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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날.

미국은 귀신을 쫓기 위해 귀신으로 위장하는 날.

거리마다 가게마다 귀신들이 그득하다.


매년 할로윈은 추웠는데, 이번엔 햇살이 봄처럼 좋다. 

이런 날은 집 안에 있는 게 날씨에 대한 결례같아 나선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차 타고 검색을 시작했다.


볕은 봄이지만 시기는 가을이니 단풍!


단풍과 서점과 카페가 그득한 곳이란다.

그래, 뉴욕주 뉴팔츠(New Paltz)다. 집에서 한 시간.


New Paltz부터 공부. 


17세기 프랑스 위그노(Huguenot) 이주민들이 정착한 곳으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지 거리 중 하나인 히스토릭 위그노 스트리트(Historic Huguenot Street)가 남아 있다. 뉴욕주립대(SUNY New Paltz)가 자리한 덕분에 오래된 건물과 독립서점, 갤러리, 카페들이 어우러져 있다. 인근 샹가크 산맥(Shawangunk Mountains)의 아름다운 풍경까지 더해져, 오래된 역사와 젊은 예술적 감각이 공존하는 마을이다. -나무위키 중-


호젓한 도로와 새치름한 골목을 기웃거리는데 중고서점 둘이 마주보고 섰다.

벗인가, 적인가. ^^


먼저 들어간 곳 초로의 주인 남자는 샐러드를 먹고 있었다.

일회용 접시에 플라스틱 포크로.

어째 안 어울리잖아...


난 지금부터 시간을 거슬러 갈 건데.



시집 코너.

책이 얇으니까. ㅋㅋ

읽는 덴 부담 크지만, 보는 덴 부담 없으니까.


메리 올리버 시를 뒤적였다.


Dog Songs.

장마다 귀여운 개 일러스트. 꺅, 소리칠 뻔.




이 책이 번역돼 있던가. 찾아보니, 있다. 품절. 


개를 위한 노래



이걸 사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중고책에 더 눈이 가서.


그러다 심봤다!


아모스 오즈의 장편 소설, 'Don't Call it Night'.














그리고 소설쓰기하고 연관해서 이 두권 모셔왔다.



두 권 모두 한국 번역본은 없는 듯하다.

특히 왼쪽 책은 '단편소설 종합 작법서' 같은 건데 33명 소설가의 작품이 인용문으로 다루어져 있다. 이런 거 읽는 재미가 쏠쏠한 법. 


오른쪽 책은 소설의 대사 쓰기 작법서인데,

역시 구매 의도는 같다. 인용문 읽는 재미.

내가 미처 챙겨 읽지 못했거나 내 레이더에 들어오지 못했던 

좋은 소설들을 대거 '조각'이나마 맛볼 수 있다.

전체 파이가 아닌 조각으로 먹을 때 그 맛의 임팩트라니!



오늘 본격적으로 떠들어 볼 책은 이거다.

이건 플라스틱 포크로 샐러드 먹는 주인장의 중고서점이 아니라 그 근처 

앤틱숍에서 건진 거다.


The Brave Little Tailor.


출판연도를 확인하니 1958년. 무려 68년 전의 책

나보다 먼저 세상에 나와,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손을 거쳐 여기까지 흘러온.


이야기는 유쾌하다. 

가난한 재단사가 파리 일곱 마리를 단번에 때려잡는다. 

의기양양해진 그는 허리띠에 '한 방에 일곱!'이라고 새기고 세상으로 나간다. 

사람들은 그가 사람 일곱을 때려눕힌 영웅인 줄 안다. 

재단사는 굳이 오해를 바로잡지 않는다. 

그 허풍을 밑천 삼아 거인들을 물리치고, 

당시 동화가 흔히 그렇듯 당연히 공주와 결혼한다.

공주와 결혼했으니 또 당연히 왕이 된다. 

파리 일곱 마리로 왕이 된 인생역전 스토리.


그림이 지금 나와도 전혀 꿀리지 않게 세련됐다.


1958년은 전쟁이 끝났으니 미국에 아이들이 넘쳐났을 거다.

어린이책 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했겠지.


컬러 인쇄가 대중화되던 시기.

이 책도 색감이 이다지도 또렷하고 어여쁜 이유가 그것일 거다.

색, 색, 색으로 유혹하라!


이 책이 속한 'Wonder Books' 시리즈는 1949년 첫 책을 찍었다.

그 당시 한 권에 25센트였다고.

첫 두 달 동안 200만 부가 팔려나갔단다.


내 어린 시절은 부의 상징이 피아노였다.

피아노 있는 친구 집에 초대도 안 받았는데 막 쳐들어갔더랬다.

