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알라딘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도서정가제 마지막날 아카넷 대우고전총서 50% 세일 도서들을 골라놓고 결제와 취소를 반복하다가 그냥 취소했다. 총 6권이었는데, 이번에 구입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마지막날 구입 시도를 해봤지만, 포기했다. 그냥 후회하기로 했다. 결정적인 이유는 지금 내 방의 상태 때문. 발을 뻗고 잘 수 없을 정도다. 1달 여 간을 그렇게 지내니, 다리가 저리고 잠도 대충 잔 느낌이다. 이래서는 안되는데, 책 정리를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계속한다. 하지만 요즘 알라딘 신림점에는 절판된 도서들이 쏟아지고 있어서 어찌할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10월부터 알라딘회원에게 책을 팔고 있지만(한 20여 권) 판 만큼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사재기를 하니 미칠노릇이다. 내 방의 책이 점점 줄어가야 정상인데 조금씩 쌓여간다. 2권 팔고 2.5권 사재니. 그도그럴것이 매일 들르는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뢰즈나 푸코의 절판 도서가 나오거나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중 일부가 나오면 안 살수가 없는 거라. 리쾨르의 <악의 상징>(문지)을 어떻게 건너뛸 수 있으며, <들뢰즈의 푸코>를 어찌 안 살수 있으랴. 그렇게 산 책들이 매달 20여 권이 넘는다. 발에 쥐가 나도 이 책들을 포기할 수 없으니 참으로 난감하다.

 

 

 

 

 

 

 

 

 

 

2.

 

알라딘에 서재에만 글을 올린지도 4년 정도 돼 간다. 익명성이 좋아서 여기를 적극 이용했는데, 알라딘이 사이트를 손보면서 서재 기능도 조금의 변화를 주는 것 같다. 도서정가제 마지막 날을 기점으로 여러가지가 변한 것 같다. 그 이전에 서재지수를 맘대로 조정한 건 전조였나보다. 내게 별 기능이 없어 보였던 페이스북 '좋아요' 기능. 사실 이건 왜 있어야하는지 몰랐다. 서재에 글을 올리면 어쩌다가 이 '좋아요'에 공감을 받는데 많이 받아야 4개다. 알라딘 스타 서재의 멋진 글들도 4-5개가 상한선인듯했다.

 

하지만 혼자 보기 아까워 지인의 '총균쇠 비판'글을 올렸는데, 그 글이 대박을 쳤다. 이 페이스북 공감이 무려 2900을 넘었으니 말이다. 근데, 근데....잰장맞을! 이 기능이 없어졌다! 대박을 쳤는데, 바로 없어져버려 그냥 허무하달까. 나중엔 짜증이 나기도 했다. 내가 알라딘에서 뭔가 플러스 요인을 얻으면 알라딘이 바로 없애버리는 듯해서.

이거에 더해서 울화가 치미는 게 한가지 더 있으니...공감 기능이 '좋아요'기능으로 바뀌고, 무슨 서재 팔로잉 팔로워 기능이 생겼다. 이게, 이게 젠장맞다. 네이버에서 이웃 추가하고 서로이웃 맺고...이게 싫어서 알라딘으로 넘어온건데, 지랄같이 알라딘이 따라하고 있다. 아....욕나올라한다!

 

 

3.

 

정말 몰랐는데, 이곳에서 내 글에 꽂혀 내 팬이 됐다고....오프 모임에서 누군가가 그랬다! (그 분은 알라딘 서재 유저도 아니다!!) 나는 글을 잘 쓰는 놈이 아닌데, 어째서 그런 이상한 반응을 보일 수 있냐고 하니, 그 분 왈, 비판적 정신(그리고 계속 논리적이라고..)이 돋보여서 그랬다고 한다. 아....정말 의도하지 않는 효과다. 이런 글을 좋아하는 분이 있다는 것도 신기할 뿐이거니와, 내가 쓴 글들이 정말 비판적이고 논리적인 글들인지 의심이 들게 했다. 다시 봐도 쓰잘데기 없는 문제제기만 한거 같은데...

 

어쨌든 사람들이 보는 시각은 천차만별인 것 같다. 뭐, 나도 블로그를 돌아다니면서 꽂힌 글들이 많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기에 이리도 멋진 글을 쓰는지 만나보고 싶은 적도 있었다. 급기야는 실행으로도 옮겨 만나 본 적도 있다. 그래서 블로그 글에 꽂힌다는 거가 어떤 느낌인지 모르는바는 아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내 글은 그리 좋은 글이 아니기에 공개적인 칭찬이 좀 민망하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지만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4.

