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미국의 아주 작은 도시에서 잠시 살 기회가 있었었는데, 그곳은 집집마다 지하실이 있고, 그 지하실에는 여러가지 잡동사니와 세탁기/건조기를 두고 사용한다. 그래서 저녁 산책을 하다보면, 한국에서 밥냄새를 맡듯 열어둔 지하실 창문 위로, 혹은 후드를 통과해 퍼지는 여기 저기서 빨래 돌리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내가 기억하는 미국의 냄새는 대표적인 세재 냄새, 대표적인 섬유 유연제 냄새다. 한국에서 한 때 유해하다는 소동이 있던 다*니 냄새이기도 하다. 이 냄새가 문제가 되면서 우연히 인터넷에서, 우리나라가 개도국이었던 시절 한 때에는 부자집 애들한테 나는 냄새였다는 얘기를 읽을 수 있었다. 내 기억에도 어릴 때는 훨씬 더 코가 예민했고, 이런 저런 냄새들을 잘 맡았다. 하지만 그 때에 맡은 갖가지 냄새들은 삶의 계급을 분리하는 것들이라기 보다는 그저 다양한 이런 저런 삶의 냄새였다고 할 수 있다. 


어릴 때, 학교에 들어가기도 아주 한참 전의 어릴 때 냄새에 대한 기억이 하나 있다. 학교 선생님이었던 엄마를 따라 버스를 타고 아주 한참동안 어떤 시골에 있는 어떤 집에 갔는데, 집에서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흔히 시골에서 맡을 수 있는 외양간 냄새로 아직도 기억난다. 하지만 나는 처음 맡아보는 냄새였고, 그런 말을 하는 게 실례라는 사실을 몰랐을테고, 그래서 엄마에게 냄새난다고 말했는데, 그 때 엄마는 무섭게 눈을 호라리며 절대 그런 말 주인 앞에서 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 때의 기억이 엄마가 무섭게 화를 내서였는지 냄새가 강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냄새라는 게 어떤 사회적 혹은 물질적 위치를 살그머니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채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비슷한 기억이 남편에게도 있었다. 어린 시절을 잘 기억 못하는 그는, 초딩 1학년 때 짝꿍 여자애에게서 고등어 냄새가 나서 선생님에게 짝을 바꿔달라고 했다가 호되게 혼나고, 선생에게도 내내 미움을 받았다고 한다(내가 보기엔 그래도 쌌지). 가난의 냄새와 부자의 냄새로 무 자르듯 딱 잘라서 구분할 수는 없지만, 냄새들은 삶의 패턴을 반영한다. 왜냐하면 



" 코는 아주 예민해서 공기 중에 떠도는 냄새들을 금방 알아차리지.

300억 개의 공기 분자 속에 냄새 분자가 한 개만 있어도 냄새를 맡을 수 있어."






인도 파키스탄 계열의 인종이 많은 런던에 있을 때 일인데, 누가 왜 그런 말을 했고, 어떤 경위로 그런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카레 냄새가 난다고 했다. 어쩌면 TV 드라마에서였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들은 늘 카레 냄새를 달고 다닌다고 했다. 어딜가든 어떻게 입든, 무엇을 하든, 항상 카레 냄새가 따라다닌다는 거였다. 나는 움찔했다. 내게서 김치 냄새가 나지는 않을까. 사실 김치 담그기 힘들어서 잘 못먹기는 했지만 식생활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몸에서 다른 냄새가 날 거고, 그들이 느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미치기도 했다. 


단편 소설들을 읽고 토론하는 영어 클래스를 담당하던 교수가 한 학기 동안 육아 휴직을 내는 바람에 캐나다인 여성이 대신 한 학기를 맡았었는데, 이 사람은 영어를 가르치러 온 건지, 아니면 혼자 있기 심심하고 수다 떨 사람도 없어서 그냥 수다 떨러 온 건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자기 얘기만 하다 가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이 했던 냄새에 대한 얘기 역시 한참동안 기억을 떠나지 않았다. 자기 옆사람(역시 외국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 로 시작해서. 오 누구나 다 자기 특유의 냄새가 있지 않나? 하더니.. 집집마다 특유의 냄새가 있다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낯선 곳에 들어가면 늘 특유의 냄새가 나고, 특히 집집마다 들어갈 때 특유한 냄새들이 있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나 할까. 그 선생 왈, 자기 집에서 나는 그 특유의 냄새를 사람들이 다 몸에다 묻혀서 나오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서는 그 집안의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그 날 집에 들어가서 문을 여니 과연 집에서 우리집 냄새가 났다. 유쾌하지도 불쾌하지도 않지만, 우리집 냄새다. 저 냄새가 나에게서도 나겠다는 거지? 내 남편에게서도, 내 자식에게서도? 그것은 오래된 집 가구들과 옷들과, 빨래 세제의 향들과 요리할 때 날아다니다가 어딘가 구석에 붙어 숨어 있는 각종 분자들과 몸에서 나온 여러가지 분자들의 유니크한 배합일 터다. 내가 그녀에게 불쾌했던 점은, 그가 서양백인으로서 한국에서 한국인과 결혼하여 살면서 느꼈을 그 이질적인 냄새들이다. 그녀가 시작한 옆자리 여성의 냄새는 물론 서양 백인의 냄새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토록 냄새에 예민한 그녀가 한국서 가장 많이 부딪혔을 냄새들은 단연코 한국인과 한국 공간에서 나는 냄새일 것이다. 그때 느꼈을지도 모를 어떤 감정, 혹은 어떤 감각. 이것이 나는 불쾌하다. 


