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90분 : 기억해줘, 우리의 마지막 시간
케이티 칸 / 북로그컴퍼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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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 인터스텔라, 시간 여행자의 아내 등등 내가 좋아하는 최고의 영화들과 비교된다는 찬사의 소개글만 없었어도 나름대로의 가치를 찾아 읽었을텐데 그런 작품들과 비교를 하려니 실망스럽다. 그런데 소개글을 다시 자세히 보니 이 작품들과 버금가는 작품이라는 소리가 아니라 이것둘을 모듀 합쳐놓은 듯한 작품이라는 소린데 그 점에 있어서는 동의가 되긴 한다.

사랑하는 연인이 우주선에 올랐다가 추진기도 없이 우주선에서 떨어져나왔는데 산소통에 남은 시간은 딱 90분 뿐이다. 마션과 비교되는(아니 합쳐놓은) 부분은 우주에서 살아남기를 시도하는 부분이다. 다만 그들에게는 감자응 심을 땅도 공기와 온도 등의 생존 환경을 만들어줄 돔도 없이 무한한 우주의 허공속을 유영하고 있고 디딜 땅은 커녕 공기 조차 없어서 우주선으로 돌아갈 수도 없이 둘이 묶인 끈과 통신 장비에 의지해 서로 함께 유연하며 대화가 가능하다. 둘은 함께 남아 있는 시간을 카운트하며 어떻게든 살아남을 궁리를 하는데 그러면서 둘의 만남과 이 우주 속에서 미아가 되기까지의 사연이 플래쉬백된다.

핵전쟁후 미국은 폭망하고 유라시아 대륙 전체가 새로운 유토피아를 표방한 새로운 개념의 사회를 건설했는데 이 사회의 가치 이념은 철저한 개인주의이다. 개인이 완전하게 새인으로서의 자유와 가치를 누리려면 가족이라는 예속에서 벗어나야 겠다는 게 이 사회의 결단이라 아주 어린 나이에 독립을 하고 교육을 받으며 3년인가에 한번씩 거주지를 이동하면서 살도록 되어 있다. 


오웰의 1984가 생각나는 체제지만 자칭 유토피아적인 세계에 사는 주민들은 정부의 정책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법규룰 준수하는 편이다. 일찌감치 가족을 떠나 독립을 하고 여러 나라 말을 배우면서 각자가 살도록 결정된 곳으로 늘 이주하는 삶을 꾸리고 늘 새로우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참된 유토피아라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이상스러운 규율은 연애와 결혼이 일정 나이에 다다를 때까지 금지되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일정 나이라는 나이가 뭐 18세 20세 이런 수준이 아니라 40세(?) 근처로 매우 높다. 그 이전에도 남녀가 가볍게 만나고 섹스를 할 수는 있지만 한 사람이 이주하면 파트너로 따라갈 수가 없으니 자연스레 짧고 즉훙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90분 후면 산소가 떨어져서 죽을 상황에서 서로의 관계를 되돌아보묘 세세 콜콜 연애 감정의 세부 사항을 교차 편집 형태로 플래시백을 하다 보니 이 소설 자체가 SF 재난 소설인지 연애 소설인지 구분이 모호한데 그 쟝르상의 모호함이 딱히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재난을 다루는 급박함은 지리멸렬한 로맨스 파트로 흡입력을 떨어뜨리고 로맨스 자체는 갈등과 의심 신뢰 등의 사랑의 본질을 건드리며 갈등 관계를 건드리다 보니 로맨틱하지 못했고 작가가 제시한 오웰적인 유토피아는 그닥 설득력을 전해주지 못했다.

