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짜르트가 살아 있다면
김미진 지음 / 민음사 / 1995년 3월
평점 :
품절


 

1.

아주~ 오래 전에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이다. 책을 읽은 지가 너무 오래 돼서 기억도 가물가물 하다. 다시 기억을 되살려 이 리뷰를 남길 수 있게 한 동력은 지하철에서 한 처자가 이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에 퇴근 후 없는 약속을 만들어 코엑스로 향했다. 신림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내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처자가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다. 무슨 책을 그리 열심히 읽나 봤더니, 아...예전에 내가 읽었던 김미진의 <모차르트가 살아있다면>(민음사, 2000)이다.

어!? 이 오래된 책을 아직도 읽는 사람이 있다니! 넘 반가워 처자를 유심히 봤다. 엄청 집중해서 읽고 있다. 음...재밌나 보다... 맞다, 이 책은 실로 우아한 흡입력을 갖고 있는 김미진의 첫 장편소설이다.


2.

집에 와서 얼른 <모차르트가 살아 있다면>을 찾아 쭉~ 훑어 봤다. 역시 열심히 읽은 티가  팍팍 난다. 꽤 감동적으로 읽었나보다. 밑줄도 여러 개 쳐져 있고, 단상들도 여백에다가 마구 적어 놨다~ (나에게 김미진이라는 소설가를 각인 시켜 준 작품이다.)

중간에 보니 찢겨진 대학 노트에 뭘 써놨는데, 이 책에 대한 단상이다. 하도 날려 써서 무슨 내용인지 글씨를 뚫어지게 쳐다봐야 파악이 됐다. 이 리뷰는 7년 전 내 단상의 그림자다.  

 


3.

“마지막 한 문장이 이 소설을 살렸다.” 작가 조성기가 이 소설을 평한 말이다. 솔직히 이 작품을 읽기 시작한 것은 이 말을 검증해 보기 위해서였다.

개인적으로 여류소설가라는 분들의 책을 꽤 읽어왔다. 오정희, 신경숙, 김정란, 서하진, 하성란, 최윤, 공지영, 김형경 등등...

문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그녀들의 소설은 이상하게도 다 읽고 나면 막 반박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그리고 뭐랄까, 답답하다고나 할까. 뭐, 그런 느낌을 종종 받았다.

하지만 김미진의 이 소설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시선은 생각을 유보하게 하고, 다음 장면을 위해 활자를 찾아 헤맨다.

비슷한 시기에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란 단편을 읽었더랬다. 이 소설의 주제는 ‘만나고 헤어짐’에 대한 ‘문학적 성찰’ 비스무리 한 거였고, 논평도 그런 쪽에 호평을 쏟아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으로 최윤은 그해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그냥 평범한 독자의 입장에서 똑같은 주제를 놓고 봤을 때 김미진의 작품이 최윤의 작품보다 훨씬 더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주제를 감각적인 문체로 잘 담아낸 것 같다.

헌데, 한 작품은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고, 한 작품은 문단에서 그리 깊은 조명을 받지 못했다. 요상했다. 김미진의 작품이 상을 받기에는 진짜 그저 그래서 그런가..

<모차르트가 살아있다면>은 ‘점’, ‘선’, ‘면’ 그리고 ‘보이지 않는 풍경’이라는 4부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각각의 부는 쌍, 지후-글라스, 윤-쿠키, 지니-류 등의 인물을 축으로 각자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단편으로 봐도 무방한 각 부의 독립된 에피소드들은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볼티모어의 어느 미술학교로 수렴한다. 그리고 4명의 주인공들은 서로 미묘하게 얽히고설키면서 그들 간의 '관계'를 드러낸다.

작품의 주제는 위에서 말했듯이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와 유사하다. 하지만 그 구성과 표현방식 그리고 전체적인 내용에서 사람 간의 만남과 헤어짐으로 인한 상처가 좀 더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각 부가 단편인 듯 보이지만 느슨하게 연결되어 장편소설이 되고, 끝은 마지막 문장으로 인해 처음과 연결되면서 ‘뫼뷔우스의 띠’구조를 완벽하게 구축한다.

이만한 작품이 문단에서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가 계속 궁금했더랬다. 헌데 책 말미에서 이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작가가 미국물을 너무 많이 먹어서 어휘력에 상당한 제한을 받았다나 뭐라나... 작가 조성기의 비평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봤을 때 그런 사소한 것보단 소설의 완성도를 더 주목해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이 작품은 어휘력에 제한을 받지도 않았거니와(그런 것 못 느꼈다!)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흡입력이 엄청나다. 빠른 사건 전개와 감각적 문체 그리고 수체화처럼 뿌려지는 묘사는 독자를 볼티모어의 쓸쓸한 겨울풍경에 그대로 데려다 준다.