그래서 나는 송강호가 마지막에 한 그 순간적인 행동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만일 어떤 관람객이 자신이 반지하에 살지 않아서 지하철에서 나는 냄새가 나지 않을 거라고 안심했다면, 그는 반지하에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이 냄새나지 않는다고 믿는 그 1%의 최상위 계급일 듯하다. 우리 모두는 고유의 냄새를 가진다. 그것을 어렴풋한 다양성으로 이해했던 나는, 엄마에게 된통 혼나고 냄새에 대한 감각을 함부로 표현하면 안된다는 커다란 교훈을 배웠지만, 여전히 나는 그 다양성을 믿고 싶다. 외국에 있던 그 1년동안, 한 때 개도국 시절 미국의 냄새, 부자의 냄새라 알려진 그 다*니 향에 진저리를 치며, 향 없는 세제를 찾아서 코스코까지 다녔던 나는 그 인위적 부의 위장의 냄새 역시 마찬가지로 싫다. 


기침이 끊이지를 않아 알러지 검사를 했더니, 꽃가루와 과일 등 아주 여러가지 항원들에 반응하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코 집먼지 진드기가 1위였다. 나는 조금씩 집안을 구석구석 청소하기 시작했다. 침구를 홀라당 벗겨 90도 물에 빨고 쨍쨍한 햇볕에 말리고, 솜은 햇볕에 말렸다가, 이불청소기로 빨아들이고 또 빨아들이고, 말려 빨은 껍데기에 남아 붙어있을지 모를 진드기 사체를 위해 다시 청소기로 빨아들이고..거실의 보이지 않는 구석의 먼지들도 가구와 일상용품들을 드러내며 청소했다. 먼지는 한도 끝도 없이 나온다. 저 먼지가 품고 있었을 냄새들...아직도 벽이며 천장이며 붙어있을 집안의 냄새들...아무리 빡빡 닦고 빨고 씻었다 한들, 단 한 개의 분자가 머리카락, 옷자락 어딘가에 붙어있다가 후루룩 떨어져 상대방의 코에 닿는 순간, 그의 어두운 일상의 배경은 까발려진다. 


미국의 냄새, 아시아의 냄새. 그런데 ... 그게 어때서? 알러지만 아니면, 불쾌하지만 않으면 괜찮지 않아?


물론 송강호의 가족에겐 괜찮지 않았다. 그 냄새가 가난의 냄새, 지하실의 냄새, 홍수가 나면 가장 먼저 오수가 가정을 덮치는 종류의 씻을 수 없는 가난의 냄새라는 걸 모두가 알고 맡을 수 있을 때, 그 냄새를 아무리 씻어도 절대로 절대로 지우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그 냄새는 우리 사회의 냄새는 괜찮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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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신간에 카를로 로벨리의 신간이 떠서, 찾아보니 오래전에 읽었던 <모든 순간의 물리학>의 저자가 쓴 책이다. 작년에는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가 나와서, 슬슬 읽어볼까 생각중이었는데 빛의 속도로 또 새책이 나오는구나.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새 책의 제목은 반대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다. 세 개의 책 제목이 물리학 책 제목 치고는 시적이어서, 원제를 찾아보니 까막눈이다. 영문 제목이 원제에 충실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책 표지를 보고 영문 제목과 대충 대조를 해보면 <모든 순간의 물리학>은  Seven Brief Lessons on Physics 이고, <보이는 것은 실제가 아니다>와 <첫번째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는 각각 The reality is not what it seems The First Scientist: Anaximander and His Legacy 으로 한국제목 모두 원제에 충실해 보인다. 새 책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The order of time으로 모두 영문 오디오북 까지 검색된다. (Audible을 구독하고 싶지만, 듣는게 더뎌 별 메리트가 없을 듯). 영문 오디오북의 알라딘 판매 가격은 3만원대로 아마존 오더블 서비스를 1달에 15불 정도에 이용하면서 세 권을 들을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비싸지만, 소장한다는 의미가 있을 듯하다. 이북을 이용하면서 기계음이라도 읽어주는 기능에 매료되어 영어원작의 번역본을 읽을 때 유튜브 찾아서 가끔 같이 듣곤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시간을 내서 정리를 해봐야겠다. 