그때는 그렇게 쳐들어가도 떡볶이와 꽈배기 같은 걸 내주었다.

날 초대한 적 없는 친구는 배 깔고 엎드려 

오렌지처럼 큰 귤을 까먹으며 일본에서 건너온 만화책을 읽었고

나는 도둑 고양이처럼 등을 웅크리고 피아노 건반을 눌렀다.


소리 너무 크지 않게 가운데 페달을 밟아놓고.

그때 도레미도레미를 쳐보다가, 용기내서 88개 건반을 저쪽 끝에서 

이쪽 끝까지 하나씩 눌러보다가 더 용기내서 친 게,

'엘리제를 위하여'였던가.


나름, '완주'하고 등을 좀 펴고 보니 뒤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만화책 보던, 날 초대하지 않은 친구는 여전히 배깔고 엎드려 

만화책 다음 권을 집으려 하고

한 번도 본 적 없던 그 친구 아부지.


어디서 피아노를 배웠니, 얼마나 배웠니...


1년 정도요-그게 내 평생 피아노 배운 총 길이다-.


-그런데 그렇게 잘 치니?

-이거만 쳤거든요.

-그래? 아주 집중력이 좋구나.

-다 외우는 게 이것 뿐이어서요.

-그게 집중력이 좋은 거야.

-우리 오빠는 제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 거라는데요.


날 초대하지 않은 친구가 킥킥 웃었던 게 그때인데

나는 지금도 그 애가 만화책이 웃겨서 웃은 거라고 믿고 산다. 


이야기가 너무 삼천포로 빠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서~~

한국에선 피아노가 부잣집의 상징일 때

미국에선 컬러 그림책이 부잣집의 상징이기도 했다.


인쇄술도 그때가 좋았는지

68년이 지났는데 색감의 선명도가 예술이다.

종이도 얇은데 찢어진 데 없이 든든하다.


캬. 이 냄새.


68년 묵은 책 냄새. 책의 살 냄새.

먼지 냄새도 아니고, 곰팡이 냄새도 아니고,

아니아니, 먼지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나무향과 버무려진 이 오묘한 냄새.


미간이 찡그려지려 하다가 돌아서면 뭐였더라? 한 번 더 맡아보고픈 이 냄새.


늙은 어머니의 땀과 몸 기름이 밴 베갯잇 냄새같은.

깨끗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빡빡 빨아 빼내고 싶지 않은.


표지 위쪽에 적힌 문구 봐라.


An Old Favorite with New Pictures.

오래된 이야기에 새로운 그림을.


그 문장을 한참 들여다봤다. 

1958년, 이 책을 처음 집어 든 아이에게 이 그림은 분명 'NEW'였을 테지.


완전 '새빠시 신상'이었겠지.


인쇄소에서 막 나온 책답게 신선한 잉크 냄새가 물씬 났을 테지.

아이에게 'NEW'라는 단어를 말 그대로 새로웠겠지.


그러고 68년이 지나는 사이, 그 아이는 자라고, 나이 들고, 늙어갔겠지.

이제는 팔순 정도 되었겠지.


지금의 팔순 노인은 기억할까.


68년 전의 새로움을.

지금 그 나이에는 무엇이 새로울까.


이 모든 디지털이며 AI며,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새로울까.

팔순의 몸에 그게 새롭기나 할까.

새로움을 넘어, 다른 차원의 이야기는 아닐까.


이젠 '새롭다(NEW)'는 말도 좀 지친 느낌이다.

이전과 달라야 새로운 건데, 이전과 다른 걸 느낄 수도 없으니.

이전과 다른 걸 느끼려면 그것의 '유저(user)'가 되어야 할 테니 말이다.


유저는 주권, 권력 같은 말과 통한다.


무언가를 '사용한다(use)'는 것은 그것을 다룰 줄 안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그 귤 까먹고 만화책 보던 친구는 피아노를 칠 줄 모르는데

'장식용'으로 엄마가 산 거라고 했더랬다. 왜 자꾸 그때 피아노가 떠오르는지-


내가 팔순이 될 때, 내겐 무엇이 새로울까.

기대와 설렘보다는 왜 두려움과 맥빠짐인지.


그땐 달나라를 내집처럼 오갈라나?


그때 새로울 게 뭔진 모르지만

그 미래의 나,

그리고 68년 전 이 그림책을 손에 들었을 아이에게 도래한

 'newness' 중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후자를 고르고 싶다.


내겐 그게 훨씬 '살'로 다가오니까. 

그 흥분과 설렘이.


나는 중고서점에서 오래된 책 한 권을 산 것이 아니라, 

68년 묵은 'NEW'를 샀다. 


서점을 나섰을 때도 햇살은 여전히 좋았다. 

