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작에서 코니 윌리스에게 덤벼러 내가 상대해주마 하고 올인하고 있는 듯하다. 쉴 새 없이 코니 윌리스의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방금 출간된 따끈따끈한 《올클리어1, 2》를 끝으로 아작에서 윌리스의 옥스포드 시간여행 시리즈를 드디어 완간했다. 열린책들에서 《개는 말할것도 없고 - 주교의 새 그루터기 실종사건》과 《둠즈데이 북》을 오래 전에 출간했지만, 절판된 상태로 방치되었다가 SF 출판의 구세주 아작출판사가 짜잔 하고 등장하면서 작년과 재작년에 절판된 책들을 재출간하고, 새로 번역하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SF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 코니 윌리스를 《여왕마저도》에 실린 단편들로 처음 접했었는데 처음 읽은 단편은 지구에서 외계인과의 조우를 블랙 코미디적으로 그려낸 《모두가 땅에 앉아 있었는데(All seated on the ground)》였다. 너무 수다스러워 서사를 파악하는데 산만한 문제로 내 타입은 아니라고 영영 멀어질 수도 있었지만 인연을 도와준 건 작년에 출간된 《개는 말할 것도 없고》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가 그 전에 읽은 제롬 K 제롬의 《자전거 탄 세 남자, 개는 말할 것도 없고》와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 과 연결된다. 정말 책은 책을 부른다.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에서, 달에 가고 싶어하는 주인공 킵의 아빠가 늘상 읽고 있는 책이 《자전거 탄 세 남자》 다.  어린 딸이 아빠 나 달에 가고 싶어, 키득거리면서 책장을 책장을 넘기던 아빠는 무심히도 말한다. 가려무나. 킵의 아빠는 이 책을 자나 깨나 읽는다. 읽고 또 읽는다. 과연 어떤 책일까 궁금했다. 《자전거 탄 세 남자》는 빅토리아 시대 세 영국 남자가 템즈강을 거슬러 배를 타고 올라가는 여정을 다룬 슬랩스틱 코미디다. 하지만 당시 우주복=>자전거탄=>개는말할것도 로 이어지던 책의 여정은 개는에서 좌절되었었는데, 열린책들의 절판에 묶여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년 아작에서의 재출간 소식이 얼마나 반가웠던지.  


《개는 말할 것도 없고》는 시간여행이 실현된 어느 미래를 그린다. 그런데 시간여행이 실현된 후, 고대에서 온갖 보물을 가져오면 떼부자가 되겠거니 했던 투자가들이 어떤 물리학 법칙에 의해 물건을 가져오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시간여행은 개밥에 도토리가 된 상황이다. 그래서 시간여행은 대학에서 연구용으로만 사용(?)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어떤 부자가 자기 증증증증조 할머니 일기장에 써있는대로 대성당을 재건하겠다고 나서면서 연구원들을 들볶아 파괴되기 전의 상태를 파악하러 빅토리아 시대와 2차 대전 폭격 직후 등으로 시간여행을 다니며 생기는 일들을 그린 작품이다. 부제는 《신부의 새그루터기실종사건》으로, 이 '신부의 새 그루터기'라는 물건은 재건할 성당에 복제하기 위해 필요한 소품으로 일종의 매거핀 같은 역할을 한다. 코미디와 탐정을 시간여행이라는 판타지와 SF 쟝르 속에 아주 찰지게 빈틈없이 정교하게 버무려놓은 방대한 작품이다. 미세한 단서까지도 놓치지 말고 읽어야 해서, 여러 번 뒤로 돌아갔다가 앞으로 돌아왔다가 하면서 뒤적거려가며 읽어야 했다. 뒤로 돌아가서 읽을 수록 처음 읽을 때 단순 수다로 방치하고 놓친 더 많은 단서들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다. 시간을 넘실넘실 넘나들며 사건의 인과 관계와 미스터리를 파헤친다는 면에서 탐정적 성격이 짙지만, 시간여행물의 핵 로맨스 역시 놓치지 않는다. 사소한 사건과 수다에도 인과관계가 엮여 있고 모든 의문이 거의 해소된다. 유쾌하고 즐겁고 지적이고 방대한 소설이다. 
















