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추장님! -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세요
원천희 지음 / 대성닷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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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님 추장님!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세요』는 ‘안전지대’를 떠나, ‘믿음지대’로 가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원천희 선교사님의 선교보고와 같은 책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바누아투라는 나라는 밀림의 나라, 21세기 문명과는 거리가 먼 원시부족들의 나라, 미전도 부족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사실 ‘미전도 종족’이란 용어로 주로 사용하지만, 이 책에서는 ‘미전도 부족’이란 용어로 써서 그래도 적었다. 미전도 부족이란 아직 한 번도 복음에 대해 접해보지 못한 곳을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분들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에 대해 들어는 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전혀 그런 접촉조차 하지 않은 그런 종족들을 가리킨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곳에서의 선교사역에 대한 보고이다.

 

물론 바누아투 전역이 미전도 부족은 아니다. 바누아투 인구의 70%가량은 사실 기독교인이다(이들 중 분포도는 장로교, 성공회, 가톨릭, 그리스도의 교회 순이다). 아마도 1980년까지 영국과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영향일 것이다. 이처럼 전국민의 다수가 기독교인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깊은 산속의 부족들은 원시적인 생활습관과 종교를 가지고 있다. 바로 이런 곳으로 복음을 들고 가 선교사역을 감당한 저자의 사역이기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철저한 자기희생과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 없이는 할 수 없는 사역, 그렇기에 때론 오늘 편안하고 점잖은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생각하는 신앙관과는 다소 거리가 먼 듯 보이는 모습들 역시 없진 않다. 하지만,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는 그런 사역이기에,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작은 것 하나까지 하나님께 의지해야만 할 절박한 상황일 테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몇 가지 생각을 해본다.

 

먼저,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한다 하면서도 안전지대에 거하길 원하는 모습을 반성해본다. 얼마나 많은 사역자들이 안전지대에 안주하고 있는가? 우리나라 신학대학원들이 높은 경쟁률을 자랑하는 이면에는 소명의식보다는 목회자의 자리가 안전지대라는 인식이 없지 않을 것이다(물론 오해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소명의식을 가지고 신대원에 들어가는 분들이 더 많으니까). 우리가 어디에 있던지, 우리의 자리가 믿음지대가 되길 소망해본다.

 

둘째, 바누아투라는 잘 알려지지도 않은 그곳의 깊은 산 속의 부족들 가운데는 원선교사의 나라가 대한민국임을 알고 더 환영해준 부족들도 있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100여 년 전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왔던 맥켄지 선교사가 그곳에서 사역을 감당했기 때문이다. 맥켄지 선교사를 저자는 몰랐다고 했는데, 사실, 맥켄지 선교사는 우리한국초기교회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아주 유명한 선교사 가운데 한 분이다. 물론 같은 이름의 또 다른, 어쩌면 더 유명한 선교사가 계셔서 혼동할 수 있는데, 여기 맥켄지 선교사는 호주사람으로 부산지역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고, 한센병 환자들을 돌봤던 분이다(유명한 손양원목사님도 이 맥켄지 선교사에게 영향을 받았다). 아무튼 이처럼 100여 년 전에 자신들에게 복음의 씨앗을 뿌리다 아내를 잃고 호주에 돌아갔다가 다시 조선이란 나라에 복음을 전하러 갔던 그 일들이 이들 부족민들에게도 알려졌었고, 100여년 후, 바로 그 나라에서 선교사가 자신들에게로 다시 와 복음을 전함이 그네들에게는 특별한 의미였을 것이다. 이를 하나님의 섭리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님, 여호와 이레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아무튼 뭔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하찮게 여겨지는 일들이라 할지라도 어쩌면 그것들을 통해, 훗날 더 큰 일을 행하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감춰져 있음을 생각해보게 되는 대목이었다.

 

무엇보다 살아 계셔서 친히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된다. 원 선교사님을 통해, 원 선교사님이 많은 복음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순간순간이 물론, 원 선교사님의 헌신과 땀 흘림이 담보되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일하심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 많았음을 보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그 하나님은 오늘도 우릴 위해 일하고 계심에 위로가 된다. 원 선교사님의 앞으로의 사역 위에 언제나 하나님의 일하심이 함께 하시길 축복해 본다.

 

평신도가 읽어도 좋은 내용이며, 아울러 선교사역에 꿈을 품고 있는 분들이 읽으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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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즐기고 보련다 - 75세 도보여행가의 유쾌한 삶의 방식
황안나 지음 / 예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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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즐기고 보련다』란 이 책의 제목을 처음 접하고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아니, 뭐 이런 책 제목이 다 있나 싶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은 즐기고 본다니, 이 무슨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라는 노래 가사가 떠올라 쩍 좋은 느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가 75세의 할머니임을 알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이 책의 작가 황안나 할머니는 “75세 도보여행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만 가지고도 관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75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75세에도 하는데 그대들이 못 한다고요? 그 나이가 어때서!”라는 외침이 가슴을 후벼 파는 것처럼 들려오기도 했다.

