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작에서 코니 윌리스에게 덤벼러 내가 상대해주마 하고 올인하고 있는 듯하다. 쉴 새 없이 코니 윌리스의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방금 출간된 따끈따끈한 《올클리어1, 2》를 끝으로 아작에서 윌리스의 옥스포드 시간여행 시리즈를 드디어 완간했다. 열린책들에서 《개는 말할것도 없고 - 주교의 새 그루터기 실종사건》과 《둠즈데이 북》을 오래 전에 출간했지만, 절판된 상태로 방치되었다가 SF 출판의 구세주 아작출판사가 짜잔 하고 등장하면서 작년과 재작년에 절판된 책들을 재출간하고, 새로 번역하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SF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 코니 윌리스를 《여왕마저도》에 실린 단편들로 처음 접했었는데 처음 읽은 단편은 지구에서 외계인과의 조우를 블랙 코미디적으로 그려낸 《모두가 땅에 앉아 있었는데(All seated on the ground)》였다. 너무 수다스러워 서사를 파악하는데 산만한 문제로 내 타입은 아니라고 영영 멀어질 수도 있었지만 인연을 도와준 건 작년에 출간된 《개는 말할 것도 없고》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가 그 전에 읽은 제롬 K 제롬의 《자전거 탄 세 남자, 개는 말할 것도 없고》와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 과 연결된다. 정말 책은 책을 부른다.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에서, 달에 가고 싶어하는 주인공 킵의 아빠가 늘상 읽고 있는 책이 《자전거 탄 세 남자》 다.  어린 딸이 아빠 나 달에 가고 싶어, 키득거리면서 책장을 책장을 넘기던 아빠는 무심히도 말한다. 가려무나. 킵의 아빠는 이 책을 자나 깨나 읽는다. 읽고 또 읽는다. 과연 어떤 책일까 궁금했다. 《자전거 탄 세 남자》는 빅토리아 시대 세 영국 남자가 템즈강을 거슬러 배를 타고 올라가는 여정을 다룬 슬랩스틱 코미디다. 하지만 당시 우주복=>자전거탄=>개는말할것도 로 이어지던 책의 여정은 개는에서 좌절되었었는데, 열린책들의 절판에 묶여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년 아작에서의 재출간 소식이 얼마나 반가웠던지.  


《개는 말할 것도 없고》는 시간여행이 실현된 어느 미래를 그린다. 그런데 시간여행이 실현된 후, 고대에서 온갖 보물을 가져오면 떼부자가 되겠거니 했던 투자가들이 어떤 물리학 법칙에 의해 물건을 가져오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시간여행은 개밥에 도토리가 된 상황이다. 그래서 시간여행은 대학에서 연구용으로만 사용(?)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어떤 부자가 자기 증증증증조 할머니 일기장에 써있는대로 대성당을 재건하겠다고 나서면서 연구원들을 들볶아 파괴되기 전의 상태를 파악하러 빅토리아 시대와 2차 대전 폭격 직후 등으로 시간여행을 다니며 생기는 일들을 그린 작품이다. 부제는 《신부의 새그루터기실종사건》으로, 이 '신부의 새 그루터기'라는 물건은 재건할 성당에 복제하기 위해 필요한 소품으로 일종의 매거핀 같은 역할을 한다. 코미디와 탐정을 시간여행이라는 판타지와 SF 쟝르 속에 아주 찰지게 빈틈없이 정교하게 버무려놓은 방대한 작품이다. 미세한 단서까지도 놓치지 말고 읽어야 해서, 여러 번 뒤로 돌아갔다가 앞으로 돌아왔다가 하면서 뒤적거려가며 읽어야 했다. 뒤로 돌아가서 읽을 수록 처음 읽을 때 단순 수다로 방치하고 놓친 더 많은 단서들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다. 시간을 넘실넘실 넘나들며 사건의 인과 관계와 미스터리를 파헤친다는 면에서 탐정적 성격이 짙지만, 시간여행물의 핵 로맨스 역시 놓치지 않는다. 사소한 사건과 수다에도 인과관계가 엮여 있고 모든 의문이 거의 해소된다. 유쾌하고 즐겁고 지적이고 방대한 소설이다. 
