알고 보니, 작년부터 아작에서 열심히 출간되는 코니 윌리스의 시간여행 장편들은 모두 이 작품의 시간여행 세계관을 공유한다. 편의상 옥스포드 시간여행 시리즈로 불린다. 《개는 말할 것도 없고》 에서 제롬K의  《자전거 탄 세 남자》 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난 주인공은 제롬 K의 주인공들을 보트들로 가득찬 템즈강에서 조우한다. 깜짝 출연인 셈이다. 코니 윌리스는 이 제롬K의  《자전거 탄 세 남자》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이 작품을 알게 해 준 로버트 A 하인라인에게 이 책의 헌사를 바쳤다. 와이 낫 제롬? 아마도 한참 전 세대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리라. 것도 그렇고 작품 자체가 오마주이고 제목까지 부제를 끌어다 썼는데, 그보다 더한 헌사가 있을까. 

이 책은 코니 윌리스의 빅팬이 되기로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동시에 아작에서는 이 책과 이미 출간된 《둠즈데이 북》과 《화재감시원》, 《블랙아웃》을 포함하여 이번에 새로 나온  《올클리어》를 끝으로 코니 윌리스의 시간여행 시리즈를 완간한 것이다.  한국에서 번역 출간되는 SF 중에서 휴고와 네뷸러 로커스 등의 상을 안받은 작품을 찾는 게 더 어렵기는 하지만 모든 작품은 이 세 개의 작품을 거의 대부분 수상하였고, 일부(내가 알기로 《개는 말할 것도 없고》와 《둠즈데이 북》 )는 세 개를 동시에 받았다. 


















이 중에서  《둠즈데이 북》은 가장 먼 곳으로의 시간 여행이다. 넷플릭스 역사 드라마를 즐겨보다가 앙드레 모루아의 영국사를 읽기 시작했는데, 영국 역사의 한 복판에서도 《둠즈데이 북》이라는 코니 윌리스의 옥스포드 시간 여행 시리즈 책 제목과 같은 제목의 문서를 만날  수 있었다.  모루아의 역사책에 따르면 정복왕 윌리엄은 개사기꾼이다.  《둠즈데이 북》은 윌리엄이 세금을 쥐어짜기 위해 만든 토지대장이었던 거다. 서자여서 애비없는 자식이란 별명을 가졌던 그는 그나마 노르만디의 공작이었던 아버지의 정실에게서 다른 자식이 없었던 덕에 뒤를 잇고 어린 나이에 공작이 된다. 후에 정복왕 윌리엄이라는 별명을 갖고 영국을 노르만왕조의 손아귀에 넣은 그는 넷플릭스에서 방영중인 바이킹스에서 라그나 로스브로크의 동생으로 질투와 배신의 화신으로 등장해 결국 형제와 종족들을 배반하고 노르망디를 차지한 롤로의 후손으로, 영국왕이 될 연결고리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당시 영국 왕은 선출제여서 어느 먼 친척이든 영주들만 잘 구워삶으면 왕이 될 수 있었던 모양으로, 영국 왕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다가 에드워드 왕위의 강력 후계자 헤럴드가 위기에 처했을 때 협박하여 모종의 서약을 맺게 했는데 영국왕이 되겠다는 윌리암의 계획만큼이나 터무니없는 것이었으나 이는 훗날 해럴드가 전임 왕 에드워드의 뒤를 이어 왕으로 선출되었을 때 침략의 구실이 되었다. 자격 미달인이 왕이 왕이 되려니 여기저기서 힘을 모아야 했고 교회를 지어주고 교황청과 결탁하여 교황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이때부터 영국 왕은 로마 교황청의 영행력 아래에 놓이게 된다. 이후 잔인한 학살과 살육을 동반한 토지 개혁으로 대부분의 자유농민은 농노로 전락했고 장원이라는 단위의 영주와 농노들로 구성된 봉건제가 자리를 잡게 된다... 어쨌든 윌리엄의 둠즈데이 북은 세금을 걷기 위해 살림살이 하나하나에서부터 기르는 닭 한마리까지 아주 자질구레한 세부사항까지 치졸하게 재산 내역을 기록한다. 코니 윌리스의 옥스포드 시간여행 시리즈에서 《둠즈데이 북》은 가고자 하는 시간 목적지가 중세로, 책 제목은 주인공이 시간 여행 기록을 윌리암의 토지대장 《둠즈데이 북》의 꼼꼼함에 영감을 받아 이를 사용한 것이다. 

