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가 우연히 만드는 새로운 관계를 기존의 범주에 집어넣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거기에서 일반적이거나 공통적인 것을 본다. 반면 당사자들은 개별적이고 자신들에게 특수한 것만 본다—느낀다. 우리는 말한다, 얼마나 뻔한가. 그들은 말한다, 얼마나 놀라운가!˚


영국식으로 보이는 냉소적 유머와 자의식에 가득찬 주인공 케이시 폴이 젊은 시절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두 딸을 둔 40대 여성과 사랑하며 함께했던 한 때를 회상하는 것이 1장의 내용이다. 방학 중 뒹굴거리던 폴은 부모의 성화에 못이겨 테니스 클럽에 입회하게 된다. 테니스 클럽은 중산층 보수당의 인맥 형성 거점 장소로, 부모들은 폴에게 그들의 입맛에 맞는 낙천적 소유의 멋진 크리스틴이나 버지니아 같은 이름을 가진 또래 여성을 만나 교재하기를 원했던 것인데, 폴은 복식 경기에서 만난 미시즈 수전 매클라우드를 데리고 온다. 이후 젊은 시절 수전과 다니면서 생긴 잘잘한 일화들과 그 일화를 떠올리다 가지를 친 다른 이야기들과 그 때 했던 생각들로 전반부의 내용이 두서없이 서술된다. 

대체 20살도 안된 어린 아이와 사귀는 엄마 나이의 수잔은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 수전의 성격은 폴의  회상 속에서 조금씩 드러난다. 어릴 때는 성추행을 당했고,  전쟁 중에 애인을 잃었고, 참전하지 못한 못난이들과 사귀다 결혼한 남자가 현재의 남편 고든이다. 딸 둘을 기적적으로 낳은 후로 남편과의 사이에는 관계가 없고, 서로 눈을 쳐다본 지도 오래 되었다. 폴은 수잔의 남편이 수잔에게 몸이 냉랭하다고 한 것에 분개하며 그녀를 사랑으로 지켜주겠다고 생각하며 약 12년간 함께한 시간을 현재의 시점에서 뒤돌본다.

1장에는 그 여자의 사랑이라는 자극적 소재만큼 자극적이거나 충격적 이야기가 들어있지 않다. 둘이 섹스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폴은 영국 보수적 중산층 계급의 신물나고 뻔한 모습을 위선적으로 느끼고, 수전의 모든 행동과 대화에서 새로운 기법의 유머와 진실됨 그리고 지적인 충만함, 모험심 같은 것들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이 때의 폴의 나이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콜필드 <서부전선 이상없다>의 파울 보이머로, 정신연령과 어른들의 위선에 대한 강한 저항감으로 일탈을 저지르는 농도가 콜필드와 유사하다.

˚나와 수전의 관계는 낡은 규범만큼이나 새 규범에도 거슬리는 것이 되어버렸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서술 도중 자신의 기억과 기억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전하기도 하고 기억의 본질인 왜곡에 대한 사색이 쉴새 없이 끼어드는데, 이러한 의식의 흐름은 작가의 전작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간접적으로 보여준 내용에 불필요한 설명을 얹었다는 느낌이다. 

현재이건 과거이건 어느 공간에서건 유부녀와의 연애는 터부시되어 왔고, 금기였기에, 둘의 연애는 대개 비밀리에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읽다 보면, 이 사람들이 대놓고 연애를 했는가 싶은 상황을 자주 맞닥뜨린다. 폴은 천연덕스럽게 수잔의 집에 방문하여 그 집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수잔의 남편과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오밤중에 찾아가 그 곳에서 자고 싶어한다. 부모가 찾아와서 데려가기는 했지만, 이런 아슬아슬한 연애를 펼치면서도 둘 중 어느 하나도 죄책감을 느끼거나 발각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폴은 수전의 남편이 수전을 냉랭하다고 비난한 것에 대한 대가이며, 가부장적 분위기를 보면서 부부관계도 전혀 없는 이 가정에서 수잔을 구출해야 겠다는 생각 뿐이다. 수전의 결혼 생활이 폭력으로 점철되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 이후에 폴과의 관계에서 형체를 갖출 그녀의 불행의 원천으로 해석된다.