(아래 <모든 순간의 물리학> 리뷰는 재업임에도, 서재 인기글에 떠서, 무척 찔리는 마음에,  오디오북에 대한 오전 중 경험을 토대로 내용을 약간 추가한다.)  영문판 오디오북을 구매하면 새 책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데이비드 컴버배치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오더블에서는 20불 가까이 되지만 구글 플레이에서는 1만4천원 선으로 나름 합리적 가격인 것 같다. 미리듣기 해봤는데, 데이비드 컴버배치의 절제있고 세련된 오만하고 기품있는 영국식 발음을 저음으로 깔고 시를 읽듯 나직하게 하지만 또박또박 읽어준다. 이 분의 책 자체가 물리학임에도 문장이 시적이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아 정말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다. 한글 책 읽으면서 영어 오디오북을 들으면 두 언어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모호성이 조금은 해소되는 느낌이고, 영어 공부도 된다.



아무튼 카를로 로베르의 책이 처음 국내에 소개되었을 때 좀 띄어주는 분위기여서 이 책을 읽기는 했는데 짧았던 것만 기억나고, 도통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출간 시기에 맞춰 내 리뷰를 찾아보니 2016년 초에 써 놓은 게 있다. 리뷰를 읽으면 대략 내용과 그 때 들었던 생각들이 기억이 나는 편인데... 별로 그렇지 않고 매우 새롭다. 새롭고 신기한 기억력이여. 어쨌든 대략 어떤 식으로 글을 쓰는 저자인지는 다시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재업한다. 



(2016년 모든 순간의 물리학 리뷰 재업)

찰스 다윈이 종이 진화한다는 엄청난 아이디어를 최초로 적었을 때, '내가 생각하기에는...'으로 서문을 시작했다. 마이클 패러데이가 전기장이라는 혁명적 아이디어를 소개할 때에도 주저하는 말투를 썼다. 천재 아인슈타인이 광자를 증명했을 때도 '내가 보기에는' 으로 말문을 열었다.

 

"내가 보기에는 빛 에너지가 공간 속에 비연속적으로 분포한다고 가정할 경우, 형광물질이나 음극선 생산, 상자에서 나오는 전자기 방사선을 비롯해 빛의 방출 및 변화가 관련된 유사 현상들을 함께 관찰해야 이해하기가 더 용이할 것 같다. 여기서 나는 빛 에너지가 공간 내에 연속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 속의 특정한 지점들에 위치하고 이동은 하지만 서로 분리되지 않으며 각각 하나의 개체로서 생산되고 흡수되는 일정한 수의 '에너지 양자'로 이루어진다는 가설을 염두에 두었다. (p31, 재인용)"

 

'이 간단명료한 몇 줄의 설명은 양자이론의 진정한 탄생의 서막을 알리는 것(p31)' 이다. 1900년 막스 플랑크가 처음 상상하고 측정했던 양자 역학의 핵심은 전기장의 에너지가 양자(quantum)과 같은 덩어리 형태로 분포되어 있다는 것이었고, 빛이 무리를 이루어 입자들이 모여 만들어진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 아인슈타인이었다. 1910년과 20년대를 지나면서 닐스 보어는 양자도약(quantum leap) 이론을 알아내어 발전시켰고, 하이젠베르크는 모든 물리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양자역학 기본 방정식을 쓰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의 손을 떠난 양자 역학은 최초의 이론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 있었다.  이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을 설득하지 못했다. 간담회와 서신, 언론 기사 등을 통한 수년간의 대화 끝에  아인슈타인은 이 이론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엄청난 기여를 했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몇 가지는 더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고, 그 상태로 한 세기가 지나도록 같은 지점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그렇게 이론이 확신이 되지 못하고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도 양자역학 방정식은 일상에서 매우 유용하게 널리 사용되어 왔다. 이 이론의 핵심은 현실은 상호작용으로서만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오히려 이론에 대한 의문은 계속해서 증폭되고 있다. 현실의 본질에 깊이 침투한 이론인지, 혹은 우연히 맞아 떨어진 이론인지, 아직 완성하지 못한 퍼즐의 한조각인지, 혹은 우리가 아직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심오한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신호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것이 물리학계 지식의 중심에 놓여있는 역설적 상황이다. 20세기에 남겨진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서로 모순된다. 그럼에도 두 학문은 각 영역에서 동시에 수많은 학문의 바탕이 되어 왔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우주학과 천체물리학, 중력파와 블랙홀 연구를, 양자역학은 원자물리학과 핵물리학, 기초입자물리학, 응집물질물리학을 비롯한 수많은 학문의 바탕이 되었다. 한쪽에서는 모든 것이 연속적인 곡선 공간에서 설명되고, 다른쪽에서는 에너지 양자들이 불연속적으로 점프하는 평평한 공간에서 설명된다. 문제는 모순되는 이 두 이론이 모두 현실에서 놀라울 정도로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두 이론의 모순을 해결해 보려는 연구 분야를 양자중력이라고 하는데, 이 학문의 목적은 세상에 대한 일관된 관점의 이론을 찾는 것이다. 이렇게, 모순된 두 개의 이론을 통합한 경우는 이 전에도 많았다. 뉴턴은 갈릴레오의 포물선과 케플러의 타원을 조합해 만유인력을 찾아냈고, 맥스웰은 전기이론과 자기 이론을 조합해 전자기 방정식을 찾았고, 아인슈타인은 전자기와 역학 사이의 심각한 모순을 해결하려다가 상대성 이론을 발견했다. 이탈리아의 과학자이며 이 책의 저자인 카를로 로벨라가 양자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결합하여 블랙홀의 본질을 새롭게 규명한 이론이 루프양자중력이다. 


