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는 나라
이제홍 지음 / 푸른향기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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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이야기는 충남 부여에서 한 구의 시신이 발견되며 시작된다. 그 시신의 주인공은 문화재청에 근무하는 백동운이란 남자. 경찰은 그 범인이 누구인지를 추적하는 가운데, 유력 용의자로 백제사 연구에 몰두하는 서민준이란 사람을 지목한다. 그런데, 그 뒤로도 또 다시 백제연구의 신진학자인 김명석이 살인을 당하고, 그 뒤로는 중국대사관 문화참사관인 은미령이 살인미수로 인해 의식불명의 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이 모든 사건의 용의자로 서민준이란 사람이 지목되는데, 과연 서민준이 범인일까? 피해자들 모두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백제가 남긴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금동대향로와 이런저런 모습으로 연관이 있으며, 서민준 역시 그러하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이 소설은 백제가 남긴 자랑스러운 우리의 보물(국보 287호) 금동대향로를 둘러싼 살인사건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이 소설이 우리에게 전하는 진정한 메시지는 바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의식 고취에 있다. 우리에게는 세계가 놀랄만한 자랑스러운 문화유산들이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백제의 문화유산인 금동대향로이다. 우리 민족에게는 이처럼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가득함에도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를 비하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이것 역시 일제의 의도적 식민지 역사교육 탓이 없지 않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있음을 깨닫게 하려하며, 우리로 하여금 자기 비하가 아닌 자긍심을 갖길 촉구한다.

 

여기에 더하여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정한론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무엇보다 백제가 우리 역사 가운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하려 한다. 그는 백제의 중요성이 우리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일본의 의도적 식민지 역사교육 탓이라 말한다.

 

저자는 이 재미난 소설을 통해, 백제의 역사와 국력은 엄청났음을 알린다. 그 예로 백제 22담로를 이야기하고 있다. 담로는 백제가 해외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설치한 22개의 행정 구역으로, 당시 백제는 한반도를 뛰어넘어 중국의 해안선 지역들과 일본 땅까지, 더 나아가서는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며 점령하였던 지역들까지 모두 아우르고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백제가 강국이었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강국이었던 백제가 한반도의 수호신으로 만든 것이 바로 금동대향로라는 것이다(물론, 이것은 저자가 소설 속에서 일본의 입장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소설 속의 설정이다).

 

소설의 전반부는 동북공정과 정한론, 그리고 금동대향로, 대백제론 등에 대한 역사적 진술들이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기에 자칫 지루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중후반부로 넘어가며, 적절한 사건과 함께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줄 내용들을 다루고 있기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내용이다. 마치 고인이 되신 최인호 작가의 『잃어버린 왕국』 그 다음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리만치 백제문화의 우월성에 대한 고양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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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와 고양이
김성일 지음, 이영은 그림 / 더드림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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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이 생각을 할 수 있다면, 그들의 눈에 보이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은 어떨까? 이런 생각을 간혹 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관점으로 풀어낸 소설이 있다. 바로 이 책 『까치와 고양이』가 그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까치와 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고발하고 있다. 물론 까치와 고양이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마치 성경의 선지자적인 모습을 보이는 까마귀 까묘도 등장한다.

 

아무튼 이들의 눈에 보이는 인간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아니, 도리어 부끄럽고, 안타까운 모습뿐이다. 욕정의 노예노릇하다 잉태된 자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한다. 물질의 욕망 때문에 아비를 미치광이로 만들어 정신병원에 버리기도 한다.

 

뿐인가! 고기를 더 많이 얻고자, 가축들의 최소한의 복지마저 외면한다. 돼지들은 일평생 움직이지도 못할 우리 안에 갇혀 살게 한다. 오직 더 많은 살을 찌우기 위해. 닭 역시 날개 한번 펴보지 못한 채 평생을 닫힌 공간에서 먹고, 배설하고, 알을 낳다가, 산란율이 떨어지면 도축장으로 향하게 된다. 병아리는 부화되면, 암수를 감별하여 수컷은 효용성이 없다 판단하여 곧장 분쇄기로 보내져, 다른 동물의 사료로 전락하게 된다.

 

가축들만 이처럼 사육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도 사육한다. 자신들의 유전자를 남기고자 하는 비뚤어진 욕망에 의해 정자와 난소를 매매하기도 하고, 대리모를 두기도 하며 심지어 장기를 얻기 위해 인간 사육까지 하기도 한다.