나는 68년 된 책을 품에 안고 걸었다. 

동반한 이가 말했다.


-중고책이나 오래된 책엔 벌레가 살아. 몸에 옮을 수 있어.

방에도 두지 마.


이 사람 참...


볼수록, 만날수록 새롭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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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6-11-02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가서 책 소독기에 넣으면 벌레나 세균이 싹 소독될텐데요ㅋㅋㅋㅋㅋ
68년 묵은 그림책을 득템하셨군요. 와 그렇게나 오래된 책이 아직도 멀쩡하게 헌책방에 나와있다니 놀랍네요. 그리고 그시절 칼라도판이라니... 저 책을 처음 가졌던, 지금은 노인이 되었을, 그 아이에 대해 마구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젤소민아 2026-11-03 22:16   좋아요 1 | URL
그런 소설을 하나 써볼까봐요~~^^ 망고님, 한국엔 책 소독기가 있나요? 미국에선 본 적 없어요....부럽!
 

Hope (2026) - IMDb


나홍진 감독의 <HOPE>를 보고 왔다.

호불호가 선명하게 갈린다고 해서 살짝 걱정했다. 

감독의 전작들을 꽤 즐거이 보았기에 부디 '호'이길 바라마지 않으며. 


마지막 회차다 보니 한밤중에 집에 왔다.

글쓰기엔 밤이 좋다. 바로 쓴다.


이 영화를 괴물 영화로 보아야 할까, 외계인 영화로 보아야 할까.

내 눈엔 어느 쪽도 아니었다. 내게 이 영화는 '재난 영화'로 보였다.


여기서 말하는 재난은 자연재해냐 인재냐 하는 식으로 

원인을 분류할 수 있는 재난이라기보다는

내가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외부의 힘이 어느 날 갑자기 내 삶의 경계를 침범하는 사건이라 하겠다. 


여기서 중요하게 다가온 건,

그 힘의 정체가 무엇이냐가 아니라, 

그것이 도래했을 때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느냐...


그래서 내게 <HOPE>의 중심 질문은 

‘괴물은 무엇인가’가 아니라 

'재난이 닥쳤을 때 인간은 어떻게 사는가'로 읽혔다.


이 영화를 두 개의 세계로 나눠보고 싶다.


일상 VS 재난(의 세계)


생각할 거리를 주는 문학이나 영화 혹은 또다른 예술 형태가 잘 하는 일이다.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충돌시켜 하나의 세계를 다른 세계에 비춰보기.


특히, 소설이 그렇다.


<노인과 바다>는 마놀린(소년)이 동반하던 노인의 세계와 그가 떠난 세계를 나눈다.

두 세계를 공통적으로 흐르는 공간이 '바다'.

두 세계를 둘로 나누는 공간이 '더 먼 바다'이다.

'불운이 바닥을 친(스페인어로 '살라오'가 되어 버린) 노인과 더는 배를 같이 타지 말고는 부모의 명을 받고 소년은 노인을 떠난다. 그래서 노인은 '더 먼 바다'로 나가 

평소 잡기 힘들었던 청새치를 잡고 상어도 만난다. 







<마담 보바리>는 마담 보바리가 즐겨 있는 로맨스 소설의 안팎으로 나눌 수 있다.

<어린 왕자>는 B612를 떠나기 전과 후의 세계로 나뉘는 것 같고. 물론 또다른 앵글로 또 다르게 나눌 수도, 얼마든지 있다.

<변신>의 두 세계는 그 어떤 소설보다 선명하고 매력적이다.

그레고르 잠자의 방과 방 밖의 세계. 그레고르 잠자는 방 밖으로 나왔다가 죽는다.
















영화로 돌아가자.


<HOPE>의 두 세계는 일상 vs 재난상황


재난은 일상을 파괴하기 위해 침입하지만, 

이 영화에서 비록 건물은 파괴되어도

일상은 그렇게 쉽게 파괴되지 않는다. 

(이쯤에서 '노인과 바다'의 명문장이 떠오른다. 

[인간은 파괴당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 혹시 이것과 일맥상통하나?)


영화는 외계 괴물을 상대하는 극단적 상황을 보여주면서 

사소하고 시시하며 때로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생활의 순간들을 계속 끼워 넣는다.


사람들은 재난 중에도 먹고, 수다 떨고, 똥을 눈다. 


재난이 벌어졌다고 해서 인간이 갑자기 ‘재난속 인간’으로 급변하지 못하는 것이다. 

영화를 보다가 오래전 <개그콘서트>의 ‘생활의 발견’이 떠올랐다. 


연인이 헤어지는 위기의 순간에도 

중국집에 음식 주문하면서 단무지를 챙기고, 쿠폰을 찾아 나와 건넨다.