루프양자중력이론의 핵심은 공간은 연속적이지 않으며 무한하게 나누어지지도 않지만 아주 미세한 크기의 공간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공간 양자들은 그 자체가 공간이기 때문에 공간 속에 있지 않으며 공간은 각각의 양자들을 통합하여 만들어진다. 루프 방정식은 빅뱅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주가 극도로 압축된 상황에 양자 이론을 적용하면 대폭발이 일어나며, 때문에 이 세상은 현재 이전의 우주에서 만들어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거의 우주가 그 자체의 무게 때문에 압축돼 아주 작은 공간 속에 짓눌리다가 결국 재도약을 한 후 다시 확장하기 시작해, 현재 우리 주위에서 관찰되는 계숙 확장하는 우주가 된 것이라는 것인데, 이 재도약의 순간 우주가 호두껍질만한 공간 속에 압축되어 있을 때 공간과 시간이 모두 사라지고 세상이 수많은 가능성의 구름 속에 녹아 있는 양자중력의 왕국이 펼쳐지며, 양자 중력 방정식들이 설득력을 얻는다. 즉 현재의 우주는 그보다 한 단계 전의 도약에서, 공간도 없고 시간도 없는 중간단계를 통과하면서 탄생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설명한다.


열은 언제나 뜨거운 것에서 차가운 것으로 이동한다. 그러므로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열에서 발생한다. 볼츠만은 그 이유를 확률적으로 설명하는데, 뜨거운 물질의 원자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다가 차가운 원자에 부딪히면서 약간의 에너지를 전달할 가능성이 많고, 반대로 차가운 원자가 뜨거운 원자에게 에너지를 남겨줄 가능성은 적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볼츠만은 이 가능성을 열역학의 배경을 설명하려 했으나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1906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시간적 현상은 세상의 미세한 상호작용들이 하나의 체계 속에서 무수한 변수들의 평균을 통해서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공간이 하나 하나 떨어져있고,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며 사물이 어떤 공간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것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과학자들도 어려워하는 것들을 독자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 복잡한 물리학 법칙 속에 있는 핵심 아이디어를 일반 독자들에게 해석하고 설명하는 방식은 일반 독자들의 평범한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대략 무슨 말인지에 알 것도 같다. 인간의 지식이 성장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존재와 우주의 극히 일부분을 알게 되었지만, 이러한 우주는 우리 사고의 공간 속에서만 존재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아마도 새로운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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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 / 문학동네 / 1918년 7월


이안 매큐언 소설을 몇 권 읽은 독자로서,  그의 소설에 대한 인상은 대체적으로, 심각한 역사적 혹은 사회적 이슈를 다루면서도 블랙 유머가 지적으로 세련되게 잘 배합한다는 것이다. 태아의 입장에서 햄릿을 재해석한 <넛셀>이 어두운 인간의 이면을 매우 영국스러운 유머로 풍자했다면, <솔라>는 작품은 조금은 더 소리내서 웃을 수 있는 코믹스러운 요소가 구석구석 배어있다.


피부가 노출되면 바로 얼어버리는 북극의 살인적 한파 속에서 스노우 모빌로 신속해 이동해야 하는 상황의 한 복판에서도 신체는 그 환경과는 무관하게 한결같이 자신의 순환 사이클을 멈추지 못해서 생기는 비극이 피식피식 웃음을 자아낸다, 그 잠시의 빙벽 배설 행위로 인해 저온에 노출된 신체의 중요한 일부가 스노우 모빌에 돌아와 달릴 때, 똑 떨어져 겹겹으로 입은 바지 밑으로 흘러내리고 있음을 마비된 감각으로 느끼는 장면이 그 중 압권이다. 


작품이 주는 웃김이 순수한 웃음이 아닌 씁쓸한 웃음을 주는 이유는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상황에 있다. 지구를 구한다면서 자기 집 관리나 자기 자신 조차 건사하지 못해, 사랑하지도 않고 결혼 생각도 없는 여자 집으로 향하는 남자.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환경보호자들이 당연히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이나 단체에서 지원하는 행사인 북극의 환경 파괴 현장 체험에 가서 목격하는 탈의실의 카오스. 신체적 약점(뚱보에 늙고, 키작고 등등)과는 반대로 지속적으로 꼬이는 온갖 타입의 여자들.