"던워디 교수님. 저는 이 기록을 ‘둠즈데이북’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정복왕 윌리엄 1세가 시행한 조사가 그랬듯이 제 기록도 중세의 생활에 관한 내용을 담게 될 테니까요. 물론 윌리엄 1세가 만든 《둠즈데이북》은 소작인들이 내야 할 조세와 땅에서 나는 금 한 알갱이라도 확실하게 알아 두기 위해 만든 방편이었지만 말이죠."


코니 윌리스의 옥스포드 시간여행 시리즈의 순서를 굿리즈에서 퍼오면 다음과 같다 

Book 0.5 화재감시원  
Book 1   둠즈데이북 
Book 2   개는말할것도 없고 
Book 3   블랙아웃
Book 4   올클리어

나는 쥐뿔도 모르고 <개는 말할 것도 없고> 부터 읽었는데, 저 순서대로 읽으면 훨씬 재미있을 것 같다. 코니 퓔리스 풍의 수다가 코니 윌리스 입문자들에게는 복병이 될 수 있을 수도 있지만, 장편에서 그 모든 수다는 의미없는 헛소리들이 단 한마디도 없고, 시간과 공간이 여러 사건 사고가 벌어지는 복잡한 작품의 서사에 스위스 시계 부품처럼 정교하게 맞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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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9-02-12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까 책을 주문했는데... <개는 말할 것도 없고> 이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빼먹었는데요. 취소하려고 들어가보니 이미 출고완료네요. CREBBP님 글을 보니 빨랑 코티 윌리스 옥스포드 시간여행시리즈를 마무리지어야할 것 같아요. 말하자면 올클리어죠 ㅋㅋ

CREBBP 2019-02-13 10:07   좋아요 0 | URL
이게 한꺼번에 짜잔 나온게 아니라서 꿰어 맞추다 보니, 저도 소장 목록이 엉망이에요. 제일 재밌다는 <개는말할것도없이>는 전자도서관으로 읽어서 사실 살 필요가 없거든요. 읽으면서 꿰어맞추다보니 거의 전 텍스트를 거의 두번씩 읽게 되더라구요. 게다가 전자도서관에서 이 시리즈는 거의 언제든 빌릴 수 잆는 상태라서, 다 읽은 책을 구매하기도 그렇고(안읽은 책 살 것도 많고 많은데), 게다가 화재감시원과 둠주데이북은 9년후면 서재에서 사라지고 블랙아웃과 올클리어만 남게 되겠죠 ㅋㅋㅋㅋ 그냥 보르코시건 시리즈나 파운데이션 혹은 르귄처럼 한꺼번에 짠 하고 구매해놓으면 맘도 편하고 흐뭇하고 그런데 말이죠. 결국 제일 소장하고 싶은 책만 쏙 빼놓고 갖춰놓게 되었어요. 근데 빌려보면 밑줄긋기가 잘 안돼서 불편...

transient-guest 2019-03-09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둠스데이북‘을 먼저 읽고, 그 다음으로 ‘화재감시원‘을, 그리고 ‘개는 말할 것도 없고‘를 읽었습니다. 나머지는 주문한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데 ‘개는...‘에서 언급된 작품을 따로 찾으셨네요. 저도 구해서 읽어볼 생각입니다.

CREBBP 2019-03-11 17:20   좋아요 1 | URL
그게 우연히 하인라인의 책을 먼저 읽고 보트위의 세 남자를 읽고 나서야 그 책이 개는 말할 것도 없고의 서두에 언급되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세 개의 작품을 나란히 보면 유머 코드가 어딘지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 있는 것도 같아요. 물론 개는 말할것도 없이 에서는 개를 오마주했고요. 하지만 원래 제롬의 개가 훨씬 더 웃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