 

지난 14일. 유니클로가 개장 10주년 기념 세일을 했다. 버스 환승 정류장 광고뿐만 아니라 사람들 손에 들려있는 유니클로 종이 가방을 보니, 유니클로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안 할수가 없었다. 2004년, 롯데가 처음으로 명동점을 오픈할 당시 야나기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모든 사람에게 유니클로 옷을 입힐 수 있다고 호언했었다. 당시, '회장 허세가 쎄다', '우리나라 옷 시장을 장 모르는 회장의 일갈'..정도로 치부했었다. 당시 언론의 논조가 이 비슷했다. 

 

그런데....요즘, 유니클로 매장을 보면 정말 무서울 정도로 점포들이 늘어나고 있다. 3년전보다 가격이 30% 정도 올랐는데, 매출은 꺽일 줄 모르는 기세다. 유니클로 타도를 외치며 론칭한 SPAO나 에잇세컨드 매출은 정말 처참할 정도다. 조금의 타격도 주지 못하는 듯하다. 근데, 정말 이들이 유니클로 타도를 목표로 하고 있긴 한지 의심스럽다. 품질도 그렇지만 가격 정책이 유니클로에 깨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유니클로는 거의 비슷한 옷을 계절별로 재탕한다. 아주 조금의 디자인만 변형할 뿐이다. 3년 전 골덴 바지나 현재 나온 골덴 바지나 똑같다. 3년 전 울 니트 카디건이나 현재 나오는 거나 그게 그거다. 현 시점에서 2-3개월 후에 4만원 짜리 바지는 1만원으로 떨어진다. SPAO나 에잇세컨드는? 절대 그럴일이 없다.

 

2주마다 계속 옷이 갈리는 건 좋다. 하지만 기본 디자인을 정하고 베이직한 옷들은 세일 폭을 크게해서 재고를 처리해야 어느 정도 가격 우위가 있을 거 같은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들 우리나라 업체들은 30% 할인을 고수하는 것 같다. 기본 가격도 비싸거니와 세일 낙폭이 크지 않으니 계속 유니클로 옷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 지오다노 면바지 5만원씩 쳐받지 말아라. SPAO 기본 아이템 유니클로 따라하려면 원단 좋은 거 쓰고 가격 세일도 본받아라. 얍삽하게 흉내만 내지 말고!

유니클로 욕하지 말고 자정노력을 통해 제발 유니클로에 맞서는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라. 빈폴과 헤지스처럼 과대망상에 빠져 옷에 허세를 쳐바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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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4-11-25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알라딘 서재의 변화가 많이 어색하네요. 마음에 안들어요;;

yamoo 2014-11-25 13:38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습니다. 가넷님!! 어색하고 마음에 안들고, 막 신경질이 납니다..^^;;
 

살림지식총서가 드디어 500권을 냈다. 정말 놀라운 속도다. 거기다가 이 지식 총서의 컨셉처럼 스펙트럼도 넓다. 인문, 사회, 문화, 역사뿐만 아니라 과학, 취미, 실용까지 교양 지식의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200권대 중반이후로 가격이 한 차례 껑충 뛰기는 했지만 이 시리즈의 역사, 철학, 문화 분야는 정말 탁월한 책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열 손가락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도그럴것이 해당 분야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자신의 전공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고 알차다. 시리즈 초반에 출간된 책들은 매우 저렴해서(3300원) 미친듯이 사모으기도 했다. 그렇게 모으다 보니, 나도 100권을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소장한 살림문고본은 총 110권이 좀 넘는다. 주제별로 그리고 시기별로 읽었기에 책꽂이에 꽂아두지 못하고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읽었던 살림문고 중에서 최고의 책들을 꼽아보면 정말 30권이 훌쩍 넘는다. 그 중에서도 인상깊었던 책들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이 중에서 특히 푸코와 후설이 대박이다~!)

