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백화점이나 아울렛의 유니섹스 브랜드에 가서 옷을 고르다 보면, 매장 직원으로부터 태클 비슷한 제재를 당하곤 한다. “어머, 그건 여자 꺼에요. 남자 껀 여기 있어요.”
솔직히 나는 이 말이 그렇게도 폭력적으로 들린다. 유니섹스 시대라고 떠벌리지만 옷에 있어서는 남녀 구분이 아직까지 너무도 견고하다.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사실, 매장에서 옷을 고르고 보면, 예쁜 건 죄다 여자 옷이다. 왜 남자 옷은 같은 티셔츠라도 색깔이 칙칙하고 박스형 비스무리 한 것밖에 없는지 모르겠다. 남자들은 엗지 있는 옷을 입지 말라는 건가? (뭐, 요즘은 쬐~금 나아져 보이지만~)
정말 이상한 나라다. 유니섹스 시대라고 온갖 광고는 다 하면서, 옷은 철저히 성을 구분 짓는다. 옷뿐인가? 가방, 구두, 모자 등 사람이 몸에 걸치거나 드는 거의 대부분의 것들은 남녀 구분이 철저하다. (유니섹스 시대라는데 생각해 보면, 이러한 구분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걸 너무나 당연하고도 익숙하게 생각한다. 남녀가 유별하니, 마땅히 그런 것은 구별하는 것이 자연스럽단다.
그러면, 책상과 의자도 남녀용이 따로 있어야 하고, 자동차도 남녀용이 따로 구분되어야 한다. 인체 구조가 다르니, 다르게 디자인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디자인에 남녀 구분을 들먹이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치부한다.
맞다. 디자인 관점에서 보면 성별을 구분할 이유가 없다. ‘인간’이 생활하기 편리하고 아름답게만 만들면 된다. 당연히 성별을 구분하자는 놈이 미친놈이다.
하지만 그 디자인이 옷(패션)의 범주로 넘어오면 이분법의 원칙은 완벽히 부활한다. 여기서는 성별을 구분하지 말자는 놈이 완전한 변태가 된다.
그래, 내가 왼쪽에 단추가 달린 옷을 입었다고 수근 거리는 여자들. 유니섹스 시대에 남자가 여자 옷 좀 입은 것이 그렇게 변태 같고 손가락질 당할 짓이란 말인가?
가방, 구두, 모자 이런 건 남녀 구분이 있다손 치자. (절대 수긍할 수 없지만) 일단 옷에 대해서만 얘기해 보자.
난, 불행하게도 어좁이 계열의 남자이다 보니, 요즘 남성용 옷은 나에게 맞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냥 입고 다니기에는 너무도 얼빵해 보여,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여성용 옷이다.
니트 카디건 같은 것이 그런 케이스. 남성용은 어깨가 상박 윗부분까지 내려오지만 여성용은 찾아보면 딱 맞는 사이즈가 있다. 몸에 맞는 옷을 입고 다녀 좋아라 하는데, 여기저기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게이 아니냐는 말이다. 회사에서건 모임에서건 그렇다. 어떤 분은 대놓고 남자가 여자 옷 입었다고 깔깔거린다. 어떤 사람은 재수없단다.
나는 이런 폭력과 차별 속에서도 스타일을 버릴 수 없기에 그냥 입고 다닌다. 그리고 내가 믿는 신께 살짝 기도한다. “신이시여,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나이다. 저들을 용서하시 옵서서~”
일반적으로 남자 옷, 여자 옷의 구별은 1차적으로 단추가 어디에 달려 있는지에 따라 구분한다. 외형적이고도 핵심적인 구분 방법이다.
헌데, 단추가 왜 남성은 오른쪽에, 여성은 왼쪽에 달려 있는지 물으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남자가 여자 옷 입었다고 비웃는 여자들도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면서 비웃는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남녀 상의의 단추가 서로 다르게 달린 이유도 명확치 않다. 설만 분분할 뿐이다. 중세 때 남성이 결투에서 칼을 빼기 쉽도록 하기 위해 단추를 오른쪽에 달았다는 둥. 중세의 귀족 여성은 하인이 단추를 잠가주는데, 그 편의를 위해 왼쪽에 달았다는 둥. 그럴싸한 여러 썰들만이 난무할 뿐이다.
