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향적이라는 말을 종종 듣고, 나 스스로도 그렇다고 인정해왔는데, 때로 완전히 반대로 내가 굉장히 내향적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대화 중에 우연히 내가 좀 낯가리잖아 혹은 내가 수줍어서 말을 먼저 잘 못거는데 같은 말을 흘리면, 친구들은 웃기시네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내가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 잘 모르는데,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에 보면 내향성을 판단하는 설문지가 나와있다. 이 질문지가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남들에게 외향적으로 비치는 내 성격에서 내향성의 점수가 굉장히 높게 나왔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하고, 그게 내 참모습인데 속이고 살려니 피곤한 듯하다.


1. 나는 단체 활동보다는 일대일 대화가 좋다.

2. 나는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게 좋을 때가 많다.

3. 나는 혼자 있는 게 좋다.

4. 나는 동년배들보다 부나 명예나 지위에 덜 신경 쓰는 것 같다.

5. 나는 잡담은 싫어하지만 내게 중요한 문제를 깊이 논의하는 것은 좋아한다.

6. 사람들이 나더러 “잘 들어준다”고 말한다.

7. 나는 위험을 무릅쓰는 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8. 나는 방해받지 않고 깊이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즐긴다.

9. 나는 생일에 친한 친구 한두 명이나 가족과 소박하게 지내는 게 좋다.

10. 사람들이 나더러 “상냥하다 거나 “온화하다”고 한다.

11.나는 일이 끝날 때까지는 사람들에게 내 작업을 보여주거나 그것을 논의하지 않

12. 나는 갈등을 싫어한다.

13. 나는 스스로 최선을 다해 일한다.

14. 나는 먼저 생각하고 말하는 편이다.

15. 나는 밖에 나가 돌아다니고 나면, 즐거운 시간을 보냈더라도 기운이 빠진다.

16. 나는 전화를 받지 않고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게 내버려둘 때가 종종 있다.

17. 꼭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일정이 꽉 찬 주말보다는 전혀 할 일이 없는 주말을 선택하겠다.

18.나는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19. 나는 쉽게 집중할 수 있다.

20. 수업을 들을 때는 토론식 세미나보다는 강의가 좋다.


이 20개 문항중에서 14, 19, 20을 빼놓고는 대부분이 해당된다. 결국 나의 내향성은 나의 내향성 속으로 깊이 감출 수밖에 없고 외향성의 외피를 쓰고 계속 살아가고 있지만, 내 방을 처음 가졌을 때, 대가족으로 북적대던 ‘안방’에서 빠져나와 나 홀로 가질 수 있는 깊은 밤의 시간들을 내가 얼마나 사랑했던가를 회상하면 나의 내향적 내향성은 나만 알고 있는 깊은 내면 속에 숨겨져 있던 것 같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외향성의 이면은 어떻게 된 것일까. 성격이든, 능력이든, 신체 사이즈이든, 뇌의 활동 부분이든 어떤 표준 속에 여러가지의 멀티속성을 한꺼번에 다 구겨넣고 그것을 표현하면 개인이 가진 고유성 그러니까 여러가지 속성들의 들쑥날쑥함은 사라지고당 단어 혹은 범주보다 낮거나 높거나 하는 단순한 비교만 남는다.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이 있다. 서두(와 1장)의 내용을 축약해 보았다.


공군 전투기의 잦은 사고로 조종석의 규격이 최근 전투병들의 신체 사이즈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가정을 했고, 조종석 설계상 가장 연관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10개 항목의 신체 치수에 대해 평균값을 냈다. 이 평균값을 바탕으로 평균적 조종사를 각 평균값과의 편차가 30퍼센트 이내인 사람으로 넓게 잡았다.조종사 4천여명 가운데 10개 전 항목에서 평균치에 해당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10개 사이즈 중 3개 항목만을 골라서 평균치에 드는 조종사를 골라도 3.5퍼센트 미만이었다. 그들은 이미 전투조종사의 신체조건이라는 기준을 통과한 자들이었는데도 말이다. 평균적 조종사 같은 것은 없었다. 이것이 대니얼스라는 한 젊은 장교가 밝혀낸 사실이었다. 놀랍게도 뷰로크라틱의 전형일 것같은 군에 그의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받아들여져 평균치가 아닌 개개인에 맞춘 시스템으로 바뀐다.엔지니어들은 비용이 많이 들고 불가능하다고 꺼려했지만 군이 밀어붙이자 곧 해결책을 제시했다. 현재 모든 자동차의 표준으로 자리잡은 조절가능한 시트가 그렇게 탄생되었다.


