 그랬다.


*여기서부터는 나의 사족이다.


띠지에 "나는 김애란이 오랫동안 사회학자였고 이제야말로 유감없이 그렇다고 주장할 것이다."란 평론가의 말이 있다.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다.

다들 알 것이다.

좋은 뜻이다.


김애란이 그만큼 소설 속에서 우리 사회를 잘 그려낸다는,

사회를 잘 이해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사회학자가 쓰는 소설은....쩝.


나는 김애란이 어떤 '학자'도 되지 말고,

더구나 사회학자는 되지 말고,

오로지 '소설가로만'

더더더더 '소설가로만' 남아주길 간절히 기도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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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9 14: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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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2 0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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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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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위대한‘이란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유일한 소설가. 초반의 뜬금없는 흰점박이 개똥지빠귀의 긴 서사. 이야기는 언제 시작되나...하다가 31쪽에서 드디어 새의 이야기가 끝날 때, 저절로 울어졌다. 되돌아가 5번 읽었다. 70년 소설을 써오신 내공. 위대하다. 한국의 욘 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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