“마지막 한 문장이 이 소설을 살렸다.”라는 조성기의 이 말은 “마지막 한 문장으로 인해 작가는 새로운 소설의 지평을 열어젖혔다” 정도로 바뀌어져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결국, 소설가의 수준을 만드는 건 평론가의 취향이라는 건가? 정말 그런 것인가?..라는 씁쓸한 생각을 막을 수 없었다.


[덧붙임]
쳇, 아무개 소설가는 김미진보다 훨씬 더 프랑스물 먹은 것을 소설 속에다가 자랑질 해 놨는데.. 평론가들은 거기에 대해서는 일언 반구도 하지 않고 왜 김미진만 걸고 넘어졌었는지 도통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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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9-04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품절작을 이렇게 멋지게 소개해 놓으시면...이건 얄미운 짓!

yamoo 2010-09-04 21:46   좋아요 0 | URL
헛~ 거의 실시간 덧글을...@_@

품절이라 안타깝고, 김미진 작가가 이 때의 포스를 발휘해 주기를 바라는 염원에서..ㅎㅎ 이후 2작품을 더 봤는데..재밌긴 하지만 좀 실망스러웠구요..
리뷰를 남긴 것은 순전히 지하철에서 봤던 그 처자때문이었습니다..ㅎ

전 이상하게 읽은 대부분의 책들이 품절이나 절판된 책이더군요..ㅎㅎ 저도 신작을 읽고 리뷰를 쓰고 싶은데...그게 잘 안되네요..

그냥 발로 쓴 리뷰를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비로그인 2010-09-05 00:15   좋아요 0 | URL
발로 쓴 리뷰가 이 정도면 손으로 쓴 리뷰 좀 보여줘봐요~
읽고 좀 까무러치게~~

yamoo 2010-09-05 22:18   좋아요 0 | URL
아...저는 항상 손으로 쓰지만 항상 끝에 가서는 발로 쓴 글이 됩니다..거참 이상하지요~~
저두 손으로 쓴 리뷰를 쓰고싶다고요~~~-ㅜ

마녀고양이 2010-09-05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마지막 한문장이 뭐예요?
난 그게 궁금해여~~
좋은 리뷰입니다!

yamoo 2010-09-05 22:20   좋아요 0 | URL
음...마지막 한 문장은 디게 평범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아, 쌍이라고 당신은 모르는 사람이야." 입니다..
요 문장 때문에 끝의 에피소드가 처음과 연결되고 있습니다..ㅎ

좋게 봐주셔서, 감솨~!

하루 2010-09-05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이 책은 어떻게 구해서 읽어야 하는겁니까!!!!!!!

yamoo 2010-09-05 22:22   좋아요 0 | URL
음...헌책방에 가면 구하실 수 있구요..
도서관에 가도 비치되어 있습니당~~^^
제가 읽은 여류소설가들 작품 중에서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멋진 작품입니다~
일독하시길 강추드릴게욤~ㅎ

양철나무꾼 2010-09-06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제목이 멋지구리 해서 읽었었던 기억이 나는데,내용은 가물가물 하다는~
이래서 리뷰라는 게 필요한가 봅니다~^^

yamoo 2010-09-06 00:30   좋아요 0 | URL
오~~이 책 읽으셨군요! 저두 가물가물 해서 이렇게 정리를 했습니다요..ㅎㅎ

근데, 진짜 모차르트 얘긴 하나두 없더라구요..ㅋ

차좋아 2010-09-06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무님 저 이거 샀어요^^(알라딘 중고방) <은밀한 생>도 다음달 살 예정이에요 ㅎㅎㅎ
<은밀한 생> 목차를 봤는데 간심이 가더라고요. 야무진 추천입니다 ㅎㅎㅎ

yamoo 2010-09-07 22:55   좋아요 0 | URL
앗! 그렇군요~^^ 와~~ 읽고 리뷰 남겨주셔욤~~^^

은밀한 생...정말 대단한 책이에요..일반 소설이라고 볼 수 없지만...밑줄을 그을 수 밖에 없는 대단한 문장들...
저 이 책 3번 읽었는데, 넘 좋았어여~ 차좋아님두 일독하시구 얼른 리뷰 올려주세염~~

달쓰별쓰 2010-09-07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책 제목이 멋지네요!
막 읽고 싶어지는 책입니다ㅋㅋ 아마 학교 도서관에 있을 거 같네요~
한번 빌려서 읽어봐야겠어요ㅋㅋㅋ

일단 방학을 한 뒤에......- ㅠ

yamoo 2010-09-08 09:39   좋아요 0 | URL
학교 도서관에 분명히 있을 거에요~^^ 방학을 한 뒤에 시간이 여유로우시면 꼭 일독해보세여~ㅎ
음...지하철용으로도 괜찮습니다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