노르마는 1만5천명의 젊은 성인 여성들에서 수집한 신체 치수 자료로 평균값을 내어 젊은 여성의 표준 체격을 만든 조각상이다(조각가 아브람 벨스키, 의사 로버트 L 디킨스). 이 완벽한 표준에 가장 부합하는 대회가 열렸는데, 치열한 경쟁 끝에 막판 경쟁에서는 밀리미터 단위로 우승자가 결정될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참가자 3천8백여명 가운데 9개 항목 치수중 5개 항목에서 평균치에 든 참가자들이 40명도 채 되지 않았다.당시 대다수의 의사와 과학자들은 이러한 결과를 미국 여성들이 건강하지 못하고 몸상태가 나쁘다고 결론내렸다. 미공군 대니얼스의 직관과 어긋난다.


평균이 쓸모가 있을 때도 있다. 두 집단간을 비교할 때다. 개개인에게 평균은 허상이며, 평균에 기반해서 비교당할 때 개인의 자신의 고유 가치를 잃게 된다는 게 저자가 서두에서 강조하는 말이다. GPA 평균(-D)에 의해 자신이 젊은 날의 한 때를 얼마나 낙오자로, 우울하게 지내게 되었는지를 고백하면서 이 책은 시작하고 있다. 고등학교 중퇴 후 15년만에 하버드 대학 교수가 된 저자는 어떤 추상적 철학을 발견하거나, 공부에 눈을 떠서가 아니며, 처음에는 직관에 의해 그 다음에는 의식적으로, 모든 인간은 다르며, 그 개개인의 원칙을 따라 삶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앞장에 소개된 뇌 활동 영역에 대한 내용인데, 우리가 무얼 하면 어떤 영역이 활성화되고 저걸 생각하면 또 어떤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식으로, 그러니까 뇌의 어떤 정해진 영역이 특정 기능을 한다는 식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런 영역 역시 앞에서 본 것처럼 많은 데이터의 평균을 낸 것으로서, 같은 활동에 대해 뇌가 활성화되는 영역은 천지차이로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사람은 전적으로 외향적이거나 전적으로 내향적이지 않다. 평소에 말이 없고 타인과 거리를 두는 듯 해 보이는 사람도 끊임없이 사람과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와 사회적 활동을 찾는 것을 보면 평균이라는 것은 어떤 단어로 뭉뜽그려 표현하는 수단이될 뿐 다양성이 가진 개별 인간의 특징을 절대로 표현해주지 못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나는 내향적이기도 하지만, 사람들과 만나고 말하고 듣고 즐거운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내향성의 측면을 남들이 못보는 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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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8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9-02-18 12:19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평균이라는 허수가 삶을 수치화해서 끊임없이 비교하고 좌절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어요
 


이런 깔끔하고 산뜻한 문체에 섬뜩하거나 잔인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강한 심리적 반전이라니. 계속 보고 읽고 알고 있던 주인공의 습관적 행위를, 이미 한 번의 반전으로 해피 엔딩의 결말을 맺나 하고 안심하고 나서야, 눈여겨 본다. 

처음 만남부터 남의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래서 언젠가는 헤어져야 겠기에, 철저히 베일에 쌓인 남자이기에,  그가 남긴 모든 것, 커피에 넣어 마시고 남은 각설탕, 콘돔 껍데기 같은 잘잘한 흔적들마저도 소중하다.  그런 것까지 모은다니 우웩 소리가 나오려는 것까지 그가 남기고 간 것은 그렇게 서랍 깊숙히 은밀하게 보관된다.  