다소 과감하게 단순화하는 듯하지만, 

그 코미디 코너의 발상을 거대한 SF 재난의 규모로 확장하면 

<HOPE>의 한 단면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국은 거대하지만, 

파국을 겪는 인간의 몸은 여전히 생활의 단위로 움직인다는 면에서.


같은 맥락에서, <HOPE>는 재난을 거대담론으로 ‘상승’시키기보다

그것을 생활의 차원으로 ‘하강’시키는 게 매력적이다.


'괴물' 중에도 사이즈가 제일 큰 '우주적' 존재를 활용하면서 '하강'이라니.


그 거대한 재난과 비루한 일상 사이의 낙차가 

이 영화 고유의 유머와 공포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게 아닌가...


영화의 공간도 한몫한다.


다닥다닥 붙은 점포는 끝없이 이어지는데 가게에 사람은 하나도 없다.

모두 가게 안 깊숙한 공간에 있다가 오발로 죽음을 맞기도 하고

괴물에게 이미 당해 처참한 시신이 되어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이 어째, 살아있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혹시 가게 간판을 눈 여겨 보았는가.

뭐 하나 겹치는 가게가 없다. 

그 작은 마을에서 업종은 어찌 그리도 다양하던지.



그 일상을 영위하던 사람이 사라졌는데 일상은 지독하게 남는 구도. 


이 영화에서 또 눈에 띈 것이 '지연'이다.


영화는 좀처럼 괴물의 모습을 온전히 내놓지 않는다.

초반에 지루해 죽겠다,는 평이 많이 나오게 생겼다.

지루함은 당연했다.


그런데 바로 이 지루한 기다림이 

영화가 만들어낸 공포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괴물을 보여주지 않는 시간 동안 

관객인 나는, 

어쩌면 기획 단계의 감독 못지 않게 수많은 괴물의 형상을 만들어냈으니까.


이 '지연'의 방식을 활용할 때, 즉, 공포를 보여주는 데 있어,

특히 범석(황정민)과 목격자들의 대비가 인상적이었다. 


목격자들은 이미 보았다. 

영화는 괴물을 등장시키기 전에 괴물에 대한 ‘말’을 먼저 돌아다니게 한다.

범석은 보지 못했고 그들의 말을 들었을 뿐이다. 


상당 시간 카메라는 범석의 시선과 그가 처한 조건에 관객을 묶어둔다.


범석이 모르는 만큼 관객도 모르고, 

범석이 보지 못하는 만큼 관객도 보지 못한다.


지연이 길다 보니 이런 질문을 할 짬이 생겼다.


괴물을 직접 본 사람과, 

못 보고 이야기만 들은 사람 가운데 누가 더 무서울까.


아마 둘 다. 

다른 건 공포의 종류일 뿐.


본 사람은 구체적인 공포를 소유한다.

괴물의 형태와 크기와 움직임을 안다.


보지 못한 사람은 무정형의 공포를 소유한다.

어디까지 상상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하나는 이미지에 붙잡힌 공포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지가 없어 무한히 팽창할 수 있는 공포이다.


그래서 <HOPE>의 초반부에서 중요한 것은 

괴물을 얼마나 늦게 보여주느냐만이 아니라, 

‘이미 본 자’와 ‘들은 자’ 사이에 공포를 어떻게 나누느냐가 아닐까.


후반부로 갈수록 외계 존재가 구체화되면서 영화의 성격이 좀 달라진다.

여기서 내 개인적 호불호가 작동했다. 


한 우주선을 타고 도착한 존재들이 왜 그리 이질적인 형상을 하고 있는지, 

곱씹어보고 싶은 부분.


그것이 종의 다양성인지, 변이인지, 역할의 차이인지, 

혹은 이후 세계관을 확장하기 위한 장치인지 

이 한 편만으로는 잘 모르겠다.


인간을 닮은(얼굴/팔다리/여자의 가슴 등) 외모적 특성,

언어를 부여하는 방식에서는 <아바타>를 비롯한 

기존 SF의 기억이 강하게 소환되었다. 


나는 사실, 여기가 제일 아쉬웠다.


<HOPE>가 초반에 만들어낸 낯섦을 다소 익숙한 SF의 문법으로 되돌려놓는 것 같아서다.


미지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미지가 오히려 작아지는 것 같은 역설이랄까.


보이지 않았을 때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던 존재가 

형상과 언어를 얻는 순간,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다른 영화들의 공식과 이미지들과 비교질이 시작되었다.


결말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더 크다.


후속편을 염두에 둔 설정 및 스토리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한 편의 영화는 한 편 안에서 최소한 하나의 '운동'을 끝내는 게 좋을 것 같다.