알고 보니, 작년부터 아작에서 열심히 출간되는 코니 윌리스의 시간여행 장편들은 모두 이 작품의 시간여행 세계관을 공유한다. 편의상 옥스포드 시간여행 시리즈로 불린다. 《개는 말할 것도 없고》 에서 제롬K의  《자전거 탄 세 남자》 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난 주인공은 제롬 K의 주인공들을 보트들로 가득찬 템즈강에서 조우한다. 깜짝 출연인 셈이다. 코니 윌리스는 이 제롬K의  《자전거 탄 세 남자》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이 작품을 알게 해 준 로버트 A 하인라인에게 이 책의 헌사를 바쳤다. 와이 낫 제롬? 아마도 한참 전 세대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리라. 것도 그렇고 작품 자체가 오마주이고 제목까지 부제를 끌어다 썼는데, 그보다 더한 헌사가 있을까. 

이 책은 코니 윌리스의 빅팬이 되기로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동시에 아작에서는 이 책과 이미 출간된 《둠즈데이 북》과 《화재감시원》, 《블랙아웃》을 포함하여 이번에 새로 나온  《올클리어》를 끝으로 코니 윌리스의 시간여행 시리즈를 완간한 것이다.  한국에서 번역 출간되는 SF 중에서 휴고와 네뷸러 로커스 등의 상을 안받은 작품을 찾는 게 더 어렵기는 하지만 모든 작품은 이 세 개의 작품을 거의 대부분 수상하였고, 일부(내가 알기로 《개는 말할 것도 없고》와 《둠즈데이 북》 )는 세 개를 동시에 받았다. 


















이 중에서  《둠즈데이 북》은 가장 먼 곳으로의 시간 여행이다. 넷플릭스 역사 드라마를 즐겨보다가 앙드레 모루아의 영국사를 읽기 시작했는데, 영국 역사의 한 복판에서도 《둠즈데이 북》이라는 코니 윌리스의 옥스포드 시간 여행 시리즈 책 제목과 같은 제목의 문서를 만날  수 있었다.  모루아의 역사책에 따르면 정복왕 윌리엄은 개사기꾼이다.  《둠즈데이 북》은 윌리엄이 세금을 쥐어짜기 위해 만든 토지대장이었던 거다. 서자여서 애비없는 자식이란 별명을 가졌던 그는 그나마 노르만디의 공작이었던 아버지의 정실에게서 다른 자식이 없었던 덕에 뒤를 잇고 어린 나이에 공작이 된다. 후에 정복왕 윌리엄이라는 별명을 갖고 영국을 노르만왕조의 손아귀에 넣은 그는 넷플릭스에서 방영중인 바이킹스에서 라그나 로스브로크의 동생으로 질투와 배신의 화신으로 등장해 결국 형제와 종족들을 배반하고 노르망디를 차지한 롤로의 후손으로, 영국왕이 될 연결고리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당시 영국 왕은 선출제여서 어느 먼 친척이든 영주들만 잘 구워삶으면 왕이 될 수 있었던 모양으로, 영국 왕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다가 에드워드 왕위의 강력 후계자 헤럴드가 위기에 처했을 때 협박하여 모종의 서약을 맺게 했는데 영국왕이 되겠다는 윌리암의 계획만큼이나 터무니없는 것이었으나 이는 훗날 해럴드가 전임 왕 에드워드의 뒤를 이어 왕으로 선출되었을 때 침략의 구실이 되었다. 자격 미달인이 왕이 왕이 되려니 여기저기서 힘을 모아야 했고 교회를 지어주고 교황청과 결탁하여 교황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이때부터 영국 왕은 로마 교황청의 영행력 아래에 놓이게 된다. 이후 잔인한 학살과 살육을 동반한 토지 개혁으로 대부분의 자유농민은 농노로 전락했고 장원이라는 단위의 영주와 농노들로 구성된 봉건제가 자리를 잡게 된다... 어쨌든 윌리엄의 둠즈데이 북은 세금을 걷기 위해 살림살이 하나하나에서부터 기르는 닭 한마리까지 아주 자질구레한 세부사항까지 치졸하게 재산 내역을 기록한다. 코니 윌리스의 옥스포드 시간여행 시리즈에서 《둠즈데이 북》은 가고자 하는 시간 목적지가 중세로, 책 제목은 주인공이 시간 여행 기록을 윌리암의 토지대장 《둠즈데이 북》의 꼼꼼함에 영감을 받아 이를 사용한 것이다. 

