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권이 묶여져 있는 세트를 샀는데 그 중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를 먼저 읽었다.  첫번째 평은 짧다는 것. 아주 짧다. 텍스트의 양은 세 권 묶인 것 다 합해서 일반 서적 한 권 분량. 그림은 판화로 정선껏 제작했다지만 조금 정적이고, 그닥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하루키의 사생활이나 평소 하는 생각들을 엿볼 수 있고, 그런 그의 특성이 소설과 연결되는 지점을 찾을 수 있었다.  고양이와 함께 하는 고적한 시간, 평소에 말이 없고, 특히 소설가와 문인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이유들도 딱 그럴만한 이유들이 있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이런 글들을 쓰려면 힘들겠네 라고 생각했는데,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를 펼치자 마자 내막이 나온다. 이런 글의 소재가 한 50가지 정도 쌓여 있다고 한다. 거기서 골라 쓰면 된다고. 


에세이건 소설이건 하루키는 제목을 참 잘 뽑는다. 너무 무겁지도 너무 빤하지도 않고 평범하지도 지루하지도 않고, 살짝 쿨한듯 하면서, 한마디로 그답다.  세트 상품인 하루키의 무라카미 라디오 3부작이라는 뻣뻣한 제목으로 상품이 포장되어 있는데,  세트 내의 세 권은 다 따로따로 나온 책으로 각자의 제목이 있다.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대충 에세이에 나온 내용이다. 하루키의 이런 유쾌한 에세이들이 잘나가면서, 김중혁 작가 같은 국내 작가들도 가볍고 재치있는 에세이 모음들을 자주 묶어 낸다. 좋은 현상이다. 


섹스를 한 다음날 티셔츠와 헐렁한 사각 팬티를 차림으로 오믈렛을 만들고 큼직한 남자, 면셔츠를 잠옷 대신 입고 침대에서 눈비비며 나온 여자가 함께 슈베르트의 소나타를 들으며 아침을 먹는 광고에서 본 듯한 장면은 그의 상상 속에서 오믈렛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타이밍이다. 영어권 나라의 레스토랑에서 soup or salad? 라고 묻는 웨이터의 질문을 슈퍼 샐러드? 라고 이해하고는 그거 좋겠네요 슈퍼 샐러드주세요 하는 장면을 실은 핀란드 영화 애기. 또는 헬스클럽의 바이크에서 생산되는 노동력을 전기 에너지로 전환하고 그 생각을 더욱 발전시켜 성욕에너지를 전력으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있다. 


어떤 책에도 다른 책을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없는데, 터프한 아프리카 대륙 종단기인 폴 서루의 <아프리카 방랑> ,과학자들의 실화를 모은 《세상을 살린 10명의 용기 있는 과학자들>,트루먼 카포티의 단편소설 <마지막 문을 닫아라>를 카트에 담아둔다.  카포티 책이 하도 많아, <마지막 문을 닫아라>가 실린 단편을 찾느라 손가락 품 좀 팔았다.












《아프리카 방랑》 속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폴은 동아프리카의 어느 나라를 여행하고 있었다. 참으로 살벌한 지역이어서 오락거리도 없고 볼거리도 없고, 마을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 하나 만나지 못했다. 시간이 남아돌아 진절머리가 나던 참에 한 일본인을 만났다. 일본 기업에서 파견 나온 기술자로 영어를 상당히 잘했다. 폴은 기뻐하며 대화를 시작했지만, 이내 상대가 말도 안 되게 지루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얘기가 틀에 박혀 있다고 할까, 조금도 깊이가 없다. 그는 이러느니 혼자 벽 보고 있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한다.


투루먼 카포티의 단편집은 꼭 읽고 싶다. 그의 소설 제목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카포티의 단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트루먼 카포티의 단편소설 <마지막 문을 닫아라>의 마지막 한 줄, 옛날부터 왠지 이 문장에 몹시 끌렸다. Think of nothing things, think of wind, 내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도 이 문장을 염두에 두고 붙인 제목이었다. nothing things라는 어감이 정말 좋다.












토르 고타스의 <러닝>을 읽고 커다란 귓밥을 파낸 듯이 개운하게 풀린 오래 묵은 의문 하나가 풀리는 대목.