관객/시청자/독자의 모든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미스터리를 남기고, 세계를 열어두어도 된다.

그러나 서사는 열려 있을 수 있으나

작품의 '운동'까지 미완이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HOPE>의 결말은 다음 이야기를 위한 문을 여는 데 너무 많은 힘을 쓰면서, 

지금 막 본 이 한 편이 무엇을 닫았는지는 상대적으로 희미한 듯했다.


물론, 감독 나름의 중요한 '의도'가 있겠지 싶다.

그러나 의도되었다는 사실과 그것이 한 편의 영화로서 만족스럽다는 평가는 

별개의 문제일 테니.


<HOPE>의 리뷰 결말은 'HOPE'로 닫고 싶다.

제목 그대로 ‘희망(hope)’이 재난 아래에서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는가, 말이다.


이 영화의 '희망'은 거창하고 거룩한 영웅적 행위나 위업에 있지 않다.

오히려 재난이 삶을 압도하는 순간에도 

떠들고, 실수하고, 먹고, 싸우고, 용변을 보고, 

서로를 걱정하는 그 사소한 일상의 지속 속에 있다.


이 영화를 통해,

어쩌면 재난의 진정한 반대말은 ‘구원’이 아니라 ‘일상’​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하긴, 우리 삶에 예기지 못한 '재난'이 병이나 시련의 형태로 도래했을 때,

우린 얼마나 '일상'을 그리워하게 되는가 말이다.


이 영화는

재난이 일상을 중단시키려 기를 써도 인간은 끊임없이 일상으로 돌아가려 한다,

뭐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일상의 관성이랄까.


<HOPE>에서 말하는 '희망'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재난 속에서 우리가 그렇게도 갈구하는 일상은

사실, 재난 속에서도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다는 것.


물론, 나는 재난 앞에서 일상을 그대로 영위할 자신은 없다.

재난을 맞은 사람답게 무너져 내리고 말 것이다.

지금도 그러고 있는 상황인지 모르고. (아마 십중팔구는 그럴 것이다)


그래도 <HOPE>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해봤으니

앞으로 맞는 재난 속에서 그나마 일상의 조각을 줍게 되진 않을까.


해술 노인이 괴물 앞에서도 똥을 누듯이,

성기가 괴물 앞에서도 고구마(감자였나?)를 먹듯이,

도망 중에 숨이 차올라도 할 말은 할 수 있듯이.


그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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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9-21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프 한국평은 불호가 많은데 미국이나 외국은 호평이많다고 하네요.

젤소민아 2026-09-22 13:22   좋아요 0 | URL
전 아주~~~~~호입니다~. 카스피님도 보셨는지요~

젤소민아 2026-10-08 0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페이퍼 자축합니다~감사합니다~
 


한 열흘 동안 알라딘에 못 들어왔다

사이트 에러인줄 알고 신고했고 알아보겠다는 답이 왔다

사정상 전화를 했는데 내 목소리에 짜증과 초조함이 덕지덕지.

상대방은 몹시 친절했다. 알라딘 만세.


알고 보니 사이트 에러 아니고 우리집 와이파이 문제.

몹시 친절했던 상대방께 이 자리를 빌어 깊은 사과를.

나만 안되었던 거다. 열흘 동안 알라딘에 못 들어오면서

금단 증상을 겪었다.


하루에도 열 번씩 들어왔다 나갔다.

알라딘은 알리바바 도적들이 잠근 돌문처럼 굳건히 안 열리고.

(근데 왜 하필 암호가 '참깨'였을까. 그걸 궁금해본 적 없다는 게 더 궁금해짐)


이제 보니, 알라딘은 내 삶의 8할이었다.

열리는 순간, 실제로 비명을 질렀다.

가족들은 쥐 나온 줄 알았다고.


바로 밀린 책 주문부터!              

            

이사하면서 책꽂이 놓은 공간이 대폭 줄었다.

(다음 페이퍼에는 책꽂이를 좀 찍어 봐야것다)


알라딘에서 매주 한 박스씩 열 권 정도는 사들인 것 같은데

지금은 한 달에 두 번, 대여섯 권 밖에 소비를 못하게 생겼다.


물론 돈도 늘 걸림돌이었지만 이번엔 새로이 공간 문제로. 큼큼.


미리보기로 봤을 때 살짝 가벼워 보인다는 우려가 있었음

목차보다가 눈에 띄는 게 있어서 구매할 결심

책이란 게, 전체가 다 좋을 수는 거의 없어서.

명작, 거작도 그렇지 않나.

다 좋든가 어디.


물론, 있긴 하지만.

그래서 우리가 밑줄 긋는 거 아닌가 말이다.