 

보다 맛난 커피를 먹겠다며 커피열매를 루왁 고양이에게 배가 터지게 먹이기도 하며, AI나 구제역을 막아보겠다고 수많은 가축들을 도축해버리곤 한다. 이러한 모습들을 동물들의 입을 통해 고발하고 있다.

 

동물들이 바라보는 인간 세상은 극도로 타락했다. 그리고 이런 타락은 창조주의 징계를 불러올 수밖에 없고, 이런 징계를 통해, 동물들 역시 함께 재난의 대상이 될 것을 동물들은 안다(소설 속의 인간들은 이런 모습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여전히 탐욕의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

 

이처럼 이 작가는 동물들의 눈을 통해, 인간의 더러운 욕망의 그림자를 들춰내고 있다. 자신의 자식이나 부모를 버리는 비윤리적인 모습, 동물의 권리 내지 복지는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더 많은 고기를 얻고자 하는 실리에만 매달려 있는 모습,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후세를 이 땅에 내놓고자 하는 비뚤어진 욕망, 여기에 더하여 책임성 없는 모습을 통해 생태계 질서를 파괴하는 모습 등 다양한 내용들을 언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작가가 제시하는 대안으로서의 내용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긍휼이다. 이 긍휼의 마음을 은혜를 갚은 까치 이야기를 통해 언급하며, ‘호신부’라 칭한다. 긍휼의 마음이 그 사람을 지켜준다는 것.

 

둘째, 비록 시대가 이러할 지라도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허락한 시간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최선을 다해서 가는 것이다. 이것은 고양이인 누얄이의 고백을 통해 몇 차례 반복된다.

 

셋째,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유전자를 회복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이 결론을 말하고자 여러 가지 인간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고발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우리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은 후엔 ‘짐승만큼만 되어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들이 가득함을 생각해본다. 때론 너무 내용이 반복되는 느낌이 없진 않지만, 우리의 부끄러운 단면을 잘 그려내고 있다.

 

또한 기독교작가답게 수많은 성경구절들을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부분 역시 아쉬움으로 남기도 한다. 같은 성경구절의 빈번한 반복이 아쉬웠으며, 너무나도 많은 성경구절의 언급은 ‘과유불급’이란 말을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몇몇 적용은 문자적 해석과 접근을 함으로 인해, 도리어 말씀이 공허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아쉬움이 남는다.

 

소설 속의 고양이 누얄이는 이처럼 타락한 세상, 미래가 불안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부끄러운 유전자를 남기지 않으려 한다. 암컷 고양이 매기가 수없이 유혹해도. 그만큼 우리 인간의 부끄러운 모습이 고양이의 앞날조차 어둡게 하고 있다는 거다. 이는 오늘날 험한 세상 속에서 자녀 낳길 거리끼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지 않나 여겨진다. 이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낱낱이 들춰내어 깨달았다면, 이젠 그 어두운 단면들을 밝게 만들어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얄이도, 그리고 어느 누구도 자녀 갖길 거리끼지 않을 그런 세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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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은 마음속에 있다 만화 최창조의 풍수강의 1
최창조 지음, 김진태 만화 / 고릴라박스(비룡소)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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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명당에 대한 관심이 많을 것이다. 어떤 이는 풍수지리는 미신에 불과하다며 무시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정작 좋은 자리에 대해서 관심이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안에는 누구나 명당을 차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조상 묏자리 명당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집이나 가게의 명당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기 풍수지리의 대가인 최창조 교수는 이 책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이 책은 만화다)에서 명당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있을까?

 