"던워디 교수님. 저는 이 기록을 ‘둠즈데이북’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정복왕 윌리엄 1세가 시행한 조사가 그랬듯이 제 기록도 중세의 생활에 관한 내용을 담게 될 테니까요. 물론 윌리엄 1세가 만든 《둠즈데이북》은 소작인들이 내야 할 조세와 땅에서 나는 금 한 알갱이라도 확실하게 알아 두기 위해 만든 방편이었지만 말이죠."


코니 윌리스의 옥스포드 시간여행 시리즈의 순서를 굿리즈에서 퍼오면 다음과 같다 

Book 0.5 화재감시원  
Book 1   둠즈데이북 
Book 2   개는말할것도 없고 
Book 3   블랙아웃
Book 4   올클리어

나는 쥐뿔도 모르고 <개는 말할 것도 없고> 부터 읽었는데, 저 순서대로 읽으면 훨씬 재미있을 것 같다. 코니 퓔리스 풍의 수다가 코니 윌리스 입문자들에게는 복병이 될 수 있을 수도 있지만, 장편에서 그 모든 수다는 의미없는 헛소리들이 단 한마디도 없고, 시간과 공간이 여러 사건 사고가 벌어지는 복잡한 작품의 서사에 스위스 시계 부품처럼 정교하게 맞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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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9-02-12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까 책을 주문했는데... <개는 말할 것도 없고> 이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빼먹었는데요. 취소하려고 들어가보니 이미 출고완료네요. CREBBP님 글을 보니 빨랑 코티 윌리스 옥스포드 시간여행시리즈를 마무리지어야할 것 같아요. 말하자면 올클리어죠 ㅋㅋ

CREBBP 2019-02-13 10:07   좋아요 0 | URL
이게 한꺼번에 짜잔 나온게 아니라서 꿰어 맞추다 보니, 저도 소장 목록이 엉망이에요. 제일 재밌다는 <개는말할것도없이>는 전자도서관으로 읽어서 사실 살 필요가 없거든요. 읽으면서 꿰어맞추다보니 거의 전 텍스트를 거의 두번씩 읽게 되더라구요. 게다가 전자도서관에서 이 시리즈는 거의 언제든 빌릴 수 잆는 상태라서, 다 읽은 책을 구매하기도 그렇고(안읽은 책 살 것도 많고 많은데), 게다가 화재감시원과 둠주데이북은 9년후면 서재에서 사라지고 블랙아웃과 올클리어만 남게 되겠죠 ㅋㅋㅋㅋ 그냥 보르코시건 시리즈나 파운데이션 혹은 르귄처럼 한꺼번에 짠 하고 구매해놓으면 맘도 편하고 흐뭇하고 그런데 말이죠. 결국 제일 소장하고 싶은 책만 쏙 빼놓고 갖춰놓게 되었어요. 근데 빌려보면 밑줄긋기가 잘 안돼서 불편...

transient-guest 2019-03-09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둠스데이북‘을 먼저 읽고, 그 다음으로 ‘화재감시원‘을, 그리고 ‘개는 말할 것도 없고‘를 읽었습니다. 나머지는 주문한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데 ‘개는...‘에서 언급된 작품을 따로 찾으셨네요. 저도 구해서 읽어볼 생각입니다.

CREBBP 2019-03-11 17:20   좋아요 1 | URL
그게 우연히 하인라인의 책을 먼저 읽고 보트위의 세 남자를 읽고 나서야 그 책이 개는 말할 것도 없고의 서두에 언급되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세 개의 작품을 나란히 보면 유머 코드가 어딘지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 있는 것도 같아요. 물론 개는 말할것도 없이 에서는 개를 오마주했고요. 하지만 원래 제롬의 개가 훨씬 더 웃겨요.
 











