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를 졸업하고 작가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의 전언에 의하면 지인의 자식들이 미대에 진학하겠다고 하면 열일 제쳐두고 말린다고. 미술을 전공하고 미술 작가가 되는 길이란 서서히 패가망신하며 가족들을 괴롭히다가 죽어가는 일이라고 한다.

 

내 부모님들도 내가 학창 시절에 미술에 소실이 있어 미술 전공하겠다고 하면 마구 화를 내시며 반대를 하셨을 거다. 미술 전업 작가란 작품을 팔아 생활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미술 작가로 돈을 벌 확률이 너무 미미하다.

 

보통 미술 작가라는 사람들을 보면 미대 나와서 국전에 20살에 입선하고 이후 공모전에 여러 상을 타며 개인전과 단체전을 쭉~ 해나가다가 40살이 되면 그때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지며 50살 이후에 그림을 팔아 생활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된다.

 

그러니까 25살에 대학을 졸업하여 약 20여 년 동안 돈 한 푼 벌지 않고 작업을 이어나가야 전업으로 생활이 가능하다는 거다. 이걸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몇 명이나 될까? 미술은 돈이 아주 많이 든다고 하는데, 그 돈을 회수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도 너무 길다.

 

그래서 중간에 포기하는 청년 작가들이 부지기수로 많다고. 끝까지 존버하면 살아남는다는데 20년 이상을 작업에 매진할 수 있게 서포트 해 줄 수 있는 재력이면 미술을 전공해도 되겠다는 결론. 물론 작품의 퀄러티는 보장되어야 할 거다.

 

이게 아주 먼나라 얘기인 줄 알았는데, 작가 입문기를 거치고 있는 내가 벌써부터 돈의 압박을 크게 느끼고 있다. 물론 나는 그림이 팔리지 않아도 꼬박꼬박 월급이 들어오니 아쉬울 게 없긴 하지만, 미술 작가 활동을 하면서 돈이 너무 깨지는 중이다.

 

이걸 내가 대학 졸업하고 시작했다? 등에 식은땀이 흐를 일이다. 비록 내가 아마추어 작가를 막 벗어나긴 했지만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작가 생활을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이 페이퍼를 빌어 좀 얘기 해 보려고 한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거 한 가지. 작업실이다. 작업실!! 첨엔 작가들이 왜 작업실을 그리 중요시 하는지 몰랐다. 집에서 그리면 되지 무슨 작업실 타령이지 했다. , 근데 내가 해 보니 작업실은 작가에게 알파요 오메가였다. 작업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니 작업실은 작가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였다.

 

집에서 작업을 하면 온 집안이 물감 자국이 남고 미술 도구 때문에 집 실내 환경이 열악해 진다. 무엇보다 쌓이는 작품을 보관해야 하는데 이게 큰 걸림돌이 된다. 50호 작품 10여 점만 되어도 움직일 공간이 없게 된다. 그러니 작업실은 필수.

 

서울에서 작업실을 구하려면 아무리 비루한 지하 월세라도 5천에 월30 이상은 깨진다. 이걸 수입이 없이 견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수많은 천재적인 청년작가들이 다른 길을 찾아 떠난 것이다. 이건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의 문제다. 다시 말해 미술작가를 하기 위해서는 재능이 아니라 자본이 갖추어 져야 한다.

 

보통 미술작가는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이 가는 길로 대부분 생각하는데 그랬다가는 자식의 원망만 들을 수 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건 기본이고 여기에 아빠의 재력이 아주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작가의 길을 갈 수 없다.

 

그리고 그림을 잘 그린다는 건 작가가 되는 것과 전혀 별개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그림을 잘 그린다고 칭찬 듣는 건 대상을 그대로 잘 재현하는 걸 말한다. 사진과 똑같이 명화와 똑같이 잘 복제하는 그림이 우리나라에서는 그림 잘 그리는 척도다.

 

근데 그림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똑같이 모사하면 절대 안된다. 그건 작가가 아니다. 작가는 자신만의 화풍으로 대상을 그려내며 거기에 감정을 담아야 한다. 구상 그림은 그래야 좋은 그림이 되고 작가로서 인정받는다. 그러니까 대상의 복제는 작품이 아니라는 거다.