결말 부분이 흥미로워서 별점을 좀 더 주고 싶으나 쓰다 보니 앞부분을 읽으면서 느낀 점들이 더 부각되는거 같아 평가가 좀 박해졌다. 오픈 결말이라고도 할 수 있고 서로가 바랐던 결론이었을 수도 있다. 처음부터 둘이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은 지극히 희박하다. 로맨틱 소설인지 SF 소설인지 헷갈리는 진행 속에서도 호맨틱에 별로 흥미가 없는 독자가 끝까지 책을 들고 있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마션처럼 이 둘이 어떻게든 살아남게 되는 과정 그 어떤 숨어있는 반전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작가는 우여이 아닌 엔지니어적 과학지식과 상상력을 결합하여 두 사람이 혹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여로 시도들을 제시하였고 마지막까지 가능성을 열어두었지만 뻔한 엔딩이 아닌 사랑의 완결에 방점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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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최고 흥행 히트를 쳤던 영화 아바타는 표절 문제로 꽤 시끄러웠었다. 첫번째 표절은 제작사의 전 직원이 재직 중에 썼던 이야기인 <K.R.Z. 2068>이 <아바타>와 연관이 있다고 주장이다. 두번째는 제랄드 모라우스키의 작품 <Guardians of Eden>을 영화화하기 위해 제임스 카메론과 여러번 미팅을 했지만 무산되었는데, 아바타에  작품을 베꼈다는 것. 이 작품의 내용은 사악한 광산업자가 자신의 탐욕을 채우고자 자연의 우림을 파괴하고 원주민과 대립하는 것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출처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235 ). 실제로 법정으로 이어진 표절 시비보다도 [포카혼타스+늑대와춤을]의 결합이라는 일반적인 시각에 더 동의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굳이 원조를 찾자면 폴 앤더슨의 <조라고 불러다오>라고 볼 수 있다. 어쨌든 표절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두 곳에서 찾을 수 없는 아바타의 가장 독창적인 파트가 바로 아바타의 몸을 원격으로 조정한다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아바타의 원격 조정이라는 작품 전체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되었던 가장 중요한 파트가 바로 이 폴 앤더슨의 중편 <조라고 불러다오 call me joe>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내가 애정하는 명예의 전당의 중편 모임인 3편 첫번째 작품이다. 작품의 선별 과정과 인지도 등을 모두 종합해봤을 때, 명예의 전당에 수록된 작품 자체가 SF 클래식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유명한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카메론이 이 작품을 안읽었을 리가 없다.


영화 아바타는 여러가지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SF적 부분의 가장 핵심적인 파트인 아바타 제어 기술과 동기 등의 모든 부분이 바로 이 소설에서 그대로 가져왔음을 읽고 나서 알 수 있었다.  일단 폴 앤더슨의  call me joe는 SF 명예의 전당의 중편 10여 개에 선택된만큼 클래식에 가까운 SF 중편이다. 인터넷 리뷰 사이트들을 뒤져보면 실제로 이 소설을 읽은 독자의 상당수가 아바타를 본 후, 카메론이 폴 앤더슨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보고 있다. 내 경우 아바타는 관람한 지 엄청 오래되어 자세한 디테일을 기억하지는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참 후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아바타의 원작이라고 착각했을 정도다. 컨셉상의 유사성이 있다라거나 영향을 받았다고 하기에는 너무 전체적으로 구조적으로 많이 유사했다. 언제나 영화화 할 때 삽입되는 로맨스 파트만 제외한다면 결말까지 거의 비슷한 구조를 따르는데, 그 연애파트 마저도 포카혼타스와 비슷하다고 하지 않는가. 뭐 연애가 다 그렇지, 


우선 아바타를 조정하는 조정자가 장애를 가졌다라는 점이 같다. 휠체처를 타고 다니는 주인공이 아바타의 몸을 입고 자유롭게 훨훨 날다시피 다니는 장면은 내게만 강렬하게 각인된 기억이 아닐 것이다. 이 소설에서 앵글시는 가슴 아래의 몸이 거의 마비되었고, 아바타(물론 아바타라는 용어는 없다)의 몸을 가졌을 때 목성의 원시인이 되어 자유롭게 된다. 이 소설은 아바타라는 용어를 보편적으로 사용하기 이전에 쓰인 소설이다. 컴퓨터는 존재했겠으나 집채만한 크기의 진공관들이 수학 계산이나 겨우 했을 성능을 보였던 시기쯤에 쓰인 이 소설이 아바타에서 보여준 현란한 디테일을 모두 서술한 것은 아니지만 가상현실이나 게임 공간 같은 건 꿈도 못꾸던 시대에 오로지 상상만을 바탕으로 이러한 소설을 쓸 수 있었던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두번째 유사점은 공간적 배경이다. 영화 아바타에서 껍데기뿐인 아바타를 보내는 곳이 미개척 우주다. 조라고 불러다오에서는 개념적으로 아바타와 동일한 인공 목성인인 조를 목성으로 보내 중증 장애를 가진 앵글시가 그를 조정한다(인공목성인=아바타). 앵글시가 있는 곳은 목성의 다섯번째 위성에 설치한 돔으로 보여지고, 헬멧을 쓴 채 조가 되어 목성 탐사를 한다. 이 두 작품 모두 어느 미개척 행성의 환경에 살아남을 수 있는 몸체를 보내 장애를 가진 인간에게 그 조정을 맡긴다는 설정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친 유사성이다.  아바타에서는 지구에 없는 어떤 자원 채취를 목적으로 인공으로 태양계가 아닌 다른 계로 여행을 가지만, 이 소설에서는 목성에 보낸다는 사실이 다를 뿐이다.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사람이 살지 못하는 우주 행성의 탐사와 개발을 목적으로 인공 꼭두각시를 보낸다. 그런데, 목성의 대기와 압력 등에 적합한 목성인은 실제로 목성에 거주하는 생물체가 아니다. 아바타처럼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거주민이 목성에는 없다. 인류와 같은 개념의 생명체는 없지만 목성의 높은 중력과 기압 온도 같이 혹독한 자연 환경에 적응한 강철같은 바디를 가진 생물이 암모니아 비를 맞고 수소 같이 그 행성에 존재하는 공기로 호흡하며 살아간다.  꽝꽝 얼어붙어 돌처럼 딱딱한 얼음을 조의 몸을 가진 앵글시가 제련하여 무기와 도구들을 만들며 분투하는 장면은 아바타의 아름다운 정글 만큼이나 인상적이다.