레이 브레드버리.  SF 대가 중 한명인데, 유난히 단편을 많이 썼다. 이미 현대문학에서 나온 두꺼운 작품집 하나 있어서 아작에서 두 개의 너무나도 예쁜 커버의 작품집이 나왔을 때, 많이 겹칠거라 짐작하고 뭔가 아쉬워했는데(주로 이북을 삼에도 불구하고 커버가 중요하다) 목차 살펴보니 겹치는 거 하나도 없더라. 단편 작품집을 사고 나면 주로 첫편을 먼저 읽고 그 다음에 표제작을 읽는 편이다. SF와 환상을 서정적인 정서로 묘사하는 작가로 르귄을 따라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브레드버리는 르귄과는 조금 다른 서정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두 개의 소설 모두 딱 표지 이미지만큼 맑고 순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온 여름을 이하루에> 이 작품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nightfall을 연상시킨다. (nightfall은 내가 읽은 최고의 단편으로 꼽을 수 있겠다) nightfall에는 태양이 두 개인가 세개인 행성에서 낮만 존재하고 밤이라는 게 없다. 그래서 그 행성에 사는 사람들은 어둠이 무엇인지 모르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일식 같은 현상으로 밤이 다가오고, 종말론적 사람들을 세상의 끝이라 여기는 둥 태초 처음 겪는 밤을 앞두고 저마다의 이론과 믿음과 과학과 온갖 생각들로 소란스러운 상황을 그렸는데. 두둥 밤이 오는 대신 그들은 새로운 세계를 본다. 처음으로 별을 보는 그들의 태도가 굉장히 인상깊었다.


<온 여름을 이 하루에>는 지구 가까이 있는 금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nightfall에서는 태양이 없는 걸 모르는 행성에 사는 사람들 얘기고, 반대로 금성에서는 태양을 모르는 사람들 애기다.  곧 바로 닥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대하는 인간의 심리를 다룬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nightfall은 정치적이고 논쟁적인 데 비해, 이 소설은 아이들이 주인공이면서도 조금 더 종말론적이고 어두운 배경에 스산하지만 태양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아이의 마음에서 서정적인 슬픔이 느껴진다. 


금성에서는 짙은 구름에 쌓여 태양이 보이지 않고, 7년동안 비가 내려 컴컴한 지하 도시에서 살고 있는데, 쨍 하고 해가 비친 적이 바로 그 7년 전이고 소설의 주인공인 학교의 아이들은 2살때 해가 났었기 때문에 태양이 어떤 것인지 경험이 없다. 그런데 지구에서 5살때 쯤 전학온 아이가 마지막으로 자기가 본 태양을 기억하고, 태양이 뜰 날만은 기다리고 있는데, 지구에서 왔다는 특수성 때문에 애들한테 따당하다가 막상 태양이 떠오르는 그 날, 해가 뜬다는 일로 아이들과 마찰을 일으키고 사건이 터지는 내용이다. 


단편 중에서도 유독 짧은 단편들이 있는데, 이 단편이 그렇다. 매우 짧고, 아쉬운데, 태양을 그리워하는 소녀와, 컴컴한 어둠 속 인공태양광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태양에 대해 각자 상상하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멜랑콜리의 묘약>에서는 몇 개 더 읽었는데, 표제작 보다는 그 다음 작품의 감동이 훨씬 심해서, 다시 다루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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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8-12-19 22:40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18-12-19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REBBP님, 서재의 달인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세요.^^

CREBBP 2018-12-19 22:41   좋아요 1 | URL
오 좋은 소식이군요 감사합니다

카알벨루치 2018-12-24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립님 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
 
















문학동네의 <젊은 작가 수상집>은 신간이 오히려 싸게 나오는 정책 때문에 매년 사서 보게 된다. 올해의 작품집에서는 어찌 하다보니 맨 뒤에 실린 작품을 먼저 읽게 되었다. 박상영읜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다. 중간까지는 그냥 무난무난 큰 스토리도 없고 자기 얘기 길게 하는 그렇고 그런 단편인데, 소재가 퀴어라 나름 덕을 봤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니까 퀴어가 아니었다면 별로 크게 감동적이거나 대단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는데 퀴어라는 소재의 자극성 때문에 특별한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게 아닐까 라는 의심을 했다 중간 정도 읽을 때까지는. 


