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재에 마가렛 애트우드의 원서 Testaments가 종종 떠서 무슨 일인가 봤더니, 시녀이야기 2탄이라는 부제들이 딸려다닌다. 원서를 찾아서 읽는 독자가 많을 정도로 애트우드의 위상이 한국에서 이토록 높은 지는 알지 못했다. 매년 노벨상 후보로 지목되는 작가이면서 동시에 시녀이야기 자체가 드라마로도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중적 인지도가 높기도 하려니와, 패미니즘적 정서를 높은 수준의 독특한 SF 적 상상력으로 담아 내고 있어서 당연한 일이기도 한데, 내 경우 흥미롭게 읽히기는 하는데 원초적인 자극을 지향하는 느낌이어서 그닥 내취향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한 번 책을 들으면 계속 궁금하게 끝까지 읽게 하는 다이나믹한 서사의 힘을 강하게 분출하는 작가라 언제라도 읽을 준비가 되어 있다(책을 많이 샀다는 뜻)









이 쯤해서 시녀 이야기를 다시 살펴보자. 조지 오웰적 디스토피아에 여성의 인권이 사라진 시대를 그렸다. 사실 주제의식이 너무 선명한 작품은 식상할 것 같고 오웰적 디스토피아라면 읽기 힘들 거 같아서 책을 사두고도 오랫동안 펼치지 않고 미루어 두었다. 읽은 소감을 거칠게 정리하자면《1984》에 《안나의 일기》를 섞어놓은 느낌이다. 애트우드 특유의 거침없는 상상력과 엽기적 장면을 배합한 수작다. 유명 작품은 유명한 이유가 있다.


오웰의 《1984》가 상상의 사회이기는 하나 누구라도 스탈린 통치의 소비에트 연방을 모델로 했다는 점을 알수 있게, 그 사회와 유사성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반면 이 작품을 보면 무슬림 근본주의가 장악한 아랍권의 어느 나라들을 떠오른다. 암울한 어떤 미래를 그린 것이 아니라 소설의 출간 시점인 1985년에서 근미래 혹은 현재 역사를 바꾸고 상상의 사회로 대체한 듯 하다. 동시에 해당 서사의 액자 바깥의 에필로그에서 150년 후 미래의 관찰자들을 두어 대체 역사가 이어진 이후의 만 미래가 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점까지 입체적 시각을 보여준다.

에필로그에서 드러나는 이 이상한 계급 사회의 이름은 길리아드이고,  소설의 이야기 전체는 길리아드가 해체된 후 한 여성이 카세트 테이프의 음악 사이에 남긴 기록으로 밝혀진다. 기록이 발견되어 심포지엄이 열린 시기는 2195년으로, 이 기록의 발견은 길리아드 시대에 핍박받은 여성을 생생하게 기록한 의미있는 역사 기록으로 여겨지지만 한편으로는 기록물의 진위 여부 또한 확실치 않다. 만일 조작되었다면 은폐된 시대를 조명하는 귀중한 사료로서의 가치의 필요성 만큼이나, 조작 자체가 내포하는 20세기 말의 역사적 시대적 의미를 대변한다. 에필로그가 전체 서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본문이 고통받는 한 개인을 그렸다면 에필로그는 본문의 화자가 겪은 사회가 전체 인류 역사에서 갖는 인과 관계를  다룬다. 그러므로 에필로그가 비록 짧고 뜬금없기는 하지만 주인공이 처했던 짧은 길리어드 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우리가 안나의 일기에서 갖는 감정은 단순하다. 피상적으로만 들리는 홀로코스트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한 개인이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옥죄어오던 삶 속에서 느끼던 공포와 불안의 나날의 생생한 기록은 바로 감정이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본문의 화자(오브프레드 OfFred) 역시 길리어드로 가는 전조 증상에 무감각하게 노출되지만, 본인이 직접 그 사회의 희생양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매일 뉴스에 폭력과 공포가 보도되는 불안한 사회 속에서 그 무엇도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 평화로운 듯 일상을 살고 있다. 그것은 ‘천천히 데워지는 목욕물’처럼 조금씩 그들에게 다가왔고 끓기 얼마 전까지도 무지로 이겨낼 수 있는 상황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무시하며 살았다. 무시한다는 건 무지와 달리,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즉시 변화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천천히 데워지는 목욕물처럼 자기도 모르게 끓는 물에 익어 죽어 버리는 거다. 물론 신문에는 많은 뉴스가 있었다. 도랑이나 숲에서 발견된 시체들, 둔기에 맞아죽거나 사지가 절단되거나, 속된 말로 성폭행당한 시체들. 하지만 그런 건 다 다른 여자들 이야기였고, 그런 짓을 하는 남자들도 다 다른 남자들이었다. 그 누구도 우리가 아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신문에 나는 이야기들은 우리에겐 꿈처럼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이 꾸는 악몽처럼. 진짜 끔찍하지 않니 하고 우린 말하곤 했고 실제로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끔찍하다는 게 도통 실감이 나지 않았다. 너무 신파조여서 우리 삶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만 같았다. 우리는 신문에 이름이 오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신문 가장자리의 여백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게 훨씬 더 자유로웠다. 우리는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의 간격 속에서 살았다.”(본문 인용)

