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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소멸 - 우리는 오늘 어떤 세계에 살고 있나 ㅣ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2년 9월
평점 :
한병철 철학가는 학부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했다.
뮌헨대학교에서 철학, 독일문학, 가톨릭 신학을 공부했다.
금속공학과 철학/문학/신학 사이에는 무엇이 놓여 있을까.
무엇이 징검다리가 되어 한병철을 이끌었을까.
그 사이, 한병철의 녹녹치 않았을 고민의 두께가 느껴진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금속공학과 철학의 관계를. 물론, 내 멋대로.
금속공학은 '물질'을 다룬다.
아마도 금속이 어떤 압력과 온도를 거쳐 어떤 성질을 갖게 되는지,
외부 힘이 가해질 때 어떻게 변형되고 피로해지는지, 연구하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얻어지는 단어가 있다.
강도
내구성
피로감
변형
(그가 '피로사회'를 썼다는 건 다 아는 사실)
이 단어들은 언뜻 봐도, 이미 철학으로 고개를 향하고 있다.
철학은 인간과 사회를 다룬다.
철학 속 인간은 지속적인 압력 속에서 닳아가는 존재이다.
성과를 요구 받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끝내 피로해지고 마는 현대인.
어느새 금속공학과 이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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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생각해 보았다.
금속공학은 “얼마나 더 견딜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철학은 “왜 이렇게까지 견뎌야 하는가”를 묻는 것 아닐까.
어쩌면 한병철은 금속을 연구하다가 '견딤'에 천착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사실이 뭐든간에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한병철의 책은 모두 갖고 있다.
두께가 얇고 판형이 작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가방을 들고 나가더라도
쏙 넣고 다니기에 딱 좋다. 누군가를,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릴때,
즉 '견뎌야 할 때' 동반하기 좋다.
한병철의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서사의 위기', 그리고 '사물의 소멸'
내가 소설을 쓰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이 책의 서문 첫문장은 '소설'로 시작한다.
얼마나 반가운지.
소설 <은밀한 결정>에서 일보 작가 오가와 요코는 이름 없는 섬에서 벌어지는 일을 서술한다.
기이한 사건들이 섬 주민을 불안하게 한다.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물들이 사라진다. (중략) 이 모든 사물이 어떤 좋은 점을 가졌었는지 사람들은 이제 더는 모른다. 사물과 함께 기억도 사라진다.
(7p)
오늘도 계속해서 사물들이 사라진다.
(8p)
사물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우리의 소통 도취와 정보 도취다.
(8p)
정보 사냥꾼으로서 우리는 고요하고 수수한 사물들을, 곧 평범한 것들,
부수적인 것들, 혹은 통상적인 것들을 못 보게 된다. 자극성이 없지만 우리를 존재에 정박하는 것들을. (9p)
독일어 번역도 기막히게 잘 한 것 같다.
한굴로 쓴 책인듯 자연스럽다.
한병철의 용어는 아주 특별하다.
일상적인 동시에 대단히 적확하다.
용어를 굳이 풀이할 필요 없을 정도로 이해가능하면서 강하게 꽂힌다.
이 책에서 '사물'은 곧 '자극성이 없는' 것으로 이해된다.
자극성이 없는 것은 지금같은 정보화 사회에서는 폐기 대상 1순위다.
세상 모든 것(예술포함)들은 더,더,더, 자극적이지 못해 안달한다.
이 책에서 논하는 사물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은 개인적으로,
<연속성>이다.
사물을 인간의 삶에 연속성을 제공하는 한에서 삶을 안정화한다.
(11p)
'연속성'은 다름 아닌, 서사의 핵이다.
연결이 없다면 서사는 없고, 서사가 없다면 소설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 책에 소설 이야기는 없지만 소설 이야기로 서문을 시작하는 것부터가
이 책은 소설을 진하게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물 없는 소설이 어디 있던가.
소설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사물을 공전한다. 사물이 인물을 공전하기도 한다.
소설은 사물로 인해 사건이 진행된다.
겉으로 보기에 사건을 움직이는 게 인물의 선택과 행위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그 행위는 언제나 사물에 의해 촉발되고, 사물에 의해 방향 지어진다.
이 책의 서문에서 인용된 <은밀한 결정>만 해도 사물이 하나씩 사라진다.
사물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고, 인물의 행위는 그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다시 말해 소설의 사건은 인물의 의지보다 사물의 배치와 존재 방식에 의해 진행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가만 보면, 인물의 행위 위주로 쓴 소설보다 사물 위주로 쓴 소설이 그래서 더 훌륭해 보이는 이유고, 더 가만 보면, 대개의 걸작 소설은 인물보다 사물을 더 잘 활용하고 있다.
(전부 분석한 건 아니지만, 진실로 그럴 것 같다)
인물은 서사 안에서 움직이고
사물이 서사를 움직여 간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으로 다시 돌아가자.
그 사물이 '소멸'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
극심한 사물 인플레이션.
사물에 대한 무관심의 증가.
(이 책에서 따온 표현이다)
우리는 사물보다 정보를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한다.
어느새 우리는 모두 정보광이 되었다.
(12p)
diskrete Ding=은은한 사물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띈 단어다.
아울러, apprendre par coeur. 심장으로 배우기.
이어 붙이면 이렇다. 은은한 사물을 통해 심장으로 배우기.
이건 두고 저자는 '충심'이란 단어를 또 사용한다.
충심의 사물.
하이데거의 집 현관문 위에는 이런 성경 구절이 적혀 있다.
"온 정선으로 네 충심을 지켜라. 거기에서 생명이 나오기 때문이다."
(중략) 생텍쥐페리도 생명을 산출하는 충심의 힘을 언급한다.
여우는 헤어질 때 떠나는 어린 왕자에게 비밀 하나를 쥐여 준다.
"아주 간단해. 충심으로 봐야만 잘 보여.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112p)
충심이란, '심장'과 연관된다.
심장에 아주 가까이 닿은 상태.
아마도 본질이, 진심이 거기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는 '고요'의 챕터가 있다.
우리 시대의 근본 동사가 '닫다'가 아니라 '열다'라고 말한다.
우리 시대는 열려 있다. 열린 곳으로 무언가 쏟아져 들어온다.
그게 너무 양이 많아 오히려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간다.
여기에 다게르의 사진 '탕플대로'가 인용된다.

다게레오타이스 사진에 전형적인 극도로 긴 노출시간 때문에 움직이는 모든 것이 사라졌다. 오로지 고요히 서 있는 것만 보인다. <탕플 대로>가 주는 인상은 작은 마을의 평온함에 가깝다. (중략) 이처럼 길고 느린 것에 대한 지각은 오직 고요한 사물들만 알아본다. (중략) 고요가 구원한다.
(124p)
사물이 소멸한다 하니 사물에 대한 애도를 배울 때인 것 같다.
나는 어디서 '은은한 사물'을 확보할 수 있을까.
나는 세상 무엇을 충심으로 느낄 것인가.
내겐 가장 손쉬운 방법이 소설이다.
이 책 또한 그걸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이 책의 서문과 본문에서 소설과 소설가가 간간이 등장하는 이유는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내게 한병철은 철학가인 동시에 지극히 문학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