소설은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 작품은 퀴어라는 소재를 쓰면서도 역설적이게도 퀴어가 소비되는 방식을 비판한다.  그런 역설은 홍상수 영화를 까면서 동시에 홍상수 영화와 퀴어인 점만 다르지 홍상수 영화와 다를 바 없는 이 책의 주인공이 만든 영화에서도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찌질한 남자들의 찌질한 일상과 실패를 다룬다는 점에서 다시 홍상수 영화의 이미지들을 소환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역시 역설적이다. 


퀴어가 특별한 이유는 게이인 사람이 드물기 때문인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소수자의 사랑은 소수이기 때문에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을 차지하고라도, 우연히 감이 와서 그도 나와 같은 부류임을 알고 사랑을 고백하고 싶은데  아 이 사람이 혹시나 양성애자라면 어쩌나, 양성애자에서 더더욱 게이혐오가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어쩌나 이런 두려움은 사랑을 시작하기조차 어렵고 꺼려지게 만든다. 게이는 게이를 알아본다는데, 게이들이 가진 특별한 행동이나 습관 이런 것이 서로를 알아보게 할 수도, 어떤 신호가 그들 사이를 통하게 만들 수도 있다. 예전에 한쪽에만 귀거리를 하고 다니면 서로를 알아본다고 하는 말들도 있었는데 이렇게 양성애자들이 게이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거 자체가 소수자의 인권 때문이 아니며, 호기심과 궁금증, 그리고 흥미와 같은 소비적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애초에 이 소설에 대해 의심했던 것처럼, 그 의심을 실제로 실행하는 경우가 생긴다. 한 마디로 퀴어가 잘 나가니까, 모 아이돌과의 염문설을 일부러 뿌려서 자신이 마치 게이인 것처럼 소문을 내고, 그걸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주인공 화자가 보기에 신파에 혹은 소수자 인권 플래그를 건 구토유발 억지감동에서 한술 더 떠, 절망하고 상처받고 힘겹게 살아가는 나약한 스테레오타입의 허구의 게이들을 양산한다는 데 있다. 자기야말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진짜 게이인데, 자기가 만든 영화는 이게 무슨 홍상수 영화냐, 진짜 게이의 삶을 모르는 일반인이 만든 거라 감동이 없고, 치열함이 없고 깊이가 없댄다. 그러면서 가짜로 진짜 게이가 된 감독이 만든 영화가 눈물을 쥐어 짜기에 그게 잘 만든 영화란다. 술 퍼마시기고 패악질을 하는 데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뒤질 위인이 못되는 주인공과 그의 애인은 왕샤는 니들이 게이를 아냐고 따지는데, 그 가짜 진짜 게이 영화 감독은 자기가 몇달간 게이클럽과 게이들을 따라다니면서 열심히 취재했다고 한다. 


둘은 돈을 모아 각자 자신의 꿈을 이룬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자이툰 부대에서 만나 불꽃같은 사랑을 하지만, 각자의 꿈을 향해 각자의 실패를 완성한 후에 재회한다. 우연한 재회지만, 그들은 자신의 젊음이 막바지에 달한 이 나이에 무엇을 이루었느냐 실패를 이루었음을 선언한다. 술마시고 개판치며 여자 후배를 집에 안보내려고 난리를 치다가 노래방 가서 여자도 안부르고 노래부른다고 차별당했다고 판단하여, 무선 마이크 두 개를 훔쳐 달아났다가, 들키는 등 온갖 찌질한 짓을 하고 다니는 게 그러니까 이 스토리의 메인 흐름이고, 이들 각자의 과거와 과거의 상처, 과거의 작은 영광들, 그리고 과거의 사랑, 그것들이 짬짬이 이야기 중간에 끼어드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두사람의 가장 젊은 시간들을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서사 자체는 많지만, 결국은 우리는 이모양 이꼴인거다 하는 모양새가 딱 홍상수 영화다.