 

 

 

 

 

 

 

 

 

 

 

 

 

 

 

 

 

대부분의 문화, 역사, 철학 분야의 책들이 정말 좋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그냥 이 시리즈 중에서 제일 허접한 책을 선별해서 그 책들만 피하는게 상책이다. 내가 소장한 살림문고를 모두 완독하지는 않았지만 한 70% 정도는 완독했다. 대개가 옹골찬 책들이었지만 역시 함량 미달인 책도 속해 있었다. 이런 건 역시 총서의 한계일 수밖에 없는 듯. 일단 두 권만 피하자.

 

먼저, 최악의 책은 <고객을 사로잡는 디자인 혁신>이다. 저자인 신언모는 삼성에서 매우 많은 뒷돈을 받아 챙긴 모양이다. 제목과 달리 이 책은 삼성 제품 예찬론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 사람은 교수 중에서도 원로 교수급에 속하는 모양인데, 내가 보기에 이 교수는 디자인의 본질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제품의 외형적 이미지가 디자인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읽으면서 '지랄같다'는 생각을 수십 번 되네였다.

 

<흡결귀가 지배하는 세상, 대학>을 읽고 보니, 퀄러티가 떨어지는 책을 내놓는 교수들은 거의가 실력없는 놈팽이쯤 되는 것 같다. 학생들을 후려 학부모의 돈만 빼먹는 흡혈귀같은 존재들. 이들은 대개 신 모교수처럼 한심한 책을 줄기차게 내도 비판하는 사람들이 없으니 안주하는 모양이다. 살림문고 최악의 책은 바로 신언모의 책이다.

 

 

두 번째 책은 <이란의 역사>다. 이 책 저자도 교수다. 유흥태란 사람인데, 역사서가 참으로 '창세기'초반부같다. 누가 누굴낳고, 또 누가 누굴낳고...하면서 끝임없이 이어지는, 뭐 그런 내용. 이전 페이퍼에서도 내가 이 부분에 내해서 불평해 놓았었다. 정말 지루한 책이다. 아랍 사람들 이름들이 모두 압둘, 모하메드, 하산...이런 이름들인데, 성과 이름들의 조합이 끝임없이 나열되면서 누가 누구를 죽이고 어느 나라를 세웠고, 또 간신히 살아남은 조카 아무개가 자기 나라를 멸망시킨 언넘을 죽이고 새로운 왕조를 열고...계속 된다. 빌어먹을 책이다.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고른 최악의 책이니, 읽지 않은 책 중에서도 있을 것 같긴하다. 어쨌건 위 두 책만 피하면 살림문고 본은 양질의 책을 만날 확률이 높은 시리즈다.  

 

살림문고가 처음 100권 돌파했다고 알라딘에서 세일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00권이라니.... 우리나라 출판시장에서 총서 시리즈 중 가장 많은 권수 발행을 목도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이건 우리나라 출판문화에 한 획을 긋는 대단한 업적인데, 이에 대해서 일언반구가 없는게 신기하다.

 

개인적으로 총서에 관심이 많아 총서들을 쭉~ 모아오고 있는데, 100권이 넘은 총서 시리즈는 정말 드물다. 아마도 단일 시리즈로 '한길사상신서'와 문지의 '현대의 지성' 시리즈 그리고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대우학술총서 정도가 꾸준히 출간되고 있는 총서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 총서는 모두 100권 이상을 돌파했다.)

 

헌데 살림지식총서는 단기간에 500권을 돌파하여 이 부분 신기록을 세워가고 있다. (위 100권을 돌파한 총서들은 80년대부터 또는 90년대부터 쭉~ 출간되어 오고 있는 총서 시리즈다.) 분명히 축하받아 마땅할 업적이지 않을까. (기습적으로 가격을 인상한 건 괴씸하지만^^;;)

 

서점에서 500권을 본게 어느 덧 한참 전이다. 그때 구입하지 않은 이유는 500권 제목이 <결혼>이라서. 난 아직까지 관심이 없고,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근데 결정적인 것은 이 책의 저자가 '결혼' 전문가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정보회사에서 근무했거나 그 대표가 썼다면 전문성에 의심이 가지 않았겠지만,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하는 사람이 <결혼>이라는 책을 쓴게 좀 거시기 해서 패쓰했다. 슬쩍 보니, 자게서 모양새에 정보의 나열에 불과해 앞으로 소장할 생각은 없다. 500권이라는 상징치고는 무게감이 떨어지는 책인 듯하다. 뭐, 결혼예찬론자나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서 봐도 무방할 듯.

