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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게이하트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2
윌라 캐더 지음, 임슬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평점 :
그들은 무언가를 잃어버릴 운명이었다. 두 사람 모두 그것에, 서로에게 매달렸으나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135p
욕망할수록 인간은 상실을 경험한다고 한다.
우리 삶이 아이러니한 증거이기도 하다.
욕망하지 않을 때는 뜨겁지는 않아도 잃을 건 적다.
욕망할 때는 각오해야 한다. 욕망하는 것을 가질 수도 없지만
운이 좋아 가졌다 하더라도 자신이 욕망하던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게 거라고.
욕망 자체가 '결핍'에서 출발하므로.
라캉님이 그러셨지.

봉투를 뜯자 오려낸 신문 기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폴린은 곧장 본론에 들어갔다.
해리 고든이 결혼한 것이다!
138p)
이런, 해리 같으니라고!!
(그러나 이건 표면이다.
소설의 뒤쪽에 해리 고든의 '내면'이 나온다.
표면과 많이 다른.)
작은 마을에서는 여럿의 삶이 바투 붙어 굴러간다.
사랑과 증오가 옷깃이 닿을 만큼 가까이서 두근거린다.
집 밖으로 나갈 때마다 모두가 오가는 거리 한복판에서
나를 속이고 배신했던 남자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간절히 원했던 여자와
몇 마디 간격을 두고 스쳐 지나가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 여자의 치맛단이 살짝 닿을지도 모른다.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하고 자기 갈 길을 간다.
아슬아슬한 탈출.
저 넓은 세상에는 이토록 아슬아슬한 탈출이 없다.
175p)
아슬아슬한 탈출!
넓은 도시에는 없고
작은 마을에는 있는 것.
여럿의 삶이 바투 붙어 굴러가는 공간.
윌라 캐더가 왜 '자연주의' 작가라고 불리는지 알겠다.
문학의 자연주의는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보다 인간다운 삶이 붙어 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도시의 익명성에는 '스침'은 있으나 '탈출'은 없다.
생의 아슬아슬함은 더더구나 없다.
모두가 평행선을 걸을 뿐이니까.
자연과 가까운 작은 마을에서는 모두의 발걸음이 교차하니까.
사랑과 증오가 가까이서 두근거릴 정도로.
아, 아슬아슬한 탈출!
(나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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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루시 게이하트]를 완독했다.
완독하고 나니, 루시의 욕망이 만져질 듯 잡힌다.
시골처녀, 루시의 욕망은 '옆 사람'이었던 것 같다.
자신보다 훨씬 튼튼한 무언가가 옆을 지켜주었다. (145)
둘이 만나는
동안 옆자리를 지켜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 (173)
루시는 서배스천과 만난 후, 자신보다 훨씬 튼튼한 그가 옆을 지켜주어 좋았다.
서배스천이 죽고 고향으로 돌아와 해리와 재회할 때 램지 부인에게 옆을 지켜달라고
부탁할 생각을 했다.
루시는 '옆'에 누군가가 필요했다.
늘 비어있는 것 같던 옆자리에
서배스천이 들어섰으나 그는 늙고 유부남이고 또 죽고 말았다.
고향으로 돌아와 해리에게 옆 자리를 의탁하려 했으나
해리는 차가운 빙판 길에 루시를 남겨두고 떠나 버린다.
빙판 속으로 꺼져 드는 루시의 손을 잡아줄 옆 사람은 여전히 없었다.
이 소설의 아이러니는 역시 이 '옆자리'에서 완성된다.
동이 트기 전부터 잠에서 깬 루시가 그를 데리고 강으로 오리 사냥을 가던 아침이 떠오른 날도 있었다.(중략) 가만히 서서 동이 트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새가 날아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그의 옆에서 느껴지는 기대감에 저릿저릿했다. (229)
이건 루시가 죽고 게이하트 씨도 죽고, 뒤에 남은 해리의 시점이다.
늘 옆자리가 채워지지 않던 루시였으나
정작 타인(해리)에게 루시는, 한 때나마 옆자리를 채워준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소설의 첫문장은 루시를 회상하는 '우리'의 시점이다.
마을 사람들이 루시를 떠올리면 밝은 빛을 느끼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지도 모른다.
이제 떠나고 없는 사람이지만 떠올리면 옆자리가 채워지는 듯 그득해지는 사람.
살아 생전 어떤 휘황한 업적이나 화려한 행적이 없어도
무엇으로든 '좋은 느낌'으로 공간 한 조각을 채우던 사람.
루시는 스스로 그런 사람이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 같다.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살갗 아래서 펄떡이는 생을 느끼게 해주었던 루시.
그녀가 떠나고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허전한 것이다.
그들의 옆자리가.
그러나 루시는 부재는 빛으로 남았다.
옆자리를 채우고 싶어하던 그녀의 소망은
오히려 그녀에게 살갗 아래서 펄떡이는 생을 투사했고
사람들에게 그 생을 빛으로 남겼다.
욕망하자.
비록, 욕망하는 이는 결핍으로 고통스러워할지언정
그걸 대하는 누군가에게는 펄떡이는 생을 선사할 지도 모른다.
루시 게이하트처럼.
제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삶은 전에 하던 일을 계속하는,
전보다 열심히 해내는 것 뿐이에요.
삶을 사는 것 외에 중요한 건 딱히 없어.
삶에서 누릴 건 다 누리렴.
난 이제 다 늙어서 잘 안다. 성취는 삶의 장식품 같은 거야.
가장 중요한 게 아니라고.
때로는 사람들이 실망스럽고, 때로는 나 자신이 실망스러워.
어쨌든 중요한 건 계속 살아가는 거란다.
봄에 힘든 일이 있었다고 낙담하면 안 돼.
네 앞에는 긴 여름이 있는 데다가 모든 일은 때가 되면 풀리기 마련이니까. - P173
제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삶은 전에 하던 일을 계속하는,
전보다 열심히 해내는 것뿐이에요. - P193
그러니까, 길을 가다가 마차에 루시를 싣고 오는 사람들을 만났다고 했잖아,
아닌가, 해리?
가장 배짱 있는 사람도 그 정도 질문에서 그만두고 말았다. - P225
이곳을 영영 떠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겪었다. ‘고향‘이 무엇이겠나, 결국 실망을 겪고 참아내는 법을 배우는 곳 아니겠나? 게이하트 가족이 살던 집을 떠나는 길, 그는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잠시 보도에 멈춰 서서 지금껏 수천 번은 족히 그랬던 것처럼 세 개의 가벼운 발자국을 바라보았다.
달아나려는 발자국을.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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