˚나는 수전과 나 사이에 벌어지는 일은 그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서술의 시점이 1인칭으로 시작되었다가 2인칭과 3인칭으로 옮겨지는 것을 주목할 수 있다. 읽다가 어느 순간 시점이 너로 바뀌어져 있는 점이 특이해서 찾아보니, 그 이유는 애초에 작가가 스스로 밝히고 있다.  즉 사랑이 1인칭이었던 순간, ‘나‘의 시선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3인칭으로서는 설명이 불가능한 콩깍지 연애 감정의 일화들을 1인칭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첫사랑은 늘 압도적인 일인칭으로 벌어진다.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압도적 현재형으로. 다른 사람들, 다른 시제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어느 순간 시점은 ‘너‘로 바뀌어있다. 수전과 함께하는 동안, 수전이 겪는, 아니 수전 스스로 자초하는 불행은 폴이 어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반대와 혐오의 시선을 이기고 함께 시작한 삶에서 비록 평탄치는 않을 지라도 행복을 기대했을 폴에게, 수전은 이미 스스로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던 걸까. 나는 그가 수전의 불행을 서술하고, 수전에게서 서서히 멀어져가는 자신을 너라고 지칭하는 시점 속에서 어떤 비난조의 톤이 느껴졌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을 테지만. 나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을 반려자로 선택해야 했던 그 많은 이유를 설명하지만, 너는 네가 스스로 책임져야 할 그 몹쓸 불장난으로 인한 책임을 스스로 설명하지 못해 타자의 입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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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하다가 아들놈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해킹해서 들이다보게 되었는데, 아들놈 보다 한 술 더 뜨는 놈이 아들에게 뭔가를 부탁하고 있었다. 리포트 숙제였던 모양인데, 지는 열심히 책 뒤지고 해서 겨우 마치고 게임하려고 하는데 내가알기로 베프쯤 되는 절친이 자기 어디 놀러가 있는 중이라고 자기 리포트도 써달라고 하는거다. 사내놈들 문자가 길지가 않아서 짧은 말들(주로 욕)로 이어지는 대화를 보고 내가 흐뭇했던게, 싫다고 단호하게 거절을 했던 거다. 그런 부탁 거절하기 위해 구구절절 설명하려면 카톡에 얼마나 길게 써야 할텐데. 싫어 이 OO놈아. 니가 해. 거절하는 사람이 세게 나가니까 부탁하는 사람은 점점 더 구질구질해진다. 인터넷 뒤져서 아무거나 베껴서 이름 만 써서 내달라는 거다. 미친놈 싫어 / 말이 되는 부탁을 해야 들어주지/ 뭐 이런 류의 문자. 하도 끈덕지게 부탁한 터라 나중에 어떡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당연한 거절을 심리적 갈등 없이 당연하게 처리하는 아들의 단호함이 좋았다.

MT(요즘도 그런 걸 가는지 모르겠지만) 같은 데 가면 주로 일하는 사람은 일하고 노는 사람은 놀고 그러는데, 나는 궂이 나서서 일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일하는 사람한테는 같이 놀자 하고 노는 사람들한테 같이 일하자 하고 부추기는 편이었다. 그런데 자기가 해야 되는 걸로 아는 사람이 있다. 남들 다 놀아도 혼자서 뒤치닥거리 하고, 뭔가를 나르고 가져오고 해주고... 그런 사람들은 원래 내 어릴적 할머니처럼 누구한테 뭔가를 해주는게 즐겁고 좋아서 그러는 줄로만 알았는데, 책을 읽다보니 거절하지 못해서, 싫은데도 하는 모양이다.  같이 즐기고 노는데 필요한 일이 산더미같으면 누군가가 일을 해야 하는데, 그 누군가는 모두가 되어야지 한두사람이 되어선 안되지 않나. 그런데 그 한두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으니, 그런 사람들이라면 읽어볼만한 책이 있다. 이하늘의 [거절 잘하는 법]이다.거절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라고 조언하는 게 이 책의 핵심 주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거절을 해야 할 다양한 상황들의 단막 스토리들이 굉장히 공감이 갔다.