밑줄 그을 곳이 한 군데라도 있다면 

그 책은 볼 가치가 있다고 보기에



영어 이야기이긴 하고

내가 전 세계의 언어를 다 알지도 못하지만

어떤 언어든 동사는 몹시 중요하겠지.


가만, 없던 물건이 생기면 명사는 으레 생기겠지만

새로 탄생하는 동사가 궁금해진다.


인류의 움직임은 완료형일 텐데.

어제부터 홈트를 시작했다.

내게는 없던 동작이 생겼고, 아울러 동사가 생긴 셈




나를 구원하거나 파괴하는 타자, 타자성.

어제도 어떤 타자가 날 구원했고 

어떤 타자는 날 파괴하려 들었다.


구원은 잘 당하고 파괴는 덜 당할 방법이 있을까해서

아, 자기계발서 아니고 비평서이자 자서전.








<앨저넌에게 꽃을>과 <거짓말의 규칙>을 읽었다면

그럴만한 이유로 이 책도 읽어야 한다,고 누가 그랬다.

세 책 모두 '지적장애'를 가진 인물이 주인공이다.


세 책 모두 명작이다, 라고 또 같은 누가 그랬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100자평에 기대평을 썼다.













세상 좋은 책을 다 모아놓은 듯한 출판사들이 있다.

인문학서 출판사로 나는 

[글항아리] 출판사와 [돌베개]를 맹신한다.

다른 곳도 더 있지만. 갑자기 이름이 생각 안 남.


요즘 편집자들이 뜨고 있다. 영미권은 이미 작가에 더불어 에디터들이 책을 많이 냈는데 이제 한국도 에디터가 상승 중. 


나야, 믿고 읽을 책 더 생겨 좋기만 하고.

헤밍웨이인가가 그랬대잖아. 에디터는 늘 옳다고.




미리보기에서 구경했을 때 느낌이 왔다.

보이는 단어가 춤추는 것 같았다.

적확한 자리에 놓인 단어들만이 가질 수 있는 흥겨움이랄까.


뭔가 할 말이 있는데 나오지 못하던 

내 안의 단어를 찾아주는 느낌이랄까.


그 단어들이 섞이고 비벼져 만들어진 문장의 축제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




도시의 광고판과 전단지에서는 냄새가 난다. 하나의 도시에 도착하여 그 도시에 젖어 들기 시작한다는 것은 광고판에 익숙해진다는 뜻도 된다. 축약된 공감각의 어법, 전혀 다른 이미지의 후각적 문법. 그 이질적 감싸 안음 속에도 역시 냄새는 들어 있다. 도시는 냄새를 생산하고 다시 그 냄새를 지운다. 


/세계-사이 중에서


*혹시, 궁금한 사람을 위해,

누운 책들 옆에 혼자 서 있는 책은 책이 아니라 초콜릿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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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6-09-16 0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기에 열흘이나 들어오지 못하셨군요 무척 답답하셨겠습니다 이제는 괜찮아져서 다행입니다 책 많이 사셨군요 사신 책 즐겁게 만나시기 바랍니다


희선

젤소민아 2026-09-16 23:26   좋아요 0 | URL
희선님, 그 답답함과 짜증과 화남 위에 그리움이 있드라고요~~~. 열리는 순간의 환희라니~~. 희선님도 즐독하셔요~

바람돌이 2026-09-16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와중에 초콜릿박스 너무 고급스러운거 아닙니까? 맛은 또 얼마나 고급스러울려나요. ㅎㅎ 내가 자발적으로 안들어오는건 괜찮지만 어떤 문제로 못들어오게 되면 그것만큼 또 미치는것이.... 충분히 이해합니다. ㅎㅎ 어쨋든 해결되었으니 축하드립니다. 더불어 이렇게 풍성한 책이야기가 함께 하니 더더욱 즐겁네요. ^^

젤소민아 2026-09-16 23:27   좋아요 0 | URL
곁에 계시면 정말 나눠 먹고 싶습니다~^^ 책을 가장한 사물에 관심이 많아요. 책 굿즈 같은 거요 ㅎㅎ 그런데 초콜릿이라니! 당장 샀죠. 덕분에 당을 쭉쭉 올라가고요. 앞으로도 풍성한 책 이야기 함께 나누길 고대합니다~서재에도 자주 들를게요!
 


한 달에 두 박스만 받자...

겨우 줄였다.


1주1박스였다지...

살림 거덜날 것 같아 줄였다.

책 꽂을 공간 부족이 제일 문제였지만.


아무튼 8월의 두번째 박스가 도착.

박스를 뜯을 땐 뭘 주문했더라...

이미 가물해서 설레는 마음이 되지만,


이번엔 선명하게 기억나는 책이 몇 권 있어서 

기억해서 설렜다.