 

저자의 말처럼 자신은 부잣집 마나님도 아니다.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살던 사람이 아니라, 평생을 빈곤과 친구하며 살던 월급쟁이 선생님이었다. 남편의 빚에 쪼들리다, 빚을 다 갚고 나서야 명예퇴직을 했다는 이력도 왠지 멋스러워 보였다. 퇴직을 한 이후 새롭게 시작된 걷기 인생. 지리산 완주 8차례, 우리나라 국토종단, 해안일주, 산티아고 순례길 등, 65세에 시작한 도보여행으로 10년간 지구 반 바퀴를 돌았다니 존경스럽고, 그런 도전정신이 멋지게 여겨진다.

 

이런 내력을 알게 되자, 왜 책 제목이 『일단은 즐기고 보련다』인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책은 저자의 도보여행기가 아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책을 사랑하며 인생을 사랑하는 건망증 심한 한 할머니의 일상의 행복을 말하고 있다(책에서 언급되는 저자의 건망증들은 웃음을 자아낼 만큼 내용들이 많다. 이 가운데 대머리씨 이야기는 저자가 웃지 말라고 말함에도 웃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그렇기에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이와 함께 누군가의 일상을 엿보는 앙큼한 기쁨도 있다. 또한 우리네 어머니의 도전을 보며, 날 돌아보게 되고 삶의 자극을 받게 되는 긍정적 효과를 갖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행복을 누리며 산다는 것,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저자는 그렇게 살고 있다. 사랑하는 남편이 있어, 그리고 가족이 있어 행복하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책을 읽을 수 있어 행복하며, 글을 쓰고 누군가에게 그 글이 사랑받음에 행복하다. 그리고 건강한 두 다리로 자신이 꿈꾸는 어디로나 떠날 수 있음이 축복으로 고백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의 마지막 글이 가슴을 울리기도 한다. “삶은 견디는 거죠”라며 사람은 ‘견딤’을 통해 성숙해진다고 고백한다. 그렇다. 오늘 우리들의 삶이 힘겨운가! 그럼에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음을 확신하며, 그러한 희망을 품고, 오늘의 힘겨움을 견뎌낼 때, 우리의 삶은 행복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아픔은 있고, 눈물은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군가에게 그 하루는 고통의 하루이겠지만, 어느 누군가에게 그 하루는 행복이 가득한 하루일 수도 있다. 왜? 우리 마음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오늘 하루의 삶은 신이 나에게 허락하신 선물임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의 삶의 행복으로 즐기는 건 어떨까?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들을 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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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활짝 피어라 - 인생의 오후를 준비하는 당신에게
전영범 지음, 김재이 사진 / 신화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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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은 『다시, 활짝 피어라』다. 그리고 이런 부제가 달려 있다. “인생의 오후를 준비하는 당신에게” 또한 책을 여는 프롤로그는 또한 이렇게 시작한다. “생의 오후를 흔들어 깨우는 카피 한 줄”, 이 세 개의 문장에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오롯이 모두 담겨 있다고 여겨진다.

 

우리는 이제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4050세대는 이제 인생의 전반전을 보냈을 뿐이다. 인생의 후반전, 인생의 오후가 남아 있다. 이러한 4050세대들에게 도전할 것을 저자는 말한다. 그럼으로 다시 활짝 피길 촉구한다. 이러한 촉구는 간단간단한 문구를 통해 이루어진다. 저자는 수많은 사람들의 명언들을 모아 이 책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그 명언들을 소개하고, 그 아래 자신의 말을 덧붙이고 있다. 그렇기에, “생의 오후를 흔들어 깨우는 카피 한 줄”이다.

 

전체적인 책의 내용은 금세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하지만, 한 번 읽었다고 덮어버리기엔 짧은 문구들이 담고 있는 힘이 너무 크다. 그렇기에 반복하여 책장을 펼쳐 음미하고, 삶의 영양분으로 삼기에 충분한 내용들이다.

 

저자는 이러한 내용들을 6단락으로 분류하고 있다. 도전(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관계(인생은 관계 속에서 무르익는다), 행복(인생은 행복을 향한 여정이다), 시간(인생은 시간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리더십(리더십 없이 조직을 조화롭게 이끌 수 없다), 죽음(죽음을 생각하면 삶이 충실해질 수 있다)이 그것이다.