실패란 무엇일까. 누군가 성공했다면, 그 성공을 뒷받침하기 위해 많은 실패가 필요하다. 결국 그토록 수많은 개인의 실패도 어떤 한 사람 혹은 한 사건의 성공을 빛나게 하기 위한 들러리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실패들이 모두 무의미하다면 우리의 삶은 억지 영화처럼 신파와 비약과 오해와 절망으로만 가득찬 무엇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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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SF 걸작선> 원저는 2003년에 출간되었고, 번역은 그 다음해인 2004에 한번 2014에 재출간된 것 같다. 작품과 작가의 선택 배열 편집 이 모든 것은 데이비드 하트웰과 캐서린 크래머 두 SF 작가이자 편집자의 작품이다. 원제가 <Years Best SF 8>으로 되어 있는 걸로 봐서, 매년 출간되는 작품집 중 8회째 작품집이 아닌가 싶은데, 아쉽게도 황금가지에서는 생뚱맞게 이 여덟번째의 책만 단권으로 출간하고 시리즈의 다른 책들은 출간을 포기한 듯하다. 수많은 SF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장르의 특성상 허접 쓰레기가 많은 분야가 이 쟝르라고도 한다. 그래서 매니아가 아닌 독자들에게는 안목이 있는 전문가들이 엄선해서 내는 작품집들이 좋은 작품과 좋은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잘 안팔리니까 더는 안만들어 낸 거겠지만 이런 선집이 조금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날 처럼 과학이 시시각각 변화해가는 시기에 오래된 SF는 (물론 그 때 쓰여졌으니까 그런가부다 하고 대개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지만) 때때로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과학적 상상이라는, 그래서 과학은 빠지고 환상만 남아버리는 시대착오적 텍스트가 될 때가 있다. 오늘의 SF에서 기대하는 것은 그 해 쓰여진, 그러니까 바로 어제까지의 과학적 지식이 상상력과 결합된 최신의 과학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소설 감동이 오래 가는 명작은 새로운 세계가 반영된 것보다는 50~60년대의 오래된 소설을 더 쉽게 접한다. 오랜 기간동안 살아남은 검증된 클래식이라야만 한국말 독자들에게까지 와 닿기 쉽다.


2003년도 당해의 베스트 작품이므로 오늘이라고는 해도, 오늘이 아닌 15년 전의 소설들이므로 아르테미스나 마션 같은 최신 하드 SF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러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선정된 작가들의 면면과 SF의 흐름 같은 것을 대략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다. 


위키에 Year's Best SF로 치면 볼륨의 목록이 나오는데 1996년 1권을 시작으로 해서 2013년 18로 끝난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어떤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2013을 끝으로 폐간되었는지, 아니면 계속되고 있는데 정보가 없는건지, 그런데 2011년부터 3개는 그나마 링크도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된 건지 몰라 찾아보니, 18로 끝인 것 같고, 대신 이름이 비슷한 다른 시리즈가 있었다. Year's Best 까지는 똑같고 애뉴얼인 것도 같은데 SF 대신 Science Fiction 이 붙는다. 아무튼 이걸 찾으면서 부러운 게 뭐냐면, 밑에 리뷰들이 잔뜩 붙어 있는데, 뭐 어디어디 서점서 $0.99주고 사서 읽었다는 거다. 이게 애뉴얼이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지는 잡지 같은 개념이라 저가 상품으로 내놓은 건지, 도정제로 1만원 이하의 책은 손에 쥐어보기도 힘든데 도정제로 그런 걸 기대하기 힘들게 된 현실이 또다시 개탄스럽다. 이렇게 쉽게 싸게 서점에서 주어 들을 수 있으니 걔네들은 응? 아무데서나 책을 읽는 거 아니야. 읽다가 다읽으면 그냥 버리거나 누구 주거나 하는 값싼 종이의 가벼운 책들이지만, 가격이 내린다고 해서 컨텐츠가 가격에 따른 차별을 하지 않는다. 


낸시 크레스  - <특허권 소송> 


여기 실린 단편 중 짧은 단편 하나를 소개한다. <특허권 소송>은 SF라고 할 만한 요소는 유전자를 독감 치료제에 이용했다는 사실 하나 뿐이고, 그냥 아주 평범한, 한국에서는 거의 크리쉐에 가깝도록 매일매일 자행되고 있는 대기업의 횡포에 대한 내용이다. 


크리스피 기술이 퍼져가면 실제로 그것을 체세포의 유전자와 결합하여 산 사람의 유전자가 바뀌는게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전체는 질병 치료에 이용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례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직면한 바로 우리 세대의 일,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개인의 유전자가 어떤 식으로 자본의 힘에 무릎꿇는지의 아주 단순한 예를 보여준다. 