먼저 그는 풍수지리의 최종 목적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지키며 그 속에서 스위트 홈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 말한다. 한 마디로 우리의 삶을 안녕의 상태로 만들어 감을 목적으로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뭔가 대박을 나기 위한 수단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살기 좋은 장소가 있겠고, 무덤으로 사용하기에 좋은 장소가 있겠다. 이는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조상 묘를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후손들의 인생이 과연 달라질까? 묘의 명당 발복(명당에 있음으로 복을 받게 되는 것)을 강조하는 분들은 ‘동기감응론’을 이야기한다고 한다(동기감응론이란 에너지 파장 즉 기(氣)가 동종의 기를 만나서 서로 감응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즉, 부모와 자녀 간에는 유전자가 같기 때문에 그 에너지 파장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다. 과학에서 이야기하는 ‘공명’과 유사한 개념이라고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이러한 동기감응 때문에 묏자리가 좋고 나쁨에 따라 그 시신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파장이 자녀에게 좋거나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논리다. 상당히 설득력 있으며, 재미난 논리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것이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님을 저자는 말한다. 조선시대 대표적 실학자인 이익은 실제로 지관들에게 관할지역 무덤의 명당과 흉당을 조사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명당과 흉당으로 분류된 곳의 후손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역학조사하게 한 것이다. 그랬더니 명당에 묏자리를 썼음에도 자손들이 실종되어버린 경우도 있고, 반대로 흉당에 묘를 썼음에도 자손들이 멀쩡히 벼슬을 잘 하고 있는 경우들이 있다 한다. 그러니 명당을 찾는 일이 부질없는 짓일 수 있음을 저자는 밝히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명당은 찾아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만들어 가야 할 대상이라고 말이다. 혹 내가 있는 장소가 문제가 있는 땅이라면 그곳을 고쳐 쓰면 된다. 이것을 풍수지리에서는 ‘비보 풍수’라 하며, 주로 신라에서 발달한 풍수학이라고 한다. 그렇다. 마치 철새처럼 나에게 좋다는 곳을 찾아 이리저리 유리방황하는 모습이 아니라, 내가 있음으로 내가 속한 지역이, 내가 속한 공동체가 명당이 될 수 있다면 되지 않을까? 적어도 이런 욕심을 가지고 세상을 품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저자는 이런 말도 한다. 내가 있는 곳이 편하게 느껴지면 거기가 명당이며, 좋은 땅이란 그 땅이 어떤 사람의 어떤 용도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이다. 그렇다. 나의 필요에 맞는 땅을 고르고, 아울러 내가 있는 그 장소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살아간다면, 이것이 처음 말한 ‘안녕’한 삶이 될 것이고, 바로 그곳이 나의 명당인 것이다. 따라서 이 책 제목인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처럼 내 마음이 평안을 누리는 것,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장소를 명당으로 만들어가는 비결이다.

 

풍수지리에 대해 경기를 하며 폄하할 필요도 없거니와 명당에 목을 매며 살아가는 것 역시 어리석은 모습일 것이다. 풍수지리에 대해 오랜 시간 연구한 저자의 관점에 공감하며, 다음에 출간될 풍수 강의 2편 역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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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철학이 필요해 - 어려운 철학 쉽고 재미있는 동화로! 좋은꿈어린이 4
김병규 지음, 조신애 그림 / 좋은꿈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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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철학이 필요해』는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철학이 왜 우리들에게 필요한지를 이야기해주는 책이랍니다. 이 책의 장르를 ‘철학동화’라고 책 스스로 분류하고 있네요. 철학이라고 하면 어렵고, 따분한 것으로 우리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작가 선생님은 말한답니다. 철학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고 말입니다. 자신의 철학이 없는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며 그저 남의 흉내나 내고,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갈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결코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는 거죠.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철학이 필요하다고 작가 선생님은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철학은 생각함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거죠. 생각이 없기 때문이 철학이 없다는 거죠.

 

그래서 작가 선생님은 ‘철학동화’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통해 여러 가지 분야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답니다. 먼저, 우리 인간은 무엇인지부터 시작하여, 우리 인간이 동물(구체적으로는 침팬지)과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그리고 나에 대해 생각하게 하며, 가족에 대해, 내 안의 선과 악에 대해, 노동의 필요성에 대해, 진짜 공부는 무엇인지에 대해, 습관에 대해, 몸과 마음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한지에 대해, 자유에 대해, 전쟁에 대해, 평등에 대해, 다문화에 대해, 꿈의 소중함에 대해, 이해․배려․관용에 대해, 아름다움에 대해, 인간관계에 대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쓰레기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답니다.

 

솔직히 ‘철학동화’라고 되어 있지만, 재미난 이야기를 읽어가는 가운데 자연스레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생각해보기에는 이야기가 상당히 딱딱하답니다. 자연스럽고 흥미로운 이야기라기보다는 주제들에 대해 언급하기 위해 일부러 만든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하네요. 마치 아이들의 시험문제를 위한 지문 내지 문제 자체의 예화처럼 말이죠. 조금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이런 수많은 주제들 가운데 몇 개만 생각해 볼 수 있게 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생각할 주제들은 꼭 필요한 것들이죠. 그렇기에 부모님과 아이가 함께 이런 주제들을 이야기해보는 것은 아이들의 생각주머니에, 그리고 아이들의 바른 가치관 형성에 큰 도움이 되리라 여겨지네요. 한 번에 책 한 권을 모두 읽는 것보다는 아이 스스로 책의 이야기 하나씩을 읽고 생각해보게 하는 것도 좋겠고요.

