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초순 경이었을 것으로 기억된다.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치지 못해 알라딘 신림점을
둘러 보려고 들렀다. 자주 확인하는 코너를 기웃거리다가 엄청난 책들을 발견했다. 책을 사지 않고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예기치 않게 20권 가량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모으고 있는 을유문화사 크로노스 총서가 대거 들어와 있었던 거다!
거기다가 항상 찾아다녔던 까치출판사의 서양사 절판도서까지 있었으니, 생각이고 뭐고 할 게 없이 바로 결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중동의 역사>나 <비잔틴 제국사>같은 책은 도서관에서 보고 소장하고자 헌책방을 찾아다녔는데, 그날 알라딘에서 만나거다. 심마니가 심봤다고 하는 게 그런 기분일 거다.
어쨌든 그날 나는 내가 찾던 책들을 한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늘은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시리즈 중 하나인 크로노스 총서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물론 알만한 사람들은 알 겠지만..
을류문화사의 KRONOS 시리즈는 책 내용을 떠나서 정말 모으고 싶은 총서다. 책이 매우 이쁘게 만들어졌기 때문. 읽어보니, 시리즈의 명칭에서 어느 정도 예상했겠지만 역사 총서였다.
시리즈의 책 날개를 보면 <크로노스 총서>의 탄생을 알리는 문구와 함께 다음과 같은 부제가 걸려 있다. "세계의 석학들이 참여한 간결하고 새로운 형식의 역사 읽기 프로젝트" 석학들이 참여했다고 모두 좋은 책은 아닌 것 같다. 관심을 갖고 몇 권을 읽어 내니, 괜찮은 책도 있었지만 별로인 책도 있었다.
이 시리즈의 책을 7권 갖고 있었는데, <르네상스>나 <종교개혁> 그리고 <이슬람>은 내용 자체로도 훌륭했다. 각 테마에 맞는 역사적 입문서 구실을 하는 책들인데, 고교 세계사 수준을 넘는(학부 교양 수준 정도), 내용임에도 알차고 쉬운 서술이 영양가 만점 이었다.
하지만 <독일제국>과 <근대 일본>, <런던의 짧은 역사>는 그리 높은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산만함이 결정적이었고, 번역 문제도 한 몫 했다. 그에 반해 <기업의 역사>는 좀 피상적이었다. 익히 알려진 내용이라 새로운 게 거의 없었다. 지루했다. <셰익스피어의 시대> 역시 지루하긴 마찬가지였는데 그건 내가 셰스피어 작품들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품을 모르면 정말 읽기 곤욕인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찾아다니던 책도 있었다. 도서관에서 보고 꼭 소장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수학의 역사>, <도시의 역사>, <진화의 역사>, <아메리카의 역사> 등이 소장 목록이다. <수학의 역사>를 지난 여름에 제일 먼저 손에 넣었다. 읽어 보니 역시 찾아다닌 보람이 있다. 내가 갖고 있는 800페이지 짜리 <수학사>보다 훨씬 쉽고 재미있다. 물론 역사서라 전문 수학적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수학의 역사를 스케치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책이었다. 그래서 <진화의 역사>, <도시의 역사> 등을 항상 찾아다녔다. 알라딘 중고서점을 매일 들르는 것도 이런 책을 찾기 위해서다. 그런데 바로 그날 찾던 책들을 떼거지로 만난 거다. 정말 운이 좋았다!
그외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다. 제목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할 거 같다. 특히 <야구의 역사>가 구미를 당긴다.
<공산주의>는 어떤 시각으로 쓰였는지 살펴보고 싶고, <발칸의 역사>는 이전부터 궁금했던 지역이다. 살림 문고본에서 나온 발칸의 역사는 좀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발칸의 역사>를 구입했다. <비폭력>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 됐는지 궁금해서 구입했다.
전체적으로 크로노스 시리즈는 괜찮다. <지식인 마을>시리즈 만큼 어느 정도의 퀄러티를 보장한다. 책 디자인도 빼어나 꽂아 놓으면 참으로 예쁘다~ (지금 나오는 판이 아니다. 꼭 이전 판본을 구입해서 꽂아야 한다~ㅎ) 얼마나 예쁘냐면... 현재 갖고 있는 크로노스 총서의 기념샷이다. 제대로 꽂아 놓지 못하여 미감이 반감됐다. ㅜㅜ
여러모로 관심을 갖고 있는 총서 이기에, 발간사를 갈무리 해 놓는다. <크로노스 총서>와 함께 나름의 '역사 읽기 프로젝트'를 가동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관심이 동하는 7권 정도만 끝내도 프로젝트를 완료한 뿌듯함 정도는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Kronos)신'은 만물의 생성과 소멸을 관장하는 제왕으로서 '시간, 세월'이라는 어원에서 나아가 '연대기'라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크로노스 총서는 세계역사학계의 저명한 석학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 대해 테마별로 집필한 새로운 개념의 역사 개론 시리즈이다. 200쪽 내외의 짧고 간결한 글 속에 시대를 이끈 위대한 인물과 사상, 문화, 종교제도 그리고 전환기적 사건 등의 역사적 편린들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서 인류 역사의 거대한 조감도를 그려내고 있다.
깊이 있는 내용과 생동감 넘치는 이 역사 시리즈는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킬뿐만 아니라, 역사 읽기의 길잡이 역할을 해줌으로써 폭넓은 교양 형성에 도움을 줄 것이다.
[덧]
단언하건대 요즘 나오는 책보다는 이전판의 디자인이 훨씬 좋다! 신판과 구판을 비교해 보면 대번 알 수 있을 듯..사진보단 일러스트레이션이 훨씬 낫다~ (수학의 역사 일러스트레이션은 최악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