다섯번의 이혼과 그로 인한 노벨상에 걸맞지 않은 빈털털이 신세의 이 남자에게 여자가 꼬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의 화자가 굳이 독자에게 드러내지 않은 숨은 매력이 있을 수는 있겠다. 재치있는 말주변이라든가 혹은 (겉으로 보이는) 세심한 심적 배려라든가. 가장 설득력있는 추측은 끊임없이 여성을 쫓고 평가하고 작업거는 평소 한결같은 태도에 20년 전에 성취한 노벨상의 권위가 합쳐진 결과가 아닐까 싶다. 


외모지상주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권위가 상쇄시키는 이성적 인간적 불호감은 철통같다. 노벨상은 말할 것도 없고, 돈과 권력, 스타적 유명세 같은 것들 말이다. 사실 이안 매큐언이 워낙 유명해서 노벨상 수상자인가 했더니 부커상을 몇 번 받았지만, 노벨상은 아닌 듯하다(어쩐지 읽는 재미가 있다 했더니ㅋ).  하지만, <솔라>에 등장하는 마이클 비어드는 노벨상 수상자이고, 젊은 시절 넝쿨째 굴러들어온 이 노벨상이라는 세계적 권위의 수상이력은 그의 나머지 삶의 대부분의 부분을 떠받치고 부양하는 토양이 된다. 


20년동안 아무 연구도 진척된 것 없이, 이런 저런 위원회의 장과 같은 한직을 쫓아다니고 대중강연과 연설로 먹고 사는 동안에도 결코 사그라들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일차원적 탐욕이다. 돈, 여자, 술, 음식, 권력. 노벨상 수상자가, 자신의 외도로 인해 이미 관계가 끝난 네번째 부인의 외도를 질투해, 그를 살인자로 조작하고, (자신 때문에) 죽은 연구원이 남긴 연구 내용을 가로채, 지구를 구한다는 명분과 유명세, 돈을 탐닉하는 모습은 악한자의 전형이지만, 이상하게도 책을 읽다보면, 그런 그가 그렇게 악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만연된 사회의 부조리에 익숙해지면, 그런 일은 특히 큰 권위를 등에 업고 사는 사람들이 세상을 (더럽게) 살아가는 방식은 익숙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분명 윤리적으로 아주 엄청나게 큰 잘못을 하고 있는데도, 마이클 비어드에게는 지구를 지킨다는 명분이 있다. 자신이 훔친 아이디어를 제안한 연구원이 살아있을 때는 포스트닥인 위치에서는 구현 가능성이 없는 그 아이디어를,  마이클 비어드는 노벨상의 이름으로  구현하고자 설득하고 애쓰는 모습이 악의 이면을  드러내고, 외면했던 그 태양광 합성 에너지를 구현하기 위해 자금을 모으고 연설을 하던 와중에 남성우월주의로 오해받아 분노한 대중에게 조소와 모멸을 받는 장면은 악의 경계를 더욱 흐리게 한다.


그의 악은 마블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절대적 악이 아니다.  빙산의 일각처럼, 사회의 저변에 만연했지만 전체가 한꺼번에 모두 드러나기 전에는 그 깊이와 밀도를 알 길이 없는, 그저 원래 사회라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는 게 그렇다는 듯 조금 못마땅하게 인정하고 모두들 조금씩 그 사회의 작동 원리에 동조하는 어떤 거대한 힘이라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탐욕을 방해한 타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그런 대가를 치를만한 인간임을 꾸준히 스스로에게 설득하는 모습, 죽은 사람의 아이디어를 훔쳐 대규모 사업을 벌리고 다니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어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노력에 밥숟가락 하나 더 얹으려는 사기꾼 집단 취급하는 심리. 이렇게 그가 악을 행하는 상대들은 마이클 비어드와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속물이고 탐욕스럽게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나누자고 하는 이기적인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악한 인간이 또다른 악한 인간들을 볼 때의 시선. 그것 때문에, 마이클 비어드의 행위가, 결코 공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 악의 행위로 읽히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영화 <어톤먼트> 덕분에 더욱 널리 알려진 작가지만, 영화적 비주얼이 주는 강렬한 느낌을 바꾸고 싶지 않아, 가장 재미있다는 대표작 <속죄>를 책으로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책표지가 바래가고 있는 중.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던 책을 고르라고 한다면 <칠드런 액트>를 꼽고 싶다. <검은 개>는 1992년 작인 것 같은데, 첫번역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번역본이 나왔다. 두 마리 검은 개를 서로 다르게 의미 부여하고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두 사람의 삶이 전쟁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려지는 듯하다.


