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2주 전부터 재미있는 책을 찾아 읽고 있다. 역시 재미하면, 내겐 스파이 소설이나 추리 소설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게 강렬한 재미를 선사한 프레드릭 포사이드와 잭 히긴스의 책들은 이제 이 분야의 고전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볼 때, 재미하면 단연코 아시모프와 김용의 소설들이었다. 스파이 소설도 재밌었지만, 아시모프의 <로봇>시리즈와 김용의 대하역사소설 시리즈를 읽을 때의 재미와는 비교할 수 없을 듯싶다.
아시모프의 소설 시리즈와 김용의 소설 시리즈가 서점가를 점령하고 있던 1990년대, 나는 한 권의 책을 빌려 읽고 뒤 편의 내용이 궁금하여 그길로 곧장 도서관이나 서점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에서 누가 그 다음편을 빌려가면, 서점에서 구입하지 않고는 못배겼다. 정말 마약같은 재미를 느끼며 한권 한권 독파한 것 같다.
(당시 김용의 <천룡팔부>는 <아! 만리성>이라는 타이틀로 나왔다. 정말 재밌었는데, 같은 출판사에서 표지도 비슷하게 나온 <아! 북극성>이란 작품도 있었다. 작가는 소슬이었는데, 김용의 작품들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재미를 선사했던 시리즈다.)
요즘 재밌다는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오랜 전 마약과 같은 재미를 선사하는 책들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다음 편 내용이 궁금해서 상기된 표정으로 서점으로 책을 사러 가던 그런 마력을 선사하는 정도의 책이 없다는 사실.
물론 당시에는 책 읽는 재미에 서서히 눈을 떠 가던 시절이라 책이 주는 재미가 좀더 특별했던 것 같다. 이후에 본격적으로 세계문학 작품들을 읽으면서 나는 또다른 재미의 세계를 맛볼 수 있었다. 내가 세계문학 작품으로 첫번째 손에 든 책이 바로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었다.
이후,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들에 빠져들면서, 첨에 지루한 내용이 어떻게 기상천외한 재미로 바뀌는지 체험했다. 인내 후에 오는 거대한 재미는 이전에 느꼈던 재미와는 차원이 달랐다. 정말 거대한 재미였다. 에코의 소설 속에는 거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듯했다. 방대한 지식, 웃음, 전복, 플롯의 절묘함 등등.
그러다가 지인의 추천으로 밀란 쿤데라의 <농담>을 읽게 되었다. 이건 내가 이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과는 사뭇 달랐다. 지루한 내용과 속도감 있는 내용이 혼재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읽을 수 있었다. 문제는 다 읽고 난 후였다. 뭔가가, 뭔가가 있었다.
이전에 재미있게 읽고 느꼈던 감정과는 뭔가 다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다시 읽을 수밖에 없었고, 이후 몇 시간 동안 넋을 놓고 있었던 것 같다. 인간에 내재되어 있는 모순성과 부조리함을 아주 깊게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쿤데라의 소설들이 김용의 소설들만큼 재밌지는 않았다. 바람처럼 책장이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천천히 읽은 후의 감동은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아마도 내가 소설을 읽는 목적이 여기서 갈린 듯싶다. 이를 기점으로 재미 보다는 감동을 주는 책을 찾아 읽었던 거 같다. 보통 소설을 읽는 목적은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다. 언젠가 미디어 설문 조사에서도 재미를 위해 소설을 본다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런데 쿤데라의 소설들을 읽으면 그렇지가 않다. 페이지 넘어가는 것은 더디지만 읽고 나면 '인간'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이런 감정을 느끼기 위해 일부러 이런 책만 찾아 읽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찾아 읽는다.
이렇게 보면 소설을 읽는 부류는 간단히 정리 된다. 재미 또는 감동을 위해 소설을 찾아 읽는다. 재미와 감동을 모두 충족한다?! 두말해서 뭘할까. 한데, 재미와 감동을 모두 충족하는 책이란 어떤 책을 말하는 것일까?
정말 심각한 문제는 여기에서 생겨나는 듯하다. '재미'와 '감동'이 모두 주관적 성향의 척도라는 점. 그래도 신기한게, 책읽는 사람들이 '재미있다', '감동적이다'라고 평가하는 책들은 얼추 그런 경향이 있다는 거. 그런 책 중 상당수가 내가 읽고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어서다.
물론 내가 재밌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 역시 재미를 느낀다는 보장은 없다. 나의 경우를 보더라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나 <보트 위의 세 남자>는 하나도 재미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특히 후자의 경우는 무쟈게 웃기다고 해서 봤는데, 웃기기는 커녕 매우 지루해서 죽는 줄 알았다.
요즘 내가 고민하고 있는 지점이 바로 이런 것이다. '재미와 감동'은 인간의 주관적인 감정인데, 어떻게 그 감정이 어느 정도의 보편성을 띠느냐다. (책 추천은 확실히 보편성을 전제로 하니까.) 이런 이중의 체험이 칸트가 말하는 '유희적 동일시 이론'인가.
몇 주 전 지인들로부터 재밌다는 책들을 추천받아 조금 읽어보고, 재미를 못 느껴 던지게 된 책들 때문에 깊어지는 생각이다. 급기야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을 구분하는 잣대의 무의미함에 까지 이르니 머리가 터질것만 같다.
대실 해밋의 <몰타의 매>는 대중문학인가, 아니면 순수문학인가? 이 소설이 정말 셜록 홈즈보다 재미있는 탐정 소설인가, 아닌가? 그럼, 브람스토커의 <드라큘라>는?? 꼬리를 무는 이런 의문들은 한이 없다.
이런 모든 질문들은 무의미할지 모른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답할 수 있는 물음이기에. 나에게는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이 시점에서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있다. 90년대 읽었던 아시모프의 SF소설과 김용의 대학역사소설이 재미 면에서는 으뜸이었다는 거. 근데, 왜 이런 확신이 든지는 모르겠다. 역시 취향의 문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