((500권 기념으로 후설 책이 나왔으면 어떨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아니면 <이야기 서양철학사> 정도. 특히 후자는 그 두깨가 압도적이니..ㅎㅎ))

 

 

어쨌거나 사랑과 증오가 교차하는 살림지식총서다. 앞으로 몇 권까지 출간될지 지켜보는 것도 의미있겠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니. 지금까지 모아온 살림문고 기념샷이나 올려야 것다. 살림문고,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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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2014-11-20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특별히 야무 님 향해 드리는 말은 아니랍니다.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까요. 더불어 책 이야기를 건넬 때는 무엇이 매개 돼야 할까요. 근방에 블로그를 방문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물길에 잠길 듯 말듯한 징검다리를 마주할 때 마냥 망설임이 앞섭니다.

yamoo 2014-11-25 13:41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까요? 그리고 책 이야기를 건넬 때는 무엇을 매개로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저도 정말 고민을 하게 하는 지점입니다.
안다는 건 무엇이고 아는 것 같은 걸 말했을 때 반응들, 그게 담론이라면 그게 참 거시기 한 거 같아 저도 망설이게 됩니다. 네..그렇습니다..^^;;
 

 

이 번에 소개해 드릴 총서는 해냄출판사의 대표적인 교양 시리즈 중 하나인 [클라시커 50]이다. 이 시리즈의 모토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길 수 있다!'이다. 책의 편집이 매우 훌륭하여 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매 꼭지인 메인 에세이는 분량상 깊이가 없는 게 흠이다.

 

물론 중학교 교과서 수준의 평이이한 문체와 문화사별로 꼭 알아야할 내용을 선별해 소개한 건 분명한 강점이다. 문학, 음악, 미술, 역사, 인물 등 교양인으로 꼭 알아야할 명작, 명인 50선을 한 권에 담는 다는 것은 웬만한 편집 능력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이걸 아주 멋진 편집으로 해냈다.

 

그래서 현대 교양의 결정판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싶다. 깊이가 아쉽다는 것은 '교양'이라는 말에서 어느 정도 방패막이가 될 수 있겠다. 내가 이 시리즈의 4권을 읽어 보니 해당 분야의 무식을 충분히 타계할 수 있어, 참으로 괜찮은 교양 총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도 잠깐 밝혔다시피, 이 시리즈의 최대 강점은 편집이다. 모든 책이 공통된 편집틀로 이루어져 있다. 컬러 도판이 시원시원한데, 여기에는 희귀한 사진들이 여럿 포함돼 있다고 한다. 어쨌든 이 시리즈가 그렇게도 자랑하는 편집틀을 들여다 보면 다음과 같다. (참으로 자랑할만하다고 생각한다.ㅎ)

 

 * 글의 메인을 이루는 에세이 : 현대적인 감막 필치로 풀어낸 수준 높은 에세이

 * 링크 박스 : 인용문, 일기, 인터뷰를 비롯, 타분야와 연계된 흥미로운 정보

 * 그림과 사진 : 300컷에 이르는 컬러 화보

 * 캡션 : 그림과 사진에 대한 깔끔한 설명

 * 별도 자료 : 각 주제의 신속한 개관을 위한 다양한 압축 정보

 * 세부 정보 : 생애, 업적, 줄거리, 전승 과정 등 세부 정보

 * 추천 정보 : 각 주제와 관련된 책, 영화, 음악, 탐방지 소개

 * 요약 평가 : 각 주제의 특징과 의미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별점 평가

 

'멀티미디어 시대에 걸맞은 독특한 체제의 입체 교양서'라는 광고 카피에 적절한 편집틀이라 하겠다. 컬러 화보 때문에 최고급 코팅지를 사용하고 가로 크기가 좀 큰 책이라 보기에는 좋지만 이게 이 시리즈의 결정적인 단점 역할도 한다. 갖고 다니면서 보기가 좀 불편하다. 무게감 때문에.

 

한 가지 밝혀 둘 건, 이 시리즈도 역시 퀄러티에서 차이가 난다. 내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몇 꼭지 읽고 소장한 책은 4권이다.

 

 이 중에서 <재판>과 <건축>이 제일 만족하며 본 책이다. <철학가>의 경우 번역이 매우 저열했고, <디자인>의 경우 다른 디자인 책에서 많이 다뤘던 내용을 재탕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중복이 심하더라도 내용이 새로우면 괜찮은데, 이도 충족시키지 못한 느낌이다. 이 점에서 <건축>이 그만큼 돋보인다.