고타스 씨에 따르면 그리스에서 전령은 온전히 직접 달리는 걸로 정해져 있다고 했다. (..) 그냥 달리는 사람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말을 타고는 가지 못할 좁은 길이나 험한 길도 거침없이 갈 수 있다. (..)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필리피데스라는 전령은 마라톤 전쟁 전에 지원군을 요청하는 서한을 들고 아테네에서 스파르타까지 이틀에 걸쳐 약 466킬로미터를 달렸다. (...) 그러나 스파르타 왕의 대답은 “노”였다. 지원군은 보낼 수 없다. 필리피데스 씨는 실망하면서 같은 길을 또다시 달려서 돌아왔다. 그리고 일설에 따르면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그 길로 마라톤까지 40킬로미터 넘는 길을 달려 전쟁의 결과를 지켜본 다음 다시 달려서 아테네로 돌아가, “이겼다!” 하고 시민에게 알리고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그럼 죽을 만도 하지, 


존 어빙의 <곰 풀어주기>(직접 번역한 소설)은 못찾았고(국내 번역본이 없는 것 같아), 책보다 영화와 음악 이름이 더 많이 언급되어 있다.


저자가 언급한 기야마 쇼헤이의 <가을> 라는 짧은 시가 좋아서 옮겨본다. 

새 나막신을 샀다며    

친구가 불쑥 찾아왔다.    

나는 마침 면도를 다 끝낸 참이었다.    

두 사람은 교외로    

가을을 툭툭 차며 걸어갔다.


미국의 작가 도로시 파커가 자신의 묘비에 써지기를 희망한 말 ‘이 글씨를 읽을 수 있다면 당신은 내게 너무 가까이 와 있다’. 이 얘기에서 나아가 자신의 묘지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라. 그저 바람을 생각해라.'라고 적으면 어떨까를 생각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이 문장이 제일 좋았다. <노르웨이의 숲>의 분위기를 이 평범한 문장 하나에 고스란히 옮겨온 듯하다.


스무 살 전후였던 나는 사귀던 여자친구하고도 잘 안 되고, 학교에도 흥미를 잃고, 좀 힘든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오후의 양지에 고양이와 둘이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으면, 시간은 나름대로 부드럽고 따스하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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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진화하게 만들고, 지능이라는 저주를 내린 건 바로 우리야.



젤라즈니의 작품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작품은 표제작인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지만 맨 처음 실린 작품은 ≪12월의 열쇠≫다.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딱 첫장을 펼치자마자 작품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부풀었다. 첫 장만 읽으면 작품이 내 취향과 맞는지 대략 알 수 있다. 과연 작품은 끝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읽을수록 점점 더 흥미로와진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잉태되었지만 GMI 계약 옵션에 의거 한랭 행성종(얄료날 거주를 위해 개조된) Y7 고양이 형태로 개조된 쟈리 다크는 그에게 거처를 보증해주었던 이 우주 어느곴에서도 살아가기에 적합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이것을 축복으로 볼지 저주로 볼지는 당신을 자유이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하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얄료냘 거주를 위한 한랭 행성종이니 고양이 형태니 하는 듣도 보도 못한 단어들의 남발에 뭐야. 컬트적이고. 이 재치있고 천재적인 작가의 소설은 몇 쪽 읽기도 전에 푹 빠지고 말았다. 이런 신선한(SF에 일천한 내 기준에서) 작품을 만날 때마다 작가의 작품들은 속속 카트를 채운다. 이렇게 알쏭달쏭한 첫 문장은 실제로 이 작품의 주요 내용의 프리퀄에 해당되고 마지막 문장은 쟈리 자크의 선택에 대해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어느 미래의 혹은 먼 과거의 사회. 우주 곳곳에 문명이 침투한 어느날 아이를 낳기로 한 쟈리의 부모는 출산 관리국의 조언에 따라 얄료날이라는 몹시 춥고 기압이 높은 행성에 알맞는 조건을 가진 고양이 형태로 아이의 형태를 차세대 후계자 DNA의 조합으로 결정한다. 유전자 조작이니 그런 말운 일언 방구도 없다.  뱃속에 털복숭이 고양이를  잉태하고 분만하거나 하는 자세한 설정들은 처음부터 빠져있다. 


행성의 환경을 자유자재로 바꿀 만큼, 은하계 사이를 마음대로 이동할만큼 과학 문명이 발달된 사회인데, 설마 뱃속으로 아이를 낳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사람 모양의 아들을 낳지 않고 고양이 모양의 아들을 낳은 이유는 이렇다. 제너럴 광업 주식회사가 알료날이라는 행성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 행성에서 일할 사람들이 필요하자, 아예 행성에 적합한 모양으로 개조한 인간(DNA겠지만)을 만들어냈다. 