 

잠깐 주제가 옆으로 샜는데, 이 얘기는 다음 페이퍼에서 좀 다룰 예정이다. 어쨌든 작업실 확보가 돈 잡아먹는 제1 귀신이다. 그 다음은 재료값이 아니라 출품비다. 작가는 수상 실적이 무엇보다 중요하여 공모전 이력을 넓혀야 한다.(개인전은 이 다음 얘기는 패쑤하자. 개인전 비용은 정말 어마무시하다.)

 

근데 이넘의 공모전 참가비가 꽤 비싸다. 보통 미술대전이라고 회자되는 신진작가의 등용문은 참가비가 1점당 5-6만원 정도(대체로 6만원) 된다. 캔버스 크기가 지정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100호 이내다. 100호 이내면 100호를 내라는 말과 비슷하다.

 

전문가용 100호 캔버스 가격이 보통 20-30만원 정도 한다. 가장 싼 캔버스를 구하느니 판넬에 주로 그리는데 판넬 가격도 10만원 정도 한다. 여기에 유화를 두껍게 올린다고 하면 유화 물감 값만 10여 만원 이상이 투여된다.

 

여기에 도록비가 추가된다. 도록비는 비싸면 15만원 싸면 5만원 정도 한다. 평균 7만원 잡으면 된다. 집이 서울이면 여기서 끝날 수가 있지만 집이 지방이면 교통비가 든다


보통 권위 있는 미술대전은 거의가 서울에서 열리기 때문에 그림 반입처도 서울이 대부분이다. 실물을 접수하기 때문에 서울까지 그림을 들고 접수해야 하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돈과 비용이 든다!(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비용을 생각하자)

 

, 공모전 1회 참가하는데 비용을 최소한으로 계산해 보자. 교통비를 제외하면 참가비 6, 도록비 7, 캔버스 10, 도합 23만원이다. 여기에 물감 값이 추가되는데 자신이 유화를 그린다면 10만원을 추가하면 된다. (나는 아크릴로 그리기 때문에 100호 그리는데 3만원 정도면 충분하다.)

 

자신이 연간 5회를 참가한다고 하면 100만원이 훌쩍 넘는다. 그 와중에 소모품인 붓과 물감, 보조제 등은 계속 사야 한다. 버는 돈이 없이 계속 돈을 써야 한다. 다양한 재료로 그림을 그려야 하기에 재료 값도 상당하다. 하지만 작업실 월세에 비하면 새발에 피다.

 

나는 전업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아니기에 어느 정도 감당이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좋은 작업실을 구하고 유럽 일류 재료를 쓰면 한 달에 200 깨지는 건 아주 우스울 거라 생각한다. 작품이 팔리면 좋지만 안 팔리면 이 생활을 지속해야 한다.

 

작가를 하면 돈을 모은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결혼?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을 거다. 돈을 안 벌면 돈만 축내는 몹쓸 인간이 되는 거다. 나처럼 돈을 벌면? 그냥 노후 대비 없는 병신이 되는 거지. 작품이 팔리는 대가? 그런 건 천운이 따라 줘야 하는 거고..

 

이런 생각이 드니 단지 크리에이티브한 삶을 살고 싶어서 작가의 삶을 시작했는데, 좀 잘못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좀 적당히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지인인 미술 작가가 왜 그림을 시작했는지 진지하게 물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좀 쉬어가야 할 때인 듯 하다. 주역이나 읽어야 겠다. 

 

 

 





>> 다음에는 우리나라 미술 교육의 병폐에 대해서 좀 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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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9-06 1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글프군요. 뭐 미술만 그러겠습니까?
글 써서 돈을 벌겠다는 것도 그렇고.
다 투잡하거나 집안 살림 맡을테니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사정하고
가사도우미 자처하면서 근근히 버티거나 뭐 그런 거죠.ㅠㅠ
근데 다음 글 기대되네요.ㅋ

yamoo 2023-09-08 09:36   좋아요 2 | URL
예술은 다 비슷비슷 한듯합니다.
그래도 미술은 훨씬 더 심각한듯해요. 글 써서 돈을 벌겠다는 사람은 진짜 많이 못 봤어요. 뭐, 글쓰기 배우는 건 그래도 돈이 적게 드는데 예술 배우는데 드는 비용은 정말 어마무시합니다. 음악은 말할 것도 없구요.