그렇게 읽었다. 이해할 수 있다. 남자는 근처 아파트 공사장에서 건축사로 일하는 데 그 공사가 끝나면 그들의 관계도 끝난다.아이가 둘 씩이나 있는 남의 남자를 안을 시간은 퇴근과 귀가 사이의 얇은 시간의 틈새 한시간 절도 뿐이다. 문체가 어찌나 간결하고 건조한지 도통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힌트도 주지 않지만 둘의 애정행각은 영화로 본 장면처럼 시각적으로 생생하다.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하다 못해 조금만 더 있어달라 투정부리지도 못하는 사랑. 그의 아내와 가족은 금기시된 주제다.   이별의 시간은 다가오고 그녀가 그토록 소중하게 간직하는 그의 흔적들을 다루는 그녀의 행위 만으로 그녀의 절절함이 전해질 것 같은데….끝이 다가오자 그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진다.  

이별을 준비하는 것일까. 긴장했던 순간에 반전이 일어난다. 이제 그의 물건은 이제 더 소중하지 않다.  잠겨진 서랍 속에 새로운 물건이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이 두번째 반전은 첫번째 반전보다 더 충격적이다. 문체가 건조하지만, 묘하게 시적 반복성과 중독성이 있다.  뭐 대단한 상징이나 문학적 기법 같은 걸 찾을 필요 없이 소재 자체가 일상적 드라마에 머물러서 쉽게 읽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메디치상이 프랑스 문학상 중에서도 새롭고 독특한 실험적인 작품에 수여한다는데, 정말 새롭고 독특하다.1993년 수상작이다. 종이책이랑 전자책 모두 단행본으로도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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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를 좋아한다.그런데 내 주변에는 가족이건 친구건 면요리 매니아가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주변에 면요리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잘도 먹으러 다닌다. 부럽다. 저자는 면요리를 먹기 위해 일부러 맛난 집을 찾아가 4인용 식탁에서 혼밥도 하고 그러는 모양이다. 그래도 부럽다. 그만큼 나도 국수 좋아하는데.


저자와는 약간 취향이 다른게 나는 탱글탱글한 면발의 식감을 국수 사랑의 제1요소로 사랑하는데 비해 저자는 뜨겁고 깊은 국물도 면식 수행의 중요한 요소로 본다. 면빨이 중요한 나는 너무 뜨건 국물이 식지도 않는 뚝배기에 나오는 국수류는 먹다 보면 불어져 그닥 좋아하지 않고 외국서 저렴한 중국 식당에서 먹던 볶음국수류를 좋아하는데 나라마다 그 이름이 다르더라. 라면도 국물을 좀 적게 해서 끓인 후 궁물을 버리거 면만 건져 접시에 담아 먹기도 한다. 아이가 지나빠 닮아서 국물까지 마실 때 빼앗아 미리 따라 버리곤 했다. 그 짠 궁물을 후루룩 후루룩 마셔대는 게 나트륨 섭취를 너무 높일 거 같아서였는데, 이렇게 궁물 좋아하는 사람이 쓴 국물 애호에 대한 설득력있는 잘 쓴 글을 읽으니 그게 좀 횡포있던 거 같기도 하다. 

목숨줄과도 같았던 직장과 집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끝에 어이없는 이유로 전업주부가 되어 뭐라도 써보려고 십여년 동안 무얼 했나 따져보니 잘 하는 거 전적으로 좋아하는 게 국수 밖에 없더란다. 이 책은 국수 맛집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인생에서 만난 국수와 얽힌 삶의 자취들이다. 잘 모르는 저자가 자기 얘기 줄줄 늘어놓는 책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게 아니라 자기 지식이나 자기경험의 자랑을 싫어하는 거지 이런 식의 유머러스하기도 하고 또 울컥하기도 한 진솔한 자기 고백은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글도 참 잘쓴다. 뭔가 대단한 사상이나 지식을 전달할 것도 아니고 창작적인 소설이나 시를 보여줄 것도 아니라면 이런 류의 에세이류의 글을 쓰려면 이 저자만큼의 글솜씨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말도 아니지만 같은 뜻의 말을 전하더라도 솔깃하고 공감가게 만드는 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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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3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9-02-16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수클럽 같은 거 만들면 좋겠네요 ㅎ
 