소설이 쓰여진 시기가 50~60년대 시기로 사기꾼 멜서스 인구론이 잡아먹을 듯  활개를 치던 시대니까, 인구 통제국이라는 기관이 자연스레 등장하고, 제너럴 광물 주식회사는 인구 통제국과 딜을 한 모양이어서, 그런 고양이 아기를 낳으면 교육과 의료 직업 연금 그 모든 걸 책임져주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모양이었다. 물론 이런 내용도 자세히는 안나온다.  


영하 50도의 한냉 행성에서 거주할 변형 유전자 고양이 인간들을 대대적으로 뽑아 세계를 만들어놨는데, 그 알료날이라는 행성이 '신성폭발'로 사라져 버렸다.  졸지에 갈 데가 없어졌다. 직업과 교육 의료 등등 여러가지를 보증하는 계약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쟈크와 모든 고양이 형태들은 연금을 받으며 그럭저럭 살아간다. 


다시 정리하면, 자원 굴착을 위해 행성을 하나 개척했는데, 너무 척박해서 살 생물이 없어 그 행성에 살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새로운 생명체(고양이 인간)로 개조시켜놨더니 행성이 폭발했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고양이 형태들은 자신들이 살 수 있는 조건을 가진 행성이 어느 곳에도 없음을 안다. 


제너럴 광물 주식회사와의 계약 조건에 따라 쟈리를 비롯한 수만명의 고양이 형태들은 답답한 기온 기압 조절 장치속에서 약물에 의존해 삶을 유지시킨다. 그들의 삶을 유지 가능하게 하는 온도는 영하 50도다. 그들은 외부로 나오지 못하고 감옥 같은 제어 장치 속에서 수당을 받으며 생활한다. 쟈리는 돈버는 재주를 가진 덕에 큰 돈을 벌어 자신들과 같은 종들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행성을 구입하여 환경을 바꾸기로 결정한다. 


수만명의 고양이 형태들은 <12월클럽>이라는 공동체를 결성하고 이미 생명체들이 존재하는 어떤 행성을 사들인다. 이 행성을 행성 개조 유닛을 통해 제2의 얄뇨날처럼 추운 곳으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행성 개조 유닛이 풀 가동해도 행성이 영하 50도의 기온을 갖는 최적의 장소로 바뀌려면 3천년이 걸린다. 고양이 인간들은 사들인 행성 곳곳에 그 행성 개조 유닛을 세워두고 동굴에 들어가 냉동 수면 침대에서 잠을 잔다. 250년마다 3개월씩 당직을 서기 때문에 각자가 천 년당 1년씩의 개인적 시간을 투자한다. 


꿈도 없는 잠을 자고 깨어나면 3천년간의 시간의 변화는 3년으로로 압축된다. 하지만 자는 동안 행성은 행성 개조 유닛의 작동으로 끊임없이 변해간다. 쟈리는 약혼녀와 함께 2세기 반마다 깨어나 우주의 변화를 실감한다. 점점 추워지고 생명들은 멸종되거나 적응하기 위해 두터운 껍질을 두른다. 


당직을 서던 중 그들은 직립 보행하는 짐승들 중 하나가 자신들이 대들랜드라고 부르는 그 춥고 황량한 곳에까지 죽은 짐승을 가지고 오는 걸 목격한다. 쟈리는 수 세기마다 한번씩 당직을 위해 깨어날 때마다 그 생명체들이 점점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몸집이 커져 털을 진화시켰는 줄 알았는데 짐승의 털을 두르고 다닌 거였고, 이마가 생기더니 손바닥을 마주보는 엄지가 생긴다. 그리고 알게되는 사실 하나 이 고양이 형태들을 신으로 알고 제물을 바치고 숭배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차피 3천년이라는 시간동안 인위적으로 환경을 그토록 바꾼다면 그곳에 서식하던 대다수의 생명체들은 예고된 멸종에 직면할 것이다. 적응에 성공한 소수의 돌연변이의 조합이 탄생시킨 새로운 종류의 소수의 생명만이 남게 된다. 그래도 상관 없다. 적응하는 생명체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윤기나는 털을 다듬으며, 그르렁거리던 답답한 공간 속에서 나와 마음껏 뛰어오를 제 2의 얄료날 행성을 가질 수만 있다면 다른 생명체 따위는 안중에 없다. 


딜레마는 그 생명체들이 지적 종족이라는 데 있다. 지적 종족이라면 무엇이 다를까. 그와 약혼녀는 한갓 짐승에 불과했던 두발 다리의 그들이 빠른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지적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목격하고는 혼란스러워한다. 자신들의 행성 개조로 인해 이 지적 종족은 결국 멸종할 것이다. 