기대 하신다니 의욕이 불끈!ㅎㅎ

cyrus 2023-09-07 0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가 본인 작품 한 점을 전시회에 출품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이 투자되는데도 대부분 사람은 부유하고 한가한 사람만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오해하죠.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예술에 엄청난 돈이 투자된다는 사실을 알면 돈(세금) 아깝다고 불만을 표출해요. 이런 상황을 보면 답답하고 속상합니다.

yamoo 2023-09-08 09:40   좋아요 0 | URL
부유하고 한가한 사람이 미술하는 게 맞아요. 그런 사람들이 성공합니다. 성공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한계급이기 때문에 그래요. 오해라고 보긴 어려워요.^^;;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예술에 엄청난 돈이 투자된다는 걸 대중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요. 폴록의 그림은 미국이 정책적으로 미뤄줘서 비싸진 거에요. 유럽에 대항하기 위해서 미국 예술이 정체성이 필요했기에, 폴록의 작품들이 어마무시하게 비싸진 거죠.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냥 문화재라고 생각하면 쉬우릇합니다. 당시 미국 미술의 정체성을 확립해준 작가의 그림..ㅎㅎ

답답하고 속상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

새파랑 2023-09-07 1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술을 하려면 일단 돈이 많이 든다고 하던데 진짜인가 봅니다. 그래도 yamoo님은 전업이 아니셔서 그나마 다행인거 같아요. 천운이 많이 따르시길 바라겠습니다~!!

yamoo 2023-09-08 09:42   좋아요 0 | URL
네, 진짜 많이 들더군요. 저기 페이퍼에는 액자 값이 빠졌는데, 액자 가격이 정말 후덜덜 합니다~ 액자를 해서 내랴는 미술대전이 있긴합니다만...그렇지 않은 대회도 거의가 액자를 해서 출품들하더군요. 100호 액자값만 50만원이 넘어요..ㅜㅜ

감사합니다~~^^

잉크냄새 2023-09-07 16: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흐도 살아 생전 단 하나의 작품만이 400프랑에 팔렸다고 하더군요. 귀를 자른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지긋지긋한 가난과 끝 모를 절망도 한 원인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yamoo 2023-09-08 09:46   좋아요 1 | URL
당시 고흐는 그림을 늦게 시작했기에 기본기가 시망이었죠. 그래서 당시 아카데미풍의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자신이 그림고 싶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고흐의 그림을 저열한 그림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니 고흐가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ㅎㅎ 당시 대중적 인기가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봤을 때 기본기가 없는 듯한 그림을 그렸으니 끝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죠.
당시 그림과 다른 고흐만의 개성이 담긴 그림을 알아본 사람들은 고흐가 죽은 다음에 나타나게 되서 현재는 대가가 되었죠.

그렇다고 고통받는 작가가 고흐처럼 될 수는 없다는 게 함정..ㅎㅎ

얄라알라 2023-09-12 15: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대 입시에 월 천 단위로 쏟아붓고도 성과를 못내서 다시는 미대를 입에 올리지도 않는 이들도 많잖아요....정말 치열하네요.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부분들이 있는데 yamoo님 글 읽으며, 상상이라도 해봅니다.

yamoo 2023-09-12 19:22   좋아요 2 | URL
미대잆시 학원의 한학기 수강료가 400이랍니다!! .개인교습 받는 강남학생들은 기본이 월 천이란 소실 들었습니다만...진짠가 보네요..

미술 외부에서 볼 땐 돈이 많이 드는가 했는데...직접 해보니 장난 아닙니다. 단체전도 돈을 내야하고 개인전 2주는 저렴한 게 200정도 드네요. 그것도 공모해서 당첨되는 게.. 캔버스값, 액자값 장난아니에요. 보통 개인전 하려면 30호 크기로 최소 20점은 되야 하는데 전부 액자해야합니다. 팜플렛용 소책자 도록도 몇백해요. 100퍼센트 지원받는 선정작가가 되지 않는 이상 개인전 1회 할때마다 5백은 아주 우습게 깨지는 듯해요. 여기에 30호 액자비...20개. 개당 20만원..ㅠㅠ 작업실 월세에 재료비에 운송비에 해도해도 끝이 없는데 그림은 잘 팔리지 않아요. 그러니 부자들만 미술을 해야지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