세번째로 쓸모없어진 지구인으로서의 육체를 버리고 새로운 행성에서 한없이 자유로운 육체를 선택한다는 결말의 필연적 유사성을 꼽을 수 있는데, 사랑을 위해 나비족의 아바타가 된 제이크 셜리보다는 오히려, 막지 못할 죽음을 통해 진정한 (인조) 목성인 조와 결합하여 아예 조가 되어 버리는 이 작품의 앵글시가 훨씬 설득력과 통찰을 준다. 아바타는 원주민 나비족과 유사한 아바타를 DNA 조작으로 만드는 데 비해, 이 소설의 조는 순수하게 인간이 창조한 완전히 새로운 생명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조는 혹독하기만 할 거라고 추측한 목성의 환경에 적합하게 창조된 인간이므로 그곳에서 앵글시라는 인간이 갖는 경험과 지식을 흡수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그곳에서 진화하며 생명을 이어가게 되는 설정이다.(조를 돕기 위해 다른 목성인들이 계속 투입된다. 그들은 더이상 앵글시에게 조정되지 않으며 조에게(조가 된 앵글시?) 지식을 전수받으며 목성의 인류가 된다.


표절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사실 이 이야기에는 또다른 기원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클리포드 시맥은 우리나라에서 종이책으로 출간된 적이 없는 SF 작가인데, 그의 단편 작품 중 <desertion>이 이 작품과 유사성이 있다. 클리포드 시맥의 단편집은 국내 번역 출간된 것이 전혀 없고, 명예의 전당 1편에 허들링 플레이스라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고,  두 개의 이북 단편 전용으로 다섯 개의 작품이 위즈덤커넥터와 미니문고에서 번역 출간되어 있다. 어렵게 텍스트를 구해 그 작품을 읽었는데,  목성 탐사라는 점과 아바타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는 설정이 있다.  지구의  1천배나 되는 압력(중력?) 과 끊임없이 내리는 암모니아 비 등, 혹독하고 끔찍하기만 한 새로운 행성에서 호흡과 생존 가능하도록 해주는 변환기가 있고, 그 변환기를 통해 몸이 다른 생명체로 변환하면 직접 목성에 내려가는 설정이다. 지구는 더이상 생존 불가능한 곳으로 변해가고 있고, 식민행성을 개척하고 있는 중인 이 세계에서 이 변환기는 이미 성공하여 우주 곳곳에 식민 행성을  개척하고 있지만 목성에 보내지는 사람들은 보내는 족족 돌아오지 못하자, 책임자가 직접 자신의 개와 함께 목성에 간다. 왜 그동안 보낸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했는지를 직접 깨닫게 되는 순간, 그동안 알고 있던 목성의 이미지와 진실의 차이를 깨닫는다. 새로운 진실을 마주한 순간의 어마어마한 충격은 세월의 간극을 초월한다. 


SF는 소재 자체가 상상력에 기반한 것이기에, 처음 그것을 생각해 낸 사람의 기여가 중요하다는 게 내 지론이다. 처음에는 엄청나게 새로운 아이디어였다고 하더라도 계속 재생산되면서 아예 장르가 되기도 한다. 최초의 소설이 아름답고 우아하고 기술적으로 변환시켰다고 한들 구조와 아이디어 철학 등의 모든 것이 유사한 오리지낼리티에 대한 기여를 인정하지 않은 채로 최초의 아이디어 자체가 모두 자신의 상상력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도덕관을 드러내놓는 일일 뿐이다. 내가 전문가도 아니고, 표절인지 아닌지를 심판하고 싶지도 않지만, 뒤늦게 폴 앤더슨의 작품을 읽은 후 영화 아바타에 대한 배신감과 SF 팬들의 비난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오디오 드라마 시맥 desertion 의 유튜브 사이트

https://www.youtube.com/watch?v=WYOk9D0Zw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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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 더 초이스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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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 더 판타지 


