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유래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톨킨의 반지의 제왕,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그리고 르귄의 어스시 마법사는 세계 3대 판타지라는 말이 떠돈다. 그만큼 많이 읽혔다는 소리인지, 판타지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소리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이 '3대' 시리즈라고 하는 세 작품들 중 《반지의 여왕과 나니아 연대기에 비해 어스시의 마법사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영화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어스시 마법사가 영화화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영화는,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만든다고 해서 르귄이 승낙을 했는데,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닌 그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가 이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 머나먼 바닷가를 원작으로 해서 게드전기를 만들었는데, 평단과 흥행 모두 "망했어요"였다. 일본을 제외하고는 100만달러를 유일하게 넘긴 나라가 한국과 프랑스인데, 한국의 경우 23만 정도였다고 하니 세계적으로는 대략 얼만큼 망했는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내가 이 영화를 르귄 원작의 영화로 치지 않은 이유는 영화가 망해서가 아니다. 르귄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영화는 내 영화가 아니라고 했을만큼 원작을 크게 훼손시켰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2 부작 드라마로도 만들었다고 해서 찾아보니 유튜브에 돌아다녀도 누가 저작권 시비를 걸 만한 가치도 없을 만큼 사실 여기 언급할 언급할 가치도 없어 보이는 성인물(?)의 일종 같다. 


일단 반지의 제왕이나 어스시의 마법사 수준으로 대형 실사 영화화가 되지 않은 이유는 주인공의 피부색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자기들 스스로가 하얗다고 생각했던 백인들이(내 눈에는 백인들 피부가 하얘 보인적이 별로 없다. 실제로 아이들이 아닌 경우에는 죄 태워서 구리빛을 갖고 싶어하는 인간들이 구리빛 대신 벌겋거나 뭐 여러 지저분한 색을 만들고는 하얗다고 하는 거 같다). 지금은 영화도 그렇고, 드라마도 그렇고 많이 달라졌지만, 오랫동안 헐리우드 영화판을 주도하는 곳에서 백인이 주인공이 아니면 전세계의 관객이 작품을 외면할 것이라 생각해서인지, 백인이 아닌 인물이 주인공이 되는 걸 아주아주 꺼려했을 것이다. 주인공의 피부색이 '순수 백인 혈통'이 아닌 경우 대개 저자와의 협의로 영화가 흥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인공의 인종을 바꾸는 경우가 많은데, 어스시의 독자들과 르귄 저작권이 이를 허락할 리가 없다. 여기서 주인공의 색은 '붉은'색으로 나온다. 


그런데, 사실 나는 르귄의 열렬한 팬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피부색을 붉은 색으로 묘사한 부분이 묘하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건 백인의 눈으로 볼 때 원주민들의 피부색을 지칭하던 색이었던 거 같고, 그런 색의 묘사 자체 역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이 소설은 수십년 전에 쓰여졌고, 그 때의 사고 방식과 지금은 다를 수 있으니까, 그것을  문제삼을 필요는 없다. 어쨌든 백인으로서 르귄의 소설 속 우위를 점하는 캐릭터는 백인이 아닌 경우가 많다. 어릴 때부터 인류학을 전공하고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인권에 헌신했던 학식있는 부모님들에게서 영향을 받았고, 자라면서 함께 보아온 아메리칸 원주민과의 교감 그런 것들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르귄은 페미니즘 작가로도 알려져 있는데, 사실 이 소설은 르귄의 초기 소설 10년, 페미니즘에 영향을 받기 전에 쓴 소설이라,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여성 배제(?)적인 관습을 그대로 수용했다. 패미니즘을 주도하는 SF 소설가들에게 당연히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면을 다분히 많이 갖춘 소설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주인공을 키워준 여자 마법사에 대한 설정이 그렇다. 후에 마법사로 성장하는 주인공 게드의 능력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키워준 마법사 이모는 그저 작은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잘한 마술만을 펼치는 소시민적 마술사로만 그려질뿐 별 비중이 없다. 작품 전체에서 다른 여성의 비중도 거의 없다. 오죽하면 명예남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향후 르귄은 철저한 자기의 작품 비판을 수용하고 진정한 페미니즘을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작품 세계에 돌입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소설의 내용과 분위기는 대략 이렇다. 거대한 대양 위에 점점이 박힌 군도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용이 나타나고 배와 바람만이 섬 사이의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 마법사들이 각 섬 혹은 각 마을마다 배치되어 마을의 대소사와 질병 등을 관리한다. 마법을 통해 마을을 위기에서 구한 게드는 그 마법의 에너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게 되었다가 위대한 스승을 만나지만, 그저 조용하고 고요한 삶을 사는 스승을 뒤로 하고 더욱 강력한 마법을 갈구하며 마법학교로 가고 거기서 뛰어난 능력으로 마법의 힘을 과시하지만 강력한 힘을 지닌 그림자의 존재와 맞닥뜨리게 된다. 


해리포터의 마법학교 이전에 이미 마법학교가 주요 서사의 배경으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마법사의 돌도 나오고, 볼더모트의 이름 대신 you know who라는 불리던 상황이, 이 소설에서 사물의 진정한 이름에 그 힘이 들어있다는 진명 사상의 모티브와 연결된다.  이 정도면 르귄 측에서 롤링을 저작권 침해로 고소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르귄 역시 마법적 요소들을 수없이 많은 신화와 이전 작품들에서 차용했다고 하고, 해리 포터 팬들의 규모와 영향력을 봤을 때 이런 소리 했다가는 돌맞기 쉽상이라 함부로 표절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가 조심스럽고, 무엇보다도 작품의 결이 매우 다르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아야겠다.


이 소설을 영화화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전체적인 주제와 완벽한 합일을 이루는 결말을 스펙터클한 엔딩과 선악의 선명한 구분을 필요로하는 영화적 관점으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화화를 하려면 선과 악이 명확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다. 르귄 작품의 위대함은 바로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마법의 능력을 알게 된 주인공은 자신을 따라다니는 악의 그림자와 대면하고, 이후로 그 그림자에게 쫓겨다닌다. 쫓기거나 무언가를 쫓고, 길위의 무언가를 향하는 여정 속에서 여러가지 모험을 하는 이야기들은 초기 르귄 작품의 한결같은 특징이다. 쫓기고 또 쫓기는 게드는 위대한 스승의 조언으로 그림자와 대면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쫘잔... 그가 그림자를 대면하기로 마음먹고 그림자를 쫓기 시작하자 그토록 자신을 위협하던 그림자는 이제 도망을 간다. 


결국 이 소설은 그림자의 존재를 확인하는 길고 긴 여정이다.  십대들을 위해 처음 쓰였다고 하는데, 선과 악의 이분법에 익숙한 어른들에게 더욱 감동스러운 엔딩을 주는 책이다. 그림자는 무엇일까를 알게 되는 순간, 르귄이 인도하는 세계, 관습을 깨고, 편견을 깨고, 짧은 진실 같은 것이 스치쳐 지나가는 순간을 대면하게 되는 게 그것이다.  그림자의 실체는 이 책 전체를 통해 주인공이 찾는 과정이고 주제다. 


그림자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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