여기 나와 있는 사례들 중 화나게 답답한 ‘착한 사람들‘ 얘기가 많다. 아들에게 리포트 부탁했던 것과 비슷한 거가 언니의 친구 자기 소개서까지 써주는 일, 지인의 일을 적극적으로 돕다가 혼자서 모든 일을 덤탱이 쓰고 다 해야 했던 일. 대리 출석도 아니고 대리 수강 부탁에 응한 일, 사내에서 도시락 싸기 귀찮다는 선배의 도시락을 매일 도맡아서 싸싸야 하고, 게다가 한술 더떠 반찬투정까지 받아야 하는 사람, 시도때도 없이 10만원씩 빌려가서 갚지도 않는 친구, 직장녀가 된 딸에게 시시콜콜 잔소리하는 엄마까지 세상은 넓고 마음 약한 남을 이용해먹는 인간군상의 종류들도 참으로 많다. 

이쯤 되면 거절하는 수업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고, 그 사람들을 이렇게까지 이용해먹는 사람들은 양심의 크기가 크고 작은 범죄에도 가담할 가능성이 있어보이는 사람으로 경찰에서 주시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나는 거절을 잘 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거절을 할 때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살다보면 이런 저런 부탁을 받을 일이 있고, 그러다보니 나름 몇 가지 규칙이 생겼다. 

1.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지인이 있다면, 먹튀해도 안아까울 만큼의 돈을, 먹튀해도 안아까울 만큼 아끼는 사람에게 준다는 느낌으로 빌려준다. 그래도 소식 없이 안갚으면 섭섭하더라. 

2. 물건을 사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거절할 건 거절하고, 살건 사고.

- 암OO류의 피라미드는 꼭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사지만, 회원가입이니 한 번만 가보자는 둥의 행동에는 확실하고 명확하게 절대로 두 번 다시 물어보지 않게 의사표현을 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나는 피라미드가 그닥 윤리적인 상행위라 생각하지 않아‘ 이렇게 하면 물러설 것 같지만 이 말은 반론의 여지를 주고 수년간 갈고 닦은 마케팅 기법의 대화에 말려들게 할 가능성이 생기게 한다. 그냥 간단히 ‘나는 절대로 거기 안가, 나를 거기 끌어들일 목적으로 만나는 거 아니라면 그 얘기 그만해‘  섭섭해하던지 말던지. 이렇게 해서 일단 관련 대화를 끝내는 게 상책이다. 종교나 피라미드성 판매는 모두 마찬가지.

- 피라미드성이 아닌데 물건을 파는 경우 : 생계와 관련이 있고, 값비싼 사치품이 아니라면 가깝던 멀던 대개는 사는 편이다. 이건 내 엄마에게 배운 작은 생활의 지혜라고나 할까. 그닥 제품이 좋아보이지도 않는 값비싼 방판 화장품을 쓰기에, 내가 딴거 사다주까 했더니, 아니라고 이거 파는 이가 동창인데, 남편 죽고 혼자서 이거 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내가 단골인데 계속 사줘야한다고.. 1천원 2천원은 그렇게 아끼면서 남을 생각하는 이런 작은 세심함은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힘이라고 믿는다. 상조 서비스를 판매하는 친구가 있다면 들어준다고 손해볼 거 1도 없다.

3. 다른 부탁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거절할 기회도 없다. 
아마도 무례한 부탁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거절당할 염려가 없는 앞에서 언급한 종류의 ‘착한‘ 사람들에게 주로 무례한 부탁을 하는 거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그런지 누가 뭘 부탁하는 걸 못봤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내가 누구에게 부탁을 거의 안하는 거 같다. 대학때 절친이 노트정리를 예술적으로 해서 과의 대표 노트가 되어 돌아다녔는데, 절친임에도 불구하고, 그거 빌려달라는 말이 안나오더라. 아니 빌리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암튼 그친구 정리 기술은 시험 막판에 더욱 효과를 발휘해서, 시험앞두고 머리속에 정리되어 있는 걸, 도표를 그려가며 막판에 자기 정리겸 애들한테 정리해주면 그걸 5분내에 암기해서 시험 잘보는 단골들도 꽤 있었는데, 나는 졸며 흘겨쓴 노트보다는 그냥 책보고 혼자 공부했다. 당연히 점수도 별로. 