 

이러한 모든 내용들의 명언들을 다루기 시작하며, 저자는 이러한 문구로 시작한다. “나이를 먹어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포기하기 때문에 나이를 먹는 것이다. 도전하는 사람은 늙을 시간이 없다.” 그렇다. 포기하기 때문에 나이를 먹는 것이다. 늘 현실에 안주하며, ‘늘그러려니’하며 사는 사람들이 “늙은이”이다. 4050세대여! 아직 후반전이 남아 있다. 아무리 전반전에 승리하였다 할지라도 후반전에 이기지 못하면 진 경기이다. 반대로 아무리 전반전에 지고 있었다 하지라도 후반전에 승리한다면 승리자가 된다. 우리 후반전에 더욱 뜨거운 열정으로 도전하자.

 

나 역시 인생의 전반부를 마쳐간다. 그렇기에 더욱 이 책이 마음에 와 닿았다. 어느덧 내 나이가 40대 후반부를 향해 꺾어지고 있다. 그래서 때론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아직 후반전이 남아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문제는 내 안에 도전정신과 열정이 살아 있느냐는 점이다. 저자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명언을 소개한다. “어떤 사람들은 25세에 이미 죽어버리는데 장례식은 75세에 치른다.” 그렇다. 과연 나의 장례식은 언제 치러져야 마땅한가? 혹, 이미 치러져야 마땅한, 열정이 죽어버린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비록 지금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할지라도, 역경을 뒤집으면 경력이 됨을 기억해 본다. 지금의 시간들이 쌓여 더 큰 힘을 발휘할 경력이 되고 있음을 기억하자. 저자는 이런 말도 한다. “달걀을 깨지 않고 오믈렛을 만들 수는 없다.” 그렇다. 달걀을 깨는 것이 실패처럼 느껴질지라도, 이러한 실패를 통해, 성장하게 되고, 그 성장이 맛난 오믈렛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아직 남아 있는 후반전에 맛난 오믈렛을 즐길 수 있도록 실패마저 즐기는 인생이 되자. 2014년도에 가장 많이 들려왔던 명언 가운데 하나가 요기 배라가 말이 아닐까?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그렇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책 내용처럼 다시, 활짝 피게 될 순간을 꿈꾸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자.

 

85세 된 어느 작가가 그의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아직 살아 있고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의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 우리의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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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상에서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 극한의 상황에서 깨닫게 되는 삶의 지혜
엘리슨 레빈 지음, 장정인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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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상에서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은 리더십에 대한 책이다. 저자 앨리슨 레빈은 에베레스트 정상 등반을 성공한 여성이다. 물론, 저자는 등반 성공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저자는 자신이 처음 에베레스트 등정에서 정상을 불과 60-70미터 앞두고 다시 내려와야만 했던 그 때의 경험에 더 많은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저자는 에베레스트뿐 아니라, 7대륙의 최고봉들을 등반했고, 북극과 남극마저 다녀왔다. ‘탐험가 그랜드슬램’을 이룩한 것이다. 그것도 어린 시절 심장이 좋지 않아, 심장 수술을 3차례나 했던 이력을 가지고 말이다. 저자는 바로 자신의 이러한 이력을 기반으로 하여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런 이력 자체가 독자들에게 더 큰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 싶다.

 

먼저, 저자는 리더십은 앞에서 이끌어가는 책임자들만이 갖춰야 할 덕목이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쳐야 하는데, 바로 이런 긍정적 영향을 저자는 리더십이라 말한다.

 

저자는 도합 11장에 걸쳐 자신이 직접 몸으로 체험한 에베레스트 등반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기반으로 리더십을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리더십을 정리하기보다는 저자가 말한 리더십 가운데 공감이 가는 부분을 언급해보고자 한다. 먼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환경을 통제할 수 없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느냐 일 뿐이다.” 그렇다. 우리는 날 둘러싸고 있는 환경 내지 문제들을 통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그 환경 앞에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매달리는 것이 지혜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저자는 첫 번째 항목으로 준비를 철두철미하게 할 것을 말한다. 저자 본인은 에베레스트 등정을 준비하며 훈련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는데, 그 가운데서 극단적인 준비를 했다고 말한다. 잠을 자지 않고 산을 오르고, 먹지도, 물도 마시지 않고 산을 오르는 훈련을 한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 상황에서 이런 일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 항목을 읽으며, 이 첫 번째 항목이 저자가 마지막 항목으로 말하고 있는 실패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저자는 마지막 항목에서 실패를 껴안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실패 자체가 극단적 훈련, 준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베이스캠프에서 1번 캠프로 힘겹게 올라갔다가 하룻밤을 자고 다시 베이스캠프로 내려오고, 다시 올라 1번 캠프를 지나 2번 캠프까지 올라가 하룻밤을 지낸 후 다시 베이스캠프로 내려오고, 또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할 때, 고산지대에 대한 적응을 하게 되어 실패의 확률을 낮추게 된다는 것. 그래서 저자는 돌아가는 것, 또는 아예 되돌아가는 것이 옳은 방향일 때가 있다고 말한다. 이 부분이 이 책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이 아닌가 싶다.