오버 더 판타지


전작인 오버 더 호라이즌에 실린 작품들의 연작을 이루며, 그것들과 주제의식과 세계관을 공유한다. 현실의 어느 중세 시대와 비슷한 배경이지만, 판타지적 존재들과 함께 어울어져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사건들이 동력이 되어 서사가 진행된다. 하지만 결국 딜레마로 가득한 세상에서 사고 실험을 하고,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곳은 바로 현실의 삶이다. 작가가 정교하게 창조한 세계가 현실적 입장에서 볼 때 충분히 마법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를 가득 담고 있지만, 그 속에는 또다른 판타지가 존재하며, 오버 더 시리즈의 전작들에서처럼 판타지가 그어놓은 판타지 속의 판타지와 분리되어 있고, 경계선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한다. 위어울프들이 늑대로 변하고, 뱀파이어 법관이 낮에는 둥둥 떠다니는 관을 타고 다니고, 나무가 책장 모양으로 자라는 판타지적 세계지만, 그 곳에서 바이올린이 죽고, 마법사가 대를 이으며 마법의 세기가 커지고, 개양이가 태어나는 일들은 모두 비현실적으로 비춰지며 더더욱 부활이란 가당치도 않은 믿음으로 치부되는 곳이다. 그러나 연작을 통해, 오버더 시리즈의 서사와 주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며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던 그 세계관 내의 경계를 지난 시리즈에서는 희생을 치르며 지키는 것으로 보였다. 음악은 죽지 않았고, 마법은 세계를 파괴하기 위해 계승되지 않으며, 개양이들은 그냥 자기 길을 간다. 그렇다면 부활은? 아이러닉하게도 지켜져야 할 것은 바로 죽음. 부활없는 죽음. 훼손되지 않는 영원한 죽음이다.



삶과 죽음, 부활 


제국의 한 개척 도시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다룬 소설로, 폐광의 무너진 환기구에 갇혀 열하루 만에 시체로 발굴된 6세 서니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죽은 자가 있다면, 남겨진 자가 있고, 그 죽음을 소유한 자들은 죽은 자가 아닌 남겨진 자들이다. 아이의 죽음은 작은 개척도시를 통채로 흔들고, 아이의 부모는 이성을 잃어 독미나리를 먹은 후 부활을 믿기 시작한다. 같은 날 마차 사고로 죽음에서 구조된 덴워드 이카드가 소유했던 장검이 부활의 도구로 부각되면서, 아이의 죽음은 마을을 큰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뜨리고, 오버 더 시리즈에서 막지 못한 더 많은 이의 죽음을 소환하기에까지 이른다. 


전작에서 가장 신뢰하는 친구 케이토의 약혼녀 지데를 죽여야 했던 티르는 비록 그 행위가 보안관보로서 도시를 지키기 위한 직업적이고 정당한 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잠재 의식은 그 살인의 밤을 지우고 싶다. 이야기가 진전됨에 따라  누구도 믿지 않았던 부활은 뭔가를 대가로  지불하고 교환 가능한 선택이 된다. 인간이 부활을 얻는 대가로 지불해야 할 것은 식물을 태우지 않는 것. 불 없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부활이 보장된다면 추운 겨울은 죽었다가 여름에 다시 태어나면 될까. 부활에 대한  찬반 논쟁은 때로 코믹하고 때로는 깊은 철학적 명제를 제시하며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크게는 제국을 지키기 위해 주민과 숲을 파괴함으로써 부활을 막고자 하는 덴워드의 논리와 죽은 자를 부활시키고 싶은 몇몇 주민의 뜻으로 양분되지만, 도시는 불능 상태가 되고, 죽은 지데의 부활과, 그녀가 죽음으로 인해 빼앗겼던 소중한 삶을 목격한 티르는 딜레마에 빠진다. 



원본과 사본, 정체성 , 그리고 나하다.