 

사실 다른 주제는 별 관심이 동하지 않아 4권만 소장했다. 하지만 <커플>이나 <발명>, <오페라> 등은 흥미로운 얘기가 많아 일독할 만한 가치는 충분한 듯하다.

 

어쨌든, 이 교양 시리즈는 눈이 호강하면서 교양을 쌓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총서다.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그나마 쉽게 구해 볼 수 있는 시리즈이니, 착한 가격에 읽어보면 언론들의 찬사(이 시리즈 출간 당시 언론들의 격찬이 이어졌었다)가 허언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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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이고 기괴한 영화. 하지만 그 속에 의미있는 알맹이가 꽉 들어차 있다. 이런 영화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것도 영화의 쇼킹한 면이 한껏 부각된, 그리고 이게 연출가가 의도한 비판적 의식의 구현이라면 영화의 차원은 더 높아진다. 매끄러운 플롯 속에 이런 내용을 담아 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연출가가 영화에서 이런 작업을 해 낼 때 우리는 그 연출가를 대가라 칭한다. 해다마 세계적으로 수도 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산업에서, 대가의 아우라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한 해 한편 만나면 운이 그렇게 나쁜 건 아니며, 두 편 정도 만나면 운이 좋다고 할 수 있겠다.

 

뭐, 여러말 주절거렸지만 영화를 보는데 있어서 대가 연출가의 아우라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는 거다. 헌데, 단돈 10원에 아주 빼어난 영화 한 편을 감상했다. 자주 가는 모 사이트의 모바일 서비스 덕분이다. 모바일로 보면 pc상에서보다 10배 정도가 싸니, 정말 우습게 영화를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모바일용 영화들은 대부분 그저그런 영화들 뿐이거나, 오래된 명작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아주 간혹, 선댄스영화제나, 우리나라 국제영화제(부산, 전주)에서 초빙됐던 영화들이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어제 만난 작품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우리나라에 소개됐던 영화다. 우리나라 타이틀은 <은밀한 가족>으로 돼 있는데, 원제하고는 좀 거리가 있다. 원제는 <Miss. Violence>다. 아마도 우리 영화에서 '~가족'타이틀로 대박난 영화가 많아서 이 타이틀을 뽑은 거 같은데, 원제의 강렬함을 반감시키는 것 같아 좀 아쉽다.

 

 

어쨌든, 공포영화를 감상하듯이 봤다. 분명히 유럽의 한 가족을 그린 영화였지만 일반적인 유럽 가족과는 확연히 달랐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지독한 가부장적 가족 사회를 모델로 한 듯보였다. 그렇다하더라도 이 영화는 그렇게도 많이 보아온 '가족 소재'의 영화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하드코어 영화로 유명세를 탄 <살인마 가족>은 여기에다 대면 전혀 기괴하거나 공포스럽지 않다. 살인마 가족일지라도 그들은 끈끈한 사랑의 가족 공동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속의 가족은 시종일관 우울하고 기괴하다. 영화의 첫 시작부터가 충격적이다. 이 가족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어머니-손자&손녀들로 이루어진 일종의 대가족이다.  영화는 11세 손녀의 생일 축하로 시작된다.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면서 생일을 축하해 주는 할아버지. 그리고 그 할아버지와 함께 사진을 찍는 딸들. 그런 와중에 생일을 맞은 딸은 아무렇지도 않게 베란다로 내려선 다음(너두도 자연스럽게) 평온한 표정으로 땅으로 떨어진다. 카메라는 피흘리며 사망한 딸의 모습을 비춰주며 영화의 프롤로그를 장식한다. 

 

 

 

 

 

이후 펼쳐지는 이 가족의 모습은 시종일관 공포스럽고 기괴하다. 가족 구성원이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소리내서 울지 않는다.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할아버지 역시 울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자신의 딸(죽은 손녀의 엄마)에게 화를 내는 게 전부다. 죽은 딸의 엄마도 그냥 흐느끼는 정도. 어색한 고요함과 평온함의 실체는 시간이 갈수록 할아버지의 행동을 통해 서서히 드러난다.