하지만 신문 속 이야기들은 간격을 점점 좁혀오고 결국 그녀와 모이라가 신문에서 나는 이야기 자체가 된다. 끔찍한 이야기.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공포 속의 주인공. 처음에 그녀는 자신이 이제껏 모아온 계좌 속의 돈이 더이상 자신의 소유가 아님을 가게에서 카드 결재를 시도할 때 깨닫게 된다. 직장에서 당신들은 해산되었음을, 더이상 직업을 가질 수 없음을 알려준다. 대통령이 사라지고 국회가 해산되고 계엄군이 정치적 주최가 되었을 때까지, 그건 나의 일이 아니니까 상관없었던 일들이, 계좌가 동결되고 여성이 인간의 자리에서 밀려나 어떤 다른 무언가가 도구인지 소유물인지 알지도 못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그에 따라 어느날 갑자기 법적으로 재산은 물론 직업조차 가질 수 없게 된 사실을 깨닫게 되자 그 모든 전조들이 결국은 나의 이야기였음을 이해한다. 


그렇다. 방관하면 그 방관의 대상이 어느 새 나의 이야기가 되어도 더이상 그 이야기를 들어줄, 저항의 공간이 사라진다. 망명 계획은 허술했고, 함께 도망치던 남편은 생사조차 모르고 아이는 빼앗겼고 자신은 정신 교정을 받고 어느 사령관의 집에 보내진다. 사령관의 집에서 사령관의 시녀가 되었다는 의미는 단순하다. 이보다 더 단순할 수 없다. 자궁일 뿐 한 인간이 출산 이외에는 아무 가치가 없는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우리는 다리 둘 달린 자궁에 불과하다. 성스러운 그릇이자 걸어다니는 성배(聖杯)다.”(본문 인용)

핵전쟁과 환경 파괴 환경 오염 성병 등으로 추정되는 이유는 이렇다. 불임이 늘고 인구가 줄자 사회는 불안해지고 폭력이 만연하는데 패미니즘의 영행으로 여겅의 인권이 신장되고 직업과 재산을 가진 여성들이 늘자 사회 불안을 ‘성경’에 반하는 여권 신장으로 본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성경’ 말씀에 따라 여성의 인권, 재산, 직업, 아이까지 강탈한 후 임신 가능한 여성들을 불임 가정에 보낸다.이런 씨받이들의 사회적 구분은 시녀라고 불리는 계급이고 만일 출산에 성공하지 못하면 콜로니로 유배되어 방사선이 노출된 채 핵폐기물을 치우며 폐기된다.

자신의 이름조차 잃고 주인의 소속으로 오브 주인이름의 형태로 불리는 시녀들은 의복의 색깔이 결정하는 신분이 요구하는 역할 즉 출산 이외에는 아무 존재 의미가 없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빈궁이라 불리는 불임의 아내들이다. 워낙 인구가 줄고 있어 성공적인 출산이 진급을 결정하는 사회에서 시녀의 역할은 필요악임에도 불구하고 아내들은 이 씨받이 시녀들에게 경멸감을 숨기지 않는다. 여기에서 근원적 모순을 본다. 인간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구조적으로)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계층을 얼마나 경멸하고 멸시했던가. 필요해서 가두고 남편과 섹스를 강제하면서도 그 행위에 의한 혜택은 자신과 남편이 공유하게 될 것이면서 마치 시녀들의 태생이 더럽다는 듯이 자기 남자를 유혹해서 빼앗는 사람을 대하듯 대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출산을 의한 섹스에 은밀한 공간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인터코스에 매뉴얼이 있는 건지 의식이 치러지는 날은 무슨 종교 의식처럼 경건함을 추종한다.

쓰리섬에 대한 묘사는 대단히 형식적이고 엽기적이다. 시녀와 몸을 포갠 아내들은 숨죽여 울며 아이를 만드는 과정에 동참하고 있다는 환상 속에 억지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출산은 더더욱 엽기적이다. 그것은 구역의 축제다. 고대 이교도들의 새디스트적 봉헌 의식에 가깝다. 모든 시녀들이 보는 앞에서 출산의 고통을 맞는 시녀와 그것을 지켜보며 정신적으로 고취되어 그의 고통을 경험하는 분위기가 그렇다. 해당 아내가 두 개의 출산 의자 중 윗 의자에 앉아 출산자와 똑같은 포즈를 취하고 케어를 받고 소리까지 지른다. 그렇게 하면 시녀가 낳은 아기가 마치 자신의 아기라도 된다는 듯이.