종의 멸종을 막으려면? 방법은 있다. 변화의 속도를 늦추어 종이 적응할 시간을 주는 거다. 하지만 그러려면 7천년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 긴 시간을 냉동인간처럼 쭉 내리 자는 게 아나라 1천년당 1년씩의 개인 시간을 당직에 써야 하기 때문에 7년을 더 소비해야 하고 모두가 잠에서 깨어나 투표도 해야 한다. 그 적색형태라 이름붙인 지적 종족을 보호하고 싶은 사람은 쟈리 밖에 없는 듯하다. 그럼에도 그는 확고하다. 그는 그 지적 생명체들에게 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이 분의 최고작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이 아니라는 게 더 놀랍다. 작품집의 모든 소설이 가장 창작의욕이 왕성했던 초기작이라고 하니 다른 작품도 아껴 아껴 읽어야겠다. 테드 창의 소설들이 생각났는데 테드창 읽을 때는 먼가 유식하고 철학적인 소리들을 해대서 못알아먹는 게 많았는데(못알아먹어도 재밌게 못알아먹게 만드는 이상한 테드창) 이 책은 보다 유머러스하다. 



너무 감동스럽게 재밌어서 뒤에 가서 작품설명 읽었는데 더 모르겠더라는 뭐 신화적 원형에 뿌리를 어쩌구저쩌구 하는 말은 소설을 읽어보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데 엄청 어렵게 설명되어 있다.  암튼 과학 소설이란게 장르적 구분 같은 걸로 쓸모없고 소모적인 논쟁을 하는 듯한 느낌. 그냥 읽으면 인간과 신의 그 태초의 관계적 탄생을 우화적으로 재탄생시키는걸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고양이 토템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나무니 곰이니 하는 토템의 뿌리를 이런 식으로 상상할수 있는 작가의 기발한 아이디어 새로운 소재 정말 좋다. 



지적 생명으로 나가는 진화의 시작점에 빙하기라는 극단의 추위가 압력으로 작용하고,  생물(유전)학적 메카니즘을 통해 그 극단적 추위에 적응하는 동안 , 진화된 인간의 정신은 신을 창조하고 숭배함으로써 결국 그 환경의 극적 변화에 제동을 거는 제법 개연성이 있는 상상을 신화의 탄생에 연결시키는 것이다.


표제작인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는 SF 명예의전당 2편에 맨 마지막 작품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토록 많은 책이 출간되었다가 절판되었다. 파는 책보다 안파는 책이 더 많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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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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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도 못할만큼 잔혹한 방법으로 엄청난 인명을 학살하고, 학대하고, 억압한 대가로 핵심 세력들이 전쟁에 패한 후에도, 그 땐 그것이 선의였다고 천황을 위해 확장하고 뻗어나가 세계를 재패하게 될 천황과 제국을 위해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여전히 믿으며, 편안한 일상 속에서 자상한 아버지가 되어 이웃에 봉사하고 사회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사과도 없이, 전범 재판조차도 없이 나머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그 전범집단을 단죄하지 않고 사회 속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은 역사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단죄되지 못한 역사, 뉘우치지 못한 역사,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없는 역사는 그 역사의 고통과 책임을 여전히 피해자와 역시 피해자에 불과했던 권위에 복종했던 약자의 말단에게 전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비현실적인 치명적 사랑과 비현실적인 포로 수용소의 강제 노역. 가슴 밑바닥 그 섬세한 잔뿌리까지 치밀한 언어로 직조한 위험한 사랑과,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의 극한을 모자이크 처리도 없이 선명한 UHD 화질로 나노 마이크로 단위까지 카메라를 들이대고 내보내는 다큐같은 포로 생활. 이 절대로 타협 불가능한 두 이야기가 현재와 과거, 과거 속의 미래, 과거 속의 과거, 많은 등장 인물들이 각기 다른 관점에서 쏟아낸다. 

개인의 생각과 의지가 모두 박탈된 채로 전체 속 이름없는 부품이 되어 바닥까지 드러난 에너지의 마지막 한방울까지 쥐어짜는 혹독한 노동의 끝에 비참한 죽음 말고 다른 것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어디에서 찾아야 했을까. 일본이 한 짓은 평범한 우리와 다름없는 유전자의 조합을 가진 인간이 한 짓이지 동물이나 외계인이 한 짓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토록 충실히,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 잔혹한 만행을 우주적 선의로 믿으며 전장 속을 누비고 전후에는 자상한 부모 봉사하는 시민으로서의 선의를 베풀며 살아가는 나카무라의 계속되는 삶과 사고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속에서 단죄 받지 못한 사람들이 폐허를 일구며 후대와 섟일때 스며드는 가치관을 주목한다. 반성하지 않은 전범들의 계속되는 삶을 끄트머리까지 집요하게 쫒아가 꾸역꾸역 마지막 조명을 비춘다. 