1인칭 화자는 자신이 티르 스트라이크라며 그 이름을 밝히고, '삼십여년 전부터 티르 스트라이크하고 있다'는 투덜거림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 가 동사가 되는데, 타동사도 아닌 자동사다. 자신을 하다니, 기묘하고 신선한 발상이다. 하긴, 스트라이크라는 이름은 가지고 놀기 좋은 이름이긴 하다.  그런데 지금은 티르 스트라이크하기 힘든 시기란다. '나'라는 유일무이한 정체만이 할 수 있는 사유와 기억과 행동과 표정과 말투 그 모든 행위(행위라는 말 밖에는 그 모든 내가 하는 걸 설명할 길이 없는 게 답답하다)인 내가 내가 되게 만드는 것들을 하기 어려운 시대라는 거다. 이야기의 후반부에 가서야 비로서 '나를 하는 것'이 오버 더 시리즈에서 온갖 (마법적) 종족들이 활개치는 개척도시에서 보안관보로서 ‘나’의 직업적 행위와 고초 뿐 아니라, ‘나’의 전체에 대한 정체성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내가 비누풀인지 티르 스트라이크인지, 둘 다인지 독자로서는 완전히 이해불가능한 상태를 경험할 때, 화자인 티르 스트라이크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자신이 아닌 자신의 모든 정체성을 뒤집어 쓴 정교한 복제품이며 그 본질은 비누풀이라는 걸 알고, 그걸 독자에게 어떻게든 설명하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이 이상한 타자로서의 나와의 동거와 향후 시점의 분리는 점차 식물 전체와 죽은 이들의 복제로 확대된다.  지데를 죽인 티르는 지데의 사본을 원본과 구분하지 못했다. 지데를 사랑한 케이토는 눈앞에서 생생하게 티르 뿐 아니라 자신 스스로가 지데라고 믿고 있는 여성이 사실은 지데가 아님을 증명해 내며 눈물을 흘린다. 위어울프가 팔찌를 벗고도 변신하지 못한다면 정교하지 못한 복제품이다. 자신이 지데라는 믿음까지 완벽하게 복제한 복제품은 변신이라는 본질적 복제에 실패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은 예상치 못한 버그일까. 혹은 반복되는 복제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중유한 본질을 잃게 됨을 뜻하는 걸까.  



부활은 과거와 미래, 파괴와 회복에 대한 주제로 연결된다.  과거에 죽은 자들은 살아나면 이제까지 알고 있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케이토는 사본을 사랑하면 왜 안될까. 똑같은 눈동자를 하고 똑같은 웃음을 짓고, 똑같이 말하고 있는데 탄로난 일부의 정체성의 결핍을 무시하면 케이토의 미래는 다시 행복해질 수 있고, 친구의 약혼녀를 죽였다는 티르의 과거는 지워지는데. 결국, 티르에게 내가 내가 아니라 비누풀인데, 내 정체성과 내 기억을 모두 지니고 있다면 무엇이 나를 비누풀이게 하는가하는 문제가 이 부활의 복제 문제와 다르지 않다. 가장 인상적이면서 무언가가 가슴에 찡하고 박혀오는 듯했던 장면은 다름아닌 10명의, 자신이 모두 서니라고 믿고 있던 서니 복제품 앞에서 누가 더 서니인가의 선택 앞에 직면해야 했던 부모들의 당황한 모습이다. 그들은 이제 서니의 완전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변하지 않는 세계


작은 개척 마을에서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다양한 종들의 개성이 인상적이었다. 오크와 유니콘 뱀파이어 엘프 웨어울프 등 알려진 종들도 있지만 야채 뱀파이어와 카닛 아니제이와 같이 생소한 족속들도 있다. 이들 다양한 족속들의 생물학적 다채로움과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작은 마을에서 어느 족속도 생물학적 혹은 문화적 우월성에 기반한 계급적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형성하고 살아가는 모습은 까마득한 선사 시대에 흩어져 이주하면서 만나는 모든 호모 종의 씨를 말리고 멸종에 이르게 하고 피부색과 얼굴형의 작은 차이로 노예를 구분했던 현실적 인간의 행태와 차이를 보인다. 티르 스트라이크는 인간이지만 어떤 우리 인간이 현실 속에서 누리는 인간으로서의 특권도 없으며 오크인 보안관의 부하직원일 뿐이고 발이 닳도록 마을의 크고 작은 사건을 따라다니며 해결사 역할을 하는 지극히 평범한 개체일 뿐이다. 


조금만 달라도 괴물로 치부하는 인간들의 세계에서 이렇게 다양한 족속들이 인간적인 지성과 시스템을 갖추고 살아간다는 설정은 신화적이면서도 절대적인 신적 존재가 부재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만담처럼 푸근하고 따뜻하다. 작가 특유의 개성있고 센스있는 혼자말과 드립력이 특히 가독성과 몰입을 높인다.  그런데 이 작품은 설사 인간이 더 존엄하다는 인간적 세계관을 대입한다고 하더라도 작품의 서사가 전체 식물계와 대립하는 동물(?)계의 대립구도로 확대되면서 누가 인간이건 누가 ‘괴물’이건 그런 인간 더 존엄의 문제는 지엽적인 게 되어버린다. 