 

이 가족은 어느 누구도 일을 하지 않고 오로지 할아버지만 임시직 일을 할 뿐이다. 그것도 가족들을 돌본다는 명분으로 임시직일을 다니다가 그만둔다. 이 할아저지의 주요 일과는 '돌본다'는 사랑하에 가족 구성원 모두를 간섭하고 참견하는 거다. 이 외에 하는 일이라곤 쳐먹는 것밖에 없다. 아이들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딸이건 손녀건 모두 일정 시간을 굶긴다. 그도 그럴것이 이 가족은 생계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에 그렇다.

 

영화 초반부터 먹는 분위기로 시작하는데, 가족의 식탁은 언제나 메인화면으로 설정된다.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먹는 분위기는 무척 강조되는 듯하다. 집에서 가족들이 하는 일이 거의 없기에, 청소하고 TV를 본는 것 외에는 항상 멍청하게 앉아 있거나 무언가를 먹고 있다. 사실 일하는 사람이 없기에 먹는 것이 중요해서 자꾸 먹는 걸 비춰주는가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 러닝 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대에 가서야 이 장면들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영화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이 가족의 돈벌이 실체가 드러난다. 가족의 분위기상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 실체가 막상 드러나니, 좀 역겨운 감이 없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그의 손녀들을 매춘 도구로 사용하여 끼니를 때우는 돈벌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얘기들은 해외 토픽에도 가끔 등장하는 소재이기에 그리 놀라운 건 없다. 자기 딸을 수년간 강간해온 짐승같은 아비들도 뉴스에 곧잘 소개되지 않는가.

 

하지만 영화는 이 모티프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러닝 타임이 끝나갈수록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요인은 바로 여기에 기인했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감독은 이 모티프를 자신의 비판적 문제의식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이 지점이 플롯의 윤리적인 면(인륜)을 완벽히 넘어서면서 새로운 논의의 지평을 열었다. 그리고 이것이 나에게 이 영화를 한 차원 높게 평가하는 동인이 되게 했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보는 백미 중 하나는 이 가족의 상황을 온전히 연기해 내고 있는 배우들에 있다. 이 영화를 보면 본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연극을 감상하는 듯한 착각이 들곤한다. 배우들은 혼자 있을 때는 언제나 카메라 정면을 응시한다. 말하지 않을 때에는 같은 장소(항상 집이다)에서 항상 뭔가를 행한다. 식사를 하거나 청소를 할 때에도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한다. 카메라라를 보고 배우가 연기하는게 아니라 카메라가 이들을 따라가서 그 행위의 의미를 담는 듯한 인상이다.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을 카메라로 담았다는 게 정확할 표현일 듯싶다.

 

그렇기에 가족의 기괴함과 공포스러움을 나타내는 데 이보다 더 끝내주는 효과는 없었을 듯싶다. '가족의 파멸'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혈실의 공포' 그 자체였다고 느꼈으니까. 감독이 영화의 배역을 모두 연극 배우들로 캐스팅한 이유도 관객들이게 이런 느낌을 주기 위한 의도였을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쨌든, 이 영화는 매우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앞에서도 <살인마 가족>보다 더 공포스럽다고 했는데, 어째서 '가족 영화'가 이런 느낌을 들게할까? <Miss. Violence>가 <살인마 가족>보다 더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이유는 할아버지를 제외한 가족 구성원 전원이 절망감과 치욕감 그리고 불합리함을 가족이라는 명분 뒤에 숨겨야하기 때문이다. 이는 가족을 시종일관 관통하는 침묵에 고스란히 들어난다.

 

이 은밀한 가족은 남(사찰나온 복지위원들)에게도 거짓 증언을 하며 위장된 평온함과 침묵으로 자신들의 상처를 덮기에 급급하다. 이들 각자의 자아는 할아버지로부터 끊임없이 상처를 받고 불합리하게 억압을 당하지만 끊임없이 참고 또 참는다. 그렇게 길들여져서 그런것인지 아니면 그런 공생관계가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할아버지의 행동을 참아 낸다.

 

그도그럴 것이 영화 내에서 할아버지의 존재는 곧 가족의 생존과 동일시된다. 아마도 어렸을때부터 가족의 무의식속에 이런 생활패턴이 습관적으로 자리잡아서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이 가족의 행태를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이 가족에게 그 어떤 윤리적인 잣대도 쉽게 들이댈 수 없다.

