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일은 즐겁고 가슴 뛰는 경험입니다. 힘든 일도 있지만 여태까지 쌓아온 지식을 잃지 않고도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유사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 뇌가 굳어져서라고 흔히 그렇게 말하는데, 새로운 걸 배우려면 안쓰던 근육을 쓰면 여기저기 쑤시듯 스냅스의 연결 경로가 익숙하지 않은 연결망을 만들면서 신경신호들이 그 낯선 곳을 지나가는 게 힘든 모양이다. 아무튼 학교를 졸업한 이후 뭔가 새로운 걸 배우는 건 정말 어렵다. 말과 글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기초 암기를 필요로 할 때 특히 그렇다. 나이 들어 뭔가를 배우려고 노력해 보다가 좌절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뭔가를 시작하려할 때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것을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아들러가 말하는 불완전함이란 인격의 불완전함이 아니라 새로 시작하는 일에 대한 지식과 기술에 대한 불완전함입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그 즉시 ‘잘하지 못하는 자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새로 시작한 일이니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게 ‘잘하게 되는’ 것의 첫걸음입니다.˝


60세에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저자는 2년동안 공부해서 조선일보에 서평을 내기도 했다(많고 많은 신문 중에 하필이면 조선일보라니 일본스럽다). 64세에 중국어 공부를 시작해서 현재 중국어 통역을 하는 칠십여세의 독자도 만났다고 한다. 내가 얼마전 시베리아 횡단 계획을 준비하는 남편을 보고 혹시 하는 마음에 러시아어 공부를 시작한 적이 있는데, 그래도 한 두어달 했더니, 러시아 글자를 보면 더듬더듬 읽고 싶고 어쨌든 반갑다 러시아어야 여유가 생기면 다시 시작할께 라고 하고싶을 마음 정도는 되었다.  그 전에 부산에 있는 러시아 거리(?)에서 느꼈던 완전히 생경함과는 다른 느낌일 거 같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주어진 생을 조금씩 잃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대로, 삶에서 생긴 지혜가 쌓여간다는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기시미 이치로는 그리스어를 놓은 지 10년만에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를 번역하여 몇년 전 세상에 내놓았는데, 그 (그리스어를) 잃어버린 10년동안의 시간은 헛것이 아니었다.


˝그리스어에서 멀어진 시기에 아들러 심리학을 배운 것도 그리스어를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치 보조선을 얻은 느낌입니다. ˝


나는 내가 늘 늙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10대 때엔 철모르는 어린 아이가 아니어서, 부모에게 다 큰 것이 그것도 못해 라거나 다 큰 것이 어린 동생에게 양보해야지라는 꾸지람을 들으면서 나이듦을 저주하기 시작했고, 20대였을 때는 10대가 아니어서 책임없는 철모름이 사라진 불안한 청춘을 살아야 해서 불만이었고, 30대엔 이젠 나머지 인생이 결정된 채 이대로 살아야 해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20대가 아니어서 불만이었다. 그 다음엔 나이를 잊기로 했던 것 같다. 아마도.

원제가 ‘마흔에게‘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딱히 마흔에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닌 것 같다. 

˝간병의 현실은 결코 달콤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간병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편이 행복하지 않을까요? ‘간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가 아니라 간병하면서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이 생겼다’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미움받을 용기도 읽어보았지만, 왜 기시미 이치로가 그토록 한국에서 인기인지 잘 모르겠고, 이런 하나마나한 말이 어떻게 위로든 도움이든 되는지 모르겠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은 취향의 문제이지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부모의 간병이 너무나도 힘든 어떤 사람이 책을 읽으며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이 생겨서 기쁘다고 마음을 돌리는 일이 생길 수도 있는지는 의심하지 않기로 한다.

˝아저씨 아주머니의 심리란 상대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면서도 상대를 별개의 인격으로 인정하고 대하는 자세입니다. 상대가 어떤 공을 던지더라도, “그건 이상해”라며 할 게 아니라 “그렇구나”라고 받아들이고, 설령 찬성하지 않더라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해하는 것은 찬성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거기에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면 “이렇게 해보면 어때?”라고 제안할 수 있습니다.˝


사실 얼마 전에 읽은 다른 책에서도 그렇고, 누군가를 자신의 잣대로 평가하거나 자신의 기준으로 행동하기를 조언하려 들지 말고 그렇구나 모드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서로의 공감과 이해, 나아가 신뢰있는 관계의 기반이 된다는 점을 기억해두어야겠다. 

텍스트의 양이 빈약하고, 하나마나한 말들이 많아서 이 책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내게 한 친구가 자기는 이렇게 할아버지 잔소리같은 종류의 에세이들이 늘 가슴을 후벼판다고 한다. 그러므로 기시미 이치로의 베스트셀러 현상을 더는 삐딱한 시선으로 보지 말아야겠다.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하는 잔소리에서 진정 의미와 가치를 찾아낼 줄 아는 사람도 있으니까. 책의 위대함은 읽는 사람 각자에게 다른 의미를 전달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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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01-08 1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기도 제 과세요. 저도 한 시절엔 키릴 문자 독학으로 읽을 줄은 알았답니다. 지금은 다 잊었지만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