현대 사회에서 나는 부탁도 거절도 별로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사회 시스템이 누이좋고 매부좋고 그렇게 부탁으로 돌아가는 게 달갑지 않다. 조금 더 나가면 청탁이 되고, 학연 지연 특혜가 되고 그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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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01-08 1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 제 과세요. ^^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일은 즐겁고 가슴 뛰는 경험입니다. 힘든 일도 있지만 여태까지 쌓아온 지식을 잃지 않고도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유사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 뇌가 굳어져서라고 흔히 그렇게 말하는데, 새로운 걸 배우려면 안쓰던 근육을 쓰면 여기저기 쑤시듯 스냅스의 연결 경로가 익숙하지 않은 연결망을 만들면서 신경신호들이 그 낯선 곳을 지나가는 게 힘든 모양이다. 아무튼 학교를 졸업한 이후 뭔가 새로운 걸 배우는 건 정말 어렵다. 말과 글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기초 암기를 필요로 할 때 특히 그렇다. 나이 들어 뭔가를 배우려고 노력해 보다가 좌절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뭔가를 시작하려할 때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것을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아들러가 말하는 불완전함이란 인격의 불완전함이 아니라 새로 시작하는 일에 대한 지식과 기술에 대한 불완전함입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그 즉시 ‘잘하지 못하는 자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새로 시작한 일이니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게 ‘잘하게 되는’ 것의 첫걸음입니다.˝


60세에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저자는 2년동안 공부해서 조선일보에 서평을 내기도 했다(많고 많은 신문 중에 하필이면 조선일보라니 일본스럽다). 64세에 중국어 공부를 시작해서 현재 중국어 통역을 하는 칠십여세의 독자도 만났다고 한다. 내가 얼마전 시베리아 횡단 계획을 준비하는 남편을 보고 혹시 하는 마음에 러시아어 공부를 시작한 적이 있는데, 그래도 한 두어달 했더니, 러시아 글자를 보면 더듬더듬 읽고 싶고 어쨌든 반갑다 러시아어야 여유가 생기면 다시 시작할께 라고 하고싶을 마음 정도는 되었다.  그 전에 부산에 있는 러시아 거리(?)에서 느꼈던 완전히 생경함과는 다른 느낌일 거 같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주어진 생을 조금씩 잃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대로, 삶에서 생긴 지혜가 쌓여간다는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기시미 이치로는 그리스어를 놓은 지 10년만에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를 번역하여 몇년 전 세상에 내놓았는데, 그 (그리스어를) 잃어버린 10년동안의 시간은 헛것이 아니었다.


˝그리스어에서 멀어진 시기에 아들러 심리학을 배운 것도 그리스어를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치 보조선을 얻은 느낌입니다. ˝


나는 내가 늘 늙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10대 때엔 철모르는 어린 아이가 아니어서, 부모에게 다 큰 것이 그것도 못해 라거나 다 큰 것이 어린 동생에게 양보해야지라는 꾸지람을 들으면서 나이듦을 저주하기 시작했고, 20대였을 때는 10대가 아니어서 책임없는 철모름이 사라진 불안한 청춘을 살아야 해서 불만이었고, 30대엔 이젠 나머지 인생이 결정된 채 이대로 살아야 해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20대가 아니어서 불만이었다. 그 다음엔 나이를 잊기로 했던 것 같다. 아마도.

원제가 ‘마흔에게‘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딱히 마흔에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닌 것 같다. 