 

 

 

 

현대 윤리학으로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영화의 노림수가 다른 데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감독의 의도다. 이 영화가 대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 영화는 감독이 '그리스 사태(디폴트)'를 보고, 그리스 국민에게 경각심을 울려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획한 작품이다. 시나리오는 일사천리로 썼지만, 가족과 국가가 잘 유비되겠끔 다듬는 작업을 6개월에 걸쳐 행했단다,

 

뿐만 아니라 비판적 의식의 극대화를 위해 배우들을 연극배우들로만 캐스팅했다. 그만큼 영화를 통해 어떤 충격적 장치를 만들려고 애쓴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래서 감독은 '은밀한 가족'의 기괴한 행위를 통해 그리스에 커다란 주먹감자를 날린다. 할아버지가 가족 구성원들에게 가하는 억압과 폭력은 그리스를 이끌어가고 있는 정재계 인사들이고, 할아버지가 가족을 망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 위정자들이 그리스를 망치고 있다는 것을 영화는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는 영화 속에서도 아주 분명히 보여진다. 복지 위원들이 할아버지의 집을 방문하여 사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IMF로 대변되는 외부 감사를 빗댄 것이다. 할아버지가 했던 방식으로 그리스는 IMF를 속였다는 거다. (여기에는 그리스 국민들이 사찰단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간접적으로 제시된다.)

 

그 비판의 최고점은 할아버지가 손녀를 매춘시키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니네들(그리스 위정자들)이 그리스 국민을 치욕스럽게 욕보이며 그리스 국정을 운영했다는 거다. 감독이 그리스에게 커다락 빅엿을 날리는 이 대목. 웰메이드 비판 영화가 어떤 것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덧]

1. 나중에 알긴 했지만 역시 이 작품을 연출한 안렉산드로스 아브라나스는 제7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역시 대가 작품은 영화제에서도 간과할 수 없나부다. 거기다 남우주연상까지 탔으니 작품의 퀄리티는 더 말하면 입아프다.

2. 영화 마지막에 할아버지에 가한 폭력. 폭력이 폭력을 낳는다는 방식으로 끝맺음 한 것이 조금 아쉽다.

3. 이 영화와 그나마 같이 볼 수 있는 책이 책세상에서 나온 <폭력>이지 않을까 한다. 바로 아래 내용 때문에..

폭력엾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남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느끼고 남이 겪는 폭력을 마치 내가 겪는 폭력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도덕적 요청과,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상대의 공격이 자신에게 폭력이 되지 않도록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단련하고..

 

그래도 이 영화는 폭력에 대한 윤리적 차원보다는 정치철학적 차원에서 논의하는 게 더 적절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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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고전파 경제학 이론 중에 '세이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프랑스 경제학자 장 폴 세이가 주장한 이론으로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거다. 경제학의 다른 이론들에 비해서 아주 간단하고 심플한 이론이랄 수 있다.

 

그런데 이 이론은 대영제국이 번창하던 시대에 적합했던 이론으로, 이후 마르크스와 케인즈에 의해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주류 경제학에서 케인즈 시대가 도래한 이후 세이의 법칙은 거의 사장되다시피했다. 교과서의 한 귀퉁이에서나 볼 수 있는 정도였다.

 

그도그럴 것이 이 이론은 제국주의 경제로부터 나온 것이에 그렇다. 영국이 해가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던 시절 영국이 생산한 모든 생산물은 해외 식민지에서 모조리 팔렸다. 공급은 해외 식민지에 대한 수요를 끊임없이 충족시켰으며(개쳑했으며), 경제 전반에 과잉 생산은 있을 수 없었다. (일제시대 일본의 생산물이 조선에서 죄다 팔린 걸 상기하면 쉽다)

 

그런데, 경제학에서 화석화 됐다고 여겨졌던 이 이론이 21세기들어 다시금 힘을 얻고 있다. 확실히 요즘 디자인되고 있는 제품들은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는 세이의 법칙을 입증해 주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아이폰일 것이다. 기존의 전화기를 단숨에 손 안의 컴퓨터로 버꿔놓았다. 애플이 공급하는 소프트웨어는 전 세계의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세이의 법칙은 사장된 게 아니었다! 아마도 기존 경제학 교과서는 세이를 새롭게 조명해 봐야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둘!