아작에서 코니 윌리스에게 덤벼러 내가 상대해주마 하고 올인하고 있는 듯하다. 쉴 새 없이 코니 윌리스의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방금 출간된 따끈따끈한 《올클리어1, 2》를 끝으로 아작에서 윌리스의 옥스포드 시간여행 시리즈를 드디어 완간했다. 열린책들에서 《개는 말할것도 없고 - 주교의 새 그루터기 실종사건》과 《둠즈데이 북》을 오래 전에 출간했지만, 절판된 상태로 방치되었다가 SF 출판의 구세주 아작출판사가 짜잔 하고 등장하면서 작년과 재작년에 절판된 책들을 재출간하고, 새로 번역하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SF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 코니 윌리스를 《여왕마저도》에 실린 단편들로 처음 접했었는데 처음 읽은 단편은 지구에서 외계인과의 조우를 블랙 코미디적으로 그려낸 《모두가 땅에 앉아 있었는데(All seated on the ground)》였다. 너무 수다스러워 서사를 파악하는데 산만한 문제로 내 타입은 아니라고 영영 멀어질 수도 있었지만 인연을 도와준 건 작년에 출간된 《개는 말할 것도 없고》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가 그 전에 읽은 제롬 K 제롬의 《자전거 탄 세 남자, 개는 말할 것도 없고》와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 과 연결된다. 정말 책은 책을 부른다.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에서, 달에 가고 싶어하는 주인공 킵의 아빠가 늘상 읽고 있는 책이 《자전거 탄 세 남자》 다.  어린 딸이 아빠 나 달에 가고 싶어, 키득거리면서 책장을 책장을 넘기던 아빠는 무심히도 말한다. 가려무나. 킵의 아빠는 이 책을 자나 깨나 읽는다. 읽고 또 읽는다. 과연 어떤 책일까 궁금했다. 《자전거 탄 세 남자》는 빅토리아 시대 세 영국 남자가 템즈강을 거슬러 배를 타고 올라가는 여정을 다룬 슬랩스틱 코미디다. 하지만 당시 우주복=>자전거탄=>개는말할것도 로 이어지던 책의 여정은 개는에서 좌절되었었는데, 열린책들의 절판에 묶여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년 아작에서의 재출간 소식이 얼마나 반가웠던지.  


《개는 말할 것도 없고》는 시간여행이 실현된 어느 미래를 그린다. 그런데 시간여행이 실현된 후, 고대에서 온갖 보물을 가져오면 떼부자가 되겠거니 했던 투자가들이 어떤 물리학 법칙에 의해 물건을 가져오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시간여행은 개밥에 도토리가 된 상황이다. 그래서 시간여행은 대학에서 연구용으로만 사용(?)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어떤 부자가 자기 증증증증조 할머니 일기장에 써있는대로 대성당을 재건하겠다고 나서면서 연구원들을 들볶아 파괴되기 전의 상태를 파악하러 빅토리아 시대와 2차 대전 폭격 직후 등으로 시간여행을 다니며 생기는 일들을 그린 작품이다. 부제는 《신부의 새그루터기실종사건》으로, 이 '신부의 새 그루터기'라는 물건은 재건할 성당에 복제하기 위해 필요한 소품으로 일종의 매거핀 같은 역할을 한다. 코미디와 탐정을 시간여행이라는 판타지와 SF 쟝르 속에 아주 찰지게 빈틈없이 정교하게 버무려놓은 방대한 작품이다. 미세한 단서까지도 놓치지 말고 읽어야 해서, 여러 번 뒤로 돌아갔다가 앞으로 돌아왔다가 하면서 뒤적거려가며 읽어야 했다. 뒤로 돌아가서 읽을 수록 처음 읽을 때 단순 수다로 방치하고 놓친 더 많은 단서들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다. 시간을 넘실넘실 넘나들며 사건의 인과 관계와 미스터리를 파헤친다는 면에서 탐정적 성격이 짙지만, 시간여행물의 핵 로맨스 역시 놓치지 않는다. 사소한 사건과 수다에도 인과관계가 엮여 있고 모든 의문이 거의 해소된다. 유쾌하고 즐겁고 지적이고 방대한 소설이다. 
