˝간병의 현실은 결코 달콤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간병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편이 행복하지 않을까요? ‘간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가 아니라 간병하면서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이 생겼다’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미움받을 용기도 읽어보았지만, 왜 기시미 이치로가 그토록 한국에서 인기인지 잘 모르겠고, 이런 하나마나한 말이 어떻게 위로든 도움이든 되는지 모르겠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은 취향의 문제이지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부모의 간병이 너무나도 힘든 어떤 사람이 책을 읽으며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이 생겨서 기쁘다고 마음을 돌리는 일이 생길 수도 있는지는 의심하지 않기로 한다.

˝아저씨 아주머니의 심리란 상대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면서도 상대를 별개의 인격으로 인정하고 대하는 자세입니다. 상대가 어떤 공을 던지더라도, “그건 이상해”라며 할 게 아니라 “그렇구나”라고 받아들이고, 설령 찬성하지 않더라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해하는 것은 찬성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거기에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면 “이렇게 해보면 어때?”라고 제안할 수 있습니다.˝


사실 얼마 전에 읽은 다른 책에서도 그렇고, 누군가를 자신의 잣대로 평가하거나 자신의 기준으로 행동하기를 조언하려 들지 말고 그렇구나 모드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서로의 공감과 이해, 나아가 신뢰있는 관계의 기반이 된다는 점을 기억해두어야겠다. 

텍스트의 양이 빈약하고, 하나마나한 말들이 많아서 이 책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내게 한 친구가 자기는 이렇게 할아버지 잔소리같은 종류의 에세이들이 늘 가슴을 후벼판다고 한다. 그러므로 기시미 이치로의 베스트셀러 현상을 더는 삐딱한 시선으로 보지 말아야겠다.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하는 잔소리에서 진정 의미와 가치를 찾아낼 줄 아는 사람도 있으니까. 책의 위대함은 읽는 사람 각자에게 다른 의미를 전달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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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01-08 1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기도 제 과세요. 저도 한 시절엔 키릴 문자 독학으로 읽을 줄은 알았답니다. 지금은 다 잊었지만요. ㅠㅠ
 

편지들은 대체로 길지 않았다. 화려하지도 않았고, 격정적 감정에 휩싸여 있지도 않다. 절제되고 압축되고 친근함 속에 안전 거리가 확보된 듯한 그런 문체다. 대대로 대필해주는 집안의 교육이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가끔 느끼는 거북스러운 일본식 표현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책이 있을까 싶다. 츠바키 문구점의 후속편이라고 하는데, 전편을 안읽고 읽었지만 맥락 같은 게 필요한 게 아니라서 상관없이 잘 읽혔다. 처음엔 그냥 시시콜콜 사소한 일상을 일기처럼 엮은 에세이류의 소설이라 시시했는데, 읽을 수록 그 싱겁고 밍밍함에서 잡아끄는 따스함이 느껴졌다. 아마도 주인공이 너무 착해서 착한데 또 뭐 이런 바보같은 인간이 있어 이런 류가 아니라 은근히 이해할 수 있는 빨려들어가는 선함이 그것이다.

편지 사연들도 사실 드라마틱한 전개를 원한다면 훨씬 자극적인 소재로 발전시켰을 수가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는다. 아이를 낳아 버리고 떠났던 엄마라는 작자가 나타나서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막장성 소재는 그렇게 포포의 마음만 어지럽힌 채 소식이 없다. 알콜중독자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를 받은 남자가 찾아와서 이혼을 원하는 와이프에게 답장을 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편지쓸 때, 편지쓰는 것을 구상할 때 포포는 의뢰자가 준 작은 정보에 의지해서 그 사람에게 감정이입을 해야 한다. 꼴보기싫은 남편을 가진 여성에게 감정이입을 했다가 다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남편으로 감정이입을 한다.

오래전 죽은 문인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사랑하는 후지산 이마(이마 선이 후지산 처럼 생긴 여성)의 의뢰는 한편의 코미디 같지만 외뢰인도 대필자도 심각하다. 후지산은 퇴직 후 야스나리 씨가 살던 이 마을 가마쿠라에 이사와서 살며, 같은 경치를 보고 계절을 느끼며 살아간다.