나치가 그러했듯이 스탈린이 그러했듯이 수많은 죽음이 전시된다. 공포는 단기간 내에 정권을 확립하는 데 효과가 있다. 한 마디 말이 한 발자국의 어긋난 경로가 혹은 나도 모르게 비어져 나온 웃음이, 참고 참아도 통제할 수 없어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이 자신에게 하얀 올가미를 씌우고 바람에 휘날리는 빨래처럼 목매달 수 있다는 걸 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오늘을 살며 오늘을 믿을 수 없는 오브프레드는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 하루를 견디고 있을까.

“그렇게 믿을 필요가 있다. 반드시 믿어야만 한다. 이런 것들이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믿을 수 있어야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심지어 아무도 없더라도 말이다.”(본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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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인간의 육신이란 풀잎 같아. 자기 의지로 되는 게 아니라고 리디아 ‘아주머니’는 말했다. 하느님이 남자들을 그렇게 만드셨지만, 여러분들은 그렇게 만들지 않으셨어. 여자들은 다르게 만드셨지. 선을 긋는 건 여러분에게 달린 거야. 그러면 훗날 그들이 여러분에게 고마워할 거야.

행주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가끔 이렇게 문득 비치는 정상적 삶의 흔적이 매복하고 있던 병사처럼 옆에서 나를 덮칠 때가 있다. 평범한 것들, 일상적인 것들, 세찬 발길질처럼 과거를 환기시키는 것들. 문맥에서 떨어져 나온 행주 한 장을 보며 나는 그만 헉 하고 숨을 멈춘다.어떤 사람들에겐, 어떤 면에선, 세상이 그렇게 많이 달라진 게 아닌 것이다.

“누가 목욕을 시키지? 나는 이 닭을 보들보들 연하게 만들어야 되는데.” 리타였다. 내가 아니라 코라한테 한 말이다. “내가 나중에 할게요. 먼지 털고 나서.” 코라가 말한다. “그럼 되겠네.” 리타가 말한다. 두 사람은 내가 귀머거리인 양 말한다. 그들에게 나는 집안일, 그것도 숱한 일거리 중에 하나일 뿐이다.



나 또한 메마르고 하얗고 딱딱한 과립형 분말이 되어 있다. 마치 그릇 가득 담긴 말린 쌀 속에 손을 담그고 휘젓는 느낌이다. 꼭 눈송이 같다. 어쩐지 죽은 듯한, 버려진 듯한 느낌이 감돈다. 나는 마치, 한때는 갖가지 사건이 일어났으나 이제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방 같다. 창 밖에서 자라는 잡초의 꽃가루가 바람에 날아 들어와 마룻바닥에 먼지처럼 쌓일 뿐.

너희처럼 젊은 사람들은 고마운 줄을 몰라. 너희에게 이런 세상을 만들어 주려고 우리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상상도 못할 거야. 저 친구 좀 봐, 당근을 썰고 있잖아. 바로 저걸 쟁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얼마나 많은 여자들의 몸을 탱크가 밀고 지나갔는지 모르는 거냐?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말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말이란 결코 정확할 수 없으며 언제나 뭔가 빠뜨리기 때문이다. 현실에는 너무 많은 단편들이 있고, 관점들이 있고, 반목들이 있으며, 뉘앙스가 있다. 이런 의미도 저런 의미도 될 수 있는 몸짓들이 너무 많고, 말로는 절대로 완벽하게 표현할 길 없는 형상들도 너무 많으며, 허공에 떠다니거나 혀끝에 감도는 향(香)도 수없이 많고, 어중간한 색채들도 한없이 많다.



나는 그 여자에게서 뭔가를 빼앗고 있었다. 좀도둑질을 하고 있었다. 내가 빼앗은 것은 그녀가 전혀 원하지 않았고, 그녀에게는 쓸모도 없으며, 심지어 스스로 거부한 것이라 해도 달라질 건 없다. 여전히 그건 그녀 것이었고,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이 신비스런 ‘그것’을 내가 빼앗아 버린다면, (사령관이 내게 느끼는 감정은 사랑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극단적인 감정이라고 여기는 것을 나는

출생률이 다시 일정 수준을 회복하면 이 집 저 집으로 옮겨다니지 않아도 될 테지. 인력이 많아질 테니까.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애정의 유대가 생겨날 거야.

나는 기억한다. 혀가자미, 대구, 황새치, 가리비, 참치, 속을 채워 구운 가재, 분홍빛 통통한 살을 지글지글 구운 연어 스테이크. 그것들이 전부 고래처럼 멸종되어 버렸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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