알고 보니, 작년부터 아작에서 열심히 출간되는 코니 윌리스의 시간여행 장편들은 모두 이 작품의 시간여행 세계관을 공유한다. 편의상 옥스포드 시간여행 시리즈로 불린다. 《개는 말할 것도 없고》 에서 제롬K의  《자전거 탄 세 남자》 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난 주인공은 제롬 K의 주인공들을 보트들로 가득찬 템즈강에서 조우한다. 깜짝 출연인 셈이다. 코니 윌리스는 이 제롬K의  《자전거 탄 세 남자》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이 작품을 알게 해 준 로버트 A 하인라인에게 이 책의 헌사를 바쳤다. 와이 낫 제롬? 아마도 한참 전 세대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리라. 것도 그렇고 작품 자체가 오마주이고 제목까지 부제를 끌어다 썼는데, 그보다 더한 헌사가 있을까. 

이 책은 코니 윌리스의 빅팬이 되기로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동시에 아작에서는 이 책과 이미 출간된 《둠즈데이 북》과 《화재감시원》, 《블랙아웃》을 포함하여 이번에 새로 나온  《올클리어》를 끝으로 코니 윌리스의 시간여행 시리즈를 완간한 것이다.  한국에서 번역 출간되는 SF 중에서 휴고와 네뷸러 로커스 등의 상을 안받은 작품을 찾는 게 더 어렵기는 하지만 모든 작품은 이 세 개의 작품을 거의 대부분 수상하였고, 일부(내가 알기로 《개는 말할 것도 없고》와 《둠즈데이 북》 )는 세 개를 동시에 받았다. 


















이 중에서  《둠즈데이 북》은 가장 먼 곳으로의 시간 여행이다. 넷플릭스 역사 드라마를 즐겨보다가 앙드레 모루아의 영국사를 읽기 시작했는데, 영국 역사의 한 복판에서도 《둠즈데이 북》이라는 코니 윌리스의 옥스포드 시간 여행 시리즈 책 제목과 같은 제목의 문서를 만날  수 있었다.  모루아의 역사책에 따르면 정복왕 윌리엄은 개사기꾼이다.  《둠즈데이 북》은 윌리엄이 세금을 쥐어짜기 위해 만든 토지대장이었던 거다. 서자여서 애비없는 자식이란 별명을 가졌던 그는 그나마 노르만디의 공작이었던 아버지의 정실에게서 다른 자식이 없었던 덕에 뒤를 잇고 어린 나이에 공작이 된다. 후에 정복왕 윌리엄이라는 별명을 갖고 영국을 노르만왕조의 손아귀에 넣은 그는 넷플릭스에서 방영중인 바이킹스에서 라그나 로스브로크의 동생으로 질투와 배신의 화신으로 등장해 결국 형제와 종족들을 배반하고 노르망디를 차지한 롤로의 후손으로, 영국왕이 될 연결고리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당시 영국 왕은 선출제여서 어느 먼 친척이든 영주들만 잘 구워삶으면 왕이 될 수 있었던 모양으로, 영국 왕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다가 에드워드 왕위의 강력 후계자 헤럴드가 위기에 처했을 때 협박하여 모종의 서약을 맺게 했는데 영국왕이 되겠다는 윌리암의 계획만큼이나 터무니없는 것이었으나 이는 훗날 해럴드가 전임 왕 에드워드의 뒤를 이어 왕으로 선출되었을 때 침략의 구실이 되었다. 자격 미달인이 왕이 왕이 되려니 여기저기서 힘을 모아야 했고 교회를 지어주고 교황청과 결탁하여 교황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이때부터 영국 왕은 로마 교황청의 영행력 아래에 놓이게 된다. 이후 잔인한 학살과 살육을 동반한 토지 개혁으로 대부분의 자유농민은 농노로 전락했고 장원이라는 단위의 영주와 농노들로 구성된 봉건제가 자리를 잡게 된다... 어쨌든 윌리엄의 둠즈데이 북은 세금을 걷기 위해 살림살이 하나하나에서부터 기르는 닭 한마리까지 아주 자질구레한 세부사항까지 치졸하게 재산 내역을 기록한다. 코니 윌리스의 옥스포드 시간여행 시리즈에서 《둠즈데이 북》은 가고자 하는 시간 목적지가 중세로, 책 제목은 주인공이 시간 여행 기록을 윌리암의 토지대장 《둠즈데이 북》의 꼼꼼함에 영감을 받아 이를 사용한 것이다. 