작가가 원한건 그 끔찍했던 기억의 리얼리티 뿐만이 아니라 그 이후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계속 그러니까 역사이기 때문이다. 버마 철도 건설에 동원된 오스트레일리아 포로 이야기로 끝맺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 전쟁이 처리되는 침략국과 자본주의의 밀당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애국으로 포장된 전체주의와 왜곡된 역사책을 통해 후대에 그들만의 선의가 차곡차곡 계승되고 있음을. 그리하여 기억해야한다.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았기에 진정으로 단죄받지 않았기에 아직 끝나지 않은 침략과 수탈의 역사를. 그들을 대신하여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 그렇게 죽는 이유를 오로지 그나마 받지도 못한 50엔 말고는 떠올릴 수 없었던 조선인 경비병들의 외로운 죽음을.

도리고는 죽음이 일상화된 곳에서 만연된 죽음을 유예시키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매일매일 영양 실조와 콜레라와 구타와 강제노역으로 죽어가는 포로들을 목격하면서도 한 사람이라도 마지막까지 살리려고 애쓴다. 어차피 몇일 후면 죽을 사람들 한 둘이 더 먼저 죽거나 더 나중에 죽거나 큰 차이가 있을것 같지 않지만 그렇게 버티고 버텨 살아난 사람들이 전쟁의 끝을 보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니 뒤돌아보면 ‘장하다 살아남아줘서’지만 당시 전세는 기울었을 테고 연합군이 이긴다는 보장도 없었을테니 혹독한 노동과 짐승보다 못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할 희망을 붙드는 이유가 찾아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이유보다 더 많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어긋나서 비껴간 사랑이 있다. 전쟁이 가져다 주었고 전쟁이 갈라 놓은 사랑. 헤어지지 않고 이어졌더라면 일상과 권태와 자잘한 의견 충돌로 얼만큼은 희석되고 또 얼만큼은 분해되고 증발해가고 말았을지도 모를 그 알 수 없는 감정 사랑이 그토록 평생을 잊지못하고 그리워만 하면서 실체없이 마음을 차지했던 이유를 인간은 이해할 수 없다. 사랑이 비껴가면 그 비껴간 간극의 아슬아슬함 만큼이나 남은 평생동안 부풀어간다. 환상으로 물을주고 안타까움과 그리움으로 영양을 공급하여 크고 든든한 나무로 가슴속에 뿌리박은 그 비껴간 사랑은 다른 이에 대한 또 다른 맹세와 약속을 배신하고 속임으로서 잉태된 것이기에 독자들에게조차 온전하게 지지받을 수 없는 불길한 사랑이다. 하지만 응어리의 씨앗 배속에서 칼날이 휘젓고 찌르는 느낌의 실체를 알고 났을 때 그리고 남편과의 한세대가 넘는 나이차를 알게 되었을 때에야 에이미의 간통 역시 단순한 욕망과 육욕에의 갈증 만이 아닌 폭력적 근원에 뿌리를 두고 있었음을 가늠하고 마음 아팠다. 

'오스트레일리아판 전쟁과 평화'라는 한 미국 유명인의 인용이 뒷표지에서 눈에 띈다.각기 다른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이 세상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해된다는 점에서 동의한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꼬이고 얽히는 대신 사랑 파트는 도리고와 에이미의 불륜에 따르는 치명적 감각의 묘사가 주를 이루고 피와 살이 튀고 사지가 절단되고 창자와 장기들이 널부러져 나오는 전쟁 대신 전쟁 파트는 전쟁만큼이나 끔직한 수용소 실상을 묘사한다. 그토록 무고한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 몬 대가가 무엇이었는지를 그때도 찾지 못했고 지금도 찾지 못했다. 프랑스도 일본도 나폴레옹도 천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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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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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은 공항 대기실 인물은 딱 두 명이다. 장면도 거의 바뀌지 않은 채 두 사람의 대화로 이어가고 있는 소설은 2인극을 위한 희곡을 연상시키는데, 적의 화장법이라는 제목이 낯설다. 