삶이 존엄한 건 유일하게 공평한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부활이 죽음 만큼이나 공평하다면 삶과 죽음의 경계는 낮잠 만큼이나 가벼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리 재고 저리 재고 곰곰 생각하여 역시 죽음은 한 번에 영원에 도달하는 게 덜 골치아프다고 결론내리겠지만 만일 그 선택이, 청천벽력 같은 급작스런 죽음 앞에서라면 어떨까.  전 인류를 대상으로한 투표로 부활의 가부가 결정된다면, 나는 어떤 편에 설 것이고 또 전 인류가 하나의 목소리로 내린 결론은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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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자 사이클 - 자산 시장의 보이지 않는 진실
김영기.이재범 지음, 트루카피 감수 / 프레너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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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온갖 대책을 다 쏟아 내어도 계속해서 아파트가 오르는 이유.. 쉽게 풀어 쓴다면 유동성 자금(달러)이 투자처를 찾아 흘러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집값을 수요 공급의 법칙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한국의 부동산 가격은 국제 부동산 가격과 동반 상승 하락한다. 문제는 저자들이 '비핵심대출'이라 불리는 유동성 달러가 이런 저런 방법으로 알게 모르게 부동산 금융에 스며들고 있기 때문인 것인데 문제는 이러한 유동 자금은 밤나방처럼 약간의 빛만 보여도 몰려들지만 위험신호가 감지되면 서민들에게 치명적인 고통만을 남기고 잽싸게 가장 먼저 떠나버리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큰 줄기는 결국 이런 내용인데 더 전문적인 용어로 알아듣기 쉽게 같은 내용을 여러 챕터에 계속 반복해서 설명한다. 집을 사야할까 말아야할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모두 개별적인 스토리가 다르기 때문에 결국 결정은 자신이 해야 하지만 수요 공급의 법칙 만으로 앞으로 인구가 줄 테니.. 라는 안이한 마음으로 집을 안사기로 한다거나 강남불패라는 미신을 신앙으로 정하고 만일 버블이라면 그게 언제 어떻게 터질 지 모르는 버블에 전재산과 미래재산까지 몽땅 거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

비교적 충실한 내용에 비해 이 책에 대한 별점이 짠데 일부는 경제전문부분에 부정확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고(이 부분은 내가 몰라서 뭐가 잘못됐다는 건지 모르겠고) 또 별거 아닌 내용 예전에 미네르바나 여러 자칭 경제 전문가들이 늘 했던 내용을 새로운 것인양 말한다는 것인데 시대가 변하면 모든 경제 제재나 규칙 흐름 정세들도 바뀌니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업데이트되어야 하고 그게 결국 예전에 여러 번 휩쓸었던 이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더라도 또다시 되풀이되는 순환이라면 또다시 돌다리를 두들겨봐야 할 것 아닌가. 가장 큰 불만은 그래서 어디에 투자하라는거야? 하는 투의 불만인데 드러누워서 누가 먹여주는 떡을 먹다가 목에 걸려 캑캑대어도 호소할 곳 없는 나는 ㅇㅇㅇ해서 10억 벌었다 라는 식의 일화성 자기 운빨 자랑 스토리를 책이라고 써 놓은 제목의 책을 사는 것이 좋겠다. 세상에 책에서 (교과서처럼) 알려주는 부동산 사이트 투자(투기)로 돈을 벌 수 있게 그렇게 경제라는 놈이 만만하다면 정부에서 집값 잡겠다고 그롷게 용을 써도 안잡히는 게 다 쇼라는건가.

아 그리고 집값이 오르는 건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부동산 경기를 부흥시키기 위해(왜 ?) 노무현 정부에서 실시한 (성공적인) 규제들을 차례로 하물어뜨리고 부쉬고 망가뜨린 결과가 달러 유동성 자금의 흐름으로 맞불이 붙은 결과다. 수출도 잘되고 주택대출이 아니어도 전세자금 대출이니 전세니 하는 여러 단계를 통해 해외 유동성자금들이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것. 저자들은 그렇다고 현재의 집값 상승을 딱히 거품으로 보지도 않는다. 주식에 비해 부동산 가격은 안정적이지만 수익은 낮은 편이다. 급등 기간이 오면 정부가 발빠르게 온갖 규제정책을 펴고 다시 안정세로 돌아서는 사이클을 반복하기 때문에 장기로 봤을 때는 물가 상승률에 비교해서 현금을 가지는 것보다는 훨씬 높고 주식보다는 훨씬 안정적인, 그러니까 적당한 수익률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노년으로 갈수록 부동산 자산을 선호하는 것이다. 