"던워디 교수님. 저는 이 기록을 ‘둠즈데이북’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정복왕 윌리엄 1세가 시행한 조사가 그랬듯이 제 기록도 중세의 생활에 관한 내용을 담게 될 테니까요. 물론 윌리엄 1세가 만든 《둠즈데이북》은 소작인들이 내야 할 조세와 땅에서 나는 금 한 알갱이라도 확실하게 알아 두기 위해 만든 방편이었지만 말이죠."


코니 윌리스의 옥스포드 시간여행 시리즈의 순서를 굿리즈에서 퍼오면 다음과 같다 

Book 0.5 화재감시원  
Book 1   둠즈데이북 
Book 2   개는말할것도 없고 
Book 3   블랙아웃
Book 4   올클리어

나는 쥐뿔도 모르고 <개는 말할 것도 없고> 부터 읽었는데, 저 순서대로 읽으면 훨씬 재미있을 것 같다. 코니 퓔리스 풍의 수다가 코니 윌리스 입문자들에게는 복병이 될 수 있을 수도 있지만, 장편에서 그 모든 수다는 의미없는 헛소리들이 단 한마디도 없고, 시간과 공간이 여러 사건 사고가 벌어지는 복잡한 작품의 서사에 스위스 시계 부품처럼 정교하게 맞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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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9-02-12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까 책을 주문했는데... <개는 말할 것도 없고> 이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빼먹었는데요. 취소하려고 들어가보니 이미 출고완료네요. CREBBP님 글을 보니 빨랑 코티 윌리스 옥스포드 시간여행시리즈를 마무리지어야할 것 같아요. 말하자면 올클리어죠 ㅋㅋ

CREBBP 2019-02-13 10:07   좋아요 0 | URL
이게 한꺼번에 짜잔 나온게 아니라서 꿰어 맞추다 보니, 저도 소장 목록이 엉망이에요. 제일 재밌다는 <개는말할것도없이>는 전자도서관으로 읽어서 사실 살 필요가 없거든요. 읽으면서 꿰어맞추다보니 거의 전 텍스트를 거의 두번씩 읽게 되더라구요. 게다가 전자도서관에서 이 시리즈는 거의 언제든 빌릴 수 잆는 상태라서, 다 읽은 책을 구매하기도 그렇고(안읽은 책 살 것도 많고 많은데), 게다가 화재감시원과 둠주데이북은 9년후면 서재에서 사라지고 블랙아웃과 올클리어만 남게 되겠죠 ㅋㅋㅋㅋ 그냥 보르코시건 시리즈나 파운데이션 혹은 르귄처럼 한꺼번에 짠 하고 구매해놓으면 맘도 편하고 흐뭇하고 그런데 말이죠. 결국 제일 소장하고 싶은 책만 쏙 빼놓고 갖춰놓게 되었어요. 근데 빌려보면 밑줄긋기가 잘 안돼서 불편...

transient-guest 2019-03-09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둠스데이북‘을 먼저 읽고, 그 다음으로 ‘화재감시원‘을, 그리고 ‘개는 말할 것도 없고‘를 읽었습니다. 나머지는 주문한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데 ‘개는...‘에서 언급된 작품을 따로 찾으셨네요. 저도 구해서 읽어볼 생각입니다.