우리가 화장을 하는 이유는 잡티와 주름을 얼굴을 잘 포장해서 예쁘게 만들기 위해서다. 남에게 잘보이기 위해서도 하지만, 자기 만족을 위해서도 한다. 누구더라, 레이먼드 카바였나, 작가 중 누군가는 작업실로 쓰는 방에 가기 위해 옷을 단정하게 입고 식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간다고 하던데, 화장이던 옷이던 단정하게 입는 이유 중 하나는 내면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를 추악한 것들을 덮고 추구하는 현재에 몰두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양복을 차려 입고 컴퓨터에 앉으면 게임을 하거나 악플 같은 걸 달러 찌질한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는 대신 작업 리스트를 열어 할일을 체크하고 해야 할 일에, 추구하는 일에 매달릴 거 같기는 하다. 





하지만 그 잘 차려입은 현대인들의 무의식 속에는 때로 소스가 뚝뚝 떨어지는 핫도그를 길거리에서 게걸스레 먹으며, 예쁜 여자들을 따라다니며 성폭행을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내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데, 자신은 잊고 있을지도 모를 만큼 오래 전 추악하고 폭력적인 욕망을 권력을 이용하여 타인에게 배출한 사람들은 갑자기 까발려진 자신의 정체가 실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강간과 추행을 행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당신은 바로 눈앞, 입이 닿을 만한 거리에 깨끗해 뵈는 시원한 물을 놓고도 그걸 마실 권리가 없어 목이 타들어간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릅니다.방금 사막을 건너온 당신을, 구미에 맞지 않는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물 스스로가 거부한다 이겁니다. 마치 물이라는 물질 자체가 당신을 거부할 권리를 가진 것처럼 말이죠! “





짧은 치마를 입고 요란한 화장을 했다고 해서 누구나 그걸 성적 암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주, 성폭력의 피해자들이 피해를 공개적으로 호소할 때마다 ‘행실’ 프레임이 가장 먼저 2차 폭격을 가한다. 너님을 위해 예쁜 건 아니니까 신경쓰지 말면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동의하는 관계가 아닌 이상 어떤 성적 행위도 폭력이 개입된다. 언제 하위 권력이 상위 권력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던가. 





공항 대기실처럼 따분한 곳도 없다. 탑승 시간이 계속해서 연기되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미국 사람들은 그런 일에 익숙해졌는지 언젠가 미국에서 국내선을 탈 때 3~4시간 이상 아무 설명도 탑승 수속이 안되고 기다리는 일이 있었는데, 애가 타고 짜증이 나서 데스크를 몇번이나 왔다갔다 했지만, 미국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며 책들을 읽고 있던데, 우리의 주인공 제롬 앙귀스트는 책읽기에 방해를 받는다. 





텍셀 텍스토르라는 자가 나타나 무례하게 굴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아무에게나 자기 얘기 늘어놓기 하기 좋아하는 그냥 짜증나는 인간인 줄 알며 무시하려 했는데, 이야기의 흐름이 점점 오싹해진다. 반전의 반전이 마치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오다가 맞이하는 결말은 쿵 하는 충격적이다. 




아멜리 노통브가 천재라 불리는 데에는 이런 이야기 구조의 긴장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의 소설에서는 묘사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작가는 한 인물의 입을 빌려 스스로 묘사에 대한 작가로서의 입장을 확실히 하고 있다. 특히 진부한 묘사의 하나로 자주 나오는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콕 찝어 겨냥한다. 





“도대체 그 어떤 색깔도 허용되지 않는 소설 속인데도, 마치 그렇게 하면 뭐가 달라지는 것처럼, 여주인공을 세세하게 묘사해야 한다는 것보다 더 짜증나는 일이 있을까요 실제로 여자가 금발에다 밤색 눈동자를 가졌기로서니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여자 입장에서 보면, 십년 전 강간했던 강간범이 눈앞에 나타나, 자신을 죽일 기회를 주러 왔다고 칼을 손에 쥐어준다면 어떻게 할까. 혹, 아내를 살해한 남자가 나타나 자신을 죽일 기회를 주겠노라고 자신을 죽이라고 한다면? 강간을 당한 여성도, 아내를 잃은 남성도 범인을 직접 죽일 수는 없다. 법은 피해자에게 복수를 허용하지 않는다. 사법제도만이 가해자를 벌할 수 있다.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기 때문에





(여기부터 강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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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앙귀스트가 처한 선택은 보다 어렵다.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분열된 자아가 화장을 지운 자기 자신임을 믿을 수 없기에 아니 선택의 여지는 점점 없어지고,  스스로가 죽던가, 살인자가 되던가 둘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내재되어 있는 추한 자아가 물리적으로 실체화되어 있다면, 추한 자아와 함께 화장한 자신도 함께 죽을 테지만, 그가 믿는 것처럼 그런 추한 자아는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았다면, 통쾌하게 아내에게 복수하고 살인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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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을 때만 해도 리뷰를 쓸 때 썰전 연상작용으로 노회찬 의원이 생각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관련없는 일들이 서로 보이지 않는 영향을 주고 받으며 흘러가는 것. 우아하게 미끄러지듯 물 위를 떠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백조나 오리가 보이지 않는 물 속에서 끊임없이 발차기를 하고 있음을 종종 간과하듯 역사서에 등장하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그 사건을 그러니까 역사를 가능하게 했던 보이지 않는 발차기는 자주 생략된다. 