그 중 하나가 김애란의 신작 산문집.


그랬다고 적었다.


한 페이지 펼쳐보고 심장이 1센티 가라앉게스리....실망.


왤까.

아직 내용은 보지도 못했는데.


짧은 각 글 끝에 (2021) 뭐 이런 연도가 붙었는데,

이건 주로, 어떤 신문 같은 데 발표했던 글이란 소리 아닌지.

그게 아니어도, 최소한 그때 썼다는 글이란 소리 아닌지.


물론, 그런 신문을 다 따라다니면서 읽지 않으니

읽었던 건 아닐 테니 그건 괜찮은데. 


나는 '지금'의 김애란이 궁금했거덩.


<잊기 좋은 이름>이던가...


'이름'이란 테마 아래 연이어 써나간 듯한, 

어떤...너무 길지 않은 시간 속에서

하나의 주제를 이고 그 테두리 안에서만 써나간 듯한 '집중된'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 '집중'은 현재성을 느끼게 했더랬다.

과거 언제 썼든, 나하고 같이 '지금 이 순간'에 현재의 숨을 교차하는.


이런 독자의 욕망을 '팬심'이라 하는 거겠지.


'지금'이 아니라 뭐 아주 멀지 않은 몇 년 과거 어느 시간 속에 흩어진들

어떠랴...김애란인데. 


근데 좀체 떨어진 1센티는 회복이 안되는구만 그려.


비닐에 싸인 책이 두 권 있다.



비비언 고닉의 책과

하나는 피아노에 관한 피아니스트의 에세이인데...


피아노를 잘 치지는 못하지만 피아니스트의 책은 나오는 대로 읽는다.

아마 이루지 못하거나 이룰 생각조차 없었으면서도 

내 안에 은거하는 어떤 욕망의 잔재 때문일 것이다.


랑랑의 자서전은 아직 번역이 안 된 것 같아 영어본으로 읽었다.


Journey of a Thousand Miles: My Story


무슨 연관인지는 콕 집을 순 없으나, 이 책 읽고 그의 쇼맨쉽 같은 게 이해되었다.

말한 대로 무슨 연관은 없다.

책에 쇼맨쉽과 피아니스트의 필연 관계를 설파한 부분도 없고.


아마도 이런 거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잘 알지도 못하는 그 사람을 얼마간은 미리 좋아하게 된다고.


그 사람 편에 한 발짝 다가들게 된다고.


이것도 '팬심'의 일종이라면 그럴 것 같다.


쉽게 말해, 자서전을 읽고 랑랑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소리다.

하긴, 어떤 사람의 것이든 평전이나 자서전을 읽고 안 좋아하게 된 예는 없다.


츠바이크의 발자크평전이 그 극단의 예.


책에 비닐은 왜 씌웠는지 모르겠다.


책의 비닐은 양날의 칼이다.


내용을 비호한다

내용을 폄하한다


스스로 이 둘을 동시에 하는 것 같다.


너무 귀한 내용이니 아직 사지도 않은 상태에서 미리 보기 하지 마세요

너무 쉬운 내용이라 대충 훑어도 다 본 거나 마찬가지니 안 살 거잖아요.


나만 그런가.


독자의 마음 중에 이런 마음도 있으니 출판사 마케터들은 참고했으면 함.


결론은, 비닐 안 씌웠으면 좋겠다, 이다.

비닐로 싸면 코스트도 더 올라가고

아, 환경에도 안 좋잖아요!


아, 더불어 출판사 마케터님들께 참고용으로 말씀드릴 거 또 하나.


책 표지에 저자 얼굴 나오면 무조건 제끼는 독자도 있다는 거.


특히, 현재 살아있는 이.

특히, 웃고 있는 이.

특히, 가슴 위로 팔짱 낀 이.

특히, 턱 괸 이.


톨스토이, 헤밍웨이, 피츠제랄드 처럼 이미 돌아가신 이는 무관함.


왜들 그렇게 저자의 얼굴을 내미는 걸까.

이름만 봐도 아는데.


책은 책이다. 

텍스트로 말하자.

한 장만 들추면 저자 약력 다 나온다.


나 같은 경우는, 진짜 얼굴 아무 상관없고,

오히려 얼굴(인상)이 내 관점에서 별로라 더 안 사는 경우도 있다


어쨌거나 표지에 사진 넣는 건

외모, 외양, 대중인지도로 어필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건데.


적어도 나란 독자에겐

그 소리도 다,


텍스트에 자신 없다는 소리로밖엔 안 들린다.


내가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

사진에 관한 책인데 사진 안 넣었다.