“야스나리 씨를 상상하면요, 이렇게 가슴이 찡하니 아파와요. 그러나 그다음에 몸의 골수에서 달콤한 물방울이 배어나온다고 할까요. 야스나리 씨를 행복하게 할 사람은 나 말고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답니다.”


그녀가 원하는 건 야스나리씨에게서 받는 편지다. 당연히 오래 전에 죽은 야스나리는 그녀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포포가 야스나리 대신 편지를 써준다고 해도, 자신이 의뢰에서 받은 것을 모를 리가 없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건가. 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슨 잔잔한 감동이..

기쿠코 님
며칠 전, 하얀 모자를 쓴 대불은 보셨습니까.
당신이 감기에 걸리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평생 단 한 사람이어도 당신 같은 독자를
만난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또 쓰지요.

-야스나리
추신. 추위를 이기려면 소고기를 먹는 것이 최고입니다.


포포가 사랑해서 결혼하는 남자에게는 아이 큐피가 있다. 포포는 남자를 사랑해서 결혼하려는 것인지 아이가 예뻐서 결혼하려는 것인지 독자로서 헷갈릴 정도로 아이를 자기 인생의 가장 큰 선물로 생각한다. 결혼 인사를 하기 위해 남자(미츠로) 집에 갔다가 비극적으로 죽은 큐피의 엄마 미유키의 사진을 보고, 그 여자를 좋아한다. 둘이 살림을 합치기로 하고 물건을 정리하던 중,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던 미유키의 편지를 보고 화를 낸다. 미유키를 향한 포포의 애틋함이 알듯 말듯 하면서도 따뜻하다. 만일 한 남자를 진정 사랑해서, 그가 사랑했던 삶의 비극, 그림자까지 모두 포용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비극적 죽음이 몰고 온 빈 자리에 자신이 대신한다는 느낌을 미유키의 존재를 거듭확인함으로써 어떤 위안을 얻을 수 있을 지 의문이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츠바키 문구점의 포포는 자신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이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 속에 미유키를 항상 배제하지 않는다. 그리고 조금은 섬뜩한 느낌이지만 미유키가 가족 속에 함께 살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그럴 수도 있겠지. 암튼 일본 사람들의 소설 속엔 이렇게 착한 사람들이 선하게 서로에게 베풀면서 살고 있는데, 왜 역사는 타민족과 타국을 겨냥해 잔혹한 짓들을 했으며 아직도 저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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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열린책들에서 블루 리커버리 컬렉션을 시리즈로 냈는데, 이 시리즈의 표지들이 마음을 끌었다. 열린책들에서 특별히 블루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여덟 개의 책을 냈는데,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나열해보니, 모두 프랑스 현대 작가의 소설이고, 어디로 통통 튕겨갈 지 모르는 유쾌하면서도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들이 있는 중편 분량의 작품들이다. 리커버리 블루 컬렉션의 중 [밑줄 긋는 남자] 외에 [프랑스 대통령의 모자]와 [달리기]를 읽었는데, 각각의 작품 분위기는 다르지만 대략 열린책들에서 어떤 작품들을 함께 모았는지는 알 듯하다. 프랑스대통령의 모자는 그 전에 읽었고 블루 컬렉션에 있는 책들이 취향저격이어서 나머지도 읽을 예정이다. 오늘은 [밑즐 긋는 남자]부터 소개한다. 


스물 다섯의 싱글. 애인없음. 직업없음. 주인공 콩스탕스의 톡톡튀는 재기발랄함과 솔직함, 그리고 엉뚱함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이야기가 어디로 어떻게 튈지 궁금궁금. 빠르게 책장을 넘기다 보니 아쉽게도 이야기가 끝나 있고 해피엔딩이다.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기로 한 상대는 로맹 가리인데 서른 몇 개의 작품만을 남겨놓고 죽었다. 이미 읽은 대여섯 개의 소설을 제외하면 1년에 한 권씩 읽는다고 해도 평생 끌어안고 살아갈 만큼의 갯수가 되지 않는다. 다른 책들을 섭렵해 보기로 하고 도서관에 가서 이런 저런 책을 빌려 오지만 빈번한 시점 교차와 수많은 등장인물에 집중하지 못한 채 안구 운동만 하다가 마지막 책인 [오렌지 빛]을 펼치는데 조금 읽다가 다시 흥미를 잃고 책장을 휘리릭 넘기다가 밑줄 친 부분을 발견한다. 