 

정상으로 가기 위해선 때로는 돌아가기도 하고, 때론 완전히 후퇴하기도 하는 그런 지혜를 갖춤이 참 리더십이라는 것. 우리 인생 역시 그렇지 않은가 싶다. 너무나도 앞만 보고 전진만 하는 우리들의 인생은 아닌지. 직진본능을 가진 사람이 진취적이라 생각하고 있진 않은지. 때론 우회하기도 하고, 때론 멈추기도 하며, 때론 되돌아가기도 할 수 있는 리더십이 갖춰지길 소망해본다. 더 높은 정상을 위해 말이다.

 

또한 저자가 독특하게 말하는 리더십이 있다. 바로 에고가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는 결코 독특한 리더십이 아니다. 에고란 이기심이나 또는 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감, 내지는 자부심을 말한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하는 경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리더십이다.

 

아울러, 저자는 에베레스트 사망사고는 대부분 하산하는 과정에서 생긴다고 말한다. 이 부분을 난 이렇게 생각해봤다. 리더십에 대한 것이기에 참 리더십은 자리에서 내려올 때가 중요하다고 말이다. 물론, 저자는 이런 의도로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굳이 이런 생각을 해본 것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의 하산이 아름답지 못한 리더들을 보기 때문이다. 참 리더라면 하산과정도 계획하고, 아름답게 건강하게 진행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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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거인 철학하는 아이 3
마이클 포먼 글.그림, 민유리 옮김, 이상희 해설 / 이마주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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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거인』이란 짧은 동화, 참 좋은 동화네요. 다툼과 화해에 대해, 전쟁과 평화에 대해 짧고 잔잔한 언어로 너무나도 잘 표현한 동화랍니다. 두 거인이 서로 화해하게 되는 장면은 참 우습고 유쾌하기도 하고요.

 

옛날 아주 먼 옛날 아름다운 나라에 살던 거인 둘은 언제나 함께 지내던 사이좋은 관계였지만, 바다에서 발견한 분홍색 조가비 하나를 서로 갖겠다고 다투기 시작합니다. 난생 처음 다투기 시작한 두 거인의 다툼은 해도 숨게 만들고, 거센 바람과 파도, 그리고 구름만을 몰고 오게 만든답니다.

 

 그들의 다툼으로 몰려드는 파도에 둘은 급히 벗어놓은 양말을 신고 신발도 신으려 하지만, 커다란 파도가 신발도 조가비도 휩쓸어 가 버렸답니다. 이제 두 거인은 더욱 화가 났지요. 홍수를 피해 산으로 달아난 둘은 서로를 향해 돌을 던집니다. 서로를 향해 돌을 던지고, 바위를 던지며, 둘의 분노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자라나게 되고요.

 

그러던 둘은 이젠 정말 끝장을 내겠다는 듯이 서로 다가와 싸우지요. 하지만, 둘은 서로의 발에 신겨진 양말을 보는 순간, 옛 순간을 떠올려보게 되고, 자신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으로 다투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게 됨으로 다시 화해를 하게 된답니다. 둘은 서로 짝짝이 양말을 신었거든요. 다투기 전 벗어놓은 양말을 서로 다투기 시작하며 서둘러 신었는데, 서로 한쪽씩을 신었던 거죠. 이제 화해한 둘은 새 양말이 생기면 한쪽은 꼭 상대에게 준답니다. 그래서 언제나 다툼이 있던 그 때를 상기하는 거죠.

 

짧은 이야기의 동화, 『두 거인』은 다툼에 대해, 전쟁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그토록 친하던 둘이 싸운 것은 작은 조가비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에 불과했지만, 그것을 서로 갖겠다는 욕심이 상대를 향한 분노를 키우게 되고, 상대를 죽일 듯이 다투게 된 거죠.

 

이 땅의 다툼과 전쟁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겉으로는 온갖 대의명분을 내세워 포장한다 하지라도 결국엔 작은 조가비 하나 더 갖겠다는 탐욕이 다툼과 전쟁을 만들어내죠. 그 일로 아름답던 세상은 온통 어두워지게 되고요.

 

화해한 두 거인이 앞으로는 다시 싸우지 않기 위해 짝짝이 양말을 나눠 신는 것도 의미 있네요. 전쟁의 아픔은 덮어버린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니죠. 다툼의 순간을 오히려 기억할 때, 반복하지 않을 수 있죠.

 

게다가 함께 한 짝씩 나눈다는 것도 의미 있고요. 결국 둘이 모여야 온전한 짝이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겠죠. 나 홀로는 온전치 않죠. 누군가와 함께 할 때, 온전해 질 수 있음을.

 

이 짧지만 평화와 다툼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심겨 주는 동화를 통해, 평화와 공존의 싹이 많이 심겨지면 좋겠네요. 참 좋은 동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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