단추가 달린 방향은 옷의 상의가 좌임인지 우임인지를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원칙은 없다. 역사적으로 봐도 이는 변하는 문화적 양상이지 고착화된 관습이 절대 아니다.
문화사 책 몇 권만 들춰봐도 남녀의 옷 입는 방식에서 어떤 원칙이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없다. 대표적으로 주강현의 <왼손과 오른손>만 봐도 명확히 알 수 있다.
이 책 2장의 타이틀은 ‘오른손 지배권력의 문화적 헤게모니’. 여기 한 꼭지로 소개되고 있는 내용이 몸에 대한 통제로서 ‘옷의 좌임과 우임’이다. 주강현이 말하는 바를 따라가 보면 우리가 얼마나 통제에 길들여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자신이 입고 있는 양복을 살펴보자. 대개 왼쪽에서 단추가 달린 쪽, 즉 오른쪽을 향하여 여민다. 즉, 우임이다. 조선 시대의 복장도 대부분 우임이다. 그렇다면 전 시대를 걸쳐서 우임이 주류였을까. 물론 아니다. 우임과 좌임은 상호간의 성쇠를 거듭하면서 문화사의 한 장을 차지한다.” p 120
그리고 나서 주강현은 4세기에서 5세기에 걸쳐 형성된 고구려 고분벽화의 인물도를 분석한다. 한 번 거들떠 보도록 하자.
<표1> 4세기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인물의 복식 형태 p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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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2> 고구려 고분벽화 인물의 복제사(服制史)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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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임 : 옷의 오른쪽 섶을 왼쪽으로 여미는 여밈법
※ 우임 : 좌임의 반대. 웃옷의 왼쪽 섶을 오른쪽으로 여미는 여밈법
※ 합임 : 마주보게 여미는 여밈법
(숫자는 고분 인물의 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시대별로 본,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옷 여밈법의 경향을 발견할 수 없다. 우임에서 좌임으로 변했다든가, 좌임에서 우임으로 변했다는 어떤 일관된 경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좌임과 우임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후세기에 좌임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주강현은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고 한다. 그것은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복제가 우임 일변도로 변했다는 사실이다. 조선 시대 초상화를 보면 우임으로 통일되어 있다고 한다. 고종황제 어진 속의 복장은 우임이지만 전형적인 한국여인들이 입었던 저고리 역시 우임이었다. 우임천국이 된 것이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우임으로 통일된 조선시대 복식에서도 남녀 구분은 없었다는 점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오른쪽으로 옷을 여민 것이다.
자, 이것으로 옷을 여미는 방식은 문화적 산물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남자라서 우임, 여자라서 좌임이라는 공식은 우리나라 복식문화사에서 좀처럼 찾아 볼 수 없는 관행이다.
이 관행은 아무래도 서양의 근대 복식이 자리잡으면서 형성된 것 같은데, 언제 왜 그렇게 정착됐는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관행은 유니섹스 시대라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공고하게 사람들을 옭아매고 있다. 알 수 없는 관행이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언제나 ‘원칙을 깬다’는 패션 디자이너들도 옷을 만드는 방식에 있어서만큼은 남-우, 여-좌 원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디자이너들도 무의식적으로 시대에 세뇌를 당했나 보다. (물론 가끔 여성 옷에 우임을 도입하는 디자이너가 있긴 하지만 퍼포먼스에 그치고 있는 듯하다)
통재로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는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남성이 여성 옷을, 그리고 여성이 남성 옷을 거리낌 없이 입을 날이 언제 올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아래와 같이 옷 입는 스타일이 멋있다고 느끼는 사람 중 하나이기에 이런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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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의 남성들은 모두 여성 아우터를 멋지게 걸치고 있다)
그래서 <사토리얼리스트>같은 화보집을 사랑해 마지않는다.(물론 위 사진은 사토리얼리스트에 없다) 알 수 없는 규칙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의 개성대로 옷을 입을 수 있는 사람들. 얼마나 자유롭고 유머러스한지 보고만 있어도 즐겁다.
원래 옷은 구분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가 언제 무엇을 위해서 성별을 구분해 옷을 입었는지는 모르지만, 옷의 성적 차별은 푸코 식으로 말해보면 보이지 않는 ‘훈육’이자 ‘규범화한 제재’가 아닐까.
그래서 스트릿 패션 사진을 보고 자유를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어여 빨리 우리나라도 사진 속의 사람들처럼 자유롭게 옷을 걸치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좀더 삶이 재미있어 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