"당신을 위해 보다 좋은 것이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거나, 혹은 중고 서적을 샀을 때, 이전 사람이 밑줄친 것을 보면, 나 역시 왜 이 사람은 이 부분에 밑줄을 쳤을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이전 독자의 밑줄의 위치에 동의하지 못하거나 혹은 반대로 맞아 맞아 하며 공감하기도 한다. 그렇게 때로 밑줄은 같은 책을 읽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주 약하고 느슨하게 연결한다. 우리의 사랑스런, 심심했던 콩스탕스는 이 밑줄을 계시로 해석하기로 한고 반납을 결정한다. 도서관 직원 지젤은 반납 책을 검사하다가 낙서를 했다며 핀잔을 준다. 억울한 콩스탕스는 펄쩍 뛰다가 자신이 발견한 밑줄 말고 마지막 장에 글자가 써져 있는 걸 알게 된다. 


"도스토옙스키의 『노름꾼』, 좋은 책입니다. 그걸 당신에게 권합니다."(27쪽)


마침 노름꾼은 대여중이고 도스코예프스 특별 전집에도 그 작품이 있을 거라는 지젤의 권고를 사양하고 꾸역꾸역 대여중인 일반판 노름꾼을 찾아 대여를 하고 밑줄을 찾는다. 여러 부분에서 발견된 밑줄은 자신을 사랑하는 새로운 사랑의 등장이라 믿고 설레발을 친다.  집에 와서 밥만 홀딱 먹고 설겆이 한 번 안하고 돌아가던 남친을 차버린 후 아버지와 아저씨와 생일을 보낸 후 외로움에 지쳐 홀로된 처지를 비관하던 중 밑줄은 새로운 사랑을 암시하는 것이 틀림없다. 밑줄은 계속 그녀를 흠모하여 멀리서 지켜본다는 듯한 암시를 준다. 참을성 없는 콩스탕스는 책의 끝에서 가리키는 다른 책을 계속 찾아가며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남자를 쫓는다.


메시지가 끊기기도 하고 궁금증을 참지 못해 지젤을 통해 길고도 절절한 편지를 전달하고자 했지만 뜻대로 밑줄 긋는 남자를 만나지 못하던 어느날. 짜잔 자신이 그 밑줄 긋는 남자라며 나타났는데 기대했던 것처럼 시적이고 괴팍한 천재적 중년이 아니라 다소 소심하고 젠틀하고 배려심있는 평범한 학생이라는 사실에 무척이나 크게 실망을 하고는 돌아선다. 여기까지가 초중반의 내용이고 이후에 잔잔한 반전과 반전이 계속되면서 결국 콩스탕스의 사랑이 진행되는 이야기다. 


천진난만한 스물 다섯 살 싱글 여성의 변덕스런 사랑의 심리를 어쩌면 이토록 사랑스럽고도 솔직하게 그려놓었는지 만족스런 결말임에도 너무 짧아 작가를 살짝 원망할 뻔했다. 한국어판에 붙이는 서문부터 평이한 듯하면서도 참 맘에 들었는데 다른 책은 번역된 것이 없음에도 20년째 절판되지 않고 계속 나온다는 사실만으로도 살아 있어줘서 기특하다고나 할까 하는 기분이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 작가지만 개성넘치는 캐릭터 드리븐의 유쾌한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결코 실망하지 않늘 작품이다. 가독성도 좋아서 정말 술술 읽히고 여러 문학 작품을 매개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많은 소설들의 일부를 엿볼 수도 있다 특히 로맹가리는 콩스탕스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하니 모아둔 책에서 한권 꺼내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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