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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1
에밀리 브론테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평점 :
폭풍의 언덕.
초등학교 때 읽었다.
아마도 축약본이었을 것이다.
누가 살았어요, 어땠어요, 저쨌어요..하는 식으로 존대말로 된.
그러니 제대로 읽은 게 아닐 것이다.
그래서 맘잡고 제대로 읽어볼란다.
번역본이 여럿.
어느 것으로 읽을까.
알라딘의 '미리보기' 기능을 적극 활용했다.
우선, 첫문장 비교부터.
원문은 이러하다.
1801-I have just returned from a visit to my landlord-the solitary neighbour that I shall be troubled with. This is certainly a beautiful country! I do not believe that I could have fixed on a situation so completely removed from the stir of society.
축약본도 도움은 되었다. 가물가물하지만 여기서 말한 '집주인'이 그 유명한 히스클리프란 게 기억난다.
화자는 '나'. 나는 히스클리프란 걸출한 소설 인물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solitary neighbour
solitary
이 단어 안에 겹쳐진 다소 이질적 의미를 절묘하게 써먹고 있다는 게 대번에 느껴진다.
1) separated from/따로 떨어진
2) only one/ 단 하나의
1)번은 집주인(히스클리프)의 몫이다.
2)번은 화자인 '나'의 몫이다.
'solitary'는 '떨어진', '고독한'이 지배적인 의미지만
영미인들에겐 'single'이란 뜻도 유력하다.
I could not hear a solitary [=single] word of what he said.
그에게서 단 한 마디 말도 못 들었다.
집주인은 따로 떨어진(solitary) 집에 혼자 사는데
그러니 나는 그가 유일한(solitary) 이웃이라 아주 좋아.
(the stir of society에서 벗어났으니까)
==>화자인 '나'와 집주인, 히스클리프의 캐릭터를 바로 소개하는 셈이다.
'solitary'란 한 단어로 '나'와 '집주인'을 모두 설명하고 있다는.
영어는 이래서 짜증 나게 헛갈리기도 하지만 또 이래서 유용하기도 하다.
영어로 글 쓰는 그들에게는. 그 영어를 제대로 읽어내기만 하면 독자에게도.
그렇다면 번역은 이 두 이질적인 의미를 잘 살렸을까?
비교해 보자.
비교하면서 스스로 평가해 보시길.
이제부터 사귀어가야 할 그 외로운 이웃 친구를.-민음사(김종길 역)
흠...완전히 다른 의미.
'사귀다'는 의미는 원문 어디에도 없다.
이제 그는 내가 신경써야 하는 유일한 이웃이다-문학동네(김정아 역)
흠...'신경쓰다'는 의미 또한 원문 어디에도 없다.
몇 킬로미터 내에 이웃이라곤 오로지 그 집 한 채 뿐이다-푸른숲주니어/공경희 역
흠..'solitary'를 '뚝 떨어진'으로 밖에 못 옮겼다. 뒤 'troubled'는 어디갔나...
청소년본 같은데, 그래서 '축약되었을' 수는 있겠다.
그는 앞으로 내가 신경 써야 할 유일한 이웃이다/앤의 서재(이신 역)
'문학동네'와 이하동문.
내가 신경 써야 할 유일한 이웃이다-열린책들(전승희 역)
흠..의역하면 맞다. '유일한'도 살렸다. 그런데 'troubled'는 '내가 신경쓴다'기보다는 누가 나를 귀찮게 하는 뉘앙스다. 귀찮으니 신경 쓰이긴 하겠으나, 귀찮고 성가신 게 먼저다.
그 외에도 더 많은 번역본이 있지만, 여기까지 살펴보고 좀 지쳤다.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번역본이다. 황유원 시인 번역.
앞으로 나를 성가시게 할 유일한 이웃인 그를.--휴머니스트 세계문학/황유원 역
내 생각엔 이 번역문이 가장 원문에 가깝다.
'trouble'을 최대한 살렸다고 봐서.
그런데 굳이, 굳이, 살짝 아쉽다 한다면...
그가 나를 성가시게 할 유일한 이웃이라, 하면
이웃이 많고 이웃 모두 좋은 양반들인데
딱 그, 한 사람이 나를 성가시게 한다는 뜻으로 오독될 우려가 없지 않다.
물론, 뒷문장을 더 읽으면 오해는 풀린다.
그러나 영미인은 뒷문장을 안 읽어도 제대로 이해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좀 더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런 식이 어떨까 싶다.
나를 성가시게 해본들 이웃이라곤 그가 유일하다.
흠, 여기도 딱 그 한 사람이 나를 성가시게 한다고 오독될 우려가 있지만
오해 소지가 좀 약화돼 보인다.
최선의 번역문은 더 많이 고민해 봐야 한다, 뭐.
아무튼 위에서 살펴본 바로는,
지금껏 한국 독자는 '폭풍의 언덕'을 첫 문장부터 제대로 못 만났다는 느낌적인 느낌.
첫 문장에서 휘청이니 번역본을 더 읽기가 좀 주저된다.
그래도 황유원 번역으로 읽기 시작했다.
번역에 관해서도 독서 후기도,
좀더 읽고 올릴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