내 생각. 언젠가는 꺼질 거품일까? 일본 모델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면 언젠가의 시점부터 향후 수십년간은 빈집이 속출하는 부동산 정체기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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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 - 우주.지구.생명.인류에 관한 빅 히스토리
월터 앨버레즈 지음, 이강환.이정은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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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히스토리는 거의 전 분야의 과학을 비롯하여 역사와 인류학을 총망라하는 여러 줄기의 학문을 서로 연결시켜 총체적으로 거시적으로 역사와 우주를 바라보는 학문이다. 시작은 늘 빅뱅부터다. 학문과 학문 사이에 존재하는 갭과 간극을 좁혀, 서로 연결된 관점에서 해당 학문들의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전체적으로 맥락에서 바라본다.  잴 수도 없고, 어림해서 숫자로 표기해도 그 개념조차 아득해, 억겁인 시간과 공간은 앞으로도 뒤로도 나와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을  순간적이고 찰라적인 존재로 만든다. 빅히스토리를 읽을 때, 안하던 사색의 틈으로 빠지게 되는 이유이다. 


우주는 넓고, 시간 또한 광할하여 빅히스토리가 다루는 것 역시 우주의 먼지만큼이다. 각각의 학문의 영역에서 아주 간략하게 빅히스토리를 바라볼 때, 당연히 각각의 디테일이 소홀히 다루어질 수밖에 없음을 빅히스토리의 창시자라 일컷는 데이비드 크리스천 역시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각기 다른 영역의 학문을 빅히스토리적 관점에서 볼 때 조금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국내외 과학 저술 분야중 가장 잘 나가는 분야는 (내 생각에) 생명공학과 두뇌 과학 정도라고 생각된다. 간혹 우주나 물리 등을 알기 쉽게 저술한 책도 종종 보인다. 하지만 지질학이라면 ? 글쎄 누가 돌덩어리에 그리 관심이 많겠는가. 내가 학교다닐 때는 지구과학이라고 불리던 과목과 연결되기 때문인지, 선뜻 지질학 관련 대중 과학서가 나온다고 해도, 별로 관심이 생길 것 같지가 않다.  그게 그거 같은 돌멩이들의 이름과, 외우기도 어려운 지질연대표에 등장하는 트라이아스가니 실루리아기니 데본기니 하는 부르기도 어려운 이름과 각 시대들의 특징들이 그닥 흥미를 일으키지 않았던 기억 때문인가.


그런 인식의 지질학이 빅히스토리와 만나니 급 흥미가 생긴다. (이 책이 지질학 책은 아니며, 빅히스토리를 다룬다.) 이제껏 내가 접한 보잘것 없는 빅히스토리 독서 목록에서는 주목하지 않았던 지구적 차원의 빅히스토리가 인류 문명과 역사의 맥락과 함께 해석되어 있는 점이 흥미로왔다. 45억년의 지구적 관점의 시간은 100만년이 기본 단위이다.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 시기는 고작 십여만년 전이라니 지구 역사에 있어서는 기본 시간 단위로 표기 불가능할 만큼 짧은 순간에 번성했을 뿐이고, 보노보 침팬치와 같은 유인원과의 분화도 겨우 5~6백만년  전이니, 우주 속 지구가 지금이 아닌 어느 다른 단위의 시간을 흐를 때 쯤이면 전혀 다른 종으로 바뀌어 있거나 사라져 있을 것을 생각하면 인생무상이 실감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맨 처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정말 알지 못한다.



지구는 특별한 행성이다. 지구가 어떻게 생명을 품게 되었을까. 지구 탄생 당시 태양계의  대부분이 수소와 적당햔 양의 헬륨, 그리고 극소량의 다른 모든 원소들의 배합이었던 것에 반해, 지구에는 산소, 마그네슘, 규소, 철 이 네 원소가 월등히 많고 나머지는 우주의 원소 구성에서 우위를 점하는 수소와 헬륨을 포함해서 모든 다른 원소는 극히 미량만 존재한다. 즉, ‘지구는 태양계에서 희귀한 원소들 중 몇 가지를 선별적으로 축적했다(p76)’. 그리고 그 물질들이 바로 지구 역사상 한 줌도 안되는 기간 동안 인류의 진화를 촉진하고 문명을 탄생시키고 우주를 이해하는 능력을 탄생시킨 것이다.