 

송나라에 저공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원숭이를 좋아하여 키웠는데, 원숭이 수가 늘에남에 따라 원숭이 양식을 구하기 쉽지 않았다. 당시 원숭이 주식은 도토리였다. 그래서 저공은 키우는 원숭이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토리 가격이 올라 구하기 쉽지 않으니) 이제부터는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주겠다"

 

그러자 원숭이들은 개지랄을 떨기 시작했다. 마구 가슴을 치고 소리를 꿱꿱 질러댔다.

이런 지랄에 저공은 할 수 없이 이렇게 말했다.

 

"아, 알겠다. 그럼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주겠다!"

 

그러자 원숭이들은 좋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지 출처 ; <고사성어랑 일촌 맺기>(2010. 서해문집)

 

 

위 이야기는 朝三暮四(조삼모사)로 널리 알려진 고사다. 보통 이 고사에 대한 해설을 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눈앞에 보이는 차이만 알고 결과가 같은 것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비유하거나 남을 농락하여 자기의 사기나 협잡술 속에 빠뜨리는 행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 (두산백과)

 

고사의 핵심은 원숭이들이 어리석다는 거다. 근데, 정말로 원숭이들은 어리석은가? 현대경제학, 특히 행동경제학 이론에서는 오히려 원숭이들이 매우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현재를 미래보다 더 좋아하는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나. 뭐, 현시선호이론이란 것도 그래서 나왔나보다. 그래서 현재 1000원이 미래의 1만원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거.

그렇기에 우리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이익을 포기하는 대가로 이자라는 걸 받는다. 거금을 빌리면 시간단위로 이자를 내야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시간할인율로 중간 거래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하니, 앞으로의 몇 시간은 경제학적인 면에서 상당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말 그대로 시간은 금인것이다.

따라서 과거에 멍청하다고 생각했던 원숭이들의 행위는 절대 멍청한 행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단지 시대가 단순해서 원숭이들의 경제학적 사고(경제학적 시간 개념)를 간과하고 있었던 거다. 

케인즈가 그랬다지.. 미래에 사람들은 모두가 죽는다고. 그래서 그는 미래를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쨌든 조삼모사 고사에서 원숭이들은 재평가를 받아야하지 않을까?!

 

 

셋!

여름 한철에 베짱이는 나무 그늘에서 놀며 노래부른다. 그 아래 개미들은 열심히 일하여 먹이를 저축한다. 드디어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온다. 날씨가 추워지자 여름에 땀흘려 일한 개미들은 모아 둔 먹이를 먹으면서 겨울을 잘 지낸다. 하지만 베짱이는 거지가 되어 동냥을 다니다가 쓸쓸하게 죽는다.

 

이게 개미와 베짱이 우화의 주된 줄거리이다. 이 우화의 교훈은 분명하다. 현재의 재미를 포기하고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동하라는 거. 너무 교조적인 색깔이 강하다. 현재 자기 삶을 희생하고 미래의 안락을 위해 일하라는 이 메시지는 누가 언제 무엇을 위해 고안해 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소박한 이야기 속에 노동을 착취하기 위한 자본가의 고단수가 숨어 있다는 거다. 도대체 베짱이와 개미를 왜 비교하는가? 개미는 곰과 뱀처럼 동면을 하며 겨울을 나는 곤충이다. 그에 반해 베짱이는 한 해살이 곤충이다. 봄에 태어나서 겨울에 죽는 운명을 타고난 곤충이다.

 

그런데 각 곤충의 생애주기를 무시하고 저 따위 우화를 만들어낸 건, 달리 생각할 수가 없다. '딴 생각하지 말아라. 미래를 위해 현재 열심히 일을 해야 네 노후가 평안하단다. 네가 좋아하는 걸 추구한다고? 재밌게 지낸다고? 베짱이를 봐, 겨울에 굶어 죽자나!'

이걸 무의식중에 주입시키려 '개미와 베짱이' 우화는 탄생한 거 같다.

 

남을 위해, 미래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삶이 과연 올바른 삶인가?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자기 재능이 뭔지도 모르고 계속 야근을 지속하고 있는 샐러리맨들. 거대한 착취구조 속에서 알량한 복지와 월급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게 사람들이 일해야 하는 숙명인가? 그렇다면 메트릭스 속에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있는 네오와 별반 다를게 없어 보인다.

 

'개미와 베짱이' 우화는 아이들에게 읽혀서는 안 될 우화가 아닐까?!

 

 

 

덧.

이런 생각이 발칙한 생각일까? 흠, 그럼 새로나온 <군주론>이나 다시 읽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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