 

너무 공부 분위기가 난다는 것을 제외하면 내용은 참 좋네요. 이런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도 철학이 생겨, 자기 삶에 있어 주인 되는 인생이 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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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세계에서 쫓겨난 자들 - 장화홍련전 열네살에 다시보는 우리고전 2
고영 지음, 이윤엽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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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소설들은 어쩌면 우리에게는 이미 구닥다리로 인식되어지거나, 또는 교과서에 실려 있기에 단순히 시험을 치르기 위해 암기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 우리의 고전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살려낸 책이 있다. 바로 고영 작가의 『장화홍련전』이다. “열네살에 다시 보는 우리 고전”이란 타이틀로 출간되는 두 번째 책이다.

 

여기 ‘다시 본다’는 단서가 달려 있다. 이 다시 본다는 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옛 언어로 써진 고전을 오늘 우리의 현대어로 ‘다시’ 읽는다는 의미겠다. 소설이란 대중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언제나 그 시대의 언어로 새롭게 번역되어져야 하며, 읽혀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현대어로 ‘다시’ 읽을 수 있도록 풀어 쓴 작가의 작업이 고맙다.

 

둘째, 옛 고정관념을 가지고 그러한 시각으로만 소설의 내용을 접근하는 것이 아닌, 오늘 우리 시대의 인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다시’ 새롭게 해석해 본다는 의미가 있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소설의 원 내용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원 내용에 더하여 오늘 우리가 새롭게 ‘다시’ 해석해봐야 할 것들에 대해 설명을 저자는 덧붙이고 있다.

 

저가가 이 책 『장화홍련전』에서 새롭게 다시 해석해야 할 내용들은 무엇보다 가부장의 권위에 대한 접근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부제로는 『아버지의 세계에서 쫓겨난 자들』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장화홍련전』을 접할 때, 대부분 계모만을 욕하지만, 실상은 가정의 절대 권력을 가지고 휘두를 수 있었던 가부장이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저가는 이야기한다.

 

또한 국가 공권력의 무능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장화, 홍련이 애매한 죽음을 당한 후, 홍련은 원귀가 되어 그 지방에 부임하는 부사를 찾아간다. 하지만, 부사는 애매한 죽음에 대해 한을 풀어주기는커녕 귀신을 본 두려움에 죽어나간다. 이것을 작가는 ‘국가 공권력의 무능’이라 해석한다. 여기에 더하여 끝내 장화홍련의 아버지가 아무런 벌을 받지 않고 풀려나는 장면을 통해서는 끝내 공권력이 가부장의 권위를 흔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음으로 해석한다. 어쩌면, ‘가제는 게 편’이라고 가부장의 권위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끝내 자신들의 공권력 역시 위협받을 것을 두려워했을지도 모르겠다.

 

더 나아가 작가는 『장화홍련전』을 통해, 오늘 우리 사회를 돌아본다. 오늘 한국 사회 역시 이 사회를 움직이는 권위 있고, 힘 있는 자들이 힘이 없기에 애매한 상황에 처해 고통당하는 자들, 절박한 상황에서 하소연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다시 보는’ 시도는 대단히 바람직하다. 단지 노파심에 한 마디 한다면, ‘다시 보는’ 이러한 시도들이 자칫 또 하나의 고정관념을 형성할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얼마 전 tv 모 예능 프로그램에 초등학생들이 나와 이 프로그램의 고정출연자들과 함께 『선녀와 나무꾼』에 대한 토론을 벌이는 장면을 잠시 보여준 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며 든 생각은 아이들은 ‘다시 보는’ 훈련을 통해 열린 시각을 갖지 못하고, 도리어 이미 또 하나의 고정관념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편협한 시각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해 ‘다시 보는’ 훈련들을 시켰을 것이다. 이런 시도는 선한 시도임에 분명하고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그렇게 ‘다시’ 해석되어진 것을 이 아이들은 정답으로 오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해석 이외의 것에는 또다시 귀를 닫아버리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이런 접근은 결코 ‘열린’ 접근이 될 수 없다.

 

물론, 이 책에서 저자는 편협한 접근을 하지 않는다. 아울러 저가의 접근은 대단히 개연성이 있는 접근이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에 나 역시 동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다시 보는’ 시도가 자칫 당시 시대에서 이 작품이 만들어지며 품었던 작품의 의도, 그 메시지를 우리가 무시해버린다면 이것 역시 우리가 커다란 것을 놓치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 ‘다시 보는’ 접근과 함께 작품의 1차적 의도, 역시 우리가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노파심에 말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의 내용은 참 좋다. 계속하여 출간되어질 다음 작품들 역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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