저자는 인간을 구분하는 많은 특징 중 도구, 인공물질, 그리고 컴퓨터 세 가지를 꼽는다. 도구는 자연적인 손과 몸이 할 수 없는 것들을 하게 해주고, 인공물질은 자연물질로는 불가능했던 일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컴퓨터는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게 해주는데,  이러한 세 가지 특징을 석기, 유리, 컴퓨터 칩 세 가지를 예로 들며 각각이 지구가 가장 선호한 네 가지 물질 중 하나인 규소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규소는 컴퓨터 칩을 만들고, 유리를 만들고, 또 인간의 초기 도구인 석기 도구들을 만든다.  날카로운 석기 도구를 만들기에 가장 좋은 물질 중 하나가 바로 규질암이인데, 지구는 규소를 축적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규질암이 있었기에 석기 시대의 도구가 가능했고, 그로 인해 촉발된 도구의 사용이 인간의 뇌와 지성이 발달을 촉진한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구는 철과 마그네슘과 같은 주요 원소와 우리 행성에 있는 소량의 모든 원소들에서 이산화탄소를 분리해내는 생물학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알고 있다.


생명의 탄생 역시, 다른(other) 행성과는 다른(different) 지구의 조건과 작용으로 가능해졌다는 관점을 유지한다. 진정세균과 고세균은 우리와 이들 세균이 서로 다른 것 만큼이나 다른데,  우리가 알고 있는 광합성을 하는 것도 있지만, 철, 질소, 황에서 뽑아내는 에너지를 이용하여 살아가는 미생물도 있다. 열수구에서 탄생한 초기 생명체가 광합성 대신 철, 질소, 황 등을 먹고 살았다. 그것들에게 산소는 치명적인 독이었기에 광합성의 부산물인 산소가 많아지자, 생태계가 교란되었다.  이것은 정말로 놀랄만하고 흥미로운 관점이다. 오늘날 산소부족과 이산화탄소 배출과 관련된 환경문제적 관점에서 볼 때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지구적 관점의 시간 유닛으로 볼 때는 그렇다. 결국 ‘우리는 산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진화한 미생물의 후손이다(206)’.  산소는 또한 산업 문명이 크게 의존하는 엄청난 양의 철광석 만들어내게도 했다.


드문 지구 가설이라는 것이 있는데, 단세포 생물이 다세포 동물로서 공존하기까지 30억 년이 함께 걸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확률에 당첨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30억년동안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다세포 동물로의 진화가 30억년만에 일어났다는 것은,  생명이 필연적으로 진화해 나가는 단계가 다세포 동물이 아닐 거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하고, 아울러 외계 생명체가 있다면 단세포 생물일 가능성이 많다. 광합성을 하는 생명체 역시 드문 가설이라면 산소의 발생 역시 지구에만 있는 특징이 될 거 같은데, 그렇다면 지구인보다 더 진보된 과학 문명을 이룩하여 지구로 여행한 외계인이 있다 하더라도,  산소호흡을 할 가능성이 없으므로 지구가 무력으로 정복하고자 할 만큼 쓸모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까마득한 산소 호흡 조상이 다세로포 진화한 후, 생명체는 다양한 형태의 몸으로 진화했는데, 가장 오래된 형태는 해면동물, 산호초 , 해파리와 같은 방사대칭을 띄고, 우리 선조들은 이런 단순한 형태에서 다양하게 분화되어 좌우대칭을 몸이 되었다. 좌우대칭의 얼굴과 몸은 ‘6억년 전에 갈라져 나와 지금까지 이어져온 몸의 역사적 기록을 보고 있는 셈이다(p210)’.


지질학자가 쓴 빅히스토리의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지각의 변화에 대한 내용이다. 100만년 단위의 시간 속에서 찰라에 불과한 인류의 기록 역사 속에서 지구는 당연히 정지된 것으로 보이지만, 대륙 이동은 계속되고 있는데, 끊임없이 판과 판이 서로 밀어 붙이고 멀어지고  찌그러뜨리고 새로 생성하는 동안 해양 지각이 생기고 없어지고 산맥이 형성되고 퇴적되는 일련의 작용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교과서처럼 딱딱하지만, 1444년 사하라 사막의 남쪽 경계가 되는 녹색 곶인 카보베르데에 도착한, 항해자 엔히크 왕자에게 지원을 받은 포루투갈의 탐험가들은 ‘지금은 적도 근처이지만 4억 5천만년 전인 오르도비스기와  실루리아기에는 남극점이 었던 지점에 있었다(p234)’. 1960년대 초 오르도비스기 빙하의 잔해를 알제리 사하라 사막의 중심부에서 처음으로 발견했던 대륙이 움직일 리가 없다고 믿던 시기였다. ‘빙하의 잔해는 아프리카가 속해 있던 초대륙 곤드와나가 얼어붙은 남극점을 지나 이동하던 시기에 대한 지구의 기억이다.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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