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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편 - I'm a loser
혼다 다카요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책에이름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정의의 편』이라는 다소 무겁고 딱딱한 제목의 소설을 만났다. "I'm a loser"란 부제가 달려 있는 이 책은 책 제목만으로 본다면 딱딱하고 무거울뿐더러 왠지 짠하고 안타까운 내용들로 가득 차 있을 것 같다. 물론, 무겁고 딱딱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정의라는 것, 그리고 왕따와 폭력, 부정 등등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소설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들을 어찌 이리도 유쾌하고 재미나게 풀어갈 수 있을까 감탄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주인공 하스미 료타는 고1 여름부터 왕따, 빵셔틀, 그리고 샌드백이 되어야만 했던 루저 중에 루저다. 그에게는 고교생활은 하루하루가 지옥이지만, 한 가지 꿈이 있다. 그건 자신의 학교에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고 가지 않을 별 볼일 없는 3류 대학에 진학하는 것. 그럼 그곳에서 3년간의 치욕스러운 나날들을 딛고 새 출발을 하려는 것.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대학에 들어가 상큼한 봄날을 시작하려는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던 원흉 중에 원흉인 하타케타가 자신과 같은 대학에 들어 온 것이 아닌가.
봄날의 시작을 기대했는데, 또다시 매서운 겨울이 시작된다. 료타의 대학생활은 하타케타에게 도서관 뒤로 끌려가 구타를 당하고 돈을 뜯기는 일로 시작된다. 지난 3년의 반복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 때 어디선가 나타난 남자아이가 있었으니, 바로 기류 유이치라는 녀석. 도모이치라고 불리는 이 녀석은 고교 전국 복싱 대회에서 3연패를 한 복싱의 신. 도모이치의 도움으로 료타는 하타케타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고, 도모이치에게 끌려 한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는데. 이 동아리는 다름 아닌 “정의의 편 연구부”라는 동아리. 대학이 인정하는 공식 동아리이면서도 아무나 가입할 수 있는 동아리가 아닌, 동아리 회원의 스카우트와 모든 회원들의 찬성으로 가입할 수 있는 최소정예로 운영되는 동아리다. 이곳은 말 그대로 정의란 어떤 것인지. 정의의 편이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그리고 그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생각하는 곳이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교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해결사라고 할 수 있겠다. 학교에서 뭔가 정의롭지 못한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날 때, 이 일을 해결하는 해결사, 능력자들의 모임인 것. 사안에 따라서는 교내 검도부, 가라테부, 축구부 회원들을 협력요청이라는 명목으로 마치 하부조직처럼 부릴 수도 있는 막강한 동아리였던 것.
왕따에 빵셔틀이나 하던 루저인 료타는 놀랍게도 수많은 시간동안 구타를 당하며 실제로는 그 구타를 피할 수 있는 선구안과 반사 신경을 자신도 모르게 터득했던 것. 여기에 도모이치와 절친이 되며, 도모이치로부터 복싱을 전수받게 되는 료타의 신나는 변신과 활약을 독자들은 만나게 된다. 과연 료타 앞에는 어떤 신나고 놀라운 대학생활이 펼쳐질게 될까?
이 소설은 무엇보다 루저의 반전, 루저의 반란이 통쾌하다. 물론 여전히 어설프지만 그럼에도 루저 료타가 교내 가장 막강한 전설적 동아리의 회원이 되어 이런저런 사건해결을 위해 투입되는 과정들이 때론 조마조마하며, 때론 낯 뜨겁기도 하지만, 너무나도 신나고 통쾌하며 재미나다. 무엇보다 친구가 없던 외톨이가 도모이치와 절친이자 동료, 동지애를 키워나가는 과정이 뿌듯할뿐더러 고맙기도 하다. 여기에 청춘들답게 남녀 간의 애정전선, 그 청춘사업 역시 독자들의 마음을 때론 달달하고, 때론 안타깝고, 때론 심쿵하게 만든다.
전반적으로 소설이 너무나도 재미나다. 하지만, 그 재미 속에서 독자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세상은 정의가 살아 있는가? 그리고 그 세상은 공평한가? 정의의 구현은 무엇으로 행할 수 있는가? 힘이 있는 자들만이 행할 수 있나? 아니면 약자들 역시 정의 구현의 힘을 가진 걸까? 과연 돈의 유혹 앞에 흔들리지 않을 정의가 존재할까? 정의를 깨뜨리는 자들은 과연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들일까? 정의구현으로 과연 세상은 바뀌게 될까? 그리고 과연 난 정의의 편에 서 있는가? 등등 다양한 질문들을 독자에게 던진다. 여기에 대한 답은 물론 각자가 찾아나가야 한다. 다시 루저의 자리로 돌아가 정의구현을 붙잡으려 시도하는 료타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