검은 개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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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9-05-28 15: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칠드런 액트> 재미나게 읽었더랬습니다. 이언 매큐언은, 책이 나오면 어쨌든 사두게 되는 작가 중의 하나인 듯.

CREBBP 2019-05-29 07:59   좋아요 0 | URL
현존 영국 작가 중에서는 줄리안 반스와 이언 매큐언을 좋게 읽은 것 같은데, 이 분이 좀 더 웃긴 거 같아요
 

르귄의 초기 단편집 [바람의 열두 방향]은 굉장히 오래된 책이지만 시공사에서 재출간되면서, 표지가 사람 마음을 홀랑 앗아간다. 2004버전과 비교하면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영문판 표지도 오래돼서 별로 읽고 싶지 않게 만드는데, 이 책 실물로 보면 더욱 예쁘다. 단편집으로 60년대부터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약 10여년 동안 출간된 단편을 작가 스스로 선택한 선집이다. 각 단편마다 해당 작품에 대한 작가의 말이 첨부되어 있어 무엇보다도 특별한 느낌을 준다. 특히 젊었을 때 쓴 초창기 단편집이라 작은 이야기 속에 담긴 거대한 메시지와 대담한 이야기 구성이 매력적이다. 


사실 르귄의 작품이 그렇게 술술 잘 읽히는 편이 아니다. 이 소설들에 비하면 몇달 전 나온 에세이 집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는 심심하리만큼 평이한 문장에 속한다. 첫 작품 <샘레이의 목걸이>를 읽었을 때 가슴에 뭔가 쿵 하는 게 느껴졌는데, 나중에 이 이야기를 토대로 헤인 이라는 새로운 세계관이 탄생할 거였다는 걸 이 소설을 쓸 때 작가가 알았을까 궁금하다. 그래서, 이 단편이 남긴 아쉽고 마음아픈 여운이 다소 풀리기를 기대하며 헤인 시리즈 첫 편인 <로캐넌의 세계>를 읽었는데, 결론은 더욱 아쉬웠다. 얘기를 만들자면, 샘레이가 목걸이를 찾아 돌아온 그 충격적인 순간부터 얼마든지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을 텐데, <로캐넌의 세계>에서 샘레이는 이미 그 목걸이를 자신의 시누이인지, 딸인지에게 맡긴 채 어디론가 사라진 후였다. 


혼란스럽고 복잡하며 마음을 온통 흐트러놓고, 자꾸 그 작은 단편 속의 이야기 속으로 향하고 집착하게 만드는 <겨울의 왕>을 읽고는 책을 잠시 덮고 여운을 즐기기로 했다. 르 귄의 작품을 읽으면 판타지 SF라는 쟝르에 가두기엔 너무 아쉬운 다채로운 색깔의 문학적 세계를 발견한다. 단편들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다채롭고 역동적인 서사는 아름답고 몽환적인 산문을 통해 전달되고, 섬세한 배경 묘사는 독자를 책과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인다. 


아주 어릴 때부터 글을 썼지만, 매번 출판사에서 거절당했고, 그 중 첫번째로 원고료를 지급받은 소설이라는 설명도 있고, 소설의 결말에 등장한 인물이 어스시의 마법사 시리즈의 주요 인물이 되기도 했다는 각 단편의 앞에 들어있는 여러 설명은 더없이 소중하다. 특히 <겨울의 왕>에 대한 르 귄의 설명이 특별하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을 지칭할 때 남자와 여자를 he와 she로 구분해야 하는 영어권 문학의 애로 사항을 실감하게 된다. 르귄님 왈, <겨울의 왕>의 초기 집필 당시 양성인의 대명사를 남성으로 취급하여 he로 썼는데, 개정판을 내면서 she로 바꾸었다고. 그러고 보면 르귄의 영향력은 굉장하다. 앤 레키의 사소한 정의 시리즈에서도 비슷한 설정이 나오는데, 모든 인물들이 she 로 지칭된다. 시리즈의 후반에서 더욱 중요한 사실이 드러나겠지만, 르귄이 집필 당시 남녀구분이라는 단단하게 굳어진 세상의 틀을 깨고 구분을 모호하게 한 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직 내 나이의 사람이 봤을 때 겨우 아이로 느껴지는 데뷰 초창기 나이의 르귄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도 그렇고, 당시 SF 문단의 생태계도 그렇고, 당연히 남성위주의 세계관에 익숙해져있었을 것이다. 또한 서구인의 언어에서 남과 여를 극도로 구분하는 문화 자체가 그와 그녀를 동시에 나타내는 자연스러운 인칭대명사를 찾을 수 없는 언어 문화적 빈곤함(?)이 양성인을 지칭할 때 He를 사용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더욱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은 이 양성인 주인공이 왕이라는 사실인데, 왕이라는 최고 권력자의


명칭 역시 나뉘어져 있고, 최고 권력자는 남성적 명칭이 더 어울렸을 테니 왕에는 그녀보다는 그가 어울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양성인의 체계가 뭔가 복잡해서 왕은 아이를 낳고, 왕의 행동 역시 어떤 섬세함을 연상시킨다. 어쨌든 명칭의 문제는 페미니즘과도 떼어놓을 수 없는 것 같다.  만일 내가 이 소설의 초기 버전을 읽으면서 He와 매치되는 번역인 그 혹은 그남자로 아르가벤을 접했다면 이 소설에 대해 아주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였을 것 같다. 


