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리커버 특별판)
필립 K.딕 지음, 박중서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작가가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질문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무엇이 인간인가, 무엇이 현실인가하는 것이다. 몇년 전 가장 인간다운 인간을 가리는 튜링 테스트에서 우승한 유진 이라는 소프트웨어는 튜링이 제안한 조건을 만족시키기는 했지만 여전히 유진은 컴퓨터 하드웨어와 방대한 네트워크라의 조합으로서만 존재할 뿐 전용으로 할당된 인간다운 몸체에서 유기적으로 숨쉬며 살아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유진이 기계를 통해 인간을 흉내내고 속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인간 혹은 그 비슷한 실제적 개체로 삶을 위협하지도 실제적인 안드로이드로서 스스로 판단해 돕지는 못한다. 소프트웨어가 잘하는 건 방대한 지식을 조합하거나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는 능력이지 인간의 의식을 모방하잔 못한다. 적어도 아작까지는. 적어도 내가 알기론. 단지 인간이 어떤 문제를 내면 그 문제에 대해 그 어떤 인간보다 해결 능력이 뛰어난 단계에 이르렀을 뿐 인간이 문제를 내 주지 않으면 네트웍 저편 데이터와 코드 사이의 파편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언젠가 의식이 생긴 안드로이드가 나와서 인간과의 구별이 어려여지고 운 인간의 자리를 차지하고 인간을 위협하게 된다면, 인간보다 나은 능력을 가진 기계와의 대치 국면에서 인간은 기계를 이기기 어려워질 지 모르겠지만 그건 완벽하게 인간을 흉내내는 것이 가능한 인공지능형 로봇을 만들 수 있을 때에야 걱정할 일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수많은 일자리들이 위협받고 있는건 당면한 사실이고 모두가 미래 설계에 염두해두어야할 주요 팩트지만 인간이 인간의 의식에 대해 그다지 많이 알자 못하므로 일은 아직 걱정거리가 못된다.
필립 K 딕은 이 책에서 안드로이드가 어떤 기술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다만 유전자 공학이 잠시 언급될 뿐이어다. 이 책이 쓰여진 당시 인간의 게놈이 밝혀지기도 한참 전의 일이고 유전공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던 시대임을 생각할 때 대단한 통찰이라는 생각이다. 현재까지의 최신 기술로서는 휴머노이드형 로봇이 높은 산이나 울퉁불퉁한 땅을 걷는 것조차 위태롭게 보이는데 최소한 인간 비슷한 느낌이 드는 휴머노이드가 언제쯤이나 만들어지게 될지는 의문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마도 섹스 로봇의 상업적 성공이 휴머노이드의 가장 큰 발전 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했다고 알려진 명불허전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를 봤다면 이 책에 대해 대략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자만 내용만으로 따본다면 원작에서 일부 주제만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정해진 러닝 타임 때문에 작가가 작품을 통해 질문하고 제기한 여러가지 문제 중에서 지극히 일부만이 부각되고 강조되어, 많은 걸 놓쳤다는 걸 알게 된다. 영화에서는 인간과 로봇의 대치 국면이 전면으로 부상되면서 SF 액션 오락물의 성격을 띠는 부분도 있지만, 그럼에도 좋은 영화다. 특히 인조인간 레이첼과의 교감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인조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라는 측면에 집중되어 관객이 몰입할 수 있다. 영화는 원작에서 영리하게 영화가 취해야 할 부분과 버려야할 부분을 알아차렸고 과감하게 버릴 부분을 버렸기에 주제가 부각되는 예술성 높은 영화로 성공할 수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 과정에서 원작의 깊이가 희생된건 아쉬운 부분이다.
넥서스-6를 장착한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너무 유사해서 보커드 캄프라는 판별기계를 만들었다. 유전공학적인 신체 부품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므로, 공포 혐오 초조 등의 감정을 표현하며 심박수라든가 하는 모든 의학적 특성이 인간이 그러한 감정을 느꼈을 때처럼 똑같이 나타낸다. 안색이 변하고 호흡이 빠르고 동공이 흔들린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들은 이 모든 신체의 작용들을 계산하는데 수초분의 1이라는 시간 지연이 생긴다. 당신이 앉은 소파가 인간 가죽을 이용한 소파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신체의 반응이 아주 조금 보통의 인간보다 느리다면 그는 안드로이드다. 인간 감정의 즉각적인 변화와 계산에 의해 유도된 변화에 차이가 없지만 그 감정 변화에 인간은 계산 따위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빅데이터도 딥러닝도 온갖 변수들을 필요로 하는 확률적 함수도 필요하지 않다.
판정 기계가 없어서 누군가가 인간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면 주인공 릭은 왜 그 안드로이드를 파괴해야 하는가. 아니 파괴해도 괜찮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의 직업은 경찰청 소속 ‘현상금 사냥꾼’으로 독립적인 활동으로 건당 보수를 받는다. 세 명의 안드로이드를 제거해서 3천불을 받았다. 릭이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살아있는 진짜 동물을 구하기 위해서다. 전기 양의 꿈을 꾸느냐는 에스에프 소설 치고는 뜬금없어 보이는 이 작품의 모티브가 바로 전기 양 대신 진짜 양을 구하고 싶어서다. 안드로이드는 가짜 인간인데 너무 진짜 같아 식별 기계를 지니고 다니며 판별해야 하는데 기계 양이라고 기계같을까. 먹고 싸는 것도 같은데 궂이 진짜를 갖고 싶은 이유는 뭘까. 그것은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가르는 기준의 모호함 만큼이나 모호한데 말이다.