어떤 회사에서 유전자를 이용해서 최근 유행하는 얼바턴 감기 치료제를 헬리텍스를 개발했다는 보도자료로 시작된다. 이 기사를 본 한 미즈는 그 신약에 사용된 유전자가 자기의 유전자이므로 그 유전자가 제공된 경위를 설명하고, 이익 배분을 요구한다. 회사에서 부랴부랴 알아보니 그의 조직 샘플에서 채취한 유전자를 무단으로 이용한 것이 맞다. 하지만 그들은 이익배분을 할 생각이 전혀 없고 오히려 더욱 바짝 약만 올리는 동시에 법의 헛점을 이용해 그를 골탕먹일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면역 샘플을 이용했다는 증거를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독감치료제인 핼리텍스를 조사했어야 했는데, 헬리텍스 소비자 외에는 이 면역체제를 갖고 있지 않으므로 암시장에서 불법으로 획득했다고 주장하여 반대로 그를 감옥에 보내는 내용이다. 이로써 개발사는 개인 유전자 사용에 따른 지분 배분을 하는 대신 자기 몫을 내놓으라고 하는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그 소송에 따른 노이즈 마케팅을 통해 엄청난 이득을 내는데, 이후 미즈가 도둑으로 몰려 6개월형을 선고받은 이후 노이즈 효과가 떨어지자 다른 계략을 세운다는 내용이다. 


작가 낸시 크레스는 네뷸러상 두번 휴고상 한 번 수상하고 기타 후보에는 10번 올랐다고 한다. 이런 게 무슨 도움이 될 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다른 방법으로는 작가를 설명할 방법이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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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먹는 나무
프랜시스 하딩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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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알고 싶으면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역설이 판타지와 추리, 성장 등의 장르가 교묘히 결합된 이 소설이 던지는 주제가 아닐까 싶다. 결국, 그 모든 걸 통과하고 나서 진실이란 살아남는 것이고, 거짓이란 죽어 없어지는 것이다. 거짓말을 먹고 살던 나무는 소설의 끝과 함께 죽어 판타지가 되어 사라지고 소설로 부화한 거짓이 되겠다. 그 나무가 먹고 자랐던 시대 속의 거짓말들은 나무가 토해내던, 정확히 말해서는 나무의 열매가 인간의 몸에 작용해 만들어내는 환상을 통해 말하려 했던 어떤 진실의 토대가 된다.


이 책을 읽을 때, 임마뉘엘 카레르의 <왕국>을 함께 읽었는데, 묘하게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바로 종교 혹은 신화의 탄생 과정이, 진실을 알려준다는 나무를 자라게 하는 게 거짓말이라는 알레고리와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교회를 다닐 때에도 다니지 않을 때에도, 구약을 하나의 신화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억압(‘예수의 부활을 믿습니까? 류의’)과 강요에 저항하면서도 신약의 일부를 역사와 철학적 은유로 이해했다. 신념을 지키는 건 이래 저래 힘든 일이다. 내 경우는 거꾸로된 종교적 신념이라고 하겠다. 어쨌든..


나는 뭔 뜻인지도 잘 모르고(그건 신학자들도 마찬가지인 듯) 카레르의 왕국에서 루카가 그랬듯, 예수의 이런 저런 말씀과 일화들이 좋았지만, 교회(확신에 찬 신자들)가 그것은 은유와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라며, 예수의 부활과 모든 기적을 성경을 근거로 하는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비난의 눈초리를 보내는 듯 했기 때문에, 그리고 나서 그 교회가 목사를 둘러싸고 두 패로 갈려 폭력으로 얼룩진 분열과 갈등의 조짐을 보였기 때문에, 그렇다면 신의 뜻은 당신을 이런 방식으로 믿지는 말라, 적어도 그런 방식으로 열혈 신자들이 방식으로 믿지는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달리 어떤 방법이 있겠는가. 그냥 간단히 생각하자.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이유는 성경을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기억하고 기록하였지만 로마의 기독교 승인 이후 공의회에서 이것은 이단이고 저것은 신성이 아니고 등등을 정했으니, 그 1800년 전에 정해진 그것이 긴 시간 속을 걸어오는 동안 많은 기독교인들의 뼈와 살과 함께 땅 속에 깊게 뿌리 박혔으니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거짓을 먹고 자란 나무가 토해내는 진실과 어찌 다르겠는가