기무사 문건을 통해 드러나는 사실은 지금은 추억처럼 회상할 수 있게 촛불 정국 중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우리를 뒤로 회전하는 역사의 바퀴 위에 태워 놓을 수도 있었을 흉괴와 반역의 음모가 숨어 있었을 수도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리 춥지 않던 12월 첫째 주 주말 혜화에서 광화문을 향하던 느슨한 대열과 간간히 외치던 구호 틈새에 한 꼬마 아이가 엄마에게 묻던 질문이 기억난다. ‘엄마 그럼 우리 역사책에 나오는거야?’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 개개인들의 하나 같은 바람이 한 장소에서 우리라는 동질감을 형성하던 순간은 분명 역사의 흐름에서 물결의 방향과 속도를 결정했고, 그 작디 작은 아이의 소망까지도 민주주의를 지키며 거역할 수 없는 어떤 흐름을 따라 유유히 흘러가던 역사 속 발차기의 일부였음을 우리는 안다.  















역사는 무엇일까. 영웅과 왕들 혹은 정권의 핵심에 섰던 인물들이 만들어낸 굵직굵직한 변화를 적은 사실들이 바로 역사 라고 말하는 것의 전부는 아니다. 바로 이 말을 하고자 저자 유시민은 2천5백년 전 헤로도토스부터 투키디데스, 사마천, 이둔 할븐, 랑케, 마르크스,신채호,백남운,김부식,에드워드 카, 슈팽글러,토인비,헌팅턴, 다이아몬드와 하라리까지 인류 역사를 기록한 역사가와 역사 학자들을 소환하고 그들이 남긴 역사를 살펴본다.



이 중, 서양서에서는 자주 등장하지 않는 이븐 할둔의 <역사서설>이 낯선데, 원전은 규모면에서도 방대해서,  <성찰의 책>이라 불리는 7권짜리 31부작 역사서다. 국내에는 영어으로 된 영역 축약본<역사서설>과 원전 번역의 무깟디야 1, 2권(소명출판) 두 권이 나와있다. 서양에서는 20세기 중반에서야 알려진 이 책은 14세기에 집필된 책이다.  어떤 분야의 역사를 접해도 서양사에서는 중세의 약 1천여년이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뭉텅이로 빠져있는데, 14세기라는 캄캄한 암흑만 연상되는 시대적 기록이라는 점에서 이상한 경외감도 생긴다. 여기서 저자는 14세기 이슬람 문명은 중국 문명과 만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윤리 규범을 만들어 냈음을 주목한다. 


14세기 이슬람 문명과 중국 문명은 만나지 않았다.언어 문화 종교 정치 체계가 완전히 달랐다 그런데도 국가권력의 존재 의미 군주와 백성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서 거의 동일한 윤리 규범을 만들어냈다. (p113)


작가 유시민이 소개하는 역사서들은 여기 저기서 이름을 많이 들어본, 그러니까 살아 있을 때 언젠가는 한 번쯤 원전을 읽어보고자 하는 소망을 품어볼 듯한 아주 유명한 역사서들이다. 어떤 건 2500년 되었고, 그에 비해 어떤 건 갓 출간된 신간에 해당하는 2~3년 전 혜성같이 나타난 책이다. 인류 문명은 시간과 공간의 어디쯤에서 한번씩 역사가의 시선에 잡혀 텍스트로 변환되었고, 우리는 살아남은 역사가의 눈을 통해 역사를 본다. 이 들 중 어떤 역사가(랑케)는 사실만을 기록하는 것이 역사가의 일이라고 한다. 유시민이 랑케를 이 책에 소개한 것은 랑케의 주장과는 달리 역사가의 일은 사실만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며, 역사가의 시각을 남기는 것이라는 걸 반면교사를 통해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팩트를 있는 그대로 사실대로 기록하였다고 한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망각의 철칙이 지배하는 시간의 왕국에서 팩트는 상상의 영역에 조금씩 먹혀버린다. 어떤 기록이라 하더라도 그 기록 속의 팩트와 팩트 속에서는 시대와 공간이 부여하는, 당연해서 기록에 빠진, 생략된 디테일이 있기 마련이다. 넘쳐나는 팩트들과 조화롭게 하나되어 온 배경과 디테일은 시간과 공간 이동을 하면서 다른 맥락 속에 놓이게 된다. 역사가는 이것들을 당대의 독자가 이해하는 시점에서 현대의 가치관과 배경 속에 배열하여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통합을 시도하는 것이다.