세계전쟁 이후 방사능 낙진으로 지구가 황폐화되어 지구인들의 대부분은 화성으로 이주를 떠나고, 지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특수인’들과 이주를 거부하는 나머지 사람들로 도시는 매우 암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여기에서 오직 한 가지 생명력을 나타내는 것은 동물이다. 방사능에 오염된 도시에서 대부분의 동물들이 멸종된 상태에서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은 최고의 사치다. 릭은 인간과 구별할 수 없을만큼 닮은 안드로이드를 죽여서, 그 돈으로 진짜 애완동물을 사고 싶다. 그의 집 옥상에 키우고 있는 양은 실은 전기양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기양임을 이웃은 모른다. 그게 데커드의 꿈이다. 릭의 꿈은 짝퉁 샤넬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진품을 사려고 돈을 모으는 사람의 꿈과 같다. 하지만 릭의 꿈은 인간과 구별조차 어려운 짝퉁 인간을 많이 죽여야 이루어질 수 있는 꿈이다. 무엇이 인간이고 무엇이 안드로이드이며, 무엇이 동물이고 무엇이 인조 동물인가. 오로지 하나,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초연함은 안드로이드들을 안드로이드들 답게 만든다.
배경의 인물들은 모두 동물에 대한 지나친 애착을 보인다. 이것들은 모두 사라져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욕망이다. 그런데 또 안드로이드들은 생명을 가진 동물에 대한 애착이 없이 동물에게 잔인하다. 망해가는 지구에서 무언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동물에 대한 애착이 유행처럼 그 시대 최고의 가치가 되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줄까. 목숨을 걸어 일해,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운 것들을 죽이고, 그렇게 벌은 돈으로 양이건 염소건 남들은 갖지 않은 멸종 직전의 동물들을 사서 보란 듯 옥상에 묶어두고 먹이를 먹여 키우는 인간이, 안드로이드들을 감별하기 위해 테스트하는 것은 다름 아닌 동물들과의 교감이다. 다른 여러 질문도 하지만, 개고기를 먹는것 같은 민감한 문제를 물어본후 즉각적인 인체의 변화를 탐지해서 반응 속도를 보면 긴가민가 하는 대상의 정체가 안드로이드인지를 더욱 확실히 알아낼 수 있다.
두뇌의 결함으로 ‘특수인’으로 분류된 이지도어도 비중있게 다루어진다. 지능이 낮아서, 화성 이주도 허용되지 않는 고립되고 소외된 존재로, 닭대가리라고 부른다. 처음에 릭이 화성에서 고성능의 인조인간을 판별해낼만한 고성능의 감별 기계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제작사 로젠사로 가서 레이첼 로젠을 시험한다. 레이첼의 반응이 양성으로 나오자 제작사에서는 레이첼이 실은 결함이 있는 인간( 즉 이지도어 같은 특수인을 말하는 것 같음)이라고 거짓말을 하는데, 데커드는 레이첼이 부엉이를 그것이라고 부르는 것을 주목하고 그녀가 사실은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알아낸다. 기준에 못미치는 두뇌를 가진 특수인과 인간과 비슷한 안드로이드 모두 당대 인간의 기준에 1% 부족한, 그래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대상들이다.
레이첼의 유혹으로 잠자리를 한 후 알고 보니 앞으로 죽여야할 안드로이드가 레이첼과 동일 기종이라는 사실을 안 릭은 당황한다. 이를 안 레이첼이 의도적으로 접근을 했고, 그동안 다른 남자 인간과도 같은 목적으로 잠자리를 해왔다는 사실도 함께 알게 된다. 수천조 개의 스냅스 신호의 조합중 선택되는 기종이지만 동일 생산라인에서, 동일 부품을 장착한 완전히 동일한 또 다른 인간형 로봇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껏 레이첼을 알아왔으므로, 레이첼을 죽일 수 없는 릭이, 레이첼과 다른 옷을 입은 동일 안드로이드를 죽일 수 있을까. 릭이 안드로이드인지 아닌지가 의심되는 상황이 중간에 발생하는데, 고뇌하는 모습에서 독자들은 릭은 인간임을 확신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감정이입이다. 레이첼에게 이미 사람과 같은 정을 느낀 그가 또다른 레이첼을 죽이는 것은 가능한가. 같은 기종의 또다른 레이첼은 방금 안은 레이첼인가 아닌가. 기계에게 한 개체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정의되는가.
무엇이 현실인가 라는 주제는 조금 더 어렵다. 감정이입 기계라는 것이 있어서, 그 기계에 접속하면 어떤 종교지도자의 내면에 접속하게 된다. 그리고 후에 그 종교 지도자에게 직접 날아가서 거의 한몸이 되는 경험을 하는데, 이 부분은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가 가상인지 구분이 모호하다. 또한 릭의 아내 아이린이 우울증으로 자주 사용하는 감정 조절 기계 역시 도파민과 같은 여러 호르몬의 레벨을 미세하게 조정함으로써 그녀의 기분을 원래 기분과 다르게 변화시키는 것인데, 이렇게 자유자재로 감정의 폭과 농도를 조정하게 되는 것이 가능하다면 안드로이드들과는 또 어떻게 다르다고 할 수 있으며, 감정이입을 통해 다른 모든 사람이 하나의 몸으로 느껴지는 것이 종교가 된다면 세계는 어떻게 인식될 것인가.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