CREBBP 2019-03-11 17:20   좋아요 1 | URL
그게 우연히 하인라인의 책을 먼저 읽고 보트위의 세 남자를 읽고 나서야 그 책이 개는 말할 것도 없고의 서두에 언급되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세 개의 작품을 나란히 보면 유머 코드가 어딘지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 있는 것도 같아요. 물론 개는 말할것도 없이 에서는 개를 오마주했고요. 하지만 원래 제롬의 개가 훨씬 더 웃겨요.
 











레이 브레드버리.  SF 대가 중 한명인데, 유난히 단편을 많이 썼다. 이미 현대문학에서 나온 두꺼운 작품집 하나 있어서 아작에서 두 개의 너무나도 예쁜 커버의 작품집이 나왔을 때, 많이 겹칠거라 짐작하고 뭔가 아쉬워했는데(주로 이북을 삼에도 불구하고 커버가 중요하다) 목차 살펴보니 겹치는 거 하나도 없더라. 단편 작품집을 사고 나면 주로 첫편을 먼저 읽고 그 다음에 표제작을 읽는 편이다. SF와 환상을 서정적인 정서로 묘사하는 작가로 르귄을 따라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브레드버리는 르귄과는 조금 다른 서정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두 개의 소설 모두 딱 표지 이미지만큼 맑고 순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온 여름을 이하루에> 이 작품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nightfall을 연상시킨다. (nightfall은 내가 읽은 최고의 단편으로 꼽을 수 있겠다) nightfall에는 태양이 두 개인가 세개인 행성에서 낮만 존재하고 밤이라는 게 없다. 그래서 그 행성에 사는 사람들은 어둠이 무엇인지 모르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일식 같은 현상으로 밤이 다가오고, 종말론적 사람들을 세상의 끝이라 여기는 둥 태초 처음 겪는 밤을 앞두고 저마다의 이론과 믿음과 과학과 온갖 생각들로 소란스러운 상황을 그렸는데. 두둥 밤이 오는 대신 그들은 새로운 세계를 본다. 처음으로 별을 보는 그들의 태도가 굉장히 인상깊었다.


<온 여름을 이 하루에>는 지구 가까이 있는 금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nightfall에서는 태양이 없는 걸 모르는 행성에 사는 사람들 얘기고, 반대로 금성에서는 태양을 모르는 사람들 애기다.  곧 바로 닥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대하는 인간의 심리를 다룬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nightfall은 정치적이고 논쟁적인 데 비해, 이 소설은 아이들이 주인공이면서도 조금 더 종말론적이고 어두운 배경에 스산하지만 태양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아이의 마음에서 서정적인 슬픔이 느껴진다. 


금성에서는 짙은 구름에 쌓여 태양이 보이지 않고, 7년동안 비가 내려 컴컴한 지하 도시에서 살고 있는데, 쨍 하고 해가 비친 적이 바로 그 7년 전이고 소설의 주인공인 학교의 아이들은 2살때 해가 났었기 때문에 태양이 어떤 것인지 경험이 없다. 그런데 지구에서 5살때 쯤 전학온 아이가 마지막으로 자기가 본 태양을 기억하고, 태양이 뜰 날만은 기다리고 있는데, 지구에서 왔다는 특수성 때문에 애들한테 따당하다가 막상 태양이 떠오르는 그 날, 해가 뜬다는 일로 아이들과 마찰을 일으키고 사건이 터지는 내용이다. 


단편 중에서도 유독 짧은 단편들이 있는데, 이 단편이 그렇다. 매우 짧고, 아쉬운데, 태양을 그리워하는 소녀와, 컴컴한 어둠 속 인공태양광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태양에 대해 각자 상상하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멜랑콜리의 묘약>에서는 몇 개 더 읽었는데, 표제작 보다는 그 다음 작품의 감동이 훨씬 심해서, 다시 다루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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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8-12-19 22:40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18-12-19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REBBP님, 서재의 달인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세요.^^

CREBBP 2018-12-19 22:41   좋아요 1 | URL
오 좋은 소식이군요 감사합니다

카알벨루치 2018-12-24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립님 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