말했다시피 소설에 등장하는 행성에 사는 게센인들은 양성인이고, 이들은 <어둠의 왼손>과 세계관을 공유한다. 이 작품은 눈쌓인 왕국의 동화같은 풍경과, 아인스타인의 상대성이론과 광속 여행에서 발생하는 시간차, 통치와 반역, 출생의 비밀 같은 서로 잘 매치되지 않을 것 같은 키워드들로 설명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에게 납치되어 세뇌된 젊은 왕 아르가벤은 자신이 왕국을 멸망케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음을 알고, 아직 아이인 자기 자식 암렌에게 선양하고 대신에게 섭정을 맡긴 후, 자신은 올룰이라고 불리는 24광년 떨어진 행성으로 간다. 가는동안 우주선 안에서는 겨우 몇 시간의 시간만 흐를 뿐이지만, 각각의 행성에서는 24년이 흐른다. 아르가벤은 올룰에 12년간 거주하면서 자신의 아이가 왕국을 슬기롭게 잘 통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녀가 다시 겨울 행성으로 돌아갔을 때 자식은 늙고 폭군이 되어 왕국은 멸망의 위기에 서 있지만 자신은 여전히 패기넘치고 젊은, 왕국을 구할 유일한 인물이다. 사람들은 아르가벤을 알아보고 다시 반역을 꾀하여 아르가벤을 옹립하고자 한다. 늙은 왕이자 자신의 딸(아들)의 목을 베는 젊은 왕. 얼마나 아름답고 비극적인가. 


이렇게 쓰니 스토리 구조가 그리 복잡하지 않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풍성한 은유와 아름다운 시적 판타지 사이를 넘실거린다. 소설의 구조는 몇몇 개의 스냅 사진을 설명하는 식으로 띄엄띄엄 시간을 점프하고, 그 빈 시간의 공백들은 더욱 많은 상상과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젊은 엄마(아빠)와 늙은 딸(아들)이라는 반전된 구조. 아르가벤->암렌->아르가벤->암렌으로 순환되는 통치자의 이름이 암시하는 영원한 부모-자식 간의 반역과 선양 구조는 더욱 깊은 사색과 추리 속으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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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의 작품집이 나온다는 소식을 몇달 전에 접하고 설레며 기다려왔는데, 드디어 예약 판매에 들어갔다. 본토에서도 5월 7일 출간된 따끈따끈한 작품집인데, 테드 창의 국내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속도의 빠른 번역이다. 번역은 이전 작품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번역한 김상훈이며, 출판사 역시 엘리로 동일하다. 작품집이 최근 십여년간 발표된 작품들을 엮은 것이어서 , 빠르게 번역출간될 수 있지 않았나 시파.  미발표작은 두 개에 불과하고, 그 중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같은 역자가 북스피어의 에스프레소 노벨라스 시리즈로 이미 출간되어 있다. 어쨌든, 미국의 테드 창 팬들은 이미 발표된 작품들을 엔솔로지나 발표지를 통해 거의 다 읽었을 테고, 새 작품 두 개를 읽기 위해, 그리고 테드 창의 작품만 모아져 있는 책을 갖기 위해 이 책을 사게 될 터인데, 미국 사이트에서는 목차(작품 목록)을 보기가 어려웠고, 알라딘 홈에도 목차가 빠져있고, 미리보기도 없다. 다행이도 국내 다른 서점에서 작품 목록(목차)가 올라와 있어서 긁어온다. 옮긴이의 말이 511쪽에서 시작되니, 꽤 두꺼운 책인데, 가격은 14000원 대로 합리적이지만, 이미 출간되어 있어서 이 책을 구입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대개 소유하고 있을 가장 긴 150쪽짜리 소프트웨어 객체 주기를 빼면 대략 350쪽 정도니, 그래도 가뭄에 콩 나듯 십여년 간 주기에 한 번씩 출간되는 테드 창의 작품집을 안살 이유가 없다.