나무가 애초 진실을 토해내는 나무였는지, 마을에 퍼진 거짓말 때문에 쑥쑥 자라났던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어린 소녀가 아버지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살해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결국 아버지의 죽음 뒤에 가려진 더 커다란 진짜 진실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거짓말과 관련해서 주워듣고 터득한 몇 가지 나름의 이론이 있는데, 그것은 이 나무처럼 거짓말은 아주 작은 거짓말로 시작해 스스로 자란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예수의 말씀과도 통한다. 한 톨의 씨앗은 온 들판을 풍성하게 황금빛으로 물들일 수 있다지 않았나. 소녀는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에게 공포를 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거짓말은 사람과 사람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서서히 통과해가면서 괴물처럼 커져간다.


그래서, 범인은 잡히냐고? 범인만 잡힌다면 현대 미스터리 소설의 거의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반전의 묘미가 없지. 이제 왜 라는 질문이 나타난다. 아버지는 왜 살해당했나. 저명한 학자지만 황우석 이상으로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킨 조작 사건으로 더이상 동네 창피해서 발붙일 수가 없어 조그만 섬으로 이사왔는데, 거기 사람들이라고 신문도 안 보고 사나. 귀족처럼 살던 목사 가족은 더욱이 목사가 자살했다는 의심 때문에, 하루 아침에 비오는 날 마차도 없이 진흙길을 걸어야 할 만큼 비참한 처지로 내몰린다. 머리는 좋은데 빅토리아 시대의 차별적 여성의 지위(말해 뭘해) 때문에 자기는 이미 다 아는 과학자들과의 대화에도 모르는 척 바보 표정을 지어야 하는 이 소녀는 과학자로서의 아버지, 목사로서의 아버지가 존경 너머 경외로운 존재였기에, 그의 죽음을 자살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건 옳았지만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맹목적 존경과 믿음마저 옳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살해당했다면 살해당했을 이유가 있었을 거 아닌가. 이 쯤해서 소녀와 독자들은 목사의 연구 업적을 가로챌 목적이라든가, 혹은 거짓말 나무를 빼앗기 위해서라고 상상할 수 있다. 그랬을까.


반대로, 소녀는 허영과 사치, 예쁜 얼굴 말고는 내세울 게 없는 엄마를 증오한다. 아버지가 죽자 마자, 동네 남자들에게 꼬리치는 행동들이 역겹기만 하다. 하지만 이 철없는 아가씨야. 시대를 보자. 아버지의 자살이 확실시 되는 가운데, 그들은 집도 절도 없이 쫓겨나게 생겼다. 그리고 시대는 여성의 그 무엇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키워내야 할 아들도 딸도 있고, 또 알고 보니 죽기 전 아버지는 땡전 한 푼 남겨놓지 않았다.그리고 사회가 여성에게 인정하는 유일한 단 하나의 가치는 그 시대가 마련한 기준에 부합되는 여성성 뿐. 살아남을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미스터리라기에는 곳곳에 헛점이 눈에 띈다. 종종 개연성도 부족하고, 특히 상황의 긴박함에 대한 묘사에서 핍진성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불필요한 부분은 장황하게 설명이 많고 지루하게 구체적으로 아주 자세히 배경과 상황을 묘사하다가도 가장 중요하고 궁금한 부분은 몇 번씩 읽어도 잘 이해되지 않게 얼버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아마도 이 부분은 상세 묘사를 후루룩 읽어서 놓쳤을 수도 있을텐데 그렇다고 다시 읽어야 할 만큼 빡빡하고 밀도높은 소설은 아니었기에, 그냥 그렇다고 치자 식으로 넘어갈 만한 부분 말이다.


페미니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당대의 큰 과학자가 될 재목의 영민한 여성들이 사회의 편견과 싸우기 위해 선택한 삶이 한 편으로는 자신을 실현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을 망치기도 한다는 쪽의 서사가 반전처럼 등장한다. 이 부분의 비중을 키웠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 여성의 삶은 거의 몇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인데, 결국 그 여성의 삶과 앞으로 살게 될 아이의 삶과 많은 공통분모가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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