많은 역사책을 다 읽으면 좋겠으나 역사가와 역사학자이거나 역사에 푹 빠진 독자가 아닌 맥락 파악이 어려운 고전 역사서들을 두루두루 섭렵하기란 쉽지 않다. 시간도 이해 능력도 좋은 역사서를 고르고 읽고 해석하는 안목도 모든 것에서 부족함을 느끼는데, 유시민의 이 책은 나같은 비전공자와 역사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지 못한 일반인이 그 대상이다.  이 책을 통해 유시민은 역사가의 역할을 탐구한다. ‘역사는 사실 넘어  문학적 상상력과 역사가의 해석이 결합된 컨텐츠’라고 하는 것이 여러 역사서들을 탐구하면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 contemporary history 라고 선언한 크로체를 인용하며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대의 눈으로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 ‘역사가의 임무는 기록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 (역사란 무엇인가 36쪽 이 책 232 재인용) 에서 더욱 뚜렷이 역사란 현재를 해석하는 하나의 방법임을 동의하게 된다.











역사가는 과거 사실의 일부만 알 뿐이며, 기록한 사람이 알았고 중요하다고 여긴 일부 사실만 보여준다.. 역사적 사실은 평가와 해석이라는 주관적 요소의 세례를 받고서야 무언가 말할 수 있다 (p231 요약)


망각의 철칙이 지배하는 시간을 왕국에서 장수의 축복을 누리는 쪽은 역사학자가 아니라 역사가였다 불공평 하지만 어쩔 수 없다 219


역사가도 사회적 현상이며 자신이 속한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그 사회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대변한다. 역사가는 이런 자격으로 역사적 과거의 사실을 연구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57


그러니 역사를 연구하려면 먼저 역사가를 연구하라 역사를 연구하기 전에 그 역사가 살았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살펴보라 역사란 무엇인가 71


인류가 추구하는 구체적인 목표는 역사 외부에 있는게 아니라 역사의 과정에서 생겨난다. 나는 인간이 완전하다거나 지상천국이 오리라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도전하고 성취해 냄으로써 만 그 정체를 밝히고 타당성을 증명할 수 있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진보, 우리가 상상할 수 있거나 상상할 필요가 있는 한계에 굴복하지 않는 진보일 가능성에 나는 찬성한다. 그러한 진보의 개념이 없이 어떻게 사회가 생존할 수 있겠는가 역사란 무엇인가 179쪽


 이중 주차의 안쪽에 유배되어 있는 오래된 토인비에 대한 내용을 보니 반가왔다. 한발 더 나아가 ‘사실을 토대로 문명의 흥망성쇠를 지배하는 일반 법칙을 찾아 흥미로운 드라마를 만드는 방식으로 문맥의 역사를 서술했다(p257)’고 한다.  그는 역사를 하나의 창작의 영역으로 보았다.










사실의 선택 배열 표현 그 자체가 창작의 영역에 속하는 작업이다. (역사의 연구 토인비 70~71쪽, 재인용).


내가 살아간 시대의 무엇이 역사에 남을까. 촛불을 들던 아이는 역사서에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아이 개인의 이름과 사진 아무 기록도 남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촛불을 들던 작디 작은 마음들은 합쳐져서 힘이 되고 역사 속에 스몄다. 역사를 움직였음을 동력, 아이가 커서 훗날 자신의 이름과 얼굴은 역사속에 나오지 않지만, 후퇴하고 있던 민주주의가 방향을 틀던 작은 순간 속에 자신이 있었던 기억을 간직할 것이다. 


명복을 빈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했던 이미지가 그토록 비극적인 마감으로 충격을 던질 줄 누가 알았을까. 나라를 거덜내고 양민을 학살했던 인간들은 대대손손 천수를 누릴 듯이 당당한데..훗날 역사는 무엇을 말할까. 다만 그가 추구했던 정의의 가치가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빛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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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7-28 1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 두 번 읽었네요 전 CREBBP님이 역사전공자인줄 알았습니다 ㅎ

CREBBP 2018-07-28 16:46   좋아요 1 | URL
과찬이시지만 날아갈듯 기쁩니다. 댓글 정말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