내가 이상한 독자일 수도 있으나 출판사 마케터님들,

저자 얼굴 좀 표지에 싣지 말고,

특히 팔짱 좀 안 끼게 해 주심 안 될까요.


진짜 내용 좋은 것도 있을 텐데, 

나하고 나랑 비슷하게 이상한 내 친구도 진짜로 그런 책은 단 한 권도 안 샀어요~~~~~~~.


이야기가 옆으로 새다가 아예 바다로 나간 듯.


혹시,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사진이 시커매서 제목이 잘 안 보이면~


-미국의 송어낚시/너무 읽어 다 찢어져서 다시 샀다

-거장의 노트를 훔치다/거장 영화감독들의 비밀수업이라길래

-그 여자의 침대/박현욱은 정말이지 딱 '할 말만' 쓰는 소설가다

-그랬다고 적었다/더 할 말이 아직은 없음

-단절(들)/전작이 좋았고, 최근 읽은 '손절사회'와 연결독서하려고

-모호한 마음에 이름 붙이기/이런 건 다 산다

-언어화를 위한 소설사고/이번 박스에서 제일 기대된다

-연애시대의 종말/제목과 조금 달리, 문학론을 다룬 에세이다

-이름 없는 감정들의 사전/이런 건 다 산다니까는

-하얗고 검은 어둠 속에서/번역자가 미학과 음악학을 공부한 사람이라 더 흥미로움. '고독'이란 소갯말에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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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존재론이 도착했다!


내용물이 새 나가지 못하게 비닐로 싼 센스. ^^


텍스트가 꽉 찬 책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비닐을 뜯기도 머뭇거려진다는.


언어 존재론과 더불어

앤드류 포터의 <상상 속의 삶>부터 읽어볼 참이다.


어떤 책을 주문했는지 알면서

왜 책박스를 열 때는 설레는 걸까.


사실은, 솔직히 말해 그새 까먹었다.


사나흘이면 책이 오는데-미국까지, 참 놀라운 일이다. 알라딘 만세다!-

그새 뭘 주문했는지 잊는다.


책을 하나 집어들 때마다, "아, 맞다. 이 책." 이런다.


그럴 때면 얼마나 즐거운지.


책마다 다른 얼굴, 다른 속내.

갈피를 넘길 때면 공기 중에 흩어지는 새책 냄새.

그리고 또 한국 냄새.


거짓말 아니다.


그런 게 난다. 


갈피마다 배어 있을 한국의 공기 내음.


이 책 박스를 쌀 때도 기계를 쓸까?

아니지 않을까?


난 무지하게 아날로그적으로 생각한다.


누군가가 손에 목록 종이 하나를 들고 

눈앞에 쌓인 책 중에서 해당되는 걸로 골라든다.

그리고 박스에 차곡차곡 담는다.


주문자 이름을 본다. 

내 이름이다.


이 사람, 또 책 샀네...


같은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도 해줄까.


그렇게 담아서 테입으로 잘 봉하고 트럭에 싣는다.


난 그렇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책 표지에 어린, 책 박스에 어린 누군가의 체온을 감지하고 싶다.


책은 그런 거다. 


누가 누구를 위해 짓고, 쓰고, 싸고, 보내고...


난 그런 박스를 오늘 내 방안에서 연다.


읽은 책보다 읽지 못 하는 책이 더 많은데도 

계속 책을 사는 이유.


사람 만나는 일보다 

책 만나는 일이 더 설레는 이유.


그건 나만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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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8-01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뭘 주문했는지 뻔히 알면서 그래도 박스를 뜯을 때의 설렘은 역시 책뿐입니다. 다른 택배박스는 뜯기도 귀찮아서 현관에 며칠씩 방치하면서 말이죠. ㅎ

젤소민아 2026-08-02 12:08   좋아요 1 | URL
제 마음이 그마음이여요, 바람돌이님~. 지금 또 다른 책들 장바구니에 담고 있잖아요, 글쎄 ㅎㅎㅎ 지갑은 얄팍하기만 한데 말입니다~

얄리얄리 2026-08-04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갑+공간 이슈로 당분간 책구입 금지령을 받은 상태에요..ㅎㅎ
다시 책 택배박스 열 때의 설레임을 느낄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젤소민아 2026-08-05 07:22   좋아요 0 | URL
저도 늘 그런 금지령 상태죠~~더구나 지금 책꽂이 스페이스가 더 줄어든 집으로 이사를..ㅎㅎ 그래서 세운 전략이 새로 들어오는 책만큼 기존 책 처분하기...ㅠㅠ 쓰린 가슴 부여잡고 자식같은 책 내보내고 있습니다...설렘은 늘 그래서 서운함과 겹치죠. 잘 가, 책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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