1.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 9
2. 숨 / 59
3. 우리가 해야 할 일 / 89
4.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 97
5.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 249
6.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 267
7. 거대한 침묵 / 333
8. 옴팔로스 / 345
9.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 395

창작 노트 / 493
감사의 말 / 509
옮긴이의 말 / 511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The Merchant and the Alchemist's Gate)은 시간 여행에 관한 이야기이다. 바그다드의 고대 도시에서 한 직물상인이 사업파트너에게 줄 선물을 찾다가 우연히 시장에서 새로운 가게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매우 흥미로운 여러 물건들을 만들어 파는 가게 주인은 그를 워크샵으로 데려가 연금술을 사용하여 만든 검은 돌 아치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미래로로 통하는 게이트이다. 상인이 흥미를 보이고, 가게 주인은 그에게 미래의 자신들과 만나고 대화를 나눈 다른 사람들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상인은 카이로에  과거로 통하는 또다른 게이트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20년 전에 저지른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위키 영문판 참조함).  2007년에  subterranean에서 출간되었고, 같은 해에 Fantasy & Science 9월판에 실렸다. 구글링하면 전체 텍스트가 PDF로 링크되어 있는 사이트가 맨 앞에 뜨는데, 중국의 한 유명 대학 사이트여서, 합법판적지는 잘 모르겠다. 


표제작인 숨(Exhalation)은 2008년 앤솔로지인 Eclipse 2에 실렸고,  단편 부분 로커스와 휴고상을 수상했다.  이 단편은 저자의 허락 하에, 전체 텍스트가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고, nightshadebooks.com 에서 찾으면 된다. 위키 영문판에도 링크가 있다. 짧은데도, 위키에 나온 플롯은 뭔가 길고 복잡해서 뭔소린지 모르겠고, 아마존 리뷰어의 말을 빌리면, 로봇들만 사는 한 대체 우주에 대한 이야기다.  로봇들은 자기들이 대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전혀 알지를 못하는데, 한 로봇이 해부학을 탐구하며 자신과 자신의 종족에 대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아마존 리뷰어 Bradley Bervers 리뷰 참조)


우리가 해야할 일(What's Expected of us)는 흥미롭게도 네이처 지에 실린 짧은 단편인데, (네이처에 단편소설도 실린다는 건 처음 알았음), 이 스토리를 Year's Best SF(2006)에 실은 편집인인 David Hartwell의 말을 빌리자면, 이 소설은 '인간의 성격과 행동의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또다른 소설적 탐험'이라고 한다. 10여 페이지 되는데 한 다섯장 정도 넘기면 다 읽을 것 같고, 워낙 짧아서인지 이 이상의 스토리 소개는 찾을 수 없지만, 기계로 자유의지를 탐구하는 한 미래의 모습을 담은 듯하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The Lifecycle of Software Objects)는 유일하게 내가 읽은 소설로, 삶의 구석구석 침투한 소프트웨어의 주기적 변화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과 이야기가 주는 감성적 울림은 이루 말로 헤아릴 수 없다. 작년인가 몇달 전쯤인가 시간 개념이 좀 없어졌는데, 아무튼 이 중편을 읽고 써서, 알라딘에게서 2만원을 받아 리뷰 쓰는 자신감까지 준 작품이다. 2010년 로커스, 휴고상 수상. 지난번 리뷰에 상세한 내용을 적어놓았으므로 플롯 소개는 생략.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Dacey's Patent Automatic Nanny)는 2011년 The Thackery T. Lambshead - Cabinet of Curiosities 이라는 잡지에 실렸던 짧은 소설로, 찾아보니 이 앤솔러지 자체가 굉장히 흥미롭고, 테드창의 이 소설은 Holy Devices and Infernal Duds: The Broadmore Exhibits 라는 파트에 묶여 있다. 개인적으로 이 앤솔로지에 흥미가 생긴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The Truth of Fact, the Truth of Feeling)은 2013년 subterranean에 발표된 작품으로 2014년 휴고상 중단편 후보에 올랐고, 넷플렉스 SF 드라마 블랙미러의 한 에피소드와 비슷하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블랙 미러 하면 주로 기억 장치가 많은 에피소드에서 주요 테마로 사용되었는데, 그 중 이야기 도중 누구 말이 맞은가를 확인하기 위해 기억을 화면에 재생하여 같이 돌려보는 에피소드가 있다. 물론 재생하는 사람의 시점에서 시각 영상이 펼쳐지고, 대화와 소음까지 모두 그대로 재생된다. 아내가 바람핀 사실을 눈치챈 남편이 아내의 기억을 불러내 이를 확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의 섬뜩한 느낌이 아직 생생하다. 아무튼 그것 말고도 기억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았는데, 이 소설 역시 같은 모티브를 사용하는 것 같다. 블랙미러 보다는 이 소설이 훨씬 먼저 나왔지만, 기억 재생과 관련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으니, 테드 창의 시점에서 읽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거대한 침묵(The Great Silence)는 2015년 e-flux라는 인터넷 저널에 발표된 작품으로 The Best American Short Stories, 2016에 실렸고, 나머지 두 작품은 유일하게 미공개 작품이다. 따지고 보니, 거의 1년에 겨우 단편 하나씩 발표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다른 직업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작품에 공을 들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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